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이티브 선> 2019년
<네이티브 선>(1986)
네이티브 선(Native Son)은 미국에서 제작된 라쉬드 존슨 감독의 2019년 드라마 영화이다. 닉 로빈슨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1부-두려움]
"베라, 어떨 땐 그냥 드러누워 다 끝내버리고 싶구나."
"엄마, 제발 그런 말 마세요."
"이런 식으로 살다간 나도 몇년 못 버틸 거야."
"엄마, 조금만 있으면 저도 일할 수 있어요."
"그땐 이미 난 죽고 없을 게다. 하느님께서 이미 부르셨을 거야."
베라가 커튼 뒤로 가더니 어머니를 위로하려 애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거는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 바깥으로 몰아냈다. 식구들이 고생을 하는데도 자기한테는 도울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식구들을 미워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얼마나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사는지 속속들이 느끼게 되는 순간 자신이 두려움과 절망감에 자제력을 상실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는 그는 그들을 돌처럼 차갑게 대했다. 그들과 함게 살고는 있지만, 벽이나 커튼 뒤에서 살고 있는 격이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했다. 그는 자기가 어떤 꼴로 살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깨닫는 순간, 자살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죽이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억누르고 거칠게 굴었다.
그는 일어나서 창문턱에 답배를 비벼 꼈다. 베라가 방으로 들어와 식탁에 수저를 놓았다.
"다들 밥 먹으러 와." 어머니가 불렀다.
그는 식탁에 앉았다. 베이컨을 굽고 커피를 끓이는 냄새가 커튼 너머에서 풍겼다.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인생은 산악 선로 같은 것
용감한 운전사가 몰고 가지
우리는 탈없이 달려야 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는 그 노래가 신경에 거슬렸고, 어머니가 노래를 멈추고 커피 주전자와 쪼글쪼글하게 구운 베이컨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방에 들어오자 기분이 나아졌다. 베라가 빵을 가져오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낮에 읊조렸다. (P22-23)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잖냐.”
"누가?"
"백인 놈들."
"그걸 뭐 이제 알았냐?" 거스가 말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도무지 그러려니 해지지가 않아." 버거가 말했다.
“하늘에 맹세코, 안되는 거야,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건 나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어.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누가 목구멍 속으로 시뻘겋게 달군 인두를 쑥 집어넣는 느낌이야. 제기랄 생각해 봐! 우리는 여기 살고 그놈들은 저기 살아. 우리는 검고 그놈들은 희고. 그놈들한텐 이것저것 없는 게 없지만 우린 아냐. 그놈들은 뭔가 해내지만 우린 못해. 이거야 꼭 감옥살이지. 세상 밖에서 울타리에 뚫린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 때가 태반이야......”
"너 알아?" 버거가 말했다.
"뭐?"
"어떤 땐 나한테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버거의 목소리에는 씁쓸한 자존심이 어려 있었다.
"무슨 소리야?" 거스가 재빨리 그를 훔쳐보며 말했다. 거스의 눈에 두려움이 감돌았다.
"몰ㄹ,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나는 검고 그놈들은 희다는 걸. 나는 여기 있고 그놈들은 저기 있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뭔가 엄청난 일이 나한테 일어날 것만 같아...."
"에이, 그만둬!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왜 사서 걱정거리를 만드냐? 넌 흑인이고 법은 그놈들이 만드는데....."
