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딩턴> 2015년
<패딩턴 2>(2018)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의 '내 이름은 패딩턴' 소설이다. 3500만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40개국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75년에는 영국에서 56부작 TV시리즈로 방송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패딩턴 프랑스에 가다', 1999년 '내 이름은 패딩턴' '패딩턴의 생일파티' '패딩턴의 페인트칠 소동', 2014년 '패딩턴, 도와줘!' '사랑스러운 패딩턴'등의 시리즈가 출간된 바 있다. 패딩턴은 감독 폴 킹, 출연 니콜 키드먼·벤 위쇼(패딩턴 목소리)·휴 보네빌·샐리 호킨스·매들린 해리스·사무엘 조슬린·피터 카팔디·줄리 윌터스가 열연했다.
브라운 씨 부부가 패딩턴을 처음 만난 것은 어느 기차역 플랫폼에서였다. 사실 패딩턴이 곰치고는 희한한 이름을 갖게 된 까닭도 그 때문이다. 패딩턴은 그 기차역의 이름이었으니까.
브라운 씨 부부는 방학을 보내러 집으로 돌아오는 딸 주디를 패딩턴 역으로 마중 나온 참이었다. 그날은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고, 기차역은 바닷가로 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기차들은 줄곧 콧노래를 불렀고, 스피커는 계속해서 윙윙 울어 댔으며, 짐꾼들은 서로에게 뭐라고 소리치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주위가 워낙 시끄러웠던 탓에, 패딩턴을 먼저 발견한 브라운 씨가 몇 번이나 거듭해서 이야기를 한 뒤에야 가까스로 부인은 브라운 씨의 말을 알아들었다.
브라운 부인은 깜짝 놀라 남편을 바라보았다.
“곰이라고요? 패딩턴 역에서요? 엉뚱한 소리 하지 말아요. 헨리. 그럴 리가 없잖아요!”
브라운 씨는 안경을 고쳐 썼다.
“하지만 있어요. 내가 언뜻 봤는걸. 저기, 그러니까 자전거 매어 두는 곳 근처였소. 우습게 생긴 모자 비슷한 걸 쓰고 있었는데.” (P7-8)
곰은 대답하기 전에 먼저 주위를 살펴보았다.
“페루 깊은 숲 속이에요. 전 사실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밀항을 했거든요.”
브라운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쪽을 흘끔거리며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밀항을 했다고?”
“네, 전 이민을 온 거예요.”
곰의 눈에 슬픈 기색이 어렸다.
“전 페루에서 루시 고모랑 같이 살았는데, 고모가 은퇴한 곰들을 위한 요양소로 들어가셔야 했거든요.”
브라운 부인은 깜짝 놀라 물었다.
“설마 페루에서 여기까지 너 혼자서 왔다는 말은 아니겠지?”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 고모는 제가 자라면 이민 가길 바란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한테 영어를 가르쳐 주셨죠.” (P12)
곰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전 마멀레이드를 먹었어요. 곰들은 마멀레이드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구명정에 숨어 있었어요.”
브라운 씨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거냐?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무턱대고 패딩턴 역에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곰은 허리를 굽히고 다시 가방을 닫았다.
“아, 전 괜찮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사이에 브라운 부인은 언뜻 곰의 목에 달린 꼬리표에 쓰인 글을 읽었다. 꼬리표에는 간단히 이렇게만 씌어 있었다.
이 곰을 돌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P13)
“괜찮아, 아주 중요한 이름이니까. 패딩턴이라고 불리는 곰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을걸.”
패딩턴은 알 수 없었겠지만, 바로 그때 주디도 브라운 씨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브라운 가족은 식당에서 한창 협상을 벌이는 참이었고, 브라운 씨는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고 있었다. 패딩턴을 데리고 살자는 생각은 처음에 주디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하지만 주디는 조나단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엄마까지도 자기 편으로 끌어넣었다. 조나단은 패딩턴을 본 적도 없으면서도 집에서 곰을 키운다는 생각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그것은 아주 근사하고 멋진 일처럼 들렸으니까.
