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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l 06. 2024

필립 로스의 <굿바이, 콜럼버스>

영화 <굿바이 컬럼버스>  1969년

아르노 데스플레생 감독의 신작 <디셉션>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영화다. 필립 로스가 1990년 완성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굿바이 콜럼버스>는 필립로스의 첫 작품집으로 중편<굿바이, 콜럼버스>와 <유대인의 개종>, <신앙의 수호자>, <엡스타인>, <노래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광신자 엘리>등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6편 모두 하나같이 미국 유대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 좀.” 브랜다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수를 했다. 이윽고 그녀가 두 손으로 내 발바닥을 꽉 잡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뒤로 빼고 그녀와 함께 잠수했다. 그러다 시합을 할 때 수영장 레인을 나누는 밑바닥의 검은 선들이 어른거리는 곳 6인치 위에서 서로의 입술 안에 미스로 거품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린 레인 컨트리클럽의 수영장 바닥에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머리 위에서 다리들이 흔들렸고, 오리발 한 쌍이 녹색을 뿌리며 미끄러져갔다. 나하고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사촌 도리스는 껍질에 껍질을 벗기다 몸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고, 글래디스 숙모는 매일 밤 상을 스무 번 차릴 수도 있었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 남쪽 애리조나의 용광로에서 천식을 깨끗이 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 무일푼의 도망자들. 하지만 나는 브렌다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퍼덕거리며 올라가는 것을 보며 나는 그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러 갔다. 내 손이 그녀의 수영복 목부분에 걸리는 바람에 수영복이 그녀의 상체에서 벗겨져 나갔다. 마치 코가 분홍빛인 물고기 두 마리처럼 그녀의 젖가슴이 나를 향해 헤엄쳐 왔다. 그녀는 내가 그 물고기를 쥐게 해주었다. 잠시 후 해가 우리 두 사람에게 키스했다. 우리는 물 밖으로 나왔다. 서로에게 정말 만족해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브렌다는 머리를 흔들어 내 얼굴에 물기를 뿌렸다. 나에게 물방울이 닿는 순간, 나는 그녀가 이 여름, 그리고 바라건데, 그 이후에 관한 약속을 했다고 느꼈다.          (P34-35)    

 

다음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도서관에 가기 전 시간이 남아 근처 공원으로 걸어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시간이 더 있는 날은 라커워터 통근 열차가 지나다니는 철로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햇빛을 받으며 내내 창을 열어놓고 다니는, 낡았지만 깨끗한 녹색 열차”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열린 창으로 비즈니스맨들의 여름 양복의 팔꿈치와 서류 가방의 가장자리가 보이면 활기를 느꼈다. 워싱턴 스트리트를 따라 내려가면 뉴어크 박물관이 있다. “그렇게 공원에 앉아 나는 내가 뉴어크를 깊이 안다고 느꼈다. 이것은 아주 깊이 뿌리내린 애착이어서 애정으로 가지를 뻗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P58)  


도서관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어쩌다 거기에 가게 되었는지, 내가 왜 거기에 그대로 있는지 정말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로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그날이 오기를, 일층 남자 화장실로 담배를 피우러 들어가 거울에 연기를 내뿜으며 내 모습을 살피다가, 아침 나절 어느 때부터인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매키나 스카펠로나 위니 여사처럼 내 피부 밑에도 피를 살과 분리하는 엷은 공기층이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날이 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되었다. 누가 스탬프를 찍는 동안 누가 거기에 펌프질로 공기를 넣은 것인데, 그러면 그때부터 인생은 글래디스 숙모처럼 내다버리는 것도 아니고, 브렌다처럼 모아들이는 것도 아닌, 통통 튀기며 나아가는 것이 될 터였다. 마비 상태로 살아가게 될 터였다. 나는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어영부영 일에 시간을 쏟는 동안 점점, 소리 없이, 위니 여사가 <브래티니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갔던 것처럼 그런 상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녀의 빈 스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P60-61)    

     

저녁에는 또 브렌다의 집으로 갔다. 파팀킨 씨부부는 론이 애인을 만나러 밀워키로 가는 공항으로 데려다주러 나갔다고 했다. 그날 밤 브렌다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의 삶 속에는 브렌다와 고갱을 좋아하는 아이 단 두 가지만 존재했다. 매일 아침에는 도서관으로 오는 소년을 만나고, 매일 저녁에는 브렌다를 만나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고 드라이브를 갔다. 밤에는 체리를 먹고 그린게이지 자두를 먹고 소파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파팀킨 부부는 계속 나에게 미소지었고, 파팀킨 씨는 계속 내가 새처럼 먹는다고 생각했다.”        (P97)


