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마틸다> 2018년
<마틸다>(1996), <마틸다>(2013), <마틸다>(1978),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2022)
2019년 제36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출품작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마틸다는 이레네 이보라, 에두 푸에르타스 감독 연출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자기 아이 자랑이 끝도 없는 학부모님들한테서 이런 주책없는 소리를 들어 주느라 곤욕을 치르지만, 보통 학기말 통지표를 쓸 때가 되면 선생님들은 냉정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 만약 내가 담임 선생님이라면, 이런 주책스런 부모님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자녀들을 위해 이렇게 쓸 것이다.
‘귀하의 자녀 막시밀리안은 유감스럽게도 낙제생입니다. 저는 막시밀리안이 학교를 졸업한 후 이 아이가 맡아서 할 수 있는 가족 사업을 차릴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막시밀리안은 그 어디서도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P10)
이따금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도 만나게 되는데, 그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주책바가지 숭배자들보다 훨씬 더 나쁜 경우라 할 수 있다. 웜우드 씨 부부가 바로 이런 부모님에 속한다. 웜우드 씨 부부에게는 마이클이라는 아들과 마틸다라는 딸이 있는데, 마틸다를 이마에 난 부스럼딱지보다 못하게 여기고 있었다. 알다시피 부스럼딱지는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건드리지 말고 참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웜우드 씨 부부는 하나뿐인 어린 딸을 참고 보지 못해서 당장 떼버리기를, 저 멀리 다른 지방으로 보내 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한 자기 아이를 마치 부스럼딱지나 엄지발가락의 때쯤으로 여기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만약 그 아이가 감수성이 예민하고 머리가 총명한, 비범한 아이라고 했을 때는 더더욱 잘못된 일이다. 마틸다는 이런 예민함과 총명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너무 영리해서 무엇이든 아주 빨리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둔한 부모님일지라도 이러한 아이의 능력을 단박에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웜우드 씨 부부는 둘 다 어리석기 그지없어서, 자신들의 시시해 빠진 삶에 정신을 온통 빼앗긴 나머지 자기 딸이 비범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웜우드 씨 부부는 마틸다가 부러진 다리로 집을 기어다닌다 해도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나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P12-13)
펠프스 여사의 세심하고도 자애로운 특별 배려 속에서 마틸다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었다.
‘니콜라스 니클비’ 찰스 디킨스 지음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지음
‘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 지음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테스’ 토머스 하디 지음
‘지상으로 내려오다’ 메리 웨브 지음
‘킴’ 러드야드 키플링 지음
‘투명 인간’ H. G. 웰스 지음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침묵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지음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백 지음
‘좋은 친구들’ J. B. 프리스틀리 지음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동물 농장’ 조지 오웰 지음
이것은 만만찮은 작품 목록이었기 때문에 펠프스 여사는 매우 놀랐고 흥분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사실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넋이 나가 자제력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이 작은 아이가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날리 법석을 떨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났을 테지만, 펠프스 여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펠프스 여사는 자신의 본분을 알고 본분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의 자녀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펠프스 여사에게 말했다.
“헤밍웨이는 제가 이해 못 하는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있어요. 특히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요. 그래도 전 헤밍웨이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요. 헤밍웨이가 이야기를 쓰는 방식은 제가 꼭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서 그 광경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요.”
펠프스 여사가 말했다.
“훌륭한 작가는 독자를 언제나 그렇게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그냥 그 말들이 네 온몸을 촉촉하게 적시게 내버려 두는 거야. 음악처럼 말이다.”
“그럴게요, 그렇게 하겠어요.” (P22-24)
“텔레비전 보는 게 뭐가 어째서?”
갑자기 웜우드 씨의 목소리가 부드럽지만 위험스럽게 변했다. 마틸다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가 매우 어려웠다. 마틸다는 책을 읽으면서 엄마 아빠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열었다. 만약 엄마 아빠가 디킨스나 키플링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다면, 인생에는 사람을 속이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텐데. (P37)
“얘, 코 좀 후비지 마!”
