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움베르트 에코의 '칸트와 오리너구리'를 읽고
움베르토 에코의 <칸트와 오리너구리>를 보면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의도하고자 하는 것과 그 의도가 잘 전달되는 것 사이에는 언어라고 하는 기호가 관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의도하고자 하는 것(사진가)과 의도하지 않은 것(관람자) 사이에 놓여져 있다. 사진가는 A를 전달하지만 관람자는 A를 볼 수도, B를 볼 수도 있다.
"보는 것(seeing)"과 "간주되는 것(seeing as)" 사이의 왕복(shuttle),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따지는 것, 또는 그림을 창(window)으로 보는 것과 그림을 컬러, 채색, 표시된 표면(surface)으로 보는 것 사이의 다의(多義)성. 이것이 오리-토끼(Duck-Rabbit)와 같은 다중 안정적인(multistable) 이미지가 시각 문화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특징인 이유이며, 어떤 그림이든 메타픽처(metapicture)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미첼의 이미지 이론>
<우리는 어떻게 사물에 명칭을 할당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칸트는 인식론 문제를 수용한 방식에 따라 두 가지 답변을 제시했다. 첫 번째 답변은 스콜라 철학의 전통(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소급되는)에서 제시되었다. 사물은 세계 속에서 존재론적으로 이미 그 본질을 통하여, 형식에 의해 형상화되는 원재료(rohe Materie)로 규정되었다. 이때 이 (보편적) 형식이 <사물 이후의 것(ante rem)>인지 <사물 속에 내재하는 것(in re)>인지 결정할 필요는 없다. 이 형식은 우리에게 제공되며 개별적 실체에서 조명되고 지성에 의해 파악된다. 그리고 사물의 본질로 간주되어 정의된다(즉 <명명>된다). 이것을 전광석화처럼 실행하는 <지성 주체(intellectus agens)>가 없다면 우리의 정신은 작동하지 않는다.
두 번째 답변은 영국 경험주의에서 내놓았다. 우리는 실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설령 우리가 그 실체에 대해 알더라도, 그 실체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계시하지 않을 것이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는 일차 관념이든 이차 관념이든 아직 결속되지 않은 단순 관념들을 연상시키는, 이를테면 매 시간 주체의 상태에 따라 바뀌는 무게, 규격, 크기 및 궁극적으로 색채, 음조, 맛, 메아리 같은 것으로 복합된 광시곡 같은 인상을 가질 뿐이다. 여기에서 지적 능력Intellekt(오성)이 활동하며 <작업한다>. (P105-106)
미지의 대상으로서 오리너구리를 선택한 것은 자의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리너구리는 18세기 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었고, 처음에는 <물두더지>, <오리 두더지> 또는 <오리 주둥이를 가진 너구리>라고 불렸다. 1799년, 영국 자연과학자 협회 회원들은 오리너구리의 박제 표본을 보았을 때 그들의 눈을 믿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그 박제를 만든 사람은 조롱당했다. 그 후 사람들이 이 동물을 어떻게 연구하고 규정했는지는 4·5·1에서 설명하겠다. 어쨌든 오리너구리가 유럽에 나타났을 당시 칸트는 자신의 주요 저작을 이미 다 쓴 상태였다(그의 마지막 저작은 1798년에 출간한 「실천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이었다). 사람들이 오리너구리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더 이상 명철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누군가 그에게 이 일에 대해 정보를 알려 주었더라도 그것은 정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오리너구리가 알을 낳는 젖먹이 동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시점에, 칸트는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러므로 칸트가 오리너구리를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지 가늠하려는 나의 가상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P134-135)
칸트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칸트주의자인 퍼스는 그렇게 표현했다. 이 반성적 판단력은 말할 것도 없이 <가추법>과 다를 바 없다.
