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다Luda> 2013년
아모스 오즈의 소설 <유다>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는 유대인들의 대표자처럼 인식되는 <배신자 유다>에 대한 이야기와 두 번째는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에 대한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배신이다. 아브라바넬이 영국인들을 쫓아내고 팔레스타인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 공존하자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박해받던 사람이, 자기 손으로 다른 모든 사람을 박해자로 만들었든 간에, 아니면 자기만의 끔찍한 상상력으로 음모를 꾸미는 적들이 떼를 지어 밀려온다고 믿었든 간에, 그렇게 쫓기는 사람이 되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는 것 외에도 그에게는 일종의 윤리적 결함이 생긴다네. 쫓고 쫓기는 과정 자체에 결부된 기본적인 부정직함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원래 고통이나 외로움, 각족 사고나 질병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쉽게 찾아오곤 하지 — 우리 모두에게. 본성상 의심이 많은 자에게는 재난이 찾아오는 법이야. 의심은 산(酸)과 같아서,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을 파괴하고 의심하는 자를 잡아먹는다네. 밤낮으로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야 하고, 그들의 음모에 휘말리지 않고 계책을 물리칠 방법을 고안해야 하며, 자기 발 앞에 누가 그물이라도 던져 놓았는지 멀리서부터 냄새를 맡고 알아챌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니 말일세 — 이게 바로 ‘피해의 아버지들’이 가지는 힘이며, 소위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들’이지. 미안하지만 잠깐 실례하겠네 —” (P35-36)
인생은 때로는 천천히 흘러가는데, 낙숫물이 졸졸 흘러내리듯 더디게 흘러 마당 흙에 스스로 좁은 물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이 물은 도중에 흙무더기를 만나서, 가로막혔다가, 잠시 작은 웅덩이가 되어, 머뭇거리기도 하다가, 자기 갈 길을 막아선 흙무더기를 조금씩 허물어 버리거나 그 밑으로 흘러들어 간다. 장애물을 만나 물줄기는 갈라지고 가느다란 촉수 같은 서너 개의 물줄기가 되어 갈 길을 계속 이어 간다. 또는 중도에 포기하고 마당 흙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다. 슈무엘 아쉬는, 평생 모은 재산을 부모님이 한순간에 다 잃으셨고, 자기 학위 논문은 마무리하지 못했고, 대학에서 하던 공부는 중단한 데다 애인은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와 결혼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 하라브 엘바즈 길에 있는 집에 취직하기로 작정했다. ‘숙식 제공’ 조건에 아주 소액이지만 월급을 지급하며, 매일 몇 시간 동안 어떤 장애인의 말벗이 되어 주면, 나머지 시간은 휴식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탈리야가 있었는데, 나이가 그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을 나갈 때마다 그는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슈무엘은 그녀가 하는 말과 목소리 사이에 어떤 간극, 또는 차이점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으며 가끔 신랄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따스했다. (P48-49)
당신 전에 살던 사람들은 아마 자기 자신을 찾고 있었나 봐요. 그들이 뭘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여기서 몇 개월 이상은 버티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휴식 시간 내내 저 다락방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부담이 되었나 봐요. 당신도 물론 여기 혼자 지내면서 당신 자신을 찾으려고 왔겠죠. 아니면 새로운 시라도 한 편 쓰려고 왔을 수도 있고요. 살인과 고문 같은 것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세상이 이미 제정신을 차려 고통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제 드디어 새로운 시 한 편이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P52)
그 노인은, 평소처럼, 만연체로, 즐겁게 그리고 힘차게 옛날 옛적부터 기독교인들의 상상 속에서 방랑하는 유대인이라는 이미지가 불러일으켜 온 어두운 두려움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무나 그렇게 그냥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서, 이를 닦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신을 죽일 수는 없다네! 신적인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 살해자가 신보다 더 강해야 하며 또 악의적이고 더할 수 없이 사악해야 하겠지. 나사렛 예수는, 따뜻하고 사랑을 발산하는 신적인 존재였으니, 그를 살해한 사람은 당연히 그보다 더 강하고 또 교활하고 역겨운 자였겠지. 이렇게 신을 살해하는 저주받은 자들은 권력과 악이라는 무시무시한 자원을 가졌을 때만 신을 죽이는 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네. 그리고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자들의 상상 지하실 속에서 유대인들은 항상 그런 모습이었지. 우리는 모두 가룟 유다야. 거의 여든 세대가 지났지만 우리는 모두 가룟 유다에 불과해. 그렇지만 진실은, 젊은 침구, 여기 이스라엘 땅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참된 진실은 그게 아니지 않나. 예전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나서 자란 새로운 유대인들도 똑같이 전혀 강하지 못하고 악의적이지도 못하며 오히려 욕심 많고, 잔꾀만 부리고, 말만 많고, 겁쟁이에다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그래, 하임 바이츠만이 언젠가 말했지, 절망스럽게, 유대 국가는 영원히 세워질 수 없으니 그 개념 안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만약 국가를 세운다면 — 그 나라는 유대적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유대적이라면 — 분명히 국가는 아닐 것이라고 말일세. 우리 전통에, 이것은 당나귀를 닮은 백성이라고 기록된 바와 같지.” (P62-63)
“이런 변증서를 쓴 유대인들은, 분명히 기독교인들의 손에 쫓기고 박해를 받던 뿌리 깊은 고통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을 겁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말일세.” 발드가 혐오하듯 비웃으며 말했는데, “그런 유대인들이, 권력과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추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신도를 뒤쫓고 그들을 궤멸시킬 때까지 박해했을 걸세. 유대교와 기독교, 물론 이슬람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꿀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은 자기들 손에 수갑, 쇠창살, 지배권, 지하 고문실과 교수대가 없을 때뿐이지. 이런 모든 종교는, 지난 세기에 태어난 수많은 종교 중에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고 있는데, 모두 우리를 구원하러 와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피를 쏟게 만드는 것이라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세상의 회복을 믿지 않네. 글쎄. 그러니까 나는 어떤 형태로든 세상의 회복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일세.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이 그 자체로 매우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건 분명히 아니지, 이 세상은 비뚤어졌고 암물하며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회복시키겠다고 나타난 자들이 순식간에 피의 강에 빠져들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일세. 오시게, 이제 함께 차나 한잔 마시고, 자네가 오늘 내게 가져왔던 말도 안되는 글들은 한쪽으로 밀어 놓게. 언젠가 이 세상에서 모든 종교와 모든 혁명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 마지막 하나까지, 예외 없이 — 이 세상에 전쟁들이 훨씬 적게 일어날 걸세. 사람이란, 임마누엘 칸트가 쓴 적이 있는데, 결국 본성상 비뚤어지고 닳아빠진 그루터기일 뿐이라고 했지. 우리가 목까지 피에 잠겨 건널 생각이 아니라면 그를 대패질할 생각도 말아야겠지. 밖에 비오는 소리 좀 들어 보게. 이제 곧 뉴스할 시간이군.” (P103-104)
슈무엘은 종이 한 장을 따로 꺼내서, 이런 유대인들이 예수의 부모와 탄생, 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음에 대해서 정신적이거나 윤리적인 모든 논쟁을 회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이상하다고, 적어 놓았다. 마치 그 기적들을 부인하고 그 기적들에 반대하기만 하면 그의 복음 자체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듯싶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기록 중에서 가룟 유다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유다가 아니었다면 십자가도 없었을 테고 십자가가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P125)
발드가 말했다.
