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네스> 1983년
영화 <주네스(Une Jeunesse)>는 1983년 모셰 미즈라히(Moshe Mizrahi)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1985년 페터 한트케가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페터 한트케는 이 작업에 대해 훗날 “나로서는 프랑스에 감사할 일이다”라고 소회를 밝혀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1974년 <라콩브 뤼시앵>(Lacombe Lucien) 루이 말 연출
1983년 <청춘 시절>(Une jeunesse) 모셰 마즈라히 연출
1995년 <슬픈 빌라> 파트리스 르콩트 연출 <이본의 향기>(Le parfum d'Yvonne)
<가스코뉴의 아들>(Le fils de Cascogne) 파스칼 오비에 연출
2001년 <8월의 일요일들> 마위엘 푸아리에 연출 <테 키에로>(Te quiero)
2003년 <한밤의 사고> 장폴 라프노 연출 <여행 잘하세요>(Bon voyage)
2006년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 미카엘 에르스 연출 <샤렐>(Charell)
영화 <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은 1944년 6월부터 10월까지 무지한 10대 소년이 나치 부역자가 되어 겪는 일을 주제로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이 영화로 만든 것이다. 라콤 루시앙은 러닝타임 137분의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의 합작영화로 1974년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라콤 루시앙>은 러닝타임 137분의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의 합작영화로 1974년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루이 말과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각본을 쓰고 '장고 라인하르트'가 음악을 담당했다. 영화에 사용된 대표적인 음악은 베토벤의 8번 소나타 '월광'이다. 여주인공 '프랑스'(오로르 클레망)가 연주하는 월광 소나타<동영상 참고>는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월광 소나타의 바로 아래에 올린 곡은 '레지스탕스 노래'로 쌍십자가가 들어간 삼색기는 샤를 드골의 '자유프랑스' 깃발이다. 라콤 루시앙은 루이 말 감독이 연출한 전쟁영화의 빼어난 수작으로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 비시 정권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더빙되었고 1974년 1월 30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한국에는 2008년 12월 4일 개봉되었고 왓차와 웨이브, 티빙에 스트리밍되었다.
오딜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훗날 이 아이가 꽃을 잔뜩 그려놓았던 이 깁스를 기억하게 될까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본다. 제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이 될까? 아이는 햇빛에 눈이 부신지 눈을 찡그린다. 호수에 드리웠던 안개가 걷힌다. 그녀의 서른다섯번째 생일이다. 그리고 이제 곧 루이도 서른다섯 살이 될 것이다. 서른다섯 살이 되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그녀는 조금 전 깁스 속에서 불쑥 나타나던 그 손상 없는 피부를, 그 팔을 생각하면서 그런 질문을 떠올린다. 마치 그 팔이 오래 갇혀 있던 이물질의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오는 것만 같았다. 때로 인생은 그렇게, 서른다섯 살이 되면 새로 시작되기도 하는 것일까? 그 심각한 질문이 그녀의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루이에게도 그 질문을 건네보는 게 좋겠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외려 마침내 안정권에 이르고, 페달보트는 지금 그녀 앞에 펼쳐져 있는 것과 같은 호수 위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미끄러져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란다. 그들은 떠나갈 것이다. (P12-13)
그는 무리를 뚫고 바로 가서 술을 한 잔 주문했다. 석 잔을 비우고 나자 소음에 좀 덜 민감해졌다. ‘팔라디움’에 올 때면 그는 매번 한 시간 정도 머물렀고 그동안 무대 위에서는 밴드와 가수들이 차례로 바뀌었다. 그들은 변두리의 청소년들이거나 그 동네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너무나도 거세고, 음악을 통해 삶에 대한 저 따분한 예측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너무나도 난폭한 것이어서, 귀청을 찢을 듯한 기타소리와 쉬어빠진 그 목소리들이 벨륀에게는 종종 사람 살려 하고 내지르는 구조의 외침으로 들리곤 했다. (P34-35)
마침내 벨륀은 어느 날 오후 베리 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두 남자를 그녀에게 소개해주었다. 손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든, 대머리가 다 된 뚱보 하나와 곱슬머리 금발에 뺨이 우묵하게 들어간 남자였다. 작곡가인 베른과 사르디였다. 그들은 그녀를 위해 네 곡을 작곡해 왔는데, 벨륀은 그들에게 저작권 계약서를 건넸고 그들은 거기에 서명을 했다.
