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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05. 2024

R.J. 팔라시오의 <아름다운 아이>

영화 <원더Wonder> 2017년

<원더>에서 ‘어기’의 엄마 ‘이사벨’역을 맡은 줄리아 로버츠는 제이콥 트렘블레이에 대해서 단 한 마디로 그를 표현한다. <룸>을 통해 관객과 평단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며 일약 천재 아역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이콥 트렘블레이였지만, 트레처콜린스 증후군(Treacher Collins Syndrom, TCS)에 걸린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의 배우에게 큰 도전이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영화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역할이라 정말 좋았고 촬영 내내 항상 책임감을 느꼈다”며 아역 배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성숙한 입장을 밝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가족과 함께 안면기형아동협회(Children’s Craniofacial Association, CCA)의 정기 가족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대체 네 얼굴은 왜 그래? 화상이라도 입은 거야 뭐야?”

샬롯이 따졌다. 

“줄리안, 너무 무례하잖아!”

“무례하긴 뭐가? 물어보지도 못하냐? 교장 선생님이 우리도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고 했잖아.”

“그런 무례한 질문은 아니지. 게다가 쟤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어.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네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겠지.”

“나도 들었어! 혹시 화상도 입은 건가 해서.”

잭이 강당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줄리안, 입 닥쳐!”

줄리안이 맞받아쳤다.

“너나 입 닥치시지.”

잭이 말했다. 

“가자, 어거스트. 그냥 도서관으로 가자.”

나는 잭 쪽으로 걸어갔고, 잭을 따라 강당 밖으로 나왔다. 잭은 문을 붙잡고 있다가 내가 옆으로 지나가자, 마주 볼 테면 보라는 식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잭을 마주보았다. 별안간 씩 웃음이 나왔다. 나도 잘 모르겠다. 울기 일보 직전이 되면 이상하게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그런 기분이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하마터면 낄낄거릴 뻔했다. 내 얼굴 생김새 때문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웃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때가 많다. 내 입은 보통 사람들처럼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냥 입이 옆으로 쭉 벌어질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잭 윌은 내가 자신을 보며 웃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잭이 나를 보고 마주 웃어 주었다.         (P53-54)     

“그런데 정작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빼먹었군.”

우리는 모두 아이디어가 다 떨어져서 선생님만 빤히 바라보았다.

“신?” 이라고 한 아이의 말에 칠판에 ‘신’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찾던 답은 아닌 듯싶었다. 선생님은 더는 묻지 않고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존재.”라며 선생님이 두 낱말에 죽죽 밑줄을 그었다. 

“우리의 존재! 우리! 알겠나?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항상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까?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혹시 우리 학교 교문 옆에 붙어있는 현판 본 사람있나?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어 본 사람? 없나?”       (P83)     

엄마는 내 기분을 물을 때 항상 1에서 10 중에 몇인지 묻는 버릇이 있다. 예전에 내가 턱 수술을 받은 뒤부터 생긴 버릇인데, 그때는 입을 철사로 동여매 놓아서 아예 말을 할 수조차 없었다. 턱을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내 가슴에서 뼛조각을 하나 가져다가 턱에 삽입하는 수술을 한 터라, 아픈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감아 놓은 붕대 중에 하나를 엄마가 손으로 가리키면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얼마나 아픈지 알려 주었다. 손가락 하나는 조금 아프다는 뜻이었다. 손가락 열 개는 너무, 너무, 너무 아프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엄마가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 때 어느 부위가 조절이 필요한지 전달해 주곤 했다. 때때로 엄마는 내 마음을 읽는 데 도사가 되었다.            (P93)     

브라운 선생님의 10월의 금언은 이랬다.

우리가 행한 행동이 곧 우리의 묘비이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어떤 이집트인의 묘비에 적힌 말이라고 했다. 마침 역사 시간에 고대 이집트를 배우기 시작해서 브라운 선생님은 이번 금언을 적절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숙제는 10월의 금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을 짧은 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썼다. 

이 금언은,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들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행한 일들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한 말이나 보이는 모습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행한 일들은 우리가 죽은 뒤에도 지속된다. 우리가 행한 일들은 영웅이 죽은 뒤 그들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만드는 묘비와도 같다. 우리가 행한 일들은 파라오를 기리기 위해 이집트인들이 지은 피라미드와도 같다. 돌이 아닌,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묘비라고 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돌 대신 기억으로 지어진 묘비.      (P109-110)     

