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트-다(fort-da) 놀이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44

by 노용헌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사진가가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고 찍게 된다. 대상과의 일종의 약속인 셈이다. 사진가는 셋에 사진을 찍지만, 그 전 하나나 둘에서도 셔터는 눌러져 있다. 무표정에서 표정이 있는(웃는) 모습까지 사진에는 담겨지게 된다. 사진가와 대상간의 약속은 일종의 놀이인 셈이다. 결정적 순간이었던 장면은 그 앞뒤로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대상과의 밀고 당기는 감정도 있다. 요요(yo-yo)처럼 말이다. 던지고 돌아오는 요요를 잡듯이 사진을 잡는다. 연애를 하는 남녀 간에도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처럼, 사진가도 대상이나 현장에서도 ‘밀고 당기기’를 한다.


“어느 날 (…) 아이는 실이 감긴 나무 실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뒤로 늘어뜨려서 마루 위를 끌고 다니는 일이나 그것을 마차 삼아 노는 일은 그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실패의 실을 잡고 대단히 익숙한 솜씨로 그것을 커튼이 쳐진 그의 침대 가장자리로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그 실패는 그 속으로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그 인상적인 <오-오-오-오> 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실을 잡아당겨 da(거기에)라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라짐과 돌아옴이라는 완벽한 놀이였다.” -《프로이트, 쾌락 원리의 저편》-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 ‘포르트-다(fort-da)’ 놀이, 실패를 던지고, 실패를 당기는 놀이에서처럼, 사진가는 대상과의 사진 놀이를 하게 된다. 놀이를 통해서 사진가는 부재와 현존의 반복을 느끼기도 한다. 사진기는 실패를 상징하고, 부재와 현존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현존하는 대상은 사진 속으로 당겨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즉 ‘대상의 사라짐(부재)과 돌아옴(현존)을 되풀이하는 놀이’를 통해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자신의 경험을 놀이로 바꿨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처음에 그는 <수동적인> 상황에 있었다. (…) 놀이로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그는 <능동적인> 역할을 취하게 되었다. (…) 불쾌한 경험을 반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반복이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 일정량의 쾌락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쾌락 원리의 저편》-


프로이트와 라깡에 따르면 인간 심리의 중핵에는 ‘원초적 상실’이 있다. 아주 어린 시절 자기 존재의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하는 외상적 사건이 인간에게 일어나고, 바로 그 사건이 내면에 각인/기록(inscription)되어질 때 그 ‘각인의 방식’에 따라 각각의 개별 인간의 마음이 마치 직물이 짜이듯 구성되고 창조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욕망에 대한 설명은 사진가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가가 경험하는 세계 또한 사진가의 경험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그 경험은 각자가 자신의 경험치에 따른 ‘외상적 사건’인 것이다. 그 경험이 사진가의 ‘내적인 사건(경험)’으로 각인/기록(inscription)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행위(놀이)를 통해서 ‘기쁨’ 곧 쾌락을 얻는 것일지 모르겠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에도 일정한 쾌락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쾌락을 라깡은 ‘주이상스(jouissance)’라고 불렀다. 어쨌든, 사진가는 그것이 기쁨의 경험이었든, 고통의 경험이었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사진에 담겨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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