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영화 <괴테> 2010년

by 노용헌

필립 슈톨츨 감독의 영화 <괴테>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는 대문호 괴테의 말년을 함께하며 작품 활동을 도운 조력자 에커만이 괴테와의 대화를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1]

괴테와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하여 수록한 이 책의 대부분은, 가치 있는 경험이나 진기한 체험을 글로 포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자연스러운 충동으로부터 생겨났다.

더욱이 나는 그 뛰어난 인물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물론이고 수년간이나 그 사람과 함께 보낸 후에도 여전히 그의 가르침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겨서 즐거이 기록했고, 그것을 내 삶의 지표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구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그분의 말씀의 풍성함에 견주어 볼 때, 내가 그중에서 글로 옮겨 적은 것은 실로 미미하다. 그러므로 나는 마치 두 손을 활짝 펴고 상쾌한 봄비를 잡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 빗물의 대부분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마는 소년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P7)


1823년 6월 10일 화요일, 바이마르

나는 며칠 전 이곳에 도착하여 오늘 처음으로 괴테를 방문했다. 그의 환대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며, 그의 인품에서 받은 인상은 이날을 내 생애의 가장 행복했던 날로 손꼽게 해주었다.

어제 그에게 일정을 물어보았는데 그가 나에게 오늘 정오에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찾아갔더니, 이미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곧장 나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집의 내부는 매우 안락한 느낌을 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아주 고상하면서도 소박했다. 계단 옆에 놓여 있는 여러 점의 고대 입상(立像) 모형들은 조형 예술과 고대 그리스에 대한 괴테의 특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여러 명의 부인들이 아래층에서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으며 오틸리에의 귀여운 아이들 중 하나도 눈에 띄었는데, 이 사내아이는 다정하게 다가와서 커다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P43)


세상은 너무나 넓고 풍부하며 인생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시를 쓸 계기가 모자라는 일은 결코 없어. 하지만 모든 시는 어떤 계기에서 쓰여야 하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거지. 그 때 마다의 특수한 경우가 보편적이고 시적이 되는 것은 시인의 손길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네. 이런 의미에서 나의 모든 시는 그 어떤 일을 계기로 쓰였으며, 그 모두가 현실에서 자극을 받고 현실에 그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어. 그러므로 나는 허공에서 지어낸 시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네.

현실에서는 시적인 흥미를 찾을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왜냐하면 일상적인 대상으로부터 흥미 있는 면을 발견해 낼 정도로 정신의 활동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바로 그 점에서 시인의 가치가 드러나니까 말이지. 현실은 모티프와 표현해야 할 대상과 고유한 알맹이를 제공할 뿐이며, 그로부터 아름답고 생기 있는 전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인의 몫이라네. (P59-60)

“하지만 특수한 것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예술 본연의 생명이라네. 보편적인 것에 머무른다면 누구나 우리를 따라할 수가 있어. 하지만 특수한 것은 그 누구도 모방하지 못한다네. 왜냐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특수한 것이 공감을 얻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는 없어. 모든 특징은 그것이 아무리 고유한 것이라 할지라도 보편성을 가지며, 돌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표현 대상도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가진다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반복되며, 이 세상에 단 한 번만 존재하는 건 없기 때문일세.“

괴테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러한 개별적인 표현의 단계와 동시에 사람들의 혼합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작된다네.” (P81)


괴테가 말했다. “나는 이 만년의 시기를 단순한 연대기 이상으로 다루고 싶네. 말하자면 나의 생활보다는 나의 외적인 활동을 전면에 나오게 하겠네. 무릇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란 성장기라 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것에 대해서 <시와 진실>의 몇 권에 이미 상세하게 언급했었지. 그리고 그 뒤부터 본격적으로 세상과의 갈등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거기에서 무언가 결과가 생겨날 때에만 흥미로운 것이네.