“시나이 작전 이전에도 자네가 말하는 그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에 진정한 사랑을 품은 적은 없었지. 심지어 -- ”
슈무엘이 노인의 말을 끊으며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우리를 사랑하겠어요? 갑자기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낯선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땅과 토지를, 농토와 마을과 도시를, 조상들의 묘지와 자식들이 물려받을 유산을 탈취해 갔는데, 아랍인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거기에 반대할 권리조차 없다는 생각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우리는 그저 이 땅에 집을 짓고 정착하려고 왔을 뿐이라고, 우리의 말들을 옛적같이 새롭게 할 뿐이라고, 우리 조상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유산을 상속하려고 왔을 뿐이라고, 기타 등등 말하지만, 이 세상에 갑자기 외국인 수십만 명이 밀려드는 것을 두 팔 벌리고 환영할 민족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또 외국인 수백만 명이, 멀리서부터 날아와서 자기들이 가져온 거룩한 책에 따르면 이 땅이 자기들 소유라고 이상한 주장을 해 댄다면요?” (P153)
“어느 정도는 이 민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몇천 년 동안 책의 힘, 기도의 힘, 계명의 힘, 학습과 복습의 힘, 종교적 헌신의 힘, 상업의 힘, 그리고 중재자의 힘을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권력의 힘은 자기 등을 때리는 존재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자기 손에 무거운 곤봉을 들게 되었죠. 탱크와 대포와 제트기까지. 그러니까 이 민족이 힘에 휘해서 권력의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 당연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 생각에는, 힘으로는 성취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얼마나 센 힘을 말하는 건가?”
“세상의 힘을 다 합한 것만큼요. 미국과 소련과 프랑스와 영국의 힘을 합한 정도로 하죠. 이런 힘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힘이라면 자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을 것 같군. 인도에서 에디오피아까지.”
“그럴 것 같겠죠.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힘의 한계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진실로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없어요. 미워하는 사람을 노예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가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광신도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바꿀 수는 없지요. 그리고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복수에 목마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요 — 친구로. 자,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문제예요.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광신도를 온건한 사람으로, 복수하고 시비를 걸려는 사람을 친구로 바꾸는 것 말이에요. 지금 제가 우리는 군사력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으세요? 그건 당치도 않아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지요. 이렇게 당신과 제가 논쟁을 하는 순간에도,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도, 힘은, 우리의 군사력은 언제나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만큼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바로 그 권력의 힘이 우리가 당장 멸망하지 않도록 막아 주고 있지요. 우리에게 힘은 막는 역할을 해 줄 뿐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매 순간, 기억하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힘은 아무것도 해결하거나 해소해 주지 않아요. 얼마간 재난을 막아 줄 뿐이지요.” (P157-158)
“당신은 아직도 예수 이야기를 파고 있나요?”
“예수과 가룟 유다. 예수와 유대인들,” 슈무엘이 말했다. “유대인들이 대대로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요.”
“도대체 그게 왜 그리 흥미로운 거죠? 유대인들이 무함마드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왜 아니죠? 아니면 붓다를?”
“그건 말이죠,” 슈무엘이 대답했다. “저는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어요.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죽었어요. 그는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바울로, 다르소의 사울인, 그가 기독교를 창시했던 거죠. 예수는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토라의 한 획이라도 바꾸려고 온 것이 아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그를 받아들였다면, 역사 전체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되었을 거예요. 교회는 세워지지도 않았을 테죠. 그리고 유럽 전체가 보다 관대하고 순화된 형태의 유대교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우리는 포로로 잡혀가거나, 쫓겨 다니며 박해 받거나, 약탈을 당하거나, 종교재판을 받거나, 피의 누명을 쓰거나, 파멸이나 대학살을 당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럼 유대인들은 왜 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나요?”
“바로 그것이, 아탈리야, 제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질문인데 그 대답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는, 우리 시대의 용어로 말하자면, 개혁적인 유대인이었죠. 또는 개혁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 근본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광신적이라는 뜻으로 근본주의자라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뿌리로 돌아가고자 했다는 의미로 그렇다는 거예요. 그는 유대교에 덕지적지 달라붙어 있던 온갖 제의적인 군더더기를 전부 제거하고, 제사장들이 길러 내고 바리사인들이 덧씌운 뼈다구니 지방 덩어리들을 정화하려고 했었죠. 저는 가룟 유대 벤 시므온이 이런 제사장 중 하나였다고 믿어요. 아니면 최소한 그들과 가까운 관계였겠죠. 어쩌면 예루살렘 제사장들이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 끼어 그들을 염탐하고 그들의 행적을 예루살렘에 보고하라고 그를 보냈는데, 오히려 그가 예수에게 빠져서 그를 끔찍하게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제자 중에서 가장 충직한 이가 되어 사도 집단의 회계까지 맡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언젠가, 당신이 원할 때, 제가 생각하는 가룟 유다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드리죠. 그렇지만 전 평범한 대중에 관해서는 아연해하고 있어요. 그들은 왜 그들 무리에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예루살렘에 살던 부유하고 살찐 제사장들의 지배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나는 ‘평범한 대중’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평범한 대중, 그런 건 없어요. 남자와 여자가 있고 다른 여자와 다른 남자가 있을 뿐이고 그들은 각자 이성과 감정과 성향과 서로 다른 윤리적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사실 남자들의 윤리적 판단이란,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그건 오직 자기 본능이 잠깐이라도 만족하고 있을 때뿐이겠지만 말이죠.” (P168-170)
“쉐알티엘 아브라바넬. 아탈리야의 아버지. 당신의 사돈. 그 사람에 관해서 무슨 설명을 해 줄 수 있으세요?”
