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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l 27. 2024

무라카미 류의 <69 식스티 나인>

영화 <69 식스티 나인>  2005년

<69 식스티 나인>(69, 69 Sixty Nine)은 일본에서 제작된 이상일 감독의 2004년 드라마, 코미디 영화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을 각색한 영화이다. 츠마부키 사토시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콘도 마사타케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의 성적은 끝없이 하강해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모의 이혼, 동생의 갑작스런 자살, 니체에 대한 지나친 경도, 불치병에 걸린 할머니 때문, 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공부가 싫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당시는 시험공부를 하는 놈은 자본가의 앞잡이라는 편리한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공투(60~70년대의 일본 학생운동조직)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도쿄대학의 입시를 중지 시켜버릴 정도의 힘은 발휘하고 있었다.

뭔가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입학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되며, 차라리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P9) 

    

“잠깐만, 나 카레빵 하나 사올게.”

나는 긴팔원숭이 우리 앞에서 아다마의 도시락을 눈이 빠지게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반씩 나눠 먹는 게 어때.”

아다마는 너무도 메이드 인 하숙집다운, 반찬 없는 도시락 밥을 반으로 나누어 뚜껑에 담아주었다. 학교에서 동물원까지 버스비까지 내게 하고, 지금쯤 교실 유리창을 닦고 있었을 착실한 아다마의 도시락까지 뺏어 먹는다는 것이 도저히 양심에 걸려 단호하게 사양했다, 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사실은 세 개나 되는 어묵을 나에게는 하나밖에 주지 않는 아다마에 대해, 이 자식 짠돌이 아냐, 나중에 의사가 되는 것보다 신용금고 직원이 되는 게 더 나을지 몰라, 하고 생각하면서 삼 분 만에 뚝딱 먹어치웠다.         (P13)    

 

“이미 문학이나 영화 따위는 고리타분해. 죽었어.”

“영화도?”

“그래. 영화도 이미 죽었어.”

“그럼 뭐가 있는데?”

“페스티벌. 영화, 음악, 연극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거지. 몰라?”         (P16~17)  

   

겨울방학이 끝나자, 체육시간에는 오로지 로드레이스 연습만 했다. 1학년 때, 나는 가와사키 선생에게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었다. 뛰다가도 갑자기 걸어버리는 나를 보고 가와사키 선생은 인간쓰레기라고 했다.

“잘 들어, 달리기는 모든 스포츠의, 아니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행위의 기본이야. 마라톤을 인생에 자주 비유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야자키, 너는 폐활량이 6100이나 되는데도 늘 허우적거리기만 하고, 한 번도 완주하는 것을 보지 못했어. 네놈은 쓰레기다.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다섯 소년에게 ‘인간쓰레기’ ‘인생의 낙오자’라고 해도 좋단 말인가? 그것이 과연 교육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P24)    

 

“카즈코에게 손대면, 겐! 아무리 너라 해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시로쿠시 유지는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다마가, 유지 그만둬, 하고 말하자 금방 멱살을 놓으면서, 농담, 농담도 못 하니, 하고 웃었다. 아다마는 설명했다.

“유지, 잘 들어, 겐은 사실 영화를 찍고 싶어해. 저번에 마스가키에게 8밀리 카메라 빌렸잖아, 그 카메라로 영화를 찍으려는 거야.”

“영화? 그게 뭔데? 카즈코와 무슨 관계가 있는데?”

“그러니까 마츠이 카즈코를 주연 여배우로 할 생각이란 말이야” 하고 나는 표준어로 엄숙하게 선언했다. 

“유지, 북고 학생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북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야. 그런 역사적인 영화를 찍는데 누구를 주연으로 하겠어? 마츠이 카즈코를 주연으로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를 주연으로 하겠니?” 하고 아다마는 멋들어지게 유지를 설득해버렸다. 시로쿠시 유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P41) 

    

요시오카 선생은 당황하고 있었다. 시골 선생은 반항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단순한 불량아는 두들겨 패주면 되지만, 이런 경우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신문부 고문선생에게 보고할 테다.”

“선생님은 전쟁이 좋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요시오카 선생의 젊은 시절은 전쟁시대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안색이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쟁은 편리하다. 선생과 토론을 벌일 때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다. 전쟁은 부도덕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선생이다보니, 자연히 입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런 대화가 시작되면 반드시 도망친다.

