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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n 12. 2024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

영화 <가프>  1982년

1982년 로빈 윌리엄스, 글렌 클로즈 출연의 영화. 존 리츠고우와 글렌 클로즈가 1983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녀조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1]

제니는 절대로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대학을 집어치웠던 까닭은, 부모가 그녀를 웰즐리로 보낸 중요한 이유가 제니로 하여금 좋은 가문 출신의 남자를 만나 사귀어 결국은 짝이 지어지기를 바라서였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제니의 오빠들은 웰즐리를 추천하면서 그 학교 출신 여자라면 천한 취급을 받지 않고 훌륭한 결혼 상대로 꼽힌다고 부모를 설득시켰었다. 제니는 그녀가 받아야 할 교육이 인공 수태(受胎) 기구의 삽입을 기다리는 암소처럼 얌전히 시간을 보내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녀가 내세운 전공은 영문학이었지만 학생들은 주로 남자들과 접촉할 때의 몸가짐과 교양 습득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영문학을 버리고 간호학을 택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그녀는 간호학이란 당장 써먹기가 가능한 어떤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간호학 공부에서는 아무런 꿍꿍이속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중에 제니는 유명한 그녀의 자서전에서 너무나 많은 간호사들이 너무나 많은 의사들 앞에서 몸매를 전시했다고 썼지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녀가 간호사 생활을 그만둔 다음이었다.)              (P10)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우리 어머니는 외로운 늑대였다.”

보스턴 윅스 집안 출신인 필즈 부인이 시집올 때 비록 돈을 좀 가지고 오기는 했어도, 필즈 집안은 신발 때문에 운세가 편 셈이다. 여러 해 전에 구두 공장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필즈 집안이 발싸개 관리를 잘했다는 증거이다. 그들은 뉴햄프셔 해안의 개머리(Dog’s Head) 항구 널빤지 지붕을 얹은 커다란 집에서 살았다. 제니는 근무가 없는 날이나 밤에는 집으로 찾아갔는데, 그것은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고, 어머니가 늘 걱정하듯 ‘간호사라는 거렁뱅이 생활’을 하기는 해도 말투나 행실이 천박해지지 않았음을 어머니에게 납득시키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P11)   

 

이 추잡한 세상에서는 여자란 누구인가의 아내나 첩이 되어야 하고, 그 양자택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그냥 굶고 사는 모양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내도 못 되고 첩도 못 되면 그런 여자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모두들 야단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하나도 이상한 곳이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여러 해 후에 제니 필즈를 유명하게 만들어놓은 책의 서두에 나타날 내용이었다. 아무리 엉성하기는 해도 그녀의 자서전은 문학적인 자질과 인기 사이에 흔히 존재하는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평을 들었지만, 가아프는 어머니의 작품이 지닌 문학성이란 ‘시어스 로벅의 상품 목록과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P23-24)     


자서전에서 제니는 이렇게 썼다. “나는 직장생활을 원했고, 독신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섹스의 이단자가 되었다. 나중에 나는 아기를 원했지만, 아기를 얻기 위해 내 육체나 생활을 양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도 또한 나를 섹스의 이단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녀를 속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니 필즈의 자서전 [섹스의 이단자]라는 유명한 제목이 여기에서 연유했다.)                  (P26)    

 

제니는 군인들이 당한 비사고성(非事故性) 상황을 나름대로 구분하고 그 범주를 설정했다. 

1. 화상을 입은 장병들 가운데 (가장 난처한 환자들은 첼시 해군 병원에서 왔는데) 대부분은 함선에서 당했고, 비행기나 지상에서 당하기도 했다. 제니는 그들을 ‘외상(外傷)’이라고 불렀다. 

2. 곤란한 곳에 총을 맞았거나 피해를 받은 장병들은 내부에서 말썽이 생겼고 이들을 제니는 ‘급소(急所)’라고 불렀다.

3. 머리나 척추를 인공적으로 재조립해놓아서 제니가 보기에는 이제 ‘존재’조차 하지 않는 듯싶어 거의 신비할 정도로 여겨지는 부상병들도 들어왔다. 어떤 장병들은 마비 상태였고 어떤 장병들은 그냥 멍해 보일 따름이었다. 제니는 그들을 ‘결석생(缺席生)’이라고 불렀다.

때로는 결석생들 가운데 외상이나 급소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모든 병원에는 그들에 대한 명칭이 따로 있었다.

4. 그들은 ‘갔어’였다.

“우리 아버지는 ‘갔어’였다.”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어머니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큰 매력이었다. 나중에 얽혀들 일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P29-30)      

“어머니는 적을 필요로 하는 사람 같았다.”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현실이나 상상속에서 적은 어머니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어머니는 자연스러운 모성(母性)을 타고난 여자가 아니었고, 사실상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황이 하나도 없다고 의심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자아의식이 강했고, 시종일관 만사가 의도적이었다.”

가아프가 어렸던 시절에는 비계 스튜가 본 세상이 제니의 적이 되었다. 이 무렵은 ‘스티어링 입학을 위해 가아프를 준비시키던 시기’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그녀는 가아프의 머리가 자라서 귀의 없어진 부분들을 가리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가아프 특무 상사와의 관계에서는 용모가 요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아프가 잘생겼다는 사실에 놀랐다. 상사가 미남이었다고 하더라도 제니 필즈는 정말 그런 점은 의식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마치 선회 포탑 구조물에 알맞게끔 태어나기라도 한 듯 끝까지 몸집이 자그마하기는 했어도 어린 가아프가 얼굴이 잘생겼다는 점을 그녀는 깨달았다.           (P86-87)     


동계 스포츠 철이 시작되면서 제니는 아들이 너무 초조해하니까 마음이 아팠고, 무슨 형태의 운동이 더 좋은지를 왜 스스로 모르느냐면서 단순한 결정을 놓고 너무 심각해한다고 그를 꾸짖었다. 하지만 가아프는 스포츠가 단순한 오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아프에게는 오락으로 여겨지는 운동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는 끈질기게 투쟁해서 달성해야 할 어떤 대상이 있다고 믿는 듯싶었다. (자신에 관한 얘기를 하며 나중에 가아프는 “작가들은 재미로 독서를 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어린 가아프는 그가 작가가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전에, 그리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깨닫기도 전에, ‘재미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싶었다.

가아프는 동계 스포츠에 가입하기로 된 날을 진료소에 갇혀 보냈다. 제니는 그가 일어나지도 못하게 했다. “어쨌든 넌 어느 운동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잖아.” 그녀가 가아프에게 말했다. 그는 기침만 했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이건 인간으로서는 믿어지지도 않을 만큼 한심한 일이야.” 제니가 그에게 말했다. “이 거칠고도 삭막한 사회에서 십오 년이나 견디며 살았는데도 넌 지금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슨 운동을 해야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해 고민을 하고 앉았다니.” 

“난 나한테 적절한 스포츠를 찾지 못했어요. 엄마.” 가아프가 볼멘 소리를 했다. “난 꼭 운동을 해야 해요.”

“왜?” 제니가 물었다.             (P96)   

  

그는 스스로 ‘욕정’이라고 밝힌 감정에 관한 길다란 고백의 편지를 헬렌에게 썼고, 그것은 헬렌에 대한 보다 높은 감정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헬렌은 그런 얘기를 왜 자기한테 모두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견해로는 아주 잘 쓴 편지였다는 답장을 곧 보냈다. 편지는 예를 들면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단편소설보다 훨씬 잘 썼는데,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그녀는 별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쿠시 퍼시가 상당히 ‘멍청한 여자’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재미있는 애야.” 헬렌이 썼다. 그리고 만일 가아프가 스스로 표현했듯이 정말 욕정에 사로잡혀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면, 쿠시 같은 여자가 주변에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이 아니었을까?

