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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08. 2023

제시카 브루더의 <노마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2020년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제78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 및 감독상, 제55회 전미 비평가협회 4관왕, 제26회 크리틱스 초이스 4관왕 최다 수상,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7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 비평가협회를 휩쓸며 211관왕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영화 <노매드랜드>는 한 기업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한 후 고정된 주거지 없이 자동차에서 살며 저임금 떠돌이 노동을 하며, 홀로 밴을 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이다. 길 위의 삶을 택한 퇴직한 노년의 노동자들은 평생을 끊임없이 일했지만,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떠돌이, 뜨내기, 부랑자, 정착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밀레니엄에 들어선 지금, 새로운 종류의 유랑 부족이 떠오르고 있다. 결코 노마드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여행길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주택과 아파트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바퀴달린 보동산’이라고도 일컫는, 밴과 중고 RV, 스쿨버스, 캠핑용 픽업 트럭, 여행용 트레일러, 그리고 평범한 낡은 세단에 들어가 산다. 그들은 중산층으로서 직면하던 선택들, 선택 불가능한 그 선택들로부터 차를 타고 달아나는 중이다.    (P13)     


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미국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생존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것은 좀 더 위대한 무언가를 외치는 함성이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P14~15)    

 

내가 린다를 처음으로 만난 건, 점점 증가하는 미국의 노마드들, 풀타임으로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서브컬처에 관한 잡지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를 하면서였다. 린다와 마찬가지로, 떠도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모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상승하는 집세와 낮은 임금의 충돌, 멈출 수 없는 힘과 움직일 수 없는 대상의 부딪힘이라는 모순. 그들은 마치 바이스에 낀 것 같았다. 영혼을 탈탈 털어가는 소모적인 노동에 자신의 시간을 몽땅 바치는 대가로 간신히 집세나 주택 융자금을 낼 수 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으면서, 장기적으로 상황을 나아지게 할 방법도, 은퇴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없는 상황에 끼어버린 느낌이었다.  (P24)    

 

나는 린다의 이야기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러면 사라지지 않는 몇몇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 해서 열심히 일하는 예순네 살 여성이 결국 가진 집도, 영구적으로 머무를 장소도 없는 처지에 놓이고, 살아남기 위해 앞날을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게 되는지를. 해발 2킬로미터에 이르는 높다란 삼림지대에서, 오락가락하는 눈과 함께, 또 어쩌면 퓨마들과도 함께, 소형 트레일러에 살면서, 변덕을 부려 근무시간을 삭감하거나 심지어 그를 해고해버릴지도 모르는 고용주들의 뜻대로 화장실을 문질러 닦으며 살게 되는지를. 그런 사람에게 미래란 어떤 그림일까?  (P55)     


린다는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처음이 아니었다. 모두들 어떻게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린다가 평생 가져본 숱한 직업 가운데 그 무엇도 지속되는 경제적 안정을, 아주 조금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연금을 들 여유조차 없었어요.” 린다가 말했다.  (P59)     


60대가 되자 질문이 닥쳐왔다. 일을 그만두면 대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린다는 인생 대부분을 저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이 그달 그달 먹고 살아왔다. 그의 유일한 안전망인 사회보장연금은 위태로울 만큼 적었다. 한 달에 500달러 안팎으로 먹고사는 퇴직자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와 동시에, 린다는 미래를 향한 장기적인 꿈 하나를 갖게 되었다. 그 꿈에는 플로리다의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라든가 골프 몇 라운드처럼 진부한 클리셰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린다의 희망은,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흙먼지와 남들이 버린 쓰레기로 이루어진, ‘땅에 발 붙인’ 것이었다. 

