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율리시즈> 1967년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의 구성과 등장인물을 차용하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는 1904년 6월 16일 아침 8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더블린의 하루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 그의 아내 몰리, 그리고 젊은 예술가 스티븐 디덜러스의 일상을 따라가며, 조이스는 인간 의식의 깊은 내면을 탐구한다. 이 평범한 하루의 사건들은 그리스 신화 '오디세이'의 구조를 따라 재구성되어, 현대인의 일상과 신화적 영웅담을 절묘하게 융합한다. <율리시스>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1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각 장마다 다른 문체와 기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에올루스' 장은 신문 헤드라인 형식으로, '키르케' 장은 희곡 대본 형식으로 쓰여 있다. 블룸즈데이(Bloomsday)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날인 1904년 6월 16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에피소드 1 텔레마코스]
--죽음이란 뭐지, 그는 되물었다. 자네 어머니의 죽음이나 자네의 죽음이나 또 나의 죽음이나 말야. 자네는 어머니의 죽음을 보았을 뿐이야. 나는 매일 메이터 앤드 리치먼드의 병원에서 환자가 해부실에서 산산이 잘려 살 부스러기가 되는 것을 보고 있어. 그것은 동물적인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자네는 어머니가 임종 때 부탁했는데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싫다고 했어, 왜 그랬지? 그놈의 구역질나는 예수회 수도사의 피 덕분이지, 그것이 거꾸로 흐르고 있어. 나에게는 그건 모두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아. 모두 동물적인 일! 어머니의 뇌엽(腦葉)은 잘못되어 있었어. 의사를 피터 티즐 나으리 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불에 수놓은 꽃을 쥐어뜯기도 하셨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기쁘게 해 드려야 해, 자네는 어머니의 임종 때 소원을 거역하면서, 내가 랄루엣 장의사에게 고용된 고용인처럼 울어 주지 않는다고 툴툴거렸어, 어리석은 일이야. 내가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자네 어머니의 영혼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어.
그는 말하는 동안에 대담해졌다. 스티븐은 그의 말이 마음에 입힌 상처가 입을 벌린 것을 숨기면서 되도록 냉정하게 말했다.
--나의 어머니를 모욕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럼 뭐지?
--나를 모욕한 거야.
벅 멀리건은 휙 하고 돌아서서 외쳤다.
--참 골치 아픈 친구군! (P22)
[에피소드 2 네스토르]
만약에 피러스가 아르고스에서 한 노파의 계략에 걸려 죽지 않았더라면, 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단도에 찔려 죽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간은 그들에게 낙인을 찍어 그들을 구속했다. 그들이 파기한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 안에 그들은 갇혀 있다. 그러한 가능성이 결코 실현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러한 일들은 과연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일어난 일만이 유일한 가능이었던가? 파란을 일으키는 말들이여, 허풍을 다루는 자들이여.
--선생님, 이야기 하나 해 주세요.
--선생님, 해 주세요, 유령 이야기가 좋아요.
--이 책은 어디서부터였지? 스티븐은 다른 책을 열고 말했다.
--‘울지 마’부터예요, 코민이 말했다.
--그럼, 거기서부터, 탤벗,
--하지만 역사 이야기는요, 선생님?
--나중에, 스티븐은 말했다. 시작해, 탤벗.
가무잡잡한 소년이 재빨리 책을 펴서 가방을 벽 삼아 살며시 세웠다. 그는 가끔 흘끗흘끗 책을 보면서 빠르게 시를 암송했다.
--울지 마라, 괴로워하는 목자들이여, 울지 마,
그대들의 슬픔, 리시다스는 죽지 않았어.
비록 물속 깊이 가라앉았다 해도......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운동, 즉 가능성의 한 실현임에는 틀림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구가 지금 빠르게 암송되고 있는 시구 사이에 떠올랐다. (P51)
--뭐라고? 디지 씨가 물었다.
--거리의 외침이 말입니다. 스티븐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디지 씨는 아래를 바라보고 손끝으로 잠시 코를 잡더니 다시 위로 고개를 들고 손가락을 놓았다.
--나는 자네보다는 생복하군, 우리 인류는 많은 과오, 많은 죄를 저질러왔어. 한 명의 여자, 즉 이브가 이 세상에 죄를 가져온 이애, 평판만도 못한 한 명의 여자, 메넬라오스로부터 달아난 아내 헬레네 때문에 그리스인은 10년 동안이나 트로이에서 싸웠지, 한 명의 부실한 여자가 우리 땅에 낯선 사람을 끌어들였어, 맥머로의 아내가 데려온 그의 정부 브레프니의 영주 오루크 말야. 한 명의 여자가 파넬을 실각시키기도 했지. 나는 많은 잘못과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의 죄만은 범하지 않았지. 나는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투쟁자라네. 나는 끝까지 정의를 위해 싸울 작정이야, 그는 말했다.
얼스터는 싸우리
얼스터는 정당하리.
스티븐은 원고 종이를 집어들었다. (P65)
--디댈러스 군!
뒤에서 쫓아온다. 또 원고는 아니겠지.
--잠깐 기다려 줘.
--네, 스티븐은 문 옆에서 돌아보며 말했다.
디지 씨는 멈추자 숨을 헐떡였다.
--한마디 해 두고 싶었네. 아일랜드는 유대인을 박해한 일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명예가 있다고 말야. 자네는 이것을 알고 있나? 호, 모른다고? 왜 그런지 알겠나?
그는 밝은 빛이 내리쬐는 대기를 향해서 엄숙하게 찡그려 보였다.
--왜 그러죠? 스티븐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일랜드는 결코 유대인을 입국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지. 디지 씨는 엄숙하게 말했다.
기침 섞인 웃음의 총알이 걸걸거리는 가래를 끌고 그의 목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기침을 하고 웃고 두 손을 높이 올려 흔들면서 홱! 등을 돌렸다.
--절대로 입국시키지 않았어. 그는 자갈길 위를 각반을 찬 발로 힘차게 밟으면서 웃음 속에서 이렇게 다시 외쳤다. 이것이 그 이유야. (P67)
[에피소드 3 프로테우스]
눈에 보이는 것이 갖는 피할 수 없는 형식, 그 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나의 눈을 통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여기에서 인정하는 모든 사물들의 특징, 물고기 알, 해초, 다가오는 밀물, 낡은 장화와 같은, 파란 은색, 빨간 녹, 그것들은 색의 기호다. 투명도의 한정된 범위, 그러나 그는 덧붙인다. 형체를 이룬 것에 대하여. 그렇다면 그는 그것들이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이전에 물체로서의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야 물체에 머리를 부딪쳐서지, 분명히. 조심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좋아. 그는 대머리인 데다 억만장자였으니까, ‘사물을 아는 사람들의 스승’은, 형체가 있는 투명한 것의 한계. 왜 모양이 있는가? 투명, 불투명. 만약에 자네가 다섯 손가락을 통과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대문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문이다. 눈을 감고 봐. (P71)
악취 나는 소금에 절여진, 죽음의 가스로 가득한 자루. 흐물흐물한 진미를 뜯어 먹고 살이 오른, 꿈틀대는 피라미 떼가 시체의 단추 채운 바지 앞섶 틈으로 쏜살같이 빠져나온다. 번쩍인다. 신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는 흑기러기가 되어 깃털의 산을 이룬다. 내가 들이마시는 죽은 자의 숨결, 죽은 자의 먼지를 밟고 모든 시체의 오줌 냄새 나는 살 찌꺼기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뱃전 너머로 끌어올려져 녹색의 묘에서 가지고 온 악취를 뿜어내는 시체, 문드러진 콧구멍이 태양을 향해 코를 곤다.
이것은 바다가 변화시킨 것이다. (P94)
[에피소드 4 칼립소]
그는 책을 거칠게 안주머니에 넣고 부서진 의자형 변기에 발가락을 부딪치면서 방을 나가 냄새가 나는 곳으로 급히, 당황한 황새 같은 발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코를 찌르는 연기가 프라이팬 한쪽에서 화가 난 듯 뿜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포크 끝을 콩팥 아래에 찔러 넣어 냄비 바닥에서 떼어내 휙 뒤집었다. 약간 눌었을 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냄비에서 접시로 옮겨 얼마 남지 않은 갈색 육즙을 부었다.
