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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22. 2024

존 그리샴의 <레인 메이커>

영화 <레인 메이커>  1998년

1997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맷 데이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유언장은 거의 2년 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그 변호사는 언제 죽었죠?”

내 목소리는 이제 아주 달콤해졌다. 우리는 아직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코가 거의 맞닿을 정도였다. 

“작년이야, 암이었지.”

“그럼, 지금은 변호사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나한테 변호사가 있으면 지금 젊은이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겠어? 안 그래요, 루디? 유언장에는 복잡할 게 없어. 그러니 젊은이라고 해서 처리하지 못할 것도 없을 거야.”

탐욕이란 웃기는 것이다. 나는 7월 1일부터 브로드낵스 & 스피어에서 일을 하기로 되어 있다. 브로드낵스 & 스피어는 열다섯 명의 변호사가 고용되어 있는 법률회사로 사람을 쥐어짜는 숨 막히는 곳이며, 보험회사를 대리해 주는 일이 주업무다. 내가 원하던 일자리는 아니지만 졸업이 가까워 오는데도 이 회사 외에는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데가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브로드낵스 & 스피어에서 몇 년 동안 요령을 익힌 다음 더 나은 곳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출근 첫날, 적어도 2천만 달러를 움켜쥔 의뢰인을 데리고 간다면?’

회사는 크게 감동할 것이고, 나는 즉시 행운을 몰고 오는 레인메이커(기우제에서 주문을 외는 북미 인디언의 주술사에서 유래된 말로, 여기서는 소송을 통해 거액을 받아내는 변호사를 뜻함)가 될 것이다. 황금 손을 가진 빛나는 젊은 스타로 만인의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 될 것이다.               (P22)     


“그런데 우리한테는 변호사가 필요해요.”

도트는 종이를 집어들고 고무줄을 벗겨내며 말했다.

“문제가 뭔데요?”

“우린 보험회사로부터 완전히 엿을 먹고 있어요.”

“어떤 보험인데요?”

도트는 종이 뭉치를 내 쪽으로 던지더니 손을 털었다.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넘겼다는 듯이, 종이 뭉치 맨 위에는 때가 묻고 주름이 지고 닳아빠진 보험증권이 놓여 있었다. 도트는 다시 연기를 뿜어냈다. 그 연기에 가려 잠시 바디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의료 보험이에요. 그레이트 베너핏 보험회사 거죠. 5년 전,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 열여덟 살이었을 때 가입했어요. 그런데 우리 애들 중 하나가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이 사기꾼들이 치료비를 대지 않아요.”

“그레이트 베너핏이요?”

“그래요.”

“그런 회사 이름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요.”

나는 보험증권의 약관을 훑어보며, 마치 이런 소송은 많이 다루어 개인적으로 모든 보험회사를 훤히 꿰고 있다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두 자녀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도니 레이 블랙과 로니 레이 블랙, 그런데 두 사람의 생일이 똑같았다.            (P34)     


“그래요. 보험료를 한 번도 빼먹은 적 없이 납부했고, 도니 레이가 아프기 전에는 그 염병할 걸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나는 학생 신분이고, 아무 보험에도 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나에게는 내 생명이나 건강, 혹은 자동차 따위를 책임져 줄 보험증권이 없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낡아빠진 내 조그만 도요타의 왼쪽 뒷바퀴를 갈아 끼울 경제적 여유도 현재로서는 없었다. 

“도니 레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셨나요?”

도트는 담배를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급성 백혈병이에요. 여덟 달 전에 걸렸지. 의사들은 1년밖엔 못 산다고 했지만, 그앤 그 정도도 살지 못할 거야.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없으니까. 어쩌면 지금은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죠.”

“이식이라고요?”

나는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백혈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잘 모릅니다.”

도트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고 고통스럽게 빨아들였다. 담배 연기를 충분히 내뱉고 난 다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두 아들은 일란성 쌍둥이예요. 그래서 론, 그애가 로니 레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해서 우린 론이라고 불러요, 론은 도니 레이의 골수 이식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의사들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식 비용이 15만 달러나 든다는 거예요. 알다시피, 우리한텐 그 돈이 없어요. 하지만 보험회사는 그 돈을 지불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당연한 도리죠. 여기 보험증권에 그렇게 하겠다고 적혀 있으니까. 그런데 그 죽일 놈들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아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P35-36)     


나는 서류 더미에서 편지를 하나 꺼내 읽었다. 클리블랜드의 보험계 리인이 보낸 것으로, 내가 본 첫 편지를 보낸 지 몇 달 뒤에 답장한 것이었다. 그 편지에는 도니의 백혈병이 보험 계약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도니가 백혈병을 앓은 것이 1년도 안 되었다면, 도니는 그레이트 베너핏과 보험계약을 맺은 지 4년 뒤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셈이었다. 

