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원더> 2022년
<더 원더>(The Wonder)는 2022년 개봉한 드라마 영화이다. 세바스티안 렐리오가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았다.
길은 중간중간 갈라져 마을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지붕들 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리브가 가야 하는 마을은 아닌 모양이었다. 리브는 마부에게 여정이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아직 멀었다는 대답을 들을까 봐 이제 와서 묻고 싶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수간호사에게 들은 말이라고는 2주간 개인적으로 환자를 돌봐줄 능숙한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일당은 물론이고 아일랜드를 오가는 비용과 생활비까지 모두 제공된다고 했다. 리브는 오도널 가족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더 유능한 간호사를 찾아 영국까지 사람을 보낼 정도면 재력이 있는 가족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환자를 정확히 2주만 돌보면 된다는 걸 가족이 어떻게 아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리브는 그저 임시로 다른 간호사를 대신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리브는 수고에 대한 보수를 넉넉히 받을 것이다.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좋았다. 병원에서는 인정받는 만큼이나 욕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밥 먹이기, 붕대 갈기, 침대 정리하기처럼 아주 기본적인 기술만 요구됐다.
리브는 망토 아래에서 시계를 꺼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런다고 시간이 더 빨리 가지도 않을뿐더러 시계에 비가 들어 갈 수도 있었다. (P11)
습한 지역이니 폐결핵일 가능성이 높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픈 건 아닙니다. 라이트 씨가 할 일은 그저 아이를 지켜보는 거예요.”
묘한 동사 선택이었다. “제인 에어” 속 그 끔찍한 간호사도 미치광이를 계속 다락에 숨겨두는 일을 맡았다.
“제가 여기 온 이유가....... 감시를 위해서라고요?”
“아니요, 그냥 관찰하는 겁니다.”
하지만 관찰은 퍼즐의 첫 번째 조각일 뿐이었다. 나이팅게일 선생님은 간호사들에게 환자를 잘 지켜봐야 환자에게 필요한 걸 이해하고 제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약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의사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선생님이 말한 요소들도 환자의 회복에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빛, 공기, 온도, 청결, 휴식, 위안, 영양, 그리고 대화.
“그 말씀은........”
“아직 이해를 못 한 것 같네요. 제 잘못입니다.” 맥브리어티는 힘이 빠지는 듯 세면대 끄트머리에 몸을 기댔다.
리브는 노인에게 의자를 양보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노인이 불쾌해할까 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의사가 말을 이어갔다. “어떤 식으로든 편견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아주 특이한 사례예요. 애나 오도널은…… 아니, 그 아이 부모는 애나가 열한 살 생일 이후로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리브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어디가 아픈가 보네요.” (P20)
“아이에게 단식의 위험성은 충분히 설명해주셨겠죠?” 리브가 물었다.
“물론이죠. 아이 부모도 처음부터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애나는 요지부동이에요.”
리브는 정말 한 아이의 변덕 때문에 바다 건너까지 끌려온 것일까? 오도널 가족은 분명 아이가 아침 식사에서 고개를 돌린 첫날 잔뜩 겁에 질려 런던으로 전보를 쳤을 것이다. 그냥 아무 간호사가 아니라 새로 부임한 완벽한 간호사를 보내달라고. 나이팅게일의 제자를 보내달라고!
“아이 생일이 언제죠?” 리브가 물었다.
맥브라이어티는 구레나룻을 잡아당겼다. “4월이었어요. 넉 달 전 바로 오늘요!”
만약 제대로 훈련받지 않았다면 리브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선생님, 그럼 그 아이는 지금쯤 죽었어야 말이 돼요.” 리브는 의사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호응해주길 기다렸다. 그 마음 안다는 듯 윙크를 한다거나, 코를 두드린다거나.
의사는 고개만 끄덕였다. “엄청난 수수께끼죠.”
리브는 의사의 단어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아이가 병상에 누웠나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애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잘 걸어 다닙니다.”
“야위었나요?”
“원래 체구가 작긴 하지만, 아니요. 4월 이후로 달라진 점은 거의 없습니다.”
의사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의사의 눈곱 낀 눈이 반쯤 멀어버린 걸까?
“신체 기능도 모두 정상입니다. 사실 활력이 너무 좋아서 오도널 가족은 애나가 음식없이도 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맥브리어티가 덧붙였다.
“굉장하네요.” 말이 너무 비꼬듯 나와버렸다.