자, 이제는 차를 한 잔, 그는 앉아서 빵을 한 조각 잘라 버터를 발랐다. 콩팥의 탄 부분을 잘라서 고양이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고 포크로 큰 조각을 입에 넣고 향기롭고 연한 고기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씹었다. 적당히 구워졌다. 홍차를 한 모금, 그러고 나서 빵을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 그 한 조각을 육즙에 적셔서 입에 넣었다. 어딘가의 젊은 학생과 소풍 갔다는 것은 어땠을까? 그는 옆에 놓아 둔 구겨진 편지를 펴고 천천히 읽으면서 빵을 씹고 다음 한 조각을 육즙에 적셔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P120)
[에피소드 5 로터스 이티즈]
미스터 블룸은 존 로저슨 경 부두에 줄지어 서 있는 짐마차 옆을 지나 진지한 표정으로, 윈드밀 골목, 리스크 아마인(亞麻仁) 제유(製油) 공장, 우편전신국을 지나갔다. 그 주소도 알려 주었으면 좋았을 걸. 그리고 선원 숙박소를 지났다. 그는 부둣가의 아침 소음으로부터 멀리 떠나 라임거리를 걸어갔다. 브레이디 주택지 옆에서 한 가죽 무두질 공장 직공이 찌꺼기 고기가 든 양동이를 들고, 씹어서 납작해진 값싼 담배꽁초를 피우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마에 습진 자국이 남아 있는 더 작은 여자아이가 따분하다는 듯이 낡은 통 테를 장난감으로 갖고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담배를 피우면 키가 크지 않는다고 말해 줄까? 아냐, 그대로 내버려 둬! 어차피 그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아버지를 모셔가기 위해 술집 입구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어머니에게로 돌아가요. 네, 어버지, 한밤중, 이제 사람도 거의 없잖아요. 그는 타운젠드거리를 가로질러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베셀의 무뚝뚝한 가게 앞을 지나갔다. 엘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 여기다, 알레프베셀의 집은, 그리고 그는 니콜즈 장의사 앞을 지나갔다. 장례식은 11시, 아직 시간이 있다. 이번 일은 아마도 코니 켈러허가 오닐 장의사에게 주선한 것이리라.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다. 저 코니 녀석은, ‘저 공원에서 그 애를 만났어. 캄캄한 어둠 속, 경찰이 오는 것은 아녜요? 그 아이가 말한 이름과 주소, 나는 그때 콧노래로 툴라룸 툴라룸이라고 했지.’ 분명히 그가 장례식을 주선했어. 어디라도 좋으니 값싸게 묻으면 돼, 내가 툴라룸 툴라룸, 툴라룸, 툴라룸이라고 노래하는 동안에 말야--하고 말하면서. (P132)
어쨌든 답장을 주었군. 그는 카드와 편지를 옆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한 번 병사들의 행진을 바라보았다. 트위디 영감의 연대는 이 가운데 어느 것일까? 저 퇴역 군인의, 어, 저 모피 모자와 깃털 장식이 그렇다. 아냐, 그것은 척탄병(擲彈兵)이다. 소매가 네모져 있어. 아, 저거다. 더블린 주재 왕실 저격병이다. 빨간 상의, 너무 화려하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쫓아다니지. 제복, 모집해서 훈련시키는 데에 그것이 편리해. 그들이 밤에 오코널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대한 모드 곤의 서한, 우리 아일랜드 수도의 수치야. 그리피스의 신문도 요즈음 그러한 논조지. 성병으로 부패한 군대, 해상권을 가지고, 술에 취한 기분의 제국인 것이다. 그들은 절반만 구운 빵 같은 상태다. 최면술에 걸린 것 같다. 차렷! 제자리걸음.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국왕의 연대, 국왕이 소방관이나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은 본 일이 없어. 비밀공제조합원 것은 입고 있었어도.
그는 우체국에서 천천히 나와 오른쪽으로 돌았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그것으로 일이 해결된다는 건가?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집게손가락 끝으로 봉투를 더듬더니 봉한 곳을 찾아서 찍 하고 찢었다. 여자는 조심성이 강하다는 말은 거짓말이군. 그는 손가락으로 편지를 꺼내고 주머니 안에서 봉투를 구겼다. 무엇인가가 핀으로 꽂혀 있어. 사진인가? 아마도, 머리카락? 아냐.
매코이 녀석이 왔다. 빨리 그를 쫓아 버려야지. 방해받기 싫어, 이럴 때에 사람을 만나다니, 싫다.
--여, 블룸. 어디 가는 거야?
--여, 매코이, 딱히 정한 곳은 없어. (P135)
--우리 집사람도 벨파스트의 얼스터 홀에서 열리는 화려한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를 것 같아. 오는 25일에.
--그래? 거 잘됐군. 누가 개최한 거지? 매코이가 말했다.
미시즈 마리온 블룸.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여왕님은 아직 침대에서 빵을 들고 계셔. 그리고 책이 아냐, 거무스름한 그림 패가 일곱 끗 패와 함께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나열되어 있었다. 검은 머리의 여자와 금발의 남자. 공처럼 둥글게 몸을 사린 검은 털의 고양이, 찢어진 봉투 조각.
‘사랑의
그리운
상냥한
노래가
들려오는 사랑의 오래된.......‘
--순회공연 같은 거야, ‘달콤한 노래’, 운영위원회가 있어. 비용과 이윤을 서로 나눈대, 미스터 블룸이 신중하게 말했다.
매코이는 짧게 자란 콧수염을 잡아당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좋은 소식이야.
그는 떠날 자세를 보였다.
--어쨌든 자네가 건강해서 좋았어. 어디에서든 돌아다니다가 만나겠지. 그는 말했다. (P138-139)
참 좋은 날씨다. 인생이 언제나 이러면 좋을 텐데. 크리켓 날씨. 양산 아래에 죽 앉아 있다. 시합은 차례로 잇달아, 아웃, 그들은 여기에서 승산이 없다. 6대0. 하지만 불러 주장만은 과감하게 왼쪽으로 일격을 가해 킬데이 거리의 클럽 유리문을 깼다. 도니브룩의 마을 축제 같은 것이 아일랜드 사람의 성미에 맞을 거야. 그때 매카시가 일어나자 우리는 열광했지, 열파(熱波), 오래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의 흐름은 항상 흐르고 있다. 생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밟아가는 곳이 생명의 모든 것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목욕을 즐겨야지. 깨끗한 욕조, 상쾌한 에나멜, 잠잠한 미온탕의 흐름, 이것이 나의 몸이다.
하얀 몸에 향기 나는 녹는 비누가 칠해지고 가볍게 씻긴 뒤 따뜻한 탕의 자궁 속에서 마음껏 뻗은 창백한 알몸을 그는 떠올렸다. 그의 눈은 그의 몸통을, 잔물결에 덮여 가볍게 위로 떠오른 노란 레몬빛 사지를, 육체의 싹인 배꼽을 보았다. 또 표류하는 울창한 숲의 서로 얽힌 곱슬 털, 무사한 자손의 뼈 없는 아버지 주위에 표류하는 털들, 시들어 떠도는 꽃을 보았다. (P156)
[에피소드 6 하데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 인간이야. 미스터 파워가 말했다.
마틴 커닝엄이 시계를 일부러 꺼내더니 기침을 한 차례 하고 다시 넣었다.
--가족 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최대의 불명예지. 미스터 파워가 덧붙였다.
--그건 일시적인 정신착란 때문이야. 우리는 동정의 눈으로 보아야 해. 마틴 커닝엄이 단호하게 말했다.
--자살하는 인간은 겁쟁이라고 하지 않나. 미스터 디댈러스가 말했다.
--우리 인간이 심판할 일이 아냐. 마틴 커닝엄이 받아쳤다.
미스터 블룸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틴 커닝엄의 저 커다란 눈. 그 눈은 지금 외면하고 있다. 동정심 있는 좋은 사람. 총명하고 셰익스피어의 얼굴과 비슷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것을 영아(嬰兒) 살해와 마찬가지로 생각해서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교도로 매장하길 거부한다. 옛날에는 무덤에 넣은 뒤 자살자의 심장에 나무 말뚝을 박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이 아직 파기되지 않았다는 듯이, 그러나 이미 때늦어 뉘우치는 자살자도 있을 것이다. 강가에서 수초를 움켜쥔 채 죽은 사람이 발견된 적도 있으니, 커닝엄은 내 얼굴을 보았다. 이 사나이의 지독한 주정뱅이 아내, 그는 그녀를 위해 몇 번이고 가구를 마련한다. 더욱이 매주 토요일이 올 때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이름으로 가구를 남몰래 전당포에 잡힌다. 덕분에 지옥 같은 그의 생활, 돌 심장도 견딜 수가 없지. 정말, 월요일 아침에 또 새로 사야 한다. 수레로 날라 와서, 휴, 그날 밤 그 여자는 볼만했을 거야. 그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디댈러스가 나에게 말했다. 부인은 술에 취한 채 마틴의 우산을 휘두르며 싸돌아다니고. (P174)
마틴 커닝엄이 속삭였다.
--블룸 앞에서 자살 이야기를 했을 때 어찌나 난처하던지.
--뭐라고? 어째서 그래? 미스터 파워가 속삭였다.
--그의 아버지는 음독자살하셨어. 에니스에서 퀸스 호텔을 경영하고 계셨지. 클레어에 갈 일이 있다고 이야기했었지? 기일이야. 마틴 커닝엄이 속삭였다.
--그래? 처음 듣는 이야긴데, 음독자살? 미스터 파워가 말했다.
그가 되돌아보니 생각이 깊은 음침한 눈을 한 얼굴이 추기경 묘소를 향해 뒤따르고 있었다. 이야기하면서.
