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몬테 크리스토> 2002년
영화 <몬테 크리스토 백작>(1934), <몬테 크리스토 백작>(1975)
[1]
“아, 당테스, 자네였군!” 보트를 탄 남자가 소리쳤다. “그런데 웬일인가? 어째서 이렇게 배 전체가 온통 침울해 보이지?”
“모렐 씨, 굉장히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청년이 대답했다. “굉장한 불행입니다. 제게는 더더구나 말할 수 없이 큰 일입니다. 치비타베키아 바다 한가운데서 그만 그 용감하시던 르클레르 선장님을 잃었어요.”
“그럼, 짐은 어떻게 됐나?” 하고 선주가 성급히 물었다.
“짐은 무사히 싣고 왔습니다. 모렐 시. 그 점은 만족하실 겁니다. 하지만 선장님께서 안타깝게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선주는 눈에 띄게 마음이 놓인 듯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 용감하던 선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돌아가셨습니다.”
“바다에 빠졌나?”
“아닙니다. 뇌막염으로 몹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어요.” (P15)
선주는 당테스가 두 번 말하지 않게 했다. 선주는 당테스가 던져준 밧줄을 잡자, 뱃사람이래도 손색이 없을 만큼 능숙하게, 불룩한 뱃전에 못박혀 있는 사다리를 기어올랐다. 한편, 일등 항해사 자리로 되돌아온 당테스는 아까 당글라르라는 이름으로 부른 그 사나이에게 선주와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당글라르가 선실에서 나와 선주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새로 나타난 이 사람은 스물대여섯가량의, 인상이 퍽 어두운 남자였는데, 윗사람에겐 아부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거만했다. 그런 이유로 에드몽 당테스가 선원들의 사랑을 받는데 반하여, 대체로 선원들의 반감을 사는 회계원이라는 직책까지 더해져 선원 모두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다. (P17)
“한 가지 묻겠는데, 엘바 섬엔 왜 배를 댔었나?”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르클레르 선장님께서 돌아가실 때 제게 소포를 하나 주시면서, 베르트랑 대원수(나폴레옹 군의 장군(1783-1844))께 전하라고 하셔서요.”
“그래 그분을 만났나, 에드몽?”
“누구 말씀입니까?”
“대원수 말야.”
“예.”
모렐은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당테스를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그래, 폐하(나폴레옹)께선 어떠시던가?” 하고 그는 성급히 물었다.
“안녕하십니다. 제가 보는 눈이 틀림없다면 말입니다.”
“아니 그럼 자넨 폐하도 뵈었나?”
“제가 대원수님과 있는데 그리로 들어오시더군요.”
“그래 얘기도 해봤나?”“그분이 제게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당테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자네에게 뭐라고 하시던가?”
“배 얘기와, 배가 언제 마르세유를 떠났는지, 그때까지 거쳐온 뱃길이며 또 배에 싣고 있는 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일을 물으시더군요. 제가 보기엔 만일 배가 비어 있고 또 만약 제가 배 임자라면 그 배를 사고 싶어하시는 눈치였어요. 하지만 전 이 배의 일등 항해사에 지나지 않고, 이 배는 모렐 상사의 배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아! 모렐 상사라면 나도 알지, 모렐 집안이야 대대로 선주니까, 그 집안에는 내가 바랑스에 주둔했을 시절에 나와 같은 연대에 있었던 사람도 있어, 하시더군요.”
“암 그렇고말고!” 선주는 신이 나서 외쳤다. “그게 바로 우리 아저씨 폴리카르 모렐 이야기야. 대위가 되셨었지. 당테스 자네, 우리 아저씨한테 폐하께서 당신을 기억하고 계시더라고 말해 보게나. 그 늙은 노병께선 눈물을 줄줄 흘리실 걸세. 정말로.” 선장은 청년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리면서 말을 이었다. “당테스, 르클레르 선장 명령대로 엘바 섬에 들르길 잘했네, 하지만 자네가 대원수께 소포를 전하고 폐하와 얘기한 걸 사람들이 알면 자네 신상에 화가 미칠지도 모르네.”
“선주님, 화가 미치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테스는 말했다. (P19-21)
“결혼하려고?”
“네, 우선 결혼을 하고 그러고 나서 파리엘 갈까 해서요.”
“좋아, 좋아, 쉬고 싶은 대로 쉬게, 배의 짐을 푸는 데도 여섯 주일은 족히 걸릴 테고, 어쨌든 석 달 안으로 배를 탈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석 달 후엔 돌아와 있어야 하네. 파라옹 호가.....” 선주는 이 젊은 선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선장 없이 떠날 수야 있나.”
“선장 없인 안 된다고요!” 당테스는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지금 하신 말씀 정말이십니까? 실은 혼자서 마음속 깊이 바라고 바라던 일입니다. 선주님. 정말 저를 파라옹호의 선장으로 임명하시겠단 말씀이신가요?”
“당테스,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다면 자네에겐 손을 내밀고, <확정됐네> 하고 말할 테지만 내겐 동료가 있다네. 자네도 이런 이탈리아 격언을 알고 있겠지. <친구를 갖는다는 건 윗사람을 모시는 것이다Chi ha compagno, ha padrone.> 하지만 일이 반은 된 것이나 다름없네. 두 표 중의 한 표는 벌써 자네가 얻은 셈이거든. 나머지 한 표는 내게 맡겨두게. 되도록 애써볼테니.”
“아, 모렐 씨!” 젊은 선원은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선주의 손을 꽉 잡고 소리쳤다. “모렐 씨, 제 아버지와 메르세데스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P24-25)
“자, 메르세데스, 한번만 더 대답해 줘. 정말 마음의 결정이 선 거야?”
“난 에드몽 당테스를 좋아해요.” 소녀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에드몽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내 남편이 될 수 없어요.”
“그럼 언제까지라도 그 사람을 사랑할 거란 말이야?”
“내가 살아 있는 한에는요.”
페르낭은 용기가 꺾인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는 신음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를 꽉 물고 콧구멍을 넓히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어떡할래?”
“만약 그 사람이 죽는다면 나도 죽을 거예요.”
“만약 그 사람이 널 잊는다면?”
“메르세데스!” 그떼 집 밖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르세데스!”
“어머!” 하며 소녀는 기쁨으로 홍조를 띠고 좋아서 펄쩍 뛰면서 소리쳤다. “그이는 날 잊지 않았어요. 저기 저렇게 와 있는 걸 보세요.” (P47-48)
“파리에 볼일이 있나?”
“내 일 때문이 아냐. 르클레르 선장님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당글라르. 자네도 알 테지만 그건 신성한 일이지. 더군다나 걱정할 건 없는 일이야. 그저 갔다만 오면 되는 거니까.”
“응 응, 알겠네.” 당글라르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나서 나직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파리에 가서 대원수가 준 편지를 그 주소에 있는 사람한테 전해 주는 거겠지. 그렇고말고! 그 편지 얘기를 들으니까 생각이 하나 떠오르는군, 아주 근사한 생각이 말야! 아, 당테스! 내 친구여, 파라옹 호의 선원 명부 제1호(선장 자리를 말한다)에 자네 이름이 벌써 적혀 있진 않겠지?>
그러고는 벌써 저만큼 사라지고 있는 에드몽 쪽으로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P58)
페르낭은 초조해서 몸을 일으켰다.
“맘대로 지껄이게 내버려둬” 하고 당글라르는 청년을 붙잡으며 말을 계속했다. “저 친구는 취했어도 큰 실수는 안할 테니까. 당테스가 여길 떠나 있게 되면, 그것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서로 헤어져 있어야 하는 거라면 말야, 가령 에드몽과 메르세데스 사이를 감옥의 높은 담이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해봐. 그 두 사람 사이에 무덤이 가로놓여 있는 거나 다름없이 헤어지게 되는 거지.”
“그렇긴 해, 하지만 결국엔 감옥에서 나올 거 아냐.” 하며 카드루스가 아직 좀 남아 있는 정신으로 얘기에 한몫 끼어들었다.
“감옥에서 나오는 날엔, 에드몽 당테스란 자가 복수를 할 걸.”
“상관없어요!” 페르낭이 중얼거렸다.
“게다가” 카드루스가 말을 이었다. “당테스가 어째서 감옥엘 들어가게 되느냔 말야? 도둑질도 안했고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암살한 일도 없는데.”
“조용히 해” 당글라르가 말했다.
“난 잠자코 가만히만 있을 순 없는데.” 카드루스가 말했다.
“어째서 당테스를 감옥에 넣는다는 거야? 난 당테스가 좋더라. 당테스의 건강을 위해서 자, 한 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술 한 잔을 새로 마셨다. (P63-64)
“바로 그게 무서운 거야.” 당테스의 대답이었다.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행복해질 순 없는 거란 말야. 행복이란 마술에 걸린 섬나라의 궁전 같지만, 그 문은 용이 지키고 있으니까. 행복을 얻으려면 싸워 이겨야 하는데, 난 사실 뭘 가지고 메르세데스의 남편이 되는 복을 얻게 됐는지 모르겠는걸.”
“남편이라고? 남편이라?” 카드루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안 되지 않았어? 선장, 남편 노릇을 좀더 해보란 말이야. 어떤 대우를 받나 보게.”
메르세데스가 얼굴을 붉혔다.
페르낭은 의자 위에서 괴로워했다. 그는 조금만 무슨 소리가 나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간간이 폭풍우가 일기 시작할 때 후두둑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처럼 이마에서 구슬같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P78)
“애드몽 당테스” 경관은 말을 이었다. “검찰의 명령으로 당신을 체포하겠소.”
“저를 체포하시다니요?” 에드몽은 다소 얼굴이 창백해지며 말했다. “도대체 어째서 체포하는 겁니까?”
“난 모르겠소. 첫 번째 심문에서 알게 될 거요.”
모렐 씨는 이 어쩔 수 없는 사태 앞에서는 무슨 소릴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혁대를 두른 경관이란 이미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었다. 듣지도 않고 입도 열지 않는 냉정한 법률의 상(像)일 뿐이었다. (P83)
모두 식사중이었다. 오백 년 동안 종교적인 증오가 정치적인 증오로까지 변한 남프랑스 지방인 만큼, 그만큼 더 끔찍하고 생생하고 치열한 시대적 열기를 띠고 격렬하게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황제는 천이백만의 국민으로부터 서로 다른 십여 개국 말로 <나폴레옹 만세!>를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난 다음, 그리고 세계의 한 부분에 군림한 다음, 지금은 단지 오륙천 명의 인구를 통치하는 엘바 섬의 왕이 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를 프랑스로부터 그리고 왕위로부터 영원히 사라진 한 인간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사법관들은 그의 정치적 실책을 일일이 들춰냈다. 군인들은 모스크바와 라이프치히에 관한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황제와 조제핀의 이혼 문제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이 왕당파의 사회는 단순한 황제의 실각이 아니라, 주의(主義)의 멸망이라는 의미에서 즐거움과 승리감이 넘쳐흘렀고 마치 인생이 다시 시작되고 괴로운 꿈속에서 이제야 깨어난 듯한 기분들이었다.
생루이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있는 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에게 루이 18세의 건강을 축복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그 노인은 생메랑 후작이었다. (P96)
“그럼, 이젠 풀려나가는 겁니까?” 당테스는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그러나 그 편지는 이리 내놓게.”
