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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20. 2023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폭력적인 삶>

영화 <바이얼런트 라이프Violent Life> 1962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이탈리아의 언어학자이자 문학가, 영화감독이다. 소설 <폭력적인 삶>(1959)은 파졸리니가 동성애 스캔들로 공산당에서 축출되어 로마 변두리에서 교사 생활을 했을 때 쓴 것이다. 주인공 톰마소 푸칠리의 열세살에서 스무살까지 삶을 그리고 있다.     

  

콜레타가 무거운 책임을 혼자 다 떠맡았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은 다소 불량한 태도로 앵무새처럼 그를 따라가기만 했다. 아버지와 형이 레지스탕스 대원에게 총살당했고 지금 도둑질을 해 가며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우고는 엔리코, 살바토레와 함께 걸으면서 지나가는 모든 여자에게 치근덕거렸다. 

학생인 듯한 어린 녀석들이 원앙처럼 짝을 지어 뒤따라왔다. 톰마소는 친구인 알베르토 프로이에티 옆에 바싹 붙어 걸었다. 그는 알베르토와 같이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은 빈민촌에 사는 다른 친구 녀석들처럼 배를 곯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과 어울리면 뭔가 이득이 있을 거야. 명성도 얻을지 몰라! 이 녀석들과 커피 마시러 가거나 영화관에 가는 게 낫겠어. 아니면 저 자식들과 같이 가는 게 낫겠어? 이 녀석들 중에서 제일 변변치 못하다는 자식도 최소한 의사나 변호사, 기술자를 아버지로 뒀어. 그들은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이지!’ 

톰마소가 얼굴을 붉히며 생각했다.                (P66-67)     

파시스트 대열은 세미나리오 거리 입구에 있는 광장 모퉁이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태양’이라는 작은 호텔이 있었다. 종업원들은 이미 잽싸게 모든 창문을 닫어걸고 피신한 상태였다. 문 하나만 반쯤 열려 있었는데, 주인이 두려움에 떨며 가끔 고개를 빼꼼 내밀곤 했다.

“체코슬라바키아 놈들아, 나와!”

네오파시스트들이 빈정대며 소리쳤다. 그들은 또다시 휘파람을 불었고 점점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역겨운 놈들아!”

“당장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그자들이 너희를 이곳으로 부른 거냐. 아니면 너희가 스스로 온 거냐?”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체코슬로바키아 놈들아아!”

한 사람이 소리치자 주위에 있던 대여섯 동료들이 한목소리로 야유를 퍼부었다. 

“진정들 해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을 나한테 보낸 걸 난들 어떻게 해요!”

호텔 주인이 부탁했다. 

그때 두세 줄이 웅성대더니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똥을 가져와! 똥!”

아주 달콤한 일을 예고하는 그 작업을 책임진 네오파시스트 당원 대여섯 명이 실제로 골목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몸을 구부정하게 움츠린 채 웃고 떠들면서 손에 오물통을 들고 재빨리 앞으로 행군해 왔다. 모든 대야, 목욕통, 양동이에 숨이 확 막힐 정도로 악취 나는 누리끼리한 오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오물통을 들고 호텔 문과 담벼락에 퍼붓기 시작했다. 오물을 던지는 사람들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물이 튀지 않게 하려면 특별한 전략이 필요했다. 양동이 손잡이와 밑바닥을 쥐고 잽싸게 한 번은 이쪽으로, 한 번은 저쪽으로 단번에 비워 내야 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어 댔다.       (P69-70)     


그의 두 눈은 자신감으로 뜨겁게 빛났고 태도는 겸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난 언제나 내 의무를 다해 왔어!”

호모는 자신의 의무감에 벌써 감동했는지 턱을 목 쪽으로 잡아당기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난 여덟 살 때부터 일했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말이야. 어머니는 키워야 할 자식이 여덟 명이나 됐지. 난 이발사, 수리공, 목수, 승강기 보조원, 막노동, 가구 광택 내는 일 등..... 안 해 본 게 없어. 일할 때는 절대 뒤로 빼는 법이 없었어!”