발드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기 손으로 뺨을 쓰다듬다가 마치 슈무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거기 기록되어 있다는 듯 자기 손을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도 꿈꾸는 사람이었지. 물론 나사렛 예수에게 관심이 있거나 유대인들이 예수와 어떤 관계였는지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나름대로 자기 길이 옳다고 믿었지. 예수처럼, 보편적인 사랑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존재가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존재를 사랑해햐 한다고 말이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 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 나는 말일세, 친구, 나는 모두가 모두를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네. 사랑의 크기는 매우 제한적이야. 사람이 다섯 명의 남자와 여자를 사랑할 수는 있네, 혹시 열 명도, 심지어 열다섯 명도 가능할 수 있겠지. 사실상 그조차 — 매우 드물다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자기가 제삼세계 전체를 사랑한다고, 또는 라틴아메리카를 사랑한다고, 또는 여성 인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화려한 문학적 수사일 뿐이라고 하겠네. 입에 발린 말. 구호. 우리는 아주 소수의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태어났다네. 사랑은 개인적이고 특이하며 모순이 가득한 사건이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 이기심, 탐욕, 육체적 욕망 때문에, 사랑받는 사람을 조종하고 그를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반대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굴복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예도 적지 않고, 사실 — 사랑은 미움과 매우 닮아 있고 사람들이 대부분 무시하고 있지만 미움에 훨씬 가깝다네. 예를 들자면, 자네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 두 경우 모두 자네는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그가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간절히 알고 싶어 하지. 부패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며 인간이니, 누가 이를 알리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말했지. 또 토마스 만은 어딘가에 미움이란 수학의 마이너스 기호가 붙은 사랑이라고 쓴 적이 있고 말이야. 질투의 크기를 보면 사랑이 미움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데, 질투 안에는 사랑이 미움과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야. <아가>를 보면, 한 구절 안에,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아탈리야의 아버지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상대방을 오해하던 것만 풀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꿈을 꾸었지. 그렇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 오해란 없고 한 번도 오해한 적이 없었다네. 그 반대지. 벌써 몇십 년 동안 그들은 서로를 충분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 아랍인들은 이 지역 출신자들이고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인데, 왜냐하면 여기가 유일하게 그들 땅이고 그들이 갈 다른 장소는 없기 때문이야. 우리도 똑같은 이유로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우리가 절대로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도 그들이 영원히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네. 그러니까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셈이지. 우리 사이에는 전혀 오해가 없고 전에도 없었다네. 아팔리야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다툼이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였지. 가족 상담을 받고, 집단 상담 몇 번에, 선한 의지 몇 방울만 있다면 — 우리는 모두 금세 심장과 영혼을 나눈 형제가 될 테고 다툼은 전혀 없었던 일처럼 사라지리라 믿었겠지. 그는 다투는 당사자들이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기만 한다면 곧 서로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을 거야. 우리가 함께 진하고 달콤한 커피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면 — 당장 해가 뜨고 미워하던 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목덜미를 끌어안게 된다는 거지. 도스토엡스키의 소설처럼. 그리고 내 자네에게 말해두는데, 이 친구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명의 사내나 한 땅을 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두 민족은 — 커피를 강물만큼 나누어 마신다고 해도, 그 강은 그들의 미움을 끌 수 없고 많은 물로도 그것을 씻어낼 수 없다네. 그리고 또 이 말도 해 두는데,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자들은 복이 있고 눈뜬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네. 물론 꿈꾸는 자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제자들도 그렇겠지만, 꿈도 없고 꿈꾸는 자들도 없다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저주가 일곱 배는 더 무거워질 걸세. 꿈꾸는 자들 덕분에 우리도, 눈뜬 자들도, 그들이 없을 때보다는 좀 덜 무서워하고 덜 절망할 걸세. 괜찮다면 내게 물 한 잔 따라 주시면 고맙겠네. 그리고 괜찮다면 어항의 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잊지 말고. 저 고기들이 유리 벽 너머로 방 쪽을 쳐다볼 때 실제로 무엇을 보는지 궁금하군. 책장들을 보는 건지, 창문의 사각형 빛을 보는 건지. 자네의 예수도 큰 꿈을 꾸는 자였지. 이 세상에 나타났던 꿈꾸는 자들 중에 가장 큰 자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의 제자들은 꿈꾸는 자들이 아니었지. 그들은 권력을 탐내는 자들이었고 종국에는, 세상에서 권력을 탐내는 다른 자들의 종말과 같이, 피 흘리는 자들이 되었지. 부디 내게 답하려 하지 말게,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고 자네의 대답을 처음부터 끝까지 또 끝에서 처음까지 읊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일세. 자, 오늘 하루치 말은 다한 것 같으니 이제 난 편안히 고골을 읽고 싶네. 난 2~3년에 한 번씩 고골을 다시 읽지. 그는 우리의 본성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네. 일단 웃음을 참지 못하지. 그렇지만 자네는 그의 작품을 읽지 말게. 안 되지. 자네는, 톨스토이를 읽게. 자네에게는 그가 훨씬 잘 맞아. 괜찮다면 거기 소파 위에 있는 방석을 내게 가져다주시게. 그래. 그렇지. 고맙네. 그걸 내 등 뒤에 놓아주게. 고맙네. 자네처럼 꿈꾸는 자들에게는 톨스토이만 한 이가 없지.” (P201-205)
가룟 유다는 기독교를 창시한 사람이다. 그는 유다 출신으로 부유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도들처럼, 갈릴리 시골 마을 출신의 어부나 농부가 아니었다. 예루살렘에 살던 제사장들은 어떤 괴짜가 갈릴리 지역에서 기적을 일으킨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겐네사렛 호숫가 여기저기에서 잊힌 마을들과 성읍들을 돌며 온갖 시골에 어울릴 기적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었지만, 그 사람과 비슷하게 예언자나 기적을 일으키는 자라고 흉내를 내는 수십 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사기꾼이거나 정신 나간 자이거나 정신이 나간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갈릴리 사람은 자기를 흉내 내는 자들보다 좀 더 많은 신도를 끌어들이고 있었고, 그의 명성이 날로 높아 가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유복하고, 지식인이며, 영리하고, 기록된 토라의 구절과 구전 토라에 모두 능통하며 바리사이인들과 제사장들과 가까이 지내던 가룟 유다를 선택했고, 그 갈릴리 남자를 따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는 소수의 신도 사이에 잠입하라고 보냈으며, 그들 중 하나로 위장하여,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에게 이 괴짜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 사람이 특별히 위험한 인물인지 보고하도록 했다. 결국, 그 흉내쟁이 갈릴리 사람은 시골에 어울리는 온갖 기적들을 동떨어진 장소에서 그리고 배운 것 없고 온갖 마술사와 마법사와 야바위꾼들을 쉽게 믿는 시골 사람들 앞에서 행했다. 가룟 유다는 누더기를 걸치고, 갈릴리로 갔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찾아서 그들 사이에 끼게 되었다. 찢어진 옷과 누더기를 걸치고, 자기들의 예언자를 따라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단시간 안에 호감을 얻는 데 성공한다. 유다는 예수 본인으로부터도 매우 사랑을 받았다. 유다는 자기의 뛰어난 지성과 함께 열렬한 지지자의 얼굴을 하면서 예수에게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하나가 되었고, 신뢰받는 사람이며, 그의 지지자 중 중추 세력, 그 가난한 집단의 회계 담당자, 열두 제자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 중에서 갈릴리 사람이 아니고 가난한 농부나 어부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의 흐름에 놀라운 전환점이 나타난다. 예루살렘 제사장들이 이 갈릴리 출신의 흉내쟁이와 그의 지지자들을 염탐하고 그들의 얼굴을 가린 가면을 찢어 버리라고 보낸 사람이 열렬한 신도로 변하게 된다. 예수의 인격, 그의 주위로 퍼져 나오는 따뜻하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광채, 단순한 가르침들의 조합, 겸손함, 재치,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친밀함, 도덕적인 이상과 더불어서, 원대한 꿈, 예수가 사용하는 비유의 날카로운 아름다움이, 그가 말하는 위대한 복음의 마법과 섞여서, 논리적이고 실용적이며 의심 많은 가룟 마을 출신을 구원자와 그의 소식에 온 마음으로 중독된 제자로 변하게 만든 것이다. 가룟 유다는 그 나사렛 사람을 따르는 가장 확실하고 죽음까지 무릅쓰는 헌신적인 제자로 변했다. 이 사건이 하룻밤에 일어난 사건인지 아니면 오랜 과정을 통해 거듭나서 맺힌 열매인지 —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질문이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슈무엘을 자기 공책에 기록했다. 가룟 사람 유다는 기독교인 유다가 되었다. 제자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더 나아가 그는 이 세상에서 예수가 신이라고 온 마음으로 믿었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P221-223)
