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영화 <나르치스오 골드문트> 2020년

by 노용헌

골드문트가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나르치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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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가 말을 이었다. “너 같은 기질의 사람들. 그러니까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정을 지녀서 영혼으로 느낄 줄 아는 몽상가나 시인들, 혹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가보다는 거의 예외없이 더 우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모성의 풍요로움을 타고난 존재들이야. 그들의 삶은 충만해 있고, 사랑의 힘과 체험의 능력을 부여 받은 존재들이지. 그 반면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들은 너같이 사람들을 곧잘 이끌어가고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충만된 삶을 전혀 모르고 메마른 삶을 살게 마련이야. 과일의 단물처럼 넘쳐흐르는 삶의 풍요로움, 사랑의 정원과 예술의 땀은 바로 너희들의 것이지. 너희들이 감각의 세계에 익사할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진공 상태의 대기에서 질식할 위험에 처해 있지. 너는 예술가고 나는 사상가야.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 있는 셈이지. 나에겐 태양이 비치지만 너에겐 달과 별이 비치고, 네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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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보였다. 환하게 빛나는 그녀의 커다란 존재, 입가에는 함박꽃처럼 웃음이 피어오르고, 머리칼은 눈이 부셨다. 어머니였다. 동시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너는 어린 시절을 잊어버렸어.’ 이건 대체 누구의 목소리일까? 귀를 기울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나르치스였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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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골드문트는 얼마 전부터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아해하곤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사랑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허락을 얻어 길게 지속될 행복의 가망도 없었고, 지금까지 익히 그래왔듯이 가볍게 욕망을 충족시킬 가망도 없었다. 영원히 자극만 바도 목말라하지만 결코 해소할 길이 없는 충동을 견뎌내야 하며, 그러자면 항상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곳에 눌러앉아 이 모든 것을, 이 모든 갈등과 혼란스런 감정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자기 집이 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 잠자리가 따뜻한 사람들한테나 어울릴 체험이요, 감정이며 양심의 상태의 아닌가? 이렇게 아늑하고 복잡다단한 생활에서 벗어나 그런 생활을 비웃어주는 것이야말로 자기처럼 집도 없고 아무런 의무도 없는 사람의 권리가 아닌가? 그렇다. 그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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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수수께끼처럼 아름답게, 또 수수께끼처럼 섬뜩하게 그를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이 같은 정적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며, 그 정적의 한가운데에서 그의 심장은 이토록 불안하게 그리고 덧없이 고동칠 것이다. 별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람은 잠잠했지만, 하늘 높이 구름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P213-214)


“아, 마리아 상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얼굴에는 너무나 많은 고뇌가 서려 있었고, 그와 동시에 모든 고뇌는 순연한 행복과 미소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하자 마리아 상은 마치 불길처럼 제 속을 스쳐갔습니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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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인간, 모든 사물이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순식간에 꽃처럼 피어났다가 어느새 시들어 사라지고, 그러고는 그 위로 눈이 내린다. (P278)

“제가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선생님이 유명한 작업장을 가지고 있고 또 여러 도시와 수도원들에서 온갖 영예로운 주문을 받고 있거나 두 명의 조수와 멋지고 풍족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시외에 있는 수도원에 제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인 성모 마리아 상을 만들어놓으신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해 왔으며,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야말로 저에겐 세상에서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의 인물상을, 사도 요한 상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마리아 상만큼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그대로가 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다른 인물상은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정말 마음이 내켜서 만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인물상은 저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으니까요. 아니, 제 마음속에 있는 형상은 아득히 멀리 있는 성스러운 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야겠지만, 지금은 아직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작품을 만들려면 아직도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체험을 쌓아야만 하겠지요. 어쩌면 삼사 년 후면 만들 수 있을 것도 같고, 어쩌면 십 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까지는 손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각상에 니스칠을 하고, 나무를 깎아서 설교 연단을 만들고, 작업실에서 기능공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래서 여타의 모든 기술자들처럼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생생한 삶을 맛보고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고 싶고, 이곳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고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마리아 상처럼 아름답고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되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P280-282)

“여타의 형상이 간직한 신비와 달리 태초의 어머니가 간직한 신비는 이런저런 개별적인 모습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신비는 특별히 충만되거나 빈약한 모습, 투박하거나 세련된 모습, 힘차거나 우아한 모습 따위로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달리 통합될 수 없는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대립물이 이 신비의 형상 속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 신비는 탄생과 죽음, 자비와 공포, 생명과 소멸을 동시에 포용하고 있었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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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생명은 분열과 모순을 통해 풍요로워지고 꽃을 피우는 것이다. 도취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면 이성과 냉철함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뒤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 않다면 관능적 욕망이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성간의 영원한 대립이 없다면 사랑이란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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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라질 존재이고, 변화하는 존재이고, 가능성의 존재지.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함도 완벽한 존재도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잠재적인 것이 실현되고 가능성이 현실로 바뀔 때 우리 인간은 참된 존재에 더 가까이 가는 셈이지. 그것이 곧 자아 실현이라 할 수 있겠지.” (P428)


“그런데 인식에 도달하는 길이 얼마나 다양한지 이제야 알 것 같네. 또 정신의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며 어쩌면 최상의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물론 내가 가야 할 길은 정신의 길이지. 나는 이 길을 계속 고수할 생각이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네는 나와는 상반되는 길을 통해, 그러니까 감각의 길을 통해 웬만한 사상가 못지않게 존재의 비밀을 깊이 파악하고 있네. 아니, 오히려 더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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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관점에서 보면, 이성과 도덕의 기준으로 보면 그 자신의 인생이 더 낫고 올바르며 더 안정되고 정돈되어 있으며 더 모범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인생은 잘 짜인 질서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어김없이 봉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삶이었고 늘 새로이 명료함과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그것은 방랑자나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예술가의 인생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더 나은 삶이었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관점,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어떨까?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단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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