“그 편지는 아마 검사님 앞에 놓여 있을 겁니다. 다른 서류들과 함께 경찰이 압수해 갔으니까요. 그 뭉치 속에 서류들이 섞여 있는 게 보이는군요.”
“잠깐만.” 검사 대리는 장갑과 모자를 집으려고 하는 당테스에게 말했다. “잠깐, 그 편지는 누구한테로 가는 거지?”
“파리, 코크에롱 가의 누아르티에 씨한테로 가는 겁니다.”
벼락이 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이렇게 급작스럽게 빌포르에게 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 반쯤 몸을 일으켜, 당테스에게서 압수한 서류 뭉치를 집어들었다. 그는 다급히 그것을 뒤져서, 그 무서운 편지를 빼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눈으로 그는 편지를 보았다.
“코크에롱 가 13번지, 누아르티에 씨!” 그는 점점 더 얼굴이 새파래지며 중얼거렸다.
“그래요.” 당테스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분을 아십니까?”
“아니야.” 빌포르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폐하께 충성하는 사람은, 음모자 같은 건 몰라.”
“그럼, 그건 음모와 관계가 있는 건가요?” 하고 당테스가 물었다. 풀려나가는 줄 알았던 그는, 다시 처음보다도 더 큰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P126)
<아, 만약 저 친구가 이 편지의 내용을 알고 있다면>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누아르티에가 이 빌포르의 아버지라는 걸 안다면, 난 마지막이야, 영원히 마지막이야.>
빌포르는 수시로 에드몽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가슴속에 감춰두고 입 밖에는 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비밀의 장벽을, 사뭇 그 시선으로 부숴버리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군!” 그는 갑자기 이렇게 소리쳤다.
“아닙니다. 맹세합니다. 검사님!” 하고 불행한 당테스가 외쳤다. “의심나는 게 있으시거나, 수상한 점이 있으시면, 물어주십시오. 뭐든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빌포르는 몹시 애를 쓴 끝에 가능한 한 침착해 보이는 어조로 말했다. “이번 심문에서 사실은 굉장히 중대한 혐의가 나타났네. 그래서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이대로 당장 놓아줄 순 없게 되었어. 자네를 풀어주려면, 그에 앞서 우선 예심 판사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러나 내가 자네한테 어떻게 대해 주었는지는 알고 있을 테지?” (P128-129)
당테스는 헌병의 손을 으스러져라 하고 꽉 잡았다.
“그럼, 나를 이프 성에 처넣으려고 데려간단 말입니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런 것 같소” 헌병이 말했다. “하지만 내 손을 이렇게 꽉 쥐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소?”
“아무런 조사 하나 않고, 수속 하나 밟지 않고, 그래, 나를?”“수속도 다 됐고, 조사도 끝났던데.”
“그러면 그 빌포르 씨의 약속 같은 것도 무시해 버리고 말이오?”
“빌포르 씨가 당신한테 무슨 약속을 했는지 어쨌는진 모르겠소.” 헌병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우리가 지금 이프 성으로 가고 있다는 것뿐이오. 그러니 날 어쩌자는 거요? 이봐! 다들 이리 좀 오게!” (P140-141)
그리고 그녀의 그 상냥한 눈길과 애원하는 듯한 태도가 거북스러워서, 그는 메르세데스를 밀치고, 마치 자기에게 닥쳐온 그 고통을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려는 듯이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러나 고통이란 그렇게 해서 몰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가 말하는 치명상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자기 몸에 달고 다니게 마련이다. 빌포르는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응접실에 들어서자, 이번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그는 흐느낌과 같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그의 병든 가슴속에서는 치명적인 상처의 첫 싹이 돋아났다. 그가 자기의 야심 때문에 희생시킨 청년, 죄 지은 자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죄를 뒤집어씌운 그 죄 없는 청년이, 지금 창백한 얼굴로 위협하는 듯이 역시 창백한 그의 약혼자의 손을 잡고 지금, 빌포르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 청년의 뒤로는 양심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의 운명적인 비극에 나오는, 미친 듯 분노하는 사람들처럼 그의 마음속의 병자를 펄펄 뛰게 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둔하면서도 괴로운 울림으로 때때로 가슴을 두드려 지난날의 행위를 생각나게 하며, 그 회상으로 마음을 멍들게 하고 살을 째는 아픔을 점점 더 심하게 하여, 결국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듯한 그러한 괴로움이었다. (P156)
“왕은 지극히 철학적인 사람이어서 정치 세계에는 살인 같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정치 세계에선, 너도 나만큼 알고 있겠지만,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상이 문제가 되는 거야. 감정이 아니라 이해 관계야. 정치 세계에선 사람은 죽이지 않아. 다만 장해물만을 제거하지. 그뿐이야, 넌 지금까지 일이 어떻게 된 건지를 알고 싶겠지? 자, 내 얘길 해주마. 사실은 케넬 장군은 믿을 만한 사람인 줄 알고들 있었다. 엘바 섬에서 추천해 보내왔으니까. 그래서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장군 집엘 찾아가, 생자크 가의 클럽에서 열리는 모임엘 오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을 테니 오라고 청했더란 말야. 그랬더니 왔어. 그래 거기서 엘바 섬에서의 출발이며 상륙 예정 등 모든 계획을 들려주었지. 장군은 모든 걸 다 듣고 모든 걸 다 알게 되어 더 이상 들을 게 없게 되자 하는 말이, 자기는 왕당파라는 거야. 모두들 서로 마주보았지. 모두들 맹세를 하게 했지. 장군도 맹세를 하였고, 그런데 맹세를 하는 품이 하도 성실치 못해서 그렇게 맹세를 하는 건 신을 속이는 것 같더란 말이다. 그래도 꾹 참고 장군이 자유롭게, 완전히 자유롭게 나가도록 내버려두었지.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단 말이야. 그게 어쨌단 말이냐? 우리한테선 떠났으니, 아마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게지. 그뿐일 거야. 그런데 살인이라니! 별 소릴 다하는구나. 검사 대리인 빌포르, 네가 그러한 어렴풋한 증거만으로 하나의 사건을 꾸며내다니. 내가 여태까지 네가 왕당파의 일원으로서 네 직무를 다해서 내 친구의 머리를 자르게 했을 때, 내가 언제 너한테 <얘야, 너는 사람을 죽였구나> 하고 말해 본 일이 있었더냐? 난 오히려 너한테 <잘했어, 넌 당당하게 잘 싸웠어. 내일이 오면 복수를 하겠다.>고 했지.”
“하지만 아버지, 조심하세요. 그 복수라는 걸 우리가 할 때엔 아주 무시무시한 거니까요.”
“네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버지는 나폴레옹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으세요?”
“그렇다.” (P195-196)
나폴레옹은 만약 누아르티에 씨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분명 빌포르를 파면시켰을 것이다. 누아르티에 씨는 그때까지 겪어 온 수 많은 위험과 나폴레옹에게 바친 충성심으로 해서 백일 정치(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에 돌아왔다가 워털루 전쟁에 패하여 다시 프랑스에서 쫓겨날 때까지의 정치를 말한다)의 궁중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93년의 자코뱅 당원(1793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한 정당을 말한다)이며 1807년에는 상원의원이 된 그는 이미 빌포르에게 약속한 대로 전에 자기를 감싸준 사람을 오늘에 와서 보호해 줄 수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두 번째 몰락을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보다도 빌포르가 제정 부활 기간에 그의 모든 권력을 기울인 것은 당테스가 하마터면 누설할 뻔했던 그 비밀을 말살시키는 데 있었다.
검사직만은 면직당했다. 보나파르트 당에 대한 충성이 미온적이었다는 혐의를 받은 때문이었다. (P204)
루이 18세가 다시 왕위에 올랐다. 마르세유의 추억이 깊은 회한에 뿌리박고 있는 빌포르는, 자진해서 공석으로 있는 툴루즈 검사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새 부임지로 온 지 이주일 후에 그는 생메랑 양과 결혼했다. 섹시의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도 궁중에서의 세력이 강했다.
이리하여 당테스는 백일 정치 하에서 그리고 워털루 전쟁 이후에도 감옥에 갇혀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아니면 적어도 신으로부터 영원히 잊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P214-215)
어느 날 그는 간수에게 누구든 한 사람만 같이 있게 해달라고, 비록 그 사람이 소문으로 들은 그 미치광이 신부라도 좋으니 함께 있게 해달라고 청을 했다. 간수란 인간은 무뚝뚝한 탈을 쓰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 밑에 어느 정도의 인정은 남아 있는 법이다. 이 간수도 얼굴에는 나타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괴로운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 불행한 청년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34호 죄수의 요구를 소장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나 소장은 마치 자기가 정치가이기라도 한 듯이, 매사에 용의주도했다. 이것은 분명, 당테스가 다른 죄수들을 모아서 무슨 음모라도 꾸미고, 그들의 도움을 빌려 도망이라도 하려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 요구를 거절해 버렸다.
이제 당테스는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한도 안의 희망은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신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경건한 생각, 운명에 짓밟힌 불행한 사람들이 주워 모으는 그런 생각이 지금 그의 마음에 다시 힘을 주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기도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예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의미를 발견해 냈다. 행복한 사람에게 기도란 다만 단조롭고 무의미한 것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으나, 괴로운 날이 오게 되면 고통으로 인해 불행한 사람은 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숭고한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P241)
그는 자기가 이렇게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은 신의 복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은 인간들의 증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군지 모를 그러한 인간들에게 불타오르는 상상 속에 떠오르는 모든 형벌을 가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아무리 무서운 형벌이라 할지라도 그런 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고통 뒤에는 죽음이 온다. 그리고 그 죽음 속에서는 안식은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안식과 비슷한 무감각한 상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에게 죽음을 준다는 것은, 평안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잔인하게 벌을 주려면 죽음 이외의 다른 수단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에 이르는 동안 그는 저 침울하고 움직일 줄 모르는 자살이라는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불행의 내리막길에서 이러한 암담한 생각에 발을 멈추는 사람은 진실로 불행한 사람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저 죽음의 바다인 것이다. 맑은 물결이 마치 창공과도 같이 활짝 펼쳐져 있으나, 그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은 점점 발이 끈끈한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어, 결국은 그리고 빨려 들어가다가, 마지막엔 아예 삼켜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붙들리고 나면 신의 구원이 없는 한 만사는 끝장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죽음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P244)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어. 계획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그만 내가 생각하던 게 틀어졌단 말이오. 컴퍼스가 잘못되어서 이렇게 망쳐버린 거지, 설계상으론 선(線) 하나가 틀렸는데, 실제론 열다섯 자나 틀리게 되어버렸단 말이야. 그래서 난 당신이 굴을 파고 있는 그 벽이 성벽인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
“그럼, 바다로 나가려고 하셨었나요? 그래서 만약 바다가 나온다면요?”
“뛰어내려서 헤엄치는 거지. 그래서 이 이프 성 주위에 있는 아무 섬에나, 이를테면 돔 섬이라든가 티불랭 섬이라든가 또는 해안에라도 좋으니까 닿을 수만 있으면 난 살게 되는 거요.”
