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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23. 2023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영화 <웃는 남자> 2012년

영화 <웃는 남자>(1928)는 독일 표현주의 감독 폴 레니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명작을 영화화했다. 그윈플레인의 음울하고 기괴한 미소는 만화 <배트맨>의 악당 ‘조커’ 캐릭터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1]

금은 해마다 마찰로 인해 부피의 100분의 14를 잃는다. 흔히들 마손(磨損)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지구상에 유통되는 금이 1천4백만이라면, 그중 1백만이 해마다 손실된다. 손실된 황금 1백만은 먼지가 되어 날아올라 둥둥 떠다니다가, 원자 상태로 변해 호흡기를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양심들에게 짐을 실어 주고, 용량을 정해 주며, 추를 달아 주고, 활기를 잃게 하면서, 부자들의 영혼과 결합해서는 그들을 오만하게 만들고, 가난한 자들의 영혼과 결합해서는 그들을 사납게 만든다.              (P27)     


그는 미소 짓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웃었다. 가끔, 아니 상당히 자주, 씁쓸하게 웃었다. 미소에는 만족감이 있다. 반면 웃음은 대개의 경우 거부의 표현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을 증오하는 것이었다. 그의 그러한 증오는 집요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끔찍함을 명백하게 밝혔으면서도, 백성을 짓누르는 군주를, 군주를 짓누르는 전쟁, 전쟁을 짓누르는 흑사병, 흑사병 위에 덮치는 기근, 모든 것을 뒤덮는 어리석음 등 온갖 재앙의 중첩을 목격했으면서도 존재한다는 사리(事理) 속에서만도 상당량의 형벌을 확인했으면서도, 그리고 죽음이 곧 해방임을 깨달았건만,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데려오는 환자를 치료했다. 그는 심장 기능 강화제와 노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여러 가지 탕약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앉은뱅이를 치료해 두 발로 서게 한 다음, 그에게 빈정거리며 한마디 던지곤 했다. “자, 이제 두 다리로 걷게 되었군. 눈물의 골짜기에서 오래오래 걷기를 바라네!” 굶어 죽어 가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수중에 있던 동전까지 톡톡 털어서 건네주며 입속말로 투덜거리기도 했다. “살아라, 불쌍한 것! 먹어라! 오래오래 존속해라! 너의 도형수 신세를 짧게 마감해 줄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비비면서 말하곤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능력껏 못된 짓을 행하지.”

행인들은, 포장마차 천장에 있는, 안에다 써놓았지만 밖에서도 보이는, 목탄으로 굵게 쓴 간판을, 뒤쪽 구멍창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우르수스, 철학자.>                      (P43-44)     


콤프라치코스콤프라페케뇨스처럼 스페인어인데, 복합어로 <어린아이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콤프라치코스는 어린아이 장사를 했다. 

아이들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그들을 훔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훔치는 일은 또 다른 사업이다.

그 아이들을 무엇에 썼을까?

괴물을 만들었다.

왜 괴물을 만들었을까?

웃기 위해서였다. 

백성들은 웃기를 원한다. 왕들도 마찬가지이다. 거리의 광장에는 곡예사가 있어야 하고, 왕궁에는 어전 광대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이름 하여 튀를뤼팽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트리불레라고 한다. 

인간이 즐거움을 얻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중, 가끔 철학자의 관심을 끌 만한 것도 있다. 

이 처음 몇 페이지에서 우리가 희미한 윤곽이나마 잡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책 중 가장 무시무시한 책, 다음과 같이 제할 수도 있을 책의 한 장(章)이다. <운수 좋은 이들이 자행하는, 불운한 이들에 대한 착취.>                  (P45)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의 잔재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 언어의 영역을 벗어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되 존속하고, 구덩이 속에 있되 구덩이 밖에 있으며, 가라앉을 수 없는 물체처럼 죽음 위로 다시 나타난다고 하나, 그러한 현실 속에는 일정량의 불가능이 섞여 있다. 그리하여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비롯된다. 그 존재 -- 그것이 하나의 존재일까? -- 그 검은 증인은, 하나의 잔재였고, 게다가 무시무시한 잔재였다. 무엇의 잔재일까? 우선 자연의 잔재이고, 그다음 사회의 잔재였다. 무(無)이며 동시에 전체였다.                 (P93)     


