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Jul 15. 2024

존 그리샴의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영화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2005년

<크리스마스 건너뛰기>(Christmas With The Kranks)는 미국에서 제작된 조 로스 감독의 2004년 코미디, 드라마 영화이다. 팀 알렌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마이클 바네이단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크리스마스를 건너뛴다면 정말 신날 거야.’라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브부터 열 손가락을 한 번만 꼽으면 1월 2일이 된다. 트리도 없고, 쇼핑도 없고, 의미 없는 선물과 팁이나 소란도 없고, 교통 체증, 군중, 생크림케이크, 술도 없고, 누구에게도 꼭 필요한 게 아닌 햄도 없고, <루돌프 사슴코>나 <눈사람 프로스티>도 없고, 사무실 파티도 없고, 허비되는 돈도 없고...... 그렇게 그는 끝도 없이 꼽아 나갔다. 그는 운전대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이제는 지그시 미소까지 지으면서, 뜨거운 바람이 발을 녹여주는 것을 느끼면서 크리스마스로부터 도망갈 꿈을 즐겁게 꾸고 있었다.                 (P19)     

그가 커다란 종이를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여보, 이것 좀 봐, 이게 우리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쓴 돈이야. 6천하고도 1백 달러를 썼어. 6천하고도 1백 달러라고.”

“한 번만 말해도 돼요.”

“그런데 보람 있게 쓴 건 거의 없어. 대부분이 하수구로 들어갔어. 허비되었단 말이지. 물론 여기엔 내 시간, 당신 시간, 교통 체증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짜증, 입씨름, 앙심, 부족한 잠 같은 건 포함되지 않았어. 크리스마스 휴가 한 번 때문에 놓친 게 너무도 많단 말이야.”

“그래서 어쨌다고요?”

“질문 잘했어.” 루터는 서류를 마치 마술사처럼 재빨리 놓아두고 <아일랜드 프린세스> 호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팸플릿들이 식탁을 덮었다. “이 배가 어디로 가느냐? 이 배는 카리브해로 갈 거야. 우리가 이 <아일랜드 프린세스> 호를 타고 꼬박 열흘을 호화판으로 지내는 거야. 이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유람선이지. 바하마 제도, 자메이카, 그랜드 케이먼, 아차, 잠깐만.”

루터는 달려가서 오디오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볼륨을 조절하고는 식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노라가 팸플릿 한 장을 들고 읽고 있었다. 

“저게 뭐죠?” 아내가 물었다. 

“레게야. 거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지.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섬 이름을 읊었어요.”

“맞아, 그랜드 케이먼에서는 스노클링을 할 거고, 자메이카에센 윈드 서핑을 할 거야. 힘들어지면 해변에 아무 데나 드러눕기도 하고, 열흘이야. 여보, 열흘을 꿈같이 지낼 거란 말이야.”

“미리 몸무게를 줄여놔야겠군요.”

“지금부터 같이 다이어트를 하자고, 어때?”

“당신 꿍꿍이가 뭐죠?”

“간단해. 이번 크리스마스를 건너뛰자는 거야. 그 돈을 아껴서 진짜로 우리를 위해서 쓰자는 거지. 먹지도 않을 음식, 입지도 않을 옷, 아무한테도 필요 없는 선물에다가 헛돈을 쓰지 말자는 거야. 땡전 한 푼도, 이건 보이콧이야. 여보, 크리스마스를 우리가 철저하게 한번 보이콧하는 거야.”

“끔찍한 소리네요.”

“아니, 놀라운 소리겠지. 딱 한 번이야. 올해만 건너뛰자고. 블레어도 없어. 내년에는 집에 돌아올 거고, 당신이 정 섭섭하다면 내년에는 더 근사하게 하면 되지 않겠어? 여보, 제발 부탁이야.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 돈을 아껴서 카리브해에서 열흘 동안 신나게 물을 튀겨 보잔 말이야.”

“돈이 얼마나 드는데요?”

“3천 달러.”

“그럼 절약하는 거예요?”

“물론이지.”

“언제 떠나는데요?”

“크리스마스 당일 정오야.”

그리고 그들은 한참동안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P30-32)   

  

“크리스마스 날. 정오쯤이야.” 루터가 유람선 예약을 한 뒤에, 그녀는 출발 시간치고는 참으로 이상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크리스마스를 치르지 않을 작정이라면, 여보, 며칠쯤 미리 떠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어차피 마음먹은 김에 크리스마스 이브도 피아자고요. 그 정신 나간 소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잔 말이에요.” 그러자 루터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블레어한테서 전화라도 오면 어쩌지?” 하고 대답했었다. 게다가, 비프가 패키지 값을 399달러나 깎아주었다. 25일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예약이 되었고 돈은 이미 지불되었으며 이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럼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못할 이유는 없겠네?” 메리가 조금 뻔뻔스럽다 싶게 말했다. 그녀는 자기가 파티를 열게 될까 봐서 겁이 났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야. 메리, 우린 이번에 쉬고 싶어. 한 해를 건너뛰는 거라고. 우리한텐 올해 크리스마스는 없어.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트리도 없고, 칠면조도 없고, 선물도 없을 거야. 우린 그 돈을 유람선에서 펑펑 써볼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 캔디가 말했다. “우리 남편도 제발 그렇게 좀 해줬으면 좋겠어. 아마 꿈도 꾸지 않을 거야. 볼링 못 치게 될까 봐서 말이야. 너무 부러워, 노라.”              (P52-53)  