가룟 유다는 십자가의 환상을 창조하고, 기획하고, 감독하고 제작한 자였다. 그런 면에서 대대로 그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옳았을 수도 있는데, 아마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옳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예수가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 십자가 위에서 몇 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갈 때, 모든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파리 떼가 그 상처들 위로 달려들고, 그들이 그에게 식초를 먹였을 때도 유다의 신앙은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 자 곧 그 일은 오고야 말 거야. 이제 십자가에 달린 신이 일어나서 못들을 떨쳐 버리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놀라서 코를 땅에 처박고 엎드린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할 거야 —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럼 예수 자신은? 제9시에,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웃으며 “네가 할 수 있다면 너 자신을 구원하고 부디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치는 순간에도, 여전히 의심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 내가 정말 그 사람일까? 그러함에도,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아직 유다의 약속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었을지 모른다. 남은 힘을 모두 모아 못으로 고정된 자기 손을 당기고, 당겨 보고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에게 소리치고, 당겨 보고는 죽어 가며 그에 입술 위에 <시편>에서 나온 구절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즉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떠나셨습니까”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죽어가면서도 믿는 사람 또는 최소한 반 정도는 믿는 사람만이 자기 입술에 올릴 수 있는 말이었는데, 하느님이 그를 도우셔서 못을 빼내어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서 온전한 몸으로 십자가에서 내려가게 해 주시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 말과 함께 그는 살과 피를 가진 사람으로, 한 인간으로 피를 흘리고 죽어 간 것이다.
그리고 유다는, 자기 삶의 이유와 목적이 자기 눈앞에서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다는, 그곳을 떠나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다. 그렇게, 슈무엘을 자기 공책에 기록했다. 그렇게 첫 번째 기독교인이 죽었다. 마지막 기독교인이. 유일한 기독교인이. (P227-229)
슈무엘은 미카가 몇 살에 죽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무엇인지 확신이 없는 것처럼, 혹은 그 질문이 너무 사적인 질문인 것처럼, 잠시 망설였다. 작은 침묵 후에 그가 서른일곱 살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했다. 슈무엘 역시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조용히 말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수학자였어요. 학술지에 수리논리학 분야의 논문들을 발표했었죠. 히브리 대학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로 임명될 예정이었어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언제나 휘몰아치고 있는 광기에 전염되어 어느 날 갑자기 흥분해 일어나서 도살장으로 뛰어갔죠. 다른 모든 양 떼와 함께 일어나서 갔어요.”
슈무엘은 게르숍 발드의 의자에 앉아, 그 책상 앞에서, 그의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손가락들이 너무 짧아서, 마치 한 마디가 모자란 것처럼 보였다. 돌연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지만 호흡기가 든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 참았다. 아탈리야는 그를 비스듬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굽힘나무 의자에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서, 입술 사이로 낱말들을 뱉어 내듯 말했다.
“당신들은 국가를 원했죠. 독립을 원했고요. 깃발들과 제복들과 화폐들과 북들과 나팔들을. 당신들은 무고한 피를 강처럼 흐르게 했어요. 한 세대를 전부 희생시켰어요. 아랍인들 수십만 명을 자기들 집에서 내쫓았어요. 히틀러를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득 타고 온 배를 항구에서 곧장 전쟁터로 보냈어요. 이 모든 일이 여기에 유대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죠.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지 보세요.”
슈무엘은 깜짝 놀랐다. 얼마 후에 예의를 차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유감이지만 저는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P273-274)
“당신은 48년에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아니요. 당신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벽이었죠.”
“당신은 지금 당신 아버지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생존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제게 말하려는 건가요? 아랍인들을 설득해서 이 땅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고요? 좋은 말로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고요? 당신도 그렇게 믿으세요? 그때는 심지어 진보주의 세계도 유대인을 위한 국가 건설을 지지했었어요.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들도 우리에게 무기를 제공했어요.”
“아브라바넬은 국가에 열광하지 않았어요. 전혀. 어디서든지. 그는 민족국가들 수백 개로 갈라져 있는 이 세상에 크게 감명을 받지 않았어요. 마치 동물원에 칸칸이 나뉘어 있는 우리처럼요. 그는 이디시어를 몰랐고,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할 줄 알았고, 라디노와 영어와 프랑스어와 터키어와 헬라어를 말할 수 있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에 관해 굳이 이디시어로 ‘고임 나헤스’라고 말했죠. 이방인들의 즐거움이라고. 국가란 그가 보기에 모두 유치하고 철 지난 개념이었어요.”
“그는 아마도 순진한 사람이었나 봐요? 꿈꾸는 사람이었나요?”
“꿈꾸는 사람은 아브라바넬이 아니라, 벤구리온이었죠. 벤구리온과 그의 뒤를 따라간 모든 양 떼들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것 같았어요. 도살장으로, 학살로, 추방으로. 두 공동체 사이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증오를 향해 나아간 거예요.” (P275-277)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의 자식인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 대중의 상상 속에서, 그들 가운데 유대인으로 — 그리고 유대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 각인된 유일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가룟 유다였다. 제사장 한 무리와 성전 경비대가 예수를 체포하러 왔을 때 다른 모든 제자는 놀랐고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사방으로 혼비백산하여 흩어져 버렸지만 오직 유다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마 그는 예수의 용기를 북돋우어 주려고 입을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 간수들을 따라 자기 스승을 잡아가던 장소까지 동행했을 수도 있다. 베드로도 그곳에 갔었지만,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다. 유다는 그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슈무엘을 자기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독교인, 한 순간도 예수를 떠나지 않고 그를 부인하지 않았던 유일한 기독교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있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하느님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기독교인, 끝까지 예수가 온 예루살렘 앞에서 그리고 온 세계 앞에서 틀림없이 일어나 십자가에서 내려오리라 믿었던 기독교인, 예수와 함께 죽었고 그가 떠난 이후에 더 살려고 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 다섯 대륙에 사는 수억 명의 사람들의 눈에는 수천 년에 걸쳐 가장 전형적인 유대인이라고 간주되었다. 가장 혐오하고 가장 경멸하는 사람. 배신의 화신이며 유대교의 화신이고 유대교와 배반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보여 주는 화신이었다.
