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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17. 2024

카밀로 호세 셀라의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영화 <파스쿠알 두아르테Pascual Duarte>  1976년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출간 즉시 금서로 지정되었다. “내용이 불량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큰 논쟁을 일으켰다. 두아르테는 ①아내와 상간남 살인으로 3년 복역, ②모친 살해로 약 13년 복역 후 풀려났다가 결국 ③지주 살인으로 다시 갇혀 최종 교수형에 처한다.


영화 ‘파스쿠알 두아르테(Pascual Duarte)’의 한 장면.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원작 삼은 영화로, 주인공을 맡은 배우 호세 루이스 고메스는 ‘친모를 죽이기까지의 과정’을 연기한 공로로 1976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책을 내 원수들에게 바친다.

내 이력에 크나큰 도움을 주었으므로.

내가 겪은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나니 좀 편해져서인지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낄 때도 있습니다.

방법을 몰라 더 적절하게 말하지 못한 것을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길을 잘못 든 것을 후회합니다, 이제 이승에서는 용서를 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래 봐야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아마도 내게 준비된 벌을 달게 받는 게 더 나을 텐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면을 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너무도 악했고 그런 본능에 저항하기에 나는 너무도 연약했기 때문이지요. 하늘의 책에 쓰여 있는 대로 되길 바랄 뿐입니다.

돈 호아킨! 내가 쓴 원고 상자와 함께, 이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한 내 사죄를 받아 주십시요. 귀하께 보내는 이 사과의 간청을, 돈헤수스께서 그러했듯 받아 주시기를.

파스쿠알 두아르테

1937년 2월 15일, 바다호스 감옥에서

     

우리 모든 인간은 매한가지 가죽을 쓰고 태어나지만, 우리가 성장할 때 운명은 마치 밀랍인형 다루듯 주물러대고 또 여러 오솔길을 통해 죽음이라는 동일한 종말로 향하게 하면서 즐거워하지요. 꽃길로 가도록 운명 지어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엉겅퀴와 선인장 가시밭길로 던져진 자들도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야 주위의 차분한 시선을 즐기며 순진한 얼굴로 자신들의 행복의 향기에 미소 짓습니다만, 다른 이들은 광야의 뙤약볕을 견디며 자기 몸을 보호하려는 야생 짐승처럼 눈살을 찌푸리지요. 화장품과 향수로 몸을 가꾸며 사는 것과 나중에 아무도 지울 수 없는 문신을 하고 사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지요.     (P25)     


인구가 얼마 안 되는 우리 마을 같은 곳에서는 그런 걸 물어볼 필요가 더더욱 없는데, 내게 와서 모든 걸 말해 줄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아버지는 밀수 때문에 감옥에 갔었습니다. 보아하니, 그게 오랫동안 그의 직업이었던 것 같더군요. 그러나 우물에 자주 가는 항아리는 깨지고, 파산하지 않는 사업은 없으며, 노력 없이는 지름길도 없듯이, 어느 날 상상도 못 하고 있을 때 — 방심은 용기 있는 자들을 망하게 하지요 — 경찰들이 미행으로 밀수품을 찾아내고는 그를 감옥에 넣어 버렸던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임에 틀림없는데,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P35)     


우리 부모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데다가 덕도 별로 없었고 하느님이 주신 것에 만족할 줄도 몰라서 —나는 재수 없게도 이 모든 결점을 물려받았지요— 그들은 원칙을 생각하고 본능을 자제하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또 아무리 작은 동기라 하더라도 기회만 주어지면 며칠이고 끝도 없이 계속될 풍파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그럴 때 나는 보통 누구 편도 들지 않았는데, 사실은 누구를 편들더라도 똑같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P36)     


사실 우리 가족에게 화목함이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운명 지어지는 것이기에 나는 내 인연에 순응하려고 노력했지요. 내가 절망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P38)    

 

여동생이 태어난 지 15년이 됐을 때였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하도 삐쩍 말랐고 나이도 꽤 많아서, 다시 아이를 낳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배가 꽉 차올랐지만 우리는 누구 씨인지도 몰랐지요. 왜냐하면 그 당시 어머니는 세뇨르 라파엘과 어울려 다녔기 때문입니다.    (P52-53)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도 역시 울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것의 불행을 위해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심장이 굳어버린 여자, 그 여자가 내 어머니였습니다. 나는 로사리오가 그랬듯 울어버렸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증오를 느꼈습니다. 그 증오심이 너무도 빨리 커져서 나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지요.              (P60-61)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이 자유인 줄도 모르는 채로 자유롭듯이 나도 자유로울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그들은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요-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모르고 살아갈 거고요…           (P69)   

  

