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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영화 <죽음의 순례자> 1972년

by 노용헌

제5도살장, 혹은 소년 십자군, 죽음과 억지로 춘 춤(Slaughterhouse-Five, or The Children's Crusade: A Duty-Dance with Death)은 커트 보니것이 쓴 반전 풍자 SF로,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한 미군 병사인 빌리 필그램의 시간 여행과 더불어 그의 경험을 담은 소설이다. 제5도살장은 보통 커트 보네거트의 제일 유명하고 또한 인기있는 소설로 꼽힌다. 또한 이 소설은 커트 보니것이 직접 목격한 드레스덴 폭격 경험과 더불어 그가 포로로 잡혀 있었던 도살장을 개조한 수용소인 '제5도살장' 등을 담고 있어서, 반-자서전으로 보기도 한다. 제5도살장은 영화, 연극, 라디오 드라마등으로도 개작되기도 하였으며, 휴고 상등 여러 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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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쨌든, 전쟁 이야기는 아주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드레스덴에서 자기 것이 아닌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정말로 총살을 당했다. (P13)

그때도 나는 드레스덴에 관한 책을 쓰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사건은 당시 미국에서는 유명한 공습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쪽이 히로시마보다 훨씬 심했다는 것을 아는 미국인은 많지 않았다. 나도 그것은 몰랐다. 드레스덴은 그다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연히 칵테일파티에서 시카고 대학교의 한 교수에게 내가 본 공습에 관해, 또 내가 쓸 책에 관해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교수는 사회사상 위원회라고 부르는 조직의 일원이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 관해 이야기했고, 독일인이 죽은 유대인이 지방으로 비누와 초를 만들었다, 등등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알아요, 알아요. 나도 안다고요” 뿐이었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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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전쟁 때 아이에 불과했다고요 — 위층에 있는 저애들처럼!”

나는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실제로 전쟁 때 어리석은 숫총각들이었으며, 유년의 맨 끄트머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쓰지 않을 거죠, 그렇죠.”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비난이었다.

“어 — 모르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글쎄요, 나는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틀림없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던 척할 거예요. 영화라면 프랭크 시나트라와 존 웨인, 아니면 다른 매력적이고 전쟁을 사랑하는 추잡한 늙은 남자들이 두 사람을 연기하겠죠. 그럼 전쟁은 그냥 멋지게 보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또 많이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전쟁에 위층에 있는 애들 같은 어린아이들이 나가 싸우게 되겠죠.” (P28-29)

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

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 같은 것뿐입니다. (P33)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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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진료실 벽에 기도문을 넣은 액자를 걸어두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는 데 열의가 없음에도 계속 살아가는 그 나름의 방법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벽에 걸린 기도문을 본 많은 환자가 그 기도문이 자신들이 계속 살아가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빌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었다. (P82)

"탑승을 환영합니다, 필그림 씨." 스피커가 말했다. "질문 있나요?"

빌리는 입술을 핥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물었다. " 왜 나죠?" "정말 지구인다운 질문이군요, 필그림 씨. 왜 당신이냐고? 말이나와서 이야기인데 왜 우리여야 할까요? 왜 뭐여야 할까요? 그냥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호박에 들어있는 벌레를 본 적이 있나요?"

...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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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지?”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지금은 다른 호박 방울에 갇혀 있습니다. 필그림 씨.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 지구에서 5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고, 몇백 년이 아니라 몇 시간 만에 트랄파마도어로 우리를 데려다 줄 시간 왜곡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 어쩌다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거지요?”

“그것을 당신에게 설명하려면 다른 지구인이 필요합니다. 지구인들은 설명을 잘하더군요. 왜 이 사건이 이런 식으로 구조가 잡혀 있는지 설명하고, 또 어떻게 어떤 일을 이루거나 피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는 트랄파마도어 사람이고, 당신이 쭉 뻗은 로키산맥을 한눈에 보듯이 모든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은 모든 시간이죠.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리 알려줄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는 거죠. 그걸 한순간 한순간씩 떼어놓고 보면, 우리 모두가,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호박 속에 갇힌 벌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자유의지라는 걸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지구인을 연구하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자유의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나는 우주의 유인 행성 서른한 곳을 찾아가보았고, 그 외에도 백 개 행성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 이야기를 합니다.” 트랄파마도어인이 말했다. (P112-113)


빌리의 옆 병상을 배정받은 사람은 엘리엇 로즈워터라는 이름의 전직 보병 대위였다. 로즈워터는 내내 술에 취해 있는 것이 지겹고 짜증이 나서 들어왔다.