계속해서 슈무엘은 자기 공책에 적어 나갔는데, 현대에 와서, 역사가 하인리히 그렌츠는 예수가 여자가 낳은 자 중 유일하게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더 활동이 많았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닌 자’라고 썼다. 슈무엘은 이 말 가장자리에 휘갈려 쓴 필체로 덧붙였다. 사실이 아님. 예수가 유일하지 않았음. 가룟 유다도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더 활동이 많았음. (P284-285)
집으로 돌아오는 지크론 모세 거리 오르막길에서 슈무엘은 미카 발드의 죽음에 관해 생각했는데, 그 뛰어난 수학자는 아탈리야와 결혼했었고 아마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그를 사랑했었을 텐데, 분명 아탈리야가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장인이 그 전쟁 자체에 반대했고 국가 건립에 반대했으며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는 전쟁에 그가 지원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장애인이었고 어렸을 때 신장 하나를 몸에서 제거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립전쟁을 위해 자원입대했다. 그리고 그날 밤, 1948년 4월 2일 밤에, 그는 어느 언덕 비탈을 뛰어오르며 돌격을 감행했다. 슈무엘은 자기 생각 속에서 그 부상당한 남자를 그려 보려고 노력했는데, 팔마흐 출신 소년이 아니라 서른일곱 살이 넘은 유부남을, 물론 가장 건장한 사람은 아니었을 테고, 누가 알아, 혹시 나처럼 천식 환자였을지도, 속도를 내서 언덕을 오르기는 어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동료들은 그가 뒤에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산 경사면을 돌아 내려가 길 위에 막혀 서 있는 행렬로 후퇴했다. 그는 적군들이 들을까 봐 소리를 지를 수 없었던 걸까? 그는 정신을 잃었던 걸까? 아니면 혹시 남은 힘을 다 짜내어 기어서, 언덕 밑으로, 길가 행렬이 있는 쪽으로 내려오려 했을까? 아니면 정반대로, 그는 너무 끔찍한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부르짖다가 오히려 그 부르짖는 소리 때문에 아랍 병사들이 어둠 속에서도 그를 찾아낸 걸까? 그리고 그를 찾았을 때, 그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려 했을까? 그들의 언어로? 그는 자기 장인처럼 아랍어를 알았을까? 그는 그들에게 끝까지 저항했을까? 그는 자기 목숨을 구걸했을까? 물론, 그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그 전쟁에서, 처음 몇 달 동안은, 양측이 모두 포로를 거의 사로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위협적이고 절망적인 공포 속에서 그는 그들이 자기 바지를 벗겼을 때 그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했을까? 그의 동맥 속에서 피가 얼어붙었을까? 보슬비는 그치고 찬 공기가 썩어 가는 낙엽 냄새와 함께 살을 에고 젖은 땅은 예루살렘 공기 속에 서 있었지만, 슈무엘은 온몸을 떨면서 자기 성기를 방어하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바지 위에 올려놓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너도 왜 전사하지 않은 거지? (P294-295)
“약 30년 전에 아하론 아브라함 카바크가 나사렛 예수에 관해서 소설을 쓰고 ‘좁은 길’이라는 제목을 붙였지요. 조금 피곤한 소설이에요. 지나치게 감상적이기도 하고요. 거기서 카바크의 예수는 이 세상에 자비와 은혜를 가져다주려는 부드럽고 약한 유대인으로 그려져요. 그러나 카바크는 예수와 그의 제자 가룟 유다를 사랑과 분노, 끌림과 거부가 뒤얽힌 관계로 그리고 있어요. 카바크의 유다는 꽤 반항적인 사람이에요. 카바크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이었던 거죠. 그의 눈도 가려져 있었어요. 그도 유다가 가장 열렬한 신도였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어요.”
“눈은,” 게르숌 발드가 말했다. “영원히 떠지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눈을 감고 있네. 만약 단 한 순간만이라도 우리 눈이 떠진다면, 우리 속에서 크고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지르며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다면 우리 눈이 감겨 있다는 증거지. 이제 자네는 자네 책을 읽고 우리 조용히 앉아 있어 보세. 오늘 저녁 우리는 충분히 대화했네.” (P309-310)
“그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불렀지.” 발드가 말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동안 늘 아랍인들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야. 그는 카타몬으로 셰이크 자라로 라말라로 베들레헴으로 베이트 잘라로 그들을 찾아다녔으니까. 그들을 여기 자기 집에서 재우는 일도 많았지. 각양각색의 아랍 기자들이 이곳에 찾아오곤 했네. 온갖 수완가들. 협회 간부들, 교사들, 그를 배신자라고 불렀던 또 다른 이유는 그가 47년과 48년에도, 독립전쟁 전투가 한창이었을 무렵에, 유대 국가를 만들기로 한 결정은 비극적인 실수라고 계속해서 주장했기 때문이었지.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었는데, 차라리, 패망하는 영국 위임통치 대신 국제 위임통치나 미국이 주도하는 임시정부가 세워지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고도 했다네. 그가 말하기를, 아마도, 유대인 학살 때문에 살 곳을 잃고 유럽 전역으로 퍼진 난민촌에 머무는 사람들 거의 10만여 명이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을 테고, 미국인들도 그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주하는 방안에 찬성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되면 유대인 정착촌은 65만 명에서 75만 명까지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했네. 그렇게 해서 갈 곳을 잃은 유대인들이 당장 겪고 있는 괴로움은 해결될 것이었지. 그러고 나서 우리가 잠깐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였어. 말하자면 아랍인들이 차차, 한 10년이나 20년에 걸쳐서, 우리가 이 땅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소화할 시간을 주자는 것이었다네. 그러는 동안에 우리가 히브리 국가를 주장하며 깃발을 흔들지 않는다면 상황이 안정될 수도 있다는 거야. 아브라바넬은 주장하기를, 아랍인들이 기존 시온주의 운동 자체, 즉 주로 해안 지방을 따라 작은 도시 몇 개와 마을 몇십 개 정도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들의 반대는 유대인들의 힘이 점점 커지는 상황과 유대인들의 야망이 점점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말했다네. 그는 수년 동안 이 땅에서 또는 주변 나라에서 그의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아랍인들이 보기에 유대인들은 학식, 기술, 교활한 술수와 동기부여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며, 이러한 유대인들의 우세한 지위가 아랍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결국 그들을 지배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네. 그는 언제나 이렇게 주장했지. 아랍인들이 작은 시온주의자 태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파괴적인 거인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일세.”
“무슨 거인요,” 슈무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완전히 농담이죠. 우리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바다의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잖아요.”
