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17.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일기'를 읽고

by 노용헌

비트겐슈타인은 일기장의 왼쪽 면에는 사적 내용을, 오른쪽 면에는 철학적 내용을 기록했는데, 왼쪽 면의 〈사적 일기〉는 독일에서조차 완역하지 않고 편집 후 발간했을 정도로 은밀한 내면까지 담고 있다. 그러나 〈사적 일기〉에 기록된 비트겐슈타인의 일상이나 감정은 단순한 개인적 기록의 성격을 넘어, 그가 전쟁터에서 직면한 사건들이 추상적, 철학적인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궤적을 보여준다. 비트겐슈타인은 1914년 여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마자 자원입대해 포병부대 소속으로 동부전선에 배치됐다. 전쟁 후반기에는 이탈리아 전선으로 옮겨간 뒤 포로가 돼 1919년에야 귀향했다. 전쟁터에 있던 이 5년 동안 노트 왼편에는 개인적 일기를 기록하고 오른쪽 면에는 <철학 일기>를 기록했다. 1914년 8월9일 폴란드 도시 크라쿠프에 배속된 날 시작되는 일기는 이틀 뒤 “아직까지 작업하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작업’(Arbeit)은 철학적 사유 작업을 가리킨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jpg

전쟁터에서 자신의 첫 번째 책 <논리철학논고>의 초고를 집필하고 포로수용소에서 이를 완성했으며, 100쪽 남짓한 이 작은 책으로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선언하며 학계를 떠났다. 철학을 곧 언어 비판으로 보며 현대 철학의 ‘언어적 전환’을 불러온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며 세계와 사고의 한계를 해명하고, 종국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도달한다. <사적 일기>와 <철학 일기>의 병행 편집으로 구성된 <전쟁 일기>에는 그가 전장의 포화 속에서 <논리철학논고>의 문장들을 쌓아올리는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 일기.jpg

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특성은 기록성이 아닐까 싶다. 사진은 빛을 기록하는 매체이자 도구이자 수단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실록도 기록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기록한다는 데 있다. 동굴 속에서도 기록해왔던 인간은 일기를 통해서 그날그날을 기록한다. 네덜란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남긴 일기, 수많은 편지(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들은 문학(소설)의 근간을 이룬다. 사진의 기록성도 사진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많은 정보들을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쓴 일기도 철학의 기초가 되었듯이, 사진일기 또한 사진가의 생각과 표현을 정리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나또한 페이스북에 올려진 사진일기도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록은 정리되어질 때, 아카이브(Archive)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1914. 10. 15.]

고요한 밤이다. 이제 열흘에 한 번 정도 자위를 한다. 실제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한다; 9시에 잠자리에 들고 6시에 기상한다. 지금 사령관과는 전에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온종일 산도미에시(Sandomierz)에 있었다. 아마도 밤마다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매우 많은 연구를 했지만 확신은 없다. 마치 정답 거의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14. 10. 19.]

명제들에 의한 세계의 묘사는 오직 지칭된 것이 그 자신의 고유한 기호가 아니라는 사실에 의해 가능하다! 적용.

동어반복의 이론을 통해서 “어떻게 순수수학이 가능한가”라는 칸트의 질문에 대한 해명!

세계의 구조는 어떠한 이름의 명명함 없이도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1914. 11. 4.]

어떻게 명제는 논리적 장소를 확정하는가?

어떻게 그림은 사태를 표현하는가?

그러나 어쨌든 그림은 그 자체로 사태가 아니다. 사태는 사실일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사물을 대리하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다른 하나의 사물을 대리한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그 전체는 --하나의 살아 있는 그림처럼-- 사태를 표현한다.

논리적 결합은 당연히 묘사되는 사물들 가운데서 가능해야 하고, 이것은 사물들이 실제로 대리된다면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저 결합은 관계가 아니라 단지 관계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1914. 11. 7.]

