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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y 20. 2024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캐롤>  2009년

<크리스마스 캐롤>(1938),<크리스마스 캐롤>(1951), <크리스마스 캐롤>(1959), <크리스마스 캐롤>(1978), <크리스마스 캐롤>(1984), <크리스마스 캐롤>(1999), <크리스마스 캐롤>(2004)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를 원작으로 한 2009년 영화이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연출한 CG 애니메이션 영화로 주연 짐 캐리를 비롯해 콜린 퍼스와 게리 올드만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짐 캐리는 스크루지, 과거 유령, 현재 유령까지 3명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실제로 스튜디오에서 연기를 했다. 그리고 퍼포먼스 캡처 기술로 배우들의 연기를 그대로 그래픽으로 옮겼다.     


‘구두쇠(screw)'와 ’사기꾼(gouge)'의 느낌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스크루지(Scrooge)라는 특이한 이름의 인물에 큰 관심을 보인다. 스크루지는 잭 프로스트(Jack Frost)라든지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 같은 신화적인 존재와 탐욕스럽고 퉁명스럽고 비열한 옛 런던의 고리대금업자가 혼재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스크루지는 디킨스의 기괴스러운 인물중에서도 가장 활력이 넘치고 쾌활한 인물이다.           (P17)   

  

[크리스마스 축제]

야, 크리스마스다! 해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에 마음이 조금도 설레지 않는 사람이라면, 가슴속 깊이 숨어 있던 어떤 즐거운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염세주의자가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년 이맘때 품었던 소중한 희망이나 행복한 기대가 어느새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고, 상황은 더욱 나빠진 데다 수입도 궁핍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또 한 때 별 쓸모도 없는 친구들에게 연회도 베풀었건만 자신이 막상 역경과 불운에 처하니 바라보는 시선이 냉담하기만 하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절대 이런 불쾌한 기억에 얽매이지 마라. 세상을 아무리 오래 산 사람이라도 일 년 중 어느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삼백육십오 일중 하필 가장 즐거운 날을 택해 그런 처량맞은 회상은 하지 말고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가까이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유리잔에 술을 한가득 채우고 노래나 한 소절 불러라. 설령 여러분의 방이 십 년 전보다 더 좁아졌더라도, 유리잔 속의 술이 방울이 올라오는 포도주가 아니라 냄새가 고약한 펀치라고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단숨에 한 잔 비우고 나서 한 잔 더 채우고, 예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기 바란다. 난롯가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명랑한 얼굴을 바라보라. 어쩌면 작은 의자 하나가 비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고,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뿌듯함을 불러일으켰던 그 작은 몸뚱이는 어쩌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일은 잊어라. 일 년 전쯤 당신 앞에 앉아 있던 그 어여쁜 아이는 지금은 빠르게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만개한 꽃처럼 건강한 뺨과 기쁨으로 넘치던 천진난만한 눈망울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마라. 현재 당신이 누리는 축복, 누구나 느끼는 평범한 행복을 생각하라. 어쩌다 겪게 된 지나간 불행 따위는 잊어라. 즐거운 표정과 뿌듯한 마음으로 술잔을 다시 채워라. 우리의 삶은 변함이 없더라도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새해는 행복하게 맞아라.                 (P29-30)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

옛날 옛날에 -- 아주 옛날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무조건 믿었던 것을 보면 그 이야기는 틀림없이 사실일 것이다. -- 이 고장 아래쪽, 고색창연한 수도원 마을에 교회를 돌보며 교회 묘지에서 무덤 파는 일을 하는 가브리엘 그럽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교회지기라고 해서, 그러니까 사시사철 죽음의 상징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시무룩하고 우울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장의사도 세상에서 가장 명랑한 사람일 수 있다. 나도 한때 벙어리인 줄만 알았는데 일상생활에서나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노래를 부르고 독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는 우스꽝스러운 사내와 영광스럽게도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선례와는 정반대로 가브리엘 그럽은 성질이 괴팍하고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P37)     

가브리엘은 순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땅에 닿을 듯 길고 괴상하게 생긴 다리는 특이한 모양으로 꼬고 앉은 데다 힘줄이 불거진 팔은 맨살이고 손은 무릎에 얹고 있었다. 땅딸막한 몸뚱이에는 조그만 칼집 모양을 낸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등에는 짧은 망토를 걸쳤으며, 기묘하게도 끝을 뾰족하게 자른 목깃은 고블린한테는 목둘레 주름 깃이나 목도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발은 발가락 쪽으로 가면서 뾰족해지고 위로 말려 올라갔다. 머리에는 깃털 장식을 하나 단 챙 넓은 원뿔 모자를 쓰고 있는데 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었다. 고블린은 마치 이삼백 년쯤 묘비 위에 앉아 있은 듯 아주 편안해 보였다. 몸은 전혀 움직임 없이 그림처럼 앉아 있었는데 조롱하는 듯 혀만 쭉 내밀고 오직 고블린만이 가능한 웃음을 지으며 가브리엘을 보고 있었다.               (P42)    

