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영화 <테레즈 라캥> 2013년

by 노용헌

영화 <테레즈 라캥>(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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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찬욱이 <테레즈 라캥>이 자신의 영화 <박쥐>의 원작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상황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겪으며 해답을 찾는 게 내 방식”이라며,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 당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떠올렸다면 <박쥐>는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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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는 이 여자의 맞은편에 상점이 하나 있었다. 그 상점의 초록빛 판자들은 사방 틈바구니에서 습기를 풍겼고, 좁고 기다란 나무 간판에는 ‘잡화상’이라는 검은색 글자가 씌어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 창 유리에는 붉은색으로 ‘테레즈 라캥’이라는 여자 이름이 적혀 있고, 상점 좌우로는 푸른 종이를 씌운 깊숙한 진열장이 박혀 있었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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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 년 전 어느 날 라캥 부인이 아직 잡화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오빠 드강 대위가 팔에 안고 왔던 어린 여자아이가 테레즈였다. 드강 대위는 알제리에서 막 도착한 참이었다.

“네 조카야.”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 엄마는 죽었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네가 맡아주면 좋겠는데.”

라캥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애를 받아들고 장밋빛 볼에 키스했다. 드강 대위는 베르농에서 일 주일 동안 머물렀다. 라캥 부인은 자기가 맡은 여자아이에 대해 거의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귀여운 아이가 오랑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아이의 어머니가 대단히 아름다운 알제리 여자라는 걸 막연히 아는 정도였다. 대위는 떠나기 한 시간 전에, 테레즈를 자신의 딸로 확인하고 자기의 성을 따르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출생증명서를 누이 동생에게 맡겼다. 그리고 몇 년 뒤 대위는 아프리카에서 죽었다.

테레즈는 고모의 미적지근한 애정을 받으며 카미유와 같은 침대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강철 같은 건강 체질이었는데도, 마치 허약한 애처럼 사촌오빠와 약을 나누어 먹고 어린 병자가 차지하고 있는 방의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 갇혀 자랐다. (P30)


라캥 부인은 조용하고 자애로운 얼굴로 아들과 조카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둘을 결혼시킬 작정이었다. 그녀에게 아들은 언제나 죽어가는 병자였다. 언젠가 그녀가 죽고, 아들 혼자만 남게 될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그녀는 카미유를 정성껏 돌봐주는 간호사 역할을 테레즈에게 맡기고 싶었다. 조용한 태도로 말없이 헌신하는 조카딸을 바라보면 무한한 신뢰감이 일었다. 그녀는 오래 보아온 조카딸을 아들의 수호신으로 삼고 싶었다.

두 사람 역시 오래 전부터 자신들이 결혼해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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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생 빅토르 가로 돌아오면서 로랑은 혼자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자기가 테레즈의 정부가 될 것인지 스스로 따져보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 여자는 내 정부가 될 수 있지’하고 로랑은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등뒤에서 날 살펴보고 재보면서 내 마음을 괴롭혀....... 늘 떨고 있고 이상한 표정에 말이 없지만 정열에 사로잡힌 얼굴을 하고 있어. 틀림없이 애인이 필요한 거야.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카미유 같은 남편에게는 만족할 수 없는 게 분명해.’ (P61)


테레즈는 울면서 로랑에게 키스하고는 사무치는 증오심을 드러내며 계속 이야기했다.

“난 그들을 해치고 싶진 않아요. 그들이 날 키워주고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해주었으니까..... 그렇지만 난 그들의 친절보단 무관심이 좋았어요. 못 견디게 시원한 공기가 그리웠어요. 아주 어릴 때 나는 먼지 나는 길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구걸을 하면서 집시처럼 살기를 꿈꾸었어요. 내 어머니는 아프리카 어느 족장의 딸이었다고 해요. 난 가끔 어머닐 생각해보고는 내가 피와 본능에 의해서 어머니와 결합되어 있음을 깨달았어요. 어머니와 헤어지지 않고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사막을 건너다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지요. 아, 정말 더러운 청춘을 보냈어요! 카미유가 헐떡거리던 방에서 보낸 기나긴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통스럽고 화가 나요. 불 앞에 꾸부리고 앉아 바보처럼 죽이 끓는 걸 바라보면서 내 사지가 굳어지는 걸 느끼곤 했어요. 그런 데도 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고모는 내가 소릴 치면 화를 냈으니까요. 그 뒤에 나는 센 강변의 작은 집에서 정말 깊은 행복을 맛보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너무도 허약해져서 잘 걷지도 못했어요. 뛰어가려고 하면 곧장 넘어지고 말았죠. 그러다가 나는 산 채로 이 더러운 상점 속에 매장되었던 거예요.”

