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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18. 2024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영화 <페이트리스Fateless>  2005년

페이트리스(Sorstalansag, Fateless)는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라조스 콜타이 감독의 2005년 드라마, 전쟁 영화이다. 마셀 나기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피터 바바릭스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임레 케르테스는 1975년, 15살짜리 철부지 유대인 소년 쾨베시 죄르지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한 해 뒤 부다페스트로 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생생하게 담아낸 자신의 첫 장편소설 〈운명은 없다〉(영역본은 〈Fateless〉라는 이름으로 1992년에 출간됨)를 발표했다. 이후 운명 4부작에 속하는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청산> 까지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이 있다.      

나는 학교에서 우리 가게까지 걸어갔다. 아직은 초봄이었음에도 화창하고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나는 단추를 풀까 하다 그만두었다. 살살 불어오는 맞바람에 혹시 외투 깃이 뒤로 젖혀져 노란 별을 가리면 규정 위반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몇몇 일과 관련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P9)  

   

“계속 들어가다 보니 갑자기 흰 조약돌이 깔려 있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는데 일종의 부대 연병장 같았다. 잠시 후 키가 커서 겉보기에는 명령권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맞은편 건물 쪽에서 우리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 긴 부츠를 신고 몸에 맞는 제복을 입었으며 금으로 된 별들을 달고 가슴에는 가죽 벨트를 비스듬하게 매고 있었다. 한쪽 손에는 승마에서나 봄직한 막대를 들고 있었는데 그 막대로 니스를 칠한 듯 반짝거리는 부츠의 발등 부분을 연신 톡톡 두드려 댔다. 일분쯤 지났을까. 우리가 줄을 맞춰 부동자세로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제야 그가 나름대로 멋있고 혹독하게 운동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전체적으로 영화배우를 연상시켰는데 남자답게 생긴 얼굴과 최신 유행에 따라 가지런히 정리된 가늘고 긴 갈색 콧수염이 햇볕에 탄 얼굴색과 잘 어울렸다. 그가 가까이 오자 헌병들의 구호에 따라 우리는 모두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 가운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연이은 두 개의 인상뿐이다. 하나는 마치 시장에서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와 비슷한, 승마 막대를 든 그 사람의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였는데 세련된 외모와 너무 달라서 무척 놀랐다. 그 사람이 한 말을 내가 그리 많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 그나마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우리 일을 내일 조사(그 사람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후 헌병들을 향해 온 광장에서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때까지 이 유대인 놈들을 그들에게 어울리는 마구간으로 끌고 가 밤새 가둬 두라고 명령했다. 나에게 남아 있는 그때의 두 번째 인상은 명령에 이어 벌어진 시끄러운 소동 상황이다. 느닷없이 헌병들이 고함을 치며 정렬을 시키더니 우리를 몰았다. 나는 당황스러워 어디로 몸을 돌려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때 약간 웃음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놀람과 혼란과 더불어 배역도 알지 못한 채 어떤 무의미한 연극 무대 한가운데 떨어져다는 느낌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상상 속에서 빠르게 스치는 하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저녁 식사를 준비해 놨는데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떠오를 새엄마의 표정이었다.”        (P65-66)  

   

“나는 그곳에서 정말 후회스러운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내 기억에 한번은 집에서 언제부터 읽지 않고 꽂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먼지가 수북히 쌓인채 책꽂이 깊숙이 꽂혀 있는 발견하고 빼어 든 적이 있었다. 그 책의 작가는 죄수였는데 결국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며 읽기가 쉽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길어서였는데 많은 사람의 이름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세 단어씩이나 됐기 때문이다. 결국 재미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죄수들의 삶에 진저리기 나서 더 읽지 않았다. 그때 끝까지 읽었더라면 필요한 때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읽은 부분 중에서 유일하게 생각나는 것은 그 책의 저자인 죄수의 주장에 의하면 수감 첫째 날이 이후의 날들보다, 다시 말해 글을 쓰는 시점과 가까운 시간들보다 먼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그 말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졌고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첫째 날이 가장 정확하게 생각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후의 날들보다 첫째 날이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 수감되었을 때 나는 마치 손님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결국 인간 본성의 기만 습관에 따라 나중에는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P112)     

