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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과극(白駒過隙)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48

by 노용헌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언뜻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흰 말이 달려 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모든 사물은 물이 솟아나듯 문득 생겼다가 물이 흐르듯 사라져 가는 것이다. 즉 사물은 모두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서 다시 변화에 따라 죽는 것이다.[人生天地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流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生].”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에서 노자가 공자에게 한 말이다.

초점스크린.jpg

<백구과극>이란 말에서 사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사진가는 순식간의 찰나의 순간을 고정하는 작업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말처럼 결정적 순간은, 사진가의 입장에서이다. 우리는 순간의 의미를 과연 <결정적 순간Images à la sauvette>으로 볼지, 제프 다이어의 <지속적인 순간Ongoing Moment>으로 볼지 생각의 여지를 가진다. 물론 사진가는 클레이 사격(shotgun shooting)을 하는 사격선수와 닮아 있다. 날아가는 물체를 또는 대상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에게는 어떤 장면을 포착한다는 것이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하는 <백구과극>의 상황인 셈이다. 사진가의 초점스크린과 사격의 표지판은 닮아 있다. 사격선수가 정확한 목표물을 겨냥하거나, 양궁선수가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듯, 사진가는 프레임안에서 초점을 맞춘다.


“우연은 우연이 아닌 게 될 때까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나? 얼마 동안이 순간이고, 지속되는 순간인가?”

-제프 다이어, 지속의 순간들-


사진가는 시간의 단편들을 짧은 순간에 포착하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며, 남겨진 사진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부식되고, 미라화되어 지속되려는 속성을 가진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간에, 시간이 지나면 사진가가 담은 순간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기능으로서든,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으로서든, 사진은 무언가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사진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는 사진에 찍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애감을 띠게 된다. 추하거나 기괴한 피사체조차도 사진작가의 눈길이 닿으면 그때부터 고귀해지기에 감동을 줄 수도 있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

-수잔 손탁, 사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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