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 2007년
영화와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은 1980년 11월 13일 서울 강서 중학교 재학 중이던 이윤상이 유괴되어 다음날 사망한 사건이다. ‘주영형 사건(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이라고 알려진 실제 범죄이다. 피해 아동을 납치한 진범이 알고 보니 유괴범을 찾는 방송에 인터뷰도 한 피해 아동의 학교 체육교사였던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이 특별 대국민담화까지 발표할 정도로 충격적인 범죄였다.
아내는 알암이의 돌연스런 가출이 유괴에 의한 실종으로 확실시 되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은 악착스럽게 자신을 잘 견뎌나갔다. 그것은 아이가 어쩌면 행여 무사히 되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희망과, 녀석에게 마지막 불행한 일이 생기기 전에 어떻게든지 놈을 다시 찾아내고 말겠다는 어미로서의 강인한 의지와 기원때문인 것 같았다. (P38)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이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곧장 학교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다른 일이 없었다 하였다. 여느 때처럼 정시에 수업이 끝났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하였다.
-- 종례 시간 때도 자리를 비운 아이가 눈에 띄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알암이는 종례를 마치고 곧 집으로 갔을 텐데요.
그때까지 퇴근을 기다리고 있던 담임선생님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 집에라도 좀 알아보겠노라며 시간을 잠시 더 기다려보라 하였다.
그러나 한참 뒤에 다시 걸려온 담임선생님의 전화는 불길한 예감만 점점 더해오는 소리뿐이었다.
-- 알암인 역시 아직 가까이 어울려 지내는 아이가 없군요. 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교문을 나선 건 분명한데, 그다음은 알암일 눈여겨본 아이가 없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알암이의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서 그새 혼자서 은밀스런 취미를 숨겨오고 있었거나 어디 남모르는 친구라도 사귀어두고 있었을지 모르니 시간을 좀더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다. 설마 하면 무슨 나쁜 일이야 있겠느냐고, 다음 날까지도 정 소식이 없으면 반 아이들에게 다시 알아보도록 하자고. 어정쩡한 소리 끝에 전화를 끊고 말았다.
일은 분명 학교와 집 사이에서 일어난 변고였다. 그것도 아이의 담임선생 말처럼 막연히 시간만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으로는 실마리가 풀릴 수 없는 변고였다.
아이는 아닌 게 아니라 해가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일찍 약국 문을 닫아걸고 파출소에 아이의 실종 사실을 신고했다. (P41-42)
알암이는 그렇게 어느 날 학교 길에 수수께끼처럼 갑자기 사라지고 만 것이다.
집이나 학교에서 소동이 한바탕 회오리쳐 올랐을 것은 말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동으로 해결날 일이 아니었다. 놀라움과 당황스러움과 근심과 절망이 뒤섞인 지옥 같은 기다림도 며칠이 지나고 나자 우리는 새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이를 찾는 데에 필요한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신중하고 세밀하게 녀석의 종적을 뒤쫓아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예 약국 문을 닫아걸고 아이의 발길이 닿을 만한 곳들을 샅샅이 뒤져나갔다. 반 아이들의 주변은 물론 멀고 가까운 친척집들까지도 빠짐없이 모두 연락을 취해보고, 학교 근처와 동네 일대에도 몇 차례씩 광고를 내가며 애타게 아이의 귀가를 기다렸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알암이 찾기’ 운동을 벌이고 나섰고, 그 바람에 처음에는 좀더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미지근하게 시일을 끌어가던 경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 들어갔다. 심지어는 이때까지 알암이가 다니던 주산 학원에서까지 아이를 찾는 일에 앞장서 나섰을 정도였다. (P43)
알암이는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소식이 깜깜이었다. 그러자 세상사가 으레 그렇듯이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알암이의 일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경찰 수사도 시들해져가는 눈치였고, 학교 쪽 아이들도 이젠 할 일을 다한 듯 잠잠해져가고 있었다. 그새 한두 번 기사를 취급해준 신문이나 방송들도 더 이상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알암이의 유괴를 불행스런 미제 사건으로 기정사실화해가고 있는 낌새였다.
하지만 아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그럴수록 아내는 자신의 삶을 온통 그 일에 걸다시피 각오를 새로이 하여 아이를 찾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나갔다. 약국 문을 계속 닫아건 채 밤낮없이 사방을 뛰어다녔다. 수단 방법도 가리려 하지 않았다. 아내는 여기저기 계속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하고, 방송국의 안내 프로그램 같은 델 쫓아나가선 그 가상의 범인을 향해 어떤 요구도 감수할 각오이니 아이만 제발 무사히 돌려 보내달라고, 아이의 안전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P45)
알암이가 사라진 지 꼭 두 달 스무 날째가 되던 7월 22일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알암이는 이날 집에서 멀지 않은 그 주산 학원 근처의 한 2층 건물 지하실 바닥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어 나온 것이다.