 

날이 밝아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브리엘 그럽은 교회 묘지의 판판한 묘석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옆에는 빈 술병이 놓여 있었고 땅에 흩어져 있는 외투와 삽과 등불 위로 간밤의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었다. 그가 처음 본 고블린이 앉아 있던 묘비는 바로 앞에 있고, 지난밤에 팠던 묘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브리엘은 문득 자신이 겪은 일이 꿈일까 생시일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어깨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고블린들에게 발로 차인 일이 과연 꿈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고블린들이 개구리처럼 뜀뒤기를 하고 놀던 묘비 주위에는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는 허우적대다가 고블린들은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얼른 머릿속을 정리했다. 가브리엘 그럽은 등이 배겨서라도 될 수 있으면 빨리 두 발로 일어서야 했고, 외투에 앉은 서리를 털어내고 입은 뒤 고개를 돌려 마을을 바라보았다.               (P51)

[험프리 님의 시계에 실린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그러다 마침내 어떤 선술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창문으로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문득 이런 크리스마스에 선술집에서 홀로 저녁을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궁금해졌다. 

내 생각에 고독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고독을 자신의 성격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지는 것 같다. 나는 해마다 돌아오는 최고의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를 내 방에서 혼자 보낸 적이 많았고, 그날을 그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는 날이라고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좀 미안하지만 선술집의 사람들이 죄수나 거지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선술집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 리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따로 단골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관행일까? 분명 관행일거야.               (P55)

[크리스마스 캐롤]

말리는 죽었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쨌든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매장 증명서에는 목사와 서기, 장의사와 유족 대표가 서명을 했다. 스크루지도 서명을 했다. 스크루지는 손 대기로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손에 넣는 영감으로 런던의 왕립 거래소에서도 확실한 이름으로 통했다. 그랬다. 말리 영감은 대문의 대갈못처럼 죽었다. 

그런데 잠깐! 대갈못에 특별히 죽음과 관련된 의미가 있음을 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나라면 차라리 철물점에서 파는 물건 중에 가장 칙칙해 보이는 ‘관에 박는 못’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유에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으니 내 속된 손으로 조상님의 지혜를 흠잡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랬다가는 나라 꼴이 뭐가 되겠는가. 따라서 내가 강조하는 뜻에서 다시 한 번 ‘말리는 대문의 대갈못처럼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길 바란다. 

스크루지는 말 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론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스크루지와 말리는, 나로서는 얼마나 되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는 세월을 동업자로 지내왔는데 말이다. 게다가 스크루지는 말리의 유일한 유언 집행인이자 유일한 유산 관리인이었으며, 유일한 유산 상속인이자 유일한 유상 수령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한 친구이자 유일한 유족이었다. 그럼에도 스크루지는 그 불행한 사건을 슬퍼하기는커녕 장례식을 치를 때도 탁월한 사업 수완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이윤을 남겼다.                  (P69-70)  

   

아! 그러나 스크루지는 맷돌 손잡이를 꽉 움켜쥔 손아귀처럼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쥐어짜고, 누르고, 움켜쥐고 벅벅 긁어모으고, 한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탐욕스러운 늙은 죄인! 게다가 부시에 쳐서 불꽃 한 번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한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웠으며 굴처럼 음흉하고 좀처럼 속을 내보이지 않는 외톨이였다. 그렇게 내면에 들어앉은 차가움 때문에 노년에 접어들수록 표정은 굳어지고 뾰족한 코는 더욱 뽀족하게 내려왔으며 뺨은 쭈글쭈글해지고 걸음걸이는 딱딱했다. 또한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얇은 입술은 푸르뎅뎅했으며, 삑삑거리는 목소리로 심술궂게 말했다. 머리와 눈썹에는 서리가 내리고 철사처럼 억센 턱수염에도 서리가 내렸다. 그는 어디를 가든 항상 냉기를 뿌리고 다녔다. 그래서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그의 사무실은 얼음 창고처럼 으스스했는데,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사무실 온도를 단 1도라도 올리는 법은 없었다.             (P71)     

자, 그건 그렇고, 사실 현관문의 문고리는 유난히 크다는 것 빼고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문고리였다. 스크루지는 그 집에 사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그 문을 보아온 터였다. 게다가 런던의 여느 시민들처럼 -- 감히 예를 들자면 시의회의원이라든지 시 상의원, 동업조합원들을 포함해 많은 런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 스크루지는 상상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칠 년 전 죽은 동업자 얘기를 꺼낸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말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스크루지가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는 순간 어떻게 아무 변화도 없이 문고리에서 문고리가 아닌 말리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지 아는 분이 있으면 나에게 설명 좀 해달라.

