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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n 13. 2024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카사노바의 귀향>

영화 <카사노바의 라스트 러브>  2019년

알랑 드롱 주연의 <카사노바(Le Retour De Casanova>(1992), <카사노바>(2005)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나의 자유를 더 사랑했다. 이 자유를 잃을 위험에 처할 때마다 아무리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바람둥이의 상징 카사노바는 1725년 4월 2일 베네치아에서 출생하였다. ‘생갈트의 기사(Chevalier de Seingalt)’라는 이름은 그가 자칭한 것이다. 처음에는 성직자·군인·바이올리니스트 등으로 입신하려 하였으나, 추문으로 투옥되었다. 1756년 탈옥한 이후부터 생애의 3분의 2를 여행으로 유럽 전토를 편력하였다. 재치와 폭넓은 교양을 구사하여 외교관·재무관·스파이 등 여러 직업을 갖기도 하고, 감옥에 투옥당하는 등 그의 삶은 변화무쌍하였다. 그 동안 여러 계층의 사람들(귀족·문학가·과학자·예술가·희극배우·귀부인·천민·사기꾼·방탕아)과 두루 사귀었고 계몽주의 사상에도 접하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보헤미아 둑스의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사서로 쓸쓸히 죽었으나, 그의 저술가로서의 명성은 이 성에서 지루한 나날을 달래기 위해 쓴 《회상록 Histoire de ma vie》때문이다. 이것은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아는 데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흰색 잠옷을 입은 마르콜리나는 침대 발치에 서서, 카사노바를 형언키 어려운 공포의 눈길로 살펴보았다. 카사노바도 양손으로 침대를 짚고 몸을 반쯤 일으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듯이, 그도 그녀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눈길에는 분노와 수치심이, 그녀의 눈길에는 수치심과 경악이 어려 있었다. 카사노바는 그녀가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았다. 그 역시 동시에 공기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고, 어제 탑의 방에 걸린 거울 속에서 본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깊이 팬 주름, 얇은 입술, 쏘아보는 눈, 누렇게 뜬 음흉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더욱이 간밤의 격렬한 정사와 아침에 꾼 허겁지겁 쫓기는 꿈, 그리고 깨어났을 때의 끔찍한 깨달음으로 인해서 세 배는 더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마르콜리나의 눈길에서 읽어낸 것은 도둑놈-난봉꾼-악당이 아니었다. 그거라면 차라리 나았다. 그는 오로지 하나만 읽어냈다. 그것은 그를 온갖 다른 모욕적인 욕지거리보다 굴욕적으로 깔아뭉갤 법한 것이었다. 그는 늙은이라는 말을 읽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최종적으로 판단해주는 무엇보다 끔찍한 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의 알몸을 보는 것이 역겨운 짐승을 보는 것보다 끔찍할 게 틀림없었다.”     


카사노바는 실제로는 마흔여덟 살에 고향인 베네치아로 돌아갔지만 슈니츨러는 이 소설을 시작했을 때의 자기 나이인 쉰셋에 귀향한 것으로 설정하였다. 슈니츨러가 카사노바의 나이를 쉰셋으로 정한 건 40대의 나이에서는 늙음의 서글픔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사노바가 더 이상 청춘의 모험욕 때문이 아니라 노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 때문에 세상을 쏘다닌 지 이미 오래된, 쉰세 살 때였다. 그는 고향 베네치아에 대한 향수가 마음속에 사무치게 념쳐나, 공중을 높이 날다 죽기 위해 서서히 하강하는 새처럼 고향 주위를 원을 그리듯 가까이, 점점 가까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는 고향에서 추방당한 후 최근 10년 동안 벌써 여러 번 대평의회에 귀향을 청원하는 글을 올렸다. 예전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이런 글을 쓸 때, 반항과 고집, 때로는 일 자체에서 느끼는 짜릿한 만족감에 붓을 맡기고 써내려갔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비굴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애원하는 어조로 애타는 그리움과 진심 어린 후회를 점점 역력히 드러내는 것 같았다.              (P9)   

  

“당신은 내 입술에도 내 손에도 키스할 수 없을 거야.” 그가 아말리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를 기다려보았자 부질없을 테고, 내 꿈을 꾸었어도 소용없을 거요. 내가 마르콜리나를 차지하기 전에는 말이오.”

“카사노바, 당신 미쳤어요?”

아말리아가 비통하게 소리쳤다. 

“피장파장이오.”

카사노바가 말했다. 

“당신도 미쳤소. 나 같은 늙은이한테서 당신이 젊었을 적 애인을 다시 보았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미쳤지. 마르콜리나를 차지하기로 작정했으니까. 하지만 우리 둘 다 제정신이 들 수 있을 거요. 마르콜리나는 나를 다시 젊게 해줄 거요. 당신을 위해, 그러니 아말리아, 내가 그녀를 차지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오.”