“여기에는 백혈병이 보험 계약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적혀 있는데요.”

“그놈들은 온갖 핑계를 다 대며 돈을 안 주려고 해요. 루디, 거기 있는 서류들을 꼼꼼하게 읽어봐요. 예외, 면제, 보험 계약 이전의 상태에 대해 적어놓은 그 작은 활자들을 말이에요.”         (P37)   

  

“그레이트 베너핏 말이야. 어젯밤에 서류를 다 읽었네. 전형적인 차변(借邊) 보험 신용 사기야.” 

맥스는 구석에서 신축성 있는 파일을 꺼내더니, 그걸 들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맥스가 말을 이었다. 

“차변 보험이 뭔지는 아나?”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맥스가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올까 봐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흑인들은 그걸 ‘거리 보험’이라고 부르지.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방문 판매로 팔아먹는 싸구려 보험증권들이야. 보험증권을 파는 대리인들은 매주 들러서 보험금을 받아가지. 그러면서 보험에 든 사람이 보관하는 지불 장부에 차변 기입을 해. 그들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먹이로 삼지. 보험증권에 대한 청구가 들어올 때는, 회사는 보통 거부를 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말이야. 거부할 이유를 꾸며내는 데는 아주 창의적이지.”

“소송은 당하지 않나요?”

“자주 당하진 않아. 보통 이런 건은 서른 건 중 하나 정도만 법정으로 간다네. 물론 회사는 이걸 알고 있어. 이미 하나의 요인으로 계산에 넣고 있지. 그런 회사들은 하층 계급을 쫓아다닌다네. 왜 그런지 아나? 하층 계급 사람들은 변호사나 법 체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지.”          (P84)     


변호사 시험은 7월에 있다. 거의 모든 법률회사가 졸업 직후에 그들이 뽑은 신입 사원에게 보수를 주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시킨다. 그리하여 신입 사원들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땅을 박차고 달리게 하는 것이다. 

마들렌은 책상 위에 메모들을 내려놓았다. 

“계속 알아볼게, 알았지? 혹시 뭐가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난 어떻게 하죠?”

“문을 두드려봐. 이 도시에는 3천 명의 변호사가 있고, 그들 대부분이 단독 변호사거나 두세 명이 회사를 만들어서 일하고 있어. 그 변호사들은 여기 취업 안내소와 거래를 안 하니까 우리도 그들을 몰라. 나가서 찾아봐. 나 같으면 둘, 셋, 혹은 넷이 함께 일하는 작은 집단에서 시작을 해보겠구나. 그들을 설득해서 일자리를 달라고 해. 그들의 ‘물고기 파일’을 처리해 주겠다고 하고, 그들 대신 수금도 해주고......”

“물고기 파일이오?”

“그래, 모든 변호사는 물고기 파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지. 물고기 밥으로 주어도 아깝지 않을 파일이라는 뜻일 거야. 변호사들은 그걸 구석에 처박아두는데, 오래될수록 더 심한 악취가 나. 변호사들이 절대 맡고 싶어하지 않는 사건들이지.”

이런 게 법대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P94)


나는 프린스에게 내가 처한 곤경에 대해 말했고,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이야기했다. 그게 다 수업료와 신용 카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린스는 나한테 임금을 현금으로 줌으로써 정부를 엿먹인다는 걸 마음에 들어했다. 프린스는 ‘무세금에 현금 통용주의’를 주장하는 경제학의 신봉자였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돈을 꿔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내가 곧 변호사가 되어 큰돈을 벌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차마 그에게 한동안은 그와 함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프린스에게 내 부채가 얼마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텍사코는 612.88달러로 나를 고소했다. 법정 비용과 변호사비를 포함한 액수였다. 내 집주인은 809달러로 날 고소했다. 이 역시 법정 비용과 수임료를 포함한 액수였다. 그러나 진짜 늑대들은 다른 데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지저분한 편지들을 내게 마구 날려보냈고, 곧 변호사도 보내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내겐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가 있다. 이곳 멤피스에 있는 두 은행에서 발행한 것이다. 작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사이, 몇 달 후면 좋은 일자리를 갖게 될 거라고 자신하던 그 축복받은 짧은 기간 동안, 그리고 세러와 헛된 사랑에 빠져 있었을 때, 나는 새러를 위해 명절에 줄 매력적인 선물 두어 가지를 사러 돌아다녔다.            (P127)     