그후 일주일 내내 그녀는 오스트리아 출신 피아니스트와 함께 그 노래들을 익혔다. 벨륀이 이따금씩 비서로 쓰곤 하던, <하와이의 장미> 시절에 알게 된 피아니스트였다. 그녀가 곡을 완전히 익히게 되자 벨륀은 녹음 날짜를 정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스튜디오로 갔다. 그녀는 이틀간 오후 시간에 녹음했다. 그러고 나서 벨륀은 그녀가 노래한 네 곡이 담긴 견본 디스크. 그의 표현을 빌리면 “플로피디스크”를 여러 장 만들도록 했다. 저녁에 그녀는 집에서 그 디스크를 들었다. 판을 건축에 걸면 자기 목소리가,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벨륀은 그녀에게 음정이 정확하다고,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되풀이해 말하면서 용기를 주었다. 그 노래들 중 하나의 제목은 <새들은 다시 돌아오고>였다. 또다른 노래의 후렴은 “파도 속에 내 마음을 던져버렸으니”로 시작됐다. (P67-68)
자신의 어머니가 일했던 곳이 궁금해진 그는 ‘타바랭’의 주소를 찾아갔으나 빅토르 마세 가의 그 번지에는 창문도 없는 정면의 벽만이 가로막고 있었다. 옛 뮤직홀을 무도장이나 차고로 개조한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잠긴 채 처음으로 그르넬 대로를 따라 걸어내려가 ‘벨 디브’를 바라보려고 마음을 가다듬던 그날 저녁과 똑같은 모험이었다.
이리하여 그의 부모의 삶을 떠받치는 중력중심과도 같았던 두 장소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고통으로 그는 땅바닥에 못박히는 기분이었다. 건물 벽면들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위로 천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고 그 끝없는 붕괴가 일으키는 구름 같은 먼지로 그는 숨이 막혔다.
그날 밤 그는 파리가 오직 ‘벨 디브’와 ‘타바랭’의 조명만이 빛나고 있는 시커먼 구덩이로 변한 꿈을 꾸었다. 나비떼들이 잠시 동안 그 불빛 주위에서 어쩔 줄 모른 채 날아다니다 그 구덩이로 떨어져버렸다. 나비떼는 그 속에서 두꺼운 층으로 쌓여갔고 루이는 그 속으로 무릎까지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자신도 나비가 되어 다른 나비들과 함께 어떤 도수관 속으로 빨려들어 가버렸다. (P88-89)
그 디스크는 어찌나 여러 번 틀었는지 이제는 노래가 점점 더 좋지 않게만 들렸고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벨륀이 그녀에게 ‘플로피디스크’는 턴테이블에 걸어놓고 너무 자주 틀면 쉽사리 닳아버린다고 했었다. “인생이 그렇듯이”하고 그는 덧붙여 말했었다.
그녀는 디스크가 멈춰버리는 순간이 올까봐 겁이 났다. 그러면 늘 그랬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다 닳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색조의 그 사무실에 가득한 침묵과 안락이 자신의 몸 안으로 배어들도록 고즈넉이 앉아 있었다. 회색 양탄자, 밝은색 나무 가구, 넓은 유리벽을 따라 늘어진 망사 커튼, 램프에 씌운 푸른색 갓. (P95)
평소에는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 척 굴지 않았었다. 취입시켜 준다던 디스크 이야기는 더 이상 한마디도 없었다. 애초부터 디스크 취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녀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라디오 볼륨을 높이더니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돈이 좀 필요해요.” 하고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돈? 농담하는 거야?”
“2,000프랑이 필요해요....... 나한테 그 돈을 줬으면 해요.”
그녀 자신도 그토록 대담한 스스로의 태도에 놀랐다. 그러나 갑자기 더 이상 그 어떤 사람도 무서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소심함이라든가 거리낌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다 녹아 없어져버려서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2,000프랑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당장.”
“두고보자고....... 우선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P124-125)
“내려갈까요. 오딜?”
그리고 루이는? 만약 그가 조금 전 일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브자르디가 주는 1,500프랑으로는 부족했다. 두 사람이 다 같이 이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돈뿐이었다.
오늘밤 그녀는 루이가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그 더러운 놈에게 좀더 많이 요구할 걸 잘못했다. 이제 더 이상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한 다음 식당 지배인이 내던 웃음소리가 다시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그자에게도 돈을 더 요구했어야 하는 건데 그랬다.
꿈은 부서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자기의 노래를 들려주는 데 실패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가 책에서 그 스토리를 읽은 적이 있는 어떤 여가수의 목소리처럼 안개와 소음을 뚫고 떠오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는 용기를 잃었다. (P128-129)
하워드는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오딜과 루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두 분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별로 하는 게 없습니다.”