가아프는 그녀가 흡족해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쓰기 전에는 헬렌에게 다시는 보여주지 않겠다고 답장했다. 그는 또한 대학에 가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선, 그가 대학에 가야 할 유일한 이유라고는 레슬링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정말 그런 수준에서라도 레슬링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스포츠를 강조하지 않는 어느 작은 대학에서 그냥 레슬링을 계속한다는 여건에서 아무런 의의를 찾지 못했다. “최고의 수준을 위해 노력할 때만 보람을 느끼게 마련이니까.” 가아프가 헬렌에게 썼다. 그는 레슬링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과연 정상에 오르기가 가능하기나 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글을 최고로 잘 쓰기 위해’ 대학에 가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리고 최고의 수준에 이르겠다는 생각을 그는 어디에서 갖게 되었을까?

헬렌은 그에게 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편지를 썼고, 가아프는 이 제안을 제니와 의논했다.

놀랍게도 제니는 아들이 대학에 가리라고 전혀 생각조차 한 일이 없었으며, 초급 학교를 나오면 대학은 필요 없다고 믿었던 터였다. “스티어링 학교에서 일류 교육을 모든 사람에게 제공한다던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야?” 제니가 말했다. “네, 얘긴, 네가 열심히 공부만 했다면, 이제는 교육을 다 받았으리라는 뜻이야. 안 그러냐?” 가아프는 교육을 다 받았다고는 느끼지 않았지만, 아마 그랬으리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딴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믿었다. 유럽에 관해서 제니는 흥미를 나타냈다. “글쎄,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구나.” 그녀가 말했다. “여기 눌러 살기보다는 훨씬 좋을 테니까.”

그제서야 가아프는 어머니가 그와 함께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에서 작가가 가기에 가장 좋은 곳을 내가 찾아보마.” 제니가 그에게 말했다. “나도 글을 좀 써볼까 하던 중이니까.”                (P137-138)    

 

“맙소사.” 가아프가 말했지만, 그는 어머니하고 같이 몇 잔 마셨다. 졸업식 날 밤, 별관의 모든 침대가 비었고, 그들이 들어가 잘 침대 이외에는 이부자리를 모조리 홀랑 벗겨놓은 텅 빈 진료소에 단둘이서 마주 앉았다. 가아프는 맥주를 마시면서 모든 일이 전환점을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가 읽었던 작품들 가운데 훌륭한 책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지만, 하기야 스티어링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독서에서는, 예를 들어 헬렌이나 제니하고는 상대도 안 되었다. 가아프는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찾아내면 읽고 또 읽는 습성이어서, 다른 작품은 기분이 내키지 않아 오랫도안 읽지 못하기가 보통이었다. 스티어링에서 지낼 때 그는 조셉 콘래드의 [밀정(密偵)]을 마흔네 번 읽었다. 그는 D.H.로렌스의 [섬을 사랑한 사람]을 스물한 번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고 싶었다.      

진료소 별관의 작은 아파트먼트 창 밖에는 스티어링 교정이 캄캄하고, 축축하고, 버림받은 모습이었다.

“글쎄,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 풀이 죽은 아들을 보고 제니가 말했다. “넌 스티어링을 졸업하는데 4년밖에 안 걸렸지만, 난 이 망할 놈의 학교를 18년이나 다녔어.” 제니는 별로 술을 마실 줄 몰라서, 두 깡통째 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가아프는 그녀를 침실로 안고 들어갔는데, 신발은 이미 벗었던 터라 몸을 뒤척이다가 찔리지 말라고 간호복의 핀만 뽑았다. 따뜻한 밤이어서 그는 어머니를 덮어 주지 않았다.             (P143-144)

     

제니가 침실로 돌아간 다음에 가아프는 쿠시를 진료소 본관으로 이어진 지하도로 몰래 끌고 들어갔다. 18년 동안이나 그는 이 길에 익숙했다. 그는 별관 어머니의 아파트먼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는데, 그곳은 수술실과 마취실 근처 접수부의 큰 사무실 위였다.

이리하여 가아프에게는 섹스가 영원히 어떤 특별한 냄새와 감각과 관련 지어졌다. 그 경험은 비참한 시기를 거쳐 마침내 얻게 된 보람이어서, 은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느긋하게 기억에 남게 된다. 냄새는 그의 머릿속에서 깊이 개인적이면서도 막연히 병원 분위기와 연결되어 남았다. 주변 환경은 한없이 삭막했다. 가아프에게는 섹스가 버림받은 우주 속에서 이루어진 혼자만의 행위, 때로는 비가 온 후에 이루어진 행위로 그의 마음속에 남았다. 그것은 항상 감격적인 희망에 찬 낙관적인 행위였다.

쿠시는 물론 가아프에게 대포에 관한 여러 가지 영상을 불러일으켰다. 세 개들이 꾸러미의 세 번째 콘돔까지 다 쓰고 난 다음에 그녀는 한 통밖에 안 샀느냐고, 가진 것이 더 없느냐고 물었다. 레슬러면 누구나 기운을 잔뜩 쓰고 난 다음의 피로감을 너무나 좋아하게 마련이어서, 가아프는 쿠시의 불평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P148)     


가아프를 데리고 제니가 유럽으로 갔을 때, 대부분의 열여덟 살난 아이들보다 가아프는 독방 감금 상태나 마찬가지인 작가의 생활에 대한 각오가 훨씬 잘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라는 세계 속에서의 삶에 벌써부터 길이 들었으며, 따지고 보면 그는 독방 감금 상태가 완전히 자연스러운 생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가아프는 그에게 친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런 묘한 사실이 제니 필즈에게는 전혀 묘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예의를 갖춘 관계이기는 했어도 제니 필즈에게는 어니 홈이 첫 친구였다.                 (P151)     

그해 늦여름과 초가을에 가아프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걷거나 전차를 타고, 비엔나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그는 헬렌에게 ‘사춘기의 감정을 형성하는 한 부분은 자신을 이해해줄 만큼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썼으며, ‘비엔나에는 나 자신을 닮은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비엔나가 그의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도 썼다.