호모는 화가 나는지 눈을 찡그리고 오므린 손가락으로 가슴을 탁탁탁 여러 번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난 늘 한 가지 사상을 품어 왔고 절대 그 사상을 바꾸지 않을 거야. 나는 빵과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면서 빵만을 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100퍼센트 이탈리아 사람이야! 하지만 오늘날 이탈리아에 진정한 이탈리아인이 얼마나 있을까?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가르쳤던 원칙, 선하고 현실적인 원칙들을 지키고 사는 이탈리아 사람들 말이야!”        (P220-221)     

미군이 로마로 들어오자 토르콰토 가족은 함께 살던 다른 농민들과 함께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미군이 그 학교를 사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학교를 떠나도록 회유하기 위해 미군은 꾸러미 몇 개와 보잘것없는 돈 몇 푼을 쥐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정말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러자 대기가 뜨겁고 자갈이 불덩이 같던 어느 여름날, 치안경찰이 들이닥쳐 그들을 거칠게 공격했고 그들에게 남아 있던 걸레 조각 같은 옷가지와 함께 그들을 길거리로 내쫓았다. 

그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돕는다. 어떤 이는 한 달에 2000리라 하는 지하방, 어떤 이는 차고를 주거지로 삼았고, 어떤 이는 폐허가 된 굴다리 아래나 건물 안에 오두막을 지었다. 

토르콰토 가족은 피에트랄라타와 몬테사크로 사이, 아니에네 강변 비탈에 있는 판잣집에 살게 되었다. 암시장에서 번 돈을 술로 탕진한 그 동네 사람이 토르콰토에게 그 집을 넘겼다. 토ㅛ르콰토 가족은 그때부터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토르콰토는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시청에 들어가 청소부가 되었다.                (P260-261)     


“지금 너를 다시 만났고, 이젠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어..... 그러니까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난 예전에 불량배 노릇을 조금 했어..... 내가 왜 그러고 다녔는지 그 이유를 너한테 설명하진 않았지..... 하지만 내가 왜 그러고 다녀야 했는지 넌 알 거야. 내가 미친놈이라는 걸 너한테 말해 줄 수 있었겠어? 내가 일하지 않고 빈둥댄다는 걸 너한테 말해 줄 수 없었어..... 하지만 우리 동네 빈민촌에선 대개 모두 그렇다는 걸 알 거야.... ”

생각에 잠긴 톰마소가 잠시 침묵했지만, 곧 흥분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 이레네, 내가 진실을 말하면 네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던 거야.......”

“그래서?”

이레네가 주의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모든 게 바뀌었어.....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이제야 깨달았지. 저, 결론은 이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말이야. 이것 때문에 나는 변하고 싶어. 더는 예전의 톰마소처럼 살고 싶지 않아!”

“알아, 토마.”

이레네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P305-306)     

이윽고 뭔가가 변했다. 바깥은 더 이상 캄캄하지 않았고, 엷은 빛이 대기를 하얗게 밝히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페르몰리오 공장에서 하늘에 불꽃을 날려 올리며 대기를 밝히는 모양이었다. 소음 하나,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아주 천천히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종소리는 멀리 병동과 정원 너머, 포르투엔세 거리나 비냐피아 근처 성당 혹은 카살레토, 코르비알레, 산타파세라 같은 지역에 새로 지은 몇몇 성당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숨죽인 듯 미약했다...... 그것은 톰마소가 들어 보지 못한 소리였다. 혹시 어렸을 때 들어 봤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종소리는 땅속 깊숙이에서, 혹은 빛이 약간 아롱거리며 화창하고 행복한 하루를 예고하는 듯한 새벽 구름 위 하늘 어느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새벽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밝아 오는 날을 위한 축제의 소리인지 아니면 어느 누구의 죽음이나 불행을 알리는 소리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두 경우 다 해당돼서 서로 섞이면서 상쇄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종소리는 단 한 가지 소리였다.                    (P351)     

한 주,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톰마소는 포를라니니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7월경,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고 톰마소도 한동안 그 결과를 감내해야 했던 사건이 터졌다. 