--보험은 들어 있었나? 미스터 블룸이 물었다.
--그런 것 같아, 한데 보험증권을 담보로 한 빚이 많아서, 마틴이 사내아이를 아테인 가게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어. 미스터 커넌이 대답했다.
--아이는 몇이지?
--다섯. 네드 램버트가 여자아이 하나를 토드 가게에 넣어 주겠다고 말하더군.
--딱한 일이야, 어린 애들이 다섯이나 있다니, 미스터 블룸이 조용히 말했다. (P182)
그를 묻는다. 우리는 시저를 묻기 위해 왔노라, 그의 재앙일은 3월인가 6월에 있는 액날. 죽은 이는 지금 여기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알 생각도 없다.
어? 저기 매킨토시를 입은 호리호리하고 키 큰 사람은 누굴까? 누구지? 알고 싶다. 가르쳐 주면 조촐한 사례를 할 텐데. 뜻하지 않은 얼굴과 딱 마주치는 일이 많아. 인간은 죽을 때까지 줄곧 고독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할 수 있고말고. 하지만 죽은 뒤에는 누군가가 흙을 덮어 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겠지. 구멍을 본인이 팔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서로를 묻어 주고 있다. 인간만이 시체를 묻는다. 아니, 개미도 묻지, 누구라도 바로 생각해 낼 수가 있어. 죽은 자를 묻는다는 것은, 로빈슨 크루소는 자연 그대로의 생활을 했다지. 그래도 프라이데이가 있었으므로 그를 묻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모든 금요일은 목요일을 묻는 셈이다. (P194)
얼마나 많은 무덤인가! 여기에 있는 죽은 이들은 한때 더블린을 돌아다녔던 사람들이다. 신앙심이 두터웠던 이 죽은 이들. 당신들이 지금 살아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한때는 살아 있었노라.
게다가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 걸음걸이, 목소리, 그렇다. 목소리라면 축음기라는 것이 있어. 묘마다 축음기를 달아? 아니면 가정마다 두든가, 일요일 저녁밥을 먹은 뒤. 증조할아버지를 틀어 봐, 직, 직, 직!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매우 기뻐요, 직, 직, 다시 만나서 매우 기뻐요, 여보세오, 여보세요, 나는 ....... 지지직. ....... 사진으로 얼굴을 기억하는 것처럼 소리로 떠올리게 하는 거야. 사진이 없으면 15년쯤 지나선 얼굴을 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구를? 예를 들면 내가 위즈덤 헬리의 가게에 있을 무렵에 죽은 그 어떤 사람을 그랬듯이. (P202)
[에피소드 7 아이올로스]
큰 신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미스터 블룸은 편집국장의 메마른 몸에, 광택이 나는 그의 뒷머리에 감탄하면서 걸음을 멈췄다.
묘하게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본 일이 없다고 한다. 아일랜드는 나의 조국이라고 말하면서도, 칼리지 그린구(區)에 머물 뿐이다. 그는 평범한 노동자풍 편집 방식으로 온힘을 다하여 인기를 부채질했다. 주간지를 유지하는 것은 광고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기사지 관보에서 가져 온 낡은 뉴스가 아니다. 앤 여왕 서거, 서기 1천 몇 백 몇 년, 정부 관보 같은 것은, 티내친치 남작령(男爵領), 로즈낼리스에 있는 사유지,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한다. 밸리너에서 수입한 노새와 암탕나귀 수를 보고한 공문서에 의거한 표, 자연의 기록, 만화, 필 블레이크의 주간 만필, 어린이를 위한 엉클 토비 페이지, 시골 사람들의 질문란, 친애하는 편집장님. 속이 부글거릴 때 좋은 치료법은 무엇입니까? 그 난을 담당하고 싶다. 남에게 가르쳐주면서 자신도 만물박사가 된다. 인물란의 M.A.P.에는 주로 사진이 들어간다. 황금 해안의 맵시 있는 수영복 차림새, 세계 최대 기구(氣球). 같은 날에 이루어지는 두 자매 결혼식, 두 신랑들이 얼굴을 마주보고 즐거운 듯이 웃는다. 인쇄공 쿠프라니도 웃었다. 아일랜드 사람보다도 더 아일랜드적이다.
기계는 4분의 3박자로 진동했다. 덜컥, 덜컥, 덜컥. 여기서 그 사람이 졸도했을 때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언제까지나 시끄럽게 돌아가서 같은 것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찍을 것 아냐. 모두가 엉망진창이 된다. 냉정해야 한다. (P212-213)
늙은 식자공
그는 식자실을 지나서 걸어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안경을 쓴, 등이 굽은 노인 옆을 지나서, 이분이 몽크스 할아버지, 늙은 식자공이다.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기묘한 기사가 그의 손으로 식자되었는가. 사망 광고, 술집 광고, 연설, 이혼 재판, 익사자, 이제 이분 인생도 마지막에 가깝구나. 저축은행에 돈을 어느 정도 저축한 꼼꼼한 사람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착실한 사람이기도 할까? 아내는 요리를 잘하고 세탁을 좋아한다나, 딸은 거실에서 재봉틀을 밟는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차분한 아가씨, 들뜬 기분의 흉내는 싫어한다나. (P217-218)
운율과 이성
마우스(mouth)와 사우스(south). 입과 남쪽이 관계가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남쪽이 입과 관계가 있는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사우스, 파우트(pout: 입을 내밀다), 아우트(out: 밖으로), 사우트(shout: 외치다), 드라우스(drouth: 갈증). 운이 맞는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표정을 한 두 남자, 두 사람씩, 두 사람씩.
...... 라 투아 파체 (그대의 평온한 마음)
...... 케 파를라르 티 히아체 (그대가 기꺼이 말하려는 것)
...... 맨크레케 일 벤토, 코메 파, 시 타체 (있는 그대로 바람이 잠자는 그동안에도)
그는 소녀들을 보았다. 세 사람씩 서로 얽혀 녹색의, 장밋빛의, 팥빛의 옷을 입고, 붉은 자줏빛의, 자줏빛의, 저 평화로운 불꽃을, 전에 느껴보지 못한 내 가슴 속에 열정이 스며들게 하는 불꽃의 황금 옷을 입고 어두컴컴한 하늘의 지나 가까이 오는 것을, 그러나 나는 뉘우치고 무거운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노인들을 밤의 어둠 아래에서 보고 있다. 마우스, 사우스...... 툼(tomb: 무덤), 움(womb: 자궁)이다.
--반대론을 펼쳐 주게. 미스터 오매든 버크가 말했다. (P242)
[에피소드 8 라이스트리곤들]
좋은 생각이야. 키노는 시 당국에 땅값을 치르고 있을까? 물 소유권이란 어떤 것일까? 물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도 인생의 흐름 속에서 그것을 뒤쫓고 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흐름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도 광고에 이용할 수가 있다. 그 임질 치료의 돌팔이 의사는 화장실마다 광고를 냈다. 요즈음에는 볼 수 없어졌지만, 비밀 엄수인가? 의사 하이 프랭크스. 돈 한 푼 안 쓰는 점에서는 댄스 교수 마기니의 자기 선전과 같다.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될 그 건도 남에게 부탁해서 붙이든지 앞단추를 끄르면서 뛰어들어 붙이면 돼. 밤중에 남몰래. 장소도 좋고. 광고 붙이지 말 것. 110개 알약을 우편으로 보내라. 누군가 그것을 먹었더니 타는 듯했다나?
만약에 그가........ (P267)
--집을 나온 거군요! 그녀로서는 좋은 일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거기 사진관에 근무하고 있어요. 일이 바쁜 모양이에요. 댁의 아이들은?
--모두 빵 가게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미시즈 브린이 말했다.
아이가 몇 명 있었지? 지금 보아서는 아이를 밴 것 같지도 않은데.
--상복을 입으셨군요. 댁에 무슨 일이라도.....?
--아닙니다. 장례식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미스터 블룸이 말했다.
오늘은 어디를 가나 이 이야기가 나올 것 같군. 누가 죽었지? 언제 죽었지? 무슨 병으로? 귀찮을 정도로 물음을 받겠지.
--어머나. 하지만 가까운 친척은 아니겠죠? 설마. 미시즈 브린이 말했다. 동정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제 오랜 친구인 디그넘입니다. 갑자기 죽었어요. 가엾게도, 심장병인 것 같아요. 장례식이 오늘 아침에 있었습니다. 미스터 블룸이 말했다.
‘내일은 당신 장례식
밀밭을 지나갈 때
디들디들 덤덤
디들디들‘
--오랜 친구가 죽는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미시즈 브린이 여성다운 슬픈 눈으로 말했다. (P272)
[에피소드 9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그는 나의 어리석은 행동을 저당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조국을 자유로 만들기 위해 크랜리가 이끄는 충실한 위클로인(人) 일곱 명. 이빨 빠진 캐슬린, 그녀의 네 개의 아름다운 푸른 들판, 그녀 집에 있는 타국인,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그에게 인사한다, ‘스승이여, 은혜가 있으시기를’, 티나헬리시(市) 12인조, 골짜기 그늘에서 그들은 신호의 고함을 지른다. 나는 그에게 영혼의 청춘을 주었다. 밤마다. 가는 길에 조심하세요. 성공을 빕니다.