“거기까지 헤엄쳐 가실 수 있을까요?” (P264-265)
신부는 당테스에게 자기가 그린 도면을 보여줬다. 그것은 신부의 방과 당테스의 방, 그리고 그 두 방을 연결하는 복도의 도면이었다. 복도 중앙에는, 마치 탄광에서 파놓은 것과 같은 좁은 굴이 있었다. 그 굴이 보초가 왔다갔다하는 땅밑으로 두 사람을 인도하게 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가면 거기서 커다란 굴을 판다. 그리고 복도 바닥의 포석을 하나 떼어낸다. 그 포속은, 때가 되면 그 위를 밟는 병사의 무게로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병사는 굴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갑자기 떨어져서 정신이 없는 병사가 아무 저항도 못할 때, 당테스가 병사에게 달려든다. 병사를 묶고 입을 틀어막은 다음에, 둘이서 복도의 창을 빠져나와 줄사다리를 타고 바깥 성벽을 기어 내려 도망하는 것이다.
당테스는 손뼉을 쳤다. 눈이 기쁨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P310-311)
청년은 무릎을 꿇고 노인의 침대에 머리를 박았다.
“하지만 이 임종에 즈음하여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두게. 스파다의 보물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네. 신은 지금 나를 위해 거리와 방해물을 거두어가신 거야. 내게는 그것이 제2의 동굴 밑에 있는 게 보이네. 내 눈은 깊은 땅속을 뚫고 그 많은 보물에 눈부시네. 만약에 자네가 용케 탈출해 나간다면, 모든 사람이 미친 놈으로 알던, 이 불쌍한 신부가 실은 미친 놈이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 주기 바라네. 몬테크리스토 섬으로 달려가게. 우리의 재산을 이용해 보게. 그래, 그걸 이용하게. 자넨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
몸이 한번 심하게 떨리는 바람에, 노인은 말을 그쳤다. (P349)
<아! 아!> 그는 중얼거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내 머릿속에서 불어넣어 주었을까? 하느님, 당신입니까? 여기서는 시체밖엔 빠져나갈 수가 없어. 그래. 죽은 시체 노릇을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결심을 번복할 겨를도 없이, 이러한 절망적인 결심을 깨뜨릴 시간적 여유를 두지 않으려는 듯이, 그는 그 보기 흉한 부대 위로 몸을 굽혀, 파리아가 만든 단도로 부대를 열고 시체를 끌어내어 자기 방으로 날랐다. 그리고 시체를 자기 침대에 눕힌 다음, 자기가 늘 머리에 쓰고 있던 헝겊 조각을 머리에 씌워놓고 자기 담요를 덮어놓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파리아의 차가운 이마에 입을 맞추고, 사고 능력이 없어져서 무서워 보이는, 아직도 그냥 열려 있는 눈을 감겨주고, 저녁때 간수가 식사를 가져왔을 때 늘 하던 버릇대로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벽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굴 속으로 들어가, 벽 쪽으로 침대를 끌어놓고 파리아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감추어두었던 실과 바늘을 꺼내어, 부대 속이 벌거벗은 시체로 보이게 하기 위해 입고 있던 누더기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갈라놓은 부대 속으로 들어가, 시체가 누워 있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찢어진 데를 안에서 꿰맸다. (P361-362)
그와 동시에 당테스는 자기가 허공에 내던져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처 입은 새처럼 공중을 가로질러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슴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빨리 떨어지게 하느라고 무엇인가 무거운 것이 매달려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데도, 그 떨어지는 시간이 그에게는 한 세기는 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그는 차가운 물속으로는 화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물속에 떨어지면서 동시에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조차도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당테스는 바닷속에 던져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발에 매달아놓은 36킬로그램의 무거운 추 때문에, 그는 점점 더 밑으로 밑으로 끌려 내려갔다.
바다가 곧 이프 성의 묘지였던 것이다. (P367)
이번 짐은 루카 공국(公國)으로 가는 것이었다. 짐은 거의 전부가 하바나 궐련과 헤레스와 밀라가 포도주였다. 그런데 거기서 죈아멜리 호의 영원한 원수인 세관과 말썽이 일어났다. 세관 관리 한 사람이 자리에서 쓰러졌고, 이쪽에서는 선원 둘이 다쳤다. 당테스는 그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총알이 그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당테스는 이 조그만 싸움을 거의 유쾌하게 생각했고 팔 다친 것을 만족해했다. 이번 싸움과 부상이라는 두 가지 거친 훈련을 통해, 그는 자기가 어떤 태도로 위험에 임하였으며, 어느 정도의 담력으로 고통을 참아나갈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웃으며 위험에 맞섰다. 그리고 자기가 다쳤을 때 그는 마치 그리스의 철학자처럼, <고통이여, 너는 악이 아니로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싸움 때문에 피가 끓어올라서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감정이 냉각되어 버려서인지, 그 일을 보고도 마음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당테스는 지금부터 달려가려고 하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은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P396)
신은 인간이 힘을 제한해 놓고는, 그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한 욕망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당테스는 바위들이 양쪽에 늘어서서 벽을 이루고 있는 틈바구니로 사라져버린 길을 따라, 격류 때문에 파인, 아마도 아직 사람의 발길에 한번도 닿지 않았을 좁을 오솔길을 끼고, 문제의 동굴들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다가갔다. 바다 기슭을 따라가며 깊은 주의를 기울려 조그만 물건까지 일일이 살펴가다가, 문득 몇 개의 바위 위에 사람의 손에 파인 자국 같은 것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형체가 없는 정신에는 망각의 옷을 입히고, 형체가 있는 것에는 이끼로 옷을 입히는 <시간>도, 이처럼 정연하게 꽉 박힌 표시, 그리고 필경은 무엇인가 하나의 표적을 나타내려고 찍힌 이 표시는 그대로 남겨두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표시는 때때로 커다란 꽃다발처럼 만발한 도금양 덤불이나 꽉 들러붙은 이끼 밑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테스는, 가지를 찾아내야만 했다. 이러한 목표는 에드몽에게 벅찬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저 추기경이 자기에게 예기치 못했던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에, 조카에게 길을 인도해 줄 수 있도록 표시해 놓은 것이 아닐까? 이 외진 장소야말로 보물을 감추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적당한 곳이다. 단지, 이러한 표시가 정말 그것을 찾아내야 할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의 눈을 끌었던 적은 없었을까? 이러한 경이로운 비밀을 감추고 있는 이 섬이, 과연 그 화려한 비밀을 충실히 지켜만 왔을까? (P408)
[2]
“가난 꼴이 박혔습지요. 신부님?” 카드루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잘 살려면 정직만 가지곤 안 되는걸요.”
신부는 꿰뚫는 듯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렇습지요. 정직이라는 점에선, 저도 그것만은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만” 주인은 신부의 시선을 받으면서 손을 가슴에 얹고 고개를 아래위로 끄떡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선 누구나 그런 말은 못할 겝니다.”
“당신이 자랑을 하고 있는 게 정말이라면, 그건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하고 신부가 말했다. “왜냐하면 조만간에 정직한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요, 나쁜 사람은 벌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내겐 있으니 말이오.”
“그건 신부님이 직업상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신부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신부님의 직업이니까요.”
카드루스는 쓰디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믿고 안 믿고는 사람 나름이지요.” (P27-28)
“무엇보다도 우선” 카드루스가 말했다. “저하고 약속을 하나 해주셔야겠습니다.”
“약속이라니?” 신부가 물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제부터 하는 얘기를 신부님께서 이용하실 일이 있더라도, 그 얘기가 제 입에서 나왔다는 것만은 비밀로 해주셔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얘길하려는 사람들은 돈도 있고 세력도 있는 사람들이 돼놔서, 만약에 그 사람들이 손가락 끝으로라도 절 건드리는 날이면 저 하나쯤은 유리조각처럼 박살을 내놓을 테니 말입니다.”
“그 점은 안심하시오, 주인” 신부가 말했다. (P42)
“자코포! 자코포! 자코포!”
그러자 보트가 하나 그에게 다가와서 그를 태우고 화려하게 장식한 요트로 안내해 갔다. 그는 선원 같은 가벼운 몸짓으로 요트의 갑판에 뛰어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한 번 더 모렐 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렐 씨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거기 모인 군중들과 일일이 따뜻한 악수를 나누며, 누군지 모를 자선가를 향해 막연한 눈길로 감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 자선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자, 그럼” 하고 그 낯선 사나이는 말했다. “선의(善意)여, 인정이여, 은혜여, 안녕! ....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모든 가정이여, 안녕....... 나는 착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대행하였도다...... 자, 그럼 이제부턴 복수의 신이여, 악한들을 벌하기 위해 그대의 자리를 내게 양보하라!”
이렇게 말하고 그는 신호를 했다. 그러자 요트는 마치 그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즉시 바다로 나갔다. (P126-127)
“그럼 그 산적들이 스페인의 밀수입자들하곤 뭘 하는 걸까?”
“글쎄, 제 얘길 들어보십시오!” 가에타노는 사뭇 기독교적인 깊은 동정심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인간이란 꼭 서로 도와야만 되겠더군요. 산적들은 가끔 육지에서 헌병이나 총병들한테 추격을 당하는 수가 있습지요. 그런데 마침 배 한 척이 눈에 뜁니다. 그리고 그 배 안에는 저희 같은 선량한 사람들이 타고 있답니다. 그래, 그 배 안에 좀 피하게 해달라고 청해 오면 쫓기는 줄 뻔히 알면서 어디 거절할 수야 있습니까? 그래, 받아주는 거죠. 그리고 안전하도록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저어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해주었다고 손해날 건 없고 하니, 그렇게 해서 사람 목숨을 한 번 구해 주는 게 아닙니까, 적어도 친구 하나 도망시켜 주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그 친구는 필요한 때엔 이쪽 은혜를 잊지 않고, 그 보답으로 우리가 짐을 풀 때 구경꾼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짐을 내릴 수 있는 장소를 가르쳐준답니다.”
“그래?” 하고 프란츠가 말했다. “그럼, 가에타노, 자네도 밀수입을 좀 하는군 그래.” (P139)
이 이탈리아인의 <사코모디>라는 말은 풀이하기가 힘들다. 이 말은 이리로 오십시오, 들어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라는 여러 가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 말 속에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저 몰리에르의 터키 말과 같은 것이다.
선원들은 그 말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았다. 노를 네 번 젓자 섬에 닿았다. 가에타노는 모래밭으로 뛰어내려 또 한번 그 보초와 낮은 소리로 몇 마디 지껄였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도 하나씩 배에서 내렸다. 이윽고 프란츠가 내릴 차례였다. (P144)
“그럼 그 사람이 밀수입자의 두목이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취미로 여행을 다니는 돈 많은 부자일 겁니다.”
<자, 이렇게 얘기가 다 다른 걸 보니 점점 더 알 수 없는 인간인걸>하고 프란츠는 생각했다.
“그 사람 이름이 뭔데?”
“이름을 물으면 그저 선원 신드바드라고만 한다나요. 그런데 그게 정말로 그 사람 이름인진 알 수가 없지요.”
“선원 신드바드라?”
“예”
“그래, 그 사람은 어디 사는데?”
“바다 위에서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모르지요.”
“자넨 그 사람을 본 일이 있나?”
“가끔 보지요.”
“어떤 사람이던가?”
“직접 보시면 아십니다.”
“날 어디서 만나려는 걸까?”