이미 얼마 전부터 톰마소를 포함한 환자들은 냄새를 맡았다. 결핵노동자협회에서 원인을 제공했다. 협회에서 베르나르디니 혼자만 유능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에 버금가게 유능해서 각자 자기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 용어를 사용하자면 그들은 투쟁해 나갔던 것이다. 톰마소는 관심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좋은 귀와 날카로운 후각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비(非)전염 환자 병동 주변 작은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보네스키, 트리지아니, 타데이, 굴리엘미 등등 결핵노동자협회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사진기를 들고 메르세데스 내부를 찍고 있었다. 그것은 요양원 원장인 파니의 차였다. 원장은 유대인으로, 파시즘 시대 무솔리니 당에 가입했다가 축출되었으나 이후 권력이 전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톰마소는 그 사진 촬영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포를라니니 병원 환자들은 예상한 일이었다. 요양사라고 불리기도 하는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그것은 당연한 요구 사항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병원 측의 대답이 전혀 없었다. 어느 화창한 아침 간호사들은 파업을 결행했고, 800명 중에 100명도 안 되는 인원만 출근했다.              (P363-364)     


그러고 나서 톰마소는 자기 병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 포를라니니 병원에서는 남은 적 소탕 작전이 계속되었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미 어느 정도 강제 진압된 상태라 경찰이 더욱 쉽게 수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아무 소득도 없이 일자리로 복귀했고 경찰에게 감시를 받았다. 톰마소는 지하실에 있는 동지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올라 작열했다. 이제 슬슬 움직여 볼 시간이었다. 피골이 상접한 채 지하실에 갇혀 있는 그 두 고행자가 얼마나 배고프겠는가. 톰마소는 평소처럼 점심을 싸서 여성 병동 지하실 쪽으로 갔다. 문 앞에 이르자 몸을 수그리고 노크를 한 다음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데 10여 미터 떨어진 저쪽에서 살레타라는 수위가 그를 가만히 쳐다보는 게 보였다. 

톰마소는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수위가 우리를 봤어. 이 병원 안에서 악질로 소문난 자야!”

톰마소가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았지만 이제 수위는 없었다. 

“경찰에 알리러 갔어!”

톰마소가 말했다.                            (P381)     

다행히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그제야 시야가 조금 트였다. 

톰마소는 소방대원들과 함께 진창에 푹푹 빠지고, 쓸려 내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덤불이나 나뭇가지, 비에 젖은 떨기나무들을 움켜잡으면서 산으로 기어올라 갔다. 마침내 산 중턱에 자리한 가장 높은 동네에 도착했다. 그곳에 빈터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입고 있던 차림 그대로 집에서 뛰쳐나와 그곳에 피신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잠옷 차림으로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고,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여자들이 검은 진창에 미끄러지며 소방대원들에게 달려왔다. 그녀들은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했다.                 (P480)     


“당신들은 이 지역을 몰라요. 샅샅이 알지 못한다고요! 사방에 웅덩이가 널려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요. 내가 길을 아니까, 날 보내 줘요!”  

하지만 소방대원들은 톰마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밧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허리에 밧줄을 매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이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두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미끄러져 진흙을 눈까지 뒤집어썼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러자 다른 대원들이 그를 다시 끌어올렸다. 

“내가 뭐랬어요!”

톰마소가 소리쳤다. 

“당신들은 못할 거라고 했잖아요! 저기로 가면 안 되고, 돌아가야 해요!”

“여기 길을 아는 이 청년에게 맡기죠!”                   (P482-483)     

마침내 의사가 도착했다. 그는 톰마소를 진찰하고 여기저기 만져 보더니, 폐결핵을 언제 앓았는지 물었다. 톰마소의 병이 심각했기 때문에 병을 두고 농담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편 톰마소에게 또다시 심한 기침 발작이 일어났다. 그는 계속 기침을 토하며 손에 들고 있는 행주와 베갯잇을 피로 흥건히 적셨다. 어머니는 옷장으로 달려갔지만 손수건이나 수건을 찾지 못했다. 

의사가 톰마소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P491)     


파솔리니의 소설들 속 빈민촌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죽음을 맞는다. 그들이 비참한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다. 첫 번째 소설 <거리의 아이들>은 그 생각을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 <폭력적인 삶>에서 파솔리니는 톰마소의 영웅적 행위를 통해 하층민이 비참한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파솔리니는 민중의 젊은이들이 부르주아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고유의 천성, 유쾌하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잃지 않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랐다. 그러나 파솔리니의 희망과 기대는 무너지고 만다. 이 소설 이후 파솔리니는 민중의 혁명적인 힘이 소실되고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되는 것을 보면서 절망했다.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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