그리고 말이야, 한 독일인 학자의 생애란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경우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달하기란 불가능하며, 또한 전달 가능한 것은 노력할 만한 값어치가 없는 것이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유쾌하게 들어줄 만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의 청년기와 장년기를 돌이켜보면서, 그 옛날 젊었을 때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 남지 않았음을 생각해 본다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어느 온천장에서 보낸 여름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네. 그곳에 도착하면 얼마 전부터 머물고 있던 사람들과 금방 사귀게 되고 서로 친구가 되지만 한 주만 지나면 그 사람들은 떠나버리고 말지. 이별은 쓰라리다네. 그러고 나면 다시 두 번째 무리들과 한동안 같이 지내면서 서로 아주 깊이 마음을 터놓기까지 한다네. 이윽고 그자들도 떠나버리고 우리는 세 번째 무리와 함께 쓸쓸하게 남는 것이지. 하지만 그자들은 우리가 떠나기 직전에 도착한 사람들이고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라네.

사람들은 나를 특별한 행운아라고 칭찬한다네. 나 또한 불평을 하거나 나의 인생행로에 대해 질책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나 실제로 보면 그것은 노고와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러니 칠십오 년 평생 동안 단 한 달만이라도 진정으로 즐겁게 보냈노라고 말할 수는 없는 형편이네. 말하자면 끊임없이 돌을 위로 밀어 올리려고 애쓰면서 그 돌을 영원히 굴리고 있는 것과 같았네. 나의 연대기는 나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보여주겠지. 안팎으로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주어졌던 걸세.

나의 참다운 행복은 마음속에 시를 떠올리고 창작하는 데에 있었네. 하지만 이것도 나의 공직 생활 때문에 얼마나 제한되고 방해를 받았던가! 공적인 활동에서 물러나 고독하게 살 수 있었더라면 나는 더욱 행복했을 것이고 시인으로서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테지. 그러나 내가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쓴 직후에 어떤 현자가 나에게 한 말은 사실로 드러났네. 즉 누군가가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세상 사람들은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말이었지.

자자한 명성, 높은 지위로 할 수 있었던 일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들의 견해에 대해 침묵하는 것뿐이었네.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나의 생각을 모르게 된다는 점에서 득을 보긴 했지. 하긴 그마저 없었다면 사실 지독히도 재미없는 삶이었겠지.” (P109-111)

괴테가 미소를 지으면서 불쑥 말했다. “마이어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하곤 했네. ‘생각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일세.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생각은 생각 그 자체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괴테가 명랑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다만 천성적으로 정직하다는 것이 중요하네. 그래야만 훌륭한 착상들이 마치 신의 아들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우리 여기 있네!’하고 소리쳐 부를 걸세.” (P119)


“...... 세상에는 애초부터 분수에 만족하는 일이란 없는 것 같아. 높은 지위에 있는 양반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 안달이고, 대중은 점진적인 개선을 기대하며 적절한 정도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있네. 인류를 완전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야 완전한 상태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영원히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법이어서, 한쪽이 행복하게 사는 동안 다른 한쪽은 고통을 당하고 있고, 이기주의와 질투심은 사악한 악령처럼 언제까지나 희롱을 계속하며, 당파 간의 투쟁도 끝없이 지속되는 거라네.

그러므로 가장 분별 있는 행동은 언제나 스스로 지니고 태어난 일, 자기가 배워서 익힌 일에 힘쓰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그들의 직분을 다하는 걸 방해하지 않는 것이네. 구두장이는 언제나 자기의 구둣골 앞에, 농부는 쟁기 뒤에 있으면 되고, 군주는 나라를 통치하는 법을 알면 되는 것이겠지.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도 배워야만 하는 직업의 하나이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주제넘게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네.” (P123)

“나는 <괴츠 폰 베를리힝겐>을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썼다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난 후 그 묘사의 진실성을 보고는 깜짝 놀랐지 뭔가.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그러한 것을 체험하거나 본 적이 없었네. 그러니 그렇게 다양한 인간의 상태에 대한 지식은 예감에 의해 얻었던 것임에 틀림없겠지.