빌리에게 과학소설, 특히 킬고어 트라우트의 글을 소개해준 사람이 로즈워터였다. 로즈워터는 침대 밑에 엄청난 양의 보급판 과학소설을 모아놓았다. 기선용 트렁크에 넣어 병원에 가져왔다. 그가 아끼는 그 지저분한 책에서는 병동 어디에나 퍼져 있는 냄새가 났다 — 한 달 동안 갈아입지 않은 플란넬 파자마 같기도 하고, 아이리시스튜 같기도 한 냄새.

킬고어 트라우트는 빌리가 가장 좋아하는 현존 작가가 되었으며, 과학소설은 그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이야기가 되었다.

로즈워터는 빌리보다 두 배는 똑똑했지만, 그와 빌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위기에 대처하고 있었다. 그들 둘 다 인생이 의미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전쟁에서 본 것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로즈워터는 독일군 병사라고 오인하여 열네 살짜리 소방수를 쏘았다. 뭐 그런 거지. 빌리는 유럽사 최대의 학살을 보았는데, 그것은 드레스덴 폭격이었다. 뭐 그런 거지.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신과 우주를 다시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과학소설이 큰 도움이 되었다. (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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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방문객은 기독교를 진지하게 연구했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질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는 적어도 문제 가운데 일부는 신약의 이야기가 너무 엉성한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처음에는 복음서들의 의도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낮은 자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제로는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그가 연줄이 시원찮은지 확인해라. 뭐 그런 거지. (P140)

빌리는 이 지옥의 풍경으로부터 비실비실 멀어졌다. 멀찌감치 떨어져 배설의 축제를 지켜보고 있는 영국인 세 사람을 지나쳤다. 그들은 혐오감 때문에 긴장증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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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그 국민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미국인은 자신을 미워하라고 종용받는다. 미국의 유머 작가 킨 허버드의 말을 인용하자면, "가난하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지만, 차라리 창피한 게 나을 것이다". 사실 미국은 가난한 자들의 나라인데도, 미국인이 가난한 것은 범죄다. 다른 모든 나라에는 비록 가난하지만 매우 지혜롭고 덕이 높아 권력과 금력이 있는 누구보다도 존경받는 사람들에 관한 민간전승이 있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조올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찬양한다. 식당이나 술집 가운데도 가장 초라한 곳ㅡ보통 가난한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ㅡ에는 벽에 이런 잔혹한 질문이 걸려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네가 그렇게 똑똑하면 왜 부자가 아닌가?" 또 아이 손바닥만한 성조기도 있을 텐데, 이것은 막대사탕의 막대에 달려 금전등록기 위에서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P164)


이 영국인은 포로가 되었을 때 스스로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하고 지켰다고 말했다. 하루에 두 번 이를 닦고, 하루에 한 번 면도를 하고, 매번 식사를 하기 전과 변소에 갔다 온 뒤에 세수를 하고, 하루에 한 번 구두를 닦고, 매일 아침 적어도 삼십 분 운동을 하고 나서 변을 보고, 자주 거울을 보고, 자신의 겉모습, 특히 자세를 솔직하게 평가한다.

빌리 필그림은 자리에 누운 채 이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는 영국인의 얼굴이 아니라 발목을 보고 있었다.

"친구들,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영국인이 말했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빌리는 그게 왜 웃긴지 궁금했다.

"친구들, 여러분은 오늘 오후에 드레스덴으로 떠납니다- 아름다운 도시라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처럼 갇혀 있지 않겠지요. 여러분은 삶이 있는 곳으로 나가게 될 거고, 식량도 틀림없이 여기보다 풍부할 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끼워넣어도 된다면, 나는 나무나 꽃이나 여자나 아이를 못 본 지 이제 5년이 되었습니다-또 개나 고양이나 즐거운 장소나 무엇이든 쓸모 있는 일을 하는 인간을 본 지도, 아, 여러분은 폭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드레스덴은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비무장 도시거든요. 방비를 하지도 않고, 군수산업도 없고, 이렇다 할 규모의 병력이 모여 있지도 않습니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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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도살장에서 보낸 첫 저녁이었다. 그와 가엾은 늙은 에드거 더비는 텅 빈 동물 우리 사이로 바퀴 두 개가 달린 빈 수레를 밀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 공용취사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경비병은 열여섯 살짜리 독일군 베르너 글룩이었다. 수레의 굴대에서는 죽은 짐승들의 지방을 발라놓았다. 뭐 그런 거지. (P197)


행렬은 껑충거리며,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며 드레스덴 도살장 정문으로 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도살장은 이제 혼잡한 곳이 아니었다. 독일의 발굽 달린 동물은 거의 모두 인간들, 그 가운데서도 주로 군인들이 죽이고 먹고 배설했다.

