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이 나츠키의 <태양의 노래>

영화 <태양의 노래> 2006년

by 노용헌

XP(xeroderma pigmentosum, 색소피부건조증)라는 희귀병. 극도의 햇빛에 알레르기가 있는 희귀한 피부 질환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가 손상되어 잘 회복되지 않는 보통염색체 열성 유전병이다. 이 질환에 관한 영화 <미드나잇 선>(2017), <미드나잇 선>(2011)의 주인공도 색소성건피증이라는 희귀병 질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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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네 카오루. 18살. 하얀 피부와 긴 생머리, 다소 동그란 얼굴에 왜소한 체구. 정직하고 발랄함. 음악을 좋아하고, 길거리 공연을 즐긴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길거리 공연뿐일 것이다. 그녀를 보기 위해 학교를 찾거나 쇼핑몰을 찾는다면, 그건 계산 착오다. 그녀는 쉽게, 그것도 낮에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가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계산 착오다.

그녀의 성격은 밝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 쉽게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다. 그녀는 단지 요괴인간처럼 햇빛을 피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병명은 XP.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햇빛을 쬐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희귀병이다. XP가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녀는 쉽게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가 없다. (P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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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선생님인 토오야마와 유키의 대화는 너무나 뻔했다.

일단 ‘잘 지냈냐? 별 이상 없었냐? 그럼 아직 진행이 안 됐나 봅니다’로 말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토오야마의 물음은 언제나 두 가지로 요약됐다.

첫째가 자외선에 의한 피부 노출에 관한 것이었다. 카오루가 앓고 있는 색소성 건피증, 소위 XP는 몸에 태양빛에서 나오는 자외선을 막아내는 방어 수단이 없는 유전병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외선을 쬐었을 경우 피부가 스스로 원상태로 돌아가지만, 이 유전병을 앓는 사람은 자외선에 손상된 피부가 원상태로 돌아가는 기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햇빛을 쬐면 몸에 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고, 피부는 쪼개지듯 거칠게 변한다. 그것이 단순히 외관상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발전하면 피부암으로 사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토오야마 선생이 몇 번이나 강조한 이들의 피부암 발생률은, 일반인의 2,000배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카오루는 평생을 태양을 피해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유키와 아빠 켄이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청천벽력을 맞은 듯 힘겨워했다. 사람이 태양 아래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차압당한 운명을 자신들의 딸이 타고났다는 것에 더없는 죄의식과 슬픔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햇빛을 쬘 수 없다는 것, 그나마 그것은 양호한 것이었다. 토오야마 선생이 항상 물어오는 두 번째 질문, 신경장애의 진행. 그것에 비하면 말이다.

토오야마 선생에 의하면 XP환자들의 병의 진행 사항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악화 증상이 천차만별이라 증상의 종류가 환자 수만큼이나 많다고.

단지, 어떤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신경장애뿐이다.

일단 신경장애가 진행되면 카오루의 온몸이 서서히 굳어간다고 했다. 신체의 일부분부터 마비되기 시작해서 온몸으로 마비증세가 번져가면, 고통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거부할 수 없는 죽음,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선고는 켄과 유키를 지옥에 가두기 충분했다. 자외선이야 태양을 피하고, 염증약과 자외선크림으로 어떻게 해서든 유지해본다고 하지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신경장애는 아직 그 어떤 치료법이나 대처 방안도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P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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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공연을 끝낸 둘은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뒷자리에 앉은 카오루가 코지의 등에 뺨을 갖다댄 채로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오토바이의 진동과 흘러가는 바람의 멜로디에 실어 코지의 고동이 새기는 노래를, 그의 몸에 팔을 두른 카오루는 귀를 기울여서 듣고 있었다.

갈 때와는 다른 두근거림이 고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코지는, 몸을 딱 붙이고 기대어오는 카오루의 온기를 등 뒤로 느끼면서, 정말로 그녀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P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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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뛰어올라가면서, 카오루가 힐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태양이 얼굴을 내밀기 직전이었다. 건물이나 산 그림자들에 금색의 선들이 그어졌다.

그리고 카오루가 집의 문을 연 순간, 태양은 그녀의 온몸을 감싸 안고 말았다.

“기다려!”

등 뒤에서 외치는 코지의 소리가 계단을 향해 퍼져오고 있을 때, 카오루는 헐떡이며 서둘러 현관문을 세게 닫았다. 쾅.

카오루는 문손잡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면서 두 손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코지가 서둘러 현관문에 도착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문은 카오루에 의해 완강히 코지를 거부하고 있었다. 코지는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뭔가 미움 받을 말이라도 한 건가, 내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코지는 자신만을 탓하고 있었다.

현관 안쪽에 있을 카오루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수십 초가 지났다. 코지는 카오루의 소중한 기타케이스를 살짝 현관 앞에 놓고,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카오루는 멀어지는 코지의 발소리를 듣고 갑자기 힘이 빠져서, 현관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흘러넘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모처럼의 이런 날에...... 나는 사랑도 할 수 없어!” (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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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루는 갑자기 우뚝 선 코지에게 당황하면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코지 쪽을 바라보았다.

“좋아해.”

코지가 똑바로 카오루를 쳐다보고 말했다.

“어?”

“너에게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고 해도.”

“........”

“밤에만 만나자.”

“.........”

“낮에는 자고 말이야.”

“........”

“태양이 지면 만나러 갈게.”

“........”

카오루는 순수하게 코지의 말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아, 황급히 등을 돌렸다. (P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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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도착한 카오루는 조율을 끝내고 기타연주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누굴 위해 사는 거니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면서

약함도 고통도 얼마나 느끼고 있니

아쉬운 어제에 빠져

꿈에 새겨놓았던 오늘과 다른데도 yeah yeah

새벽이 오기 전 반짝이던 별들은

사라진 걸까 아니면 내일로 간 걸까

내일은 알 수 없어

행복한 날이 될 거야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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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벌써 가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우주복 같은 자외선 차단복을 입은 카오루가 휠체어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 모래밭 위에서는 켄과 유키가 돗자리를 깔고 카오루를 지켜보듯 가까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카오루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카오루가 차단복의 고글 너머로 가만히 태양을 올려다보고, 눈부신 듯 눈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기분 좋게 그 빛을 온몸으로 쏘이고 있었다.

카오루가 되돌린 시선 끝에는, 파도 사이에 떠 있는 코지가 걸려 있었다. 파도를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P232)


하늘이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먼 산과 집들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 경계선을 맞대고 서로 밀쳐내고 있었다.

이제부터 카오루가 깨어날 해질녘 시간인데,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검붉은 하늘에 길게 뻗치고 있었다. 코지는 그 연기를 계속 바라보며 카오루에게 끝내 보여주지 못한, 하야마 요트정박항의 석양을 떠올렸다.

하늘 가까이 흩어진 연기가 저 끝까지, 태양이 비추던 하늘로 솟아가는 것을 언제까지나 바라보았다.

카오루는 많은 추억과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모두에게 남기고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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