그의 판단력은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정확했다. 비엔나에는 가아프와 나이가 같은 사람들마저도 드물었다. 1943년에는 비엔나에서 사람이 별로 많이 태어나지 않았고, 마찬가지 얘기지만, 1938년 나치 점령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 사이에 비엔나에서 태어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강간으로 태어난 아기의 숫자가 놀랄 정도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점령 기간이 끝난 1955년까지는 아기를 원하는 비엔나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비엔나는 17년 동안이나 외국인들이 점령했던 도시였다. 납득이 가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비엔나 사람들에게는 17년이라는 기간은 아이를 가지기에 좋거나 현명한 시기는 아닌 듯싶었다. 나이가 열여덟 살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지는 도시에서의 삶을 가아프는 경험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더욱 빨리 나이가 들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는 헬렌에게 편지에서 밝혔듯이 아직 살아 있는 도시가 아니라 ‘죽은’ 도시를 소장한 박물관이라는 인식을 비엔나에서 더욱 받게 되었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가아프의 관찰은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아프는 박물관 안에서 돌아다니기를 즐겼다. “보다 현실적인 도시라면 나에게 그토록 아늑할 리가 없었으리라.” 나중에 그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비엔나는 숨이 넘어가는 단계여서, 꼼짝 않고 누워 나로 하여금 그 도시를 보고, 그 도시를 생각하고, 그 도시를 다시 보게 해준다. 생동하는 도시에서라면 나는 그토록 많은 사실을 절대로 인식하지 못하리라. 생동하는 도시들이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이렇듯, T.S. 가아프는 비엔나를 ‘인식’하고, 헬렌 홈에게 편지를 쓰고, 고독한 삶을 선택하고도 모자란다는 듯 창작의 외로움까지 곁들이게 된 어머니를 위해 집안 살림을 해가며 따뜻한 몇 달을 보냈다. 헬렌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에서 가아프는 제니를 익살맞게 ‘작가이신 나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조금이라도 글을 써내는 제니가 부러웠다. 그는 작품이 꽉 막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는 상상해낸 가족이 수없이 많은 모험을 거치게 해도 되겠지만, 그래서 무엇을 얘기한다는 말인가? 어떤 B급 레스토랑은 디저트가 어찌나 형편없는지 평생 가봤자 A급이 되기는 다 틀렸고, 어떤 B급 호텔은 로비의 퀴퀴한 냄새가 절대로 사라지지 않겠으며 틀림없이 C급으로 떨어지리라. 어쩌면 검열관 가족 가운데 누가 A급 레스토랑에서 식중독에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느 팡숑에는 미친 사람들, 심지어는 범죄자들이 숨어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보편적 진리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가아프는 그에게 보편적인 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P157-158)     


가아프는 그릴파르처의 유명한 작품이 유치한 신파조라고 생각했으며, 표현 방법이 어색하고 촌스럽게 감상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작품은 그에게 흔히 주인공이 우유부단하게 질질 끌고, 실질적인 삶에서는 모든 면에서 실패하는 19세기의 러시아 소설들을 지극히 막연하게 연상시켰지만, 가아프의 견해로는 도스토예프스키라면 그런 너절한 글에서도 흥미를 느끼게끔 몰고 가는 힘을 과시했겠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시시한 그릴파르처의 얘기들은 지루하기만 했다.

같은 고서점에서 가아프는 영어로 번역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샀는데, 그는 스티어링에서 라틴어 시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필수적으로 읽어야 했었지만 지금까지 영어로는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비엔나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서점 주인에게 들었기 때문에 책을 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썼다. “인간의 삶에서 그가 살아 가는 세월은 한순간일 따름이요. 그의 존재는 끊임없는 흐름이고, 지각은 희미한 불빛이며, 육체는 벌레들이 뜯어먹고, 영혼은 어지러운 소용돌이, 운명은 어둡고, 명성은 뿌리가 없노라. 간단히 얘기하면 육체를 이루는 모든 것은 흐르는 물이요, 영혼을 이루는 모든 것은 꿈과 거품이더라.” 가아프는 어쩐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 글을 썼을 때 비엔나에서 살았으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음울한 사상의 주제는 분명히 대부분의 진지한 작품에 담긴 그런 주제이며, 그릴파르처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차이는 주제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가아프는 생각했다. 그 차이는 지성과 우아함에서 연유하며, 그런 차이점이 예술이라고 가아프는 결론을 지었다. 이 빤한 발견이 웬일인지 그를 기쁘게 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가아프는 그릴파르처의 작품에 대한 비판적 서론에서 그릴파르처가 ‘민감하고, 고뇌하고, 광적으로 피해망상적이고, 자주 조울증을 나타내고, 까다롭고, 우울증으로 질식당했으며, 간단히 얘기하면 복잡한 현대인’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그는 또한 지극히 형편없는 작가이기도 했다.”

프란츠 그릴파르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확신이 젊은 가아프에게는, 작품이라고는 하나도 쓰기 전이었어도, 예술가로서 참된 자신감을 처음으로 제공한 듯싶었다. 아마도 모든 작가의 삶에서는 어느 다른 작가가 작가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공격을 받아야 할 그런 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가엾은 그릴파르처에 대한 가아프의 살인 본능은 거의 레슬링 기술이나 마찬가지여서, 가아프는 마치 다른 레슬러와 시합을 벌이는 상대방을 관찰해서 약점을 알아내어 훨씬 우월한 입장에서 겨루는 그런 입장이었다. 심지어 그는 제니더러 [가난한 악사]를 읽으라고 강요했다. 그녀의 ‘문학적’ 판단을 가아프가 물었던 몇 번 안 되는 경우의 하나가 이때였다.

“거지 같구나.” 제니가 딱 잘라 말했다. “유치해, 신파조야. 알맹이도 없고.”

그들은 두 사람 다 기뻐했다.             (P162-163)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인용하고 프란츠 그릴파르처를 마구 깔아뭉개는 길고도 교만한 편지를 헬렌에게 썼다.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1872년에 영원히 죽었으며, 값싼 포도주나 마찬가지로 비엔나에서 조금만 먼 곳으로 가도 상하고 만다.”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일종의 몸을 푸는 운동과 마찬가지였는데, 아마도 헬렌은 그런 사실을 알았으리라. 편지는 미용체조인 셈이어서, 가아프는 편지마다 사본을 만들어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원본으로 간직하고 사본만 헬렌에게 보냈다. “난 도서관이 된 기분이야.” 헬렌이 그에게 썼다. “마치 가아프가 나를 서류철 보관함으로 사용하려는 눈치 같아.”                (P164)  

   

(집까지 타고 가기로 가아프가 동의한) 택시 속에서 가아프는 어머니에게 비엔나의 매음 제도를 설명했다. 제니는 매음이 합법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놀라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토록 많은 다른 곳에서 그것이 ‘위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것이 왜 위법이어야 하지?” 그녀가 물었다. “여자가 왜 원하는 대로 육체를 사용하지 못한단 말야? 그것을 위해 돈을 낼 사람이 나선다면, 그것도 너저분한 또하나의 거래에 지나지 않는데 말야. 이십 달러라면 그런 일에서는 많이 내는 셈이니?”

“아뇨, 상당히 괜찮은 가격이죠.” 가아프가 말했다. “적어도 미인들에게는 아주 싼 값예요.”

제니는 그의 뺨을 때렸다. “너 그런 거 아주 환하구나!” 그러더니 그녀는 미안하다고 그랬는데, 여지껏 한 번도 아들을 때린 적이 없었지만, 제니는 이 거지 같은 욕정, 욕정, 욕정! 그 따위 것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P175)     

가아프는 샬로트와 같이 있으면 불안했고, 그녀가 자기를 너무 어리다고 생각할까봐 자신도 역시 글을 쓴다는 얘기를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가아프는 때때로 자기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 그리고 그는 누구에게도 얘기를 할 만한 작품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는 제목을 바꾼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는 이제 제목을 ‘그릴파르처 하숙’으로 정했고, 이 작품에서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는 제목이 처음이었다. 제목은 그가 초점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중요한 사건이 거의 모두 벌어질 장소, 단 하나뿐인 장소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제목은 또한 등장인물들에 관해서, 그러니까 (프란츠 그릴파르처의 이름을 붙일 정도라면 비엔나에서는 작고, 처량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작고 처량한 어느 한 팡숑에 사는 분류 검열관의 가족과 다른 거주자들에 관해서 훨씬 일관성을 유지하며 생각하도록 도와주었다. ‘다른 거주자’들이란 가아프가 상상하기에 별로 훌륭하지는 않지만 머물 곳이 달리 없는 일종의 곡예단도 포함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그들을 받아 주지도 않으리라.