브라운 부인이 주장했다.
“어쨌든 헨리, 이제 와서 그 앨 쫓아낼 수는 없어요, 그건 옳지 못한 일이에요.”
브라운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P43)
“자, 패딩턴, 이제 우리한테 너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려무나. 영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도 다 얘기하고.”
패딩턴은 자기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수염에 묻은 버터를 조심스럽게 닦아 내더니, 두 앞발을 머리 뒤에 괴고 불 쪽으로 발을 쭉 뻗었다. 패딩턴은 청중을 좋아했다. 특히나 따뜻하고, 정말 좋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더욱더 그랬다.
“저는 페루의 깊은 숲 속에서 자랐어요. 루시 고모가 키워 주셨죠. 고모는 지금 리마에 있는 은퇴한 곰들을 위한 요양소에 계세요.”
패딩턴은 생각에 잠기는 듯 눈을 감았다. (P59)
“우리가 널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개는 안고 타시오.’라고 씌어 있기는 하지만 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는데.”
패딩턴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패딩턴은 꿈속에서처럼 그저 두 사람 뒤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워낙 작은 곰이라서 어디를 넘겨다본다는 것이 패딩턴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다가 넘겨다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 패딩턴은 신이 나서 하마터면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휙휙 올라오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이 휙휙 내려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섰을 때에 패딩턴은 우산을 든 산 신사와 커다란 쇼핑백을 든 부인 사이에 끼여 있었다. 패딩턴이 간신히 두 사람 사이에서 빠져나와 보니 브라운 부인과 주디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패딩턴의 가장 놀라운 표지판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패딩턴은 확실한지 알아보려고 몇 번이나 눈을 떴다 감았다 해 보았지만 눈을 뜰 때마다 표지판에 쓰인 글은 번번이 똑같았다.
패딩턴 방향은 황색 등을 따라가시오.
패딩턴은 지하철역이 자기가 갈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장소라는 생각을 굳혔다. (P74-75)
그루버 씨는 자랑스레 말했다.
“자, 이게 내가 말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언제나 보이는 그대로는 아니라는 뜻이야. 난 자네 생각이 마음에 들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브라운 군?”
패딩턴은 얼마나 우쭐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 그림은 배처럼 보이지만도 않았고 그렇다고 젊은 숙녀처럼 보이지만도 않았다. 패딩턴은 자기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루버 씨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아, 지금은 그렇지! 허나 내가 깨끗이 지울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게! 아주 오래전에 50펜스를 주고 샀을 때에는 그저 항해하는 배 그림이었어. 헌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할 수 있겠나? 언젠가 내가 그림을 닦고 있는데 갑자기 그림 전체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더니만 그 아래에 다른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야.”
그루버 씨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몰라. 허나 나는 이 아래쪽에 있는 그림이 꽤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건 아마도 ‘옛 걸작’ 가운데 하나일 게야.”
그루버 씨는 여전히 헷갈리는 표정을 하고 있는 패딩턴을 보자, 예전에는 화가가 돈이 떨어지거나 너무 가난해서 캔버스를 살 수가 없으면 때때로 옛날 그림들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때로는, 무척 가끔씩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그림 밑에 묻혀 있던 옛 그림이, 훗날 아주 유명해진 화가의 작품이란 게 밝혀지면서 어마어마하게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위에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아무도 그 화가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고 말했다.
패딩턴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굉장히 복잡하게 들리네요.” (P126-127)
집에 도착하자 패딩턴은 이 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워서 한참 동안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패딩턴이 이 층에서 아주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자, 버드 부인은 걱정이 되어 패딩턴이 괜찮은지 보려고 문을 빠끔히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패딩턴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주 좋아요. 그냥 생각 좀 하고 있는 중이에요.”