테레즈는 크게 숨을 쉬고 두 팔로 정부를 꼭 껴안았다.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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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은 한 손으로 카미유의 목을 죄면서 여전히 카미유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다른 한 손으로 카미유를 배에서 들어올렸다. 카미유는 로랑의 힘센 팔 끝에서 마치 어린애처럼 공중에 들려 있었다. 그런데 잠시 로랑이 목을 내놓고 머리를 숙이고 있자 분노와 공포로 미쳐 있던 카미유는 몸을 비틀면서 입을 벌리더니 그 목을 꽉 깨물었다. 살인자가 고통의 고함을 참으면서 카미유를 냅다 강물에 던졌을 때 카미유의 이에는 로랑의 살점이 붙어 있었다.

카미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강물로 떨어졌다. 그는 두세 번 물 위로 떠올랐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외침은 잦아들고 있었다.

로랑은 잠시도 주춤하지 않았다. 그는 상처를 감추려고 외투의 칼라를 세웠다. 그러고는 한 팔로 기절한 테레즈를 안고 발로 한 번 툭 차서 배를 전복시키더니 정부를 껴안은 채 그대로 센 강에 몸을 던졌다. 그는 테레즈를 물 위에 쳐들고 처량한 소리로 사람 살리라고 외쳤다. 좀전에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던 보트들이 소리를 듣고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들은 우선 테레즈를 구해서 뉘어놓고 그 다음에 로랑을 건져냈다. 그런데 로랑은 배에 오르자마자 친구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그는 다시 물에 뛰어들어 엉뚱한 곳에서 카미유를 찾는 척했다. 그러다가 눈물을 흘리고 머리털을 쥐어뜯으면서 다시 돌아왔다. (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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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은 카미유를 바라봤다. 그는 이렇게 흉한 익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 시체는 옹색한데다 여위고 가련해 보였다. 오그라들고 썩은 아주 작은 덩어리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머니가 죽을 먹여 키운, 어리석고 병든, 연봉 천이백 프랑짜리 사내였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성장한 이 가련한 시체는 차디찬 포석 위에서 떨고 있었다.

로랑은 마침내 자기를 바보처럼 꼼짝 못 하게 붙잡아매고 있는 강한 호기심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둑길을 따라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 되풀이하여 중얼거렸다. “저게 내가 한 짓이야. 몰골이 정말 끔찍하군.” 썩어가는 시체에서 나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자기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늙은 미쇼를 찾아가서 시체공시장에서 카미유를 찾아내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수속이 끝나자 익사자를 묻고 사망신고를 했다. 이제 마음을 놓게 된 로랑은 그가 저지른 범죄와 그를 따라다니던 고약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싶었다. (P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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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겁쟁이가 아니야’하고 그는 옷을 다 입고 나서 생각했다. ‘카미유 생각을 하다니 당치도 않지. 그 유령이 내 침대 밑에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그렇지만 이제 매일 밤 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몰라. 아무래도 될수록 빨리 결혼을 해야겠어. 테레즈가 날 껴안고 있으면 카미유 생각은 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내 목에 키스할 텐데. 그러면 내가 느꼈던 고통은 사라질 거야. 흉터를 좀 볼까.’

