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영화 <삼총사> 2023년

by 노용헌

<삼총사3D>(2011). <삼총사>(1993), <삼총사: 마지막 미션>(2018), <삼총사>(1973), <삼총사>(1948), <삼총사>(1922), <쓰리 머스커티어>(1939), <더 쓰리 머스커티어스: 밀라디>(2023)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tous pour un, un pour tous)"


영화 삼총사 11.jpg

[1]

이 호의적이지 않은 수근거림에 젊은 다르타냥은(제2의 로시난테를 타고 가는 이 돈 키호테의 이름은 다르타냥이었다)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아무리 말을 잘 타는 사람이라도 이런 말을 타고 가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아버지로부터 작별의 선물로 이 말을 받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다. 이런 하찮은 짐승이라도 20리브르는 족히 나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 선물을 주시면서 건넨 말씀은 사실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값어치가 있었다.

앙리 4세도 결국 고치지 못했던 순수한 베아른 사투리로 가스코뉴의 늙은 귀족이 아들에게 말했다. “내 아들아, 이 말은 십삼 년 전쯤에 네 아비의 집에서 태어나, 줄곧 여기에서 살아왔단다. 그러니까 너도 틀림없이 이 말을 사랑하게 될 거다. 절대로 팔아서는 안 돼. 명대로 살다가 명예롭게 조용히 죽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말을 타고 전투에 나가면 늙은 하인을 대하듯 아껴주어라.” 아버지는 말을 계속했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자제인 너에겐 당연한 일이다면, 궁정에 드나드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오백 년 이상이나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의젓하게 처신해라. 너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주위 사람들이란 너의 친척과 친구들을 뜻하느니라. 추기경 예하와 국왕 폐하의 명령 외에는 어떠한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늘날 귀족이 출세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오로지 용기만이 필요할 뿐이다......” (P19-20)

영화 삼총사 02.jpg

트레빌은 불현 듯 수상한 기분이 들어 갑자기 말을 그쳤다. 아버지의 소개장을 미지의 사나이에게 도둑맞았다는 것도 꽤 수상쩍은데, 이 젊은 나그네가 미지의 사나이에 대해 드러내 보이는 이 불타는 증오의 이면에 어떤 속셈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젊은이는 추기경이 보낸 사람으로, 무슨 덫을 놓기 위해 온 것이 아닐까? 다르타냥이라고 하는데, 혹시 밀정이 아닐까? 추기경이 내 집에 들여보내 측근에 두었다가 신임을 얻게 한 뒤에 나를 실각시키는 데 사용하려는 밀정 말이야. 지금까지도 여러 번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처음보다도 더 뚫어지게 다르타냥을 바라보았다. 영리하고 재주가 넘쳐 보이는 용모, 틀림없이 겸손해 보이는 모습이긴 했다. 그런데도 여간해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가스코뉴 사람이라는 건 잘 알겠어’ 그가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 추기경의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P68-69)


다르타냥은 자신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떠올리면서도, 이런 상황에 처하여 자신보다 용기도 없고 침착하지도 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이제부터 결투할 상대들의 제각기 다른 성격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좀 더 분명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아토스에게는 성심껏 사과하여 그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의 대귀족다운 풍채와 근엄한 용모가 워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포르토스에게는 가죽 멜빵의 실체를 무기로 겁을 줄 수 있으리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당장에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멜빵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싸하게 꾸며낸다면 틀림없이 포르토스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엉큼한 아라미스는 그다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일이 잘못되어 그를 상대하게 된다면, 멋지게 해치워 버릴 작정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카이사르가 자신의 병사들에게 폼페이우스 병사들을 공격하라고 내렸던 명령처럼, 그의 얼굴을 후려쳐서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잘생긴 낯짝을 영원히 망가뜨려 놓겠다고 마음먹었다. (P86-87)

영화 삼총사 10.jpg

그러면서 루이 13세는 의기양양하게 콧수염을 쓸어 올리면서 몸을 기댔다.

