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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01. 2023

마르셀 프루스트의 <스완네 집 쪽으로>

영화 <스완의 사랑>  1984년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편 <스완네 집 쪽으로>은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콩브레>은 주인공 마르셀이 불면증을 잠 못 이루는 밤에 어린 시적의 기억을 꺼내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2부 스완의 사랑>은 부유한 유대인인 스완은 화류계 여인인 오데트와 사랑에 빠지고, <3부 고장의 이름>은 다시 마르셀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그의 짝사랑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스완과 오데트의 딸인 질베르트를 사랑하는 마르셀의 심정을 이야기한다.

[1]

그러나 삶의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P43)  

    

스완에게 고뇌를 알게 한 것은 바로 사랑으로, 사랑이 고뇌를 숙명적으로 만들고, 독점하고,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처럼, 사랑이 아직 우리 삶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고뇌가 먼저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고뇌는 사랑을 기다리는 동안 막연하고 자유롭게, 정해진 목적 없이, 오늘은 이 감정에서 다음 날은 저 감정으로, 어떤 때는 자식으로서의 애정에, 또 어떤 때는 친구에 대한 우정으로 표류한다.    (P63)    

 

“이 모든 것에는 많은 우연이 개입한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라는 두 번째 우연은 첫 번째 우연의 은총을 오래 기다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켈트족의 신앙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신앙에 따르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은 어떤 열등한 존재나 동물, 식물 혹은 무생물 속에 갇혀 있어, 우리가 우연히 나무 곁을 지나가거나, 그 영혼의 감옥인 물건을 손에 넣는 날까지는 -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 그러다 그날이 오면 영혼은 전율하고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고 한다. 우리 덕분에 해방된 영혼은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P85)     

우리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또는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P86)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차가 내 속에 있는 진실을 일깨웠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 채 점점 힘이 빠져 가면서 무한히 같은 증언만을 되풀이할 뿐이지만, 내가 지금은 이 증언을 해석할 줄 모르나 나중에 결정적인 해명을 위해 내가 요구하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적어도 온전한 상태로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P87)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내 의식은, 내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열망에서부터 저기 정원 끝 내 눈앞 지평선 너머 보이는 곳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상태를 동시에 펼쳤는데, 그와 같은 일종의 다채로운 스크린에서 우선 내게 가장 내밀하게 느껴진 것, 쉴새없이 움직이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지배하던 손잡이는, 바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내 믿음이었고, 또 그 책이 어떤 책이든 간에 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었다.   (P153)    

   

이처럼 삶에서 우리 마음은 변한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고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고통을 단지 독서나 상상력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현실에서의 변화는 몇몇 자연 현상처럼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어 그 각각의 다른 상태를 차례차례 확인할 수는 있지만, 변화에 대한 감각 자체는 우리로부터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P155)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P180)     

이렇게 해서 질베르트의 이름이 내 곁은 지나갔다. 그 이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불확실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것에 사람의 모습을 부여하여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되찾게 해 줄 부적처럼 주어졌다. 그리하여 재스민과 비단향꽃무 위에서 발음된 그 이름은 초록색 분무기가 내뿜는 물방울처럼 날카롭고도 신선하게 내 곁을 지나갔으며, 그것이 통과하며-고립시킨-순수한 대기 아래 지대를 소녀의 신비로운 삶으로 적시고 무지갯빛으로 빛나게 하면서, 그녀와 함께 살며 여행하는 행복한 이들에게는 그녀를 가리키고, 내 어깨 높이에 있는 분홍색 산사 꽃 아래의 내게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그들만의 내밀한 본질을, 그리고 그 내밀성과 더불어 내가 들어가지 못하는 그녀 미지의 삶을 펼치고 있었다.   (P250)      

우리가 한 여인을 사랑하는 데는, 때로는 스완양의 경우처럼-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우리를 경멸의 눈길로 바라보고, 또 그녀가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또 때로는 게르망트 부인 경우처럼, 우리를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또 그녀가 우리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P306)     

  

이처럼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콩브레 시절 잠 못 이루던 슬픈 밤들을, 또한 한 잔의 차 맛에 의해-콩브레에서는 ‘향기’라고 불렀을- 내가 최근에 그 이미지를 되찾은 많은 나날들을, 또는 작은 마을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난 후 추억의 연상을 통해 알게 된, 내가 태어나기 전 스완 씨가 한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말해 준 것을 회상하며 보냈다. (...) 이 모든 추억들이 서로 겹치며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그 추억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것과 ‘향기’로 인해 생긴 최근 추억, 그리고 내가 알게 된 다른 사람에 대한 추억 사이에서- 진정한 균열이나 단층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어떤 암석이나 어떤 대리석에서처럼 기원과 나이와 ‘형성’의 차이를 나타내는 돌의 결이나 색채의 다양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P318-319)   