(P35-36)
그는 거스와 싸움을 시작했을 때 자기가 백인을 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구체적이고 확실한 인식으로 마음에 떠오르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뒤섞인 감정들이 그로 하여금 백인과 총으로 맞서느니 거스한테 싸움을 걸어 강도 계획을 망쳐버리는 게 낫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두려움에 대한 이 같은 자각을 마음속 깊이 꽁꽁 묻어두었다. 그에게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스스로의 의식으로부터 얼마나 잘 감추느냐에 달려 있었다. 거스와 싸운 것은 거스가 늦게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감정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이유였고, 그는 자기 자신이나 친구들한테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래야 할 만큼 친구들을 중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 강도 계획은 자기 못지않게 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그는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그들에게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누구한테나 그는 이런 식이었다. 그는 누구한테도 책임을 져본 기억이 없었다. 상황이 자신한테 뭔가를 요구하면 그는 즉각 반항했다. 이것이 그의 생활 방식이었다. 그는 두렵기만 한 세계 속에서 강렬한 충동을 억누르거나 충족시키려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P67)
[2부-도주]
그는 화가 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빌어먹을 여자, 지옥에나 떨어져라! 지금 날 비웃는 건가? 이치들이 날 놀리는 것인가? 도대체 뭘 바라고 이러는 걸까? 왜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까? 이쪽에선 건드리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래, 이런 사람들하고 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의 몸과 마음은 고통스럽게 온통 날카로운 한 지점에 집중되었다. 그는 이해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렇게 운전대에 앉아 백인한테 손을 잡히고 있다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는 자신의 검은 피부가 몹시 의식되었고, 잰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자기로 하여금 검은 피부를 의식하게끔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백인은 검은 피부를 멸시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잰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왜 메리는 열심히 눈을 반짝이며 저기 저러고 서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래서 얻는 게 뭐 있다고? 어쩌면, 저들은 날 경멸하지 않는 걸까? 그러나 그렇게 하나는 손을 잡고 또 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그에게 자신의 검은 피부를 느끼게 만들었다. 바로 이 순간 자신의 육체적 존재마저 사라져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자신이 바로 스스로 증오하는 그것, 검은 피부에 부착된 ‘수치의 표지’였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그림자지대, '경계지대', 백인 세계와 흑인 세계가 나뉘는 지대였다. 그는 발가벗은 듯한, 투명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껏 그를 억누르고 그를 일그러뜨리는 데 협력해오던 이 백인 남자가 이제 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구경하며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그는 메리와 잰에게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무언의 차가운 증오가 일었다. (P101)
버거는 식탁에 앉아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어쩌면 이제 여기서 식사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 강했던 까닭에 그는 좀더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다. 언젠가는 감방에서 먹게 될지도 몰랐다. 여기 식구들과 함께 앉아 있지만, 그들은 그가 백인 여자를 살해하고 머리를 자르고 태워버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가 저지른 일, 그 끔찍한 공포, 그런 행동에서 연상되는 대담함 등에 대한 생각은, 두려움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와 그가 두려워하는 세계 사이에 하나의 보호벽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살인을 함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삶을 창조해냈다. 그 삶은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이었으며, 여태껏 무언가 남이 뺏어갈 수 없는 것을 가져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 그는 여기 조용히 앉아 식사하며 식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건 무관심할 수 있었다. 뒤에 숨어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벽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그의 범죄는 그를 때맞춰 안전하게 붙들어줄 닻과도 같았다. 범죄는 총과 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자신감 같은 것을 더해주었다. (P152-153)
이제 둑이 터진 셈이니, 무슨 일은 못하겠는가? 무엇이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아침밥을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서, 그는 오랫동안 잘 잡히지 않았던 무언가에 다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살면서 그들이 안 보는 사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조용한 존재 속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무의식적인 하나의 힘, 생각이 없는 삶을 추구하고 평화와 습관을 추구하며 눈멀게 만드는 희망을 추구하는 그런 힘을 느꼈다. 그들은 인생을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바라고 갈구한다고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특정한 세계상이 필요했다. 그들이 다른 어떤 생활 방식보다 선호하는 하나의 생활 방식이 있으며 그들은 거기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자신들의 욕망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러니 다만 대담하게 굴고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런 일을 하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 강하고 단순한 감정의 형태로 다가왔다. 사람은 누구나 믿고 싶은 커다란 갈망이 있고 그 때문에 장님이 된다. 그러니 남들은 눈이 멀었지만 그는 볼 수 있다면, 갖고 싶은대로 가져도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다. 자, 도대체 어느 누가 그처럼 소심한 새까만 흑인 사내아이가 부잣집 백인 처녀를 살해하여 태워버리고 이렇게 아침밥을 기다리며 앉아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는 고양감에 휩싸였다. (P154)
메리의 침대를 굽어보고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전기의자의 공포가 뼛속 깊이 사무쳤었다. 그렇지만 집에서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아침 식탁에 앉아서 그들이 얼마나 장님인가를 보면서, 그리고 페기와 돌턴 부인이 부엌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으면서, 새로운 느낌이, 죽음의 공포를 거의 지워버리다시피 하는 느낌이 마음속에 싹텄다. 조심스럽게 잘 가늠하며 처신하는 한 얼마든지 감당해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손안에 쥐고 원하는 대로 처분할 수 있는 한, 그리고 언제 어디로 도망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한,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손아귀에 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기억컨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생각과 주의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는 명확히 구분된 두 극단 사이에서 난생처음 의식적으로 선택이란 걸 하고 있었다. 죽음의 형벌의 위협으로부터, 그의 가슴속에 그 팽팽하고 뜨거운 덩어리가 생겨나게 만든 죽음 같은 시간들로부터 벗어나, 잡지와 영화를 통해 아주 자주, 그러나 감질나게 맛보았던 그 충족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P214)
[3부-운명]
비거는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 손으로 차가운 쇠창살을 그러쥐었다. 그렇게 서서 그는 자기가 왜 죽였는지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말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메리와 베시를 죽인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무엇인지 결코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다는 바로 그 생각과 느낌이었다. 그의 범죄는 밝혀졌지만, 그것을 저지르기 전에 그가 느꼈던 느낌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죄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삶이었던 그 깊고 숨막히는 증오를, 원치 않아도 품을 수밖에 없던 증오의 느낌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죄를 인정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전달할 수 있을까? 죽이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던 만큼 말해보고 싶은 충동도 간절했다. (P431-432)
“돌턴 씨, 당신은 흑인을 돕는 데 수백만 달러를 기부합니다. 화재가 났다 하면 빠져나갈 구멍도 없는 그런 건물의 집세를 낮추고 그 차액을 자선사업 예산에서 충당하지 않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글쎄요, 집세를 낮춘다면 비윤리적인 행위가 될 것이오.”