“아마, 아까 가에타노가 얘기한 그 지하실이서겠습죠.” (P149)
“아니죠. 전 이를 데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파샤(터키 왕)와 같은 생활이지요. 나는 창조의 왕입니다. 어떤 장소가 내 마음에 들면 거기서 머무르지요. 그러다 싫증이 나면 떠나버리고요. 난 새처럼 자유롭지요. 나도 새처럼 날개가 있어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 명령 한마디면 다 복종합니다. 또 때로는 숨을 곳을 찾는 산적이나 쫓기는 죄수들을 가로맡아서 인간이 세워놓은 법률의 힘을 놀려 주는 장난도 하지요. 그래서 내게는 나 한 사람만의 규정으로 만든 재판도 있어요.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지요. 유예도 없고 항고도 없는 벌을 주든지 용서를 하든지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나대로의 법률이 있습니다. 당신도 아마 나 같은 생활을 한번 맛보기만 하면, 다른 생활은 싫어져서 혹시 꼭 해야할 큰 계획이 없는 한 다른 세상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이를테면 복수 같은 것이로군요!” 하고 프란츠는 말했다.
미지의 주인은 상대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파고들어가기라도 할 듯한 시선으로 청년을 쏘아보았다.
“복수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인가요?” 하고 그는 물었다.
“왜냐하면” 프란츠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당신의 모습이 사회에서 박해를 받아 사회에 대해 무서운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서요.” (P156-157)
“과연, 그런 점만 보더라도 우리들이 원래는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지요.” 하고 신드바드가 소리쳤다. “우린 종종 행복의 바로 곁을 지나치면서도 그것을 못 보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보려고도 않습니다. 또는 행복이 눈에 보이더라도 그것을 행복이라고 정확하게 인정할 수가 없지요. 만약에 당신이 적극적인 성격에 황금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이걸 한번 맛보십시오. 그러면 페루, 구자라트, 골콘다의 금광이 눈앞에 보일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공상가이며 시인이라면, 역시 이걸 한번 맛보십시오.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고 무한의 세계가 열리며, 끝없는 환상의 세계를 마음껏 거닐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약에 당신이 야심가로, 지상의 영예를 추구하는 분이라면 이걸 또 맛보십시오. 한 시간 안으로 왕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프랑스라든가, 스페인이라든가, 영국 같은 유럽의 한구석에 박혀 있는 조그만 나라의 왕이 아니라 세계의, 우주의, 창조의 왕이 될 거란 말씀입니다. 당신의 왕좌는 사탄이 예수를 앗아간 저 산꼭대기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도 사탄에게 예의를 표할 필요도 없고, 그의 발톱에 키스할 의무도 없이 지상의 모든 왕국의 주권자가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대접하는 걸 한번 입에 대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주 간단한 거니까요. 이렇게 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자, 보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지금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낸 그 음식이 담긴 도금된 그 작은 술잔의 뚜껑을 열어, 커피 스푼으로 그 마술의 잼을 떠서 눈을 반쯤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보았다. (P159-160)
<대장이 되고 싶은 까닭은 뭐지?> 하고 대리가 물었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두목 쿠쿠메토를 죽였기 때문이야. 자, 이게 쿠쿠메토의 껍질이다>하고 루이지는 자기가 입은 옷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난, 약혼자에게 결혼식 때 입을 옷을 마련해주려고, 생페리제 백작 별장에 불을 질렀거든.>
한 시간 후에 루이지 밤파는 쿠쿠메토의 뒤를 이어, 이 산적단의 두목으로 선촐되었습니다.
“여보게, 알베르” 프란츠는 알베르 쪽을 돌아다보면서 말하였다. “우리의 벗 루이지 밤파를, 자네는 이젠 어떻게 생각을 하나?”
“그건 신화 같은 얘기지, 정말 루이지 밤파라는 인물이 있었던 건 아닐 거야.” 하고 알베르는 대답했다. (P233)
알베르와 프란츠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하고 알베르가 물었다.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의 호의를 그냥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도대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누군데?” 프란츠가 주인에게 물었다.
“시칠리아나 몰타 섬의 훌륭한 귀족으로,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보르게제(로마의 대귀족) 집안 사람같이 품위 있고, 금광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굉장한 부호지요.”
“하지만” 하고 프란츠가 알베르를 향해 말했다. “그 사람이 정말 주인이 말하는 것만큼 점잖은 사람이라면, 초대를 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할 법한데. 이를테면 편지를 써 보낸다든가, 아니면.....”
바로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P267)
“그런 끔찍한 꼴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으신가요?”
“처음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러나 차츰 무관심하게 되고, 나중엔 흥미 있게까지 되었지요.”
“흥미 있다니요!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어째서요? 이 세상에 중대한 문제라고는 오직 한 가지밖엔 없습니다. 그건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제각기 어떤 방법으로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성격이며 기질이며, 또한 자기 나라의 풍속에 따라서 어떻게 육체가 허무로 돌아가는 그 마지막 여정을 감수하는지 구경하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까요? 저로선 단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건, 사람이 죽는 걸 많이 보면 볼수록, 죽는다는게 어렵지 않게 생각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제 생각엔, 죽음이란 아마도 하나의 형벌이겠지요. 하지만 죽음이란 건 속죄(贖罪)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P280)
다만 이 군중 속에 새로운 소음과 움직임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콜리 상인들의 등장이었다.
모콜리 또는 모콜레토라는 것은, 부활제에 붙이는 촛불에서부터 가는 실초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초를 말하는 것으로서, 로마 사육제에 종지부를 찍는 대무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모순되는 두 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
1.자기 촛불은 꺼지지 않게 할 것.
2.남의 촛불은 끌 것.
이 촛불이야말로 사람의 생명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생명을 전하는 방법을 하나밖에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남의 생명을 빼앗는 방법은 수없이 많이 발견해 냈다. 그리고 그 최후의 행동을 위해 분명 악마의 도움도 다소 받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초는 불에다 가까이 대면 불이 켜진다.
그러나 촛불을 끄기 위해 발명된 그 수많은 방법, 즉 커다란 풀무, 거대한 불끄개, 거대한 부채 등을 어찌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P330)
“자넨 매사에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 같군 그래, 밤파” 백작이 말했다. “자넨 사람 얼굴만 잊어버릴 뿐 아니라 사람들하고 한 약속마저도 잊어버리는 것 같으니 말이야.”
“제가 무슨 약속을 잊어버렸나요? 백작님?”하고 밤파는, 설혹 잘못이라도 있었다면 곧 고칠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로 이렇게 물었다.
“어때, 나 한 사람뿐만 아니라 내 친구한테까지도 손끝 하나 대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았던가?” 하고 백작이 말했다.
“그랬지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했기에 약속을 어겼나요?”
“자넨 오늘밤 알베르 드 모르세르 자작을 납치해서 이리로 끌고 오지 않았나? 그런데 말야.” 하고 백작은, 프란츠가 몸서리가 쳐질 이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청년은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이야. 그 청년은 나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고, 바로 내 마차로 일주일이나 콜로세움을 돌아다녔단 말일세.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자넨 그 사람을 이리로 납치해 왔단 말일세.” 하고 백작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자넨 그 사람을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석방금까지 붙여놓았으니 말이야.”
“그런 걸 왜 진작 내게 말을 안했지? 너희들 말야!” 두목은 부하들을 돌아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P355)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하고 알베르는 어머니 메르세데스 앞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여자는 미소를 띠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아니”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이분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슬픔과 눈물에 잠겨 있지 않았겠어요? 그런 분을 만나뵙게 되니, 마음이 떨려 왔던 거예요.” 하고 부인은 왕비와도 같은 위엄 있는 태도로 몬테크리스토 백작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당신은 제 아들의 생명을 구해 주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그 은혜에 대해서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의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축복을 빈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백작은 또 한번 먼젓번보다도 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의 얼굴은 메르세데스의 얼굴보다도 더 창백해져 있었다.
“부인” 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말했다. “백작께서나 부인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너무 과분하게 치하해 주십니다. 한 사람의 인간을 구해 주는 것,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나 여자의 슬픔을 없애주는 일은, 결코 선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인 줄로 압니다.”
이 부드럽고도 따뜻한, 예의에 한 백작의 말에 모르세르 부인은 침통한 소리로 대답했다.
“제 아들이 당신과 같은 분을 친구로 모실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기회를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메르세데스는 끝없는 감사의 빛을 띠며, 그 아름다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게는 그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P443-444)
[3]
<그럼, 좋습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신다고요? 그렇다면 코르시카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어떻게 지키는가도 아시겠군요. 제 형이 보나파르트 당원이니까 그를 죽인 것도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신다지요. 당신은 왕당파니까 말이에요. 그렇다면, 나도 보나파르트 당원이니까, 한마디 해두어야겠습니다. 당신은 내가 죽일 것이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당신에게 복수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가능한 한 몸을 조심하란 말씀이오.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나기만 하면, 당신에겐 그게 마지막일 테니 말이오.>
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가 놀라움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흥”하고 백작은 말했다. “이렇게 고지식한 얼굴을 한 사람이 그런 소릴 했단 말이지, 베르투치오. 게다가 감히 검사한테 말야. 놀랐는데! 하지만 그 사람이 복수라는 말의 뜻이라도 알았을까?” (P35)
저는 그가 그 상자를 땅 속에 파묻은 다음, 다시 흙을 메우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 덮은 흙 위를 발로 밟아 흔적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그에게로 달려들어 그의 앞가슴에 칼을 꽂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반니 베르투치오다! 내 형을 위해서 너의 목숨을, 그리고 내 형수를 위해선 네 재산을 받으러 온 것이다. 어때? 내 복수가 철저하다는 걸 알겠지?>
저는 그가 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를 몰랐습니다. 아마 못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 소리도 한번 못 지르고 푹 쓰러졌으니까요. 저는 뜨거운 그의 피가 내 손과 얼굴로 쭉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흥분해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피로 몸이 뜨거워지기는커녕 온몸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땅 속에 있는 상자를 파내어, 내가 꺼내간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구덩이를 메우고 삽은 담 너머로 던져버린 다음, 문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문을 이중으로 잠근 후에 열쇠를 가지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잘했어!” 하고 백작은 말했다. “그러니까 조그만 살인 사건에 도둑질까지 겹친 셈이군.” (P40-41)
불행히도 <빨강 머리는 아주 선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악한 사람>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베네데토의 경우엔 그 속담이 들어맞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놈은 벌써 나쁜 기질만 보였습니다. 하긴 처음에 어머니가 오냐오냐 하면서 길러서 그를 더욱 그렇게 만든 셈이긴 하지요. 그 녀석 어머니는 20킬로미터나 떨어진 시장까지 가서 처음 나온 과일이며, 맛있는 과자를 사오곤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녀석은 파르마의 오렌지나 제노바의 통조림보다는 옆집 울타리를 넘어서 도둑질해 온 밤이나, 그 집 곳간에 말려놓은 사과 같은 걸 더 좋아했지요. 우리 집 과수원에도 사과나 밤은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P47)
“....제가 꼭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될 그 첫 번째 살인 얘기를 듣고, 신부님은 제가 두 번째 살인, 즉 카드루스네 집에서 생긴 살인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 주었단 말씀입니다. 그러고는 헤어질 때, 그분은 제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고 또 제가 죄가 없다는 것을 재판관들한테 설득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 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옥중의 대접이 점점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재판이, 그때 마침 열리고 있던 다른 공판이 끝날 때까지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이 정말로 제 일에 애를 써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사이에, 하느님 덕분으로, 카드루스가 외국에서 잡혀서 프랑스로 끌려왔습니다. 그자는 모든 것을 자백하고, 살인을 생각하게 한 것도, 더구나 그것을 충동한 것도 자기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놈은 종신 징역형을 받고, 저는 무죄가 되었습니다.”
