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즈의 <타임머신>

영화 <타임머신> 2002년

by 노용헌

영화 <타임머신>(1960)

영화 타임머신 17.jpg

「실제로 존재하는 입체는 네 방향으로 연장된 부분을 가져야 합니다. 네 방향이란 길이와 너비와 두께 그리고 지속 시간이지요. 하지만 육체가 타고난 결함 때문에 -- 여기에 대해서는 곧 설명하겠지만 --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네 가지 차원이 존재하고, 그중 세 개를 우리는 공간의 세 평면이라 부르고, 네 번째 차원은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의 세 차원과 네 번째 차원을 부자연스럽게 차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시간이라는 네 번째 차원을 따라 한 방향으로만 단속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지요.」 (P16-17)

영화 타임머신 12.jpg

시간 여행자는 우리가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과학자들은 시간도 일종의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과학적 도표인 일기도(日氣圖)입니다. 내가 지금 손가락으로 더듬어 가는 이 선은 기압계의 움직임을 보여 줍니다. 어제는 기압이 아주 높았지만, 밤이 되자 기압이 떨어졌고, 오늘 아침에는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완만하게 상승했습니다. 물론 기압계의 수은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공간의 어느 차원에서도 이 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죠? 하지만 분명히 수은은 그런 선을 따라 움직였고, 따라서 우리는 그 선이 시간이라는 차원을 따라 움직였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난로 속에서 타고 있는 석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정말로 공간의 네 번째 차원일뿐이라면, 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시간을 공간과는 다른 것으로 간주할까? 그리고 공간의 다른 차원들 속에서는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는데, 왜 시간 속에서는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일까?”

시간 여행자는 빙긋이 웃었다. (P18-19)

영화 타임머신 21.jpg

의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기계장치를 들여다보았다.

“아주 잘 만들었군.”

“이거 만드는 데 2년이나 걸렸답니다.” 시간 여행자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우리가 모두 의사의 행동을 따르자 말을 이었다. “이쪽 손잡이를 누르면 기계가 미래로 들어가고, 이쪽 손잡이를 누르면 과거로 돌아갑니다. 이 안장은 운전자가 앉는 자리를 나타내지요. 나는 이제 곧 손잡이를 누를 것이고, 그러면 기계는 떠나 버릴 겁니다. 여기서 사라지는 거죠. 미래로 들어가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걸 잘 보세요. 탁자도 잘 보시고, 어떤 속임수도 없다는 걸 확인하세요. 이 모형을 희생하면서 사기꾼이라는 소리나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P24-25)


그 당시 우리는 아무도 타임머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시간 여행자는 너무 영리해서 신용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그의 모든 면을 보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투명할 만큼 솔직했지만, 그 솔직함 뒤에는 어떤 신비로운 비밀이나 창의력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는 항상 의심했다. 필비가 타임머신의 모형을 보여 주고 시간 여행자와 같은 말로 그것을 설명했다면, 그렇게까지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필비의 동기를 쉽게 간파했을 테니까. 푸주한이라도 필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 여행자는 꽤나 변덕스러운 기질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보다 덜 영리한 사람이 하면 명성을 가져다주었을 일도 시간 여행자가 하면 꼭 속임수처럼 보였다. 일을 너무 쉽게 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진지한 사람들은 그의 태도를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신망을 걸고 그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육아실에 놓아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P29)

영화 타임머신 10.jpg

저 우박 장막이 완전히 걷히면 무엇이 나타날까?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잔인성이 평범한 감정이 되었다면 어떡하지? 그사이에 인류가 인간다움을 잃고 냉혹하고 몰인정하고 엄청나게 힘센 동물로 진화했다면 어떡하지? 그들에게는 내가 구세계의 야수처럼 보일지도 몰라. 자기들과 닮았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혐오스러워서 눈에 띄기만 하면 당장 죽여 버려야 할 가증스러운 동물로 보일지도 몰라.