그래도 걘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완전히 바보 멍청이 같았지요.
웜우드 부인이 말했다.
“고것 잘됐다. 다시는 손가락을 콧구멍 속에 집어넣지 않을 테니까. 그건 정말 지저분한 버릇이야. 만약 모든 애들이 손가락에 초강력 접착제를 바른다면 그런 버릇은 곧 고쳐질 텐데.”
그러자 마틸다가 말했다.
“엄마, 어른들도 그러던데요. 전 엄마가 어제 부엌에서 그러는 걸 봤어요.”
웜우드 부인이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됐어, 그만해.” (P45)
마틸다가 말했다.
“아빠는 가끔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엄마?”
그러자 웜우드 부인은 전화번호를 누르면서 대꾸했다.
“남자들이란 항상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 존재들이란다. 너도 좀더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P85)
하니 선생님은 소리를 지르다시피하며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마틸다는 천재입니다.”
이 말이 나온 순간, 교장 선생님의 얼굴은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몸 전체가 마치 한 마리 식용 개구리처럼 부풀어올랐다.
교장 선생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천재라고?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바보 같은 말을 지껄이는 거야?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 내가 그놈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있는데, 그 아인 왈패야!”
“마틸다의 아버님이 틀렸어요, 교장 선생님.” (P113)
이 문제를 단순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냥 못 본 척 지나간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부모님이 자기 딸의 탁월한 재능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웜우드 씨는 중고차 가게로 성공한 사업가이니, 교양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부모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아이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 법이다. 정확히 그 반대였으면 반대였지. 자기 아이에 대해 자부심에 가득 찬 부모님들에게 사실 그들의 아이가 멍청이라는 것을 납득시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때도 있다. 하니 선생님은 웜우드 씨 부부에게 마틸다가 대단히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한 그 부부를 자제시키는 일일 것이다.
하니 선생님의 마음 속에는 희망이라는 나무가 싹을 틔우고 더 넓게 가지가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방과 후에 자신이 마틸다를 개인지도할 수 있도록 마틸다의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해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같이 총명한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선생이라는 직업적인 본능을 크게 자극하는 일이었다. (P119)
만약 여러분이 마틸다와 자연스럽게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이 아이가 보통 다섯 살짜리 꼬마와 별다른 점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틸다의 장점이다. 마틸다는 자신의 비범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며 결코 뻐기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아주 참하고 조용한 소녀로군.’하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마틸다와 문학이나 수학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없다면, 여러분은 결코 마틸다의 지적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마틸다는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 모두가 마틸다를 좋아했다. 아이들은 물론 마틸다가 ‘영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131)
교장 선생님이 말하기 시작했다.
“난 작은 인간들이 싫어. 작은 인간들은 자고로 눈에 띄지 말아야 해. 머리핀이나 단추처럼 눈에 안 보이게 상자 안에 가두어야 돼. 난 아무리 해도 왜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내 생각에 어린것들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걸 거야.”
그러자 앞줄에 앉아 있는 지나치게 용감한 또 다른 소년이 거리낌없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도 분명히 한때는 작은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교장 선생님?”
“난 절대로 작은 인간이 아니었다. 난 평생 동안 항상 큰 사람이었어. 그리고 난 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수 없는지 이해가 안 돼.”
“하지만 틀림없이 태어날 때는 아기였을 거 아녜요.” (P196-197)
교장 선생님은 교탁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상태로 물컵에서 꿈틀대고 있는 도롱뇽을 노려보았다. 마틸다도 마찬가지로 눈을 물컵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자 아주 천천히 매우 이상하고 특별한 느낌이 마틸다에게 스멀스멀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두 눈에 모여 있었다. 전기 같은 어떤 힘이 마틸다의 눈에서 일고 있었다. 거대한 힘이 눈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느낌, 마틸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도 있었다. 그 느낌은 번개의 번적임 같기도 했다. 자기의 눈에서 번개의 작은 파동이 번쩍거리며 나오는 것 같았다. 마틸다의 눈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주 놀라운 느낌이었다. 마틸다는 두 눈을 계속해서 물컵에 고정시켰다. 그러자 그 힘은 점점 더 커지면서 마치 보이지 않는 수백만 개의 손들이 눈에서 튀어나와 마틸다가 눈여겨 보고 있는 물컵 쪽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틸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넘어뜨려! 넘어뜨려!”