맥스 뢰베르크가 던져준 자료들을 헤쳐나가며, 나는 부유한 보험회사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골탕 먹인 것들에 계속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한 푼이라도 그냥 눈감아 주는 법이 없었고, 아무리 더러운 짓이라도 거리낌이 없었다. 동시에, 보험증권 보유자들이 소송을 거는 일이 얼마나 드문가를 알고는 깜짝 놀랐다. 대부분은 변호사와 상의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보험에 들었다는 생각만 할 뿐, 어려운 문자로 줄줄이 달아놓은 추가 항목과 부록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보험료 지급 거부 가운데 변호사의 손으로 넘겨진 것은 5퍼센트도 안 된다고 했다. 보험에 가입한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그에 따라 보험회사를 두려워하듯 변호사도 두려워했다. 법정에 들어가 판사와 배심원 앞에서 증언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은 쉽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배리 랭커스터와 나는 이틀에 걸쳐 블랙 사건을 치밀하게 검토했다.            (P183)     


“배리 랭커스터가 댁들한테 내가 불을 지를 만한 용의자라고 말하던가요?”

“우린 방화 사건도 다루오. 강력 범죄도 다루고.”

“몇 명이나 죽었습니까?”

“경비원만 죽었소. 새벽 3시에 첫 신고 전화가 왔소. 건물에 사람이 없을 때였지. 경비원은 지붕이 내려앉을 때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오.”

나는 조너선 레이크도 경비원과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멋진 양탄자가 깔려 있던 아름다운 사무실을 생각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군요.”

나는 내가 용의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광분했다. 

“랭커스터는 당신이 어젯밤 사무실에 갔을 때 아주 화가 나 있었다고 했소.”

“맞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불을 지를 만큼은 아니었어요. 댁들은 지금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랭커스터는 당신이 해고를 당해서 레이크를 만나고 싶어했다고 했소,”

“맞아요. 맞습니다. 그 말은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내가 그의 사무실에 방화를 할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입증해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좀더 현실적인 얘기를 합시다.”

“방화와 함께 저지른 살인은 사형언도까지 받을 수 있소.”

“그렇고말고요! 나도 댁들 편이오. 가서 살인자를 찾아내어, 그놈의 대가리를 지져버려요. 다만 날 끼워넣을 생각은 하지 말고.”                 (P214-215)     

‘나는 살아남을 수 있어! 고생도 하겠지. 그러나 시내 높은 건물에 있는 애들보다 훨씬 다채로운 경험을 쌓게 될 거야. 이런 초라한 회사에서 근무를 한닥 비웃겠지? 그딴 건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이겨낼 수 있어. 나는 강인해질 거야. 브로드낵스 & 스피어에 취직이 되었을 때, 그리고 레이크 회사에 취직이 되었을 때, 나는 건방진 마음을 갖기도 했어. 그러니 이러한 굴욕을 당하는 것은 그 대가라고 해두자고.’            (P238)     


“봤지, 루디. 법대에서는 진짜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저 이론과 전문 직업으로서의 법률 업무라는 고상한 생각들뿐이지. 마치 변호사 일이라는 게 신사들의 일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야. 윤리의 지배를 받는 명예로운 소명이라는 식으로 말이야.” 

“윤리가 뭐가 문제죠?”

“아, 잘못된 거야 없지. 그러니까 나도 변호사란 모름지기 자기 의뢰인을 위해 싸우고, 돈을 훔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어. 알잖아, 기본적인 것들.”

우리는 법대에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을 탐구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제기랄,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 덱은 윤리 규범을 커다란 세 조항으로 축소시켰다. 의뢰인을 위해 싸워라, 훔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마라.            (P257)     


나는 돈벌이가 좋은 높은 수준의 성공을 지향하고 있었고, 크레이그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언제나 보수가 정해져 있는 교사라는 직업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크레이그는 석사 학위를 받고 학교 선생과 결혼해서 지금 중학교에서 역사와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부인은 임신을 했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골에 몇 에이커의 땅과 정원이 딸린 멋진 집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들 부부의 수입은 1년에 5만 달러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돈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늘 하고 싶어하던 일을 할 뿐이다. 반면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크레이그는 아이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고,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그려볼 수 있다. 반면 나는 비참하게도 별로 의심 많지 않은 의뢰인을 하나 잡으면 좋겠다는 사기꾼 같은 희망을 가지고 내일도 출근을 할 것이다. 만일 변호사들이 학교 선생과 같은 보수를 받는다면 법대 열 개 가운데 아홉 개는 당장 문을 닫게 될 것이다.                (P263)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강에서 큰 사고가 났어.”