“인생살이에서 좋지 못한 짓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은 사람들이지” 하고 액스터가 말했다.
오딜이 깔깔대며 웃었다.
“좋은 짓을 하기에도 그렇죠.”
액스터와 하워드가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각자의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냈다. 액스터는 자기의 것에 담배를 채워넣었지만 하워드는 여전히 오딜과 루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요....... 정말 그래요........” 하고 액스터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은 아직 어린애들이에요.......”
램프의 불빛이 오딜과 루이를 강하게 비추고 있었고 두 사람은 소파에 매우 가깝게 붙어앉아 있었다. 하워드와 액스터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나비 수집가가 천 위에 핀으로 고정시켜놓은 두 마리의 나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P190)
오딜과 루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천장에는 격자세공 무의의 그림자들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하고 루이가 말했다.
조금 전부터 그 방에서 그는 옛날 학교에 다닐 때, 그리고 군대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예속과 질식의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잇따라 지나가고, 내가 도대체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언제나 무엇에 사로잡힌 수인이 되어 살 것만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떠나는 게 좋겠어”하고 오딜이 말했다.
떠난다. 그렇고말고. 브자르디는 그를 잡아둘 권리가 전혀 없었다. 전혀. 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까닭도 없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를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학교의 운동장도, 병영의 연병장도 이제 그에게는 어느 평범한 광장에 대한 추억처럼 비현실적이고 무해한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P200-201)
천장에 매달아놓은 전등의 세찬 불빛이, 그 모든 추억을 보호하느라고 씌워놓은 비닐 막에 번쩍거리며 반사됐다. 개는 앨범에 흥미가 있다는 듯 이따금씩 코를 킁킁댔다. 루이가 앨범을 빨리 넘기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면 개의 입김 때문에 사진에 수증기가 서리곤 했다. 오딜은 더 잘 보려고 루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 사진들, 재미있네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자주 꺼내 보시나요?”
“아뇨, 이걸 보면 기분이 울적해져요......”
“왜요?”
“이 멋진 녀석들이 이젠 다 늙었거나 없어져버렸구나 생각하면 슬퍼져요. 그런데 나만 그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구경했던 낡은 가교처럼 여기 남아 있으니...... 내게 남은 것이라곤 사진뿐이에요. 내가 일생 동안 키웠던 개들의 사진을 모아 또 한 권의 앨범을 만들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그의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했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오딜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아직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는 이 앨범을 꺼내서 들춰보노라면, 그래서 사진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하나하나가 마치 발밑에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들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P228-229)
그들은 그것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산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직 개인적 존재감을 갖지 못한 채 건물들의 벽과 보도와 한데 뒤섞여 걸어가고 있다. 낡은 천처럼 조각조각 땜질한 아스팔트 위에는 콜타르를 부은 날짜들이 새겨져 있지만 어쩌면 수많은 탄생, 만남의 약속, 죽음의 날짜들이 새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훗날 자기들 인생의 이 시절을 추억하게 될 때 그들은 숱한 교차로와 건물의 입구 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의 모든 음영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그들은 온갖 색깔들이 무지갯빛으로 번뜩이는 그 도시 속에서 허공에 뜬 회색과 검은색의 기포(氣泡)에 지나지 않았다.
생 뱅상 드 폴 광장은 그곳의 공터와 성당과 더불어, 우리가 꿈속에서 가로지르는 저 낯익은 장소들처럼 인적이 없고 고요했다. 오트빌 가를 지나 큰길들이 있는 쪽으로 나온 오딜과 루이는 카페 ‘브르방’이 있는 곳쯤에 이르러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갔다. (P241)
그들은 니스에서 보름을 지냈다. 큼직한 미국산 무개차를 한 대 세내어 그다음 몇 달 동안 코트 다쥐르 해안을 돌아다녔다.
니스와 빌프랑슈 사이 절벽 위로 난 해안 도로를 달려가던 어느 날 아침, 루이는 날아갈 듯한 가벼움과 몽롱함이 한데 섞인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오딜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무엇이, 훗날 그게 다름아닌 자신의 청춘 시절이 아닌가 자문하게 될 그 무엇이, 그때까지 그를 짓누르고 있던 그 무엇이, 마치 어떤 바윗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바다를 향해 굴러떨어지다가 마침내 한 다발의 물거품을 일으키며 사라지듯이, 그에게서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