그 순간 물컵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P214-215)
마틸다는 교실을 우르르 빠져나가는 대열에 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난 후에도 생각에 잠겨 자기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틸다는 물컵과 함께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비밀을 마음속에 꼭꼭 감추고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틸다가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기이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롭고 이해심 많은 어른이었다.
엄마나 아빠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만약 엄마 아빠가 마틸다의 이야기를 믿는다 해도 그날 오후 교실에서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깜짝 놀랄 사건이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P221)
진짜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움직일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어요. 물컵을 엎지르거나 그런 작은 것들을 움직이는 것말고도 책상과 의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까지도 밀어 넘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자나 책상보다 더 큰 것들도요. 저는 단지 눈을 강하게 만들 시간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그 어떤 것이든, 이만큼 큰 것도 제가 노려보기만 하면 밀 수 있어요. 저는 아주 열심히 노려보아야 해요. 아주아주 열심히요. 그러면 제 눈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요. 제 눈은 마치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지지만 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요. 그리고요, 선생님......
하니 선생님이 말했다.
“진정해라, 얘야, 진정해. 처음 단계에서 너무 많이 확대시키지 말자꾸나.”
“하지만 흥미롭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선생님?”
“그래, 아주 흥미롭다. 그건 흥미로운 것 이상이야. 하지만 마틸다야, 우리는 지금부터 좀더 조심스러워야 한단다.”
“왜 그래야 되나요, 선생님?”
“왜냐하면 우리는 신비한 힘을 상대해야 하니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신비한 힘 말이야. 나는 그 힘이 나쁜 마력이라고는 보지 않아. 하지만 어쨌든 조심해야 해.”
이 말은 지혜로운 말이었다. 하지만 마틸다는 모든 것을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흥분되어 있었다. 마틸다는 여전히 폴짝거리면서 말했다.
“저는 왜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설명해 주마. 우리는 미지의 것을 다루고 있는 거야. 이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 그런 것을 ‘불가사의’라고 한단다. 그러니까 그 신비한 힘은 불가사의한 것이지.”
“그럼 제가 불가사의한 사람인가요?” (P231-232)
“지금까지 나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 곤혹스러움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지. 나는 용기가 없었어. 내 용기는 어렸을 때 싹이 몽땅 짓밟혀 버렸거든. 하지만 나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필사적인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나는 네가 단지 코흘리개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네 안 어딘가에는 마력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단다. 내 눈으로 확인해 왔거든.”
마틸다는 정신이 번쩍 났다. 자신이 듣고 있는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P253)
마틸다는 공중으로 껑충 뛰어오르면서 소리쳤다.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요?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의 이모셨단 말예요? 그분이 선생님을 키우셨어요?”
“응.”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말씀 안 하셔도 알겠어요! 예전에 한 여자 아이의 닿은 머리채를 잡고 운동장 울타리 너머로 던지는 것을 봤어요!” (P267)
마틸다가 숨을 헐떡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 전 함께 가고 싶지 않아요! 하니 선생님과 여기서 살고 싶어요. 선생님 말씀이 엄마 아빠가 허락만 해 주면 그럴 수 있대요! 어서 ‘네’ 하세요. 어서요! 아빠, ‘네’ 하세요! 엄마도 ‘네’ 하세요!”
웜우드 씨가 고개를 돌려 하니 선생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접때 한 번 날 보러 온 그 여선생 아니쇼?” (P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