“비윤리적이라!”
“그렇소 경쟁자들보다 싼 가격을 책정하는 셈이니까요.”
“부동산업자 사이에 흑인들한테 집세를 얼마 받아야 한다는 약정이라도 있나요?”
“그렇진 않소. 하지만 사업에는 윤리 규범이 있는 거요.”
“그래서, 토머스 가족의 집세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그들의 사기당한 삶의 고통을 덜어주고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면하려고 도로 그들에게 내주는 겁니까?”
“그건 사실을 왜곡한 것이오, 선생!”
“돌턴 씨, 왜 흑인 교육에 돈을 기부하십니까?”
“기회를 주고 싶어섭니다.”
“당신이 교육받게 도와준 흑인을 고용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소.”
“돌턴 씨, 토머스 가족이 당신 소유의 집에 살면서 견뎌야 했던 그 끔찍한 여건과 따님의 죽임이 어떤 면에서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P459-460)
심지어는 한 흑인이 다른 흑인을 죽이면 백인들은 잘됐다고 여긴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싸워야 할 대상인 흑인이 하나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흑인에게 범죄란 오로지 백인을 해치거나 백인의 목숨을 빼앗거나 백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경우만을 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장내에서 진행되는 일을 보고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생각에 잠긴 듯한 시선은 하얀 시트에 싸여 꼼짝도 하지 않고 탁자 위에 누워 있는 기다란 형체에 못 박힌 듯 했고, 그는 베시에 대해 그녀가 살아 있던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동정심이 들었다. 비록 베시는 죽었지만, 비록 그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베시도 자신의 시신이 이렇게 이용되는 것을 싫어할 것임을 그는 알았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베시가 백인의 부엌에서 한참을 뼈 빠지게 일하고 돌아올 때면 자주 그에게 토로하던 바로 그 기분, 계속 남들의 명령만 받다보니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없게 된 것만 같다던 그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저들이 살라고 하는 곳에서 살아왔을 뿐아니라, 저들이 하라는 것을 해왔고, 저들과 결별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이런 일을 해왔고, 시키는 대로 한 다음에도, 살인한 다음에도, 여전히 저들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과 영혼, 육신과 피, 모두 저들의 소유물이고, 잘 때나 걸어다닐 때나 저들의 처사가 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장악했다. 그것은 삶의 빛깔을 결정하고 죽음의 조건을 지시했다. (P464)
“.....우릴 죽이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저들은 금을 긋고 너희는 그쪽 편에 서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쪽에 빵이 하나도 없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사람이 죽는다 해도 아랑곳 않지요. 그래 놓곤 그런 소리나 퍼뜨리고, 누가 금을 넘어가려 하면 죽여버리는 겁니다. 당장 죽여버려야 한다고 느끼는 거예요. 모두들 당장 죽여버리지 못해 안달이지요. 그래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 저들이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일 거예여. 아마 그게 이유였을 겁니다.”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단 말인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 말인가?"
"무르겠습니다. 맥스 씨. 하지만 거리낄 게 뭐 있나요? 언젠가는 무슨 일로든 저들에게 걸려들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요. 저는 흑인입니다. 저들이 절 잡자면, 굳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 필요도 없어요. 하얀 손가락이 절 지목하기만 하면, 그걸로 끝장이니까요, 아시겠어요?"