멀리건은 내 전보를 받았다.
어리석은 행동. 끝까지 해.
--우리 아일랜드의 젊은 시인들은 색슨인(人)인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견줄만한 인물을 창조해야 해. 나로서는 나이든 벤처럼 그를 거의 우상처럼 숭배하고는 있지만, 존 이글린턴이 비난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순수하게 학구적인 거야. 러셀이 그가 앉아 있는 어두운 곳에서 신탁(信託)을 내렸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인가, 제임스 1세인가, 에섹스 백작인가 하는 문제는 말야, 성직자가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실재성을 논하는 것과 같지. 예술은 우리에게 사상, 즉 형태가 없는 정신적 본질을 깨우쳐 보여줘야 해. 예술 작품에 대한 최고의 문제는, 그것이 어느 정도로 깊은 생명에서 발생했느냐에 있어. 구스타보 모로의 그림은 사상의 그림이야. 셸리의 가장 심오한 시나 햄릿의 말은 우리의 정신을 영원의 지혜, 플라톤 관념의 세계에 접촉하게 해 주고, 그 밖의 모든 것은 학생을 위한 학생의 사색에 지나지 않아. (P318)
--사람들이 그러던데 머지않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문학 사건이 일어난다죠? 퀘이커 교도 도서관장이 다정하고도 열렬하게 말했다. 소문을 들으니 미스터 러셀이 젊은 시인들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더군요. 우리는 모두 목을 빼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신경 쓰이는 듯이 원뿔꼴로 퍼지는 전등 불빛에 비쳐 빛나고 있는 세 사람 얼굴을 흘끗 바라보았다.
이것을 보라, 기억하라.
스티븐은 무릎 위 물푸레나무 지팡이 손잡이에 건, 챙넓은 낡은 모자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내 투구와 검이다. 두 개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져 보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험, 하나인가, 아니면 둘인가? 필연이란 그것 때문에 그 자체가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모자는 하나의 모자이다. (P331)
--우리 또는 어머니인 다나가 날마다 우리 육체를 짰다가 다시 풀 듯이, 예술가는 자기 마음의 영상을 짜고 또 풉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육체가 연달아 새로운 소재로 만들어져 가더라도 내 오른쪽 가슴에 있는 검은 점은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불안한 아버지라는 유령을 통해서, 죽은 아들의 모습이 나타나지요. 셸리가 말하듯이, 상상력이 강력해진 순간에 정신이 타 버린 석탄처럼 되었을 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 아마도 미래에도 존재할지도 모르는 나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자매인 미래에, 나는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대로의 나를 보게 될 겁니다. 미래에 있을 내 존재가 반영된 것으로 말입니다.
호손든의 드러먼드가 너를 그 어려운 처지에서 구해 주었다.
--그래, 미스터 베스트가 기운차게 말했다. 나는 햄릿이 꽤 젊은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어. 저 신랄한 말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도 몰라도, 오필리아에게 하는 마른 틀림없이 아들의 것이야.
어림없는 착각, 그는 내 아버지 속에 있고, 나는 그의 아들 안에 있다.
--그 반점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이니까요. 스티븐이 웃으면서 말했다.
존 이글린턴은 재미없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P335-336)
--아버지는, 스티븐이 절망과 싸우면서 말했다. 필요악입니다. 그는 그 희곡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서 몇 달 뒤에 썼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남자를, 나이가 찬 딸 둘을 둔 백발이 섞인 이 남자, ‘우리 인생의 한 가운데에서’인 35세에 이르러 마음껏 세상을 보아온 이 남자를, 비텐베르크에서 돌아온 풋내기 대학생이라고 주장한다면, 그의 일흔 살 노모는 음탕한 왕비라고 주장해야만 합니다. 천만에,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의 시신이 밤에 헤매고 다니는 일은 없습니다. 시시각각으로 그것은 썩고 또 썩어갑니다. 그는 쉬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저 신비로운 재산을 양도하고 아버지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보카치오의 칼란드리노 만이 자기가 임신했다고 생각한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입니다. 의식해서 아들을 낳는다는 뜻으로의 부성(父性)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유일한 아버지에서 유일한 아들로 전해지는 신비의 재산이자 사도로서의 상속물입니다. 교회가 건설되고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 신비성 때문이지, 교활한 이탈리아 지식인이 유럽 대중에서 던져 준 성모 마돈나상(像)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 즉 대우주, 소우주처럼 공허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입니다. 불확정한 것 위에,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것 위에 말입니다. ‘어머니 사랑.’ 그 주어진 속격, 목적어적 속격 만이 인간 생활에서의 유일한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부성은 법률적인 허구일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는 뜻에서의 아들의 아버지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고 있어, 입 닥쳐, 제기랄! 나에게는 이유가 있어. (P357-358)
[에피소드 10 방황하는 바위들]
이 소설의 바탕을 이루는 묘사법인 ‘의식의 흐름’은 떠오르는 외면과 내면의 이미지를 일어나는 순서대로 적는 것이다. 따라서 일원적 묘사가 되어 중심인물의 의식만을 쫓게 되므로 자칫 단조로워지기 쉽다. 그러나 조이스는 이 에피소드에서 다원적인 동시성의 효과를 낸다. ‘의식의 흐름’에 더하여 다른 사건, 다른 의식의 흐름을 조합한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서로 관련 없는 사건이 같이 나열되는가 하면, A장면에서 BCEF로 이어진다든가, A에피소드에 나왔던 A'가 D에도 등장한다든가, B에서 잠깐 출연했던 인물이 E에선 주인공이고, 그가 FG에선 다시 엑스트라라든가 하는 식이다. 이것들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면, 하나의 조감도적인 다원 묘사가 될 것이다. 음악으로 치자면 오케스트라이고, 인식 방법 면에서는 신의 눈이다. 자서전적인 작품이라면 원칙적으로 쓸 수 없는 방법이지만, 허구인 소설에선 이것이 가능하다.
오후 3시, 이 에피소드는 19개 장면이 오케스트라처럼 짜여 있다. (P378)
불길이 치솟는 작은 횃불 곁에서 분홍빛 두 얼굴이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누구야? 네드 램버트가 물었다. 크로티인가?
--링가벨라와 크로스헤이븐이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발판을 살피면서 말했다.
--여, 잭, 자네였나? 네드 램버트가 빛이 흔들리는 아치 사이에서 손에 들고 있던 가느다랗고 낭창낭창한 막대기를 들어 인사하면서 말했다. 이리와, 발밑을 조심해.
사제가 들어올린 손 안의 성냥은 매끄럽고 긴 불꽃이 되어 타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들 발 아래에서 그 찌꺼기가 다 타고, 곰팡내 나는 공기가 그들을 둘러쌌다.
--참 흥미롭군요! 어둠 속에서 어떤 품위 있는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고말고요, 네드 램버트가 맞장구쳤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유명한 성 마리아 수도원 회의실에 서 있습니다 1534년 토머스가 여기에서 반란의 횃불을 들었어요. 더블린에서 가장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오매든 버크가 이에 대해서 쓸 겁니다. 옛 아일랜드 은행도 합병될 때까지는 거리 저편에 있었고, 저 애들레이드거리에 유대 교회당이 설 때까지는 원래의 유대인 사원도 여기에 있었어요. 자네는 전에 여기에 온 적 없었나, 잭?
--없었어, 네드. (P397)
[에피소드 11 세이렌]
내가 위즈덤 헬리 가게에 있었을 때, 현명한 블룸, 즉 헨리 플라워(마사에게 편지 쓸 때 이름)는 댈리 가게에서 예비용 크림 색 모조 양피지 두 장과 편지 봉투 두 장을 샀다. 가정에서 행복하시지 않은 거예요? 나를 위로하려는 꽃, 가시는 찌른다. 아하, 무엇인가 뜻이 있는 꽃말, 그게 데이지였던가? 그것은 천진난만이라는 뜻이다. 미사에서 돌아오는 양갓집 아가씨를 만나다. 정말 기뻐요, 현명한 사람 블룸은 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인어(人魚)가 아름다운 파도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인어가 담배를 피운다. 무엇보다도 시원한 끽연이군, 머리칼이 흐트러지고, 사랑에 병들고, 어떤 남자를 위해, 라울을 위해, 그는 화려한 모자를 쓴 누군가를 태운 유람용 이륜마차가 멀리 에섹스교(橋) 위를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놈이다. 세 번째다. 우연한 만남이다. (P448)
그대 잃어버린 자여, 모든 노래 주제는 이거야. 블룸은 고무줄을 더욱더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잔인한 일인 것 같다. 남자와 여자를 서로 사랑하게 만들고, 유혹하고, 그러고는 서로 떼어놓는다. 죽음. 폭발. 머리를 한 대 때린다. 지옥에서 나와 또 다른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인간 삶이다. 디그넘, 음, 저 꿈틀꿈틀 움직이던 쥐꼬리. 나는 5실링을 냈다. 천국에 있는 육체. 흰눈썹뜸부기처럼 우는 소리를 내던 사제. 독 먹은 짐승 새끼마냥 부풀어오른 배. 그는 죽었다. 그들은 노래한다. 그리고 잊혀진다. 나도, 언젠가는 그녀도. 그녀를 버린다. 싫증이 나서, 괴로워한다. 흐느껴 운다. 그녀의 에스파냐 혈통의 커다란 눈이 휘둥그레 무(無)를 바라본다. 그녀의 빗질하지 않은, 무겁게 물결치는 느는느는 머리카락.