버드 부인은 문을 닫고서 허겁지겁 아래층으로 내려 가서 다른 식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 소식을 듣고 식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브라운 부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애가 그냥 생각만 하고 있다면 신경 쓸 일 없겠죠. 하지만 그 애가 뭔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P128-129)
단상 위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이젤 위에 올려진 그림은 바로 “패딩턴의” 그림이었다!
패딩턴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그 사람이 말하는 얘기의 부분 부분만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탁월한 색채의 선택과.......”
“...... 몹시 특출한........”
“.......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 화가에게는 영예의.......”
그러고 나서 패딩턴은 하마터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고꾸라질 뻔했다.
“일등 상은 윈저 가든 32번지의 헨리 브라운 씨입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패딩턴뿐만이 아니었다. 부축을 받아 단상 위로 올라가는 브라운 씨는 꼭 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브라운 씨는 우물거렸다.
“하지만...... 하지만...... 저 뭔가 실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기다란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말했다.
“실수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성함이 캔버스 뒤쪽에 씌어 있어요. 브라운 씨가 아니십니까? 선생님이 헨리 브라운 씨지요?”
브라운 씨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제 이름이 뒤쪽에 있고, 제 글씨이기는 합니다만........” (P140-141)
놀라움 섞인 웅성거림이 관중들 사이에서 일었지만 패딩턴의 머리 위로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물론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그 까닭을 알았다면 패딩턴으로서야 무척 기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패딩턴은 지금 자기 그림과 특히 기다란 턱수염을 기른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남자는 얼굴이 벌게지더니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패딩턴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이 그림을 똑바로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림 대회에서 곰이 일등 상을 받는 일이 날마다 있는 일은 아니잖아!” (P142)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친절한 박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진심으로 기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떠나시기 전에 저는 우리 극단의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중요한 단원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주 어린....... 그러니까 곰입니다. 이 곰이 우리를 구하러 와준 덕분에......”
셜리 경의 나머지 연설은 흥분한 웅성거림에 묻혀 버렸다. 셜리 경은 무대 앞쪽까지 걸어나왔다. 그곳에는 조그만 막이 프롬프트 박스에 뚫린 작은 구멍을 가리고 있었다.
셜리 경은 패딩턴의 앞발 한쪽을 잡아당겼다. 구멍으로 패딩턴의 머리가 비죽 비어져 나왔다. 패딩턴의 다른 쪽 앞발에는 대본 한 부가 꼭 쥐어져 있었다.
셜리 경이 말했다.
“자, 패딩턴, 나와서 인사드려야지.”
패딩턴은 숨을 할딱거렸다.
“그럴 수가 없어요, 끼인 것 같거든요.” (P168-169)
“난 우리 모두가, 자네가 앞으로 더욱더 행복한 생일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확신하네!”
모두들 입을 모아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 브라운 씨는 일어서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자, 이젠 잠자리에 들 시간이 꽤 지났군요. 패딩턴, 우리 모두가 사라지기 묘기를 부리면 어떨까?”
패딩턴은 문 앞에 서서 모두에게 잘 가라고 앞발을 흔들어 주면서 이야기했다.
“루시 고모가 지금 절 보셨으면 참 좋았을 거예요. 무척 기뻐하셨을 텐데.”
브라운 부인은 패딩턴의 앞발을 꼭 잡았다.
“고모한테 편지를 써서 모두 말씀드리렴.”
그러고서 부인은 서둘러 덧붙였다.
“내일 아침에 말이야. 오늘 시트를 깨끗한 새것으로 갈았다는 것 잊지 말아라.”
패딩턴이 말했다.
“네, 아침에요. 지금 하면 아마 시트랑 여기저기를 잉크투성이로 만들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은 꼭 그러니까요.”
브라운 씨 부부는 잠자리에 들려고 계단을 올라가는 패딩턴을 지켜보았다. 패딩턴은 졸립다기보다는 좀 끈적끈적해 보였다.
브라운 부인은 말했다.
“여보, 헨리, 꼬마 곰과 함께 산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죠?”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