“아랍인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어. 아브라바넬의 주장으로는, 아랍인들은 유대인들 몇 명이 여기 온 이유가 유럽에서 자기들을 쫓던 자들을 피해서 살 작은 피난처를, 한 줌의 땅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시온주의자들의 감언이설을 한순간도 믿지 않았다고 했네. 한때 이라크의 총리였던, 아드난 파차치라는 사람이 47년에 만약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이 100만 명에 이르면 그들을 막아설 사람은 팔레스타인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들의 인구가 200만 명이 된다면 중동 지방 전체에서 그들을 막아설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그들이 300만 또는 400만 명이 된다면, 이슬람 전체가 힘을 합쳐도 그들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네. 이러한 두려움들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말했지, 새로운 십자군들에 대한 공포심, 유대인들이 가진 사악한 능력에 관한 미신적인 믿음, 유대인들이 성전산 위에 있는 모스크를 허물어 버리고 그 대신 자기들의 성전을 세우고 나일강부터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유대인 제국을 건설하려는 계략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아랍인들의 두려움인데, 이것들 때문에 유대인들이 해안 지방과 중앙 산악지대 산기슭 사이에 한 줌의 땅을 점경하는 것이 점차 현실로 드러나자 그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이라고 했네.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선의를 통해, 아랍인들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공동으로 참여하는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유대인 정착촌에 아랍인 거주를 허용하고, 우리 학교와 대학교에 아랍 학생들 입학을 허용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 유대인 군대와 유대인 정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소속된 통치기관을 갖춘 독립적인 유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가식적인 생각을 버린다면, 이러한 아랍인들의 분노를 아직은 가라앉힐 수 있다고 믿었네.”
“그의 이상은,” 슈무엘은 슬프게 말했다. “누구나 마음으로는 매우 동조하고 싶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것은 솔직히 지나치게 달콤한 이상에 불과해요. 저는 아랍인들이 장차 유대인들이 가지게 될 힘 때문에 두려워한다기보다는, 현재 유대인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이용해야겠다는 데 더 유혹당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이제 차 한 잔씩 마실까요? 비스킷도 몇 개 가져올까요? 그리고 당신은 조금 있다가 물약과 알약 두 개를 먹어야 해요.”
“그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불렀어.” 발드는 차를 마시자는 제안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 갔다. “왜냐하면 30년대 중반에 여기에 독립적인 유대 국가를 세울 희박한 기회가 열렸고, 물론 그 땅의 아주 작은 부분뿐이었지만, 그 미미한 기회라도 생겼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지. 나도 그랬으니까. 아브라바넬은, 그로선, 어떤 형태의 국가도 신뢰하지 않았다네. 두 민족이 구성하는 국가도 믿지 않았어.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나라도 마찬가지였지. 온 세계가 국경선과 철조망으로 막은 울타리, 여권, 깃발, 군대와 독립적인 화폐제도를 통해 수백 개의 국가로 갈라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가 보기에는 구태의연한 데다 제정신이 아니고, 원시적이고, 무자비한 것이었고, 이미 한물가서 이른 시일 안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지. 그는 나에게도 말하기를, 이제 곧 이 세상에서 모든 나라가 사라질 것이고 그 대신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공동체와 공동체가 통치권과 군대와 국경선이라는 위험한 장난감들과 온갖 살상 무기들을 버리고 함께 나란히 한데 어우러져 살게 될텐테, 당신들이 이곳에 피와 불로, 영원히 계속된 전쟁을 치르며 작디 작은 나라를 하나 더 세우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어.”
“그가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으려고 시도했나요? 어떤 조직을 통해서? 신문에 글을 썼나요? 대중 연설을 한 적이 있나요?”
“시도는 했었지. 작은 규모의 모임들. 아랍인 사이에도 있었고 유대인 사이에도 있었지. 그는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은 라말라와 베들레헴, 야포와 하이파 그리고 베이루트를 방문했다네. 그는 개인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임, 그러니까 독일에서 이주한 학자들이 르하비야 마을 집 거실에서 모이는 곳에도 참석했어. 그래. 그는 거기서도 이 땅에 아랍 국가도 유대 국가도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네. 덧입히기를, 우리 여기서 서로의 곁에서 그리고 서로의 안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기독교인들과 무슬림, 드루즈인들과 체르케인들, 그리스인들과 가톨릭과 아르메니아인들, 이웃해 있는 공동체들이 그들을 서로 가로막는 장애물 없이 살아 봅시다. 그러는 동안에 시온주의자들이 이 땅 전부를 유대교로 개종시키려고 야심에 찬 계략을 세웠다고 보았던 아랍인들의 공포도 차차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아랍어를 배우고 그들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히브리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일이 더 잘 풀리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학교들로 발전시켜 봅시다라고 말했다네. 30년 동안 영국인들이 분할통치라는 정책으로 키워 온 갈등이 결국에는 끝나게 될 거라고. 그런 식으로, 하루나 1년 만에는 아니겠지만, 아브라바넬은 신뢰의 첫 싹들이 심지어 아랍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개인적 우정이라는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네. 그리고 사실, 그런 싹들은 영국 위임통치 시절에 하이파, 예루살렘, 티베리아스, 야포 등지에서 벌써 나타나고 있었지. 많은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사업을 하면서 서로 관계를 맺었고, 자주 서로의 집에 방문하기도 했네. 아브라바넬과 그의 친구들처럼 말이지. 이 두 민족은 서로 간에 공통점이 정말 많지 않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 속에서 기독교 유럽의 희생 제물이었어. 아랍인들은 식민지 제국들에 굴복하고 나서 압제와 착취를 당했고, 유대인들은 대대로 굴욕, 박해, 추적, 추방, 악행을 당하다가, 결국 세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민족 대학살까지 당했지. 기독교 유럽의 희생 제물이 된 두 민족이 서로 동정하며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역사적 기초가 정말 없느냐고, 쉐알티엘은 말했어.”