“카사노바, 당신 제정신이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해요. 마르콜리나는 남자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요.”              (P35)  

   

카사노바는 젊었을 때 무라노 섬의 수녀원 정원에서 보낸 밤을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다른 정원, 다른 밤이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밤이었는지 그는 더이상 알지 못했다. 아마도 수많은 밤이 그의 기억 속에서 합쳐져 단 하나의 밤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여자들도 기억 속에서 단 한 명의 여자가 되어, 수수께끼 같은 형상으로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런 하룻밤은 다른 밤과 같지 않았던가? 그리고 한 여자는 다른 여자와 같지 않았던가? 특히 끝났을 때는?‘끝났다’라는 단어가 그의 관자놀이에서 계속 쿵쿵 울렸다. 이제부터는 이 단어가 그가 잃어버린 존재의 맥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P70)   

  

온갖 종류의 복수가 있다. 보통의 살인보다 기발하고 흉악한 복수 말이다. 대평의회 의원들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면, 파멸시키고 싶은 바로 그자들을 파멸시키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가 될 것이다. 대평의회가 노린, 베네치아 사람들 중에서 확실히 가장 반듯한 편인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말이다. 왜냐고? 이 비열한 정부의 적이라는 이유로, 이단자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그가 25년 전에 고초를 겪었던 곳인 이 베네치아 옥사에 갇히거나 도끼에 목이 잘려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이 정부를 그들이 미워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그리고 보다 타당한 이유로 증오했다. 그는 평생 이단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보다 거룩한 신념도 있다! 그는 스스로 지난 몇 년 동안 불쾌한 희극만 연출했다. 권태와 혐오 때문이었다. 젊은이만 좋아하고 늙은이는 돌보지 않는 하느님을 그가 믿겠는가? 젠장, 자기 마음대로 입장을 바꿔 부(富)를 가난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환희를 절망으로 바꾸어놓는 하느님을? 당신은 우리를 갖고 장난하는데 -- 우리는 당신에게 기도해야 하나요? 당신은 우리를 갖고 장난하는데 -- 우리는 당신에게 기도해야 하나요? 당신을 의심하는 것이, 당신을 모독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에요! 존재하지 마요! 당신이 존재한다면 당신을 저주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쥐고 몸을 똑바로 폈다. 미운 이름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입술로 올라왔다. 볼테르! 그렇다. 이제 페르네의 늙은 현자에 대한 반박문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정상이었다. 완성한다고?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 반박문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반박문을! 다른 반박문을! 그 반박문 속 우스꽝스러운 노인은 몸을 사리는 신중함. 결단성 없는 우유부단함. 비굴하게 아부하는 태도 때문에 마땅히 두들겨 맞을 것이다....... 그가 신을 믿지 않는 자라고? 최근에 끊임없이 들리는 말에 따르면, 성직자들과 아주 잘 지내고 교회에도 다니며, 심지어 축제일에는 고백성사를 보러 간다나? 그가 이단자라고? 수다쟁이, 허풍 떠는 겁쟁이..... 그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 무서운 청산의 날이 가까웠다. 그날이 지나면 이 대단한 철학자에게는 보잘것없고 익살스러운 글쟁이의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잘난 체했던가. 이 훌륭한 볼테르 씨가......

“아, 친애하는 카사노바 씨. 나는 당신에게 정말 화가 납니다. 메를랭 씨의 저작들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그 하찮은 글을 읽느라 네 시간이나 허비한 것은 당신 탓입니다.”

친애하는 볼테르 씨, 그건 취향 문제랍니다! “퓌셀”이 잊히 한참 뒤에도 사람들은 메를랭의 저작을 읽을 테고...... 당신이 한마디 의견도 피력하지 않고 파렴치하게 미소 지으며 내게 돌려준 내 소네트 역시 여전히 인정받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사소합니다. 작가적인 감수성 때문에 커다란 사안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맙시다. 중요한 것은 철학--신입니다.....! 볼테르 씨, 부디 너무 일찍 죽지 마시고, 우리 논쟁을 합시다.              (P95-96)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잠에 빠졌다. 거의 이틀 밤낮을 연이어 잔 기분이었다. 마차의 말을 바꾸느라 잠깐 깨어 식당에 앉아 있거나 역참 앞을 왔다갔다하며 역참장, 여관 주인, 세관원, 여행객 들과 사소하게 몇마디 주고받은 일을 각각 기억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 이 이틀 밤낮의 기억은 마르콜리나의 침대에서 꾸었던 꿈과 합쳐졌다. 그리고 벌거벗은 두 사람이 푸른 초원에서 벌인 결투 역시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 꿈에 속하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는 때때로 묘하게도 카사노바가 아니라 로렌치였고, 승자가 아니라 패자였고, 도망치는 자가 아니라 죽은 자였다. 그 창백한 젊은 몸 주위로 쓸쓸한 아침 바람이 살랑거렸다. 두 사람, 그 자신과 로렌치는, 거지처럼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자줏빛 망토를 걸친 대평의회 의원들보다 현실적이지 않았고, 땅거미가 질 때 마차 안에 있던 자기 한테 적선을 받았던, 어느 다리 난간에 기댄 노인 못지않게 현실적이었다. 카사노바가 자신의 판단력으로 체험과 꿈을 구별해낼 수 없었다면, 그는 지금 마르콜리나의 품에 안겨 혼란스러운 꿈에 빠져 있는 거라고 착각했으리라. 그는 베네치아의 종탑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꿈에서 깨어났다.                     (P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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