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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03. 2024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영화 <사양斜陽>  2009년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가 서른 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에 쓴 작품이다. 여기서는 이전의 『인간 실격』에서 보여 주었던 자기 파멸과는 다른, 인간 영혼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귀족 출신이라는 우월감과 자괴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나오지와 사랑 없는 결혼의 실패 후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가즈코의 모습은 더욱 풍부하고 깊어진 그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제목인 '사양'은 석양을 뜻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밀려 몰락해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저녁 해가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어 어머니의 눈이 푸르스름하니 반짝였다. 얼핏 노여움을 띤 그 얼굴은, 대뜸 달려가 안기고 싶을 만치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아아, 어머니의 얼굴은 아까 본 그 슬픈 뱀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 가슴속에 살무사처럼 흉측한 뱀이 굼실굼실 자리 잡고 있어, 깊은 슬픔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 물어 죽이고 마는 게 아닐까, 어쩐지 자꾸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P19)     

아아, 무엇이건 숨김없이 솔직하게 쓰고 싶다. 이 산장의 평온은 죄다 거짓이고 허울에 불과하다고, 속으로 생각할 때조차 있다. 이것이 우리 모녀가 신께 받은 짧은 휴식 기간이라해도, 이미 이 평화에는 뭔가 불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와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머니는 행복을 가장하면서 나날이 쇠약해지고, 내 가슴속에 깃든 살무사는 어머니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살이 오른다. 내가 아무리 힘껏 짓눌러도 살이 찐다. 아아, 이것이 그저 계절 탓이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나는 요즘의 이런 생활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지곤 한다. 뱀 알을 태우는 경솔한 짓을 저지른 것도, 이렇듯 초조한 내 마음이 표출된 게 틀림없다. 단지 어머니의 슬픔을 더욱 깊어지게, 어머니를 쇠약해지게 할 뿐이다.

‘사랑’이라 썼다가, 그다음은 쓰지 못했다.                   (P29-30)    

 

뱀 알을 태운 일이 있고 나서 열흘쯤 지나 불길한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어머니의 슬픔을 한층 깊어지게, 목숨을 옅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불을 내고 말았다.

내가 불을 내다니, 내 생애에 그런 무서운 일이 있으리라고는 어릴 적부터 지금껏 꿈에서조차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건만.

불을 소홀히 하면 불이 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도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나는 흔히 말하는 ‘공주님’이었던 걸까?                        (P31)    

 

삼촌의 말로는 이제 우리 돈이 거의 바닥이 났다는구나. 저금 봉쇄다, 재산세다 해서 이제 삼촌도 지금까지처럼 우리한테 돈을 보내기가 힘들어졌다는 거야. (P47)   

  

그런데 뜨개질하는 동안 나는 이 옅은 모란꽃빛 털실과 잿빛 하늘이 하나로 어우러져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은은한 색조를 자아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미처 몰랐다. 옷은 하늘빛과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몰랐던 거다. 조화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스러운가! 새삼 놀랐고 멍해진 느낌이었다. 잿빛 하늘과 옅은 모란꽃빛 털실, 이 두 가지가 한데 어울리니 둘 다 동시에 생기를 띠는 게 신기하다. 손에 쥔 털실이 갑자기 포근해지고 차가운 잿빛 하늘도 우단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모네가 그린 <안개 속 사원>이 떠오른다. 나는 이 털실 색깔로 인해 비로소 ‘구(gout)’를 알게 된 것 같다. 고상한 취향.             (P55) 

    

데카당?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걸. 그런 말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죽어 버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 산뜻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죽어 버려!”라고 말하지 않는다. 쩨쩨하고 용의주도한 위선자들이여!

정의? 소위 계급 투쟁의 본질은 그런 데에 있지 않다. 인도주의? 웃기지 마. 난 알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거지. 죽이는 거야. “죽어 버려!”라는 선고가 아니라면 뭐냐. 얼버무리지 마.