그러나 지나치게 행복하면 금세 따분해진다. 그는 점점 더 팽팽하게 잡아 당겼다. 그럼 당신은 댁에서 행복하지 않아요? 툭! 고무줄이 끊어졌다. (P470)
그녀는 아름다워 보였다. 무대의상으로 쓰는 가슴 부위가 깊이 파인 크로커스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극장에서 무엇인가 물어보기 위해 몸을 굽히거나 할 때 그녀의 숨결에선 늘 정향나무 냄새가 났다. 죽은 아버지의 책을 펼쳐 스피노자가 말한 대목을 읽어주었다. 그녀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 그녀는 몸을 굽혔다. 2층 특별석에 앉은 어떤 놈이 오페라글라스로 그녀를 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두 번은 들어야 비로소 안다. 자연과 여자는 한 번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은 전원을 만드시고, 인간은 음악을 만들었다. 윤회, 철학, 횡설수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로스 포위 공격에서 그의 아버지가, 고리에서는 형제들이 모두 쓰러졌다. 웩스퍼드로, 우리는 웩스퍼드 젊은이, 그는 갈 것이다. 그의 집안과 종족 중에 살아남은 마지막 한 사람.
나 또한 종족의 마지막 한 사람이다. 밀리는 아직 어린 학생. 그래, 내 잘못일 테지. 아들이 없다. 루디, 이젠 너무 늦었어. 그러나 혹시?
그는 조금도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다.
원한, 사랑, 그것들은 단순히 이름에 지나지 않아. 루디, 나도 곧 늙은이가 된다.
뚱뚱이 벤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훌륭한 목소리다. 리치 굴딩이 창백한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블룸에게 말했다. 곧 늙은이가 될 블룸에게, 하지만 언제는 젊었었나? (P482-483)
[에피소드 12 키클롭스]
--고급품으로 한 개 가져와, 테리. 조가 말한다.
앨프는 편지 뭉치를 뒤적이며 검은 테를 두른 애도 엽서를 보낸 녀석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놈들은 전부 이발사들이야. 블랙컨트리 출신들이지. 품삯 5파운드에다 여비까지 쳐준다면 제 아비라도 목 매달 놈들이라니까.
그가 이어서 설명하길, 교수형이 집행되면 교수대 밑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사형수 몸이 교수대 발판 밑으로 떨어지자마자 그의 양쪽 발꿈치를 잡고 아래로 끌어당겨 신속하게 숨통을 끊는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사형수를 묶었던 밧줄을 잘라 서로 나눠 가지는데, 이걸 사람들에게 몇 푼씩 받고 판다는 것이다.
검은 나라에, 복수심에 불타는 면도칼 기사들이 살았도다, 그들 손에 들린 것은 죽음의 올가미, 바로 그것이었노라. 그렇다. 그들은 그것으로, 피비린내 나는 죄 저지른 누구나, 주저 않고 저승으로 이끄노니, 이는 하느님께서 그리 하라 하셨기 때문이니라.
그렇게 해서 그들은 사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블룸이 사형제도 존재이유와 기원, 공포 효과로서의 효용가치 등에 대해 열렬하게 말하는 동안, 늙은 개는 줄곧 그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내가 듣기로 유대인 몸에서는 개들을 쫓아버리는 어떤 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정확히 어떻게 된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P515)
그리하여 수소의 눈을 가진 여신의 달 제 16일, 그리고 성 삼위일체 축일이 지난 지 3주째 되는 날에, 하늘의 딸, 초승달이 상현(上弦)달이 되었을 때 저 학식 깊은 재판관들은 법의 전당으로 갔다. 코트네이 씨는 자신의 방에 앉아 권고를 내리고, 앤드루 판사는 유언재판소에 배심원 없이 임석하여, 깊은 애도를 표하는 바인 주류상 고(故) 제이코프 핼리디 유언장에 적힌 재산, 부동산 및 동산에 관한 최종적 재산 분배에 대하여, 제1권리자 요구와 그에 반하는, 미성년자이자 정신질환이 있는 유복자 리빙스턴 측 의견을 각각 신중히 고려하고 판단했다. 이윽고 그린거리 엄숙한 법정에 매 사냥술 명수, 프레데릭 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5시께 그는 더블린 경내 및 부속영지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관한 법률위원회 법률 집행을 주관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또한 그 곁에는 대의원으로서 아이아르 12종족, 즉 패트릭족(族), 휴족, 오웬족, 콘족, 오스카족, 퍼거스족, 핀족, 더못족, 코맥족, 케빈족, 케이올트족, 오션족을 대표하는 12인이 앉아 있었으니, 모두 선량하고 진실한 사람들이었다. 프레데릭 경은 그들에게 폐하와 수감 중인 죄수 양자에 똑같이 적용되는 법률과 증거에 따라 참다운 판단을 내릴 것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성경에 입 맞추게 했다. 이어서 그들, 아이아르 종족 대표 12인 모두가 일어섰으며, 영원한 하느님 이름으로 그분의 올바름대로 행할 것을 선서했다. 곧바로, 교도관들이 성 감옥으로부터 한 사람을 끌어내 데려온 바, 이는 정의의 사냥개들이 고지(告知)에 따라 체포하여 가둔 자이다. 그자는 악인이므로 손과 발에는 수갑과 족쇄를 채웠고, 이제 기소되어 법 심판을 받게 될 터이므로, 앞으로도 그에 대한 보석 신청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녀석들이야, 그놈들이 온 덕분에 아일랜드가 빈대로 들끓게 됐으니 말이야, ‘시민’이 말한다. (P539-540)
--우리는 힘에는 힘으로 맞설 것이다. ‘시민’이 말한다. 바다 건너편에 더 큰 아일랜드가 생기지 않았어? 그들은 암흑의 47년에 고향에서 내몰렸지. 길가에 있던 그들 흙담집이며 오두막은 공성(攻城) 망치에 두들겨 맞아 허물어지고 말았어. 그리고 <타임스>지는 손을 부비며 겁쟁이 색슨놈들에게, 아일랜드에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곧 미국에 있는 인디언 정도의 인구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어. 터키 황제도 그의 돈을 우리에게 보내 주었지. 그러나 색슨 놈들, 잉글랜드 탐욕자들은 라우데자네이루에서 사들인 곡식들로 창고를 가득 채워놓고도, 본국 국민인 우리를 굶겨 죽이려 했어. 놈들은 수많은 농민들을 나라 밖으로 내몰았지. 2만 명 농민이 낡은 배 안에서 죽어 갔어. 자유의 나라로 건너가는 데 성공한 이들일지라도 여전히 이곳 압제의 나라에 대한 기억을 뼈에 새겨두고 있지. 그들은 복수심을 품고 돌아올 거야. 비겁한 자들이 아냐. 그라누엘 자손들, 캐슬린 니 훌리안 용사들은 돌아올 거라고. (P549)
[에피소드 13 나우시카]
그런데 거티가 누굴까?
친구들 근처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거티 맥도웰은 매력적인 아일랜드 소녀의 전형이라 할 만했다. 그녀를 아는 이웃 사람들은 대개 그녀가 아버지 쪽인 맥도웰 가문의 혈통보다 어머니 쪽인 길트랩 가문의 혈통을 더 많이 이어받은 것 같다고 말하곤 했으나, 어찌됐든 그녀가 미인이라는 점에는 다들 이견이 없었다. 그녀의 몸은 날씬하고 우아하며 가냘프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최근 복용하고 있는 철분제 덕분인지 예전에 위도우 웰치의 부인약을 먹던 때와는 다르게 기력을 잃고 쉬이 피로를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밀랍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상아처럼 순수하고, 어떤 영적인 기품까지 느껴지게 하는 데 비해, 장미꽃 봉오리를 연상시키는 입술은 고대 그리스적인 완벽함을 지닌 큐피드의 활과 같았다. (P578)
그때 그녀의 전신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더라면, 내가 구혼한 것도 역시 6월이었다. 세월은 흐른다. 역사는 그 자신을 되풀이한다. 너희 바위와 산이여. 우리는 그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대만의 작은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생명, 사랑 그리고 항해. 그리고 이번 것은? 물론 그 아가씨가 다리를 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너무 불쌍히 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여자들은 그것을 기회로 삼으니까 말야. (P618-619)
[에피소드 14 태양신의 황소들]
남쪽 홀리스거리로 가자. 남쪽 홀리스거리로, 남쪽 홀리스거리로 가자.