“조금 전에도 아뢴 바와 같이 다르타냥은 어린애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총사대원이 아니므로 평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근위대원들도 그가 너무나 어린 데다가 총사대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걸 알고서 공격하기 전에 물러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보게, 트레빌.” 왕이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그들 쪽에서 먼저 공격한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폐하.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다르타냥더러 물러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자신은 마음으로 이미 총사이며, 전적으로 폐하께 속한 사람이니 총사들과 함께 있겠노라고 대답하였사옵니다.”

“용감한 젊은이로다!” 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실제로 총사들과 힘을 합하여 싸웠습니다. 폐하께서는 믿음직한 용사 한 사람을 얻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용사가 쥐사크에게 가한 그 무서운 타격 때문에 추기경님이 그토록 크게 화를 내신 것입니다.”

“바로 그 친구가 쥐사크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어린애가 말이야! 트레빌, 곧이들리지 않는군.”

“황공하오나 사실입니다. 폐하.” (P106-107)


“저런! 하지만 부인이 그 일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제 아내가 왕비 마마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비 마마로부터 멀리 떼어놓거나, 아니면 위협해서 왕비 마마의 비밀을 캐내거나, 유혹하여 밀정으로 부리려는 거겠지요.”

“그럴듯한 얘기군요.” 다르타냥이 말했다. “그런데 부인을 납치한 사나이가 누군지 알고 있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짐작은 갑니다만.......”

“그 사람의 이름은?”

“이름은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추기경의 심복이라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얼굴은 보았겠군요?”

“예, 언젠가 아내가 그를 가리키더군요.”

“알아볼 만한 특징은 없소.”

“물론 있죠! 키가 후리후리한 귀족인데, 머리카락이 검고 살갗이 구릿빛이며 눈매가 날카롭습니다. 이가 새하얗고 관자놀이에 흉터가 하나 있습니다.”

“관자놀이에 흉터가 있어!” 다르타냥이 외쳤다. “그리고 이가 희고 눈매가 날카롭다고! 살갗이 그을고 머리털이 검은 데다 키가 후리후리하다고! 그렇다면 바로 묑에서 만난 내 원수다!” (P150)

영화 삼총사 03.jpg

“난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 포르토스가 말했다. “자네들은 다르타냥이 잘했다고 생각하나?”

“암, 잘했고말고.” 아토스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칭찬해 주어야겠어.”

“자, 그러면.” 다르타냥이 자신의 행위를 포르토스에게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고 말했다. “이제 우리 넷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이것이 우리의 모토입니다. 알겠죠?”

“하지만.........” 포르토스가 말했다.

“손을 잡고 맹세하자.” 아토스와 아라미스가 동시에 외쳤다.

포르토스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도 다른 친구들처럼 손을 뻗었다. 이 자세로 네 친구는 다르타냥이 말한 모토를 입을 모아 되풀이했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됐어요.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세요.” 다르타냥이 마치 여태까지 줄곧 지휘해 온 사람처럼 말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해요. 이제부터 우리는 추기경과 직접 맞붙어 싸우는 것이니까.” (P167-168)


쥐덫은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사회가 형성되고 경찰 제도가 만들어지고부터, 경찰이 쥐덫을 발명한 것이다.

독자도 예루살렘 가의 은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을 것이고, 필자도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십오 년이나 되었지만 쥐덫이란 낱말을 이런 뜻으로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므로, 이 쥐덫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설명하기로 하겠다.

어떤 집에서 범죄의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체포했을 때, 이 사실을 비밀로 해두고 너덧 명의 경관을 그 집에 잠복시켜 두었다가 누군가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집 안에 가두거나 체포한다. 이런 식으로 이틀이나 사흘쯤 지나면, 이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거의 다 잡혀버린다.

이것이 바로 쥐덫이다.