미국인들은 정문 안의 다섯 번째 건물로 이끌려갔다. 시멘트벽돌로 지은 네모난 단층 건물로, 앞뒤에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곧 도살당할 돼지들을 가두어두려고 지은 건물이었다. 이제는 미군 전쟁 포로 백 명을 위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집 역할을 할 것이었다. 안에는 침상들, 배불뚝이 난로 두 개, 수도꼭지 하나가 있었다. 건물 뒤는 변소였는데, 가로장 하나짜리 담 밑에 들통들이 놓여 있었다.

건물 문에는 커다랗게 번호가 적혀 있었다. 5였다. 미국인들이 안에 들어가기 전에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경비병이 큰 도시에서 길을 잃어 버릴 경우에 대비해 간단한 주소를 외우라고 말했다. 그들의 주소는 ‘슬라흐토프 — 퓐프 Schlachthof — funf’였다. 슬라흐토프는 도살장이란 뜻이었다. 퓐프는 너무나도 친근한 5였다.

도살장이 미국인들은 드레스덴이 파괴되기 이틀 전 아주 흥미로운 방문객을 맞이했다. 나치가 된 미국인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였다. 미국인 전쟁 포로들의 더러운 행동에 관한 논문을 쓴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포로에 관한 연구는 하지 않았다. ‘자유 미국인 부대’라는 이름의 독일 부대에 들어갈 사람들을 모집하러 도살장에 온 것이었다. 캠벨이 그 부대를 만든 사람이자 지휘관이었으며, 이 부대는 오직 러시아 전선에만 싸울 예정이었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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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드레스덴이 폭격당하던 밤에 고기 저장고에 내려가 있었다. 위에서 거인이 걸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고성능 폭탄이 투하되고 있었다. 거인은 걸어다니고, 또 걸어다녔다. 고기 저장고는 아주 안전한 대피소였다. 그 아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이따금 칼시민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내린 것뿐이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 네 명과 손질된 짐승 사체 몇 개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머지 경비병은 공습이 시작되기 전 드레스덴에 있는 자기 집의 안락함을 찾아갔다. 그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뭐 그런 거지.

빌리에게 알몸을 드러냈던 여자아이들도 임시 가축 수용장의 다른 구역에 있는 훨씬 얕은 대피소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뭐 그런 거지.

경비병 한 명이 바깥은 어떤지 보려고 몇 번씩 층계 꼭대기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와 다른 경비병들과 수군거렸다.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 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 거지. (P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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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들은 멀리서 볼 때만 부드러웠다. 곡선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 선의 위태롭고 고르지 못하다는 것—만지기에는 아직 또 종종 불안정해진다는 것—중요한 돌을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더 무너져내려, 더 낮은 곳에서 더 안정된 곡선을 이루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24)

릴리가 럼포드에게 가져온 책 가운데는 데이비드 어빙이라는 영국인이 쓴 “드레스덴 파괴‘도 있었다. 그것은 미국판으로, 홀트 라인하트 앤드 윈스턴 출판사가 1964년에 출간했다. 럼포드가 이 책에서 원하는 것은 그의 친구들, 퇴역 미국 공군 중장인 아이라 C. 이커와 바스 중급 훈작사이자 대영제국 2등급 훈작사이자 전공(戰功) 십자훈장 수훈자이자 공군 수훈 십자훈장 수훈자인 공군 십자훈장 수훈자인 영국 공군 원수 로버트 손드비 경이 쓴 서문 가운데 일부였다.

영국인이나 미국인 가운데 죽임을 당한 적측의 민간인 때문에 울면서도 전투에서 잔인한 적에게 목숨을 잃은 우리의 용감한 병사를 위해서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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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원수 손드비가 한 말 중에는 무엇보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드레스덴 폭격이 큰 비극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이 정말로 군사적으로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전시에 가끔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 가운데 하나로, 여러 상황의 불행한 결합이 초래한 일이었다. 폭격을 승인한 사람들은 악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이 전쟁의 잔혹한 현실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어, 1945년 봄에 이루어진 공중 폭격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핵무장 해제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면 전쟁이 견딜 만하고 품위 있는 것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드레스덴의 운명을 깊이 생각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재래무기를 이용한 공중 폭격의 결과로 135,000명이 죽었다. 1945년 3월 9일 밤에는 고성능 승소이탄을 이용한 미국 중폭격기의 도쿄 공중 공격으로 83,793명이 죽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탄은 71,379명을 죽였다.

