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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28. 2023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

영화 <육체의 악마> 1986년

1947년 영화 <육체의 악마(프랑스어: Le diable au corps)>는 클로드 오탕 라라 감독의 프랑스 영화이다. 미셸린 프레슬, 제라르 필리프가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레몽 라디게의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성영화시대에 전위영화 서클에 있었던 오탕 라라는 제2차 대전 중에 단독적인 감독이 됐는데, 이것은 대전 후의 제2작이지만 그의 최고작이다. 레몽 라디게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서 전쟁이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의 행복을 파괴한 폭력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악역을 연출한다. 두 연인이 거의 순진할 만큼 아름답게 묘사되므로 전쟁의 참혹성이 은연 중에 피부에 느껴진다. 전쟁 반대의 의도를 내포하는 비련영화(悲戀映畵)이다.     

레몽 라디게의 소설 <육체의 악마>는 1923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소년과 유부녀의 불륜’을 다룬 내용으로 당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소설이다. 라디게가 17살에 쓴 작품이었다. 그는 20살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요절했는데, 이듬해인 1924년 그의 두 번째 소설 <도르젤 백작의 무되회>도 두 편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다.      

난 문학에 대한 그녀의 취미를 알아내려 했다. 그녀가 보들레르와 베를렌을 알고 있어 나는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가 보들레르를 사랑하는 방법에 매혹되었다. 그 방법이 나와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거기에서 일종의 반항을 엿보았다. 그녀의 부모는 마침내 그녀의 취미를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마르트는 자기 부모가 마음속으로부터 그렇게 해 준 것이 아니라 딸에 대한 애정으로 마음이 약해져서 인정해 준 것뿐이라고 부모를 원망했다. 그녀의 약혼자는 편지에다 자기가 읽는 책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고, 어떤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서 어떤 책들은 읽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약혼자는 그녀에게 <악의 꽃>을 읽지 못하도록 했다. 그녀가 약혼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 기분이 나빠졌던 나는, 보들레르를 두려워할 정도로 아주 바보인 병정에게 그녀가 복종하지 않는 것을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마르트에게 자주 실망을 줬을 것이 틀림없다고 느껴지자 나는 행복했다. 불쾌한 첫 놀라움에 이어 그녀 약혼자의 속이 좁은 것에 나는 기뻐했다. 그가 <악의 꽃>을 즐겨 음미했다면 그들의 미래 아파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나오는 아파트와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에 더욱 기뻤다. 그러나 이어서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P31-32)     


'나는 마르트를 무서워하지 않아.‘하고 나는 되뇌었다. 따라서 그녀 목에 몸을 기울이고 키스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그녀 양친과 나의 아버지뿐인 셈이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 하나의 소년이 방해자들이 있는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내 마음속 소년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와 단둘만 있지 않게 된 것이 참 다행이야! 왜냐하면 그녀에게 키스도 못 할 거고, 아무런 변명도 못 할 거니까 말이야.’

소심한 자는 그렇게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P34)      

학교에 빠지는 것은 내가 마르트에게 반해 버렸다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마르트는 내가 학교를 빼 먹는 구실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마르트와 함께 자유에 대한 매력을 맛보고 난 다음에는 그 자유를 혼자 맛보고 싶어 했으며, 나아가서는 추종자들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자유는 이내 나에게는 하나의 마약이 되었다. 

학년 말이 다가왔다. 나는 차라리 퇴학당하고, 요컨대 한바탕의 비극으로 그 시기를 끝내기를 원했는데, 내 태만함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끝나가는 사태를, 공포심을 느끼며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이 무엇 하나를 열망하게 되면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 욕망이 지닌 죄악이라는 것도 이젠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버지를 괴롭히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크게 괴롭힐 사건을 원했던 것이다. 학교 수업 시간은 늘 고통스러웠다. 마르트와 그 자유라는 것이 내게 공부라는 것을 견딜 수 없이 귀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르네를 전보다 덜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단지 그가 무엇인가 학교 일을 내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란 것을 나는 잘 알았다. 나는 괴로웠다. 그리고 이듬해 그 어리석은 급우들에게 되돌아가야 한다는 괴로운 생각은 나를 육체적으로 병들게까지 했던 것이다.    (P46)     