그러니까 보나시외의 집은 쥐덫이었고, 거기에 나타난 사람은 누구나 추기경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았다. 물론 다르타냥이 살고 있는 2층에는 토로가 따로 나 있었으므로,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조사를 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드나드는 사람은 삼총사밖에 없었다. (P169-170)


결국 왕비는 그를 만나보고 당장 떠나도록 당부하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왕비가 이렇게 결심한 바로 그날 저녁, 공작을 찾아가서 루브르 궁으로 안내해 올 책임을 맡은 보나시외 부인이 납치를 당했다. 부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틀 동안 전혀 알 수 없었으므로, 모든 일이 한동안 중지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유로운 몸이 되어 라 포르트와 다시 연락이 닿자, 일이 다시 추진되기 시작했다. 여자가 납치당하지 않았더라면 사흘 전에 실행되었을 위험한 계획이 이제야 완수된 셈이었다. (P210-211)


영화 삼총사 09.jpg

“그렇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렇게 거부한 대가를 전쟁으로 치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뵐 수 없습니다. 부인. 하지만 날마다 당신에게 저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레 섬 원정과 라 로셀의 신교도와의 동맹을 왜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당신을 만나 뵙는 기쁨 때문입니다. 물론 무력으로 파리까지 쳐들어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평화 조약을 맺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담판자가 필요할 것이니, 그때 제가 담판자로 나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저를 거부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파리로 돌아와 당신을 다시 뵙고 한때나마 행복을 되찾을 것입니다. 물론 저의 행복을 위해 수천 명의 생명이 희생되겠지요. 하지만 당신을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수천 명의 목숨도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 미친 짓일지도 모르죠. 분별없는 짓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 여자에게 이보다 더 눈이 먼 연인이 있을까요? 어떤 여왕이 이보다 더 충실한 하인을 거느렸을까요?” (P216-217)


벽난로 앞에는 중키의 한 사내가 오만하고 준엄한 얼굴로 서 있었다. 눈이 날카오웠고 이마가 훤칠했으며 팔자 모양의 콧수염 아래 뾰족한 턱수염이 나 있어서 마른 얼굴이 더 갸름해 보였다. 아직 서른예닐곱 살밖에 안 되어 보였는데도, 머리털과 위아래 수염이 희끗희끗했다. 몸에 칼은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군인임에 분명했다. 물소 가죽 장화에 아직도 먼지가 약간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날도 말을 탄 모양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르망 장 뒤플레시, 즉 리슐리외 추기경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노인처럼 늙어빠지고 순교자처럼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몸은 야위고 목소리는 가물가물하며 마치 무덤에 묻힌 듯 안락의자에 푹 파묻혀 정신력으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유럽 전체와 싸움을 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몸은 약해졌으나 세상에서 드물게 보이는 정신력을 갖춘 비범한 인물의 모습, 그의 공작령 만토바에서 느베르 공작을 지원하고 님, 카스트르, 위제스를 탈환한 뒤 이제는 바야흐로 레 섬에서 영국군을 내쫓고 라 로셸에 대한 포위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능란하고 대담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P237)

영화 삼총사 04.jpg

국왕은 왕비에 대해 심한 반감을 품고 있었고, 추기경은 이를 교묘하게 부추겼다. 추기경은 음모에 관한 한 남자들보다 여자들을 훨씬 더 의심했다. 이 반감의 주요한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슈브뢰즈 부인에 대한 왕비 안느의 우정이었다. 국왕에게는 에스파냐와의 전쟁이나 영국과의 분규 또는 재정난보다 이 두 여자가 더 걱정거리였다. 국왕이 보기에는, 그리고 확신하건대 슈브뢰즈 부인은 왕비의 정치적인 음모를 도와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비의 연애 사건까지 거들어주고 있었다. 국왕에게는 후자가 훨씬 더 골치 아픈 문제였다. (P252-253)


왕비는 남편인 국왕의 신뢰를 잃었을 뿐 아니라 추기경의 증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왕비는 시어머니인 왕태후의 선례(先例)를 익히 목격했기 때문에, 추기경의 연정을 거절해 왔다. 추기경은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기록을 믿는다면, 왕태후 마리 드 메디시스는 처음부터 추기경에게 애정을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의 증오에 고통을 받았다. 안느 왕비는 추기경의 그러한 애정을 늘 거절했다. 그런 까닭에 안느 왕비의 가장 충성스런 하인들, 가장 친근한 심복들, 가장 총애하는 신하들이 서서히 몰락해 갔다. 남에게 화를 끼치는 불길한 힘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람처럼, 왕비가 가까이하는 사람은 누구나 불행해졌다. 왕비가 베푸는 호의는 박해를 불러오는 불길한 신호였다. 슈브뢰즈 부인과 베르넬 부인은 추방되었고, 라 포르트까지도 언제 체포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왕비에게 숨기지 않고 있는 형편이었다. (P268-269)