“의심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라이트 씨.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랬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 모든 이야기가.........” (P22-23)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리브는 보모 겸 감시자로 일하기 위해 그 먼 길을 온 것이었다. 고작 동네 의사 한 명의 금 간 자존심 때문에. 왜 일을 수락하기 전에 수간호사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을까? (P25)
“어제로부터 4개월 전인 4월 7일. 그날 아침부터 주님의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어요.” (P42)
방문객은 모두 나가면서 금고 구멍에 돈을 넣었다. 몇몇 사람의 동전 소리는 리브 귀에 유독 크게 들렸다. 이 여우 같은 꼬마가 십자가 조각상이나 돌기둥 유적처럼 꽤 돈이 되는 명물인 듯했다. (P47)
“전혀 아니야, 애나. 내 역할은 네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거야. 하지만 네가 다른 아이처럼...... 아니, 다른 사람처럼 식사를 한다면 내 마음은 훨씬 편해질 거야.”
끄덕
“먹고 싶은 게 하나라도 있니? 수프든 푸딩이든 단 음식이든.”
리브는 감시 결과에 영향을 끼칠 방식으로 음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립적인 질문만 하고 있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왜 괜찮아?”
옅은 미소,
“그건 말 못 해요, 부인.... 선생님.” 애나가 고쳐 말했다.
“왜? 그것도 혼자 알아야 하는 거야?”
아이는 부드럽게 리브를 마주 보았다. 리브는 그 눈빛이 핀처럼 날카롭다고 생각했다. 애나는 어떻게 설명하든 자신이 곤란해지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조물주로부터 단식을 명받았다고 주장하면, 자신을 성인에 비유하는 셈이 된다. 반면 특별한 자연적 수단으로 살고 있다고 자랑하면, 그 사실을 증명해 과학계를 만족시켜야 한다. 호두를 깨듯 네 속을 낱낱이 파헤쳐줄게, 꼬마 아가씨.
리브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까지는 애나가 밤사이 바로 옆에 있는 부엌에서 음식을 슬쩍하거나 어른 중 한 명이 다른 사람 모르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을 것이다.
“너의 가정부는.........”
“키티 언니요? 우리 사촌이에요.”
애나가 옷장에서 격자무늬 숄을 꺼냈다. 선명한 빨간색과 갈색이 아이 얼굴에 생기를 더했다.
그러니까 가난한 친척이 집안일을 봐주는 거구나. 그렇게 종속된 사이라면 음모에 가담하는 것 거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언니는 어디서 자니?”
“나무 의자에서요.” 애나가 부엌 쪽으로 고개짓했다.
역시 하층민은 종종 침대보다 가족 수가 더 많았다. 그래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P62-63)
애나가 올림머리를 풀고 빗질을 하자 검은 머리카락 뭉치가 빗살에 걸려 나왔다. 리브는 마음이 불편했다. 어린아이 머리카락이 한창때가 지난 여자처럼 우수수 빠지다니……. 아이가 자초한 일이야. 세상을 상대로 벌이는 치밀한 속임수의 일환일 뿐이라고. 리브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P89)
“많이 번거로운 건 알지만, 혹시 램프를 구할 순 없을까요?”
“요즘 고래기름이 얼마나 비싼데요.”
“쓸 만한 게 있는지 내일 찾아볼게요.”
키티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몇 분 뒤 돌아와 리브의 밤참으로 우유와 귀리과자를 건네주었다.
리브는 귀리과자에 버터를 바르며 애나를 슬쩍 보았다. 애나는 여전히 책에 푹 빠져 있었다. 정말 대단한 솜씨였다. 종일 빈속이면서 음식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음식이 방에 들어온 걸 알아채지도 못한 척하다니.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이런 자제력이 있다니. 이런 충성심과 야망까지 있다니. 이런 능력이 좋은 의도로 쓰인다면 애나 오도널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리브는 온갖 여자와 일해본 경험을 통해 자제력이 그 어떤 재능보다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반쯤 열린 문 반대편 식탁에서 쨍그랑 소리와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리브느 그 소리에 한쪽 귀를 쫑긋 세웠다. 사기극에는 책임이 없다고 판명 나더라도 아이 엄마는 최소한 이 소동을 즐기고 있었다. 현관문 옆에는 돈 상자까지 있었다. 옛말에 뭐라고 했더라? 아이는 가난한 자의 재산이다. 은유적 포현이지만 가끔은 문자 그대로 재산을 의미하기도 했다.
애나는 책장을 넘기며 소리 없이 입으로 글을 읽었다.