‘파팀킨 주방 욕실 싱크’는 뉴어크의 검둥이 구역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오래전 대이민의 시기에 그곳은 유대인 구역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20세기 초에 우리 조부모가 장을 보고 목욕을 하던 작은 어물전, 코셔 식품점, 터키탕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냄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화이트피시, 콘드비프, 사워토마토 —그러나 지금은 이런 냄새들을 자동차의 폐차장의 기름기가 섞인 듯한 더 당당한 냄새가 덮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이디시어 대신 빗자루와 고무공 반쪽을 갖고 윌리 메이슨 놀이를 하는 검둥이 아이들의 외침이 들렸다. 동네는 바뀌었다. 우리 조부모 같은 늙은 유대인들은 애를 쓰다 죽었고, 그 후손은 애를 쓰다 번창하여, 점점 더 서쪽으로, 뉴어크의 가장자리로 옮겨갔고, 그러다 바깥으로 나와, 오렌지 산맥의 비탈을 올라갔다. 마침내 그 꼭대기에 이르자 반대편으로 내려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계가 컴벌랜드고원을 넘어 쏟아져 들어가듯 이방인의 영토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제 사실상 검둥이들이 유대인의 발자취를 쫓아 똑같이 이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3구에 남은 사람들은 가장 지저분한 삶을 살았고, 악취가 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조지아 주에서 보내던 밤의 소나무 냄새 꿈을 꾸었다.                      (P148-149)  

   

파팀킨 씨가 시가를 보았다. “사람은 열심히 일하면 뭔가를 얻어.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는 아무것도 안 돼. 알겠지만.....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네. 정말이야. 록펠러조차도. 성공은 쉽게 오는 게 아니야......” 그는 나를 보고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자기 영토를 살피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일반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아마 론의 일하는 모습과 나라는 존재 — 나, 언젠가는 내부인이 될 수도 있는 외부인— 가 한자리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파팀킨 씨가 내가 내부인이 될 가능성을 생각이나 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 말이 그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구축한 삶 앞에서 느끼는 만족과 놀라움을 모두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P154-155)    

 

성당 안이라고 더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고요한 분위기에 촛불이 깜빡였기 때문에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나는 뒤쪽에 자리를 잡았고,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지만 앞의 긴 의자에 몸을 기대기는 했다. 나는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내가 카톨릭처럼 보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나 자신에게 작은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의식적인 말을 기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내 말을 듣는 상대를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하느님, 나는 말했다. 나는 스물세 살입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제 의사가 브렌다를 나와 결혼시킬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최선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주님? 내가 왜 선택을 한 겁니까? 브렌다는 누굽니까? 경주는 발빠른 사람이 이기는 거죠. 하지만 내가 멈추어서 생각을 했어야 했던 건가요?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했다. 우리가 당신을 혹시나 만난다면, 하느님, 그것은 우리가 육적이기 때문이고, 탐욕스럽기 때문이고, 그래서 당신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육적이고, 당신이 그것을 허락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압니다. 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육적일 수 있나요? 나는 계속 손에 쥐려고 합니다. 이제 이런 욕심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까? 우리는 어디서 만나게 됩니까? 당신은 어떤 상(賞) 입니까?   

독창적인 묵상이었다. 갑자기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피프스 애비뉴의 소음이 답과 함께 나를 맞이했다. 

너는 어떤 상을 생각하고 있느냐? 슈먹? 황금 식기, 스포츠용품 나무, 승도복숭아, 쓰레기 처리기, 울퉁불퉁하지 않은 코, 파텀킨 싱크, 본윗 텔러 백화점......

하지만 젠장, 하느님, 그게 바로 당신이잖아요!

그러나 하느님은 껄껄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어릿광대는.                    (P164-165)     


론의 결혼식 전날 밤, 론은 음악을 듣자고 했다. 콜럼버스 레코드. “때는 1956년. 계절은 가을. 장소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다음날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파팀킨 씨 쪽 가족은 배다른 동생 리오 부부만 왔다. 쉰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세 살짜리 딸이 있다. 리오는 전구가 든 가방을 들고 어디든 다닌다고 했다. 차도 없이 기차를 타고, “처음부터 유리하게 시작하지 못하면 똑똑한 게 무슨 소용이 있어! 분명히 말하는데, 운 좋게 태어나면, 운이 좋은 거야”라고 말했다. “리오는 마흔여덟 살이고 이미 세상을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과 비애를 쫓아다녔다.”             (P194) 

내 안에 뭐가 있기에 쫓아가고 움켜쥐는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었고, 또 이제 그것을 뒤집어놓은 걸까? 도대체 무엇이 승리를 실패로 바꾸고, 실패를 —누가 알랴— 승리로 바꿀까? 나는 분명히 브렌다를 사랑했다. 그러나 거기 서서, 이제는 그녀를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꽤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리라는 것도. 내가 다른 누구에게 그런 정열을 그러모을 수 있을까? 무엇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을 낳았든, 그것이 그런 뜨거운 욕망 또한 낳은 것이 아닐까? 그녀가 조금만이라도 브렌다가 아니었다면..... 그러나 그랬다면 내가 그녀를 사랑했을까? 나는 내 이미지를, 어두워지는 거울을 뚫어져라 보았다. 이윽고 내 눈길은 그것을 뚫고 나아가 서늘한 바닥을 건너 꽉 들어차게 꽂지 않아 군데군데 비어 있는 책의 벽에 이르렀다.

나는 잠깐 그렇게 보다가, 기차를 타고 유대인의 새해 첫날의 해가 떠오를 때 뉴어크에 들어섰다.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P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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