영화 삼총사 12.jpg

[2]

다르타냥은 포르토스에게 상처나 소송 대리인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다르타냥은 나이에 비해 여간 현명한 게 아니었다. 비밀을 폭로하면, 더군다나 그 비밀이 자존심에 관계되는 경우에는 우정을 잃게 되리라 확신하고 자존심 강한 총사의 이야기를 곧이듣는 체했다. 상대방의 삶을 환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에게 어떤 정신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런데 다르타냥은 장래의 계획을 세우면서 세 친구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기로 결심했기에,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줄을 미리 손에 넣는 것에 대해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P90)


온 정신을 집중하여 골똘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시간도 빨라지고 가던 길도 짧게만 느껴진다. 그럴 때 외부의 존재는 잠과 같고, 생각은 꿈이 된다. 시간에는 분초(분초)의 구분이 사라지고, 공간에는 거리의 구분이 사라진다. 한 장소에서 출발하여 다른 장소에 도착할 뿐이다. 지나온 과정은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오직 어렴풋한 안개만이 기억날 뿐이다. 나무와 산 같은 경치의 온갖 영상은 어렴풋한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서로 녹아들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P91)

영화 삼총사 05.jpg

“아니, 아라미스!” 다르타냥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친구를 바라보면서 외쳤다.

“나란 존재는 먼지에 불과하니까 먼지 속으로 되돌아가는 거야. 인생은 굴욕과 고뇌로 가득 차 있어.” 아라미스가 침울한 얼굴로 계속했다. “우리를 속세에 묶어놓은 줄은 사람의 손에 끊기게 마련이라네. 특히 황금의 줄은 더욱더 그렇지. 여보게, 다르타냥” 아라미스가 목소리에 고뇌의 빛을 띤 채 계속 말했다. “상처가 있으면 그걸 가만히 감추어두게. 침묵은 불행한 자의 마지막 기쁨이야. 고통의 흔적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하게. 상처 입은 사슴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파리들처럼 호기심 많은 인간들은 우리의 눈물을 빨아먹으니까.”

“이런, 아라미스” 이번에는 다르타냥이 깊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얘기는 꼭 내 신세를 말하는 것 같군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P110-111)


“보나시외 부인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밀레디는 머리로 사랑하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제가 그 여자의 집에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여자가 궁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밝혀내고 싶어서입니다.”

“그 여자의 역할! 그런 건 자네가 나에게 말한 것으로 미루어 쉽사리 짐작이 가네. 그 여자는 추기경의 밀정이야. 여자가 자네를 함정에 끌어들이려는데도 자네는 순진하게 빠져들고 있어.”

“아니, 정말! 당신은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요, 아토스.”

“나는 여자를 믿지 않아. 별수 있나! 그렇게 대가를 치렀는데, 더구나 금발의 여자는 그렇지. 밀레디가 금발이라고 했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금발이죠.”

“아! 가련한 다르타냥.” 아토스가 말했다. (P196)


영화 삼총사 07.jpg

“내 사랑, 그 반지는 바로 내가 가지고 있소. 목요일의 바르드 백작과 오늘의 다르타냥은 동일인이오.”

그는 그녀가 수치심에 몹시도 경악하고, 화를 내다가 눈물을 보이는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의 오산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밀레디가 창백한 얼굴에 섬뜩한 표정을 짓더니 벌떡 일어나 다르타냥의 가슴을 힘껏 떼밀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밖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다르타냥이 용서를 빌려고 그 여자의 얇은 인도산 리넨 잠옷을 잡았다. 그녀는 거칠고 단호한 몸놀림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잠옷이 찢어지면서 그녀의 어깨가 훤히 드러났다. 포동포동하고 하얀 아름다운 한쪽 어깨 위에서 다르타냥은 백합꽃을 알아보았다. 형리의 더러운 손에 의해 찍히는 영원한 낙인이었다. 다르타냥은 형언할 수 없는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하느님 맙소사!” 다르타냥이 이렇게 외치면서 그녀를 놓았다. 그러고는 말도 하지 못하고 침대 위에 얼어붙은 듯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밀레디는 다르타냥의 질겁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틀림없이 다 보았을 것이다. 이제 이 다르타냥은 아무도 모르는 그녀의 비밀, 그 끔찍한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돌아섰다. 이제는 단지 분노한 여자가 아니라 상처입은 암표범의 모습이었다. (P275-276)