“그럼, 부소니 신부의 편지를 가지고 나한테 온 것이 바로 그때였나?” 하고 백작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참 저한테 대단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밀수입 같은 걸 하면 당신 신세를 망칠 거요. 그러니 감옥에서 나가거든, 그짓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요.>.....” (P77)
“맞습니다. 그게 죄도 아주 큰 죄였습니다. 그 점에서 전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일단 아이를 살려놓았으면, 할 일은 하나밖에 없는 거지요. 백작님 말씀마따나, 그 아이를 제 어머니한테 돌려주어야 했던 겁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아이 어머니를 찾아보아야 되고, 그렇게 되면, 제가 혐의를 받아 어쩌면 제 신상이 위태로워졌을는지도 모릅니다. 전 죽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형수 때문이기도 했고, 또 하나는 복수를 하고도, 이쪽은 아무 일 없이 의기양양해지고 싶어하는 우리 코르시카 사람들의 천성적인 자존심 때문이었습지요. 그런데 실은, 단순히 살고 싶다는 생의 애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전 제 형처럼 그렇게 용감한 사나이는 아니니까요.”
베르투치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몹시 엄숙한 침묵이 잠시 흐른 후에,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훌륭하게 결말을 지으려면, 베르투치오,” 하고 백작은 평시에는 볼 수 없었던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내 얘기를 잘 들어두는 게 좋을 거야. <모든 악에는 두 개의 약이 있다. 시간과 침묵이 그것이다.> 이 말은 부소니 신부의 입에서 수없이 들어온 말이야. 자 이젠 베르투치오, 나 혼자 잠깐 정원을 산책하게 내버려두어 주게. 그건, 그 무대에 직접 참여했던 자네에겐 가슴 아픈 고통이겠지만, 내게는 이 집 값을 배로 올려주는, 거의 즐겁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야. 베르투치오, 나무란 그늘이 생겨야 사람의 마음을 유쾌하게 해주고, 그늘은 또 그 속에 꿈과 환영이 가득 차 있을때라야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법이야. 난 단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빈터를 하나 산다는 기분으로 이 정원을 손에 넣었는데, 그게 그렇질 않단 말야. 이 공지는 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망령이 우글우글하는 정원이니까. 그런데 난 그런 망령들을 좋아하거든. 난 여태까지 산 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나쁜 짓을 죽은 사람이 육천 년이나 걸려서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일이 없어. 자, 베르투치오, 자넨 들어가서 편안히 자게. 만약 자네의 참회 신부가 자네의 임종시에 저 부소니 신부만큼 관대하지 못하거든,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나를 부르게. 내가 자네의 영혼이 영원이라고 불리는 괴로운 여정에 오를 준비가 다되어 있을 때, 자네의 영혼을 고이 잠들게 할 말들을 해줄 테니.” (P82-83)
일반적으로 빌포르는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누군가가 찾아오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방문할 일이 있으면 그의 아내가 대신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교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사법관이라고 하는 중대하고도 많은 일 때문에 그런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오만에서 오는 타산이었으며 귀족주의 정신에서 나오는,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의 티를 내라, 그러면 남도 그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하는 격언을 적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격언은 오늘날 그보다 백 배는 더 유효한 <남을 알라>는 처세술로 바뀌어 있었다. 빌포르는 친구들에게는 강력한 배경이 되었다. 자기 적에게 그는 교활하고도 신랄한 적수였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탈을 쓴 법률의 우상처럼 되어 있었다. 오만한 태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 광채 없이 희미하지만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꿰뚫어 보며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듯한 시선, 이러한 이미지는 네 차례의 혁명을 통해서 확고하게 굳어졌다. (P126-127)
“인간이란 현미경에 비춰본다면, 정말 더러운 송충이 같은 존재지요. 그런데 빌포르 씨께선 방금 제가 아무 일도 안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럼 한번 생각해 볼 문젠데, 빌포르 씨게선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좀 더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빌포르 씨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빌포르는 이 이상한 적수에게 또 한번 크게 당하고는 더욱 깜짝 놀랐다. 검사가 이렇게 신랄하게 비꼬는 소리를 들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정도로 심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검사는 이 말에 대답을 해야만 했다.
“선생”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외국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씀했듯이, 인생의 일부분을 동방의 여러 나라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미개한 지방에서는 적당하게 취급해 버리는 범인 처벌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신중하고 치밀하게 취급되고 있는가를 모르고 계실 겁니다.”
“아니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옛날의 pede claudo(호라티우스의 말, <보복은 필연적>이라는 뜻이다) 라는 말이군요. 저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특히 각국의 사법 제도를 조사해서, 각국의 형법과 자연법을 비교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마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러한 미개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법률, 다시 말하면 그 복수형(復讐刑) 쪽이 제 생각에는 가장 신의 뜻에 맞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P130-131)
“제 얘기는 이런 겁니다. 당신은 각국 사회의 조직을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계의 움직임만 보고 계신 것이지, 그 기계를 움직이는 귀한 직공은 보지 못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당신은 자신의 눈앞이나 주위에, 대신이나 왕이 서명한 사령장을 가진 지위 있는 사람들만 보고 계십니다. 그러한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대신이나 왕 위에 하느님이 그런 지위 대신 어떤 사명을 내려주신 사람들이 있어도, 당신의 근시안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약하고 불완전한 기관밖엔 갖지 못한 인간에게는 그것도 당연한 결과겠지요. 토비(장님이 된 후에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광명을 찾았다는 유태인)는 시력을 돌려주러 온 천사를 그냥 예사 청년인 줄로 알았지요. 아티라(5세기경의 유명한 정복자)를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들을 전멸시킬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그냥 예사 다른 정복자 중의 하나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입으로 하늘의 사명을 띠고 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그 사실을 몰랐더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토비는 <나는 하늘의 천사다>하고, 아티라는 <나는 하느님이 만드신 망치>라는 말을 해야만 했던 겁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신성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니까요.” (P133-134)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생에 한 번은 일어나는 일이지만, 저 역시 옛날에, 악마의 힘으로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일이 있습니다. 거기까지 올라가자 악마는 내게 전 세계를 보여주며, 옛날 그리스도에게 말했듯이, 내게 <인간의 자식이여, 나를 경배하기 위해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고 말하더군요. 나는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하나의 무서운 야심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신의 섭리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을 여태 본 일도 없거니와 그와 비슷한 것도 보질 못했다. 그래서 결국 신의 섭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신의 섭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하고 숭고한 것은 자기 손으로 상벌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악마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신의 섭리는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이 안 보이는 이유는,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인 신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너는 여태까지 그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다. 그건 또, 신의 섭리란, 항상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움직이고,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너를 신의 사도 중의 하나로 만들어주는 일이다.> 흥정은 이렇게 해서 끝났습니다. 그 교섭으로 나는 내 영혼을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고 백작은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흥정을 해야 할 경우라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할 겁니다.” (P139-140)
“하지만 난 거의 남의 집이나 다를 바 없는 이 집에서 버려진 불쌍한 존재예요. 아버지께선 남이나 다름없는 걸요. 그리고 내 마음도 나를 억압하는 강철 같은 사람들의 마음 때문에, 십년 전부터 시시각각으로 부서져버리고 말았어요. 이렇게 내가 고통받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런 얘기조차 당신말고는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남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모든 게 다 좋고,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내게는 적이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빌포르 씨는 사람이 너무 신중하고 엄격해서, 딸한테 상냥하지 않겠지만, 빌포르 부인만 좋은 어머니라면 행복할 거야> 라고들 얘기하지요. 그러나 그건 모르는 소리예요. 아버지는 나한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고, 계모는 악착같이 나를 증오하고 있어요. 그것도 얼굴에 미소를 띠면 띨수록 그만큼 더 속으로는 지독히 증오하는 거죠.”
“당신을 증오하다니! 발랑틴, 어찌 당신을 증오할 수가 있단 말이오?”
“하지만!” 하고 발랑틴은 말했다. “그런 증오심은 따지고 보면 무리는 아닐 겁니다. 계모는 자기 친아들 에두아르를 너무 나도 사랑스러워하니까요.” (P179)
“신호기라고요?” 빌포르 부인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신호기 말입니다. 저는 가끔 길 끝이나 언덕 위에, 아주 맑은 날이면 커다란 딱정벌레의 다리처럼 시커멓게 구부린 팔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 늘 마음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겐 그러한 괴상한 신호가 정확하게 공중을 날아가서, 어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알지도 못할 의사를, 삼백 리나 떨어져 있는 곳에 역시 또 어떤 다른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저쪽 사람에게 전하면서 전능한 인간의 의지력을 검은 구름이고 푸른 하늘 위로 나타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전, 정령이라든가 요정이라든가 지정(地精)이라든가 신통력까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곤 혼자 웃지요. 그런데 그 허연 배를 하고 시커멓고 가느다란 다리를 한 큰 벌레를 좀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지요. 그건, 그런 돌로 만들어진 벌레의 날개 밑에서 점잔을 빼고, 유식한 것을 코에 건, 학문과 요술 내지는 마술로 꽉찬 인간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정령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러한 신호기를 움직이고 있는 인간이란, 일년에 1,200 프랑의 급료를 받고 일하는 가련한 인간으로서, 그 인간은 하늘을 쳐다보는 천문학자나 물을 들여다보는 낚시꾼이나 또는 멍하니 경치나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사오 리나 떨어진 곳에 있는 똑같이 허연 배에 시커먼 다리를 한 통신의 상대를 하루 종일 바라보며 살고 있는 사나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러자 저는, 그러한 인간 번데기에게 좀 더 가까이 가서, 자기의 껍질 속에서 또 다른 번데기를 향해 몇 가닥의 실을 계속적으로 뽑아내고 있는 꼴을 한번 직접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요.”
“그래, 거길 가보시려고요?”
“그렇습니다.”
“어느 신호기엘요? 내무성의 것인가요? 천문대의 것인가요?”
“아니죠. 그런 델 가면,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이쪽 기분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기네들도 모르는 신비스러운 것들을 설명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그런 건 질색입니다. 저로서는, 벌레라는 환상만을 가지고 싶은 겁니다. 인간에 대한 환상을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래서 내무성의 신호기나 천문대의 신호기엔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가보고 싶은 곳은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신호기입니다. 그곳에 가서, 그 신호기 속에서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순수한 인간을 만나보고 싶은 겁니다.”
“보통 사람과는 퍽 다른 생각을 하시는 분이시군요.” 하고 빌포르가 말했다. (P356-357)
백작은 손님들이 모두 놀라는 것을 보고, 껄껄대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이 점을 인정하시겠지요. 즉, 재산이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땐 필요로 하는 것이 단지 낭비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부인들께서도 아시겠지만, 감격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 가고 보면, 더 이상 바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런 이치를 따지고 보면, 대체 놀라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것만이 놀라움이 될 뿐입니다. 과연 정말 손에 쥐고 싶은 부(富)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것, 제 손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을 제 일생 동안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저는 돈과 의지라는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상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선, 여러분과 똑같은 열성으로 임합니다. 예를 들면, 당글라르 씨가 새로운 철도 노선을 만들어보려고 생각할 때의 열성, 빌포르 씨가 한 인간에게 사형을 선고 하려고 할 때의 열성, 드브레 씨가 하나의 왕국을 평정시키려고 할 때의 열성, 샤토 르노 씨가 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할 때의 열성, 그리고 모렐 씨가 아무도 타지 못하는 말을 타고 싶어할 때의 열성. 저는 그 열성에 필적할 만한 정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기 있는 이 물고기 두 마리를 보십시오. 하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오십 리 떨어진 곳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나폴리에서 오 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난 놈입니다. 그런 것들을 같이 식탁 위에 모아놓는다는 것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P392-393)
[4]
빌포르 씨는 당글라르 부인과의 약속, 특히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오퇴유 가의 비밀을 알게 된 경위를 캐기 시작했다.