아이에게는 느낌의 끝을 아주 신속히 받아들이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 두자. 고통스러운 일들의 폭을 형성하며,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 윤곽들은, 아이에게 포착되지 않는다. 아이는 나약함이라는 자신의 한계로 인해, 지나치게 복잡한 감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그는 사실을 볼 뿐, 그 주변에 있는 것은 거의 보지 못한다. 부분적인 사념들로 만족해야 하는 어려움이 아이에게는 없다. 인생에 관한 소송에서, 그 심리(審理)는 훨씬 후에, 경험이 서류를 가지고 도착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면 겪은 사실 사이의 대질이 이루어지는데, 견문을 넓히고 성숙한 지성이 비교 작업을 맡는다. 그 순간, 젊은 시절의 추억이, 표면 깎아 낸 양피지 초고처럼, 숱한 격정 밑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한 추억이 논리의 받침점이며, 아이의 뇌리에서는 공상이었던 것이, 어른의 뇌리에서는 삼단논법으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다양한 양상을 띠어, 경험 당사자의 천성에 따라, 인품이 호전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다. 좋은 천성은 무르익되, 나쁜 천성은 썩는다.              (P107)       


우두머리와 우르카의 선장 그리고 두 선원, 그 네 사람은 모두 바스크인인지라, 어떤 때는 바스크어로, 어떤 때는 프랑스어로, 또 어떤 때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세 언어가 피레네 산맥의 양쪽 사면 지역에 뒤섞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여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거의 프랑스어로 대화했다. 프랑스어가 그 무리에서 사용하는 은어의 밑바탕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그 무렵부터 프랑스어를 선호하기 시작했는데, 북유럽 언어에 나타나는 자음의 과잉과, 남부 유럽 언어에서 보이는 모음 과잉 현상이, 프랑스어에는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상인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도둑들도 마찬가지였다. 런던의 도둑이었던 기비가 카르투슈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P119)   

  

"우리의 죄를 바다에 던집시다. 그것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소. 그것이 이 배를 바다 속으로 처박고 있소. 더 이상 구출될 것을 생각하지 말고 구원받을 생각을 합시다. 특히 우리가 저지른 마지막 죄가, 아니 우리가 조금 전에 보충한 죄가, 제 말을 듣고 계신 가엾은 분들이시여, 그것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소이다. 뒤에 살인 의도를 남겨 놓은 채 심연의 뜻을 시험함은 불경스러운 오만불손이오. 어린아이에게 저지른 짓은 곧 신에-게 저지른 짓이오. 출항할 수밖에 없었소. 나도 그 사실은 알고 있소. 그러나 출항이 곧 불가피한 파멸이었소. 우리의 행위가 던진 암영으로 인해 예고된 폭풍이 결국 닥치고 말았소. 잘된 일이오. 또한 그 무엇도 아쉬워 할 것 없소이다. .............(중략)

만약 그것이 아직도 가능하다면,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 우리가 저지른 악을 속죄하도록 힘써 노력합시다. 만약 그 아이가 우리보다 오래 산다면, 그를 도웁시다. 그가 죽는다면, 그의 용서를 얻도록 노력합시다. 우리가 저지른 가증할 죄악을 벗어 던집시다. 우리의 의식을 짓누르는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읍시다. 우리의 영혼이 신 앞에서 심연 속으로 처박히지 않도록 진력합시다. 그것이 진정 무서운 조난이기 때문이오. 몸뚱이는 물고기들에게로 가고, 영혼은 악마들에게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여러분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릎을 꿇으시오. 회개는 침몰하지 않는 배입니다. 나침반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틀린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도가 있습니다.                     (P192-194)     

아이는 몸을 숙여 기복을 이룬 부분 앞에 웅크리고 앉아, 두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치워 버린 눈 밑에서 형체 하나가 서서히 이루어지는 듯하더니, 문득, 그의 손 밑에, 그가 만든 움푹 파인 공간에, 창백한 얼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소리를 낸 것은 그 얼굴이 아니었다. 눈은 감겨 있고 입은 벌어져 있었으나, 입에는 눈이 가득했다.