분류의 세계에서는 모든 경험이 C급 정도이리라.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다보니 가아프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참된 방향을 서서히 잡아나가기 시작했는데, 그의 생각이 옳기는 해도 너무 새로워서 그런 글을, 심지어는 그 글에 관한 얘기조차도 쓰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헬렌에게 편지를 더 많이 쓸수록 그는 보다 중요한 창작을 점점 덜 하게 되었고, 상상력을 가장 큰 힘으로 타고나지는 않았던 어머니하고는 이런 얘기를 터놓고 하기도 난처했다. 물론 이런 토론을 샬로트와 조금이라도 늘어놓았다면 그는 바보가 된 기분을 느꼈으리라.         (P177-178)     

그는 [그릴파르처 하숙]을 제쳐놓았다. 언젠가는 풀리겠지, 가아프는 생각했다. 그는 더 많이 알아야 했고, 그러려면 비엔나를 보고 배우기만 하면 되었다. 비엔나는 그를 위해 꼼짝 않고 기다렸다. 삶은 그를 위해 꼼짝 않고 기다리는 듯싶었다. 그는 샬로트도 무척 열심히 관찰했고, 어머니가 하는 모든 일을 눈여겨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는 너무 젊었다. 나에게 필요한 힘은 통찰력이야, 그는 생각했다. 보편적인 진리, 자기 나름대로의 통찰력이, 거의 무의식적이지만 무척 필요한 줄넘기, 작은 육상 경기장에서의 구보, 역도 따위, 또다른 레슬링 시즌을 위해 연습이라도 하는 듯 그는 속으로 거듭 다짐했다 — 언젠가는 해결이 날 거야.         (P201)  

   

작품을 쓰지 않을 때면 가아프는 쇤부른 궁전 주변의 광활한 터와 공원의 한 부분을 이룬 동물원으로 가서 긴장을 풀었다. 가아프가 보기에는 동물원의 여러 건물이 전쟁으로 4분의 3이나 파괴된 폐허 같았으며, 동물을 수용하려고 부분적으로 복구 공사를 벌였다. 가아프는 동물원이 아직도 비엔나의 전쟁 기간 동안에 존재한다는 괴이한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시대에 관한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밤에 잠을 청하느라고 그는 아주 구체적인 소재를 골라, 나치와 러시아의 점령 기간 동안의 비엔나 역사를 읽었다. 이것은 그의 작품 [그릴파르처 하숙]에 끊임없이 드러나는 죽음의 주제와 관련이 없지도 않았다. 가아프는 무엇을 쓸 때면 모든 요소가 서로 관련이 맺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엔나는 죽어가는 중이었고, 사람들이 사는 집과는 달리 동물원은 전쟁의 피해로부터 제대로 복구가 되지 않았다. 도시의 역사란 한 가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여서 밀착감과 심지어는 애정도 보여주지만 결국은 죽음이 모든 사람을 갈라놓는다. 오직 기억의 생생함만이 죽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히 살아남게 하고, 작가가 할 일이란 허구로 지어낸 소설이 우리들의 개인적인 기억만큼이나 생생하도록 모든 일을 인간적으로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그는 슈빈트가세의 아파트먼트 현관 돌벽이 기관총 사격을 받아 생긴 구멍들을 만져보았다. 이제서야 그는 할머니의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그는 한 젊은 작가가 누구하고인가 같이 살아야 할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느껴서 그녀와 같이 살기로 결심했노라고 헬렌에게 편지를 썼으며, 섹스가 필수적인데도 그것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계획’이나 하느라고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므로, 필요하다면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제안도 했다. 아예 섹스와 생활을 같이 하는 편이 더 좋겠다고 가아프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P214-215)   

  

가아프는 그의 작품에 대한 모욕이나 거부를 기억하는 데는 유별날 정도로 바보 같은 자존심이 강했다. 헬렌도 자기 나름대로 맹렬한 자존심의 소유자였으니까 다행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결국 그를 증오하게 되었으리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운이 좋았다. 많은 부부는 같이 살다가 그들이 사랑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어떤 부부는 전혀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살아가다가 난처한 순간에야 진실을 깨닫게 된다. 가아프와 헬렌의 경우에는 서로 상대방을 거의 몰랐지만 육감이 발달했으며, 고집스럽고 신중한 과정을 통해서이기는 했어도 결혼 한참 후에야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서로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있어서 너무 바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를 별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 헬렌은 입학한지 이 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겨우 스물세 살에 영문학 박사 학위를 땄으며, 스물네 살에 얻은 첫 직장은 여자대학의 조교수 자리였다. 가아프가 첫 장편소설을 완성하는 데는 오 년이나 걸렸지만 작품은 훌륭했고, 돈은 전혀 받지 못했어도 젊은 작가로서는 존경받을 만한 명성을 얻었다. 이 무렵에는 헬렌이 생활비를 벌었다. 헬렌이 학교를 나가고 가아프가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제니가 돈을 관리했다.        (P233)     


존 울프는 제니에게 미리 경고를 했었다. “요즈음에는 적절한 시기에 대두한 올바른 목소리로 간주되느냐, 아니면 완전히 틀렸다고 비난을 받느냐, 두 가지 가운데 하나죠.” 그녀는 적절한 시기의 올바른 목소리로 간주되었지만, 존 울프가 좋아하는 작가들만 데리고 가는 레스토랑에 간호사 제복을 입은 새하얀 모습으로 앉아 있던 제니 필즈는 “여권주의자”라는 말에 거북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 어휘의 뜻을 확실히 몰랐지만, 어휘 자체는 그녀에게 여성 위생과 발렌타인 치료를 연상시켰다. 뭐니뭐니 해도 그녀는 전에 간호사로 훈련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을 따름이었으며,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아니었으므로 선택을 옹호하기 위해 무슨 얘긴가 해야 되겠다는 필연성을 느꼈다고 수줍어하며 말했다. 엉뚱하게도 탤라해시의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자들의 어느 작은 집단은 제니의 선택이 ‘아주’ 보편적이라고 느꼈으며, 그들 나름대로 임신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자그마한 물의를 일으켰다. 얼마 동안 뉴욕에서는 사고방식이 독특한 여자들 사이에 이런 증상이 ‘제니 필즈한다’는 말로 통했다. 하지만 가아프는 그것을 항상 ‘그릴파르처한다’고 표현했다. 제니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는 남자나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의식에 따라 결정할 능력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고 느꼈을 따름이었고, 그래서 여권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여권주의자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P237)    

 

가아프는 두 번째 소설을 집어치우고 ‘두번째’ 소설에 착수했다. 앨리스와는 달리 가아프는 참된 작가였는데, 그 이유는 그녀보다 글을 아름답게 쓰기 때문이 아니라, 가아프의 표현을 빌리면 ‘무엇인가를 끝내고 다른 무엇인가를 시작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한다’는, 모든 예술가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끝마침과 시작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아프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빨리 쓰거나 많이 쓰지를 않았고, 항상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서 일했을 따름이다.

앨리스에게서 남은 정력으로 두 번째 작품이 팽팽하게 부풀었음을 가아프는 알았다.          (P283-284)  

   

이 작품은 주인공들에게 쓰라린 상처를 주는 대화와 섹스로 가득했는데, 섹스는 죄의식 속에서도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섹스를 원하게 만들었다. 이런 역설적인 면을 거론한 몇몇 비평가는 그런 상황을 ‘희한하다’고도 했다가 ‘멍청하다’고도 했다. 어느 평론가는 이 소설은 ‘뼈아프게 진실된’ 작품이라고 했지만 뼈아픈 요소가 ‘하급 고전 정도의’ 수준으로 소설을 타락시켰다는 사실도 서둘러 지적했다. 만일 비통한 분위기를 좀더 ‘걸러내었더라면 보다 순수한 진실이 드러났으리라’고 어느 평론가는 그럴듯하게 평했다.