아이의 육신은 이미 부패가 심하여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손발이 뒤로 묶인 채 입에는 수건까지 물려 암매장 당해 있는 몰골이 유괴 피살을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남은 일은 이제 가상의 범인이 아닌 진짜 유괴범을 잡아내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사건의 윤곽이 밝혀진 마당에 범인의 색출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범인의 윤곽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준 셈이었다. (P47)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서부터 수사에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경찰 쪽에서나 우리들(아내와 나 그리고 가까운 이웃 친척들까지도)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오직 그가 모든 걸 단념하고 사실을 털어놓고 나서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은 우리들의 무고한 속단이 아니었다. 사건이 결과적으로 우리 예상대로 해결 지어진 것이다. 김도섭-- 치밀하고 집요한 경찰의 추궁에 못 견뎌 그 학원 원장이란 자가 마침내는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건의 시말은 이쯤에서 그만 이야기를 마무려두는 것이 좋으리라. 이 이야기는 애초 아이가 희생된 무참스런 사건의 전말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어디 무디고 잔인스런 아비가 그 자식의 애처로운 희생을 이런 식으로 머리에 되떠올리고 싶어 하겠는가, 그것은 내게서 아이가 또 한번 죽어나가는 아픔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알암이에 뒤이은 또 다른 희생자 아내의 이야기가 되고 있는 때문이다. 범인이 붙잡히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다음에도 나의 아내에겐 그것으로 사건이 마감되어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내의 희생에는 어떤 아픔이나 저주를 각오하고서라도 나의 증언이 있어야겠기 때문이다. (P49-50)
알암이의 실종이 확실해진 때부터 아내가 그토록 자신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이웃 김 집사 아주머니의 도움 때문이었다. 우리 약국과는 두어 집 건너에서 이불 집을 내고 있는 김 집사 아주머니--, 애초의 동기는 서로 달랐을망정 그 김 집사 아주머니의 권유가 이상한 방법으로 아내를 다시 절망에서 번쩍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 우리 구세주 예수님 앞으로 나오세요. 그래서 그분의 사랑에 의지하도록 하세요. 주님께선 모든 힘든 이들의 무거운 짐을 함께 가져주십니다. 모든 상처 받은 영혼들의 아픔을 함께해주시며, 그것을 사랑으로 치유해주십니다. 알암이 엄마는 지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해갈 수 없는 크나큰 영혼의 상처를 입고 있어요. 애 엄마 혼자서는 그 짐을 절대로 감내해나갈 수가 없어요.....
김 집사 아주머니의 위로와 권유는 대개 그런 뜻의 말들이었다. 그것이 아내에겐 뜻밖에도 신통한 효과를 나타냈다. (P50-51)
아내는 드디어 결심이 선 듯 김 집사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서너 주일 예배 시간을 맞춰 가서 기도도 드리고 헌금도 하고 왔다. 절간을 찾아가 촛불 공양을 할 때처럼 무작정 액수를 높여 바친 헌금이었다.
하지만 그건 물론 아내가 지속적으로 신앙을 가지려는 결단의 표시는 아니었다. 보다도 그것은 아이를 찾으려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일 뿐이었다. 절간을 찾아가 빌 때 한가지로 아이를 찾고 보자는 기복 행위에 불과했다.
하느님도 아내의 그 속내를 아셨던지 그녀의 소망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아내의 아낌없는 헌금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끝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엄청난 비극으로 아이의 종말이 밝혀지고 말았다.
아내는 더 이상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신용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그저 원망뿐이었다. 이제는 사랑이고 원망이고 ‘주님’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이의 참혹스런 시신을 보고 나자 아내는 한동안 모든 것을 잃고 만 듯 자신마저 지옥의 어둠 속을 헤매었다. (P53-54)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내에겐 그 김 집사의 위로가 좀 지나쳤었던지 모른다. 혹은 아래로선 마음속에 사무친 원망과 저주를 죽어도 끊을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순간 아내가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곤 마치 눈앞의 하느님에게 대들기라도 하듯이 김 집사를 향해 외쳐대기 시작했다.
--아니, 하느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하느님이 그토록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알암이를 그렇게 만든 살인귀 악마를 아직까지 숨겨두고 계실 리가 없어요. 알암인 이렇게 죽고 말았는데, 범인은 아직 붙잡히지 않고 있지 않아요. 하느님이 정말 모든 걸 아신다면 어째서 그놈을 아직 가르쳐주지 않는 거예요. 알고도 부러 숨겨두고 계신 건가요. 그렇다면 하느님은 그놈과 한패거리와 다를게 무어에요. 그래서 하느님은 모든 걸 아시고도 아이를 그 꼴로 만들어 보내신 건가요. 처음부터 그놈과 한패거리로 일을 그렇게 꾸며가지고 말이에요.