   

노라는 루터를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그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의 경망스런 계획 때문에 왜 그녀가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그가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서 그를 위해서 일하거나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동안에, 어째서 그녀는 최전선에서 적을 맞아 싸워야 한단 말인가?

와일리-베크 회사는 재미없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세무사들이 모인, 그야말로 친선 클럽 같은 곳이다. 지금쯤 그들은 아마 크리스마스를 싹 무시하고 돈을 절약하는 루터의 용기를 부러워하고 시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 새로운 도전이 또 하나의 유행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어느 곳보다 먼저 세무사들의 세계에서일 것이다. 

루터가 편안하게, 어쩌면 영웅 대접을 받아가면서 일을 하고 있을 지금, 노라는 또다시 남한테 흉을 잡혀서 속을 태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 주도한다. 여자들이 쇼핑을 하고, 장식을 하고, 요리를 하고, 파티를 준비하고, 카드를 보내고, 남자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을 갖고 부산을 피운다. 그런데 왜, 루터는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크리스마스를 피해 가려고 그리도 애를 쓰는가?                     (P76) 

    

파스텔 색조의 봉투 두 장, “뭐지?” 그가 얼른 물었다. 입에 발린 인사말이나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는 루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지금 어서 뭔가를 먹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 저녁엔 구운 생선과 찐 채소를 먹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봉투에서 카드를 꺼냈다. 앞면에 프로스티가 그려져 있었다. 서명은 없었다. 발신인 주소도 없었다. 

익명의 크리스마스 카드 두 장.

“재미있군.” 그가 카드를 식탁 위에 던지면서 말했다. 

“난 당신이 좋아할 줄 알았어요. 시내에서 부친 거예요.”

“프로흐마이어겠지.” 루터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그 자식은 이런 짓궂은 장난을 즐기니까.”                  (P106-107)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기사.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라는 제목의 기사.

루터 크랭크 부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사뭇 어둡다. 헴록 스트리트의 모든 이웃들이 집을 장식하고 산타를 기다리느라 분주한 가운데, 크랭크 부부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 유람선 관광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웃들이 전했다. 트리도 없고, 전구도 없고, 지붕에 프로스티도 세우지 않았다. 프로스티를 지하실에 감추어 둔 집은 헴록 스트리트에서 유독 이 집뿐이다. (<가제트>지의 거리 장식 콘테스트에서 거의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 헴록은 올해 6등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다.)

“저 사람들은 속이 시원할 거예요.” 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이웃이 불평했다. “구역질 나는 이기심.”이라고 또 어느 주민은 빈정거렸다. 

루터는 기관총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가서 사방에 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P131-132)

     

크리스마스 이브, 루터와 노라는 아침 7시쯤에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프로스티 좀 바꿔 주실래요?” 어린애 목소리였다. 그러나 루터가 뭐라고 욕을 내뱉을 사이도 없이 뚝 끊어졌다. 루터는 기가 막혀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욱 팽팽해진 배를 두드리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섬들이 기다리고 있어, 여보. 빨리 준비하자고.”

“커피나 갖다주세요.” 그녀는 이불 속에 몸을 더 깊이 묻으면서 말했다. 

하늘에 구름이 낮게 드리웠고 몹시 추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확률이 반반이었다. 루터는 제발 눈이 내리지 말아주기만 빌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내리면 노라가 그만 향수병에 걸려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커넥티컷 주에서 자랐고, 그녀의 추억에 의할 것 같으면 그곳은 거의 매번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P147-148)     


“별일 없었니, 얘야?” 그가 물었다. 

기억에 없는 몇 마디, 그리고 다시, “마이애미.”

“마이애미에 있다고?” 루터가 말했다. 높아진 그의 목소리가 곧 갈라질 듯이 바짝 말라 있었다. 노라가 더욱 몸을 바짝 붙였다. 사납게 반짝이는 그녀의 두 눈이 그의 두 눈에 곧 닿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들었다. 그리고 그는 들은 것을 되뇌었다. 

“지금 마이애미에 있는데,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집에 오는 중이라고? 잘됐구나, 블레어?” 노라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루터는 아내의 입이 그렇게나 크게 벌어진 걸 생전 처음보았다. 