소설의 ‘주제’에 관한 어처구니없는 얘기는 그뿐이 아니었다. 어느 평론가는 섹스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심오한 자아를 각성하게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지녔던 심오함을 상실하는 것도 바로 섹스를 하는 동안이라고 이 소설이 주장하는 듯싶다는 개념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가아프는 주제란 전혀 없다고 말했으며, 어느 기자에게 ‘결혼생활을 다루는 진지한 희극이며 섹스에 관한 풍자극’을 썼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그는 ‘우리들이 간직한 대부분의 진지한 의도를 인간의 섹스가 우스꽝스럽게 만든다’고 썼다.

하지만 가아프나 평론가들이 무슨 소리를 했든지 간에 책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간통한 아내를 둔 남편의 두 번째 바람]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소설에 대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혼란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기나긴 기다림]보다 몇 천부 덜 팔렸고, 비록 두 번째 소설은 그런 경우가 흔하다고 존 울프가 가아프를 안심시키려고 애썼지만, 가아프는 평생 처음으로 참패를 의식했다.            (P284-285)     


헬렌은 [기나긴 기다림]의 경우에는 호의를 보이며 많은 동료 선생이 적어도 대화나마 전개시켜보려고 그랬지만, 지금은 영문과에서 [간통한 아내를 둔 남편의 두 번째 바람]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헬렌은 소설이 그녀만의 세계를 침범했다고 말했으며, 이따위 장난으로부터 가아프가 곧 졸업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맙소사, 사람들이 이걸 당신 얘기라고 그래?” 가아프가 아내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멍청한 선생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학교 가면 당신이 복도에서 방귀라도 뀌나? 과에서 회의를 할 때 당신 어깨가 빠지기라도 했어? 한심한 해리가 교실에서 말을 더듬고?” 가아프가 고함쳤다. “내가 장님이야?”

“그래, 당신은 눈이 멀었어.” 헬렌이 말했다.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기준을 세웠지만, 당신 기준을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까? 당신이 아무리 많이 지어내고, ‘상상을 통한’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건 모두 ‘당신의 경험’이란 말야. 사람들은 그것이 내 얘기라고 생각하고 당신 얘기라고 생각해. 그리고 때로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소설 속의 장님은 지질학자이다. 사람들이 내가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걸 보기라도 했나?” 가아프가 소리를 질렀다.

고창에 걸린 여자는 병원에서 간호사 보조로 자원봉사를 한다. “우리 어머니가 불평하는 거 한 번이라도 봤어?” 가아프가 물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는 한 번도 방귀를 뀐 적이 없고, 항상 사태 파악을 한 다음 집에서만 뀌었다고 지적하는 편지를 한 번이라도 나한테 보냈어?”

하지만 제니 필즈도 [간통한 아내를 둔 남편의 두 번째 바람]에 관해서 평을 하기는 했다. 그녀는 거의 보편적인 중요성이 없고 실망만 주는 하찮은 주제를 선택했다고 가아프에게 말했다. “섹스 얘기를 하는 거야.” 가아프가 말했다. “이건 고전이란 말야. 고전, 성욕이라고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여자가 보편성이 어떻고 설교를 하다니, 그리고 순결을 선서하는 교황이 수백만 명을 위한 피임 문제를 결정하고, 세상이 미쳐버렸어!” 가아프가 소리쳤다.          (P288-289)   

  

처음에 그가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까닭은 창작 때문이었다. 이제는 창작을 위해서 그는 직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해낼 만한 주인공들도 바닥이 나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어쩌면 사실은 그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못 쓴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P309)     

헬렌은 가아프가 식구들을 위해서 마련해놓은 음식을 보고 가아프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어서, 특별한 요리가 나오면, 무슨 축하할 일이 생겼다는 뜻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잘된 일이라고는 음식뿐이었고, 가아프를 지루함으로부터 구해줄 일이 요리뿐이었는지도 모를 노릇이기도 했다.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조심하고, 좋은 재료를 쓰고, 한 가지도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다면, 아주 훌륭한 음식을 요리하게 된다. 어떤 음식을 마드느냐 — 때로는 하루 중에서 건져낼 만한 보람찬 소득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인 경우도 생긴다. 내가 발견한 바로는, 작품 집필에서는, 모든 올바른 재료를 마련하고, 시간과 정성을 잔뜩 들여도 전혀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도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미치지 않으려면 요리가 좋다.”                   (P311-312)    

 

“당신이 찾아낸 흥미 있는 일거리라는 건 뭐지?” 헬렌이 그에게 물었고, 가아프는 아내가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결혼생활 상담이지.” 가아프가 말했다. 그가 만든 토마토 소스가 부글거렸고, 부엌은 짙은 냄새로 가득했다. 헬렌은 전화를 든 채 곰곰이 생각하느라고 침묵을 지켰다. 그런 일을 할 만한 어떤 자격을 갖추었느냐고 선뜻 그에게 물어보기가 그녀에게는 어려우리라는 사실을 가아프는 알았다.

“당신은 작가야.”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자격을 갖췄지.” 가아프가 말했다. “인간관계의 파탄에 대한 명상을 하며 여러 해를 보냈고,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이 드러나는지 가려내려고 몇 시간씩이나 보내고,” 가아프는 따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계속했다. “사랑의 실패, 타협의 복합성, 연민을 바라는 욕구.”

“그럼 그런 걸 작품으로 써.” 헬렌이 말했다. “무얼 더 바라는 거야?” 그녀는 어떤 응답이 나올지 환히 알았다.

“예술이란 아무도 도와 주지를 못해.” 가아프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방법이 없어서, 그걸 먹지도 못하고, 거기서 안식처나 옷을 얻지도 못하며, 병이 났을 때 고쳐주지도 않아.’ 이것이 예술의 근본적 무용성(無用性)에 관한 가아프의 이론임을 헬렌은 알았고, 그는 예술이 어떤 종류의 사회적 가치도 없으며, 반드시 가치를 지녀야 하고, 그런 가치를 지니기가 가능하다는 개념을 부인했다. 예술은 따로 존재하고 사람들을 돕는 일도 따로 존재하므로,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뭐니뭐니 해도 어머니를 닮았던 그는 두 가지를 다 더듬거리는 격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론에 입각해서 그는 예술과 사회적 책임을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행위로 인식했다. 이 두 분야를 어떤 엉터리 녀석들이 결합시키려고 시도할 때면 일이 복잡해지기 마련이었다. 가아프는 문학이 사치품이라는 신념 때문에 평생 마음이 편치 않았고, 문학이 보다 기본적이기를 원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그 문학을 증오했다.                (P318-319)    

 

“당신은 작가죠.” [영원한 남편]을 그에게 흔들어 보이며 고발이라도 하는 듯 랄프 부인이 말했다. “이 작품 어떻게 생각해요?”

“훌륭한 작품이죠.” 가아프가 말했다. 말끔하게 복잡하고, 사악한 인간의 반목이 가득한 그 작품을 다행히 그는 기억했다.    

“내 생각엔 이건 병적인 얘기 같아요.” 랄프 부인이 그에게 말했다. “난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지 알고 싶어요.”

“글쎄요.” 가아프가 말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너무나 복합적이고, 상황 설정이 너무 애매모호하죠.”