이 가추적 추론에서, 말했다시피 종과 유는 단순히 임의의 분류학적 산물이 아니다. 만약에 그런 경우라면, 종과 유는 더욱 진전된 개념 작업의 단계인 성공적인 가추법에 <준해서만> 확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제3비판서에 비추어 보자면, 반성적 판단력은 목적론적이기 때문에 이미 그 도식적인 구성에서부터 <생명성>(<살아있는 존재>)이라는 특징을 할당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칸트가 오리너구리를 보았다면 무엇을 경험했을지 곰곰이 따져 보자. 그는 특징들의 다양성에 대한 직관을 가졌을 것이며,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여진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존재의 도식, 즉 조율된 동작을 하며 부리(먹이를 먹을 수 있는), 발과 물갈퀴(수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들 사이에 생물학적, 기능적 연관성을 가진 존재의 도식을 보았을 것이다. 칸트는 그 대상의 생명성을 후속하는 추상적 수식어(인지 도식에 이미 포함되었던 것을 개념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가 아니라 지각 도식의 근본 요소로 생각했을 것이다. (P139-140)
사진(프레임)에는 많은 기호들이 있다. 도시는 기호의 집합체이다. 기호의 홍수 속에 간판들은 각각의 기호로 지시를 한다. 지시한다는 것과 가리킨다는 것, 그리고 의미한다는 것은? 기호학의 이론에서 많은 부분을 얻는다. 기호학의 퍼스나, 소쉬르의 전통은 기호가 한 체계로서 자리잡게 해 주었다.
우리는 모든 고양이들을 지시할 수 있을까?
매우 부분적인 이 추가 설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단 <지시 행위>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할지 설명해야 하겠다.
이때 나는 이 용어를 <확장하여> 사용하는 데 반대한다. 그래서 흔히 <지시(Designation)>라고 부르는 경우, 즉 특정한 개체들, 개체들의 집단들, 사실 또는 특정한 시공간과 특정한 사실들에만 관련하는 발화에만 (내가 이전의 책들에서 말한 내용에 비추어) 그 낱말을 국한하여 사용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개체>라는 보편 개념은, 예를 들면 1945년 4월 25일처럼 확인 가능한 시공간적 분할체에 대해서만 사용할 것이며, <개체를 통해 명명되었지만 보편소를 의미한다>는 황금률을 준수할 것이다.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다른 의미로 전성된 <외시(denotatio)>나 <지시(designatio)>처럼 골치 아픈 개념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말하기로 하자. 보편 개념은 부류나 유의 속성을 <외시하는> 반면, 시공간의 세밀한 부분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단일 낱말이나 표현이 개체들을 <지시한다>는 용례는 수용할 만하다(예를 들어 콰인, 1955:32~33).
그래서 <이 오리너구리 좀 봐라>, <내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건조 박제된 오리너구리를 가져와라>, <시드니 동물원의 오리너구리는 죽었다> 같은 지시 문장을 사용할 경우에는 지시 행위를 수행하는 반면, <오리너구리는 포유류이다> 또는 <오리너구리는 알을 낳는다> 같은 문장은 개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의 종, 속, 강 등에 할당되는 몇몇 속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4·2에서 언급한 컴퓨터 은유로 돌아가기 위해, 오리너구리보다는 우리(또는 동물학자들)가 제시한 디렉터리의 수형도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밝힐 것이다. 이 경우에는 어떤 개체나 개체들의 부류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문화적 규칙이 새롭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런 확인은 사실 중심적 주장보다는 기호학적 주장을 제시하며, 우리의 문화가 어떤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하나의 개념을 정의한다는 것은 바로 그 개념의 기의 또는 해당하는 낱말의 기의의 일부에 상응하는 내용 단위를 설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의를 <지시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지시 행위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이상한 방식에 속한다. (P404-406)
지시 행위의 존재론은, 우리가 특히 개체들(풀, 나폴레옹, 프라하 또는 라인 강 등)을 <엄격하게> 지시할 수 있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말하자면 어떤 명칭은 우리가 그 명칭에 할당한 설명과 무관하게 특정한 시공간적 지점에서 그런 명칭 세례식을 거친 사물이나 사람을 반드시 지시한다는 입장을 말한다. 이때 그 사물이나 사람은 그것에 아무리 많은 속성이 할당되더라도, 항상 <이> 무엇 또는 <이> 누구(<계량으로 표시된 질료>에 근거한 <일차적 개체>)로서 존재한다. 물론 이런 존재론적 지시 행위 이론은 본질성(본질 및 보편적 대상)에도 연장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본질성을 몰라도 고유의 대상성을 가지는 자연 상수들은 우리의 정신 활동은 물론이고 문화가 우리의 활동을 인식하고 조직하는 방식과는 무관할 것이다. (P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