 

[2]

우리가 사랑에 도움을 주며, 기억이나 암시로 사랑을 왜곡하는 것이다. 사랑의 징후 중 어느 하나를 알아보면, 우리는 다른 징후들을 기억해 내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 우리에겐 사랑의 노래가, 그것도 우리 마음속에 온전히 새겨진 노래가 있어, 한 여인이-아름다움이 불러일으키는 찬사로 가득한- 그 노래 첫머리를 불러 주지 않아도 다음 구절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여인이 노래를 중간 부분부터 시작한다면-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지는 곳, 서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곳-우리는 그 음악에 매우 익숙해서, 상대방이 우리를 기다리는 소절에 금방 이르게 된다.   (P24)     

사랑이 생겨나는 온갖 방식들이나 성스러운 병을 퍼뜨리는 온갖 요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따금 우리를 스쳐가는 저 커다란 동요의 숨결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가 기쁨을 함께 나누는 존재야말로 바로 우리가 사랑하게 될 사람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그 존재가 그때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같은 정도로 우리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우리 취향이 배타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우리 곁에 없을 때, 그 사람의 동의로 우리가 즐기던 쾌락이 갑자기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불안한 욕구로, 이 세계의 법칙으로는 결코 충족되거나 치유될 수 없는 저 부조리한 욕구로, 즉 그 사람을 소유하겠다는 미친 듯한 고통스러운 욕구로 대치될 때, 이런 조건은 실현되는 것이다.    (P82)      


사실 스완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 정열은 우리 마음속에서 이전 것을 대체하는 일시적인 다른 성격처럼 작용하면서, 지금까지 그 성격이 표현해 오던 변하지 않는 특징마저도 파기해 버린다. 이와는 반대로 이제 변하지 않는 것은 스완이 어디에 가든지 반드시 오데트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었다.        (P89)      

오데트가 그에게 그토록 중요해진 것도 어쩌면 그 고뇌(베르뒤랭 네에서 오데트를 만나지 못할 것을 깨달았던 순간의 고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우리를 위해 괴로워하거나 기뻐할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마치 다른 우주에 속한다는 듯 시(詩)로 둘러싸이고 우리 삶은 감동적인 영역으로 변해, 우리는 그 영역에서 조금쯤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    (P90)      


이제까지 ‘내가 행복했던 시절’ ‘내가 사랑받던 시절’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쓰면서도 별로 괴로워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지성이, 소위 과거의 본질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은 과거 그 어떤 것도 보존하지 않고 단지 요약된 부분만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이 잃어버린 행복의 특별하고도 증발하기 쉬운 본질을 영원히 고정해 놓은 것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  (P270)    

  

어떤 사람들 앞에 우리를 서게 하는 갖가지 우연은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시간과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시간을 벗어나서는 사랑이 시작되기 전에 나타날 수도 있고, 또는 사랑이 끝난 후에 되풀이될 수도 있어서, 훗날 우리 마음에 들도록 운명 지워진 존재가 우리 삶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순간은 나중에 보면 우리 눈에 일종의 예고나 전조의 가치를 띠게 된다.     (P328)   

   

누구나 자신의 정열에 어떤 이유를 찾아내고자 하는 법이므로, 문학이나 대화를 통해 사랑을 불러 일으킬 만한 장점이라고 배운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알아보고는 행복해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 장점들을 모방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비록 그 장점이 그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추구하던 것과는 정반대라 할지라도-지난날 스완이 오데트의 아름다움에서 미학적인 특징을 찾으려고 했던 것처럼- 그 사랑의 새로운 이유로 삼듯, 이미 콩브레에서부터 질베르트의 미지의 삶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을 내던지고 그녀 삶 속으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했던 내가, (....)      (P377) 

     

“우리 기억이 어느 하나라도 떼어 내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균형 잡힌 전체 안에서, 추억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유대감 때문에, (...) 지금은 나를 그 어떤 것으로도 인도해 주지 못하는 이러한 순간들조차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순간들을 그대로 되찾고 싶었다.”     (P405) 

    

“기억에서 오지만 감각으로 지각되지 않아 늘 매력이 결여된 기억 속 정경들을 현실에서 찾는 일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더 잘 이해하게 해주었다. 내가 알았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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