우리 두 사람은 —우주의 섭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로부터 그 녀석을 빼앗아 가시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희망, 우리들의 전 재산이자 모든 행운이었던 아이를 제대로 키워 보기 전에 잃게 될 줄이야! 사랑이란 참 알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우리를 떠나버리니까요.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면서도 나는 대단히 불안했습니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불행을 알아보는 데 일가견이 있었지요. 몇 달이 지난 후, 마치 아직 내 불행이 충분하지 않다는 듯, 그 예감도 다른 예감들처럼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불행은 결코 쉽사리 끝나지 않았지요.         (P101)     


분명 그 누구도 불행에 익숙해지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이 늘 마지막일 거라는 환상을 갖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나면, 최악의 불행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걸 납득하게 되지만 —너무도 슬픈 일이지요— 말입니다.           (P106)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늑대 발자국처럼 예기치 못하게 찾아와서 전갈처럼 의뭉스럽고 갑작스럽게 물어버리는 것 같더군요.            (P109)   

  

크건 작건 내 서글픈 인생의 자잘한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게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보상이라도 하듯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운 순간도 있지요. 그것이 기쁨 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은 이유는 아마도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겁니다. 마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들은 얘기를 하듯이 말입니다.        (P124)     


살아오는 동안 지나치게 나쁜 짓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드물긴 하지만 몇 번 그랬을 때마다, 이미 앞에서 선생님께 말씀드린 대로, 나를 쫓아다니는 걸 즐기는 듯한 그 숙명, 그 불행이 내 선의를 뒤틀어서는 제멋대로 나쁘게 만들어 버린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설상가상으로 그것은 내 영혼을 위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어긋나고 변질되어 나를 항상 더 지독한 불행으로 이끌었습니다.              (P149) 

    

내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그 자리에, 여전히 거무스름한 벽돌담에 둘러싸여서 말입니다. 전혀 변한 게 없는 높은 사이프러스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죠. 그 묘지에서 내 아버지는 울분을, 마리오는 천진함을, 내 마누라는 방종을, 그리고 싸가지는 오만함을 묻어 두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또 유산된 아기와 꼬마 파스쿠알, 내 두 아이들의 유해가 썩어가는 곳이기도 했지요.            (P157)     


결혼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어머니가 계속해서 내가 수감되기 전과 똑같은 술수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피하는 듯한 냉담한 행동과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는 대화, 그리고 나와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꾸며낸 목소리로 —어머니의 다른 모든 것처럼 목소리도 가식적이었습니다.           (P170)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늑대의 발걸음처럼 느리고 구렁이의 몸놀림처럼 징그럽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은 결코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건은 잠시 동안 우리를 숨 막히게 하지만, 나중에는 상당히 많은 세월을 선사하니까요. 우리를 완전히 미쳐버리게 하고 아주 슬프게 하는 광기는 언제나, 마치 안개가 평원을 공격하듯, 결핵이 폐를 공격하듯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도착합니다.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전진하지만 맥박이 뛰듯 규칙적으로 천천히 서서히 다가오지요. 어느 날 사악함이 나무처럼 자라고 살쪄서….’        (P172)   

  

불행은 즐겁고 정겹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영혼의 일부가 되어 버린불행을 넓은 유리 광장 위로 질질 끌고 가면서 아주 즐거워합니다. 암노루처럼 도망가거나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이미 악에 물들어 버린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해결책도,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지요. 그때 아찔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다시 살아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아마 마지막에 조금 일어설 수도 있겠군요. 머리부터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말입니다.             (P173)   

  

나는 모든 것을 순조롭게 준비했습니다. 힘을 얻고 용기를 내기 위해 같은 생각을 하며 기나긴 밤들을 지새웠습니다. 사냥횽 칼을 갈았습니다. 그 칼은 옥수수 잎같이 길고 넓은 칼날에, 그 칼날을 가로지르는 홈이 파여 있고, 결투 분위기가 나는 자개 손잡이가 있었지요. 이제 날짜를 정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망설이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끝까지 가야죠. 침착하게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칼로 찌르고, 냉정하면서도 재빠르게 칼로 찌르고 멀리, 아주 멀리, 라코루냐까지 도망가는 거죠. 아무도 그 일을 모르는 곳으로, 모두가 잊을 때까지 내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망각이 필요하니까요.

양심의 가책은 없었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었죠. 그저 아이를 걷어차거나 제비를 떨어뜨리는 정도의 나쁜 짓을 했다는 것만이 마음에 걸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증오가 유발한 행동, 우리를 괴롭히는 강박적인 생각에 취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결코 후회할 필요가 없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법입니다.           (P174)     

어찌 됐든 내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나를 낳아 준, 그리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용서해야만 할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나를 낳았기 때문에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세상에 던져 놓았을 뿐,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지요.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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