에스파냐, 영국, 이탈리아 등 온갖 나라들의 불평분자들. 풍운의 뜻을 품은 온갖 군인들이 신교도의 깃발 아래 재빨리 호응해 왔고 거대한 조직을 형성하여 유럽 전역에 서서히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다른 신교도 도시들이 파멸하자 라 로셸은 새로운 요지로 급부상했고 분쟁과 야심의 도가니로 변했다.

게다가 이 도시의 항만은 프랑스에서 영국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마지막 해상 통로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항구를 프랑스의 영원한 적인 영국을 상대로 봉쇄시킨 추기경은 잔다르크와 기즈 공작 못지않은 업적을 이룩한 셈이었다.

그런데 바송피에르는 신앙상으로는 신교도였으나 생 테스프리 훈장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구교도였다. 출신은 독일인이지만 마음만은 프랑스인이었다. 간단히 말해 라 로셸 공격에서 특수 부대의 지휘를 맡게 된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교도인 다른 여러 제후의 선두에서 공격을 하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러분, 우리가 라 로셸을 점령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게 될 것이오!”

바송피에르의 말이 옳았다. 왜냐하면 레 섬에 대한 포격은 루이 14세 때 세벤에서 신교도 박해가 벌어질 것을 예고했고, 라 로셸의 점령은 낭트 칙령 폐지의 서막이었기 때문이다. (P320)

영화 삼총사 13.jpg

[3]

우리의 세 친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다만 타고난 의협심과 모험심에서, 누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추기경이 특별히 보호해 주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봉사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과연 누구였을까? 삼총사는 우선 이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할 만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포르토스가 주인을 불러 주사위를 가져오라고 했다.

포르토스와 아라미스가 탁자에 앉아 주사위 놀이를 시작했다. 아토스는 생각에 잠겨 방 안을 거닐었다.

아토스는 중간이 끊어진 난로 연통 앞을 오락가락했다. 이 연통은 한쪽 끝이 위층의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연통 앞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아토스의 귀에 어떤 속삭임이 들려왔다. 마침내 그가 이 속삭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토스가 연통 쪽으로 다가가자 몇 마디가 뚜렷이 들렸다. 그가 짐작하기에 매우 중대한 문제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허리를 굽히고 연통 구멍에 귀를 바짝 댔다.

“이봐, 밀레디.” 추기경이 말하고 있었다. “중대한 문제야. 우선 거기 앉이요. 얘기를 해야 하니까.”

“밀레디라니!” 아토스가 중얼거렸다. (P7-8)

영화 삼총사 01.jpg

이렇게 밀레디는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고,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그녀의 힘이 커졌다.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남자들, 정중한 궁중 예법을 교육받아 쉽사리 올가미에 걸려드는 남자들을 정복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밀레디가 여태까지 상대해 온 남자들이 그런 부류였다. 그녀는 어떤 남자라도 끌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온갖 장애물을 이겨낼 만한 수완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 근엄한 나머지 목석 같은 데다 붙임성도 없는 내성적인 성격의 남자를 상대해야 했다. 종교와 금욕 때문에 예사로운 유혹에는 꿈쩍도 않는 남자인 펠튼을 유혹해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너무나 방대한 갖가지 계획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꿈틀거리고 있어 변덕스럽거나 육체적인 사랑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태함에서 싹트고 타락으로 커지는 그러한 감정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까 밀레디에 대한 지독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남자의 가슴에 밀레디가 거짓 미덕으로 구멍을 뚫었던 것이다. 순결하고 순수한 남자의 감정과 감각에 미모로 틈을 만든 셈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연과 종교의 영역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연구 대상에 대한 그와 같은 실험을 통해, 여태까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실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P170-171)


“하지만.” 펠튼이 외쳤다. “이것은 백합꽃이 아닙니까?”

