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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l 05. 2024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영화 <버닝>  2018년

그녀와는 아는 사람 결혼 피로연에서 만나 친해졌다. 삼 년 전의 일이다. 그녀와 나는 열두 살 가깝게 나이차가 났다. 그녀는 스물이고 나는 서른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그것 말고도 골머리 앓을 일들이 얼마든지 많아서, 솔직히 그깟 나이 같은 걸 일일이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나는 기혼이었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이니 가정이니 수입이니 하는 것은 발 크기며 목소리 톤이며 손톱 모양과 같이 순수하게 선천적인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요컨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P51)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돈 때문에 남자와 잔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이따금 그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 해도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본질은 아마도 훨씬 더 단순한 부분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개방적이고 천진난만한 단순함이 모종의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단순함과 직면하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문득 그곳에다 끼워맞춰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이를테면 그런 거다. 그녀는 말하자면 그런 단순함에 의지하여 살고 있었다.

물론 그런 작용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우주의 구조 자체가 뒤집혀버린다.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어떤 특정 장소, 어떤 특정 시기뿐이다. 마치 ‘귤껍질 까기’와 같다.                     (P52)     


그리고 그녀는 ‘귤껍질 까기’를 했다. ‘귤껍질 까기’란 말 그대로 귤껍질을 까는 것이다. 그녀의 왼쪽에 귤이 가득 든 유리통이 있고, 오른쪽에는 귤껍질을 넣는 통이 있다—는 설정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그 상상 속의 귤을 하나 들고 천천히 껍질을 벗겨, 한 알씩 입에 넣고 씹다가 찌꺼기를 뱉어내고, 한 개를 다 먹으면 찌꺼기를 모아 껍질로 싸서 오른쪽 통에 넣는다. 그 동작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말로 설명하면 별로 대단치 않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서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그러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나와 그녀는 바의 스탠드 석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녀는 얘기를 하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귤껍질 까기’를 계속했다— 점점 내 주변에서 현실감이 흡수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묘한 기분이다.                    (P53)     

이 년 전 봄에,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 그녀에겐 약간의 목돈이 생겼다. 적어도 그녀의 얘기에 따르면 그랬다. 그녀는 그 돈으로 한동안 북아프리카에 가 있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 북아프리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침 나는 도쿄의 알제리 대사관에 근무하는 여자를 알고 있어서 그녀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알제리로 갔다. 어쩌다보니 나는 공항까지 배웅을 나갔다. 그녀는 갈아입을 옷을 쑤셔넣은 초라한 보스턴백 하나만 달랑 들고 왔다. 그녀는 겉으로 보면 북아프리카에 간다기보다 북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느낌으로 수화물 검사를 받고 있었다.

“정말 일본으로 돌아올 거지?” 나는 물어보았다.

“물론 돌아오죠.” 그녀는 말했다.

석 달 뒤에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갈 때보다 3킬로그램 정도 빠졌고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리고 새 애인을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은 알제리의 레스토랑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알제리에는 일본인 수가 적어서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고, 연인 사이가 되었다. 내가 아는 한 그녀에게는 그 남자가 최초의, 제대로 된 정식 애인이었다.                 (P55-56)     


그는 얼룩 하나 없는 은색 독일제 스포츠카를 타고 있었다. 나는 차에 대해서 거의 모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웬지 페데리코 펠리니의 흑백영화에 나올 법한 분위기의 차였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몰 만한 차는 아니다.

“굉장한 부자 같은데?” 한번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러게요.” 그녀는 별로 흥미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요.”

“무역 일로 그렇게 돈이 많이 벌리나?”

“무역 일?”

“그 사람이 그러던데, 무역 일을 한다고.”

“그럼 그렇겠죠. 그렇지만...... 잘 모르겠어요. 별로 일하는 것같이 보이지 않거든요. 자주 사람을 만나고 전화를 거는 눈치긴 하지만.”