그는 거울로 다가서서 목을 빼고 들여다보았다. 흉터는 창백한 장밋빛이었다. 로랑은 희생자의 이빨 자국을 보자 다소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P172-173)


“전 로랑을 오빠처럼 좋아해요.” 시어머니가 말을 그쳤을 때 테레즈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그를 남편으로 사랑하도록 노력해보겠어요. 전 어머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어머님께서 저를 조용히 울 게 내버려두실 줄 알았어요. 그러나 어머님 행복에 관한 일이니 제가 눈물을 씻겠어요.”

그녀는 누구보다도 먼저 아들을 잊고 있었던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키스했다. 라캥 부인은 자리에 누우면서, 테레즈보다 강하지 못하고, 이기심 때문에 그녀에게 할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게 한 자신을 꾸짖으면서 괴롭게 흐느껴 울었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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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밤들은 더욱 가혹했다. 두 살인자는 죽은 자에 맞서서 몸을 지키려고 밤이면 함께 있고 싶어했으나, 이상하게도 함께 있으면 더욱 공포에 떨었다. 그들은 몹시 당황했고,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간단한 말이나 단순한 시선을 주고받을 때도 고통과 공포의 가혹한 심경을 느끼곤 했다. 하찮은 대화를 나누거나 조금만 서로 마주보게 되어도 얼굴은 붉어지고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테레즈의 쌀쌀하고 히스테릭한 천성은 로랑의 둔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에 괴상하게 작용했다. 그 전에 서로 정열을 쏟을 때는 그들의 성격 차이는 일종의 균형을 이루었다. 말하자면 서로 보충함으로써 두 사람을 강력하게 결합된 쌍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남자는 피를 주고 여자는 흥분을 주었다. 그리고 서로의 육체를 조절하기 위한 키스를 필요로 하면서 상대방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고장이 생긴 것이다. 테레즈의 지나치게 흥분된 신경은 가라앉았다. 로랑은 단번에 완전한 신경과민증에 빠졌다. 테레즈의 영향을 크게 받은 로랑의 기질은 차츰 심각한 신경병이 있는 소녀 같은 기질이 되었다. 제한된 환경이 계속되면서 어떤 기관들 속에 가끔 생기는 이런 변화를 연구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육체에서 비롯된 이러한 변화는 곧 두뇌와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P225-226)


그러나 얼마 후에는 너무나 피로해서 밤에 침대에 누울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살이 닿게 될까봐서 옷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조금만 몸이 닿아도 고통스러운 충격을 받는 듯했다. 이처럼 이틀 밤을 불안하게 자고 난 뒤, 그들은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러나 서로 떨어진 채 누웠다. 그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했다. 테레즈가 먼저 올라가서 벽에 붙어 안쪽에 누웠고, 로랑은 그녀가 제대로 눕기를 기다린 다음 침대 앞턱에 누웠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거기에 카미유의 시체가 누워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똑같은 이불 속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그들은 침대 가운데에 카미유의 시체가 가로놓여 그들의 살을 얼어붙게 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것은 두 사람을 떼어놓는 추한 장애물이었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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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캥 부인을 위협하고 있던 치명적 증세가 나타났다. 몇 달 전부터 늙은 부인의 사지를 기어오르며 목숨을 노리던 중풍은 갑자기 그녀의 목을 잡고 육체를 결박해놓았다. 어느 날 저녁 신혼부부와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말을 하다가 돌연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목쉰 소리밖엔 낼 수 없었다. 혀가 돌같이 굳어진 것이다. 손과 발도 뻣뻣해졌다. 그녀는 별안간 벙어리가 되고 전신이 마비되었다.

테레즈와 로랑은 삽시간에 부인을 비틀어놓은 이 벼락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뻣뻣해진 채 애걸하는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들은 부인에게 왜 그러느냐고 연거푸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말은 하지 못한 채 몹시 괴로운 듯이 그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앞에 있는 사람이 하나의 시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반쯤 살아 있는 시체였다. (P265-266)


두 내외가 라캥 부인 앞에서 입을 열고 고백을 하게 된 것은 오직 공포의 발작 때문이었다. 그들은 둘 다 천성적으로 잔인하지는 않았다. 만약 말을 하지 않고도 그 발작을 견딜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인정상으로도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 목요일 그들은 이상스럽게 불안했다. 그날 아침 테레즈는 로랑에게 저녁 모임이 있는 동안 시어머니를 식당에 그대로 두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녀가 자칫하면 사람들이 눈치를 채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로랑은 대답했다. “저 노파는 새끼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어. 어떻게 지껄일 수 있다는 거야?”