“야자키, 돌아가. 여긴 지금 바빠.”

“전쟁을 싫어하세요?”

요시오카 선생은 예술파였다. 몸집도 크지 않다. 군대에도 갔을 것이다. 군대에서 많이 당할 그런 타입이다.

“싫어한다면 반대해야지요. 비겁합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P47)    

 

일어서 어어어엇! 하고 그가 외쳤다. 사람을 자빠뜨려놓고 일어서라는 건 또 뭐야, 화가 치밀었지만 뭉개진 귀와 내려앉은 코를 보는 순간 나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섰다. 이 자식, 선생님께 무슨 말버릇이 그래애애애애, 하고 다시 내 뺨을 후려쳤다. 손바닥이 두툼하고 딱딱해서 소리도 잘 난다. 야자키, 주둥이 하나는 잘 놀리는 것 같은데, 달리기도 못하는 주제에 입만 살아가지고........ 이것은 가와사키 선생의 대사다. 왜 하필이면 이런 때 로드레이스 이야기가 나와야 한단 말인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렇지만 울었다가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마츠이 카즈코가 보고 있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아이하라 선생은 빙긋이 웃고 있다. 아이하라 선생은 똥통 대학을 나온 콤플렉스 때문에 우리 같은 학생들을 두들겨 패는 것을 너무너무 즐긴다. 시로쿠시 유지 패거리도 아이하라 선생의 표적이었다. 유도 수업 중에 조르기를 당한다든지, 귀를 잡고 다리를 건다든지. 힘센 선생은 역시 강하다. 나는 머리카락이 잡힌 채 교무실 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시로쿠시 유지, 아다마, 이와세는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P49)  

   

문제는 여자다. 탈락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암컷을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상대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암컷이 문제였다. 암컷에게 잘 보일 수 없을 때, 남자들은 살 맛을 잃고 마는 것이다.               (P60)     


규슈의 고등학교에서 바리케이드 봉쇄를 하는 학생은 아직 없다. 나가사키대학에서도 한 적이 없다. 규슈 서쪽 귀퉁이의 시골 학교에서는 전공투, 바리케이드, 고다르, 레드 제플린과 같은 말들이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내 말에 놀랄 수밖에.

“알았지? 난 결정했어. 7월 19일 종업식 때, 옥상을 바리케이드 봉쇄한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건 무리다, 너무 심하다, 하고 헬멧이 말했다.

“어이, 당신은 입 다물어, 이건 어디까지나 북고의 문제니까, 바리케이드 봉쇄도 하지 않는 나가사키대학하고는 관계없어.”

마스가키를 비롯한 2학년들은 존경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아직 열 명도 안 되는 조직이야. 바리케이드 봉쇄를 했다가는 금방 퇴학당하고 말 거야. 일을 벌이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 수도 있어.”           (P68)   

  

투쟁은 구체적인 요구가 있는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어. 인민은 구체적인 투쟁 테마에다 자신들이 품은 불만을 기대어 표현하니까.            (P70)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나는 하얀 천에 빨간 페인트로 썼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작전 결행 사흘 전 점심시간, 이와세가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나와 아다마를 찾아왔다. 규슈의 태양이 그려내는 여름의 짙은 나무 그림자 아래서 이와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와 바리케이드 봉쇄는 어울리지 않아, 미안해 겐, 아다마, 준비하는 것도 도울 거고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생각이지만 바리케이드 봉쇄는 별로 좋아하지........ 겐, 너는 정치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오로지 남의 눈에 띄고 싶어서 바리케이드 봉쇄를 하려는 거지? 라고 말하는 듯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P88)    

 

달빛이 무척 밝게 느껴졌다. 학교에 이르는 길이 무척 신선했다. 시간과 목적이 달라지면 풍경을 느끼는 감정도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았다.               (P93)   

  

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삼 초 만에 바지를 입고, 사 초에 셔츠를, 이 초에 양말을 신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더욱더 나의 결백을 믿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뒤로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와, 밥 안 먹어, 다녀올게-요, 라는 말을 던지면서 100미터를 달리듯 전력으로 질주했다.