공간적인 장소와 논리적인 장소는 모두 어떤 한 존재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1914. 12. 8.]

참과 거짓인 우리의 생각들 뒤에 항상 어두운 배경이 놓여 있는데, 우리는 훗날에야 비로소 그 배경을 빛으로 유인하고 하나의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다.


[1915. 1. 22.]

나의 모든 과제는 명제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명제의 그림인 모든 사실들의 본질을 알리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본질을 알리는 것(그리고 여기서 있음이란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만약 그렇다면 무의미해질 것이다).


[1915. 5. 19.]

우리는 이른바 움직임 속에서 파악된 물체를, 그리고 더구나 그것의 움직임과 함께, 사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지구를 회전하는 달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여기서 나에게는 그 구체화에 단지 그것의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중요한 것 같은 논리적 조작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구체화들을 하나의 선율, 구술되는 명제처럼 고찰해보자.

“‘x’는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할 때, 나는 거기서 “x"가 대략 이 칼이나 이 연필을 의미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끼는가? 결코 아니다. 그 반대이다.


[1915. 6. 1.]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것들을 둘러싼 큰 문제점은: 선험적인 세계의 질서가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 점은 무엇과 관계있는가?

안개 속을 들여다보면서 목표는 이미 가까워졌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안개는 흩어지고 목표는 여전히 시야에 나타나지 않는다!


[1916. 5. 9.]

연구를 위한 충분한 시간과 평온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연구는 꿈쩍도 안 하고 있다. 내 연구 주제는 나 자신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죽음은 비로소 삶에 의지를 부여한다.


[1916. 6. 11.]

신과 삶의 목적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마치 내 눈이 내 눈의 시야 속에 있듯 나는 세계에 있는 것을.

우리가 세계의 의미라 명명하는 무언가는 세계에서 문제적이라는 의미가 세계 안이 아니고 세계 밖에 있다는 것을.

삶이 세계라는 것을.


[1916. 7. 11.]

규정된 대상이란 매우 의미심장한 현상이다.

“모든 대상” 대신에 모든 규정된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규정된 대상이 주어진다면, “모든 대상”은 주어진다. 즉 규정된 대상과 함께 모든 대상은 주어진다.

대상이 있다면, “모든 대상” 또한 그와 함께 존재한다.

그렇기에 요소 명제와 일반적 명제의 동일성 또한 구속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요소 명제가 주어져 있다면, 그와 함께 모든 요소 명제도, 그리고 연이어 일반적 명제도 주어진다.

이미 통일성 또한 그와 함께 구축되어져 있는가?


[1916. 9. 12.]

왜 내가 사고와 언어는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제 분명해진다. 사고는 언어의 한 종류이다. 왜냐하면 생각은 명제에 대한 하나의 논리적 그림이고, 마찬가지로 명제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1916. 10. 7.]

예술 작품은 영원한 시점에서 보여진 대상이다. 그리고 훌륭한 삶은 영원한 시점에서 보여진 세계이다. 이것이 예술과 윤리의 관련성이다.

통상적인 고찰방법은 대상을, 말하자면 그것의 중심으로부터 보고, 고찰은 영원한 시점에서 바깥쪽으로부터 있다.

그러므로 대상은 배경으로서 세계 전체를 갖는다.

이것은 아마도 대상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대신 시간과 공간과 함께 보여짐을 의미하는가?

모든 사물은 완전히 논리적인 세계, 이른바 완전히 논리적인 공간을 전제로 한다.

(불현듯 이 생각이 떠오른다). 영원한 시점에서 보이는 사물은 완전히 논리적인 공간에서 보이는 사물이다.

[1917. 1. 10.]

자살이 허락된다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

어떤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자살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윤리학의 본질에 빛을 비추어준다. 왜냐하면 자살은 근본적인 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조사할 때 그것은 증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수은 증기를 조사할 때와 같다.

자살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것인가?

20140816.jpg


이전 07화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