그는 그날로 전에 형무소장을 하다가 지금은 승진해서 치안 경찰 근무를 하고 있는 보빌 씨에게 편지를 띄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부탁했다. 보빌 씨는 그 정보를 누구에게서 얻을 수 있을까 연구하기 위해 이틀간의 말미를 청해 왔다.
이틀이 지나자, 빌포르 씨는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인물은 윌모어 경이라는 부유한 외국인과 가까이 지내며, 종종 파리에 나타나고, 현재도 파리에 거주하고 있음. 그는 또한 동양에서 선행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시칠리아의 부소니 신부와도 가까운 사이임. (P23-24)
그러나 백작은 역시 똑같은 거절의 뜻을 표시했다.
“아니, 이것도?” 이렇게 말하는 부인의 어조는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는 듯한 괴로운 어조였다. “정말 전 슬퍼졌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복숭아도 역시 포도송이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윽고 메르세데스가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백작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백작, 아라비아에선 한 지붕 밑에서 빵과 소금을 나누어 먹은 사람들은 영원히 친구가 된다는 감동적인 풍습이 있다지요.”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백작이 말했다. “그러나 여긴 프랑스지 아라비아가 아닙니다. 프랑스에서는 빵과 소금을 나누어 먹지도 않거니와, 영원한 우정 같은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인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백작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부인은 발작적으로 백작의 팔을 다시 붙잡았다. “우린 친구가 아닌가요?”
백작의 가슴에 피가 울컥 몰려왔다. 처음에는 얼굴빛이 죽은 사람처럼 새파래지더니 곧 피가 가슴에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뺨이 확 달아올랐다. 갑자기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시선은 잠시 허공을 헤매었다.
“물론 우린 친구지요, 부인.” 하고 그는 대답했다. “그렇지 않을 리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어조는 부인이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인은 고개를 돌려 신음하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P58)
“그랬군요? 그리고 그 사람이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아서..... 하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단 한번뿐이라지요?...... 그 여자를 그후에 다시 만나지 못하셨나요?”
“한번도”
“한번도!”
“전 그 여자가 살던 고장에 다시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으니까요.”
“몰타에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 여자는 몰타에 있군요?”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당신을 괴롭혀드린 일을 마음속으로는 용서해 주셨습니까?”
“여자는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만요? 그럼, 그 여자를 백작 곁에서 뺏어간 다른 모든 사람은 아직도 미워하시는군요?”
부인은 백작 앞에 마주 섰다. 손에는 아직도 사향 포도 송이에서 떨어진 몇 개의 포도알을 쥐고 있었다.
“좀 드세요.” 하고 부인은 말했다.
“전 절대로 사향 포도는 먹지 않습니다. 부인,” 하고 백작은 대답했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부인은 절망적인 몸짓으로 그 포도 송이를 바로 곁에 있는 나무숲에 던져버렸다. (P60-61)
“어쨌든”하고 알베르가 말했다. “후작 부인이 병으로 죽었건 의사가 죽였건 간에 그 덕에 막대한 유산이 굴러 떨어졌단 말야. 그게 빌포르 씬지 발랑틴인지, 다시 말하면 우리의 친구 프란츠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말야. 일년에 8만 리브르는 될걸.”
“거기다가 그 옛날 자코뱅 당원이었던 누아르티에 씨까지 죽으면 그 유산이 배가 되는 거지.”
“그런데, 그 노인은 만만치 않은 모양이야.” 보샹의 말이었다. “버티는 힘이 굉장하단 말일세. 상속자들이 다 죽기 전에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사신(死神)한테 맹세라도 한 것 같아. 그리고 꼭 그렇게 될걸. 하긴 1793년 혁명의회 회원으로 여태 살아남은 노인이고, 1814년(나폴레옹이 연합군 앞에 굴복하여 퇴위한 해이다)에 나폴레옹에게 이렇게 말한 양반이니까, <폐하는 약해지신 겁니다. 폐하의 제국은 성장이 너무 빠르다가 지쳐버린 어린 나무 줄기와 같은 것이지요. 이제부터는 공화 정부를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조직으로 다시 일어나십시다. 제가 50만 병력을 약속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마렌고(1800년 나폴레옹군이 오스트리아군에 대해서 대승리를 거둔 이탈리아의 지역이다), 아우스터리츠(모라비아의 마을 이름. 1805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을 크게 무찌른 곳이다)를 회복하셔야지요. 폐하, 사상이란 쉽사리 붕괴되지 않는 겁니다. 잠을 잘 때가 간혼 있지만, 그러나 일단 눈을 뜰 땐 잠들기 전보다 더욱 확고해지는 겁니다.> 이런 소릴 한 노인이야.”
“그 양반에겐.” 하고 알베르가 말했다. “인간하고 사상하고 똑같이 보이는 모양이야.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프란츠 그 친구가 제 처가 될 발랑틴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그 노인하고 어떻게 지낼는지 하는 거야. 그런데 프란츠는 어디 있지?”
“맨 앞의 마차에 빌포르 씨하고 같이 탔지. 빌포르 씨는 벌써 가족 대우를 하니까.” (P131-132)
발랑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침내 프란츠는 Moi(나)라는 단어까지 왔다.
“그렇소.” 노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하고 프란츠는 소리쳤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당신이? 누아르티에 씨가! 당신이 내 아버지를 죽였다니!”
“그렇소.” 노인은 위엄 있는 시선으로 청년을 응시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프란츠는 맥없이 의자 위에 주저앉았다.
빌포르는 문을 열고 달아나버렸다. 이 무서운 노인의 심장에 조금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생명을 하마터면 눌러 죽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P162)
알베르는 하이데 쪽으로 돌아앉으며, “몇 살 때 그리스를 떠나셨나요?”하고 물었다.
“다섯 살 때요.”
“그런데도 고향 생각이 나십니까?”
“눈만 감으면 어렸을 때 본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해 와요. 우리에겐 두 가지 눈이 있죠. 하나는 육체의 눈, 또 하나는 마음의 눈. 육체의 눈은 가끔 잊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그럼 당신이 알 수 있는 가장 오랜 된 기억은?”
“제가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죠. 사람들이 바실리키라고 부르던 내 어머니는(<바실리키란 ‘왕가의 사람’이라는 뜻이죠> 하고 소녀는 고개를 들며 덧붙여 말했다) 내 손을 붙잡고 죄수들을 위해 주머니를 들고 동냥을 하러 나갔었지요. 우린 둘 다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 주머니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넣었어요. 동정을 구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빚을 지게 하는 것이니>(구약성서 잠언 19장 17절) 주머니가 다 차자, 우리는 궁전으로 돌아왔죠. 아버지껜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람들이 우리를 걸인으로 알고 준 돈을 전부 수도원장에게 보내 그것을 수도원장이 다시 죄수들에게 주도록 했답니다.”
“그래, 그때 나이가 몇 살이었나요?”
“세 살이었어요.” 하이데가 대답했다. (P194)
“발랑틴에게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차라리 나 자신을 고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이아몬드와 같은 마음씨를 가진 발랑틴은, 백합처럼 순박한 발랑틴은!”
“자비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발랑틴은 생메랑 후작에게 보낼 약을 자기가 직접 포장했습니다. 그런데 후작이 죽었습니다. 발랑틴은 또 후작 부인의 탕약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후작부인도 돌아가셨습니다. 발랑틴은 심부름 갔던 바루아의 손에서 누아르티에 씨가 매일 아침 마시는 레모네이드를 손수 받았습니다. 노인께서 살아나신 건 기적일 뿐입니다. 범인은 발랑틴입니다! 발랑틴이 독살을 한 겁니다. 검사님, 저는 당신에게 발랑틴 양을 고발하겠습니다! 자, 당신의 의무를 수행하시지요!”
“선생, 더 이상 할말은 없습니다. 더 이상은 변명하지도 않겠습니다. 당신 말을 믿겠소. 하지만 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내 목숨, 내 명예만은 건져주십시오!”
“빌포르 씨.” 하고 의사는 점점 더 완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P270)
문이 하도 조용히 열려서, 도둑은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갑자기 방이 환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시오! 카드루스 씨” 백작이 말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시오?”
“부소니 신부님!” 카드루스가 소리쳤다.
그리고 문을 잠가두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타날 수 있었는지 놀라워하며, 그는 열쇠 꾸러미를 떨어뜨린 채 마치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사람처럼 꼼짝 못하고 얼떨떨해 있었다.
백작은 창문을 막어서고 도둑과 마주 보았다. 이렇게 해서 도둑으로선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막혀버렸다.
“부소니 신부님!” 카드루스는 사나운 눈길로 백작을 쏘아보며 말했다.
“암, 물론 그 부소니 신부요.” 백작이 말했다. “바로 내가 그 사람이오. 카드루스 씨, 기억해 주어서 반갑소. 우린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구려. 내 생각이 틀림없다면, 우리가 서로 못 본지도 이럭저럭 십년은 됐으니까.”
이 침착한 태도, 이 빈정거리는 말투, 그리고 이 위엄 있는 모습 앞에서 카드루스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신부님! 신부님!” 카드루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몬테크리스토 백작 집에서 뭘 훔치려는 게로구려?” 하고 자칭 신부가 말했다. (P318)
“닥쳐!” 신부가 말했다. “몇 방울 안 남은 피까지 흘려버리고 싶으냐? ..... 아, 너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있으니,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죽는 거다! ...... 넌 하느님을 믿지 않는군. 하느님은 기도 한마디, 눈물 한 방울만으로도 너를 용서해 주실 텐데! ..... 하느님께선 살인자의 칼로 너를 숨지게 할 수도 있었는데, 네가 참회하도록 십오 분간의 시간까지도 주셨다...... 어서 네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얼른 참회해라!”
“안하겠소.” 카드루스가 말했다. “난 참회하지 않아. 하느님은 없어. 섭리란 것도 없고. 그저 운만이 있을 뿐이라고.”
“섭리도 있고 하느님도 계시다.” 백작이 말했다. “그 증거는 네가 거기 그렇게 쓰러진 채 신을 부정하며 절망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부유하고 행복한 내가 무사히 네 앞에 서서, 네가 믿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속으로는 믿고 있는 하느님께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는 거지.”
“도대체 당신은 누구야?” 카드루스는 꺼져가는 두 눈으로 백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를 잘 봐라.” 백작은 촛불을 들어 얼굴로 갖다 대며 말했다.
“그래, 분명 신부인데..... 부소니 신부......”
백작은 얼굴을 변모시키고 있던 모자와 가발을 벗었다. 그리고 그 창백한 얼굴에 그처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검은 머리를 늘어뜨렸다.