“그 말은 제 마음에 드네요.” 슈무엘이 말했다. “약간 순진하고 낙관적이지만요, 스탈린이 민족문제에 관해서 했던 말과는 정반대고요. 그렇지만, 흥미롭네요.” (P332-338)
“아브라바넬은 만약 영국 위임통치가 끝날 때 유대인들이 독립된 유대 국가를 선포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바로 그날 그들은 아랍 세계 전체, 아마 무슬림 세계 전체와 피를 부르는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네. 유대인 50만 명 대 무슬림 수억 명이 싸우는 거지. 그 전쟁에서, 아브라바넬은 예상했지. 유대인들이 절대 승리할 수 없으리라고. 혹시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그들이 아랍인들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 이기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결국 이슬람이 우세하게 될 거라고 했지. 그 전쟁은 몇 세대를 걸쳐서 계속될 텐데, 유대인들이 이길 때마다 유대인들의 사악한 재주와 그들의 십자군 같은 야망 때문에 아랍이들의 두려움이 깊어지고 배로 늘 거라고 말이야. 이런 이야기나, 그와 비슷한 말들을, 쉐알티엘은 바로 이 방에서 내게 들려주곤 했었지.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4월 2일 밤에 예루살렘 산지에서 내가 유일한 아들을 잃기 전에 말일세. 그는 창문 옆에 서서, 어두운 바깥쪽을 등지고 대개 얼굴은 내가 아니라 화가 루빈이 그린 저 그림을 향하고 말했었지. 그는 그 그림에 있는 풍경을 매우 사랑했다네. 갈릴리 산지와 골짜기 비탈들 그리고 카르멜산을 사랑했고, 예루살렘과 광야와 슈펠라 지역이나 산기슭의 작은 아랍 마을들을 사랑했어. 그는 키부츠에 있는 잔디밭과 카수아리나 나무들과 빨간 기와지붕이 있는 유대인 마을도 사랑했지.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으면서 말이야.” (P338-339)
“프랑스에서 얼마 전에 프랑스령 알제리 지지자들 덕분에 드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제 그는 자기 손으로 알제리에서 프랑스 지배를 접고 아랍인 대중에게 완전한 독립을 주기로 했어요. 그러자 어제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던 자들이 오늘은 그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암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지요. 예언자 예레미야도 예루살렘 군중의 눈과 왕가의 눈에 배신자로 보였어요. 탈부드의 현인들도 엘리샤 벤 아부야를 파문하며 그를 ‘다른 이’라고 불렀고요. 그렇지만 적어도 그 책에서 그의 가르침과 그의 이름을 지우지는 않았죠. 노예 해방자, 에이브러햄 링컨도 그의 반대자들에게 배신자라고 불린 적이 있어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던 독일 장교들은 배신이라는 죄목으로 총살을 당했고요. 역사 속에는 때때로 자기 시대보다 너무 앞서 태어난 용감한 사람들에게 배신자나 광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예가 많이 있어요. 헤르츨도 오토만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땅에 유대 민족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땅이 아닌 곳에 국가를 세울까 고려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불렸었죠. 심지어 다비드 벤구리온도, 12년 전에 이 땅을 두 나라,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는 데 동의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배신자라고 불렀고요. 제 부모님과 누나도 제가 학업을 중단했기에 가족을 배신했다고 지금 절 비난하고 있어요.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옳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학업을 중단하기 훨씬 전부터 그들을 배신했기 때문이죠. 어렸을 때부터 전 다른 부모님이 있었다면 하고 꿈을 꾸면서 그들을 배신했었어요.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슈무엘은 말했다. “그 안에 변화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어떤 변화도 인정할 수 없고 변화가 생기는 것을 죽을 만큼 무서워하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를 혐오하는 사람들 눈에 언제나 배신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어요.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의 꿈 때문에 그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른 거예요.” (P373-374)
“가룟 유다의 입맞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입맞춤은, 당연히 배신자의 입맞춤이라고 할 수 없죠.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를 체포하라고 성전 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는 가룟 유대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스승을 알려 줄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바로 며칠 전에 성전에 들이닥친 예수는 분노에 가득 찬 채,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환전상들의 탁자들을 뒤집어엎었거든요. 벌써 온 예루살렘이 그를 알고 있었죠. 더구나, 그들이 그를 잡으러 왔을 때 그는 도주하려 하지 않았고 조용히 일어나 스스로 간수들과 마주 섰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갔으니까요. 유대의 배신은 그 간수들이 오고 그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벌어진 것이 아니에요. 그의 배신은, 만약 그가 예수를 배신했다면,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을 때 일어났어요. 바로 그 순간에 유다가 자기 신앙을 잃었던 거죠. 그리고 자기 신앙을 잃은 그는 더 살아 있을 이유도 잃어버렸던 거고요.”
게르숌 발드가 앞으로 몸을 조금 숙이면서 말했다.
“내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서도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자와 동의어가 되었다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말과도 동의어가 되었을 걸세.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일반 기독교인들의 눈에 모든 유대인과 유대 민족은 배신이라는 병원체에 감염된 셈이지. (....)” (P375-376)
“만약 빌라도가 예수의 오른쪽 십자가에 그 착한 도둑을 매다는 대신 그의 오른쪽에 유다를 못 박으라고 명령했다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유다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고, 십자가에 달린 가룟 유다의 조각상이 수만 개의 교회를 화려하게 장식했을 것이며,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 아기들이 유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교황들도 그 이름을 자처했을 걸세. 그렇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가룟 유다건 가룟 유다가 아니건, 이 세계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을 걸세. 사라지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았을 거야. 유다가 있건 없건 간에, 유대인은 믿는 자들의 눈앞에서 계속해서 배신자 역할을 맡았을 걸세. 기독교인들은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와도 언제나 우리를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그의 피 값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치던 군중으로 기억할 걸세.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말해 두는데, 슈무엘, 우리와 무슬림 아랍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은 역사 속에서 아주 작은 일화, 아주 짧고 지나가 버릴 일화에 불과하다네. 그것은 앞으로 50년이나 100년 또는 200년쯤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가 될 테지만, 우리와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훨씬 더 깊고 어두운 문제가 있어서 앞으로 100세대가 지나도 계속될 걸세. 그들이 엄마 젖을 먹는 아이 때부터 아직도 이 세상에 신을 살해한 자들이, 또는 신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들이 활보하고 있다고 가르치는 한, 우리가 편히 쉬는 일은 없을 걸세. 자네는, 인제 보니, 벌써 자네의 목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 같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네와 내가 함께 다리 여덟 개로 춤을 출 수 있겠어.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하던 대로, 오후 시간에, 서재에서 내가 자네를 기다리지. 이제 나는 나를 미워하는 친애하는 사람 중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숯불 위에 앉혀 보아야겠네. 그리고 그 다음에 자네가 나와 함께 앉아서 자네는 세상이 회복이나, 피델 카스트로나 장폴 사르트르나 중국의 위대한 붉은 혁명에 관해 강의를 해 주고, 그럼 나는, 늘 하던 대로,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은 고쳐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비웃어 주겠네.” (P378-379)
“요세프 클라우스너의 견해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온전한 유대인이었다네. 그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죽었고 새 종교를 창시할 계획은 전혀 없었지. 바울로, 다르소의 사울인, 그 사람이야말로 기독교의 아버지라네. 예수 본인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고 정결하게 만들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유대인들, 한편으로는 사두가이인들과 바리사이인들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리와 창녀들을 회개시켜서 깨끗했던 그 첫 샘물로 돌아오게 하려 했다네. 자 자네는 벌써 몇 주일 동안 매일매일 내 앞에 앉아서, 세대마다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유대인이 나타나서 어떻게 그에게 돌을 던졌는지 계속 이야기를 해 주었네. 그 이야기에 나오는 돌들은 대부분 경멸스럽고 겁 많은 돌들이었으며, 그의 출신이나 탄생 과정에 대한 온갖 험담들 그리고 그의 치유나 기적들에 대한 옹졸한 반론들뿐이었네. 어느 날 자네가 마음잡고 앉아서 이런 한심한 유대인들에 관해 글을 써서 그들이 편협했다고 비난해 주게. 그리고 가룟 유다의 이야기, 그들이 예수에게 했던 것처럼, 옹졸하게 왜곡시켰던 그에 관한 이야기도 거기 넣고 말일세. 사실 그가 없었다면 교회도 없고 기독교도 없었을 테지. (.....)” (P417-418)
게르숌 발드가 말했다.