뭐 그런 거지. (P233-234)

"빌리는 열여섯 살 때로 시간 여행을 했다. 어떤 병원 대기실이었다. 엄지가 감염되어서 왔다. 다른 환자는 한 사람뿐이었다- 늙고 또 늙은 남자였다. 늙은 남자는 가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방귀를 뀌었고, 그러다 또 트림을 했다.

미안하구먼." 그가 빌리에게 말했다. 그러더니 다시 방귀를 트고 트림을 했다. "나도 늙는 게 나쁠 줄은 알았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쁠 줄은 몰랐어." (P235)

럼포드는 전에 릴리에게 드레스덴 폭격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빌리도 그 이야기를 다 들었다. 럼포드는 드레스덴과 관련하여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때 미 육군 항공대의 역사를 다루는 그의 책은 『제2차세계대전 육군 항공대 공식 역사』라는 스물일곱 권짜리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 권짜리로 만드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스물일곱 권에 드레스덴 공습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성공을 거둑 작전이었는데도. 그것이 얼마나 큰 성공이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비밀로 유지되었다ㅡ미국민에게 감추는 비밀이었다. 물론 독일인, 또 전쟁이 끝나자 드레스덴을 점령했고 지금도 드레스데네 있는 러시아인에게는 비밀이 아니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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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포드로서는 빌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주 오랫동안 빌리가 차라리 죽는 게 훨씬 나을 역겨운, 인간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빌리가 똑똑하고 명료하게 말을 하자, 럼포드의 귀는 그것을 배울 가치가 없는 외국어로 취급하고 싶어했다. "저게 뭐라고 한 거야?" 럼포드가 말했다.

릴리는 토역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거기 있었다는데요." 그녀가 설명했다.

"저게 어디 있었다고?"

"모르겠어요." 릴리가 말했다. "어디 있었다고요?" 그녀가 빌리에게 물었다.

"드레스덴." 빌리가 말했다.

"드레스덴이라는데요." 릴리가 럼포드에게 말했다.

"그냥 우리가 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야." 럼포드가 말했다.

"아." 릴리가 말했다.

"반향언어증상이 나타난 거야."

"아."

반향언어증상이란 주위에 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즉시 되풀이하는 정신적 질병이다. 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럼포드는 그냥 그래야 자신이 편하기 때문에 빌리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한 것뿐이다. 럼포드는 군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불편한 사람, 실리적인 이유에서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역겨운 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P238-239)

"그럴 수밖에 없었소." 럼포드가 빌리에게 말했다. 드레스덴 파괴 이야기였다.

"압니다." 빌리가 말했다.

"그게 전쟁이오."

"압니다. 나는 불평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지상은 틀림없이 지옥이었겠지."

"그랬습니다."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시오."

"그러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겠지, 거기 지상에서는 말이오."

"괜찮았습니다." 빌리가 말했다. "다 괜찮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나는 그걸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웠습니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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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등을 든 독일 병사가 어둠 속으로 내려가더니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마침내 돌아온 병사는 저 아래 시체 수십 구가 있다고 말했다. 시체들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혀 시체 같은 느낌이 없었다.

뭐 그런 거지.

상급자는 막의 찢은 곳을 넓혀야 한다고, 사다리를 구멍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그래야 시체를 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드레스덴 최초의 시체 채굴이 시작되었다.

곧 시체 광산이 수백 개 생겨났다. 처음에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밀랍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시체들은 썩고 녹기 시작했고, 악취는 장미와 겨자탄 냄새 같았다.

뭐 그런 거지.

빌리가 함꼐 일하던 마오리인은 그 악취 속으로 내려가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뒤 헛구역질을 하다 죽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갈가리 찢으며 토하고 또 토했다.

뭐 그런 거지.

그래서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제 시체를 위로 끌어올리지 않았다. 화염방사기를 든 병사들이 시체들을 있는 자리에서 화장해버렸다. 병사들은 대피소 바깥에 서서 그냥 불만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곳 어딘가에서 가엾은 늙은 고등학교 선생 에드거 더비가 지하묘지에서 찻주전자를 가져왔다가 들켰다. 그는 약탈죄로 체포되었다. 재판을 받고 총살을 당했다.

뭐 그런 거지.

또 그곳 어딘가에 봄이 있었다. 시체 광산은 폐쇄되었다. 병사들은 모두 러시안인과 싸우러 나갔다. 교외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은 참호를 팠다. 빌리와 그의 무리 나머지 사람들은 교외의 마구간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제2차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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