보내 주소서, 빛나는 자, 밝은 자, 호혼이여, 태동하는 자궁의 과실을, 보내 주소서, 빛나는 자, 밝은 자, 호혼이여, 태동하는 자궁의 과실을, 우리에게 주소서, 빛나는 자, 밝은 자, 호혼 선생님, 태동하는 자궁의 과실을.
오, 사내아이, 오! 사내아이, 오! 오, 사내아이, 오!
교의에 정통하고, 그리하여 고고한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늘 장식품처럼 따라붙기 마련이 ㄴ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러한 사람들이 늘 주장해 왔고, 또 세상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과 같이, 한 민족의 번영은 그 외의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서라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그 민족이 지속적인 자손번식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온당한 바, 이러한 헌신이 없는 것은 곧 악의 원인이 될 것이요, 다행히 이러한 헌신이 있다면 이는 곧 전능한 자연이 베푸는 순수한 은총의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니, 하여 이에 대해 무지한 자라면 지혜로운 인간들이 탐구함으로써 가장 유익할 것으로 간주하는 다른 어떤 주제에서도 똑같이 보잘것없는 식견을 지녔을 것이 분명하도다. (P633)
그렇다면 그는 블룸처럼 차분하거나 매든처럼 신앙심이 깊지 않았던가? 그는 둘 가운데 어느 상태든 되기를 바랐으나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하였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린 시절에 품고 있던 ‘신성(神性)’의 단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할 수는 없었단 말인가? 진정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도다. 이유인즉 이 항아리를 찾아내게 하는 ‘은총’이 없었기 때문이로다. 그렇다면 그는 저 우르릉거림 속에서도 ‘출산’이란 신의 목소리, 또는 ‘진정자’가 말하는 ‘현상’의 소음을 들었는가, 못 들었는가? 당연한 일이지만, ‘이해’의 관(管)을 마개로 틀어막지 않았다면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나니) 그는 그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도다. 진정 그는 그 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지나가는 그림자이고 보면, 반드시 때가 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장소’인 ‘현상’의 나라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으리로다. 그러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단 말인가? 그는 그것을 어떻게든 용인하려 하지 않고 ‘형상’이 명령하는 대로, ‘법칙’의 책에 의해서, 남자가 그의 아내와 함께 행하는 것과 같은 일도 하려 하지 않았도다. 그러면 그는 ‘나를 믿으라’의 땅, ‘환희’의 왕에 어울리는 땅, 죽음도 없고, 출생도 없고, 혼인도 모성도 없고, 믿는 자는 모두 온다는 그 약속의 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단 말인가? 그는 알고 있었도다. ‘경건’이 그에게 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순결’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그에게 제시하였으나,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면, 가는 도중에 용모가 아름다운 창부(娼婦)를 만나 그 이름을 물었더니, 그녀는 ‘손 안에 든 한 마리 새’라 자신을 소개하고, 그를 향해, 거기 멋진 남자여, 근사한 곳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이리 오셔요 하고 아부의 말로 유혹하여 그를 옳은 길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니 ‘숲 속의 두 마리 새’, 또는 학자가 ‘육욕’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동굴로 그를 데려가 포로로 삼았던 것이로다. (P652)
죄 또는 (세상에서 부르는 바에 따르자면) 악(惡)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 가장 어두운 부분에 숨겨진 채 그곳에서 서식하며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그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허락하여, 그것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듯 여겨, 그것들이 없었다거나 적어도 다른 것이었다고 자기를 납득시키려 한다. 하지만 별것 아닌 한마디가 그것을 불러낸다. 다양한 상황에서, 즉 환각에서, 꿈에서, 탬버린이나 하프의 소리가 그의 오감을 한창 즐겁게 해줄 때, 또는 서늘한 은색 황혼의 고요함 속에서, 또는 한밤중 술독에 빠져 있을 때, 이 환상이 나타난 것은 그 분노 앞에 굴복한 자에게 모욕을 주기위해서가 아니며, 또 살아 있는 자들과 헤어지게 하여 복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과거라는 슬픈 수의(壽衣)를 입고, 소리도 없이 멀리에서 나무라듯이 나타난다.
그 이방인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인생의 비속함에 끌리는 화자(話者) 내면의 불건전함을 신랄하게 까발리고 싶은 욕구를 참고 있는 듯한, 습관적인 것이거나 세심하게 꾸며낸 듯한 평온한 표정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과는 무관한 어떤 풍경이, 마치 장난스러운 아늑함이 담긴 말 한마디에 과거가 되살아나듯이, 실제 그런 시절이 있었기라도 한 양(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있다) 즉각적인 기쁨을 동반하며 이 관찰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P688-689)
[에피소드 15 키르케]
블룸
등골이 약간 나른하군, 가느냐 돌아가느냐? 좀 뻐근한데, 이 음식은 어쩐다? 먹으면 돼지 비계로 몸이 끈적거릴 테고, 나도 참 바보야.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1실링 8펜스, 너무 많아. (레트리버종 사냥개가 꼬리를 흔들고 킁킁대면서 차가운 콧물이 흐르는 코를 그의 손에 가까이 댄다) 개들이 나에게로 오다니 묘한 일이다. 오늘 그 짐승도 그랬고, 우선 녀석에게 말을 거는 게 좋아. 개는 여자와 같아서 우연히 만나는 것을 좋아하거든.
스컹크처럼 구린내가 나는군. 사람 취향은 가지각색, 혹시 미친개일지도 모른다. 파이도, 아무래도 움직임이 확실치가 않아. 아, 착하지, 개리오웬! (개는 벌러덩 눕더니 뭔가를 바라는 듯 앞발을 움직이면서, 음란하게 몸을 뒤틀며 검고 기다란 혀를 쑥 늘어뜨린다) 환경 탓이야, 뭔가 주고 쫓아버릴 일이다. 만약에 아무도, (그는 세터 개를 말로 꾀서 밀렵꾼 같은 걸음걸이로 살금살금 걸어, 지린내 나는 어두운 구석으로 간다. 새터 개는 그의 뒤를 따른다. 그는 꾸러미 하나를 풀어 돼지 허벅살을 던져 주려다가 그만두고, 양의 뒷다리 살을 만져 본다) 3펜스치고는 꽤 큰데, 하지만 왼손에 들고 있으니까 그만큼 힘들단 말이야. 어째서일까? 쓰지 않는 쪽은 힘이 없어진다. 에이, 줘 버려. 2실링 6펜스다. (P743-744)
스티븐
실제적인 문제로서 말하자면, 베네데토 마르첼로가 이것을 발견했는지 창안했는지는 대단한 일이 아냐. 의식(의식)이란 시인의 휴식이지. 그것은 데메테르에게 바치는 고대의 찬가(찬가)일 수도 있고, 또 유명한 ‘하늘은 주님의 영광을 선포한다’일지도 몰라. 또한 프리기아풍과 리디아풍처럼 서로 아주 동떨어진 음절 혹은 음계일 수도 있고, 또 다윗, 즉 키르케의 사원, 아니, 케레스의 사원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사제의 기도문이거나, 아니면 가령 다윗이 마구간에서 그의 수석 바순 연주자에게 가르쳐주었던 주님의 전능하심에 관한 노래 가사 같은 것일 수도 있지. 그러나 젠장, 이거 이야기가 빗나갔군. ‘네 마음대로 하라,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그는 말을 멈추고 린치의 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미소 짓더니 소리 내어 웃는다) 자네의 지혜의 혹은 어디에 달렸나?
모자
(못마땅한 듯 불쾌한 기색으로) 흥! ‘내가 옳은 건 내가 옳기 때문이다’라는 식인 건가, 여자의 논리지. 유대계 그리스인은 곧 그리스계 유대인이라느니, 양극단은 만나게 마련이라느니, 죽음은 삶의 가장 높은 형태라느니, 흥!
스티븐
자네는 내 과오나 자만, 착각을 꽤 정확히 기억하고 있군. 언제까지 배신을 눈감아 줄까? 이 숫돌 같으니라구! (P812-813)
과거의 죄들
(뒤섞인 목소리로) 그는 검은 교회의 그늘 아래서 적어도 한 명의 여자와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도로변의 비상전화 박스 안에 들어가 자신의 음탕한 부분을 드러낸 채 돌리에르거리의 미스 던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마음속으로 전한 일도 있었다. 또한 한밤중에 매춘부에게 접근하여, 볼일 및 다른 기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때는 빈집에 딸린 비위생적인 옥외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꼬드기는 언행을 일삼았다. 그런가하면 공동변소 다섯 곳에다. 정력 센 남자들에게 자신의 잠자리 파트너를 제공하겠다는 낙서를 연필로 쓰기도 했다. 그는 밤이면 밤마다 혹시나 뭘 좀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독한 악취 풍기는 황산(黃酸) 공장 근처를 배회하면서 공연히 밀회 중인 연인들 곁을 슬쩍 지나가거나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이 역겨운 돼지놈은 생강빵과 우편환을 주고 어느 더러운 창녀가 닦고 버린 휴지 조각을 얻어 와서는, 침대에 누워 황홀한 표정으로 그 구역질나는 냄새를 킁킁대며 맡지 않았던가?