“그녀에게는 방에 작은 라디오가 있다네. 외출하지 않는 밤에 그녀는 음악방송을 듣지. 아니면 주파수를 바꾸어 가며 아랍어 채널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듣기도 하지. 그녀는 아버지에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아랍어를 배웠지만 유대인과 아랍인의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그의 꿈은 물려받지 않았어. 그에게서 그의 분노만 물려받은 것 같아. 분노와 수치심을. 어쩌면 그 대신 그녀에게 다른 꿈이 있을지도 모르지. 혹시 자네는 이미 알고 있나? 그는 인생 말년에, 이 집에 칩거하던 그 시절에, 더는 두 민족 사이에 우정을 다져야 한다는 이상에 관해 말하기를 그만두었어. 한번은 자기가 젊었을 때, 우리가 모두 믿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아무도 쫓아내지 않고 부당한 일은 전혀 저지르지 않고 이스라엘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 온 마음을 다해 믿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네. 그래. 그렇지만 20년대에 벌써 그런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30년대에 와서는 두 민족은 충돌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력 질주했고, 결국 둘 중 하나만이 살아남는 피 흘리는 전쟁을 하게 되었음을 깨달았지. 패배한 자들은 여기 남아 있을 수 없을 테고.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에 품었던 견해를 서둘러 버리지는 않았어. 몇 년 동안 자기의 의심을 삼켰고 계속해서 변두리를 헤매고 다니며 점점 더 모든 사람이 시온주의 운동 단체의 예루살렘 스파르드파의 고귀한 대표자가 하기를 바라는 말들만 했었지. 때때로 이웃하고 있는 민족들과 대화를 하자고 하기도 했어. 때때로 폭력적인 방법을 경고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가 했던 이런 말들은 아무런 관심을 얻지 못했다네. 다른 사람들은 가끔 복잡한 아랍 문제와 연루된 어려움이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에게 어떤 정서를, 아마도 스파라드식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무심하게 그리고 심지어 다소 지루하게 받아들였지. 그의 생각은 벌써 그의 모든 동료에게서 멀어진 후였어. 그는 여전히 여기에 자기들 집을 세우려는 유대인들의 노력이 정당하다고 믿었지만, 그 집은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공유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었지. 40년대에 와서야 그는 유대인기구 이사회와 시온주의노동자협의회 모임에서 가끔 그의 예외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47년에,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단독으로 UN의 영토 분할안과 이스라엘 독립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어놓았을 때는, 몇몇 사람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네. 그들은 그가 제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지. 결국 그에게 두 시간을 주고 사퇴를 하든지 해임을 당하든지 선택하라고 했어. 사직서를 내고 난 뒤 그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어. 단 한 번도 공적인 자리에서 단 한 마디도 발언하지 않았어. 수치스러움을 수의(壽衣)처럼 두르고 살았지. 그는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 거야. 이 나라를 건국하던 저녁들과 독립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사람들이 그의 견해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지. 그때 우리는 이미 다가오는 전쟁에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가 걸려 있으며 만약 우리가 패한다면 우리 중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 4월 2일 내 유일한 아들 미카가 살해되었지.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살해됐어. 미카. 벌써 10년이 넘도록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네. 밤이면 밤마다 그들이 와서 그 소나무 숲 경사진 바위투성이 밭에서 그를 죽이곤 해. 그때부터 우리 셋은 여기 이 관 속에 감금당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갇혀 있지.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몇 달 동안 저 두꺼운 돌담이 총알과 대포알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었어. 가끔 아탈리야만 혼자서 집에서 나가 석유 수레나 얼음 수레 앞에 줄을 섰고 또 우리를 위해서 배급표 수첩을 들고 식료품을 나누어 주는 긴 줄에 서 있었지.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집 안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향한 모든 연락을 끊었고, 편지에는 답장하지 않았고, 전화는 받지 않았고, 아침마다 자기 방에서 신문을 읽었고, 나와 자기 딸에게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새로 세운 나라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그가 보기에 이 나라가 군사력이라는 종교에 푹 빠져 있고, 승리에 취하여 얄팍한 민족주의의 기쁨을 먹고 있다고 말했지. 벤구리온은 메시아 콤플렉스를 앓고 있고 전에 그의 동료였던 자들은, 모두 약해 빠진 족속에다 시종들의 무리라고 보았어. 그는 몇 시간씩 방에 틀어박혀서 뭔가를 쓰기도 했어. 거기서 뭘 썼는지는 나도 몰라. 그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지. 아직도 이 집 공간에 가득 차 있는 절망과 슬픔의 냄새 외에는. 그 절망과 슬픔의 냄새는 아직도 이 방을 떠나지 못하는 그의 유령인지도 모르지. 곧 자네도 떠나고 나는 그녀와 남게 되겠지. 그녀는 물론 자네 자리를 채울 어떤 별난 청년을 다시 찾아낼 테고,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를 찾아내고, 언제나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가끔은 그녀도 그런 상황에 응하는 듯하지만 결국 여기서 내보낼 거야. 가끔 손님들이 그녀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밤에 왔다가 밤에 가 버리지. 대개 나는 듣기는 하지만 본 적은 없어. 왔다가 가는. 왜냐고? 그거야 내가 말할 수 없지. 아직 그녀가 구하는 것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것도 찾지 않지만 벌새가 꿀을 찾아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듯 옮겨 다니는 것인지도.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언제나 끊임없이 애도하느라고, 한두 밤을 함께 지낼 남자 짝을 찾았을 때조차 애도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누가 알겠는가.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여자란 우리와 완전히 다르고, 모든 면에서 다르고, 완벽하게 다르다고 우리 자신을 가르쳐 왔으니까. 우리가 좀 과장했던 걸까? 아닌가? 자네가 머지않아 자네의 길을 가고 나면 나는 여기서 가끔은 자네를 그리워하겠지. 주로 빛이 빠르게 스러지고 저녁이 뼛속이 스며들 무렵,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말일세. 나는 이별과 이별 사이를 살고 있군.” (P431-434)
3월이 시작되자 겨울비가 그쳤다. 공기는 아직 차고 건조해서, 유리 같았지만, 아침마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면서 진한 하늘색이, 환히 빛나며, 도시 위로 산들과 계곡들 위로 펼쳐졌다. 하라브 엘바즈 길에 있는 사이프러스들과 돌담들은 먼지를 다 씻어 내고 서 있었고 스스로 내부로부터 정확하고 날카로운 빛은 발하는 듯 보였다. 마치 오늘 아침에 새로 창조된 것 같았다. 조간신문 1면에는 모로코, 아가디르시(市)에서 강진이 일어났고, 인명 피해가 수천 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게르숌 발드는 말했다. “삶은 지나가는 그림자야. 죽음도 지나가는 그림자고. 고통만 지나가지 않아. 계속되고 계속되지. 언제까지나.” (P435)
아모스 오즈는 묻고 있다. 과연 누가 배신자인가? 배신이란 충성과 헌신, 확신과 신념의 한 형태가 아닐까? 세상은 충신과 배신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배신자들로 나뉘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통틀어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용감한 사람들에게 배신자나 광인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예는 많다. 배신자란 ‘세상의 회복’, 즉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를 지상에 구현하려 했던 모든 천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