말리의 얼굴! 그것은 마당에 있는 물건처럼 분간할 수 없는 그림자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썩은 가재처럼 음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난 표정도 흉악한 표정도 아니었으며, 유령 같은 이마에 유령 같은 안경을 쓴 채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스크루지를 바라보았다. 숨결 때문인지 아니면 뜨거운 공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거기에다 크게 뜨고 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눈, 파리한 납빛 얼굴은 더욱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그 섬뜩한 표정은 자기 얼굴이지만 그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스크루지가 그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이 그것은 다시 문고리로 바뀌었다.          (P83) 

    

차갑게 얼어붙은 유령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몸에 느껴지고, 난생 처음 보는 유령의 턱과 볼을 감싸는 머릿수건의 올까지 똑똑히 보이는데도 그랬다. 그런데도 스크루지는 여전히 자신의 감각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웬일인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스크루지가 평소의 쌀쌀맞고 빈정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지.”

말 리가 말했다. 틀림없는 그의 목소리였다. 

“대체 당신 누구야?”

“내가 누구였느냐고 묻게나.”

“좋아, 당신 누구였소? 깐깐하군, 유령치고는.”

스크루지가 목청을 높이며 물었다. 

스크루지는 원래 ‘유령 주제에’라고 말하려다가 이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얼른 바꿨다. 

“이승에 있을 때 자네 동업자였네, 제이컵 말리.”

“여기, 여기에 앉을 수 있겠나?”

스크루지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P88)  

   

“족쇄를 차고 있으시군요.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됐습니까요?”

스크루지가 벌벌 떨면서 물었다. 

“살아생전 내가 스스로 만든 족쇄지. 내가 한 고리, 한 고리 만들어서 1미터씩 늘여 나갔지. 나는 자유의지로 쇠사슬을 찬 거라네. 내 자유의지로. 이 모양이 낯설어 보이나?”유령이 말했다. 

스크루지는 점점 더 부들부들 떨었다. 

“혹시 자네가 지고 있는 쇠사슬의 무게와 길이를 알고 싶나? 자네는 벌써 칠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이 정도의 길이와 무게가 되었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쇠사슬을 늘여 왔으니 지금은 상당히 무거울 거야!”

스크루지는 자기 몸에 100미터쯤 되는 쇠사슬이 감겨 있는지 보려고 발아래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P92)   

  

“자네에게 유령 셋이 찾아올 걸세.” 

스크루지의 안색이 유령만큼 침울해졌다. 

“그게 자네가 말한 기회와 희망인가, 제이컵?”

스크루지가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낫겠네.”

“그들을 만나지 않고는 자네는 내가 걸어온 길을 피할 수 없어. 첫 번째 유령은 내일 종이 한 번 울리면 찾아올 걸세.”

“제이컵, 한꺼번에 만날 수는 없는 건가, 그게 더 낫겠는데?”

스크루지가 넌지시 물었다. 

“두 번째 유령은 그다음 날 같은 시각에 찾아올 걸세. 세 번째 유령은 그다음날 12시, 시계추가 떨림을 멈출 때 찾아올 거야. 이제 더 이상 날 보는 일은 없을 걸세. 자네를 위해서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기억해 두길 바라네.”                (P95)  

   

“오늘 밤에 오신다던 그 유령이 맞습니까?”

스크루지가 물었다. 

“그렇다.”

유령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게다가 기묘하게 나지막한 목소리는 가까이가 아니라 아주 멀리 있는 듯했다. 

“누구, 아니 무슨 유령이십니까?”

“난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이다.”

“아주 먼 과거를 말씀하는 건가요?”

스크루지는 난쟁이 같은 유령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다, 너의 과거다.”                   (P103)  

   

“사소한 걸로 순진한 사람들을 감격시켰군.”

“사소한 거라고요!”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두 견습생의 말을 들어보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페치위그 영감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스크루지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유령이 말했다.

“보라고! 그렇지 않아? 영감이 한 거라곤 자네들에게 몇 파운드 더 집어준 것뿐이야. 기껏해야 삼사 파운드. 그런데도 저렇게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인가?”