나는 외부세계를 알기 전에 자신의 내부세계를 묘사하는 데서만 기쁨을 느끼고 있었네. 그리고 그 뒤에 세계란 것이 내가 생각한 그대로라는 걸 현실에서 확인하고는 진절머리가 나서 세계를 묘사하고 싶은 생각이 더 이상 들지않더군.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네. 만일 내가 오래 기다렸다가 세계를 알고 나서 묘사했더라면, 그것은 세계에 대한 조롱이 되어버렸을 것이라고 말일세.“

그가 언젠가 말했다. “개개의 성격 속에는 그 어떤 필연성이라든지 그 어떤 일관성이 놓여 있다네. 그리고 그 때문에 한 성격이 지닌 이러저러한 기본적 특성에 다른 특성들이 부가되어 그 어떤 종류의 제2차적인 특징이 생겨나는 거지. 이것은 경험에 의해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타고날 수도 있는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네. 즉 내가 누군가에게 십오 분간 이야기함으로써 그 상대로 하여금 두 시간 동안 말하도록 만들어 보이겠네.” (P131)

전체를 염두에 두는 진지한 자세는 없으며, 전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자기 자신을 부각시켜 세상에 가능한 한 분명하게 보이고 싶어 할 뿐이야. 이러한 잘못된 노력은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네. 대개는 최근에 활동하는 대가들을 모방하려고 하지만, 이 대가라는 자들은 청중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가 자신의 숙달된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그런 곳을 선택하여 연주하는 형편이네. 도처에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려는 개인들만 있고, 전체를 위해서 그리고 작품을 위해서 겸손하게 뒤로 물러서는 정직한 노력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군. (P211)


괴테가 계속해서 말했다. “인간이 지닌 힘을 공동으로 계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가장 뛰어난 방법이라고들 말하네만, 인간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어. 인간은 각자 특수한 존재로서 자신을 연마해 나가야 하네. 그러나 그러한 특수한 것들 전체가 모여서 무슨 의미를 이루는가하는 점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겠지.” (P212)


괴테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야. 시인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말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시인은 진실을 말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점을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시인이 입을 다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지. 세상에는 시인이 밝혀내기보다는 오히려 덮어버려야 하는 그러한 일들이 있는 법일세. 하지만 이런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바로 바이런의 성격이어서, 만일 사람들이 그를 다른 식으로 바꾸려든다면, 그를 망쳐놓게 되는 거네.” (P257)


자유란 불가사의한 것일세.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분수를 지킬 줄만 알면 누구라도 쉽게 충분한 자유를 얻을수 있지. 그러나 자유가 넘칠 만큼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 방과 그에 연결된 옆방을 보게. 열린 문 사이로 내 침대가 보이지. 둘 다 그리 넓지 않은 데 다가, 여러 일용품이나 책이나 원고, 그리고 미술품 등이 방이 비좁도록 들어차 있어.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네. 겨울 동안 내내 이 방에서 살아왔고, 바깥 방들에는 거의 발도 들여놓지 않았지. 이 넓은 집을 갖고 있어봤자 자유가 있어봤자, 그것들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305)

나는 다시 계속해서 읽다가 피유도색(被誘導色)이라는 매우 흥미 있는 절에 다다랐다. 눈은 언제나 변화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눈은 같은 색채에 머무르기를 결코 좋아하지 않고 즉시 다른 색채를 요구하며, 더군다나 그 요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실제로 다른 색채를 찾아낼 수 없을 경우에는 그러한 색채를 스스로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자연 전체를 통해 작용하고 모든 생명과 생명의 모든 기쁨의 근원에 있는 위대한 법칙이 화제가 되었다. 괴테가 말했다. “이것은 다른 모든 감각에 대해서도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고차적인 정신 활동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것이네. 그러나 눈은 특히 뛰어난 기관이므로 이 변화를 요구하는 법칙은 색채에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나고, 색채의 경우에 유달리 뚜렷하게 우리들에게 의식되는 거네.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춤은 거기에 장조와 단조가 교대로 나타날 때이며, 그와 반대로 장조로만, 혹은 단조로만 된 춤은 이내 우리를 싫증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일세.” (P331)


