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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n 24. 2024

광화문에서 #1

광화문광장에 날아온 까마귀

물론 까마귀도 이상한 행동을 한다. 다른 모든 짐승과 마찬가지로, 나는 까마귀가 나무 위에 모여 떠들어대며 뭔가 일을 꾸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 길은 없다. 뭔가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까마귀 스스로도 그 계획이 뭔지 알고 있을까. 모르겠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지상에서 인간들이 세우는 빌어먹을 계획 따위보다 젠장, 백만 배는 더 의미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렇지 않다면? 뭔가 특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수많은 것과 마찬가지라면? 어쩌면 그냥 유전적인 특성일지도, 아니면 말고. 까마귀가 이 세상을 관장한다면 어떨까. 쓰레기 같은 세상의 재탕밖에 안 될까? 무엇보다 까마귀는 실용적인 동물이다. 비행 방법도, 대화법도, 심지어 색깔도, 온통 검은색, 오로지 검은색. 어쩌면 나는 까마귀였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따금 나는 이미 내가 까마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 몇 달째 간간이 그런 생각을 해왔다. 안 될 게 뭐 있지? 여자 몸에 갇혀 사는 남자도 있고, 남자 몸에 갇혀 사는 여자도 있는데, 내가 이 몸속에 갇힌 까마귀가 되지 못할 거 없잖아? 그래, 이 몸에서 나를 꺼내줄 수 있는 의사가 어디 있을까? 어디를 가야 내가 나일 수 있는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구한테 의논해야 하지?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내가 빠져나올 빌어먹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까마귀다. 난 안다. 안다고! 


<필립 로스, 휴먼 스테인 1,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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