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리만자로의 눈> 1952년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은 헨리 킹이 감독하였으며, 그레고리 펙, 수전 헤이워드, 에바 가드너 등이 출연하였다.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은 1936년에 발표된 단편이다. 1933년 헤밍웨이는 두 번째 부인과 아프리카를 여행한다. 그것에서 착상되어 나온 단편이다. 사파리 사냥 중에 가벼운 부상을 입지만 치료를 게을리한 탓에 생긴 다리의 괴저로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글이다.
킬리만자로는 해발 19,710피트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그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부른다. 서쪽 봉우리 가까운 곳에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 사체가 있다. 이 표범이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왔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당신은 죽지 않아.”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 저 빌어먹을 것들한테 물어봐.” 그는 흉측하게 생겨먹은 거대한 새들이 있는 곳을 건너다보았다. 새들은 불거진 깃털 속에 민대가리를 파묻고 있었다. 네 번째 새가 활공을 하며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달리더니, 이내 어기적거리며 느릿느릿 다른 새들한테 다가갔다.
“저 새들은 야영지마다 다 있어, 당신이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지. 포기하지 않는 한 죽지 않아.”
“그따위 말은 어디서 읽었어? 당신은 정말 빌어먹을 바보야.”
“다른 사람 생각을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어.”
“맙소사.” 그가 말했다. “그게 지금까지 내 본업이었잖아.” (P11-12)
이제 다 끝났군,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나 스스로 끝장을 낼 기회는 오지 않겠군.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야. 술 가지고 말다툼이나 하면서. 오른쪽 다리에 괴저가 시작된 이후로 그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통증과 함께 공포도 사라졌다. 이제 그가 느끼는 것이라곤 이게 끝이라는 커다란 피로와 분노뿐이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이것에 그는 호기심이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이것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이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냥 적당히 피로해지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렇게 될 수 있다니 신기했다.
이제는 잘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게 되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들을 영영 쓰지 못할 터였다. 뭐, 그것을 써보려고 애만 쓰다 결국 쓰지 못하는 일도 함께 없어지는 것이지만. 사실은 영영 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옆으로 밀어 놓은 채 쓰는 일을 미루어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뭐, 어느 쪽인지는 영영 알 수 없겠지. (P13-14)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그가 이미 끝장난 남자였던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남자가 하는 말이 전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오로지 습관 때문에, 편해지려고 하는 말일 뿐일는 것을 여자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실 진심을 말하지 않게 된 이후로, 그는 여자들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이 잘 먹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딱히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말할 진실이 없는 쪽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았지만 그 삶은 끝이 났으며, 그런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더 많은 돈으로, 똑같은 곳들 가운데 가장 좋은 곳에서, 그리고 가끔 새로운 곳에서, 그 삶을 계속 다시 살아갈 뿐이었다.
생각을 끊어버리자 그저 좋기만 할 뿐이었지, 너는 속을 좋게 타고났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살나는 식으로 박살나지는 않았고, 이제는 전에 하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어. 하지만 속으로는 이 사람들에 관해, 아주 부유한 사람들에 관해 쓸 거라고. 너는 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들 나라에 들어간 첩자라고. 그 나라를 떠나 그 나라에 관해 쓸 것이며, 이번만큼은 그 나라가 자신이 쓰는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의 손으로 기록될 거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는 절대 쓰지 못할 터였다. 글을 쓰지 않는, 편안한, 자신이 경멸하는 대상이 되는 나날이 그의 일하는 능력을 무디게 하고 의지를 약하게 하며, 마침내 전혀 일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아는 사람들도 모두 그가 일을 하지 않을 때 훨씬 편안해했다. 아프리카는 그의 삶이 좋았던 시절에 가장 행복하게 지낸 곳이었고,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려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들은 안락을 최소한으로 줄여 이 사파리를 계획했다. 그렇다고 고난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치도 없었고, 그는 이런 식으로 다시 훈련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권투선수가 지방을 태우기 위해 산에 들어가 몸을 쓰고 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어떻게든 노력으로 자신의 영혼의 지방을 벗겨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도 좋아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흥분할 수 있는 일, 장면전환이 일어나 새로운 사람들이 있고 분위기가 유쾌한 곳에 가게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일할 의지력이 돌아온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끝나는 것이라면 — 그는 이렇게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 등뼈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자신을 물어버린 어떤 뱀처럼 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여자였을 것이다. 거짓말로 살아왔다면 거짓말로 주어야 할 것이었다. 언덕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P23-25)
어두워지는 동안 그들은 술을 마셨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 총을 쏠 만한 빛마저 사라졌을 때 하이에나 한 마리가 언덕을 돌아가기 위해 벌판을 가로질렀다.