벨로
(요란하게 휘파람을 불며) 말해 봐! 너의 범죄 생활 중에 가장 메스꺼웠던 외설 행위는 무엇이었지? 탁 털어놓고 말해 봐. 토해 내. 숨기지 말고 말해 봐.
(말없는 비인간적인 얼굴들이 밀려온다. 곁눈질하고,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응얼대면서, 블루훔, 폴디 코크, 1페니짜리 구두끈, 캐시디 가게의 노파, 장님 젊은이, 래리 라이노세로스, 소녀, 여자, 창녀, 기타, 그........)
블룸
묻지 말아 줘요! 우리 사이의 믿음을 생각해서, 플레즌츠거리에서 나는 단지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는 단지 그 반 정도를 생각했을 뿐으로..... 맹세코 말씀드리지만...... (P858-859)
블룸
(밤에 말을 건다)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의 불쌍한 어머니 생각이 나는 군. 그늘진 숲에서, 그 깊은 하얀 가슴, 퍼거슨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아가씨. 어딘가의 아가씨다. 더없이 행복한 일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중얼거린다) ...... 나는 어떠한 역할을 맡든, 어떠한 일을 하든, 기꺼이 따를 것이며 언제나 비밀을 지켜 결코 누설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그는 중얼거린다) 해변의 거친 모래 속에..... 닻줄을 끌 수 있을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조수가 나가고....... 들어오는 곳에서......
(말없이, 깊이 생각하는 듯이, 신경을 써서, 비밀의 열쇠를 가진 사람처럼 입술에 손을 대고 망을 보고 있다. 검은 벽을 배경으로, 한 그림자가 이튼교(校) 교복을 입고, 유리 구두를 신고, 조그마한 청동 투구를 쓰고, 손에 책을 들고 천천히 나타난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미소 짓고, 페이지에 입 맞춘다.) (P950)
[에피소드 16 에우마이오스]
무엇보다 먼저 미스터 블룸은 스티븐의 옷에 묻은 대팻밥을 털어주고, 모자와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건네준 뒤, 정통 사마리아인다운 친절을 발휘하여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때의 그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스티븐)의 정신 상태는 착란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조금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뭔가 마시고 싶다고 그가 말했을 때, 미스터 블룸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음료수는 고사하고 손을 씻기 위한 수도꼭지조차 눈에 띄지 않았으므로, 속칭 ‘마부 집합소’라 불리는 가게가 있다는 것을 바로 생각해내 거기에 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우유 탄 소다수와 탄산수 같은 음료라도 마실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떻게 그곳까지 가느냐가 문제였다. 그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분명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곁에서 스티븐이 연방 하품을 해대는 가운데, 적절한 방법이나 수단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가 보기에 스티븐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사람 모두, 특히 스티븐은 많이 취해 있었으므로, 가장 바람직한 대책은 어떤 수송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탈것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대팻밥을 털어 주는 등 몇 가지 조치를 취한 뒤, 꽤나 쓸모가 있었던, 약간 비누 냄새가 스민 손수건을 주워 올리는 것도 잊은 채, 두 사람은 비버거리를, 더 정확히 말한다면 비버 골목길을 걷기 시작하여 제철소와 몽고메리거리 모퉁이에 있는 마차 빌려주는 집, 특히 휘기가 코를 찌르는 근처까지 와서, 거기에서 왼쪽으로 꺾어, 댄 버긴 술집 모퉁이를 돌아 애미언스거리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가 거의 확신한 대로 손님을 기다리는 마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술집 안에서 술에 취해 흥을 돋우는 누군가가 예약한 것으로 보이는 사륜마차 한 대가 노스 스타 호텔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P958)
--그는 지금 곤경에 빠져 있어요. 샌드위치맨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전단 붙이는 보일런인가 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부탁해 주었으면 하더군요.
이 이야기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미스터 블룸은, 애써 회피하듯이 0.5초 정도 버킷 준설선(浚渫船) 쪽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세관 방파제에 묶여 있는 에블라나 호(號)라는 이름만 거창한 이 배는 이미 수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물건으로 보였다.
--인간은 각자 자기에게 할당된 행운밖에 붙들 수 없다고들 하지, 그런데 자네 얘기를 듣고 보니 그자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하지만 그건 그렇고, 도대체 얼마나 줬나? 내가 지나치게 캐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반 크라운입니다. 어디서든 자려면 그 정도는 필요할 테니까요.
--필요라고, 미스터 블룸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 대답을 별로 의외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야 물론 그렇겠지. 그자는 아마 언제나 필요에 쫓기고 있을 걸. 인간은 각자 자신의 필요와 노력에 걸맞은 삶을 사는 법이니까. 하지만 뭐 일반론은 제쳐 두고,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자네 자신은 어디서 잘 건가? 샌디코브까지 걷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 하지만 걸어간다 해도 웨스틀랜드거리 기차역에서 그런 소동이 있었던 이상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 아닌가, 그러니 순전히 헛수고만 할 뿐이지. 주제넘은 말을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네만, 자네는 왜 아버지 집을 뛰쳐나왔지?
--불행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스티븐의 대답이었다. (P968)
참으로 개탄스럽고 어리석다 할 만한 것은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이른바 오늘날의 사회라는 것이, 무엇보다 활력이 필요한 이 시기에, 고작 1,2 파운드의 돈이 아까워서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힐 기회를 마다하고, 특히 결혼 이후엔 꼼짝없이 가정에 붙잡혀 사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1년에 열한 달, 혹은 그 이상을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에 매여 살거늘, 적어도 가끔씩은 스트레스 많은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지 않겠는가, 가능하면 여름이 좋겠지. 자연의 여신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계절, 생명 있는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때, 고국 섬에서만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해외로 나가는 이들과 똑같이 멋진 여행 기회가 있다 할 것인데, 더블린과 그 부근, 그리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교외 지역에도 오락과 건강증진에 적합한 훌륭한 관광지가 얼마든지 있으니, 가령 풀라포우카 폭포까지는 증기철도가 다니며, 더 먼 곳으로는, 비만 내리지 않으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기에 가장 이상적인 정원이라 할 만한 위클로가 있고, 비록 교통편이 좋지 않은 지역이라 밀려드는 여행자의 수가 그 관광가치만큼 많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들리는 소문대로라면, 그 경관이 ‘장대함’ 자체라 할 정도인 더니골의 황야가 있으며, 또 반대로 비단의 기사 토머스, 그레이스 오멀리, 조지 4세 등에 얽힌 역사적 유적이나 해발 수백 피트에서 피는 석남화 덕분에 각지에서 빈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고, 특히 봄에는 마음이 들뜬 젊은이들이 그곳 절벽에서 추락하여 죽음의 통행세를 내곤 하는데--이러한 현상이 과연 우연한 사고인지, 필연적인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보아야겠지만-- 아무튼, 넬슨 탑에서 4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호스 언덕 같은 곳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요즘 유행하는 관광여행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셈인데, 기반설비 면에서도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할 것이다. (P980)
그리하여 가슴속에 담긴 것을 실컷 토해 낸 두ㅚ, 이 가공할 인물은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주어진 의자에, 무겁게 앉았다기보다, 가라앉았다.
