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45
나는 사진이란 말을 좋아한다. 사진이란 영어로 말하면, Photo-graphy로 직역하면 광화(光畵)이지만, 현재까지도 우리는 의역된 사진(寫眞)으로 알고 있다. 진실을 묘사한다는 사실성에 사진이 기반으로 하겠지만, 묘사의 의미에서 확장된 사유의 의미로서의 사진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쓰임에 따라 그 사진의 효용가치는 달라진다. 물론 그러한 사진을 악용하거나 남용한다면 그 사실성은 얼마든지 훼손될 것이다. 사진의 존재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서 부패되고, 박제화되기도 한다. 그 각인의 깊은 흔적을 남긴다.
사진의 짧은 단상이라는 어쭙잖은 글을 많이 썼지만, 나름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기도 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어찌하다 보니 오랜 시간을 사진을 사랑하고, 사진에 애착을 느끼며 지금까지도 카메라를 들고 있다. 잘 찍는 사진가들도 많고, 나도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사진도 잘 찍고 싶고, 나만의 사진철학도 가져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300회도 넘기고 했던 것 같다. 뭐 그리 쓸 말도 없는데 말이다. 사진에 관한 이론이란 것이 사실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수잔 손탁, 존 버거, 등 유명한 철학가나 미술평론가들을 인용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이론가들의 이론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것들에 대한 사진기록을 하면서, 내가 주어진 처지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은 나에게 그런 사유를 하게 만든다. 생각만 하고 사실 하는 것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그다지 큰 깨달음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유의 진통은 계속되었다. 책을 보아도,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들은 나와 어떻게 다르고, 나는 어떻게 다른지도. 사춘기 시절을 지내고, 오춘기도 지나가고, 시간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계속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나이가 들면 많은 것을 알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의미 없는 행위일지도 모르고. 욕심을 버린다면 다 버릴 것만 같다.
기록은 일기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 보았던 것들에 대한 기록은 일기이다. 페북이라는 공간도, 인스타의 공간도 블로그의 글들도 남겨진 일기다. 자신이 가졌던 생각에 대한 일기, 어느 벽에 쓰여진 낙서도, 누군가가 쓴 기록, 사진은 그 기록과도 같다. 일기를 문자가 아닌 사진 이미지로 남긴다. 잘 찍은 사진이 아니어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진일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존 자르코스키(John Szarkowski)는 사진을 두 가지 ‘거울과 창문(Mirrors & Windows)’으로 분류했다. 거울은 자신의 내면 일기이고, 창문은 바깥일기이다. 창문을 통해 관찰하는 바깥일기. 아니 에르노가 쓴 바깥 일기처럼, 나는 주로 바깥 일기를 광장에서 해왔다.
“내면 일기를 쓰면서 자아를 성찰하기보다는 외부 세계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더욱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확신이 선다. 바로 전철이나 대기실에서 스쳐 가는 이름 모를 타인들이 흥미나 분노 혹은 수치로 우리를 뚫고 지나가며, 그러한 감정들을 통해 기억을 일깨우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를 드러내어 준다.”
-아니 에르노, 바깥 일기,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