“아마 무슨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하고 테레즈는 대답했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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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미쇼가 큰 목소리로 읽었다.

“테레즈와 로랑이 ....... 했다.”

그러자 올리비에가 물었다.

“그들이 무얼 했습니까? 당신의 소중한 아이들이?”

미칠 듯한 공포에 사로잡힌 살인자들은 하마터면 큰 소리로 문장의 끝을 이을 뻔했다. 그들은 떨리는 눈으로 복수심에 찬 부인의 손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그 손은 경련을 일으키더니 식탁 위에 납작 퍼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생명 없는 살덩어리인 양 불구자의 무릎을 따라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비 증세가 다시 와서 간신히 그들의 처벌은 유예되었다. (P284-285)


두 살인자는 서로에게 애원하는 시선을 던졌다. 상대방이 자신들의 범죄를 고백하리라 짐작하여, 서로 입을 열기만 하면 끔찍한 이야기가 튀어나올까봐 공포에 싸인 채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쟁 같은 상태는 오래 계속될 수 없었다.

그래서 테레즈와 로랑은 제각기 새로운 범죄를 통해 첫 번째 범죄의 속박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그마한 평정이나마 맛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들은 동시에 하게 되었던 것이다. 헤어져야 한다는 긴박한 필요성은 그 둘 모두 느꼈다. 서로가 영원히 헤어지고 싶었다. 그들이 떠올린 살인은 카미유의 살인에 의해서 빚어진 자연스럽고 숙명적인 생각이었다. 그들은 조금의 고민도 해보지 않고 그 계획을 유일한 구원의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로랑은 테레즈가 귀찮았다. 그녀가 한마디만 말해도 정신이 돌 것 같고,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테레즈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테레즈 역시 똑같은 이유로 로랑을 죽일 작정이었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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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이상한 감각에 두 내외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테레즈는 로랑의 손에서 작은 질그릇 병을 보았다. 그리고 로랑은 테레즈의 치마 사이에서 시퍼런 칼날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이런 모습으로 남편은 식탁 곁에서, 그리고 아내는 찬장 앞에 서서 말없이 냉랭하게 잠시 서로 노려보았다. 그들은 알아차렸다. 둘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발견하고 얼어붙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당황한 얼굴에서 은밀한 계획을 읽으면서 서로 가엾게 여기고 서로 무서워했다.

결말이 가까워진 것을 느낀 라캥 부인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테레즈와 로랑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발작에 그들의 마음은 찢어져서 마치 어린애들처럼 서로 상대방의 품 안으로 덤벼들었다. 그러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엇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이 지금까지 겪어왔고, 또 비겁함으로 인해 살아남게 되면 또다시 겪어야 할 심연 속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과거를 회상하자, 끝없고 거대한 휴식과 망각을 바랄 만큼 지쳐, 스스로에 대해 구역질을 느꼈다. 그리고 칼과 독이 든 컵 앞에서 마지막 시선, 감사의 시선을 교환했다. 테레즈는 그 컵을 들어 반쯤 마시고 나머지를 로랑에게 내밀었다. 로랑은 단숨에 마셨다. 그것은 하나의 번개였다. 그들은 벼락을 맞은 듯이 서로 포개져 쓰러지고 마침내는 죽음 속에서 하나의 위안을 찾았다. 젊은 여인의 입은 남편의 목에 있는 흉터에 닿았다. 그것은 카미유가 이로 물어뜯어 생긴 상처였다.

뒤틀려 엎어진 두 시체는 등피를 씌운 램프의 노란빛을 받으며 밤새도록 식당의 마루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오경까지 약 열두 시간 동안, 뻣뻣한 몸으로 말없이 앉아서 라캥 부인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듯 발밑의 두 시체에 무겁고 매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P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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