이미 나는 거대한 형상들을 보았습니다. 복잡한 난간과 높은 기둥을 갖춘 거대한 건물들, 폭풍우가 잦아들면서 점점 가늘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어렴풋이 다가오는 언덕 비탈의 울창한 나무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미친 듯이 타임머신으로 돌아가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지요. 그러는 동안 먹구름을 뚫고 햇살이 비쳤습니다. (P44-45)


나는 종말에 가까워진 인류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붉은 저녁놀은 나로 하여금 인류의 낙조를 생각하게 했지요. 나는 우리가 오늘날 쏟고 있는 사회적 노력의 기묘한 결과를 처음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참으로 논리적인 결과입니다. 힘은 필요의 소산이고, 안전은 나약함을 조장합니다.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일, 그러니까 삶을 좀 더 안전하게 만드는 진정한 문명화 과정은 꾸준히 진행되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인류는 힘을 합쳐 자연에 대해 연달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꿈에 불과한 일들이 미래에는 신중하게 착수하여 진척시키는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내가 본 것이 바로 그 결과였던 겁니다! (P57-58)

영화 타임머신 22.jpg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볼까? 타임머신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가령 파괴되었다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되면 나는 차분하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난쟁이들의 생활방식을 배우고, 타임머신을 어떻게 앗아 갔는지 그 방법을 분명히 알아내고, 재료와 연장을 구할 수단을 궁리할 필요가 있어. 그러면 결국에는 새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고작해야 이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겠지만, 그래도 절망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그곳은 아름답고 신기한 세계였어요.

하지만 타임머신은 아마 어딘가에 치워졌을 뿐일 거야. 그래도 역시 나는 차분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타임머신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찾아내어, 힘이나 꾀를 써서 타임머신을 되찾아야 해. 나는 이렇게 마음먹고 얼른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에 가면 몸을 씻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P67)


영화 타임머신 11.jpg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앉아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참 동안은 내가 본 괴물이 인간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차츰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언제까지나 하나의 종족으로 남아 있지 않고 별개의 두 종족으로 분화했다는 것, 지상에 살고 있는 그 우아한 난쟁이들이 우리의 유일한 후손은 아니라는 것. 내 앞을 스쳐 지나간 그 하얗고 역겨운 야행성 동물도 우리의 먼 후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탑들을 생각하고, 그것이 지하의 환기 시설이 아닐까 하는 내 추론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탑들의 진정한 목적을 추측하기 시작했지요. 나는 이 미래 세계를 완벽하게 균형 잡힌 조직체로 생각했지만, 그 원숭이가 이 체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원숭이는 아름다운 지상인들이 누리고 있는 게으른 평온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물 속에는 무엇이 감추어져 있을까? 나는 우물가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물 속으로 내려가야 돼. 그런데도 우물 속으로 내려가기가 정말로 두려웠습니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아름다운 지상인 두 명이 연애놀이를 하며 양지바른 곳을 가로질러 그늘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던지면서 여자를 뒤쫓아 달려온 것입니다. (P82-83)


영화 타임머신 23.jpg

부유한 사람들은 좋은 교육을 받아서 점점 세련되고 우아해지는 한편, 가난한 사람들의 상스럽고 난폭한 태도와 부자들의 간격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배타적 경향을 갖게 된 부자들은 이미 자신들을 위해 지표면의 상당 부분을 울타리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런던 일대에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의 절반 정도는 침입을 막기 위해 폐쇄되어 있습니다. 이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은, 부자들의 경우 오랫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 고등 교육을 받기 때문이고, 세련된 습관에 대한 유혹과 거기에 필요한 시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계층 간 결혼이 사회 계층을 구분하는 경계를 따라 우리 인류가 쪼개지는 것을 저지하고 있지만, 빈부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면 계층 간 결혼이 촉진하는 계층 간 교류가 점점 뜸해질 겁니다. 그래서 결국 지상에는 쾌적함과 안락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진 자>들이 살고, 지하에는 <못 가진 자>, 즉 자신들의 노동 조건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노동자들이 살게 될 겁니다. 일단 지하에 살게 되면, 노동자들은 굴속의 환기 장치에 대한 임대료를 내야 할 테고, 그 임대료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 겁니다. 그들이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밀린 임대료 때문에 굶어 죽거나 질식해 죽을 겁니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이런 조건에 반항하는 사람은 죽겠지요. 그리고 결국 그 균형 상태는 영구적이니까, 살아남은 지하인들은 지상인들이 자기네 생활 조건에 잘 적응하듯 지하 생활 조건에 적응하여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겁니다. 지상인의 세련된 아름다움과 지하인의 창백한 안색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겨졌습니다. (P85-86)

영화 타임머신 08.jpg

인간의 지성에 대한 꿈이 얼마나 덧없었는가를 생각하자 슬펐습니다. 인간의 지성은 자살한 겁니다. 지성은 안전하고 영속적이고 균형 잡힌 사회를 모토로 삼고, 쾌적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요. 지성은 마침내 여기에 도달하여 희망을 이루었습니다. 한때는 목숨과 재산이 거의 절대적인 안전에 도달했던 게 분명합니다. 부자들은 재산과 안락을 보장받았고, 노동자들은 생존과 일자리를 보장받았지요. 그 완벽한 세계에서는 실업 문제도 없고,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사회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평온이 뒤이어 찾아왔습니다.