아내의 원망이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사실 아내로선 나무랄 수 없는 원망과 분노의 토로이기도 하였다. 아이의 주검이 발견되었을 뿐 이때까지도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P56)
-- 그것은 다만 그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 사람보다는 알암이 엄마 자신을 위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가엾은 알암이의 영혼을 위하는 일인 거예요. 알암이의 영혼과 애 엄마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에게 너무 깊은 원망을 지니지 않도록 하세요.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도록 노력해보세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하시면 주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거예요.
인간에겐 도대체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고 하였다. 인간을 마지막으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며, 사람에겐 오직 남을 용서할 의무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거역하여 인간이 스스로 남을 원망하고 심판하려 할 때는 그 원망과 심판이 거꾸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고 하였다.
아내는 이번에도 집사님의 설득에 처음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에겐 애초에 남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거니 가능하면 그를 용서할 수까지도 있어야 한다는 충고에 이르러서는 바락바락 화를 내고 대들기까지 하였다. (P61)
--그 사람...... 그 가엾은 사람, 아직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거지요......
아내도 뻔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그게 어쩌면 새삼 다행이라는 어조였다.
아내가 마침내 김 집사의 소망대로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미 용서를 하고 있진 않았더라도, 그를 스스로 용서해야 한다고, 용서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저주스런 한 해가 거의 다 저물어가던 12월 중순 무렵--, 알암이의 참사가 있은지 꼬박 일곱 달여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범인 김도섭의 사형이 확정되고, 아내가 다시 김 집사에게 인도되어 교회를 나다니기 시작한 지는 대충 2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가야 하고 사람으로서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람에겐 사람으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내가 범인 김도섭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은 누구보다도 아내 자신을 위해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의 마음속에서 아내 자신이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그 이상은 아내로선 필요한 일도 아니었고 소망을 해서도 안 되었다. 그랬더라면 아내는 적어도 자신의 구원의 길은 얻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비극을 불렀다. 다름 아니라 아내는 당돌스럽게도 자기 용서의 증거를 원했다. 더욱이 그것을 지금까지의 원망과 복수심의 표적이던 범인을 상대로 구하려 한 것이었다.
-- 제가 교도소로 면회를 찾아가서 그 사람을 한번 만나봐야겠어요. (P66-67)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으로 아내의 그간의 지옥 같은 절망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로소 그 참담스런 절망의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한마디로 그의 주님으로부터 용서의 표적을 빼앗겨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용서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아내에겐 이미 원망뿐 아니라 복수의 표적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그녀가 용서를 결심하고 찾아간 사람이 그녀에 앞서서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었다. 아내와 알암이의 가엾은 영혼은 그 사내의 기구(난들 어찌 그것을 용서라고 말할 수 있으랴)를 통하여 주님의 품으로 인도될 수가 있었다. 아내의 배신감은 너무도 분명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P77)
하지만 아아, 아내의 그 절망과 고통의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있는지를 차마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아내는 결국 그러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간이고 섭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여 절망의 뿌리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그 사람 김도섭의 사형 집행 소식이 아내를 거기까지 자극했었는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고 2월로 접어들어 김도섭은 마침내 교수형이 집행됐고, 그 소식이 라디오에까지 방송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김도섭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몇 마디는 내게까지 어떤 새삼스런 배신감으로 몸이 떨려 견딜 수 없었을 정도였다.
-- 이제 와서 제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제 영혼은 이미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거두어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영혼뿐 아니라 제 육신의 일부는 이 땅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태어날 것입니다. 저는 저의 눈과 신장을 살아 있는 형제들에게 맡기고 가니까요.
형장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이었다.
-- 다만 한 가지 여망이 있다면 저로 하여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도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함께 임해주셨으면 하는 기원뿐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희생과 고통을 통하여 오늘 새 영혼의 생명을 얻어가지만, 아이의 가족들은 아직도 무서운 슬픔과 고통 속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나 저세상으로 가서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아이의 영혼을 저와 함께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시고 살아남아 고통받는 그 가족분들의 슬픔을 사랑으로 덜어주고 위로해주십사고.....
그간에도 거기 늘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천장만 쳐다보고 누워 지내던 아내가 이날따라 하필이면 라디오를 켜놓고 그 몹쓸 뉴스를 모두 들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지난 2월 5일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이틀 뒤, 아내도 끝내는 더 견디지를 못하고 제 손으로 혼자 약을 마셔버린 것이었다. 자기를 끝까지 돌보아온 김 집사에게는 물론 내게마저 유서 한 조각 남기지 않은 채였다. (외국문학, 1985년 6월호) (P8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