얼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손이 닿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추위로 인해 손가락 끝이 저렸건만, 그 얼굴의 차가움에 손끝이 닿는 순간 온몸이 오싹했다. 어느 여인의 얼굴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과 뒤섞여 있었다. 여인은 이미 죽어 있었다. 

아이는 다시 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여인의 목이 드러났다. 그다음 흉부의 윗부분이 드러났는데, 누더기 밑에 살결이 보였다. 

문득, 더듬고 있던 그의 손 끝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눈 속에 파묻혀 꿈틀거리는 작은 그 무엇의 움직임이었다. 아이는 서둘러 눈을 치웠다. 그리고 미숙아의 가엾은 몸뚱이 하나를 발견했다. 가냘프고, 추위에 파랗게 질렸으며, 그러나 아직 살아, 알몸으로, 죽은 여인의 헐벗은 젖가슴에 매달려 있는 아기였다. 

작은 여자 아기였다.                           (P213-214)     

사람들은 린네우스 경의 만년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것을, 혹은 안다고 믿던 것을, 마구 떠들어 댔다. 아마 대개는 추측이나 전설이었을 것이다. 물론 매우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이야기에 따르면, 클랜찰리 경의 공화주의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이 붙어, 그가 어느 시역자의 딸인 앤 브레드쇼와 결혼했는데, 매우 기이한 고집이라는 것이다. 여인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여인 또한 죽었는데, 아이를 분만하다 그랬고, 태어난 아이는 남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사실일 경우, 그 아이가 클랜찰리 경의 적자(嫡子)이며 합법적 상속자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하도 막연해, 사실보다는 소문에 더 가까웠다. 당시의 잉글랜드에서는, 스위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오늘날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먼 곳의 일이었다. 클랜찰리 경이 결혼했을 때의 나이가 59세이고, 아들이 태어나던 해가 환갑이었는데, 얼마 후 타계한지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아들을 고아로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P282)


그윈플레인은 웃으며 사람들을 웃겼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었다. 그의 생각은 웃지 않았다. 우연, 혹은 기이하고 특별한 기술이, 그에게 만들어 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 그윈플레인은 그 웃음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외양이 내면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이마, 볼, 눈썹, 입 등에다 자신이 그러한 웃음을 새겨 넣지 않았으니, 그것들에게서 그가 웃음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얼굴에 웃음을 영원히 고착시켜 놓은 것이다. 그것은 자동적인 웃음이었다. 또한 고착된 것이니, 불가피한 웃음이었다.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는 그윈플레인의 웃음 앞에서는 아무도 피해 가지 못했다. 입에서 일어나는 경련 중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으니, 그것은 웃음과 하품이다. 아마도 그윈플레인이 어렸을 때 받았을 미지의 수술로 인해, 얼굴의 모든 부위가 이빨 드러내고 웃는 모습을 형성하는 데 일제히 참여했다. 그의 용모 전체가 그 웃음으로 귀결되었다. 마치 수레바퀴의 모든 살이 바퀴통에 모이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격정이, 그것이 어떤 격정이건, 그 기이한 기쁨의 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세를 심화시켰다. 그를 사로잡는 놀라움, 그가 느낀 고통, 그를 엄습하는 노여움, 그를 뒤흔드는 연민 등 그 모든 감정이 근육의 폭소를 증대시킬뿐이었다. 그가 아무리 울려 해도 그는 웃었을 것이다. 그윈플레인이 무슨 행동을 하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가 무엇을 하든, 그가 얼굴을 쳐드는 순간, 만약 군중이 그 앞에 있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시야에, 항거할 수 없는 벼락같은 폭소가 유령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P393-394)     