“여주인공들은 물건이라고도 말하기가 어려워요.” 랄프 부인이 말했다. “형체조차 전혀 없다니까요. 그들은 남자들이 얘기하고 가지고 노는 개념에 지나지 않아요.” 그녀는 책을 창 밖으로 가아프에게 던졌고, 그의 가슴에 맞고 책이 차도 언저리에 떨어졌다. 그녀는 무릎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토마토 소스가 그녀의 사타구니를 표적의 과녁처럼 표시한 드레스의 얼룩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맙소사, 과연 나다운 꼴이구만.” 얼룩을 노려보며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가아프가 말했다. “얼룩이 잘 안 지워지겠어요.”             (P326)

                
 [2]

하지만 그녀에게는 새롭기만 했던 어떤 감정들 가운데 헬렌이 싫어한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녀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해 항상 옳다고 느꼈던 헬렌 홈으로서는 이제 와서 죄의식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헬렌은 죄의식을 벗어난 마음의 상태에 거의 도달한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완전히 그 상태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아직은.

필요한 감정을 그녀에게 제공하게 될 사람은 가아프였다. 아마도 그는 경쟁자가 생겼음을 인식한 모양이었는데, 가아프는 경쟁의식 때문에 창작을 시작했고, 비슷한 경쟁적인 충동에서 마침내 침체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헬렌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열심히 읽고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녀가 문학 이상의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었으리라고는 깨닫지 못했지만, 가아프는 어떤 다른 사람의 ‘글’ 때문에 아내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작가로서의 전형적인 질투를 느꼈다. 가아프는 처음에 [그릴파르처 하숙]으로 헬렌에게 사랑을 구했다. 다시 그녀에게 구애를 해야 한다고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젊은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기 ‘시작’하게 만드는 동기로는 그만하면 납득이 갔지만, 이제는 그의 집필, 특히 그토록 오랫동안 중단했던 다음인지라 그가 글을 쓰기 위한 동기로는 그런 정도의 이유라면 아리송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고, 샘물이 다시 차기를 기다리고, 적절한 침묵의 기간을 거쳐 미래를 위한 저서를 준비하기에 필요한 과정을 거치던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헬렌을 위해 쓴 새 단편소설은 착상에서 어딘가 억지로 꾸민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드러냈다. 그 작품은 삶의 내면에 관한 참된 반응을 표출시키기보다는 작가의 불안을 배설하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P30-31)    

 

헬렌은 조금 더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며칠 동안 초조하게 가아프를 지켜보았고, 언젠가는 가아프와 섹스를 하며 실제로 죄의식을 느꼈는데,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혹시 무슨 일이 잘못 되지나 않았는지 남편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섹스를 했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꼈다.                 (P62)  

   

“글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구만”

가아프가 썼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가아프 자신은 이제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려고 하면 지극히 끔찍한 소재만이 머리를 들고 그를 맞았다. 그는 그것을 잊고, 기억 속에 그것을 소중히 간직해야 하며, 예술을 통해 흉악하게 과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광증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가아프가 글을 쓰겠다는 생각만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소재라고는 추잡한 곁눈질과, 방금 쏟아진 내장 덩어리와, 죽음의 악취 따위였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지 않았고, 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P117)     

[벤젠하버가 본 세상]을 시작한 때는 가아프의 회복기였던 늦여름이었다. 이 무렵에 마이클 밀튼은 퇴원해서 비탄에 빠진 얼굴을 하고 수술 후 구부정한 모습으로 걸어다녔다. 제대로 배액(排液)을 못한 결과로 감염이 되고 흔한 비뇨기의 병으로 악화되어 그는 음경의 나머지 4분의 1도 수술을 받아 제거해야 했다. 가아프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고, 이 무렵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도 조금도 마음이 기쁘지 못했으리라.  

헬렌은 가아프가 다시 작품을 시작했음을 알았다.

“난 그걸 안 읽겠어.” 그녀가 말했다. “단 한 단어도, 당신이 그걸 써야 한다는 마음은 알지만, 난 전혀 작품을 보고 싶지 않아. 당신 기분을 해칠 뜻은 없지만, 당신이 이해를 해야 해. 난 그 사건을 잊어야만 하고, 당신이 꼭 그것을 써야겠다면, 그야 써야지.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묻어버리니까.”

“이건 꼭 그 사건을 다룬 것은 아냐.” 가아프가 말했다. “난 자서전적인 소설은 쓰지 않아.”

“그것도 알아.”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난 어쨌든 작품은 읽지 않겠어.”

“물론 나도 이해는 해.” 그가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한 작업임을 그는 전부터 알았다. 외로운 인간이 그만큼 더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돌처럼 단단한 여자니까 제니는 읽으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제니는 그들이 모두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새로운 환자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도 보았다.                  (P119-120)  

   

“내가 뭘 읽을 땐 이유야 항상 똑같죠.” 질시가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서예요.”

존 울프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책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요.” 질시가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건 당신도 알잖아요. 그리고 또 어떤 책들은 말예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빤하니까 그것도 읽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이 책 말예요.” 질시가 말했다. “이 책은 어찌나 병적인지 무슨 일인가 벌어지리라는 건 알지만, 그게 뭔지 상상이 가질 않아요. 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가 있으려면 자신도 병적인 사람이어야 해요.” 질시가 말했다. 

“그래서 그걸 알아내려고 읽었군요?” 존 울프가 말했다.

“책을 읽는 다른 이유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질시 슬로퍼가 말했다. 그녀는 (커다란 뭉치여서) 헉헉거리며 원고를 존 울프의 책상에 놓고는 월요일이면 질시가 허리띠처럼 뚱뚱한 허리에 감고 다니는 (진공 청소기의) 길다란 연결선을 집어들었다. “그게 책으로 나온 다음에 말예요.” 원고를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나도 한 권 얻었으면 좋겠군요. 상관없으시다면 말예요.”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한 권 갖고 싶어요?” 존 울프가 물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요.” 질시가 말했다.

“이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잖아요.” 존 울프가 말했다. “왜 다시 읽으려고 그러죠?”

“뭡니까.” 질시가 말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이었는데, 존 울프는 질시 슬로퍼의 졸리운 표정은 보았지만 지금까지 난처해하는 표정을 본 적은 없었다. “있잖아요, 빌려주려고요.” 그녀가 말했다. “세상 남자들이 어떤 위인들인지를 상기시켜주어야 할 내가 아는 사람이 생각날지도 모르죠.” 그녀가 말했다.                    (P200-201)     


“너무나 진실처럼 느껴진다구요?” 존 울프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걸 당신은 모르시나요?” 질시가 그에게 물었다. “어떤 책이 참되냐 아니냐를 만일 당신이 모른다면 정말이지 우린 서로 직업을 바꿔야 할지도 몰라요.” 질시가 노래하듯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이제 진공 청소기의 줄을 꽂는 세 갈래짜리 튼튼한 플러그를 권총처럼 손으로 움켜쥐고 웃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기는 하는군요, 울프 선생님.”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화장실을 어느 정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할지를 모르실 테니까요.” 그녀가 책상으로 가서 그의 휴지통을 들여다보았다. “언제 휴지통을 비워야 하는지도 모르실 테고요.” 그녀가 말했다. “책이 진실할 때는 그것이 진실하다고 느껴져요.” 그녀는 짜증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그래! 거지 같은 인간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그 책은 진실한 거예요. 그러면 그 책이 참되다는 걸 우린 알게 되죠.” 질시가 말했다.         (P201-202)     