그러나 그녀는 흐느껴 울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린애야.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가 달라고 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나는 증오심을 품고, 그녀에게는 아내라는 의무가 있고, 그녀의 남편이 전쟁터에 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녀는 부인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난 행복했어. 약혼자를 사랑한다고 믿었지. 그이가 나를 이해해 주질 못해도 난 그이를 용서해 주곤 했어. 그런데 내가 그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준 거야. 나의 의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 그것은 내 남편을 속이지 않는 일이 아니라, 당신을 속이지 않는 일이지. 자, 가요. 그리고 나를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요. 당신은 나를 곧 잊어버리고 말 거야. 하지만 난 당신 인생에 불행을 초래하고 싶진 않아. 내가 울고 있지? 난 당신에겐 너무나 나이 든 할머니이기 때문이야!”

이 사랑의 말들은 어린애 같은 짓 속에서도 숭고함이 있다. 그리고 그 후 내가 겪을 정열이 어떤 것이든 간에, 열아홉 살 소녀가 자기는 너무 나이 든 할머니라고 우는 것을 보는 그러한 홀딱 반할 감동을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겪어 보지 못하리라.           (P59)    

  

마르트는 왜 자기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는지를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십오 년 후, 내 인생은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때야 비로소 지금 자기 또래 여자들이 나를 사랑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괴롭기만 할 거야. 당신이 나를 떠나 버린다면 난 죽을 거야. 그렇다고 당신이 내 곁에 머무른다면, 사랑 때문이 아니라 당신 마음이 약하기 때문일 거야. 그러면 당신 행복이 나 때문에 희생되는 것을 보면 나는 괴로울 거고.....’ 하고 그녀는 덧붙이는 것이었다.             (P73-74)     


유치하게 보일까 걱정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말하지 않는 귀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마르트의 저 가슴 에는 듯한 수치심이 걱정됐다. 그리고 나는 그녀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해 괴로웠던 것이다.              (P85)    

 

사랑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없다. 사랑에 빠지면 게을러지는 것이므로, 게으름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은 기분전환을 위한 유일한 실제적 약이라는 사실을 막연히 느낀다. 따라서 사랑은 일을 하나의 라이벌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어떠한 라이벌도 견디고 받아들이질 못한다. 하지만 사랑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부드러운 가랑비처럼 유익한 게으름인 것이다.              (P108)     

그런 정신적 유사성은 육체적인 외관에까지 번졌다. 눈매와 걸음걸이에서였다. 즉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종종 남매로 보았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유사한 싹을 사랑이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몸짓, 하나의 억양으로 봐서 아무리 조심을 해도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곧 드러나고 마는 것이었다. 

이성(理性)이 알지 못하는 제 나름의 도리가 마음에 있다면, 그 이성이 우리 마음보다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우리 인간은 모두 나르키소스로서 자기 모습을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하지만, 자기 모습 외 다른 모습에 관해선 무관심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유사 본능이 우리 삶을 인도하고, 어떤 하나의 풍경, 하나의 여인, 하나의 시(詩) 앞에서 “정지!”하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러한 충동을 느끼지 않고도 다른 풍경, 여자, 시 등에 감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사 본능만이 오직 인위적이지 않은 행동방침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마음이 비천한 인간들만이 항상 똑같은 유형만 좇아서, 도덕에 반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흔히 가장 깊은 유사함이란 가장 신비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어떤 남자들은 ‘금발 여자들’에 열중하는 것이다.       (P118-119)     


마르트! 나는 질투심으로 그녀를 무덤까지 뒤따라 가서, 죽음 뒤엔 아무것도 없기를 바랐던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들이 참석하지 않은 잔치의 수많은 손님 틈에 함께 끼어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마음은 아직 미래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나이에 속해 있었다. 그렇다! 내가 마르트를 위해 바랐던 것은 어느 날엔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새로운 세계보다는 차라리 무(無), 바로 그것이었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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