북고가 보이는 언덕 아래로 내려오니 저 멀리 플래카드가 보였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감동했다. 우리의 힘으로 너무 낯익어 지겨운 풍경을 바꾸어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P103)  

   

체제는 풍경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한다. 매스컴이 두렵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교의 풍경을 한순간이라도 빨리 원상 복귀하려 했다.

예상 외로 많은 학생들이 걸레를 들고 낙서를 지우려 애를 쓰고 있었다. 현관 앞의 살(殺)이라는 빨간 페인트를 지우던 학생회장이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빨간 페인트를 지우며 울고 있던 그 녀석이 갑자기 걸레를 든 손으로 나의 멱살을 잡고 외쳤다.

“야자키, 설마 네놈은 아니겠지, 응? 네가 한 짓은 아니겠지? 북고생이 북고를 더럽히는 짓은 하지 않겠지? 야자키, 대답해, 대답해! 아니라고 대답하란 말이야.”

차가운 걸레가 목에 닿아 기분이 나빴다.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소동을 일으키면 남의 이목을 끌 것 같아 참으면서, 이 손 놔! 하고 노한 음성으로 외치며 학생회장을 노려보았다. 왜 내가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경을 끼고, 키가 작고, 뻐드렁니가 난 데다 열일곱 고등학생 주제에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학생회장. 네놈은 모교 현관에 빨간 페인트로 글이 적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울먹인단 말이냐?           (P112)   

  

형사는 언제나 갑자기 나타난다.

“나는 형사입니다. 지금 당신을 체포하러 갈 테니 꼭 집에 있어주세요. 그럼 안녕” 하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형사의 방문을 받아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즉, 불행이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는 중요한 사실 말이다. 행복은 그 반대다. 행복은 베란다에 있는 작고 예쁜 꽃이다. 또는 한 쌍의 카나리아다. 눈앞에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P115)   

  

형사는 언제나 갑자기 나타난다..... 형사의 방문을 받아 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즉, 불행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는 중요한 사실 말이다. 행복은 그 반대다. 행복은 베란다에 있는 작고 예쁜 꽃이다. 또는 한 쌍의 카나리아다. 눈앞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P123)  

    

마츠이 가츠코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선생과의 굴욕적인 대화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화가 치민다. 놈들이 주장하는 유일한 이상은 ‘안정’이다. 즉, ‘진학’, ‘취직’, ‘결혼’이다. 놈들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구역질 나는 전제조건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한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진흙 상태와도 같은 고교생들에게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             (P141)   

  

우리가 이렇게 맥이 빠져 있는 것은 내일로 다가온 처분 발표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학생의 매스게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빠진 탓도 있는 것이다.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P146)   

  

“야자키는 아직 이런 말을 이해 못할지 모르겠지만, 난 사범학교 시절에 큰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았지. 내 가슴은 상처투성이라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야. 의식불명이 되기도 했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인간은 무슨 일에든 익숙해지게 마련이야. 수술에도, 마취에도, 의식불명에도 익숙해진 거야. 그래서 나는 무슨 일에든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 이를테면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칸나가 아름답게 피지 않니, 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모든 것을 체념할 수 있게 되었어.              (P155-156)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도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나 소, 돼지도 어릴 때는 그냥 놀면서 지낸다. 북경요리의 돼지새끼 통구이용 돼지새끼만 빼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P160)   

  

“아다마, 그건 아니야. 내 자신이 싫어졌을 뿐이야.”

나와 아다마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신이 싫어졌다. 그것은 열일곱 살 소년이 여고생에게 사랑을 구걸할 때 이외에는 결코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될 대사다. 누구든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경제력도 없고 아내도 없는 지방도시의 이름 없는 열일곱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선별되어 가축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귀로에 선 순간이므로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면, 그 후의 인생이 어두워질 뿐이다.           (P204)     


이와세의 말이 옳았고,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이 반드시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는 것만은 아니다.             (P217)      

1969년, 열일곱의 나이로 ‘아침에 서는 축제’를 벌인 때는 물론이고, 서른두 살 소설가인 지금도 나는 내내 축제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세 살배기 아이를 사로잡은 큰북의 울림은 1950년대의 재즈와 1960년대의 록으로 이어지고, 지구의 반대편까지 카니발 견학을 다니게 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즐기자는 것이 아닐까?              (P237~238)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싸움이다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작가의 말 에서,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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