가아프의 견해로는 그것이 책을 읽게 만드는 가장 졸렬한 이유였다. 자신의 작품에 관해서 그 가운데 얼마만큼이 ‘진실’이며, 얼마만큼이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싫다고 가아프는 늘 말했다. 질시 슬로퍼가 얘기하던 좋은 뜻에서의 ‘진실’이 아니라, ‘현실생활’에서의 진실, 가아프는 굉장한 인내심과 자제력을 동원해서, 비록 그런 요소가 내포되었을 때라도 자서전적인 바탕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가장 흥미가 없는 수준의 독서라고 말하기가 보통이었다. 그는 소설이라는 예술은 참되게 ‘상상’하는 행위이며, 어떤 예술이나 마찬가지로 선택 과정이라고 항상 말했다. 추억이나 개인적인 얘기, ‘추억거리도 안 되는 우리 삶의 모든 경험의 집합’이란 소설의 대상이 되기가 어렵다고 가아프는 말했다. “소설이란 삶보다 훨씬 잘 다듬어져야 한다.” 가아프가 썼다. 그리고 그는 ‘개인적인 역경의 엉터리 이정표’라고 그가 이름지었던 현상, 그러니까 그들의 삶에서 무슨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었기 때문에 그들이 쓴 책이 ‘중요’해진 작가들을 끊임없이 혐오했다. 그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었기 때문에 소설의 한 부분을 이룬다면 그것은 ‘가장 나쁜’ 이유라고 썼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언젠가는 실제로 일어났었다!” 그는 화를 냈다. “소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는 그 상황에서 그것이 발생한다는 조건이 완벽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P207)  

   

그리고 존 울프는 이것도 알았다 — 대부분의 독자들이 우선 알고 싶어하는 대상들 중에는 저자의 ‘삶’에 관한 모든 내용이 포함되었다. 존 울프는 가아프에게 편지를 썼다. “상상력이 제한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발전시킨다는 개념이 단순한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아요.” [벤젠하버가 본 세상]의 표지 날개에서 존 울프는 가아프의 중요성에 관한 엉터리 의식(‘이름난 여권운동가 제니 필즈의 외아들’)과 가아프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감상적인 동정심(‘다섯 살 난 아들을 잃는 비극’)을 자극했다. 두 가지 내용이 모두 가아프의 소설과는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사실쯤은 존 울프로서는 깊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아프는 진지한 문학보다는 돈이 더 좋다는 소리를 잔뜩해서 존 울프의 화를 돋우었던 터였다.          (P208)  

   

“내가 어떻게 죽을지 알고 싶지 않아요?” 가아프가 물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자살을 할 거예요.” 그가 유쾌하게 말했다. “완전히 지반을 굳히기 위해서는 그것이 거의 필연적이라고 여겨져요. 내 얘긴 진담예요.” 가아프가 말했다. “현대의 추세로 보면 그것이 작가의 진정성을 인식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데 당신도 동의하시겠죠? 창작이라는 ‘예술’이 항상 작가의 진지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지는 못하게 마련이니까 때로는 한 인간의 개인적인 고뇌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필요가 생겨요. 자살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진지했음을 의미하는 듯싶어요. 그건 진실이에요.” 가아프가 말했지만, 그의 풍자가 불쾌해서 헬렌은 한숨을 지었고, 존 울프는 다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다음에는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진지성이 갑자기 작품에서 많이 두드러지게 되죠.” 가아프가 말했다.

가아프는 아버지이며 가장으로서, 그의 마지막 임무가 그것이라고 걸핏하면 짜증스럽게 말했고, 자살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들이 굉장히 열심히 흠모하는 시시한 작가들의 예를 즐겨 열거하고는 했다. 어떤 경우에는, 가아프까지도 정말 흠모했던 자살한 작가들 중 적어도 몇 명은 그 행위가 이루어진 순간 그들의 불행한 결정에 따른 이런 다행스러운 면을 그들이 미리 알아차렸기만을 가아프는 바랐다. 정말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란 적어도 자살을 낭만적으로 미화(美化)하지는 않았고, 문학세계의 구역질나는 한 가지 습성이라고 가아프가 생각했지만, 그런 행위가 그들의 작품에 부여한다고 간주되는 ‘진지성’을 그들이 탐탁하게 여기지 않음을 그는 너무나 잘 알았다. 독자들 그리고 평론가들 사이의 그 못된 습성.  

가아프는 또한 자기가 자살을 할 유형의 인간이 아님을 알았는데, 월트에게 사고가 생긴 후에는 약간 확신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그 사실을 알기는 알았다. 그는 자살이라면 강간만큼이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런 행위를 자신이 범하는 상상을 하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마땅히 농담은 배제하고 절망으로 뼈저린 편지를, 그가 남기게 될 최후의 말을 다시 한번 읽고 수정하는 동안 성공적인 그의 장난에 잔뜩 미소를 짓고 자살하려는 작가를 즐겨 상상했다. 가아프는 유서가 완벽해진 다음, 드디어 독자와 비평가들이 훨씬 훌륭하다고 여겨주게끔 만들어놓았음을 깊이 인식하고 음흉하게 웃으며 작가가 총이나 독약을 집어들거나 물로 뛰어드는 순간을 씁쓸하게 상상하고는 했다. 그가 상상했던 어느 유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백치 같은 그대들이 나를 잘못 판단하기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정말 병적인 착상이로구만.” 헬렌이 말했다. 

“작가로서는 완벽한 죽음이지.” 가아프가 말했다.                   (P219-220) 

    

울프는 자기가 [벤젠하버가 본 세상]을 ‘저질 통속소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해버렸던 터라 이제는 조심하는 중이었다. 가아프는 불쾌해하지는 않는 듯싶었다. “정말이지 굉장히 잘 쓴 작품이에요.” 울프가 말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딘가 통속소설 같고, 어쩐지 뭔가 너무 심한 기분이 들어요.”

가아프는 한숨을 지었다. “인생이란 저질 통속소설이에요, 존.” 가아프가 말했다.          (P224)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죽음이란 우리들이 준비를 갖출 때까지 기다려주기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죽음이란 방자하고, 기회만 나면 극적인 장난을 즐긴다.”           (P276-277) 

    

가아프 일가는 스티어링에 머물기로 했다. 그들은 평생 먹고 살 돈이 넉넉했고, 헬렌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아프는 할 일이 필요했다.

“당신은 작품을 써야 되겠지.” 헬렌이 지쳐서 물었다.

“당분간은 안 쓰겠어.” 가아프가 말했다. “어쩌면 절대로 다시는 안 쓸지도 몰라. 적어도 당분간은 안 쓰겠어.”

이 말이 상당히 심한 조로(早老) 현상의 징후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헬렌은 정신력을 포함해서 이미 소유한 것을 온전히 간직하려는 욕망에서 파생된 그의 초조감에 감염이 되었으며, 부부간의 사랑이 지닌 취약성을 남편이 그녀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는 사실도 의식했다.

가아프가 스티어링 체육부로 찾아가 어니 홈의 후임을 맡겠다고 자청했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수는 필요없어요.”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난 돈이라면 관심도 없고, 그냥 레슬링 코치가 되고 싶을 뿐예요.” 물론 가아프가 일은 훌륭하게 해내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분야였던 레슬링은 어니의 후임이 없다면 몰락하기 시작할 운명이었다.

“돈은 하나도 원하지 않는다고요?” 체육부장이 물었다.