지적 융통성은 변화와 위험과 번민에 대한 보상 작용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자연 법칙입니다. 주위 환경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동물은 완전한 기계장치죠. 습관과 본능이 쓸모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연은 지성에 호소하는 법입니다. 변화가 없고 변화할 필요도 없는 곳에는 어떤 지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없이 다양한 필요성과 위험에 직면해야 하는 동물만이 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지상인은 연약한 아름다움 쪽으로 서서히 이동했고, 지하 세계는 단순한 기계적 생산 공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상태가 기계적 완전성에 도달하기에는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바로 절대적인 영속성이었지요. 지하 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든, 시간이 갈수록 식량 공급 체계가 교란된 것은 분명합니다. 지성의 어머니인 <필요>는 몇 천 년 동안 외면당했지만 이제 다시 돌아와서, 우선 지하 세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하 세계는 기계장치와 계속 접촉하고 있었는데, 기계는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습관의 범위를 넘어선 사소한 지능을 여전히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지하 세계는 필연적으로 지상 세계보다 많은 창의력을 유지했을 겁니다. 다른 인간적 특징들은 지상인보다 적었을지 모르지만요. 그런데 그들은 다른 고기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오랜 습관이 금지하고 있던 인육을 먹기 시작한 겁니다. 802701년의 세계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재치가 꾸며 낼 수 있는 가장 잘못된 설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보였고, 그래서 여러분께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P131-132)

영화 타임머신 24.jpg

나는 타임머신에 더욱 단단히 몸을 고정시켰지요.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이에 불그스름한 바윗덩어리가 있더군요. 그런데 바윗덩어리인 줄 알았던 그것이 천천히 내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거대한 게처럼 생긴 동물이었습니다. 저기 탁자만큼 커다란 괴물이 많은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고, 커다란 집게발을 휘두르고, 마부의 채찍 같은 긴 더듬이를 흔들거나 더듬고, 금속 같은 얼굴 양쪽에 툭 튀어나온 눈알을 번득이며 사람을 노려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괴물의 골 진 등짝은 꼴사나운 혹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초록빛을 띤 딱지가 여기저기 얼룩처럼 붙어 있었지요. 녀석이 움직일 때, 복잡한 주둥이에 돋아난 수많은 촉수가 흔들리며 더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악귀 같은 괴물이 내 쪽으로 기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 마치 파리가 뺨에 앉은 것처럼 뺨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손으로 털어 내려 했지만 녀석은 곧 돌아왔고, 거의 동시에 귀 옆에도 또 한 마리가 앉았습니다. 이 녀석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더니, 무슨 실 같은 것이 손에 잡혔습니다. 불쾌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돌아섰더니, 내 손은 바로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괴물의 더듬이를 움켜잡고 있었습니다. 주둥이는 식탐으로 생기에 넘쳤고, 꼴사납게 거대한 집게발은 끈적거리는 점액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더군요. 나는 재빨리 레버를 움직여 이 괴물들과 나 사이에 한 달의 간격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해변에 있었고, 멈추자마자 괴물들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수십 마리가 음산한 어스름 속에서 사방에 널리 퍼진 진초록 잎사귀 사이를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P138-139)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그가 인류의 진보를 매우 암울하게 생각했고, 문명을 쌓는 것은 어리석은 축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이것을 아는 이유는 그가 타임머신을 만들기 오래전에 우리가 이 문제를 토론했기 때문이다. 축적된 문명은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그 축적을 이룩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너져 그들을 파괴할 게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 미래는 여전히 암흑이고 공백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기억으로 몇 군데 불이 켜졌을 뿐, 거대한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내 옆에는 그 기묘한 하얀 꽃 송이 -지금은 갈색으로 시들어 부서지기 쉽지만- 가 있어도 나를 위로해 준다. 그 꽃은 지성과 체력이 사라진 뒤에도 감사하는 마음과 서로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인간의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P152)

영화 타임머신 06.jpg


이전 05화파트릭 모디아노의 <청춘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