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78. 시각의 영웅주의The Heroism of Vision

by 노용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사진을 찍어야 할 순간에 이르면 불안해 한다. 미개인처럼 모독당하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가 혹시나 잘못 받아들이지나 않나하고 근심한다. 사람들은 이상화된 영상, 자기들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사진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사진기가 자기들의 실물보다 더욱 매력있게 보이는 사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잘못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 P108>


‘포토제닉(photogenic)’한 영화배우처럼, 나오길 사람들은 바란다. 혹 못생기게 나왔다. 젊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등등 자신의 얼굴이 이쁘게 찍혀지길 바라며, 혹여 못생기게 나오면 사진기를 탓하든, 사진가를 탓하게 된다. 아름답게 촬영된 사진을 대부분 잘 찍었다라고 말하며, 아마추어 사진공모전의 사진들의 대부분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마치 아름다운 사진이야말로 가장 미적인 사진예술인양. 뽀샵으로 더욱 아름다움을 증폭시켜 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할정도로,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정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사진기가 발명된 이래, 세상에는 일반적으로 특별한 영웅주의, 시각의 영웅주의를 알게 되었다. 사진가들은 인상적인 영상을 찾아 문화와 사회와 과학의 원정여행을 떠났다. 1920년대까지의 사진가는 비행사나 인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자기 생활 환경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도 그 사회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대중신문의 독자는 ‘발견의 여행’에 나선 ‘우리 사진가’와 함께 ‘하늘에서 본 세계’ ‘돋보기 렌즈로 확대시켜 본 세계’ ‘일상적인 미’ ‘아직 보지 못한 미래’ ‘빛의 기적’ ‘기계의 예술’ ‘거리에서 발견’되는 그림과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초대된다.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 P112>


사진가들의 영웅주의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쫓는 영웅심에 사로잡혀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만든다. 그것이 풍경사진이 아니라 보도사진에서도 말이다. 전쟁의 참혹성에도 어떤 전쟁사진은 아름답게 표현된다. 기아나 빈민, 무거운 주제에서도 사진은 단지 대상화된 아름다움으로 이용되고, 휴머니즘은 사진의 미적인 소재로 천박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사진이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 감추어진 시각적 영웅심에 포장되어진 예술을 바라본다. 대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사진의 포장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진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사진기는 경험을 축소화하고 역사를 구경거리로 변화시킨다. 사진은 동정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동정을 철회하거나 정서를 떼어버리게 한다. 사진의 현실주의는 긴 안목으로 보거나 짧은 안목으로 보더라도 감각적이고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도덕적으로 고통받지 않는 현실적인 것에 대하여 혼란을 낳게 한다.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 P136>


'아무리 휴머니즘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사진도 결국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미적인 가치에 의해서 가치를 인정받고 소비되기 때문에, 결국 그 피사체를 거래가능한 객체로 바꿔버리면서 휴머니즘을 제거한다.' 대상(피사체)이 가진 의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소비되어진다. 마치 체게바라의 사진이 티셔츠의 그려진 아이콘으로 전락한다. 의미가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가치로 전락된 듯싶다. 진실을 전달하기에 뭔가 취약한 사진은 정말로 진실을 전달하는 증거자로서의 역할을 할수 있을까? 단지 시각의 영웅주의를 뛰어넘어 나의 시각이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진실할수 있을까? 영웅심에 불타오르는 엘리트주의를 우린 경계해야한다. 자칫 우리는 우쭐한 영웅심에 사로잡혀 과대망상을 가질수 있다. 미국의 영웅주의는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마치 자신이 슈퍼맨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한다. 나는 사진으로 영웅이 되려하는가? 아서라 꿈도 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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