“만초니의 작품을 뛰어나게 만드는 데는 특히 네 가지 요소가 기여하고 있네. 무엇보다도 우선 그는 탁월한 역사학자이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커다란 위엄과 유용성을 얻고 있고, 그것도 우리가 보통의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지. 두 번째로 그에게는 가톨릭 종교가 도움이 되고 있네. 그는 그 종교로부터 창작 기법에 유용한 많은 것들을 얻고 있는데, 만일 그가 프로테스탄트였다면 그것은 불가능했을 테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에 도움이 되었던 세 번째의 요소는 작가가 혁명의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네. 개인적으로는 얽혀들지 않았지만 그의 친구들이 관련되었고, 일부는 그로 인해 죽기까지 했으니 말이야.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 유리하게 작용한 요소는 그 줄거리가 코메르 호숫가의 매력적인 지역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네. 작가는 어릴 적부터 깊은 인상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그 지역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지. 그리하여 그 지역 풍광을 묘사함에 있어서의 명료함과 경탄스러울 정도의 세밀함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장점을 얻게 된 것이네.” (P378)


“얼마나 빈약한 글인지 자네는 짐작도 못 할 걸세.” 하고 괴테가 말했다. “시인들은 모두 자기들이 병을 앓고 있으며, 세상 전체가 마치 병원이나 되는 듯이 글을 쓰고 있다네. 그들 모두는 이 지상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푸념하고 피안의 기쁨을 말하고 있어. 그리고 안 그래도 누구나 다 불만인 상태에다가 서로가 서로를 충동질해서 더 큰 불만족 속으로 빠져든다네. 이야말로 문학의 월권이며 남용일세. 시의 본분은 원래 인생살이의 자잘한 분쟁을 가라앉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이나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도록 만들려는 데 있는 것이지. 그런데 지금 세대는 어떤가. 모든 진정한 힘 앞에서는 두려워하면서 그 어떤 허약한 대상만을 상대로 해서 편안하고 시적인 감동을 품는 형편이 아닌가.” (P382)

‘그대는 이제 나에게 말하라. 만일 진리를 발견하였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만 하는가? 만일 그대가 진리를 널리 알린다면, 그대는 정반대의 오류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자들은 바로 그 오류를 진리하고 여기며, 그 오류를 파괴하려는 모든 것을 가장 커다란 오류하고 확신하는 것이다.’ (P615)


“.... 세계는 평지에서 바라볼 때와 앞산 꼭대기에서 바라볼 때 그리고 원시산맥의 빙하 위에서 바라볼 때 물론 서로 다르게 보이며, 어떤 입장에서 보면 세계의 일각이 다른 입장에서 볼 때보다 잘 보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의 입장이 다른 입장보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네. 그러므로 작가가 자기 인생의 각각의 단계에서 기념비를 남기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점들을 명심해야 하네. 즉 타고난 소질과 선한 의지를 유지해야 하고, 어느 단계에 있어서도 순수하게 보고 느껴야 하며, 부차적인 목적을 가지지 않고 생각했던 대로 곧장 충실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네. 그렇게 하여 그의 글이 그 쓰인 단계에서 볼 때 옳았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올바른 것으로 남아 있게 되는 법일세. 훗날에 그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고 변화하더라도 상관없이 말이네.” (P650)


괴테 자신은 지고(至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글과 구두상의 발언의 요지는, 탐구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며 인간은 다만 그것에 근접해 가는 흔적과 예감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자연과 우리 인간은 모두 신성(神性)으로 차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상에 머무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살고 활동하고 존재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법칙에 따라 고통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법칙들을 이행하고 또 그 법칙들은 우리에게 적용된다. 우리가 그 법칙들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빵 굽는 사람의 존재를 모르고서도 아이는 과자를 맛있게 먹고, 참새도 버찌가 어떻게 자랐는지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맛있게 먹지 않는가. (P675)