저기 건너편 어디에선가, 우리와 열차를 함께 타고 왔던 승객들, 자동차를 타고 함께 가려고 했던 사람들, 그리고 의사 앞에서 나이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들, 아이를 가져서 배가 불룩한 여자들, 그들은 지금쯤 어느 '인간 가죽 공장'에서 소각되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기차역에서 목욕탕으로 갔을 것이다. 옷걸이와 번호와 목욕 진행 과정에 대해 우리와 똑같이 교육 받았을 것이다. 이발사들도 있었을 것이고, 비누도 전달받았을 것이다. 이어 목욕탕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거기에도 수도관과 샤워기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 거기선 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가스가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씩 보충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런 소문들 가운데에는 믿기 어려운 것도 더러 있었지만, 그런 것들만 빼면 모두 사실로 판명되었다.                 (P122) 

    

나는 이 모든 사건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인식이란 것이 마지막에 정리해서 풀어해치는 식이 아니라 단계별로 하나하나 거치면서 익숙해지는 식이었고 마지막에는 거의 인식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P168) 

    

“도와준다고? 뭘?”

“모든 것을요.” 

나는 그에게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고 깨끗하고 멋진 역에 도착하는 것이 정말 생소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단계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이해된다. 하나의 단계를 거치면 다음 단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처리하고 살아가고 행동하고 움직이고 새로운 단계마다 새로운 요구 사항을 완수해 나간다. 그런데 만일 시간 체계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 모든 것이 현장에서 일시에 우리의 인식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이 견뎌 내지 못하리라는 식으로 나는 그에게 설명해 보았다. 그러자 그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 내게 한 대 내밀었다. 나는 됐다고 했다. 잠시 후 그는 담배 연기를 두어 번 깊이 빨아들이고는 두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상체를 앞으로 푹 숙였다. 그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P269)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후 플레이슈먼 노인이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웠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약간 놀랐다. 그리고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슈테이네르 노인이 의자에 앉은 채 나를 향해 몸을 굽혔다. 내 팔 위에 있던 박쥐 같은 그의 손이 다시 올라가더니 이번에는 내 팔 대신 무릎 위로 내려왔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우선 그 끔찍했던 일들을 다 잊어야 한다.”

내가 좀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야 하죠?”

그가 대답했다.

“그래야 네가 살아갈 수 있거든.”

플레이슈먼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야.”

이번에는 슈테이네르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역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 짐을 지고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단다.”             (P277)  

   

그들이 어떻게 나에게 그런 불가능한 일을 요구할 수 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 기억에 대고 명령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새로운 삶이란 내가 다시 태어나거나 정신이 손상을 입거나 병에 걸리거나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했다. “특히 저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러자 그들이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내 말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때 나는 이른바 ‘고난의 시기’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지냈느냐고 물었다.

“글쎄..... 그냥 살아갔지.”

한 노인이 대답했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지.”

이번에는 다른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그들 역시 한 걸음씩 걸어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걸어왔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었다.           (P278)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내가 점점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여기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췄다.)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란 뜻이다.”           (P282)     


이제 우리 과정하지 말자!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나는 잘 안다. 석양으로 물든 아늑한 광장과, 수없이 비바람을 맞아 왔지만 여전히 수천 가지 기대로 충만한 거리들을 둘러보며 내 안에서 하나의 각오가 생겨나더니 그것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삶을 지속해 가겠다는 각오였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보면 정말 기뻐하실 것이다. 불쌍한 어머니. 내 기억에 어머니는 내가 엔지니어나 의사 아니면 그와 비슷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나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P284-285)     

나는 계속 말을 했다. 어쩌면 아무 소용없는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계속 설명했다. 새로운 삶이란 없고, 언제나 예전의 삶을 계속 이어갈 뿐이라고. 나는 누구도 대신 걸어가 줄 수 없는 나의 길을 걸었다. 그것도 단정한 태도로 걸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 수 있는 유일한 허물과 오점과 우연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왜 내가 지금껏 걸어왔던 모든 단계들과 이 모든 단정한 태도들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를 깡그리 잊어버리기를 원하는 것일까? 어째서 갑작스레 이런 심경의 변화가, 어째서 이런 반항심이, 어째서 이런 불쾌감이 드는 것일까?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나는 점점 더 흥분하고 감정에 북받쳐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나는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추었다)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갑자기 떠오른 말이었는데, 그럼에도 이처럼 분명하게 확신을 가져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좀더 지적이고 품위 있는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이들은 그저 여기 있는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순간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어디를 가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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