그러나 우리 계급에도 제대로 된 녀석이 없어. 백치, 유령, 수전노, 미친개, 허풍쟁이, 으스대는 놈, 구름 위에서 오줌.

“죽어 버려!”라는 말조차 아깝다.                 (P65-66)

      

전쟁. 일본의 전쟁은 자포자기다.

자포자기에 휩쓸려 죽는 건 싫어. 차라리, 혼자 죽고 싶어.             (P66)     


인간은 거짓말할 때 으레 진지한 표정을 짓는 법이다. 요즘의 지도자들, 그 진지함이란. 쳇!          (P66)     

나는 이번에 누나의 돈을 받으면 그걸로 약국 빚을 모두 갚고 나서 시오바라(?原)에 있는 별장에 가서 건강해진 몸으로 돌아올 작정이에요, 정말이에요, 약국의 빚을 전부 갚으면, 이제 난 그날부터 마약은 딱 끊을 작정이에요, 신께 맹세해요, 믿어 주세요, 엄마에겐 비밀로 하고 오세키를 시켜 가야노 아파트 우에하라 씨에게 부탁하세요. (P70)     


박꽃. 아아, 동생도 괴로운 거다. 더구나 길이 막혀 무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직 전혀 모르는 거다. 그저 매일 죽을 작정으로 술을 마시는 거다.

차라리 큰맘 먹고 본격적으로 불량해지는 건 어떨까. 그러면 동생도 오히려 마음 편하지 않을까.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라고 그 공책에 쓰여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불량, 삼촌도 불량, 어머니조차 불량하게 여겨진다. 불량하다는 건 상냥하다는 뜻이 아닐까.           (P76)  

   

저는 불량한 사람이 좋아요. 더구나 딱지 붙은 불량이 좋아요. 그리고 저도 딱지 붙은 불량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달리 제가 살아갈 방도가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은 일본 제일이 딱지 붙은 불량이겠죠. 그리고 최근 다시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추접스럽다, 역겹다며 몹시 미워하고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동생한테서 듣고, 더욱더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P92) 

    

세상에서 칭찬받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이고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을 신용하지 않습니다. 딱지 붙은 불량만이 제 편입니다. 딱지 붙은 불량. 저는 오직 그 십자가에만은 달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만인에게 비난받는다 해도,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딱지 없는, 훨씬 더 위험한 불량이 아니냐고.            (P94-95)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웃으며,

“여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에 죽는다기에 나도 올여름쯤 죽겠구나 생각했는데, 나오지가 돌아와서 가을까지 살아 버렸어.”

그런 나오지여도 역시 어머니가 살아가면서 의지할 기둥이 되는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럼 이제 여름이 다 지나갔으니까 어머니는 위험한 고비를 넘긴 거예요. 어머니, 마당에 싸리꽃이 피었어요. 그리고 여랑화, 오이풀, 도라지, 솔새, 참억새. 마당이 완연한 가을 뜰이 되었네요. 10월이 되면 틀림없이 열도 내릴 거예요.”

나는 그렇게 되기를 기도했다. 어서 이 후텁지근한 9월, 늦더위의 계절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화꽃이 피고 화창한 햇살이 비치면, 틀림없이 어머니의 열도 내려 건강해지고 나도 그 사람을 만나게 되어 나의 계획도 탐스러운 국화꽃처럼 멋들어지게 꽃피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아, 어서 10월이 되어 어머니의 열이 내렸으면!                 (P99)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혁명을 동경한 적도 없고 사랑조차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세상의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이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께름칙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우리는 그런 줄로만 믿었으나, 패전 후 우리는 세상의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건 그들이 말하는 것과 반대쪽에 진정한 살 길이 있는 것 같았고, 혁명도 사랑도 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달콤한 일이며, 너무 좋은 것이다 보니 심술궂은 어른들이 우리에게 포도가 시다며 거짓을 가르친 게 틀림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P109)  

    

나는 어머니가 지금 행복한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이런 게 행복감이라면 폐하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분명 지금, 행복한 거다. 고즈넉한 가을날 아침. 햇살 따사로운 가을 뜰. 나는 뜨개질을 멈추고 가슴 높이로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어머니. 전 지금껏 어지간히 세상 물정을 몰랐나 봐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방 한쪽에서 정맥 주사 채비를 하고 있는 간호사가 들을까 부끄러워 입을 다물었다.