“앗!” 카드루스는 겁에 질린 듯이 소리쳤다. “그 검은 머리만 아니라면, 꼭 그 영국 사람 같군요. 윌모어 경 같습니다.”
“나는 부소니 신부도 아니고 윌모어 경도 아니다.” 백작이 말했다. “나를 더 자세히 봐. 좀더 옛날로 돌아가서, 기억을 더듬어봐라.”
이렇게 내뱉은 백작의 말에는 마치 전기라도 통하고 있는 듯, 카드루스의 다 꺼진 감각을 마지막으로 일깨워주었다.
“아! 정말.” 하고 그는 말했다.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요, 옛날에 알던 사람 같아요.”
“그래, 카드루스, 넌 나를 본 일도 있고 잘 알기도 해.”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오? 나를 본 일도 있고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서 어째서 나를 죽게 내버려둔단 말이오?”
“넌 어디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야. 네 상처는 어차피 치명적이다. 네게 구원의 여지가 있었다면 나도 하느님의 마지막 자비라고 생각해서, 아버지의 무덤을 걸고 맹세하건대, 너를 살려 참회시켜 보았을 거다.”
“아버지의 무덤에 걸고라니!” 카드루스는 마지막 불꽃으로 힘을 끌어모아,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이런 맹세를 하는 사람을 좀더 가까이 보려고 몸을 일으켜보았다.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P338-339)
“알베르.” 하고 입을 열었다. “이제 내 심정을 이해하겠나? 난 모든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판단을 내리고 싶었던 거야. 자네 아버지께 유리한 설명을 할 수 있기를 바랐고, 아버님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뜻밖에도 조사 결과는, 군사 교관으로 알리 파샤에 의해 총사령관 자리까지 올라갔던 페르낭 몬데고가, 다름 아닌 페르낭 드 모르세르 백작이라는 사실을 판명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네. 그래서 난 자네가 보여준 우정을 생각해서 이렇게 곧장 달려온 걸세.”
알베르는 안락의자에 쓰러진 채로 마치 햇빛을 막으려는 듯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난 곧장 자네한테로 달려온 거야.” 하고 보샹은 말을 이었다. “자네한테 이런 얘길 해주려고 말야. 알베르,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어. 그러니 부모들이 저지른 잘못이 자식인 우리한테까지 미치는 일은 없네. 그 어지럽던 혁명기에, 군복이고 관복이고 더렵혀지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이렇게 내가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고, 자네의 비밀을 나만 알고 있는 터이니, 이제 누구도 내게 결투를 요구할 수는 없을 걸세.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네 양심이 그 결투를 범죄라고 비난할 테니, 하지만 난 자네가 이젠 나한테 하지 못할 요구를 내가 자진해서 하고 싶네.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이 증거, 이 사실, 이 증명서를 이대로 묻어버리면 어떻겠나? 이 무서운 비밀을 나와 자네만이 알고 묵살해 버리는 게 어떨까?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네만, 절대로 이 비밀이 내 입에서 새나가는 일은 없을 걸세. 어때, 알베르, 그렇게 하지 않겠나? 말해 보게.” (P348)
<나를 모른다고!> 하고 여자는 소리쳤지. <불행히도 난 너를 알아보겠는데! 넌 페르낭 몬데고, 아버님의 군대에서 교관을 하던 프랑스 장교가 아니냐! 자니나의 성을 적에게 팔아넘긴 건 너여! 네 은인의 생사 문제를 교섭하기 위해 직접 콘스탄티노플로 파견되었는데, 터키 황제와 밀모하여 완져ᅟ건 사면을 허한다는 거짓 칙서(勅書)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 바로 너지! 넌 그 칙서를 가지고서 파샤에게서 반지를 받고, 화약고를 지키던 셀림을 속여 그를 죽였지! 그러고는 나와 내 어머니를 노예상, 엘 코비르에게 팔아먹은 게 너 아니고 누구란 말이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네 이마에는 아직도 네 주인의 피가 묻어 있다. 자, 모두들 저자를 잘 보세요!>
하이데의 그 말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눈은 모르세르 백작의 얼굴로 쏠렸어. 백작 당신도 마치 알리 파샤의 뜨뜻한 피가 느껴지는 듯 손을 이마로 가져가더군.
<그러면 모르세르 백작이 바로 그 페르낭 몬데고라는 장교란 말씀이신가요?>
<물론이죠!> 하이데가 소리쳤다네. (P392-393)
그 부인은 백작이 손에 들린 권총과 테이블 위에 놓인 두 자루의 검을 보자마자 방안으로 달려왔다.
“부인께선 누구시지요?” 백작은 베일을 쓴 여자에게 물었다.
미지의 여인은 누구 다른 사람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무릎이라도 꿇으려는 듯 몸을 구부리며, 두 손을 모은 채 절망적인 어조로,
“에드몽”하고 말했다. “제발 제 아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백작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나지막하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렸다.
“방금 뭐라고 부르신 겁니까, 모르세르 부인?” 하고 그는 물었다.
“당신 이름이에요!” 부인은 베일을 벗어 던지며 말했다. “당신 이름이에요. 저만은 그 이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에드몽, 지금 여기 온 사람은 모르세르 부인이 아니에요. 메르세데스예요.”
“메르세데스는 죽었습니다.” 하고 백작은 대답했다. “그리고 전 그런 이름의 사람은 이제 모릅니다.”
“메르세데스는 살아 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요. 메르세데스만은 당신을 알아보았으니까요. 그뒤부터 이 메르세데스는 당신의 뒤를 밟고,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르세르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이 누구 때문인지 알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었던 거고요.”
“페르낭 야기시로군요.” 백작은 신랄하게 비꼬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기왕에 우리의 옛날 이름을 되찾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해 내시지요.” (P427-428)
"에드몽“ 여자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하나에라도 매달려보려고 하듯 간절한 심정으로 말했다. ”아아! 저는 당신을 에드몽이라고 부르는데, 당신은 왜 저를 메르세데스라고 불러주지 않으시나요?“
“메르세데스” 백작은 그 말을 되받아 이렇게 말했다. “메르세데스, 그래요. 과연 그 이름을 부르니 내 마음은 아직도 즐겁군요. 이 말이 입에서 이렇게 낭랑하게 울려나온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오, 메르세데스! 나는 슬픈 탄식을 할 때나, 괴로워 신음할 때나, 무서운 절망 속에서나 늘 이 이름을 불러왔습니다. 감방의 짚더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몸이 얼어붙어서도 이 이름을 불렀지요. 너무 더워서 바닥의 포석 위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이 이름을 불렀어요. 메르세데스, 나는 복수를 해야만 합니다. 난 십사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고통받았고, 십사 년 동안 울면서 저주했으니까요. 메르세데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해야만 합니다.”
그러고는 그처럼 사랑하던 여자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워 백작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여러 가지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에드몽! 복수하세요.” 하고 알레르의 불쌍한 어머니는 소리쳤다. “하지만 죄 있는 사람에게만 복수하세요. 그 사람과 저에게만 복수하시면 돼요. 그러나 제 아들에게까지 복수하시진 말아주세요.”
“성서에도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말했다. “<아비가 저지른 죄는 3대, 4대 뒤의 후손에까지 미치느니라>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이 이런 말씀을 예언자를 통해 쓰게 하셨는데, 어찌 내가 하느님보다 더 자비로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인간이 갖지 못하는 <시간>과 <영원>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P433-434)
“백작님” 알베르의 목소리는 처음엔 떨렸으나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는 백작님께서 에피루스에서 제 아버님이 저지른 일을 폭로한 것을 두고 비난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버지가 아무리 죄가 있다 하더라도, 백작님께 그를 벌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백작님께는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 이렇게 급히 사죄드릴 생각이 든 까닭은, 페르낭 몬데고가 알리 파샤를 배반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어부 페르낭이 당신을 배신하고 그 결과 당신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불행을 겪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큰소리로 성명하는 바입니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제 아버지에게 복수하신 것은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백작님께서 제 아버지에게 그 이상의 일을 안 하신 데 대해 자식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 뜻하지 않은 장면을 본 입회인들은, 벼락에 맞았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만큼 놀랐다. (P459)
[5]
그들은 이 초라한 사나이의 바로 코앞을 지나갔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그는 메르세데스의 비단옷이 몸에 스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 위에는 방금 아들이 한 말의 따뜻한 입김이 와 닿는 것 같았다.
“기운을 내세요. 어머니! 어서 가세요. 여긴 이젠 우리 집이 아니에요.”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고, 발걸음도 사라져갔다.
장군은 커튼을 움켜쥐며 몸을 세웠다.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서 동시에 버림받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울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윽고 마차의 철문 소리와 이어서 마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마침내 무거운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유리창을 흔들었다. 그는 침실로 달려갔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을 한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도 알베르도, 이 쓸쓸한 집과 버림받은 아버지이자 남편에게 마지막 눈길, 석별의 인사나 후회, 즉 용서해 주기 위해 마차의 창에서 고개 한번 내미는 일 없이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마차 바퀴가 대문의 포석 위를 구를 때, 한 방의 총소리가 울려나왔다. 이어서 폭발의 힘에 깨어진 장군의 침실 유리창으로 시커먼 연기가 새어나왔다. (P34-35)
“이유라고요?” 딸이 대답했다. “아, 그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못생겼다든지 불쾌한 인상을 준다든지 해서는 아니에요. 안드레아 카발칸티 씨는, 사람의 용모나 풍채만 보는 사람들 눈엔 충분히 훌륭하게 보일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그 사람보다 더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 건 여학생들이나 갖다 댈 이유지요. 전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그건 아버지도 아시죠? 전 도대체 왜 절대적인 이유도 없는데, 영원한 반려자라는 사람에게 평생 동안 방해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현인이 이렇게 말했지요. <여분의 것은 갖지 말라>고요, 이 두 가지 금언을 저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까지 배웠습니다. 하나는 분명 파이드루스의 말이고, 또 하나는 비아스의 말일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 저는 필요없는 점은 바닷물에 던져버릴 생각이에요. 인생이란 본래 우리들의 희망을 끊임없이 난파시키는 거니까요. 그저 그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만 가지고, 인생을 완전히 혼자 그러니까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가겠어요.” (P74-75)
객실 문 앞마다 경관이 두 사람씩 배치되었고, 허리에 휘장을 두른 경찰서장 뒤로 헌병이 당글라르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당글라르 부인이 악! 소리를 지르고 기절해 버렸다.
자기에게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당글라르는(이런 상황이면 꼭 마음이 편안치 못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손님들 앞에서 두려움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경찰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여러분들 가운데 누가” 경관은 백작의 말에는 대답도 않고 물었다. “안드레아 카발칸티라는 사람이죠?”
객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 안드레아 카발칸티가 어쨌단 말입니까?” 당글라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물었다.
“툴롱 감옥을 탈옥한 죄수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전에 같은 죄수였던 카드루스라는 자가,” 하고 경찰관은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댁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을 살해한 죄로 고발된 거요.”
몬테크리스오 백작은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았다. 이미 안드레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P102-103)
“발랑틴!”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가슴속까지 밀려왔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발랑틴!”하고 같은 목소리가 또 한번 불렀다.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발랑틴은 깨어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윽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발랑틴의 귀에는, 아까 비우고 난 컵 속에 물약을 붓는 소리만이 간신히 들렸을 뿐이다.
