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82. 공간적 사유

by 노용헌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다. 셔터가 가진 힘이 그리하고, 4각 프레임이 공간을 담아낸다. 공간은 어쩌면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공간속에서 우리는 숨쉬고, 이야기한다. 나에게 있어서 광화문이란 공간은 어쩌면 내가 숨쉬고 있는 그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고향은 추억의 공간이고, 현재의 공간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온라인의 공간은 아고라의 공간일 것이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VR(virtual reality, 가상공간)은 360도의 공간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사진과 영화는 360도의 공간중에 한 부분을 프레임으로 보여준다. VR은 내눈의 시각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서 벗어나 360도 전체 공간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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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사진은 “침몰한 배에서 물을 퍼내는 것처럼 현실로부터 아우라를 퍼낸다”고 벤야민은 진술했다. 이로 인해 독특한 건축물과 풍경이 복제됨에 따라 도시 풍경은 그 자체의 아우라를 박탈당했다. 따라서 사진은 “도시의 이국적이고 낭만적으로 울려 퍼지는 이름에 반대로 작동하는”(1979c:250)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은 또한 사진술이 도시 도로 체계에 의해 급속하게 대체되던 철도역 같은 고풍적인 도시의 장소를 기록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진술의 한계를 지적했다.(공간적 사유, 발터벤야민의 도시사상; P.87) 내게 있어 공간은 어떤 의미로 사유하게 되는가? 현실의 공간은 아우라가 사라진 단순한 기록으로 머물러 있을지는 다시금 사유하게 한다.


우리는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다양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체험의 공간, 이러한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공간인가? 물리공간(physical space), 생명공간(life space), 지성공간(intelligent space), 감성공간(emotive space), 영성공간(soul space) 그 어떠한 공간일지라도 우리는 그 공간적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인간의 (외면적 및 내면적) 존재는 가장 깊은 친교이다. 존재하기란 의사소통하기를 의미한다.... 존재하기는 타자를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한 타자를 통해 존재하기이다. 사람은 내적으로 주관적 영토를 갖지 않으며, 완전히 그리고 항상 경계 위에 있다.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그는 다른 사람의 눈 속을 보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된다.... 나는 다른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 없이 나 자신이 될 수 없다. (Bakhtin, 1984a:287) 나의 공간과 다른 사람의 공간은 ‘동시성에서의 차이’라는 역설적이고 매우 모순적인 사고에 직면한다. (공간적 사유, 미하일 바흐친:공간의 대화이론; P.132)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만나요. 오늘의 함성 뜨거운 노래 영원히 간직해요.” 광화문이라는 기억의 공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현장으로서,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의 물놀이하는 피서지의 공간으로서, 기자회견이나 행사를 보여주는 이벤트 장소로서, 마켓이 열리는 장터로서, 연인과의 만남의 장소로서 그 공간이 주는 지리적, 역사적,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들뢰즈에게 창조는 이질적인 조각과 부분, 차이적 관계의 특정한 환경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간화’ 없이 사유할 수 없으며, ‘사유하기’ 없이 공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간적 사유, 지리학에서 글렁크 없애기: 닥터 수스와 질 들뢰즈 이후의 공간과학; P.212)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공간을 사진에 기록한다. 사진에 기록된 공간은 작가의 사유화된 공간이 다시 “프레임”이란 공간으로 공간화한다. 그 공간화는 작가의 행위, 사건, 존재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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