“지금껏이라니.......”  

어머니는 엷은 웃음을 띠며 따지듯, 

“그럼, 지금은 세상을 알 것 같니?”

나는 왠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세상이란, 알 수 없는 거야.”

어머니는 얼굴을 딴 데로 돌리고,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

“난 모르겠어. 아는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모두 어린애야.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나는 살아가야 한다. 아직 어린애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응석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이제부터 세상과 싸워 나가야만 한다. 아아, 어머니처럼 남들과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아름답고 슬프게 생애를 마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어머니가 마지막이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죽어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산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그건 몹시 추하고 피비린내 나는, 추접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새끼를 배고 구멍을 파는 뱀의 모습을, 나는 다다미 위에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끝내 단념하지 못하는 게 있다. 천박해 보인들 상관없어. 나는 살아남아 마음 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련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나의 로맨티시즘과 감상 따위는 점차 사라지고 어쩐지 나 자신이 방심할 수 없는 교활한 생물로 변해 가는 기분이었다.            (P118-119) 

     

아아, 이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거야. 하지만 이 사람들도 내 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떡해서든 끝까지 살아야만 한다면, 이 사람들이 끝까지 살기 위한 이런 모습도 미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아아, 이 얼마나 버겁고 아슬아슬 숨이 넘어가는 대사업인가! (P136) 

    

“지금도 날 좋아하나?”

난폭한 말투였다.

“내 아이를 갖고 싶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기세로 그 사람의 얼굴이 다가왔고, 다짜고짜 나는 키스를 당했다. 성욕이 물씬 풍기는 키스였다. 나는 키스를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굴욕적인, 분해서 흘리는 쓰디쓴 눈물이었다.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넘쳐흘렀다. (P141)     

“죽을 작정으로 마시고 있어. 살아 있다는 게 슬퍼서 견딜 수 없어.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그런 한가로운 게 아니고, 슬퍼. 음침한 탄식의 한숨이 사방 벽에서 들려올 때, 자신들만의 행복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자신의 행복도 영광도 살아 있는 동안엔 결코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노력. 그런 건 그저 굶주린 야수의 먹잇감이 될 뿐이지.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아. 거슬리나?”          (P143-144)  

   

나는 천박해지고 싶었습니다. 강인하게, 아니 난폭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소위 민중의 벗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 정도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늘 어찔어찔 현기증을 느끼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면 마약 외에는 없었습니다. 나는 집을 잊어야 한다. 아버지의 피에 반항해야 한다. 어머니의 상냥함을 거부해야 한다. 누나에게 차갑게 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중의 방에 들어갈 입장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P147)     

희생자. 도덕적 과도기의 희생자. 당신도 저도 틀림없이 그러하겠지요.

혁명은, 대체 어디서 일어나고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들 주변에서 낡은 도덕은 여전히 그대로 털끝만큼도 바뀌지 않은 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바다 표면의 파도가 아무리 요동친들 그 밑바닥의 바닷물은 혁명은커녕 꿈쩍도 않고 자는 척 드러누워 있을 뿐인걸요.

하지만 전, 지금까지의 1회전에서는 낡은 도덕을 아주 조금이나마 몰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태어날 아기와 함께 2회전, 3회전을 싸워 나갈 작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저의 도덕 혁명의 완성입니다.

당신이 저를 잊는다 해도, 또한 당신이 술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저는 제 혁명의 완성을 위해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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