"하지만, 비거. 돌턴 부인이 방에 들어왔을 때 왜 즉시 멈추고 사정을 털어놓지 않았나? 그랬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게 아닌가....."
"맥스 씨, 정말이지. 그 부인이 침대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전 제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의식이 없었단 말인가?" (P492)
"그렇지만 비거, 아까 백인들이 자네를 미워하지 않고 또 자네도 백인들을 미워하지 않는 곳에서라면 행복했을 거라고 말했잖나. 교회에는 자네를 미워하는 사람도 없는데, 거기서도 평안을 찾을 수 없었나?"
“제가 행복해지고 싶은 건 이 세상에서지 저 세상에서가 아니에요. 그런 행복은 원치 않습니다. 백인들은 우리가 독실한 신자가 되기를 바라죠. 그러면 우리를 자기네 멋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전 자네는 여자들을 죽였으니 하느님이 '천벌'을 내린다고 했지. 그렇다면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지 두렵지 않나?"
"두렵지 않아요. 그렇지만 죽고 싶진 않습니다."
"그 백인 여자를 죽이면 사형당할 줄 몰랐나?"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가 날 죽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상관없었습니다."
"만일 지금이라도 종교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되고 싶나?"
"아뇨. 얼마 안 가 죽을 건데요. 뭐, 종교를 믿었다면 이미 죽었을거구요."
"그렇지만 교회는 영생을 약속하지 않나?"
"그건 주눅 든 사람한테나 통하는 소리구요." (P499)
사람들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는 것이기에, 만약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변명으로라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당화하지도 못하고 또 자신의 삶과 재산에 지나친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사태를 바로잡을 즉각적인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할 때,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바로 그것을 말살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특이하고 강력하면서도 보편적인 욕구입니다. 재판장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불쌍한 흑인 청년 비거 토머스가 증인으로 어제 이 법정에 나온 공산당원 잰 얼론에게 자기가 지은 죄를 전가하려 했을 때 --이 청년이 공산당원들에게 죄를 전가하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신문을 보고 공산당원은 범죄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인데-- 그때 이런 두려움과 죄의식의 한 예가 벌어진 것입니다. 잰 얼론은 길모퉁이에서 비거 토마스와 마주쳤을 때 다 털어놓고 이야기해보려 애쓰며 비거가 자기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잰 얼론은 비거 토머스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했습니다. 저 바깥에 무리 짓고 있는 저 사람들이 이 순간 그러는 것처럼 말입니다. 비거 토머스는 총을 꺼내 들고 잰 얼론에게 자기를 내버려두라고 말했습니다. 비거 토머스는 잰 얼론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잰 얼론도 비거 토머스를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증오한 것입니다. (P547)
.......인간은 땅에 적응해나갑니다. 인간은 생활 준칙과 선악 개념 들을 만들어냅니다. 생계를 영위하는 수단이 같으며, 삶에 대한 태도도 같아집니다. 언어조차도 사람이 겪는 경험에 따라 규정되고 형성됩니다. 재판장님, 불의는 한가지 형태의 삶을 송두리째 없애버리지만, 그 자리에는 그 나름의 권리와 욕구와 열망을 지닌 다른 형태의 삶이 자라나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 자행되는 것은 불의가 아니라 억압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삶을 질식시키고 짓밟으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한가운데서 자라나 당혹감을 안겨주고, 돌 밑에서 자라나 당혹감을 안겨주고, 돌 밑에서 자라난 잡초처럼 우리가 범죄라 부르는 모습으로 스스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형태의 삶입니다. 이 문제를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비추어 파악하지 않는 한, 그러한 조건에서 살고 있는 한 인간이 우리가 범죄라 부르는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죄의식과 분노의 감정을 또다른 살인으로 달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청년은 이 나라 3분의 1에 만연한 문제의 작은 단면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청년을 죽이십시오! 이 청년의 생명을 태워 없애십시오! 그래봤자 이 섬세하고 무의식적인 흑백관계의 기제가 조금만 어긋나면, 다시 살인이 벌어질 것입니다. 수백만명의 삶을 부정하는 법이 성공적으로 집행되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술이라도 믿는 건가요? 여러분은 십자가를 불태워서 수많은 사람들을 겁주고 그들의 의지와 충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까? 이 청년을 죽인다고 해서 미국 백인 가정의 딸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질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P549)
..... ‘당신은 흑인 빈민가 말고 다른 구역에서는 흑인에게 집을 임대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비거 토머스를 그 숲에 묶어둔 것입니다. 당신은 따님을 살해한 사람이 따님한테 이방이이고 따님 역시 그 사람한테 이방인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토머스 가족과 돌턴 가족의 관계는 임차인과 집주인, 고객과 상인, 피고용주와 고용주의 관계였습니다. 토머스 가족은 가난해지고 돌턴 가족은 부유해졌습니다. 그리고 점잖은 돌턴 씨는 돈을 기부함으로써 자신의 기분을 달려보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돌턴 씨, 황금으론 충분치 않았습니다! 시체를 매수할 수는 없으니까요! 돌턴 씨,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내 딸을 번제에 바쳤는데도 나를 괴롭히는 이것을 무덤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했다’라고.