트리스탄이 가열판에서 은박지를 막 떼어 내려는데, 때마침 내 가루도 녹기 시작해서 나도 은박지를 떼어 내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백분의 일 초나 됐을까, 어쩌다 보니 내 손이 트리스탄의 손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기겁을 한 트리스탄이 얼마나 후다닥 손을 뺐는지, 자기 은박지는 물론이고 다른 애들의 은박지까지 몽땅 가열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트리스탄!” 하고 루빈 선생님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바닥에 가루가 쏟아졌든 말든, 자신이 실험을 망쳤든 말든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든 빨리 개수대로 달려가 손을 씻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제야 뭔지 모르지만 나와 몸이 닿으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윔피키드>에 나오는 ‘치즈 터치’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아이들은 길바닥에 붙은 곰팡이가 핀 오래된 치즈를 만지면 세균에 감염된다며 벌벌 떤다.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바로 그 곰팡이가 핀 오래된 치즈다.              (P120-121)     

나는 할로윈 날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다. 나는 할로윈 복장을 입는다. 가면을 쓴다.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다니니 나를 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돌아보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365일이 할로윈이면 좋겠다. 그러면 누구나 항상 가면을 써도 된다. 그러면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가면 속의 얼굴을 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

어렸을 때 나는 어디를 가든 우주비행사 헬멧을 쓰고 다녔다. 놀이터에도, 슈퍼마켓에도, 누나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도, 심지어는 푹푹 찌는 한여름,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도 헬멧을 고집했다. 한 2년 정도 쓰고 다녔는데, 눈 수술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헬멧을 벗어야 했다. 그때가 일곱 살쯤 됐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뒤로 헬멧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온 사방을 다 뒤졌다. 엄마는 외할머니네 다락방에 두고 온 것 같다며 꼭 찾아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때는 이미 헬멧 없이 지내는 데 익숙해진 뒤였다.      (P122)     

어거스트는 태양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태양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이다. 나머지 우리 친척들과 친구들은 태양의 궤도를 도는 행성 주위를 떠다니는 소행성과 혜성들이다. 태양인 어거스트의 궤도를 돌지 않는 유일한 천체는 애완견인 데이지뿐이다. 데이지처럼 작은 개의 눈에는 어거스트의 얼굴이 다른 인간의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데이지에게 우리의 얼굴은 모두 달처럼 평평하고 희미한 닮은꼴일 뿐이다.      (P134)     

이 우주는 거대한 복권 뽑기 기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우리는 태어날 때 표를 구입한다. 좋은 표를 살지, 나쁜 표를 살지는 모두 무작위로 지정된다. 운에 맡길 뿐이다.

이런 생각에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그때 문득 기분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마음을 위로해 준다. 아니야, 아니야,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야. 진정 완전히 무작위라면 우주가 우리를 완전히 버리는 셈이지만, 그건 아니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크나큰 사랑을 베푸는 너의 부모님.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 녀석, 그리고 심지어 네 사진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니는 그 분홍 머리 여자애까지, 설령 복권 뽑기 기계일지라도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준다. 우주는 자신의 모든 새를 저버리지 않는다.         (P312-313)     

“엄마, 난 평생 그런 나쁜 놈들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까? 커서도 맨날 그런 일이 생길까?” 

엄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접시와 유리잔을 싱크대로 가져가서 물로 헹구었다. 

이윽고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나 그런 나쁜 놈들이 있기 마련이야. 오기, 하지만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단다. 정말이야, 그 좋은 사람들이 서로를 지켜주고 보살펴 준다고 말이야. 잭이 너를 위해 나서 준 것처럼, 아모스도 그리고 다른 애들도.”         (P427)     

“오기, 나는 네가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걸 더는 참을 수가 없었어.” 

“아빠, 내가 그 헬멧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어! 그거 잃어버리고 정말 얼마나 속상했는데, 생각 안 나?”

“생각나다마다. 오기, 화내지 마. 미안해. 아빠는 네가 머리에 그런 걸 쓰고 다니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 알겠니? 너한테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

아빠는 내 눈을 보려고 했지만 나는 아빠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미안해, 오기, 제발 이해해다오.”

아빠가 내 턱밑에 손을 대고 얼굴을 아빠 쪽으로 돌렸다. 

“넌 어딜 가든 그 헬멧을 쓰고 다녔어. 정말, 정말, 정말, 정말인데, 아빠는 네 얼굴이 그리웠어. 오기, 너는 네 얼굴이 싫을 때도 있겠지만, 믿어다오...... 아빠는 네 얼굴이 좋아. 아빠는 지금 네 얼굴을 정말 사랑해, 오기. 온전히, 열렬히, 그래서 네가 그렇게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아빠는 마음이 아팠어.”               (P444)   

  

선생님이 되풀이해서 말했다. 

“얼마나 훌륭한 말입니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려고 노력하라. 친절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이 말, 이 개념을 좋아하는 까닭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무엇으로 측정할까요? 자로는 안 됩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이야기와 같은 경우입니다. 일 년 동안 여러분의 키가 얼마나 컸는지 자로 재어 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란 말이지요. 그것은 정확히 수량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친절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게다가 친절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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