그 말에 발끈한 스크루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의 자신이 아닌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렇지 않아요. 그게 아니에요. 페치위그 영감님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고 우리의 일을 가볍게도 힘겹게도 만들 수 있는 분이에요. 그분의 능력이 기껏해야 말과 표정에 있다고 해서, 셈하거나 합계를 낼 수도 없는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들이라고 해서 그게 어떻다는 거죠? 그분이 주는 행복은 아무리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겁니다.”

스크루지는 유령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의식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P116-117)  

   

스크루지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자 거인은 풍요의 상징인 뿔 모양의 횃불을 높이 쳐들어 스크루지를 비췄다. 

“들어오너라! 들어와서 나를 더 가까이 보라.”

유령이 소리쳤다. 

스크루지는 머뭇머뭇 안으로 들어가 유령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예전의 고집 센 스크루지가 아니었다. 유령의 눈은 맑고 인자했지만 스크루지는 눈을 마주치기 싫었다. 

“나는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이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아라.”

유령이 말했다.             (P128-130)     


“내 말은 단지 이거야. 삼촌이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와 즐겁게 보내지 않으면 즐거운 순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지. 물론 그런다고 삼촌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어쨌든 곰팡내 나는 낡은 사무실이나 먼지투성이 집에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있는 건 분명해. 나는 매년 삼촌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기회를 드렸어. 그런 삼촌이 가엾기 때문이지.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크리스마스를 싫어하시겠지만, 내가 매년 찾아가서 공손하게 안부 인사를 하면 -- 무턱대고 해보는 거지. -- 나중에는 당신도 모르게 크리스마스를 좋게 생각하시게 될 거야. 이렇게 해서 나중에 삼촌 사무실에서 일하는 가난한 서기에게 유산으로 50파운드쯤이라도 남겨 주게 된다면 그것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어. 사실 어제만 해도 내가 삼촌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던 것 같아.”          (P152) 

    

“유령 님의 아이들인가요?” 

스크루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의 아이들이지. 나에게 매달려 제 아버지로부터 구해 달라고 하고 애원하고 있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 아이의 이름은 ‘궁핍’이다. 이 두 아이를 경계하라. 그리고 이 두 아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계해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적힌 ‘파멸’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유령이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윽고 유령은 도시를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인간들아, 너희에게 무지를 물리치라고 말해 주는 사람을 비난할 테면 비난해라. 너희들의 당파적인 목적을 위해 무지를 용인한다면 무지는 더욱 심해질 뿐! 그리하여 종말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아이들을 맡기거나 돌봐 줄 만한 곳이 없나요?”

스크루지가 물었다. 

“감옥이 없느냐고? 아니면 구빈원이 없느냐고?”

유령은 스크루지가 지난번에 했던 말을 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다.          (P159-161)     

처음에 스크루지는 유령이 사소해 보이는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하지만 거기에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도대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대화가 죽은 옛 동업자 제이컵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 일은 과거의 유령이 말한 것이고, 지금의 유령은 미래의 일을 관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당장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 중에 대화의 내용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누구 얘기를 하건 스크루지 자신이 개과천선할 수 있도록 교훈을 주려는 게 분명했기에 스크루지는 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본 장면 하나하나를 단단히 기억해 두고, 특히 자신의 환영이 나타나면 잘 관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래에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이 지금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단서를 제공해 줄 테고 그러면 이런 수수께끼도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P166-167)     


조 영감이 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 세 사람에게 줄 돈을 바닥에서 세는 동안 방금 말한 여자가 웃기 시작했다.

“이게 그 영감탱이의 최후군. 생전에 누구 한 명 곁에 오지 못하게 쫓아버리더니 죽어선 우리에게 돈을 벌게 해주네! 흐흐흐!”

“유령 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이 불행한 사내가 겪는 일을 제가 겪게 될 거라는 것, 제 인생이 저렇게 될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자비로우신 하나님,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스크루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스크루지는 놀라서 뒤로 움찔했다. 장면이 바뀌자 놀라 하마터면 침대에 부딪힐 뻔했던 것이다. 커튼도 없고 이불도 없는 침대에 무언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달랑 낡은 홑이불 한 장만 덮여 있었다. 그것은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언어로 자신의 실체를 알리고 있었다.        (P173) 

    

“유령 님이 가리키는 저 묘지로 가기 전에 한 가지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오. 지금 모든 환영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인가요, 아니면 단지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의 환영인가요?”   

스크루지가 물었다. 하지만 유령은 그저 옆에 있는 무덤을 가리키기만 할 뿐이었다. 