부엌이 소란스러웠다. 고개를 내밀고 밖을 보니 미카엘 수녀가 검은 망토를 벗고 있었다. (P90)
거짓에 속는 인간의 순진함은 얼마나 무한한가. 특히 그것이 시골의 무지와 결합하면 상황은 더욱더 심각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이 속고자 한다면 속게 내버려두어라.’ (P130)
로절린 오도널은 작은 갈퀴로 잿불을 동그랗게 모았다. 그러고는 새로 토탄 세 개를 바큇살 모양으로 내려놓은 뒤 무릎을 꿇고 앉아 성호를 그었다. 새 토탄에 불이 붙자 부인은 통에서 재를 퍼내 불꽃 위를 흩뿌리며 불길을 살짝 가라앉혔다.
리브는 시간도 이 잿불처럼 스스로에게 매몰될 수 있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어둑한 오두막에서는 드루이드 시대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학창 시절 부르던 그 성가의 가사가 뭐였더라? 밤은 어둡고 나의 집은 머나니.
리브는 침실에서 망토 단추를 채우는 수녀에게 낮 동안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미카엘 수녀 말에 따르면 아이는 물 세 숟가락을 먹었고 짧게 산책을 했다.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조짐은 없었다.
리브가 소곤소곤 물었다. “아이가 뭔가 은밀한 행동을 하면 그것도 관련된 사실로 보고 저한테 말씀해주실 거죠?”
수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아이는 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리브는 오늘 밤 아이의 속임수를 잡아낼 수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미카엘 수녀의 귀에 대고 웅얼거렸다. “저도 사실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천국에서 내려온 만나. 오늘 아침 애나가 방문개 한 명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천국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 산다고요.” (P132-133)
‘탈출기’는 구약 성서에 있었다. 하지만 애나의 보물 상자에서 찾을 수 있는 성서는 ‘시편’뿐이었다. 리브는 작은 카드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책장을 휙휙 넘겼다. 만나에 관한 언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느 구절 하나가 리브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방인인 자녀들이 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방의 아이가 힘을 잃고 나아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애나는 분명 이방의 아이였다. 이 아이는 전 세계를 속이기로 결심한 순간 평범한 소녀의 길을 멈추었다.
문득 리브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아이가 이런 사기를 어떻게 저지르느냐가 아니라 왜 저지르느냐이지 않을까? 물론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지어내는 건 분명 천성이 삐뚤어진 아이뿐일 것이다. 애나는 떼돈을 버는 데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는 관심, 어쩌면 명성까지 갈망하는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 대가가 배고픔, 아픈 몸, 거짓말을 이어가는 데 대한 끝없는 불안이라면?
물론 오도널 부부가 뻔질나게 집을 찾는 방문객으로부터 수익을 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계략을 세워 애나를 협박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하지만 애나는 무언가를 강요받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애나는 조용하고 단호했으며, 어린아이에게서는 보기 드문 자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P139)
“제 기억이 맞는다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박해자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칠 때 그들이 먹을 수 있도록 매일 하늘에서 떨어진 음식이었어요.” (P144)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앉아 있는데, 머릿속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애나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리브는 한참 동안 모든 사실을 제쳐두었다. 나이팅게일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질병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간호의 시작이었다. 간호사는 환자의 신체 상태뿐만 아니라 정신 상태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있는가?
대답은 명확했다. 애나 오도널의 신념은 강력했다. 설령 애나가 히스테리 환자라 해도. 아이의 마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리브의 어깨가 툭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 다정한 아이는 적이 아니었다. 무정한 죄수도 아니었다. 이 아이는 일종의 백일몽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벼랑 끝으로 걷고 있는 한 소녀일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환자일 뿐이었다. (P170)
“저기 꼬마 기적이 온다!” 한 남자가 소리쳤다.
한 여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가, 네 치맛단 한 번만 만지게 해줘…….” (P184)
“지금 우리는 나라 전체가 상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라이트 씨. 기근과 역병을 7년이나 겪었는데 어느 가족이 멀쩡히 남아 있겠어요?” (P193)
“애나가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는 여자아이로 위장한 무시무시한 괴물이기 때문이래요.” (P195)
“하지만 무언가를 살핀다는 건 훼방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관찰할 목적으로 물고기를 어항에 넣거나 식물을 화분에 심으면 조건이 바뀌잖아요. 지난 넉 달간 애나가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해도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수녀는 그저 고개만 갸우뚱했다.
“우리 때문에요. 감시 때문에 감시당하는 사람의 상황이 달라져버렸다고요.” 리브가 찬찬히 설명했다.