그리고 돌턴 부인께 드릴 말은 이것입니다. ‘부인의 박애 정신은 비극적이게도 부인의 보이지 않는 눈만큼이나 눈먼 것이었습니다.’
돌턴 양이 제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돌턴 양한테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당신의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P551-552)
.....이 청년의 범죄는 피해자가 가해자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가한 보복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본건은 실로 간단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한 인종 전체를 이 세계의 자연구조의 일부로 오인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우발적으로, 생각 없이, 계획도 의식적 동기도 없이, 메리 돌턴을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살인한 후에는 그 범죄를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피고인 인생 최초의 온전한 행위였습니다. 피고인에게 일어난 것 중 가장 의미심장하고 흥분되는 고무적인 행위였습니다. 피고인은 그것이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에, 선택과 행동의 가능성을 주었기 때문에, 행동을 하고 자기 행동의 무게를 느낄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충동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자연계 전체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든가 아니면 적응해야 한다고 느낄 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이해해야 할 핵심적인 사실은, 누가 이 청년에게 잘못을 범했느냐가 아니라, 세계가 피고인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쳤으며, 어디서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면서 타인의 생명을 그렇게 신속하고 본능적으로 앗아버리고, 그리하여 우발적인 면이 있었음에도 범행 후 '그렇다, 내가 했다. 해야만 했다'라고 인정하고 나올 정도로 말입니다. (P556)
“비거, 자넨 곧 죽네. 그러니 이왕에 죽을 거, 자유롭게 죽게. 자넨 자신을 믿으려고 애쓰고 있어. 그런데 제대로 사는 방법을 찾아내려 할 때마다, 바로 자네 마음이 방해가 되지. 왜 그런지 아나? 그건 다른 사람들이 자네는 나쁘다고 말하면서 자네를 나쁜 여건에 살게 했기 때문이야. 그런 말을 계속 들은데다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의 삶이 실제로 나쁘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은 자기 마음도 의심하게 되는 법이지. 감정은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지만, 자신에 대해 남들이 한 말로 가득 찬 마음이 자꾸 뒤로 잡아끌거든. 사람들로 하여금 투쟁하고 신념을 갖게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살아가면서 가진 느낌을 믿을 수 있게. 그리고 자신의 느낌이 다른 사람들의 느낌만큼 정당하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해.
비거, 자네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느끼는 것은 자네와 마찬가지야. 다만 울타리 저편에 있을 따름이지. 물론 자넨 흑인이지만, 그건 문제의 일부분일 뿐이네. 전에도 말했지만, 자네의 검은 피부 때문에 저들이 자네를 쉽게 갈라낼 수 있을 뿐이야. 저들은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저들도 자네처럼 풍요한 인생을 원하네. 그걸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야. 사람들을 고용하고는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든가, 남의 것을 빼앗아 권력을 쌓든가. 저들은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네. 자기들 마음대로 그런 짓을 하고는 사람들이 맞서 싸우지 못하게끔 모든 것을 만들어놓았지. 흑인한테 가장 심하게 굴면서, 흑인이 열등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대지. 그렇지만 비거, 부자들은 사태가 달라지는 걸 바라지 않아. 잃을 게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만 깊은 속마음에서는 저들이 느끼는 것도 자네와 마찬가지네. 비거, 그리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으려 드는 거지. 비거, 자네가 메리한테 미안한 마음이 없다고 고집했을 때처럼 말일세. 그렇지만 울타리 어느 편에 있든 인간은 모두 어엿한 삶을 원하네. 그래서 살기 위해 서로 싸우는 거야, 누가 이기겠나? 삶을 더 절실히 느끼는 편이, 인간성이 더 풍부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있는 편이 이기겠지. 그렇기 때문에..... 자—자네도 자신을 미—믿어야 하는 거야, 비거..........” (P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