그러자 발랑틴은 용기를 내어 팔 밑으로 실눈을 떠보았다.
발랑틴의 눈에는 흰 실내복을 입은 여인이 병 속에 들어 있던 액체를 컵에 따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발랑틴은 아마도 숨을 멈추었거나, 아니면 잠깐 몸을 움직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여인이 돌연 동작을 멈추더니, 발랑틴이 정말 자고 있는가를 자세히 보려고 침대 위를 굽어보았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빌포르 부인이었다.
계모라는 것을 알아본 발랑틴은 몸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그 때문에 침대가 약간 움직였다.
빌포르 부인은 얼른 벽으로 가서 몸을 착 붙였다. 그리고 침대 커튼 뒤에 숨어 가만히, 주의 깊게 발랑틴의 거동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발랑틴은 백작의 그 무서운 말이 떠올랐다. 발랑틴에게는 병을 들지 않은 부인의 손에 길고 가는 단도가 번뜩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발랑틴은 모든 의지를 다 기울여 다시 눈을 감으려 애썼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그 작용도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강한 호기심은 어디까지나 눈을 감지 못하게 하고, 진실을 알아내려고만 애썼기 때문이다. 그러난 사이에 발랑틴의 숨소리가 다시 규칙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깊이 잠이 들었다고 생각한 빌포르 부인은, 다시 팔을 뻗어 침대 머리 맡으로 몰린 커튼 뒤에 반쯤 몸을 숨기고 발랑틴의 컵에다 병에 든 액체를 마저 따라놓았다.
그러고 나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나가버렸다. (P168-169)
“청년” 하고 그는 막시밀리앙에게 말했다. “당신은 발랑틴을 사랑한다고 말했소. 약혼자라는 말도 했고, 그러나 난 그런 사이인 줄을 모르고 있었소. 하지만 이 아이의 아비로서 약혼을 허락하여 주겠소. 당신의 슬픔이 그처럼 크고 진실된 것임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 말이오. 게다가 내 마음 역시 너무나 아파서, 화를 낼 기력조차 없소. 하지만 보시다시피, 당신이 바라던 천사는 이 세상을 떠났소. 아마 지금쯤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을 그애에겐 사람들의 사랑은 받아보았자 아무 소용 없는 거요. 자, 그러니 이애가 우리에게 남긴 이 슬픈 유해에 작별 인사나 해주시오. 그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던 이애의 손이나 마지막으로 잡아주고, 그걸로 영원히 작별 인사를 하오. 발랑틴에겐 이제 축복해 주실 신부님 외엔 아무도 필요없게 되었으니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하고 막시밀리앙은 한쪽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가슴에선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한 슬픔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당한 발랑틴에겐 신부님도 필요하지만, 원수를 갚아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빌포르 씨, 신부님을 부르러 보내십시오, 저는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하고 빌포르는 제정신이 아닌 막시밀리앙의 이러한 생각에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제 말은 이런 뜻입니다.” 하고 막시밀리앙은 대답했다. “당신은 두 가지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로서는 충분히 우셨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검사로서의 직무를 다해 주셔야겠다는 말씀입니다.”
누아르티에 노인의 눈이 빛났다. 다브리니는 좀더 가까이 다가섰다.
“빌포르 씨.” 하고 막시밀리앙은,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읽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하려는 얘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저와 똑같이 그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발랑틴은 살해당한 겁니다!” (P191-192)
“당신은 내가 아까 여기 들어오면서 <당신이 늘상 쓰는 독약을 어디다 두었느냐?>고 물은 말에 대답하지 않았소?”
부인은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경련적으로 두 손을 꽉 쥐었다.
“안 돼, 안 돼.” 하고 그녀는 울부짖었다. “당신 그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단두대에서 죽게 되는 일이야. 내 말뜻 알겠지?” 하고 빌포르가 대답했다.
“오! 여보, 제발!”
“내가 원하는 것은 정의가 이루어지는 거요. 이 세상에서의 내 사명은 처벌을 하는 것이오.” 빌포르는 눈에 불을 켜며 덧붙였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상대방이 비록 여왕이라 하더라도 난 사형 집행인을 보냈을 거야. 그러나 당신에게만은 인정을 베푸는 거요. 그럼 당신한테 말하지. 당신은 제일 마시기 쉽고 약효가 빠르고 확실한 독약을 몇 방울 가지고 있겠지?”
“오! 용서해 주세요! 절 제발 살려주세요!”
“비겁하군.” 빌포르가 말했다.
“난 당신의 아내잖아요!”
“당신은 사람을 독살한 여자야!”
“신의 이름으로.......!”
“안 돼!” (P298-299)
“확실히 저는” 하고 베네데토는 말을 이었다.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틈에서 행복하게 자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성이 바르지 못했던 저는 양모가 제 가슴에 심어주려고 애쓰신 모든 미덕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점점 나쁜 방면으로만 자라서 결국은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를 그처럼 나쁜 놈으로 만드시고, 제게 그런 고약한 운명을 내려주신 하느님을 저주하고 있자니, 제 양부는 저한테 와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 멍청난 녀석! 하느님을 저주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너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화를 내라고 보내신 건 아니니까말야! 죄는 네 아버지한테서 온 것이지, 너 자신한테서 온 게 아냐. 네가 죽으면 널 지옥으로 보내고, 혹시 기적적으로 살아나면 널 비참한 처지로 던져버리려던 네 아버지한테서 온 거란 말이다!> 그 다음부터 전 하느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제 아버지를 저주했지요. 그래서 아마 좀 전에도 재판장님께서 나무라신 그런 말을 제가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 결과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소름이 돋을 정도의 죄까지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또 하나의 죄가 된다면 절 처벌해 주십시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저의 운명이 불행하고, 괴롭고, 쓰고, 애처로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부디 저를 측은하게 여겨주십시오!”
“그렇다면 피고의 어머니는?” 판사장이 물었다.
“제 어머니는 제가 죽은 줄로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는 죄가 없지요. 전 어머니의 이름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 모릅니다.”
바로 그때 아까 기절했던 여자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 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 부인은 심한 신경성 발작을 일으켜 밖으로 실려나갔다. 밖으로 실려나가는 동안 그 부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꺼운 베일이 벗겨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여자가 당글라르 부인임을 알았다.
극도로 흥분하여 들뜨고 귀에서는 요란하게 윙윙 소리가 나고 일종의 광기로 정신이 나가 있으면서도 빌포르는 여자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섰다. (P320-321)
“네, 후회하지 않아요. 하지만 파리를 떠난다는 게......”
“만약 당신이 파리에 있는 것이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다면, 난 당신을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요.”
“파리에는 발랑틴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파리를 떠난다는 건 발랑틴을 두 번 잃는 게 됩니다.”
“막시밀리앙 씨.” 하고 백작은 말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친구들은, 지상에서 잠들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묻혀 있지요. 그건 우리가 항상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에서 비롯된 겁니다. 제게는 그렇게 해서 늘 가슴속에 있는 사람이 둘 있지요. 한 사람은 제게 생명을 주신 분, 또 한 사람은 제게 지혜를 주신 분입니다. 그 두 분의 정신이 제 안에서 살아 있는 겁닏. 저는 무엇인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에는 그 두분과 의논을 하지요. 그러니 제가 전에 무엇인가 좋은 일을 했다면 그건 그 두 분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막시밀리앙 씨, 자, 마음속의 목소리와 한번 의논해 보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언짢은 얼굴을 나에게 보여도 괜찮을지 한번 물어보세요.”
“백작님.” 하고 말시밀리앙은 대답했다. “제 마음속의 목소리는 너무나 슬픕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게는 불행한 일밖엔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네요.”
“매사를 검은 베일을 통해서 보는 듯 어둡게만 보는 것은, 마음 약한 사람들의 특징이죠. 마음 자체가 마음에 한계를 그어 놓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둡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으로 내다보는 하늘도 컴컴할 수밖에요.”
“그건 사실일지도 모르죠.” 막시밀리앙이 대답했다. (P349)
“지난 일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잘못했다고만 볼 수는 없지.”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목적지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그럴 수가 있나! 그렇다면, 십년 동안 걸어온 길이 다 잘못된 길이었단 말인데! 그럴 수가 있나! 겨우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모든 희망을 걸고 쌓아온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내 판단에서 부족한 점은, 내 과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과거를 멀리서 되돌아보고 있는 거니까. 그렇다. 과거란 세월이 흐르면, 마치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과 같이,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가는 법. 나는 마치 꿈속에서 몸을 다친 사람들과도 같다. 그들은 그 상처를 보고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이 언제 생겼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자, 다시 태어난 인간이여, 억만장자여. 잠에서 깨어난 인간이여, 이 새상 밖을 내다보는 강한 자여, 여기서 잠깐 저 비참함과 굶주림 속에서 지낸 암담한 생활을 상기하라! 숙명의 힘에 쫓기고 불행에 밀려 절망만으로 가득 찼던 길을 돌이켜보라! 지금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당테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거울 속에는 다이아몬드와 황금과 행복이 너무나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감추고, 황금에 흙탕을 묻혀 광채를 지워라. 그리고 부를 지닌 자여, 굶주리던 지난날을 생각하라. 자유로운 자여, 지난날 죄수 시절을 생각하라. 다시 소생한 자여, 시체와 같았던 지난날을 기억하라.“ (P365-366)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고통과 기쁨의 비밀이 있겠지요. 그 모든 것을 다 알아야겠지요.”
“맞습니다. 막시밀리앙 씨, 당신은 지금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그것을 잘 다루느냐 못 다루느냐에 따라, 때로는 유모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친구도 될 수 있고, 때로는 우리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난폭하게 앗아가는 적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천년쯤 지난 후에 인간이 자연의 모든 파괴력을 정복하여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이용하게 된다면, 그리고 방금 당신이 한 말대로 인간이 죽음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면, 죽음은 아마 연인의 팔에 안겨 단잠에 들 듯 조용하고 행복한 것이 될 거예요.”
“그런데 백작님, 당신께서는 죽고 싶을 때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막시밀리앙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P436)
친애하는 막시밀리앙 씨
두 분을 위해서 돛단배 한 척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자코포에게 두 분을 리보르노까지 모셔드리라고 일러놓았습니다. 거기 가시면, 누아르티에 노인께서 두 분의 결혼식에 앞서, 발랑틴 양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 동굴 안의 모든 것과 샹젤리제의 저택 그리고 트레포르의 조그만 내 집은 모두, 에드몽 당테스가 옛날 선주셨던 모렐 씨의 아드님께 드리는 결혼 선물입니다. 발랑틴 양은 그 선물의 반을 받아주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놓아버린 그녀의 부친과, 지난 구월 새어머님과 함께 죽은 동생으로부터 받게 되실 전 재산을, 파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증해 주셨으면 하는 뜻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막시밀리앙 씨, 앞으로 당신의 인생을 보살펴줄 천사에게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때로는 악마처럼 자신과 신이 대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오직 신만이 지고의 힘과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 한 사나이를 위해 가끔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 기도는 분명 그의 가슴속 깊이 사무친 회한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막시밀리앙 씨, 내가 왜 당신에게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그 비밀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상태와 다른 상태와의 비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한 자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막시밀리앙 씨,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번 죽으려고 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분은 부디 살아서 행복해지십시오.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밝혀주실 그날까지 인간의 모든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당신의 친구, 에드몽 당테스
몬테크리스토 백작. (P448-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