꼭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청년들.                   (P58)     


그녀가 레코드장에서 몇 장을 골라와 오토 체인지 플레이어에 올렸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에어진>이 들려왔다.

“오토 체인지 개러드라니, 요즘 보기 드문 걸 갖고 계시는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내가 오토 체인저 팬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상태가 좋은 개러드를 찾아내는 데 꽤 고생했다는 것도. 그는 맞장구를 치며 예의바르게 내 얘기를 들었다.

한동안 오디오 얘기를 나눈 뒤 그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래스(Grass, 대마초를 일컫는 은어)>가 있는데 피우시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나는 약간 망설였다. 왜냐하면 담배를 끊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서 미묘한 시기였고, 이 시점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 그것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피우기로 했다.                  (P62)     

아직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느닷없이 초등학교 학예회 때 한 연극이 생각났다. 나는 거기서 장갑 파는 아저씨 역을 맡았다. 새끼 여우에게 장갑을 파는 아저씨 역할이다. 그러나 새끼 여우가 가져온 돈으로는 장갑을 살 수 없었다.

“그거로는 장갑을 살 수 없는데.” 나는 말한다. 좀 악역이다.

“하지만 엄마가 몹시 추워하세요. 손이 다 텄어요.” 새끼 여우가 말한다.

“아냐, 안 돼. 돈을 모아서 다시 와. 그러면”

“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

그가 말했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잠깐 멍하니 있었던 탓에 잘못 들은 것 같아서였다.

“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 그가 반복했다.                  (P63-64)   

  

“헛간 이야기를 듣고 싶군.” 내가 말했다.

그는 내 얼굴을 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다운 것이 없었다.

“얘기해도 괜찮을까요?” 그가 물었다.

“물론.” 나는 대답했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 붙은 성냥을 던지는 겁니다. 가만 놔두고, 그게 끝이죠. 다 타는데 십오 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하고 말한 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에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째서 헛간을 태우는 거지?”

“이상한가요?”

“모르겠군. 자네는 헛간을 태우고, 나는 헛간을 태우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고, 나는 어느 쪽이 이상하다고 하기보다는 먼저 그 차이를 확실히 해두고 싶어. 게다가 헛간 이야기는 자네가 먼저 꺼냈잖아.”                (P65)     


“두 달에 한 번쯤은 헛간을 태웁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또 손가락을 꺾었다. “그 정도 페이스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제게는 말입니다.”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스?

“그런데 자네는 자네의 헛간을 태우는 건가?” 내가 물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왜 제가 저희 집 헛간을 태우겠습니까? 어떻게 제가 몇 개나 되는 헛간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나는 말했다. “남의 헛간을 태운단 말인가?”

“그렇죠.” 그는 말했다. “당연히 그래요. 남의 헛간이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범죄행위죠. 당신과 제가 지금 이렇게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처럼.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나는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짚은 채 침묵했다.

“남이 소유한 헛간에 무단으로 불을 지르는 겁니다. 물론 큰 화재가 날 만하지 않은 걸 고르죠. 왜냐면 전 방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헛간을 태우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P66)  

   

“당신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인간의 행동양식 같은 데 흥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소설가란 어떤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즐긴다는 말이 좀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될까요. 그래서 얘기한 겁니다. 저도 그러고 싶었고요.”             (P67)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얼굴 앞에서 양손을 펼쳤다가 다시 천천히 모았다. “세상에는 헛간이 얼마든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워주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변에 우뚝 서 있는 헛간도 그렇고, 논밭 한 가운데 서 있는 헛간도 그렇고..... 어쨌든 여러 헛간들이 말입니다. 십오 분이면 깨끗하게 태워버릴 수 있지요.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요.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사라질 뿐이죠. 깨끗이요.”

“그게 불필요한 건지 어떤지는 자네가 판단하는 거군.”

“저는 판단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곳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비와 같은 거죠. 비가 온다. 강이 넘친다. 무언가가 떠내려간다. 비가 판단을 합니까? 보세요, 저는 절대 비도덕적인 것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전 저 나름대로 도덕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도덕은 인간 존재에 무척 중요한 힘이죠. 도덕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전 도덕이라는 것은 동시 존재의 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시 존재?”