미카엘 수녀의 눈썹이 위로 올라가 흰색 리넨 띠 안으로 사라졌다.
리브는 계속 말했다. “혹시라도 지난 몇 달간 이 집에 속임수가 있었다면 그 속임수는 월요일에 감시가 시작되면서 끝났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수녀님과 제가 아이의 영양 섭취를 막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는 매 순간 감시를 하고 있어요. 아이를 나비처럼 핀으로 고정해둔 거라고요.” (P236)
마지막 식사. 마치 사형수처럼. 그러니까 애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체를 먹고 입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어떤 왜곡된 교리가 애나를 몰아붙였을까? 애나는 이제 신성한 영양분을 받았으니 더 이상 속세의 음식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걸까? 리브는 궁금했다. (P258)
“성모님이 모든 것에 빛을 잔뜩 쏟아 부어 주어시잖아요. 빛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P270)
번이 길 쪽으로 돌아선 뒤에야 리브는 아이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바로 그 냄새였다. 희미하지만 불쾌한 과일 냄새. (P276)
“그거 알아요? 아니, 당연히 모르겠죠. 암흑기에는 많은 성인이 오랫동안 식욕을 완전히 잃은 채로 살았대요. 심지어 몇십년 동안이나요. 그걸 Inedia prodigiosa, 즉 ‘경이로운 단식’이라고 불렀어요.”
그들은 성모님처럼 되기를 열렬히 원했어요. 성모님은 아기 때 하루 한 번만 젖을 먹었다고 알려졌거든요. 성 가타리나는 억지로 음식을 조금 삼켰다가 나뭇가지로 목구멍을 쑤셔 전부 도로 토해냈대요. 육신을 내려놓고 영혼을 끌어올리려 한 거예요. (P290)
“좋은 간호사는 규칙을 따르지만, 최고의 간호사는 언제 규칙을 깨야 하는지 알아요.” (P340)
세상이 소용돌이쳐도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세요. 리브의 스승은 그렇게 지시했다.
지금 애나에 대한 리브의 의무는 무엇일까? 저를 적의 손에서 구원하여주소서, 애나는 그렇게 기도했다. 리브는 애나의 구원자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적일까? 어떤 방해에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리브는 지난밤 번에게 큰소리쳤다. 하지만 구조를 거부하는 아이를 도대체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P377)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애나의 엄마가 애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면 나머지 세상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다. 리브는 애나에게 신체검사의 폭력을 겪게 할 수 없었다. 그 몸은 이미 너무도 많은 탐색을 견뎌야 했다. 게다가 진실을 증명하더라도, 리브에게는 가족 성폭력으로 보이는 일이 다른 이에게는 유혹으로 치부될 것이었다. 피해자가 얼마나 어리든, 이런 경우에는 여자아이가 눈빛으로 가해자를 부추겼다고 비난받는 일이 훨씬 허다하지 않던가?
“아주 끔찍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애나는 이 가정에서 살 수 없어요.” 리브가 번에게 말했다. (P392)
보지 않으려 하는 자만큼 눈이 먼 사람은 없다. 이 말은 그 지역 주민 다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은 최근 며칠 동안 검게 그은 오두막 잔해에 꽃과 다른 공물을 가져다 두었다. 마치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불법적 아동 살인이 아니라 지역의 성인을 신격화하는 일이었다고 순진하게 믿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은 2주 전 시작한 감시가 죽음의 시간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아마 이 감시 때문에 은밀한 급식 수단이 막혔을 것이다. 감시를 통해 살펴보려 했던 아이는 결국 감시 때문에 파멸했다. 위원회는 해산 전 마지막으로 아이의 죽음이 ‘자연적 원인’에서 비롯한 ‘신의 섭리’였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행한 일은 절대 창조주나 자연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P434)
<더 원더>는 허구의 이야기다. 하지만 거의 50건에 가까운 이른바 ‘단식 소녀(오랜 기간 음식 없이 생존했다고 칭송받은 아이)’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런 사례는 16세기에서 20세기 사이 영국 제도와 서유럽, 북미에서 보고되었다. 이 소녀와 여성 들은 나이와 배경이 매우 다양했다. 이들 중 일부(개신교 또는 천주교 신자)는 종교적 동기를 주장했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수는 훨씬 적지만 남성 사례도 있었다. 일부 단식자는 몇 주 동안 계속 감시를 당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혹은 감금되거나 강제 입원을 당하거나 강제 급식을 받은 뒤,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일부는 죽었다. 나머지는 여전히 음식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수십 년을 살았다. (P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