“저놈은 매일 밤 저기를 가로질러.” 남자가 말했다. “두 주 동안 매일 밤.”
“밤에 소리를 내는 게 저 녀석이야. 나는 상관하지 않지만, 어쨌든 더러운 동물인 건 사실이야.”
함께 술을 마시고, 한 자세로 누워 있는 데서 오는 불편 외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고, 보이들이 불을 피워 그 그림자가 텐트 위에 일렁이자, 그는 이 유쾌한 굴복의 삶을 묵인하는 마음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그에게 아주 잘해 주었다. 오후에 그는 잔인했고 부당했다. 그녀는 좋은 여자였다. 정말 굉장한 여자였다.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이 지금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빠르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물이나 바람처럼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악취를 풍기는 공허처럼 들이닥쳤다. 묘한 것은 하이에나가 그 공허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볍게 미끄러지듯 달려갔다는 것이다. (P31-32)
그는 그 여자들 모두와 좋았던 시절을 기억했고, 그 여자들과 벌인 싸움을 기억했다. 그들은 언제나 싸우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골랐다. 왜 그들은 늘 그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 싸웠을까? 그는 그것에 관해서는 전혀 쓴 적이 없는데, 그것은 우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재는 그것 말고도 쓸 것이 충분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결국은 그것에 관해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쓸 것은 무척 많았다. 그는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사건들만이 아니었다. 물론 많은 사건을 보았고, 또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러나 그는 더 미묘한 변화를 보았고, 사람들이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변화 속에 있었으며, 그것을 지켜 보았고, 그것에 관해 쓰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결코 쓰지 못할 것이었다. (P37)
그러니까 이렇게 죽는 것이다. 귀에 들리지 않는 소곤거림 속에서. 그래, 싸움은 더 안 하겠지. 그것은 약속할 수 있었다.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의 사건, 지금 그것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망치게 될 지도 몰랐다. 너는 모든 걸 망치잖아. 하지만 어쩌면 망치지 않을지도 몰랐다.
“받아쓰기는 못하지, 그렇지?”
“배운 적이 없는데.” 그녀가 말했다.
“됐어.”
물론 시간은 없었다. 제대로만 잡아내면 모든 것을 한 문단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P39)
그녀는 그를 만난 이후로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다 해도 절대 그녀에 관해서는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그것을 알았다. 그들 가운데 누구에 관해서도 쓰지 못할 것이다. 부자들은 둔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아니면 주사위놀이를 너무 많이 했다. 그들은 둔했고, 그들은 반복적이었다. 그는 가난한 줄리언을 떠올렸다. 줄리언은 부자들에 대한 낭만적인 경외감을 갖고 있었고, 한때 “큰 부자들은 너와 나하고는 다르다”는 말로 시작되는 소설에 착수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줄리언에게 말했다. 그래, 그 사람들은 돈이 더 많지. 하지만 줄리언에게는 그 말이 재미있게 들리지 않았다. 줄리언은 부자들이 특별히 매혹적인 부류라고 생각했으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어떤 일보다도 큰 충격을 받고 박살이 났다.
그는 그렇게 충격받고 박살나는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이해한다고 해서 좋아할 필요는 없어. 나는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어, 그는 생각했다. 개의치 않으면 어떤 일에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좋아. 이제 그는 죽음을 개의치 않기로 했다. 한 가지 그가 늘 두려워하던 것은 통증이었다. 사실 그는 누구 못지않게 통증을 잘 견딜 수 있었다. 너무 오래 계속되어 완전히 지치게만 하지 않는다면.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겁이 날 만큼 아팠으며, 막 그것 때문에 무너질 것 같다고 느꼈을 때 통증은 중단되었다. (P47-48)
비행기는 아루샤로 가는 대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료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래를 보다가 체로 친 듯한 분홍색 구름이 마치 눈보라의 첫 눈처럼 난데없이 나타나 땅 위를 움직이다가 허공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메뚜기떼가 남쪽으로부터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 그들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마침내 하늘이 어두워졌고 그들은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다. 비가 너무 심하게 쏟아져 마치 폭포를 통과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폭풍우를 빠져나오자, 콤피는 고개를 돌려 싱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 정면으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그곳이 그가 가는 곳임을 알았다.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