덱이 엄숙하게 말했다. 마치 그 사건이 몹시 가슴 아픈 일이라는 듯이. 사무실에서 늘 맞이하는 하루와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난밤 11시경이야. 기름 바지선이 예인선에서 풀려나 하류로 떠내려가다가, 고등학생들이 댄스 파티를 열고 있던 외륜선과 부딪혔어. 배에는 애들이 300명쯤 타고 있었을 거야. 외륜선은 머드 섬 근처까지 떠내려갔어. 둑 바로 앞까지.”

“끔찍하군요, 덱. 하지만 대체 우리가 뭘 한다는 거예요?”

“확인해 보는 거지. 브루저가 그 소식을 듣고는 나한테 전화를 했어. 그래서 우리가 가는 거야. 엄청난 참사야. 멤피스 최대의 참사일 거야.”

“그게 뭐 자랑거리라도 됩니까?”

“넌 이해 못해. 브루저는 이걸 놓치지 않을 거야.”

“좋아요. 그럼 브루저더러 다이빙을 해서 시체들을 건지라고 하죠.”

“이건 금광이 될 수도 있어.”                        (P334-335) 

    

그곳에서는 또 한 구의 주검이 물에서 인양되고 있었다. 

이어서 비극적이지는 않지만 메스꺼운 의식이 천천히 진행되었다. 엄숙한 얼굴을 한 남자들이 슬퍼하는 가족에게로 살며시 다가갔다. 심지어 그들 틈으로 끼어들려고까지 했다. 그들은 작고 하얀 명함을 들고 사망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주려고 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주의 깊게 경계하며 가족에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사건을 맡기 위해서라면 살인이라도 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서 세 번째 사망자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기 훨씬 전부터 덱은 이미 모든 것을 한눈에 꿰고 있었다. 덱은 가족들과 더 가까운 자리를 고갯짓으로 가리켜 보였지만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덱은 슬며시 군중들 사이로 끼어들더니 어둠 속으로, 그의 금광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강 쪽에서 등을 돌리고는 멤피스 시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P336-337)     


“난 그레이트 베너핏에게, 공판을 완전히 마무리하기까지 이 사건을 변호하는 데 드는 비용은 5만에서 7만 5천 달러 사이라고 말했소.” 

드러먼드는 내가 그 숫자가 대단하다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드러먼드의 넥타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레이트 베너핏은 나한테, 당신과 당신 의뢰인들에게 합의금으로 7만 5천 달러를 제안할 권한을 주었소.”

나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앞에서 여남은 가지의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오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2만 5천 달러라는 숫자였다. 내 수임료! 마치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룸메이트 하비 헤일이 이 사건을 기각할 거라면 왜 나한테 이런 돈을 제안하는 것일까?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좋은 경찰관과 나쁜 경찰관 수법. 헤일은 내게 겁을 주고, 드리먼드는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이 두 사람이 여기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2인조 경기를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P366)     

선서 증언 바로 전날, 도트는 도니 레이가 일어나지 못하여 집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도니 레이는 선서 증언 걱정을 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몸이 약해진 것이었다. 만일 도니 레이가 집에서 나올 수 없다면 선서 증언을 할 데는 한곳밖에 없다. 나는 드러먼드에게 전화를 했다. 드러먼드는 너무도 당연하게 선서 증언 장소를 내 사무실에서 내 의뢰인의 집으로 옮기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규칙은 규칙이라고 하면서, 나더러 선서 증언을 연기하고 모두에게 다시 통지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어 매우 안됐다고 했다. 물론 드러먼드는 장례식을 치를 때까지 선서 증언을 미루고 싶을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키플러 판사에게 전화를 했고 몇 분 뒤 키플러 판사는 드러먼드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몇 마디 빠른 말이 오간 뒤 선서 증언은 도트와 바디 블랙의 집에서 하기로 되었다. 묘하게도 키플러는 선서 증언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이것은 극히 특별한 일이었지만 키플러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도니 레이는 몹시 시들어 있기 때문에 이번이 그의 선서 증언을 받을 유일한 기회가 될 수도 있었고, 그러므로 시간이 핵심이었다.             (P425-426)     


“통증은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 내가 주사 두 대를 놔줬어.”