“바로 그러니까 비열한 놈이에요.” 밀레디가 대답했다. “영국의 낙인이라면 어느 재판소가 그 형을 과했는지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제가 국내의 모든 법원에 공식적으로 항소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프랑스의 낙인이라면....... 오! 그것은 정말로 굴욕적인 형벌이에요!”

펠튼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고백을 듣고 나자 그는 얼떨떨했다. 노골적으로 자기 몸을 드러내 보이는 동작도 그에게는 숭고하게만 느껴졌으며, 그녀의 초인적인 아름다움에 아찔했다. 얼굴이 새파래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 앞에, 마치 황제의 박해를 받고 투기장에 던져진 채 잔인하고 음란한 천민들의 구경거리가 된 순결하고 거룩한 순교의 여자들 앞에 무릎을 꿇던 초기 기독교도들처럼 무릎을 꿇었다. 이제 그녀에게서 낙인 사라졌고 아름다움만 남았다. (P193)


영화 삼총사 06.jpg

“그런데 버킹엄이 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나 봐요. 이미 나를 좋지 않게 보고 있던 윈터 경에게 제 귀국을 알리고 내가 창녀에, 낙인까지 찍힌 여자라고 고자질했어요. 나를 변호해 줄 내 남편의 순수하고 고매한 목소리는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윈터 경은 그의 말을 모두 곧이들었지요. 그의 말을 믿는 편이 이로우니까 더욱 믿기 쉬웠던 거고 그래서 나를 체포해서 여기에 데려다 놓고 당신에게 감시를 맡긴 겁니다. 그 밖의 일은 당신도 아시겠죠. 모레면 나는 추방됩니다. 모레면 나는 죄수들의 섬으로 귀양을 갑니다. 아! 참으로 잘 꾸며진 음모죠! 그래요, 교묘한 음모예요. 내 명예는 이제 끝장이 난 거예요. 아시겠죠, 펠튼. 나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펠튼, 그 나이프를 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밀레디는 마치 모든 힘이 소진되기라도 한 듯이 젊은 장교의 품에 기운 없이 쓰러졌다. 펠튼은 격정적으로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P197)


라 로셸은 영국 함대와 버킹엄이 약속했던 병력의 지원이 불가능해지자 포위된 지 일 년 만에 항복하고, 1628년 10월 28일 항복 문서에 조인했다.

국왕은 같은 해 12월 23일 파리로 돌아왔다. 마치 같은 민족이 아니라 적을 무찌르고 돌아오기라도 한 듯이 환호를 받으며 푸른 나뭇가지로 엮은 아치 모양의 문을 지나 생 자크 지구로 들어왔다.

다르타냥은 부관의 계급장을 달았다. 포르토스는 군직에서 물러나, 이듬해 코크나르 부인과 결혼했다. 그토록 탐냈던 금고에는 80만 리브르나 들어 있었다.

무스크통은 화려한 하인복을 입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늘 꿈꾸었던 소망, 즉 황금빛 사륜마차의 뒤에 타보고 싶다는 꿈도 이루었다.

아라미스는 로렌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뒤 갑자기 행방을 감추었다. 친구들에게도 편지를 끊어버렸다. 나중에 자신의 몇몇 연인들에게 전하 슈브뢰즈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낭시의 수도원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쟁은 평수사(平修士)가 되었다.

아토스는 1633년까지 다르타냥 휘하에서 총사로 남아 있었다. 그해 투르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 루시용에서 얼마간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핑계로 역시 총사직을 그만두었다.

그리모는 아토스를 따라갔다.

다르타냥은 로슈포르와 세 번 결투하여 세 번 다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네 번째에서는 아마 당신을 죽이게 될 것이오.” 다르타냥이 로슈포르를 일으켜주려고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이쯤해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로슈포르가 말했다. “제기랄!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당신과 친해진 느낌이오. 맨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추기경에게 한마디만 했더라면, 당신 목을 날려보낼 수 있었을 것이오.”

이번에도 그들도 다른 나쁜 감정 없이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

플랑셰는 로슈포르 덕분에 근위대의 하사관이 되었다. (P329-330)

영화 삼총사 14.jpg


이전 03화데이비드 에버쇼프의 <대니쉬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