[2]

“자네 말이 맞아.” 하고 괴테가 말했다. “그래서 그 책은 지금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연령의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거네. 또한 나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영향이라든가 몇몇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데서 나의 청년 시절의 비애를 이끌어낼 필요는 없었다고 보네. 오히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창작을 하게 되었고, 바로 그러한 사정이 <베르터>를 탄생시킨 심정 상태로 나를 몰아넣었던 걸세. 나는 삶을 살았고 사랑했고 많은 고통을 받았네! 그것이 전부야.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는 베르터의 시대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세계 문화의 흐름에 속한다기보다는 각 개인의 삶의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네. 그 과정에서 각각의 개인은 타고난 자유로운 자연의 감정을 가지고서 낡은 세계의 제한된 형식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지. 막혀버린 행복, 저지된 행동,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 등은 특정한 시대에 국한된 장애가 아니라 모든 개개인에게 주어진 불행이네. 그러므로 누구든 <베르터>가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쓰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시기가 있을 걸세. 만일 그러한 시기가 자신의 생애에 단 한 번도 없다면 불행한 일이겠지.” (P48-49)

“.......빛과 색채에 대한 뉴턴의 이론이 오류라는 점을 통찰하고 내가 보편적인 신조에 역행하는 용기를 낸 것이 사실 나에게는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네. 나는 빛의 순수하고 진실한 본성을 인식했으므로,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나의 의무로 생각했지. 그러나 저 당파의 무리들은 사력을 다하여 빛을 어둡게 하려고 시도했네. 그림자는 빛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모순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네. 색채라는 것은 그림자이거나 그림자를 통해서 생기는 것인데, 그들은 색채를 빛 자체라고 말했기 때문이네. 또한 마찬가지 결론이지만 그들은 색채라는 것을 빛이 이렇게 저렇게 굴절되면서 생기는 광선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네.” (P51-52)


자신의 연구의 그 어떤 방향에서도 그는 함부로 종결하거나 가볍게 끝을 내버리는 법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끝없이 배우고, 또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럼으로써 영원한, 조금도 시들지 않는 청춘의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 낮 괴테가 달톤과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달톤은 설치류의 동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의 뼈대 형성과 변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괴테는 만족을 모르는 양 계속해서 세세한 사실들에 대해 듣고 싶어 했다. (P90)


괴테가 말했다. “누구든 여론을 좇다보면 너무도 쉽게 그릇된 입장에 빠지고 만단 말이야! 나는 지금까지 민중에 반하여 죄를 지은 기억이 없는데, 이제 와서 내가 결코 민중의 벗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야 하다니, 물론 나는 혁명을 내세우는 천민의 벗은 아니야. 그들은 약탈과 살인과 방화를 일삼으면서도 공공복지라는 거짓 간판을 내걸고서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이기적인 목적에만 눈이 어두워 있지 않나. 나는 그런 무리들의 편이 될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이 15세의 편도 아니네. 여하간 나는 어떠한 폭력적 혁명도 찬성하지 않네. 그것으로 좋은 결과가 얻어지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파괴도 초래되기 때문이지. 나는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이나 그 원인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다 같이 미워한다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중의 벗이 아니란 말인가?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지는 않겠지?