“내가 잠시 앉아 있겠습니다.”

나는 작은 소리로 말하며 접는 의자에 앉았다. 도트는 방을 떠났다. 도트가 복도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도니 레이는 죽을지도 몰랐다. 나는 도니 레이의 가슴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가슴이 약간이라도 오르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방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나는 문 옆 탁자 위의 작은 램프를 켰다. 도니 레이가 약간 몸을 움직이고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래,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부유한 의사들과 번쩍이는 병원과 예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의료 장비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로 가득한 사회에서, 의학적 지원도 없이 이렇게 시들다 죽어가도록 내버려두는구나.’

잔인한 일이었다.                  (P476)     

맥스는 갑자기 말을 끊더니 탁자 위의 뭔가로 손을 뻗었다. 맥스는 그것을 나에게 미끄러뜨렸다. 

“뭡니까?”

“그레이트 베너핏의 새 보험증권이야. 지난달 내 제자 한 명한테 발행된 것이지. 내가 그 돈을 냈고, 다음 달에 취소할걸세. 난 그저 거기 적힌 말들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 이제 뭐가 배제되었는가 보게. 굵은 활자로 말이야.”

“골수 이식이로군요.”

“골수 이식을 포함한 모든 이식이지. 그걸 가지고 있다가 재판 때 사용하게. 자네는 최고 경영자에게 왜 블랙 가족이 소송을 제기한 몇 달 뒤에 보험증권이 바뀌었는지를 물어볼 수 있을걸세. 왜 그들이 이제 골수 이식을 딱 집어 배제하는가를 말일세. 그리고 그것이 블랙의 보험 증권에서 배제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어째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는지 물어볼 수 있을걸세. 좋은 자료지. 어쩌면 나도 가서 그 재판을 구경하게 될지 모르겠는걸.”            (P564)     


“잘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조금 전에 증인 그레이트 베너핏에서 이 일은 완전히 증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증언한 것 같은데요.” 

러프킨은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말했다. 

“좋습니다. 1,2 항은 넘어가고, 3항을 읽어주십시오.”

제3항은 청구 처리 담당자에게 모든 보험금 청구를 접수 3일 내에 즉시 거부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예외도 없었다. 모든 보험금 청구가 다 거부 대상이었다. 제4항은 그후에 몇 가지 보험금 청구를 검토하되, 보험금 청구가 비싸지 않고 아주 타당하여 지불할 만한 경우로 제안하고 있었다. 제5항은 처리 담당자에게 5천 달러가 넘는 모든 청구는 가입 부서로 보내라고 말하고 있으며, 물론 피보험자에게는 가입 부서에서 검토할 동안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는 편지를 보내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P637-638)   

  

배심원이 떠나고 나서도 도트와 나는 오랫동안 빈 법정에 앉아 우리가 지난 이틀 동안 들었던 두드러진 증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녀가 옳고 저들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만족감은 별로 없었다. 도트는 정작 중요할 때 더 열심히 사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괴로워할 것이다. 

그녀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최고의 시간을 맞이했다. 그러니 이제 집에 돌아가서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절반을 왔을 뿐이었다. 

“딱 며칠만, 며칠만 더 기다리시면 됩니다.”            (P676)     

예를 들어 화가 나는 바람에 누구 코를 부러뜨렸다고 해보자. 나는 물론 피해자가 입은 실제적인 피해를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한테는 1만 달러밖에 없다. 거기서 얼마를 떼어내야 내가 정신을 차릴까? 1퍼센트라면 100달러가 될 텐데. 그것은 나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100달러를 그냥 내주고 싶어하지는 않을 데지만, 동시에 크게 괘념치는 않을 것이다. 5퍼센트라면 어떨까? 500달러의 벌금이면 내가 어떤 사람의 코를 부순 데 대한 벌로 충분할까? 내가 그 수표를 쓰면서 충분히 괴로워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10퍼센트라면 어떨까? 만일 내가 1천 달러를 내야 한다면, 틀림없이 두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첫째, 나는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둘째, 나는 내 행동거지를 고칠 것이다. 

여러분은 그레이트 베너핏에게 어떻게 벌을 주겠는가? 여러분이 나나 옆집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은행 잔고를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를 보고, 따라서 상처는 주지만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을 정도의 벌금을 물릴 것이다. 부자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라고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나는 배심원에게, 그 결정은 여러분에게 맡겨두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1천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숫자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벌금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그 액수를 제안하지는 않겠다.            (P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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