잠시 더 듣고 있다가, “누구? 엔리크?” 그리고 목청을 끝까지 올려서, 루터는 말했다. “약혼자! 웬 약혼자?”

노라는 그 와중에서도 얼른 정신을 차려서,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블레어의 말이 쏟아져서 거실을 울렸다. “페루 의사인데요, 여기 오자마자 만났어요. 너무너무 멋진 남자예요. 우리는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졌어요. 일주일 만에 결혼 약속을 했어요. 이 사람은 미국에 처음 온 거라서 지금 너무 흥분했어요. 제가 크리스마스 얘기를 해줬거든요 -트리, 장식, 지붕의 프로스티,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걸 다 얘기했어요. 거기 지금 눈 와요, 아빠? 엔리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아직 한 번도 못 봤대요.”

“아니다, 얘야, 아직 안 온다. 엄마 바꿔 줄게.” 루터는 노라한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스피커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노라는 수화기를 냉큼 빼앗았다. 

“블레어, 너 지금 어디 있니?” 노라는 너무도 감격한 것처럼 들리려고 아주 애를 썼다. 

“마이애미 공항이에요. 엄마, 6시 3분에 거기 도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 엔리크를 보시면 정말 마음에 드실 거예요. 너무너무 멋지고 너무너무 잘생긴 남자예요. 우린 완전히 빠져 버렸어요. 엄마 아빠하고 결혼 문제도 의논할 겸 해서 왔어요. 늦어도 내년 여름까진 꼭 식을 올리고 싶어요, 엄마.”

“그래,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P155-156)  

   

“전화를 하려거든 진작에 할 것이지.”  

“아녜요. 그 애는 벌써 우리가 트리를 세웠고 선물을 사뒀고 파티 준비도 다 해놨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언제나 그랬으니까. 멀쩡한 어른들이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 유람선 관광을 갈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우린 아직도 갈 수 있어.”

“말도 안되는 소리는 그만 하시라니까요. 루터, 그 애가 약혼자를 데리고 집에 오고 있어요. 무슨 소린지 아시겠어요? 한 일주일은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고요. 유람선은 잊어버리세요. 지금은 더 큰 문제가 있다고요.”

“난 프로스티는 절대로 안 만질 거야.”

“해야 돼요. 당신이 알아야 할 게 또 있어요. 블레어는 우리 여행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어요. 아시겠어요? 우리가 그런 계획을 했다는 걸 알면 그 애는 기절할 거예요. 자기 때문에 망쳐졌다고 생각할 거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루터?”

“알았어.”                          (P162)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운 것은 지붕에서 거꾸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기와를 움켜잡고 홈통 위로 드리운 한쪽 발로 더듬어서 사다리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땅을 디뎠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지붕 꼭대기까지 한 차례 무사히 왕복한 자신을 축하했다. 

프로스티는 넓고 둥근 밑둥, 그 밑둥에 끼우는 스노우볼, 한 손은 치켜들었고 다른 한 손은 엉덩이를 짚은 몸통, 그리고 검은 중절모를 쓰고 입에는 수수깡 파이프를 물고 미소를 지은 얼굴, 이렇게 네 부위로 이루어졌다. 루터는 연방 무어라고 투덜거리면서 그것들을 끼워서 조립했다. 그리고 배에 전구를 끼워넣고 2.4미터짜리 전기 코드를 끼운 다음, 나일론 밧줄을 허리께에 감아서 지붕 위로 끌어올릴 채비를 갖추었다.                (P209)   

  

루터는 길가에 서서 눈송이들이 가벼이 날리며 털모자와 어깨에 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는, 잘 장식된 그의 집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루터는 자기한테 내려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블레어가 집에 왔다. 게다가 멋지고, 잘생기고, 점잖고, 딸한테 흠뻑 빠져버린 게 틀림없는 젊은이를 데리고 왔다. 그 젊은이가 지금 바로 이 순간 마티 아무개라는 사람하고 같이 파티를 흥겹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루터가 지금 거기에 서 있다는 것도 여간한 축복이 아니었다. 어느 장의사의 석판 위에 고요히 누워 있지도 않고, 자선 병원의 중환자실 병상에서 온몸에 주렁주렁 주사 바늘이 꽂힌 채로 누워 있지도 않다는 것, 지붕에서 눈덩이처럼 굴러 떨어져 거꾸로 곤두박질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온몸이 오싹했다. 정말로 엄청난 행운이 아니고서야!

그를 구원하려고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계획을 다 포기해준 친구와 이웃들은 또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그는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브릭슬리의 프로스티가 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소 짓는 둥그런 얼굴, 운두가 높은 중절모, 수수깡 담뱃대, 눈송이들 사이로 루터는 그 눈사람이 그에게 보내는 윙크를 방금 본 것 같았다.                   (P248-249)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