“돈은 하나도 필요가 없어요.” 가아프가 말했다. “내가 필요한 것은 해야 할 무슨 일, 작품을 쓰는 게 아닌 어떤 다른 일이에요.” T.S. 가아프가 지금까지 배워서 할 줄 아는 바가 글을 쓰고 레슬링을 하는 두 가지뿐이라는 사실을 헬렌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가 (이 무렵에) 왜 작품을 쓰지 못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헬렌 혼자뿐이었으리라. 헬렌의 생각은 나중에 비평가 A.J. 함스가 밝힌 견해와 비슷했는데, 함스는 가아프의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인 과거와 점점 더 유사해짐과 동시에 점점 힘을 잃어간다고 했다. “점점 자서전적이 되어감에 따라 그의 작품은 자꾸 세계가 좁아졌고, 창작을 하기도 점점 거북해졌다. 기억을 파먹는 셈인 이런 작품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훨씬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빈약하고 독창력이 모자란다는 점을 그는 알았던 듯하다.” 함스가 썼다. 가아프는 [그릴파르처 하숙]의 눈부신 재능을 통해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토록 일찍 약속했던, 인생을 참되게 ‘상상’한다는 자유를 상실했다. 함스의 견해로는 가아프가 이제는 ‘기억’을 되살림으로써만 진실해질 수 있으며, 상상과는 뚜렷하게 다른 그 방법은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나쁠 뿐아니라 결실도 훨씬 적으리라는 지적이었다.               (P290-291)     


“사람들은 항상 편을 만들지.” 가아프가 말했다. “어딜 가나 말야.”           (P328)   

  

그는 이렇게 썼다. “에필로그는 단순한 시체 확인이 아니다. 에필로그는 과거를 청산한다는 형태로 사실은 우리들에게 미래에 관해서 하는 경고이다.”               (P347)   

  

이날은 유별나게도 그는 창작에 대해서 누구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어 열이 올랐고, 젊은이 휘트콤은 열심히 들었다. 돈 휘트콤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는 행위가 어떤 기분을 자아내는지 가아프가 그에게 한 얘기를 회고하게 된다. “그건 마치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기분이죠.” 그가 말했다. “아뇨,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죠. 그건 마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살아가게 하려는 투쟁 같아요. 끝에 가서는 죽어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말예요. 살아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그들이죠.” 결국 가아프는 흡족하게 느껴지는 그런 방법으로 이 개념을 표현했다. “소설가란 가망이 없는 환자들만 보게 되는 의사나 마찬가지예요.” 가아프가 말했다. 젊은 휘트콤은 어찌나 매료되었던지 그가 한 말을 적어두었다.               (P350)  

   

가아프는 헬렌을 쳐다보았는데, 그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눈뿐이었다. 그가 보니 헬렌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가아프는 눈으로 그녀에게 안심시키려고 했다 — 걱정하지 마, 내세(來世)가 없으면 또 어때? 가아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내 말을 믿어. (죽은 다음에) 죽음 다음에 죽음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예를 들면 섹스를 한 다음 태어남이 때때로 뒤따르니까, 자그마한 은총들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그리고 혹시 아주 운이 좋으면, 때로는 태어난 다음에 섹스가 있어! 아, 있어요. 앨리스 플레처가 그렇게 말하리라, 그리고 삶이 계속되면 당신에게는 정력을 지닐 희망이 있어, 가아프의 눈이 말했다. 그리고 추억이란 것이 있으니까, 절대로 잊지 마, 헬렌 그의 눈이 그녀에게 말했다.  

젊은 도널드 휘트콤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우리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아프는 그들이 레슬링 연습장에서 들고 나가기도 전에 죽었다. 그는 서른세 살, 헬렌과 같은 나이였다. 엘렌 제임스는 막 20대에 들어서는 참이었다. 던컨은 열세 살이었다. 어린 제니 가아프는 곧 세 살이 될 예정이었다. 월트는 살았다면 여덟 살이었으리라.         (P358)  

   

가아프가 죽었다는 뉴스는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인 [그릴파르처 하숙]이 당장 3판과 4판을 찍도록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격렬한 죽음이 장사를 위해서는 그토록 좋은 효과가 난다는 것을 보고 가끔 구역질을 느낀 존 울프는 기나긴 주말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는 출판계를 떠날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가아프가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생각하니 울프는 마음이 놓였다. 그의 문학적 진지성과 명성을 굳히는데 자신의 죽음이 자살보다 훨씬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가아프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나이 서른 셋에 훌륭한 단편소설 한 편과 세 권 가운데 한 권 반쯤 훌륭한 장편소설을 쓴 셈인 사람에게는 그리 나쁜 결과가 아니었다. 가아프가 죽음을 맞은 희귀한 상황은 사실상 어찌나 완벽했는지 존 울프는 가아프가 그 상황을 얼마나 흐뭇해했을지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울프의 생각에 그 죽음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해 가아프가 여태껏 써온 모든 글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는 희극적이고 추악하고 괴이하며, 우발적이고 한심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드러냈다. 존 울프가 질시 슬로퍼에게 말했듯이 그것은 오직 가아프만이 글을 썼을 그런 죽음의 장면이었다.

따지고 보면 가아프의 죽음은 사실상 일종의 자살이었다고 헬렌은 쓸쓸하게 꼭 한 번 말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의 삶 전체가 하나의 자살이었어요.” 그녀가 아리송하게 말했다. 나중에 헬렌은 그 말이 ‘그이는 사람들을 너무 화나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하게 된다.

적어도 그가 푸우 퍼시를 너무 화나게 만들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P358-359)    

 

“슬프게도 인생이란 훌륭하고 정통적인 소설처럼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가아프는 이렇게 썼다. “그와는 반대로 흐지부지 사라져야 할 자들이 흐지부지 사라지고 나면 끝이 닥친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하지만 허무주의자까지도 기억은 간직한다.”

휘트콤은 지극히 변덕스럽고 지극히 오만할 때의 가아프까지도 사랑했다. 

가아프의 물건들 중에서 헬렌은 이런 쪽지를 발견했다.

“내가 유언으로 무슨 거지 같은 소리를 하든지 간에, 제발 이런 말이었다고 전해줘. 나는 탁월함의 추구가 치명적인 습성이라는 진리를 처음부터 알았노라.”

아이들이나 개들이 그렇듯이 비판도 없이 가아프를 사랑했던 도널드 휘트콤은 그것이 진실로 가아프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그랬다.

“휘트콤이 그렇다고 그러면, 그건 그런 거예요.” 던컨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제니 가아프와 엘렌 제임스, 그들도 이 말에 동의했다.              (P366)   

  

가아프는 이렇게 썼었다. “무엇을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보다 좋은 일이다.”          (P396)     

다른 의사들이나 마찬가지로 제니 가아프는 이른바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신성한 선서를 함으로써, 비록 가아프는 ‘작가’의 야망에 관해서 그런 얘기를 했지만 어쨌든 언젠가 가아프가 젊은 휘트콤에게 서술했던 그런 개념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로 동의한다. (“.... 그건 마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히 살아가게 하려는 투쟁 같아요. 끝에 가서는 죽어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말예요. 살아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그들이죠.”) 따라서 그녀의 아버지가 소설가를 묘사했던 그런 식으로 그녀 자신을 묘사하기를 좋아했던 제니 가아프는 암의 연구를 답답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망이 없는 환자들만 보게 되는 의사.’

그녀의 아버지가 본 세상에서는 인간이 정열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제니 가아프는 알았다. 그녀의 유명한 할머니 제니 필즈는 언젠가 인간을 ‘외상’ ‘급소’ ‘결석생’ 그리고 ‘갔어’로 분류했다. 하지만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다.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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