라틴어 명칭을 편집광처럼 좋아하는 우르수스가 그녀에게 데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기에 앞서 늑대에게 견해를 물으며 말했다. “자네는 인간을 대표하고 나는 짐승을 대표하지. 자네와 내가 곧 이 낮은 세상이야. 이 어린 계집아이가 저 높은 곳에 있는 세상을 대표할 거야. 지극히 약한 것이 곧 전능(全能)이니까. 그러면 인간과 짐승과 신을 모두 갖춘, 온전한 우주가 우리의 오두막 안에 갖추어지는 셈이지.” 늑대는 그의 뜻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데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P400)   

  

데아는 빛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이었고, 그윈플레인은 삶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이었다. 분명 두 사람은 절망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재앙 밑바닥을 건드렸다. 그곳에 가 있었다. 혹시 누가 두 사람을 면밀히 관찰했다면, 그의 몽상은 한량없는 연민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겪지 않은 고초가 무엇이겠는가? 그 두 인간 피조물을 불행의 칙령이 짓누르고 있음이 역력했다. 또한 숙명은, 무고한 두 사람을, 일찍이 전례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고통과 지옥 같은 삶으로 둘러쌌다. 

그들은 낙원에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윈플레인은 데아를 숭배했다. 데아는 그윈플레인을 우상으로 삼았다.          (P401-402)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이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졌군요.”        (P465)

[2]

뿐만 아니라 저는 박사입니다. 곰과 박사는 잘 어울립니다. 신사 여러분, 저는 가르칩니다. 무엇을? 두가지 종류를 가르칩니다. 제가 아는 것과 제가 까맣게 모르는 것을. 저는 약을 팔고 사상을 덤으로 드립니다. 다가오셔서 제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학문이 당신들을 초대합니다. 귀를 여십시오. 귀가 작으면 진리를 별로 쓸어 담지 못할 것이고, 너무 크면 어리석음이 꾸역꾸역 그 속으로 몰려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저는 <프세우도독시아 에피데미카Pseudodoxia Epidemica>를 가르칩니다. 저에게는 사람들을 웃기는 동료 하나가 있습니다만, 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저희는 같은 상자 속에 삽니다. 웃음 또한 지식 못지않게 좋은 가문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데모크리토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웃습니다.” 혹시 누가 저에게 왜 웃느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알고 있소.” 하지만 저는 웃지 않습니다. 저는 대중의 오류를 교정해 주는 사람입니다.             (P477-478)     


끝장을 내지 않는 한, 그러한 증오는 오히려 성공을 돕는다. 그린박스는 그러한 증오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음모가 있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웃는 남자는 더욱 유명해졌다. 군중이란 고발당한 일에 대해 예민하여, 그것을 호의적으로 생각한다. 혐의를 받는다는 것은 추천됨과 같다. 백성은 본능적으로, 지목된 것의 편에 선다. 고발당한 것은 금지된 과실의 냄새를 풍기며, 따라서 모두들 서둘러 그것을 깨문다. 또한 게다가 어떤 사람을 조롱하는 박수갈채는, 특히 그 어떤 사람이 당국자일 경우, 더욱 달콤하다. 저녁 시간을 즐겁게 보내면서 동시에 핍박받는 사람에게 찬성하고 억압자에게 맞서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즐김과 동시에 누구를 보호하는 일이다. 볼링그린에 있던 가건물 극장들이, 계속해서 웃는 남자에게 야유를 퍼붓고, 그를 적대시하는 패거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덧붙여 두자. 성공을 위해서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승리를 자극하고 그것에 활기를 주는 가장 효과적인 함성은 적군이 질러 댄다. 욕하는 적보다 칭찬하는 친구가 먼저 지치는 법이다. 아무리 욕설을 퍼부어도 피해를 주지는 못한다. 적들이 모르는 것이 바로 그 사실이다. 그들은 욕설을 퍼붓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이다. 그들이 입을 다물기는 불가능한데, 그것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일깨운다. <정복된 카오스>를 보러 오는 군중은 점점 늘어만 갔다.                  (P498-499)   

  