“인생의 행로는 확실한 끝을 예견할 수 있고 꾸준히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그 종착지에 닿게 됩니다. 하지만 그 행로에서 벗어나면 종착지에 닿게 됩니다. 하지만 그 행로에서 벗어나면 종착지도 달라질 겁니다. 부디 유령 님이 제게 보여주시는 것도 그럴 거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스크루지가 애원했다. 유령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스크루지는 벌벌 떨면서 무덤 쪽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버려진 무덤의 묘비에 쓰인 이름을 읽었다. 거기에는 ‘에브니저 스크루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 그 침대에 누워 있던 자가 저란 말입니까?”              (P184) 

    

스크루지는 교회에도 가고 거리도 걸어 다니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걸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른 집 부엌을 들여다보거나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하며, 이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한낱 산책이 -- 겨우 산책에 불과한 일이 -- 이처럼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후가 되자 그는 조카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P193)     


어떤 사람들은 스크루지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지만, 스크루지는 그들이 웃든 말든 내버려 두었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엔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 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비웃음은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며, 사람들이 병을 앓아 별로 아름답지 않은 흉터가 남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웃어서 눈가에 주름살이 생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의 마음이 웃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스크루지는 그 후로 더 이상 유령들을 만나지 않았고 ‘완벽한 금욕주의자’로 살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이 나올 때면 언제나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P197)    

 

[크리스마스트리]

이 각양각색의 잡동사니들은 어린 시절의 환상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트리에 쓰인 나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란 것인지, 이 모든 물건들은 어떻게 생겨나 장식물이 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는 다시 집에 돌아와 이 집에서 홀로, 유일하게 깨어있다. 나는 굳이 떨쳐 버릴 생각 없이 환상에 빠져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기억날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에워싼 벽도 금방 닿을 듯한 천장도 없이 마음대로 자랄 수 있는 자유를 뺏긴 채, 방 한가운데 이름뿐인 나무가 한 그루 곧게 서 있다. 나는 그 나무 꼭대기에서 어렴풋이 빛나는 것을 올려다보면서 -- 이 나무는 독특한 특징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것은 나무가 겉보기에 땅을 향해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 아득한 유년시절의 크리스마스 추억들을 더듬는다.                (P200-201)  

   

잠깐, 이런, 저 시들어가는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쪽 나뭇가지가 아직도 어두워 보인다. 한 번만 더 보여 다오! 너의 나뭇가지에 휑하니 뚫린 곳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곳은 내가 사랑했던 눈동자가 밝게 빛나고 웃음 짓던 곳이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떠났다. 그보다 위쪽에 죽은 소녀를 안아 올리고, 과부의 아들을 들어 올리던 이는 보이는구나! 아, 선하신 분! 설령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늙음이 시들어가는 트리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 하더라도, 아, 내 머리가 하얗게 세더라도 나는 트리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마음과 천진난만함과 믿음을 구하리라!

지금 크리스마스트리는 화려한 장식물로 꾸며지고 노래와 춤과 즐거움으로 넘쳐난다. 트리는 어느 집에서나 환영받는다. 천진난만함과 다정함은 영원하며, 나뭇가지 아래에 침울한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트리가 바닥으로 내려올 때 나는 나뭇잎 사이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이로써 사랑과 친절, 자비와 연민의 법칙을 기념하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P224)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따라서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생각들이라든지 크리스마스가 가르쳐주는 교훈들에 감사하고 그러한 것들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불러내고 반갑게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난롯가에 각각의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P227) 

    

[가난한 일곱 여행자]

나는 한번 마음을 먹으면 쉽게 주저앉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마음씨 좋은 부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고,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단 하루며, 불행하게도 그건 사실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라면 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여행객들에게 크리스마스 만찬과 데운 컵에 따끈한 바설 술을 담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내가 따끈한 바설 술을 만들겠다고 하자 이 땅에는 칭찬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도 했다. 만일 내가 주연을 베풀도록 허락을 받는다면 나 자신이 얼마나 분별 있고 건전하며 유익한 시간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밝혀질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쾌활하고 현명한 사람이며, 필요하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 줄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휘장이나 훈장은 달지 않았지만, 또한 성직자도 웅변가도 사도도 성인도 어느 교파의 선지자도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기쁘게도 내 뜻을 관철했다. 그날 밤 9시에 칠면조와 소고기 한 덩어리를 식탁에서 구워 먹기로 계획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번 한 번만 내 마음대로 리처드 왓츠 씨의 대리인이 되어 ‘가난한 여섯 여행자’를 위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주재하게 되었다.                     (P23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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