자네도 알다시피 미래에 무언가를 약속해 주는 개혁이라면 나는 언제든 환영이야. 하지만 지금 말한 바처럼, 폭력적인 것이나 돌발적인 것은 모두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왜냐하면 그것들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야. (P92-93)


자연을 관찰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대상을 그것만 따로 떼어내 보는 경우는 결코 없고, 모든 대상을 그 앞과 뒤, 그 옆 또는 아래나 위에 있는 다른 대상들과 함께 연관지어 보는 법일세. 또한 어떤 개별적인 대상 하나가 특히 아름답고 그림같이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대상 하나만에 의해서가 아니라네. 사실은 그 옆이나 뒤나 위에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 걸세. 주변의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해서 말이야. (P120)

자연에 있어서는 그 어떤 대상도 만일 그것이 자연법칙에 따르는 ‘진실된 것’이 아니라면 결코 아름답지가 않네. 그리고 이 자연의 진실함을 그림속에서도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 진실함은 함께 작용하고 있는 다른 사물들에 의해 입증되어야 하네.

가령 내가 개울가에서 모양이 좋은 돌을 발견했고, 그 돌의 표면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녹색 이끼가 덮여 있다고 가정해 보세. 물론 이끼가 생긴 것은 물의 습기 때문만은 아니네. 북향의 산비탈이라든지 나무 그늘과 덤불 그늘 같은, 바로 그 돌이 있는 개울의 주변 환경도 함께 작용을 한 것이지. 그러므로 그러한 주변 환경이라는 요소를 제외해 버린다면, 내 그림에는 ‘진실’도 본래의 설득력도 없게 되고 마는 거네. (P121)

'즉 이러한 대중들의 삶의 현실은 그 자체로서 진리이자 또한 확실성인 바로 그러한 것들의 참된 의미로서만 그 진정한 현실성을 가진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보편적인 정신적 확실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확실성은 합창의 화해적인 확실성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비극적 사건의 전체 운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이러한 확실성 속에서만 합창은 비로소 보편적인 대중 의식에 부합하여 참되게 작용하며 그 자체로서 단지 대중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자신의 확실성을 따르는 것이다.‘ (P128)

괴테가 말했다. “사람의 본성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어서 거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를 위해 무언가 좋은 걸 마련해 준다네. 나는 평생 동안 눈물을 흘리며 잠든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눈물 속에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 나타나 나를 위로하고 축복해 주었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원기를 얻어 씩씩하게 일어나곤 했지.....” (P246)

괴테가 계속해서 말했다. “참다운 자유주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단을 사용하여 가능한 한 좋은 일을 많이 이루려고 노력한다네. 하지만 종종 피할 수 없는 결함에 직면한다 하더라도 즉각 총칼을 들고 달려들어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네. 현명하게 한 발짝씩 전진함으로써 사회의 결함을 차츰차츰 제거하려고 한다네. 그래야만 폭력적 수단으로 흔히 좋은 것까지 동시에 파멸시켜버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는 걸세. 언제나 불완전하기 마련인 이 세계에서는, 보다 좋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때와 상황이 주어질 때까지 현재의 좋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법이야.” (P289)

그는 무엇이 시류에 맞는가? 무엇이 효과적인가? 무엇이 대중의 인기를 끄는가? 따위를 결코 묻지 않는다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무얼 하고 있는가? 하고 물으며 그것을 모방하는 일도 결코 없다네. 그는 대중이라든지 이런저런 당파의 요구에는 개의치 않고, 항상 자신의 천성을 지키며 일해 왔네. 물론 그도 염려스러운 여러 시기에 직면하여서는 대중의 기분이나 소망이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긴 했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내면은 더욱 굳건해졌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자신의 내면과 대중의 내면이 조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확신했네. 여하간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살아 있던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네. (P310)