자신이 와 있는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그의 둘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칠흑 속에 있었다. 협문이 다시 닫히면서 그를 잠시 소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구멍창 역시 닫혀 있었다. 환기 채광창도, 등불도 없었다. 그것이 옛 시절의 신중한 예방책이었다. 감옥의 안쪽 초입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엄히 금했다. 처음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간파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윈틀레인은 손을 뻗어 보았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벽이었다. 그는 좁은 복도에 있었다. 어디에서 배어 나오는지 모르지만 어두운 곳에서도 떠다니는, 그리고 동공이 팽창해 이내 적응하는, 지하실 빛이, 그로 하여금 여기저기에서 희미한 윤곽을 분별토록 해주었고, 그의 앞에서 복도가 어렴풋이 모양을 드러냈다.                (P593)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일의 실상은 이러합니다. 뚱뚱한 남자가 즉각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바킬페드로이며 해군성의 관리이온데, 저 부유물이, 하드콰논의 호리병이, 해변에서 발견되어 저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의 봉인을 깨트리는 것이 제가 맡은 직책의 의무이자 특권인지라, 젯슨 사무국에 선서한 두 배심원의 입회하에 제가 호리병을 열었습니다. 두 입회자는 모두 의회 의원으로, 한 사람은 바스 시를 대표하는 윌리엄 블래스웨이스이고, 다른 하나는 사우샘프턴을 대표하는 토머스 저보이스이며, 그들이 저와 함께 호리병의 내용물을 상세히 검토하고 기록한 다음, 그것에 공동으로 서명한 후, 제가 폐하께 모든 사실을 상주했던 바, 여왕 폐하의 명령에 따라, 그토록 예민한 사안에 요구되는 신중함을 다해 필요한 모든 절차를 밟았고, 마지막 절차인 대질이 조금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각하께서는 백만 파운드의 정기 급여를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각하께서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로드로서, 입법관인 동시에 판관이시되, 절대적 재판관이시고 지상권을 가지신 입법자이십니다. 각하께서는 자줏빛 천과 담비 모피로 지은 옷을 입으시고, 모든 왕족과 대등하시며, 황제와 동류이시어, 머리에는 피어의 관을 쓰시고, 어느 국왕의 따님이신 여공작을 아내로 맞아들이시게 되었습니다.”

천둥처럼 그를 덮친 변모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그윈플레인은 기절하고 말았다.         (P629-630)  

   

사람은 행운 앞에서보다 역경 앞에서 더 잘 견딘다. 행운보다는 불은을 겪으면서 자신을 더 온전히 보존한다. 카리브디스는 곧 가난이고, 스킬라는 곧 부유함이다. 벼락 아래에서 일어선 자들은 그 섬광 때문에 쓰러졌다. 절벽 앞에서도 놀라지 않던 그대. 구름과 몽상의 무수한 날개에 실려 사라질 것을 염려하라. 상승이 그대를 높은 곳으로 데려가며 그대를 왜소하게 만들 것이다. 신격화라는 것은 또한 타도하는 음산한 힘을 가지고 있다.

행복한 상태에서 자신을 알기란 쉽지 않다. 우연이란 하나의 변장에 불과하다. 그 얼굴처럼 속임수에 능한 것도 없다. 그것이 섭리일까? 그것이 숙명일까?

밝음이란 밝음이 아닐 수도 있다. 빛은 진리이되 섬광은 배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섬광이 밝힌다고들 믿으나, 실은 화재를 일으킨다.                   (P667)     


외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상은 변한다. 앨버말이라는 명의를 예로 들어 보자. 그 명의는 영원해 보인다. 그 명의 아래로 여서 가문(家門)이 지나갔다. 오도, 맨더빌, 비턴, 플랜태저넷, 비첨, 멍크 등이 그들이다. 래서터라는 명의 아래로는 서로 다른 이름 다섯이 거쳐 갔다. 보몬트, 브리오즈, 더들리, 시드니, 쿡 등이다. 링컨이라는 명의 아래로는 여섯 가문이 지나갔다. 펨브룩이라는 명의 아래로는 일곱 가문이 거쳐 갔다. 움직이지 않는 명의 밑에서 가문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피상적인 역사가는 불변성을 믿는다. 실제로는 지속 되는 것이 없다. 인간이란 물결일 수밖에 없다. 조류는 인류이다.    