린다는 어스십(Earthship)을 짓고 싶었다. 어스십이란 깡통이나 유리병 같은 버려진 물질을 이용해 만든 수동형 태양열 주택으로, 흙으로 채운 타이어들이 하중을 견디는 벽 역할을 했다. 1970년대부터 이런 집들을 만지작거리던 뉴멕시코의 급진적 건축가 마이클 레이놀즈가 발명한 어스십은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공공설비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주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P65)     

 

2015년, 여성들은 남성들이 1달러를 벌 때 여전히 80센트밖에 벌지 못했으며, 어린 자녀들과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무임금 노동을 할 가능성은 남성보다 높았다. (린다는 두 아이를 길러낸 데다 1990년대 중반 공격적인 뇌종양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나중에 입주 돌봄노동까지 했다.) 여성의 생애임금은 더 적고, 누적 저축액도 적다. 그리고 여성의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ㅡ남성보다 평균 5년 더 오래 산다ㅡ그 돈은 더 먼 미래까지 버텨줘야 한다.  (P71)     


내가 대화해본 다른 워캠퍼들에겐 자신들을 묘사하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70대나 80대까지 쭉 일하리라 예상하면서도 자신을 ‘은퇴자’라고 칭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여행자’ ‘노마드’ ‘타이어 떠돌이’ 혹은 자조하듯 ‘집시’라고 불렀다. 외부 관찰자들은 그들에게 다른 별명을 붙였는데, ‘대침체기의 오키’에서 ‘미국인 난민’ ‘돈 많은 홈리스’ 심지어 ‘현대의 과수원 부랑자’까지 있었다.    (P86)


둘 중 누구도 그들의 집값보다 높은 대출금을 갚으면서 남은 생을 보내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2003년형 피프스휠 트레일러 카디널을 샀고, 길로 나섰다. “우린 그냥 걸어 나왔어요.” 애니타가 말했다.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렸죠. ‘우린 더 이상 이 게임 안 해.’”   (P99)   

  

“전 집값이 떨어지는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고개를 저으며 밥이 말했다. 그는 새로운 자기 삶의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을 영화 〈매트릭스〉 안에서 각성하는 것에, 우리가 살고 있던 즐겁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신기루였고, 잔인한 디스토피아를 감추기 위해 세워진 거짓이었음을 깨닫는 것에 비유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위안으로 삼는 ‘안정감’이라는 것, 그게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P99~100)     

최근의 여론 조사는 미국인들이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산이 버텨주는 나이보다 오래 사는 일을 더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나이 많은 미국인 대부분이 여전히 은퇴를 ‘휴식의 시간’으로 보고 있음에도, 자신이 전혀 일하지 않으면서 말년을 보내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겨우 17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P109~110)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 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요.” 그가 한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다. “밴에서 사는 동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했습니다.”  (P125)     


“한때는 정해진 대로 하면 (학교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사회적 계약이 있었죠.” 그가 방문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날 그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모든 걸 제대로 해도 결국에는 파산하고, 혼자 남고, 홈리스가 될 수 있습니다.”  (P126)     


그는 유랑하는 삶을 미봉책으로, 사회가 안정되어 사람들이 다시 주류에 통합될 시점까지 그들이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너덜너덜해진 사회질서 바깥에서 작동하거나, 심지어는 그 질서를 초월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유랑 부족을 형성하기를 염원했다.   (P133)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많이 변해가고 있어요.” 애시가 말했다. “사람들은 오래 일하는 직원을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한테는 퇴직금도 줘야 하고, 생활비 상승분도 계속 반영해줘야 하니까요. 그리고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성과급도 달라고 할 테니까요.” 애시가 말했다. “새로운 경영자들은 말 그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을 원해요.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을 만들어내려면, 쓰고 버릴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자동화된 거예요.”    (P178-179)     


린다는 자신이 밥의 웹사이트를 발견한 뒤로 얼마나 ‘생존 모드’로 지내왔는지 이야기했다. “이제는 생존만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삶을 즐기고 있어요!” 린다가 놀라워했다. “그 말은, 그러니까 이런 거죠, 누구나 노년을 풍요롭게 보내고 싶어하잖아요. 그냥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아니라요.”    (P245)     


“걱정 말아요.” 린다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린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붙잡아줄 거예요.”  (P268)     


내가 보는 대로의 진실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험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힘겹게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현실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인류의 놀라운 능력을 증명해준다. 리베카 솔닛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지적하듯, 사람들은 위기의 시기에 기운을 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놀랍고도 강렬한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다.  (P272)     


사미르와 라본은 세상 물정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법률적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이 홈리스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들 그 단어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 수 있을까? ‘홈리스’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의 정의를 넘어 전이되면서 끔찍한 위협으로 변해버렸다. 그 말은 이렇게 속삭인다. 추방된 사람들. 낙오자들. 타자들.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들.” 라본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그렇게 지적했다.  (P328~329)     