괴테가 말했다. “브리스톨 경은 예나를 지나서 왔지. 그는 나와 사귀고 싶다면서 어느 날 저녁에 나더러 자기를 방문하도록 했네. 그는 이따금 무례하게 행동하기를 좋아했지만,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마찬가지로 무례하게 나오면 그는 아주 싹싹한 태도를 취하더군.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베르터의 슬픔>과 관련하여 설교를 하면서 나의 양심에 호소하고자 했네. 내가 그 젊은이를 자살로 잘못 이끌었다고 말일세. 그가 말하더군. ‘<베르터의 슬픔>은 아주 비도덕적이고 저주받을 책이오.’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소리쳤지. ‘그만두시지요! 그 보잘것없은 <베르터의 슬픔>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단 한 번 펜대를 놀려 십만 명의 인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그중에서 8만 명이 스스로 죽거나 서로 죽이거나 방화를 하거나 약탈을 하도록 부추긴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그 잔혹무도한 일을 두고서 고작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미가나 부르실 테지요! 더 나아가서 소름끼치는 지옥의 형벌에 대해 설교를 하여 주교님의 교구에 속하는 신도들의 허약한 영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올바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마침내는 그들의 가련한 삶을 정신 병원에서 마치게 만드는 게지요! 혹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황당하기만 한 정통 교리를 설하시어 주교님의 신자들 마음속에 해롭기만 한 의심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면 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약한 것 같기도 한 영혼들은 죽음밖에는 달리 다른 탈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하실 거며, 또 어떤 처벌의 말씀을 내리실 건가요? 지금 주교님께서는 한 작가를 추궁하시고 그가 쓴 작품을 저주하려 하시는군요. 그 책은 몇몇 고루한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이해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 사람들을 기껏해야 한 다스밖에 안 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쓸모 없는 인간들, 즉 초라하게 남은 한줌 이성의 빛마저 불어서 꺼버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인류에게 참다운 봉사를 했고, 따라서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주교님은 저의 그 알량한 전공(戰功)마저 범죄 행위로 만들어버리시는군요. 여러 성직자분들과 제후분들에게는 그처럼 강력하고 위대한 행위를 허락하시면서요!’

그런데 이러한 공격적인 말이 그 주교에게 아주 훌륭한 효과를 발휘했지 뭔가. 그는 양처럼 순해졌고 그때부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나에게 아주 공손하게 예의범절을 다하였네.......“ (P327-329)


괴테가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모든 개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마침내 전체의 행복이 틀림없이 생겨나는 거네. 게다가 그 교의는 내가 보기에 전적으로 비실제적이며 실천 불가능한 것이네. 모든 자연과 모든 경험에 반하는 것이며, 수천 년 이래의 모든 일들의 진행과정과 모순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모두가 자신이 맡은 일의 테두리 내에서 정직하고 유능하게 행동한다면 전체의 안녕은 저절로 이루어지네. 나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전체를 이롭게 할까?라고 물은 적은 결코 없었네. 오히려 언제나 자신의 통찰력을 키우고 자기 인격의 질을 높이면서, 내가 훌륭하고 진실하다고 깨달은 것만을 표현하고자 늘 애를 써왔을 뿐이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보다 커다란 범위에서 영향을 미치고 이로운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네. 다만 이것이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적으로 필연적인 일의 과정, 즉 자연적인 힘들의 작용에 있어서 언제나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네. 만일 내가 작가로서 거대한 대중이 원하는 바를 목표로 삼고 그것을 충족시키려 했다면,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그들을 조롱이나 했겠지. 저 복도 많은 코체부처럼 말이야.” (P344-345)


아무리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해도, 우리 모두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집단적 존재이네. 생각해 보게나.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우리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으며,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말일세!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이고 배워야 하네. 가장 위대한 천재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끌어내려고 한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테지. 그런데도 다수의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서 독창성이라는 미몽에 사로잡힌 채 반평생을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다니는 것이네. 나는 어떠한 대가로부터도 배우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의 천재성으로부터 얻었노라고 자랑삼아 말하는 예술가들을 보아왔지. 멍청이들! 우물, 안 개구리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그들에게 세상이 밀어닥치고, 비록 그들이 멍청하더라도 거기에서 그 어떤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을 모르다니! 내 감히 말하지만, 그러한 예술가가 이 방의 벽들을 따라 지나가면서 내가 그 벽에 걸어놓은 몇몇 거장들의 스케치를 슬쩍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그는 보다 나은 다른 사람이 되어 여기서 걸어 나가게 될 거네. 약간의 재능만이라도 있다면 말이야. (P366-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