귀족들은 여인들이 모욕으로 여기는 것을 긍지로 삼는다. 그것은 늙음이다. 그러나 여인들과 귀족들은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보존한다는 환상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읽은 것과 앞으로 읽을 것 속에서 잉글랜드의 상원은 아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난날 아름다웠던 여인이 얼굴의 주름살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거울은 늙은 피고인, 나무람을 운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뿐이다. 

유사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역사가의 의무이다.              (P776-777)    

  

우리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저는 정직한 분들을 향해 말씀드립니다. 여기에도 그러한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고양된 지성들을 향해 말씀드립니다. 여기에도 그러한 지성들이 계십니다. 저는 너그러운 영혼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기에도 그러한 영혼들이 계십니다. 경들께서도 그 누구의 아버지이시면, 아들이시고, 형제이십니다. 따라서 측은한 마음에 눈시울을 적시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경들 중 오늘 아침에 어린 자식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응시하신 분은, 모두 착하십니다. 모든 가슴은 매일반입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가슴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압제하는 사람들과 압제당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들이 처한 장소가 다르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경들의 발이 사람들의 머리를 밟지만, 그것은 경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라는 바벨탑의 잘못입니다. 모든 것이 위에서 짓누르게 되어 있으니, 실패한 건축물입니다. 한 층이 다른 층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짓누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 경들께서는 강력하시니 형제애를 발휘하십시오. 경들께서는 지배자들이시니 온후함을 근본으로 삼으십시오. 제가 본 것을 경들께서 아신다면! 애달프도다! 저 아래의 끔찍한 고통! 인류가 지하 감방 속에 처박혀 있습니다. 아무 죄 없건만 저주받은 이들 그 얼마인가! 햇빛도 없고 공기도 없으며 용기도 없어.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두려운 일은, 그러면서도 모두들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P845)     

저는 로드 클랜찰리이지만 그윈플레인으로 남겠습니다. 제가 비록 세력가들 편에 있으나, 저는 미미한 사람들 편에 속합니다. 제가 비록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있되, 저는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아! 이 사회는 거짓투성이입니다. 언젠가는 진실한 사회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나리들은 없을 것이고, 오직 자유롭게 사는 이들만이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상전들은 없고 어버이들만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굽실거림도, 비천함도, 무지도, 마소와 같은 사람들도, 궁정인들도, 시종들도, 왕도 더 이상 없고, 오직 광명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 저에게 권리 하나가 있으니, 제가 그것을 행사하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권리일까요? 만약 제가 그것을 저를 위해 행사한다면 그것은 권리가 아닙니다. 반면, 모든 사람을 위해 그것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권리입니다. 제가 그들 중의 일원인지라 저는 로드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오! 밑바닥에 계신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얼마나 헐벗었는지를 제가 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저는 백성의 넝마를 한 줌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서서, 상전들의 머리 위로 노예들의 비참함을 뒤흔들겠습니다. 그러면, 운명의 총애를 입은 건방진 자들이, 불운한 사람들의 추억을 영영 떨쳐 버릴 수 없을 것이며, 제후와 군주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국물로부터 해방되지 못할 것입니다.         (P849)     