폴 볼스는 <셸터링 스카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를 설명했죠. 사미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여행자예요.” 밥 웰스는 자신의 책에서 밴 생활자와 홈리스 사이에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는 밴 생활자들은 망가지고 타락해가는 사회질서에서 빠져나온 양심 있는 이의 제기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자의로 선택했건 그러지 않았건,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홈리스인 사람은 밴에 살 수는 있지만, 사회의 규칙들이 싫어서 밴에 사는 건 아니에요. 아뇨,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는데, 그건 그 폭압적인 규칙들 밑으로 다시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서는 쾌적하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니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P329~330)     


“저는 여전히 두려움과 즐거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기분이에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캠핑을 하거나 밴에서 살기에도 너무 나이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그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P351)     


어쨌든, 미국인 수백만 명이 전통적인 중산층으로 사는 일의 불가능성과 씨름하고 있으니까. 미국 곳곳의 집들에서는 부엌 테이블 위에 내지 못한 청구서들이 흩어져 있다. 밤늦게까지 전등은 꺼지지 않는다. 피로 속에서, 때로는 눈물을 터뜨리며, 사람들은 똑같은 계산을 하고 또 하고, 다시 하고 또 다시 한다. 임금에서 식료품 구입비를 뺀다. 의료 요금을 뺀다. 신용카드 사용 금액을 뺀다. 공공요금을 뺀다. 학자금 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을 뺀다. 그리고 이 모든 지출 중에 액수가 가장 큰 것. 집세를 뺀다.

점점 커지는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는 질문 하나가 매달려 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는가?   (P400)     

불가능한 선택지들은 사람들을, 한 사회를 언제부터 분열시키기 시작하는가?

그 분열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을 밤늦게까지 깨어 있게 만드는,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감당이 안 되는 가계 상태라는 문제가 왜 생겨나는지는 전혀 비밀이 아니다. 평균 소득을 비교할 때,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 81배를 벌고 있다. 소득 사다리에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약 1억 1700만 명에 이르는 성인 미국인의 소득은 1970년대부터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이것은 임금 격차가 아니다. 차라리 하나의 단절이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그 분열의 대가는 우리 모두가 치르고 있다.   (P401)     


우리가 처음 만나고 며칠 뒤에, 린다는 내가 오른손에 끼고 있던 문어 모양의 반지를 알아챘다. “실험실에 있는 문어 본 적 있어요? 그 친구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린다가 감탄하며 말했다. “문어들은 탈출의 명수예요!” 

린다는 자신이 온라인으로 본 영상 하나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첫 번째 탱크에는 커다란 문어 한 마리가 혼자 들어 있고, 두 번째 탱크에는 먹을 것이 들어 있어요. 문어는 튜브 속으로 자기 몸을 구겨 넣어서 두 번째 탱크로 건너가요.” 더 많은 실험들이 이어졌다. “조건을 계속 더 어렵게, 더 어렵게 만들었어요.” 린다가 말을 이었다. “튜브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위로 젖히는 문을 열어야 한다는 식으로요.”

무엇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문어는 빠져나갔다.

“가끔은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지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누가 우리를 상자에 가두려고 한다면요.” 린다가 말했다. 그러고는 웃었다.  (P403)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 기관들이 대출금 회수 불능 사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은행들과 은행에 투자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그리고 피해는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은행에 자산을 맡기고 주택 할부금을 내고 있던 사람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미국에서만 5조 달러가량의 연금, 퇴직금, 저축이 증발했다. 2008년 기준으로 미국 내 주택 중 압류된 주택의 비율은 87퍼센트에 달했고, 사태가 진정되었을 무렵에는 미국인 약 800만 명이 일자리를, 600만 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노마드랜드>에 등장하는 노마드들 대부분은 이 시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P415)     


<노마드랜드>가 영화화되어 전 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는 2021년 3월 현재, 린다 메이는 전에 애리조나주 더글러스에 사두었던 2만 제곱미터의 땅을 밴 생활자들의 연대인 ‘홈스 온 휠스’에 기부하고, 뉴멕시코주 타오스에 새로 땅을 샀다. 그는 그곳에 온실과 작은 집을 짓고 정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보금자리를 향한 린다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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