“즉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나는 도쿄에도 있고, 동시에 튀니스에도 있다. 야단치는 것도 저고, 용서하는 것도 접니다. 이를테면 그런 겁니다. 그런 균형이 있는 거죠. 그런 균형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물림쇠 같은 겁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스르르 풀어져서 말 그대로 조각조각이 날 겁니다. 그게 있기 때문에 우리의 동시 존재가 가능해지죠.”

“즉 자네가 헛간을 태우는 건 도덕적으로 마땅한 행위라는 뜻인가?”

“정확하게는 아니죠. 그건 도덕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도덕에 대해선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건 여기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거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세상에는 그런 헛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겁니다. 제게는 제 헛간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헛간이 있어요. 정말입니다. 저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 가봤습니다. 갖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만두죠. 저는 평소에 말이 없는 만큼, 그래스를 하면 말이 너무 많아집니다.”   (P68-69) 

    

“다음에 태울 헛간도 벌써 정해졌나?”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스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코로 숩을 내쉬었다. “그렇습니다. 정해졌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은 맥주를 찔끔찔끔 마셨다.

“아주 좋은 헛간입니다. 오랜만에 태우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오늘도 사전답사를 온 거랍니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있는 거겠군?”

“아주 가까이에 있죠.” 그는 말했다.               (P71)     


나는 다음날 서점에 가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지도를 사왔다. 좁은 길까지 나와 있는 축적 2만분의 1 백지도(白地圖)다. 나는 그 지도를 들고 우리집 주변을 걸어다니며 헛간이 있는 지점에 연필로 X표를 했다. 사흘에 걸쳐 사방 4킬로미터를 샅샅이 걸어 다녔다. 우리집은 교외에 있어서 주변에 농가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헛간의 수도 제법 많다. 전부 열여섯 개의 헛간이 있었다.                  (P72-73) 

    

마지막 헛간은 건널목 옆에 있었다. 약 6킬로미터 지점이다. 정말이지 완전히 버려진 헛간이다. 선로를 향해 펩시콜라의 양철 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그런 것을 건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자신이 없지만—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누군가 태워주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지막 헛간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건널목을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삼십일분 삼십 초였다. 나는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그러고서 소파에 누워 레코드를 한 장 들은 뒤 일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그런 식으로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코스를 달렸다. 그러나 헛간은 타지 않았다.

가끔은 그가 내가 헛간을 태우게 만드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즉 헛간을 태운다는 이미지를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서,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넣듯이 그것을 점점 부풀려가는 것이다. 솔직히 가끔 나는 그가 태우기를 가만히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성냥을 그어 태워버리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저 낡아빠진 헛간이었으니까.       (P74-75)


“그런데 헛간 얘기는 어떻게 됐지?” 나는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그는 입끝을 올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걸 아직 기억하고 계셨군요.” 그는 말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고 다시 집어넣었다. “물론 태웠죠. 깨끗하게 태웠습니다. 약속한 대로요.”

“내 집 바로 근처에서?”

“그렇습니다. 아주 근처에서.”

“언제?”

“요전에 댁에 방문한 지 열흘쯤 지나서요.”

나는 지도에 헛간 위치를 체크해놓고 하루에 한 번씩 그 앞을 달렸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으니 못 봤을 리가 없는데.” 내가 말했다.

“상당히 면밀하시군요.” 그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면밀하고 이론적입니다. 하지만 분명 놓치셨어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죠. 너무 가까워서 놓쳐버리는 거예요.”          (P77-78)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다섯 개의 헛간 앞을 달린다. 우리집 근처의 헛간은 여전히 한 곳도 불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헛간이 탔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또 12월이 오고, 겨울새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밤의 어둠 속에서, 이따금 나는 불에 타 허물어지는 헛간을 생각한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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