“저는 이마 위에 있는 웃음을 만들어 준 사람은 어느 왕입니다. 이 웃음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절망의 표현입니다. 이 웃음은 증오와 강요된 침묵과 맹렬한 노기와 절망을 뜻합니다. 이 웃음은 고문의 산물입니다. 이 웃음은 세력의 웃음입니다. 만약 사탄에게 이 웃음이 있다면, 이것이 신을 단죄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필멸의 것들과 유사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정의롭습니다. 그리하여 신은 왕들이 하는 짓을 증오합니다. 아! 경들께서는 저를 예외적인 존재로 여기십니다! 저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오! 전능하신 멍청이들이시여. 눈을 크게 뜨십시오! 제가 모든 것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상전들이 만들어 놓은 인류의 모습을 제가 표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훼손된 존재입니다. 저에게 한 짓을 인류에게도 저질렀습니다. 저의 눈과 콧구멍과 귀를 기형으로 만들어 놓았듯이, 인류의 권리와 정의와 진리와 이성과 지성을 기형으로 뒤틀어 놓았습니다. 저에게 그랬듯이, 인류의 가슴속에 분노와 슬픔의 시궁창을 만들어 놓고, 얼굴에다가는 만족이라는 가면을 씌워 놓았습니다. 신의 손가락이 닿았던 곳에 왕의 사나운 발톱이 파고들었습니다. 흉악스러운 포개기 작업이었습니다. 주교들이시여. 피어들이시여. 왕족들이시여. 백성이란 속 깊은 곳에서는 괴로워하며 겉으로 웃는 사람들입니다. 경들이시여.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제가 곧 백성입니다. ......”        (P854-855)     


그는 <웃는 남자>, 눈물 흘리는 세계를 떠받치고 서 있는 카리아티데스였다. 그는 불행으로 가득한 세계의 무게를 감당하며, 웃음과 빈정거림과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 속에 영원히 갇힌, 폭소의 모습으로 응고된 극도의 괴로움이었다. 그는 모든 압제받는 이들의 화신이었고, 단 한 번도 진지한 시선을 끌지 못하는 가증스러운 숙명을 그들과 공유했다. 사람들은 그의 절망을 희롱거리로 삼았다. 그는 불운의 무시무시한 응축물에서 솟구쳐 나온,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신의 앞을 지나온, 하층민의 바닥에서 올라와 옥좌 밑에 도달한, 그리고 별들과 섞여, 저주받은 이들을 즐겁게 해준 다음, 선택받은 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정체 모를 거대한 익살광대였다!            (P886)     

“......... 데아, 너는 네가 하는 말의 뜻을 몰라! 너는 살 거야. 나는 네가 살기를 강력히 요구해.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해. 나는 너의 남편이고 너의 주인이야. 나는 네가 떠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 아! 이럴 수가! 아! 가엾은 인간들이여! 아니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면, 네가 떠난 후, 이 세상에 나만 남게 돼! 그런 일은 너무나 기괴해. 더 이상 태양도 없을 거야. 데아, 데아, 어서 추슬러. 곧 끝날 잠시 동안의 괴로움일 뿐이야. 때로는 오한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금방 잊지. 네가 건강하고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절대적인 희망이야. 네가 죽다니!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네가 죽는 다는 생각만 해도 실성할 지경이야. 우리는 서로의 것이며, 서로 사랑해. 너에게는 떠날 이유가 없어. 만약 떠난다면, 그것은 부당해. 내가 죄를 저질렀나? 게다가 너는 이미 나를 용서했어. 오! 너는 내가 절망한 자, 악당, 맹렬히 노한 자, 저주받은 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데아! 너에게 빌고, 간청하며, 두 손 모아 애원하거니와, 죽지 마!”  

그러고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두려움 때문에 죽어 가는 사람의 기색으로, 북받치는 슬픔에 숨이 막혀, 그는 그녀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나의 그윈플레인,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데아가 말했다.             (P929)     


하늘은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고 더 이상 별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별 하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상갑판을 가로질렀다. 

경직되고 음산한 몇 걸음을 옮긴 끝에, 그는 뱃전에 당도했다. 

“나 왔어, 데아! 나 여기 있어!”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계속 걸었다. 난간이 없었다. 그의 앞에는 허공이 있었다. 그는 허공으로 발을 디뎠다. 

그가 떨어졌다. 

어둠은 짙고 탁했으며, 물은 깊었다. 그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고요하고 침울한 사라짐이었다. 무엇을 보고 들은 이 아무도 없었다. 배는 계속 떠내려가고 강물은 계속 흘렸다. 

잠시 후 배가 대양으로 들어섰다.

우르수스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윈플레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뱃전 근처에서 바다를 응시하며 울부짖는 호모의 모습만이 보였다.                   (P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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