산양 가죽은, 이 남자가 실제 그 사람이라는 가정에서의 이야기이지만, 명백하게 마음속에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빤히 들여다보이는 탄핵조로 아일랜드의 천연자원인지 뭔지 요컨대 그런 것에 대해 대담하게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장광설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신이 창조한 이 지구상에서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풍요로운 나라로, 영국보다 훨씬 뛰어나니, 석탄은 대량으로 생산되고, 해마다 600만 파운드에 이르는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데다, 버터와 달걀 또한 1000만 파운드의 수출액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으로 가난한 주민들은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시장에 나온 최상의 고기는 빼앗기니, 그런 방법으로 아일랜드의 부는 에누리 없이 잉글랜드에 완전히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의 화제는 이런 식으로 끝없이 확대되어 갔고, 그것이 사실임을 그들 모두 인정했다. 아일랜드의 토지에서는 어떤 것이라도 자란다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캐번주(州) 쪽에서는 에버라드 대령이 담배까지 재배하고 있다. 아일랜드산(産) 베이컨을 따라올것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부당한 착취가 끝까지 허용될 리는 없지, 하고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점점 더 강하게 내지르며 --그 자리의 대화를 완전히 독점하면서-- 단정했다. 그 강대한 잉글랜드가 범죄적 행위를 통해 비축한 재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반드시 심판의 날이 찾아와 언젠가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역사상 최대의 천벌을, 독일인과 일본인들에게 꽤 승산이 보이고 있으니까 말이야 하고 그는 지적했다. 남아프리카의 보어인이 파국의 발단을 만들었지. 겉만 반지레한 잉글랜드는 벌써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쓰러뜨리는 것은 틀림없이 아일랜드일 것이다. 아일랜드가 아킬레스건이니까, 하고 그는 일부러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약점을 모두에게 설명하고 --듣는 사람의 관심을 충분히 끌기 위해 부츠 뒤쪽의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전원이 즉시 이해했던 것이다-- 모든 아일랜드인을 향해 이렇게 충고했다. 모두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머물면서 아일랜드를 위해 일하고 아일랜드를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일찍이 파넬이 말한 것처럼, 아일랜드는 그 아들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필요로 하고 있다. (P996-997)
--유대인은, 그는 혼잣말처럼 스티븐의 귓전에 속삭였다. 모두를 파산시킨다며 비난받고 있네. 그런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역사가 그것을 의문의 여지없이 증명하지.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놀랄지도 모르지만, 에스파냐는 종교재판을 벌여 유대인을 몰아내는 바람에 쇠퇴의 길을 걸었네. 반면에 영국에서는 크롬웰이라는 매우 유능한 악당이, 다른 점에서는 중대한 과실을 여러 가지로 범했지만, 유대인을 입국시켰고, 그 덕에 영국은 번영할 수 있었네. 왜냐하면 그들은 천부적인 경제민족이거든, 실무에 재능이 있고, 이미 증명도 되었어. 나는 뭐 그다지 깊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네...... 이런 문제에 대해 자네는 유명한 저서를 읽었을 것이고, 게다가 정통파니까...... 하지만 종교는 제쳐 두고 경제면에 대해서만 말하면, 신부(신부)가 있는 곳에 가난이 있다는 거지, 얘기를 에스파냐로 돌리면, 이전의 아메리카-에스파냐 전쟁 때만 해도 신흥국가 미국을 못 당해내지 않던가. 터키인들도 도그마에 빠져 있어. 전사하면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면 좀 더 목숨을 소중히 했겠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천국은 교구 사제들의 사기, 돈을 우려내기 위한 엉터리 구실이지. 어쨌든 나는 진짜 아일랜드인이라네. 그는 연극조로 힘을 주어 말을 계속했다. 그 점에서는 맨 처음에 얘기한 그 무례한 남자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고, 내가 희망하는 것은, 그는 결론을 내렸다. (P1002-1003)
블룸이 이 ‘우연한 사건’을 이용해서 스티븐과 나란히, 울타리를 연결하는 철망이 벌어진 곳을 지나, 진흙투성이 큰길을 건넌 다음, 하부 가디너거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을 때, 스티븐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힘차게,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발라드의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그리고 모든 배는 난파했다네
마부는 이때,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니면 어느 쪽도 아닌 건지, 어쨌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받이가 낮은 마차에 앉은 채’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 사람은 통통하고 한 사람은 여윈,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철도교(鐵道橋) 쪽으로 걸어가는 것은 ‘마허 신부에게 가서 결혼하기’ 위해서인가. 걸으면서도 그들은 이따금 멈춰 섰다가 다시 걸으면서 ‘친밀한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남자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녀 세이렌을 비롯하여, 그것과 비슷한 온갖 현상과 왕위를 빼앗는 놈들에 대해, 역사상의 그런 종류의 사건에 대해 토론했고, 마부는 청소차라기보다 이제는 수면차가 된 마부석에 앉은 채, 멀어서 더 이상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자, 이곳 하부 가디너거리의 변두리 근처 자기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의 초라한 마차를 전송할’뿐이었다. (P1031)
[에피소드 17 이타카]
그들의 견해는 어떤 점에서 어긋났는가?
스티븐은 음식 섭취와 시민으로서의 자립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블룸의 견해에 공공연하게 다른 의견을 내세웠고, 블룸은 문학이 인간의 정신을 영원히 긍정한다는 스티븐의 견해에 암묵적으로 반대했다. 아일랜드 국민이 드루이드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시기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포티투스의 아들, 칼포누스의 아들 패트릭이 교황 켈레스티부스 1세에게 파견된 해, 곧 리어리왕의 시대인 432년인데도, 음식이 목에 걸려 슬레티에서 질식사하여 로스나리에 묻힌 코맥 맥아트(서기 266년 죽음) 왕의 시대인 260년 전후라는 시대착오를 고쳐야 한다는 스티븐의 주장에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블룸은 졸도란 빈 위장과 다양하게 섞여 들어온 알코올과 화학적 합성물이 작용함으로써 생기며, 정신운동과 느슨해진 분위기에서 갑자기 빙빙 돌아서 일어났다고 생각한 데 비해, 스티븐은 처음에는 고작 여자 손바닥만 했던 아침의 구름(서로 다른 두 관점, 샌디코브와 더블린에서 각기 목격된 한 조각의 구름)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P1036)
되풀이된 좌절은 왜 블룸을 한층 더 우울하게 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결정하는 시기에, 그는 불평등이나 탐욕이나 국가 사이의 다툼에서 생기는 갖가지 사회조건을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는 이들 조건을 없애 버림으로써 인간생활은 무한히 완벽하게 될 수 있다고 믿었는가?
인위적 법칙과는 별도로, 자연적 법칙에 따라서, 인간 존재 전체의 불가결한 부분으로서 지워진 생물학적 기본조건은 남는다. 식품을 얻기 위한 파괴와 살상의 불가피성. 개별적 존재의 궁극적 기능의 고통에 찬 성격, 탄생과 죽음에 따르는 고민, 첫 달거리 때부터 완경기에 이르기까지 유인원(類人猿)과 (특히) 인류의 여성에게 따라다니는 단순한 달거리, 바다, 광산, 공장에서의 피할 수 없는 사고, 극단적인 고통에 찬 질환과 그에 따른 외과 수술, 선천적 정신이상과 타고난 범죄성격, 집단 살육적 전염병, 공포를 인간 정신의 기반으로 만드는 파괴적인 대홍수. 인구가 조밀한 지역을 전원지로 하는 대지진, 경련적인 변용을 되풀이하면서 유년기에서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에 이르는 생명 성장의 사실.
왜 그는 어림짐작을 그만두었는가?
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은 여러 현상을 보다 더 바람직한 여러 현상으로 대체하는 것이 탁월한 지식인이 해야 할 과제였으므로.
스티븐은 이 단념에 동의했는가?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로 3단논법적으로 나아가는 의식적, 이성적 동물로서의 그의 의의, 불확정성이라는 무(無)의 바탕 위에 불가항력적으로 세워진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의 의식적, 이성적 연구 대상자로서 그의 의의를 강조했다. (P1079)
[에피소드 18 페넬로페]
나는 그이가 누구하고 무슨 짓을 하든 또 나 이전에 누구와 관계를 맺든 상관없지만 저 개망나니 하녀 메리와 한 것처럼 노상 둘이서 코끝으로 농탕치는 일은 용납 못해 그 계집애는 우리가 온타리오 테라스에 살 때 그이를 유혹하려고 엉덩이에다 물건을 넣어 부풀리고 다녔지 분 냄새가 풍기는 그런 계집애의 냄새를 맡는 건 정말 질색이야 한두 번 내가 그이를 끌어당겨서 살펴보았더니 외투에 긴 머리카락이 붙어 있어서 어쩐지 수상한 점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지 또 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그이는 물을 마시러 온 척한 적도 있었다니까 남자는 한 여자로 만족하지 않는다지만 그것은 물론 그이의 죄지 식모들을 응석 부리게 해 놓고 크리스마스 때 사정이 허락한다면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게 하자는 등 아 싫어 우리 집에선 그런 짓은 절대로 용납 못해 우리 집에서 감자와 한 다스에 2실링 6펜스 하는 굴까지 가지고 자기 큰어민ㄹ 만나러 가다니 도둑년이나 다름없잖아 그이한테 그 일과 관련해서 뭔가 있다는 것은 뻔한 일이지 꼬리를 잡은 것은 힘들지 않아 증거가 없잖아 하고 말하겠지만 그것이 그 증거지 뭐야 아 그래 그 여자의 큰어머니는 굴을 참 좋아했었어 하지만 나는 그 계집애에게 실컷 퍼부어댔지 둘이서 다정하게 있으려고 나를 외출시키려 했다니까 나야 그 두 사람 사이를 염탐하기 위해 탐정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아 그 계집애가 외출한 금요일에 그 애 방에서 가터벨트를 찾아냈는데 그것 말고 무슨 증거물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 일주일의 여유를 줄 테니 그만두고 나가라고 하자 분이 나서 붉으락푸르락 하던 그 계집애의 얼굴이란 하녀 없이 지내는 편이 훨씬 좋아 부엌과 쓰레기 처리는 질색이지만 방 같은 건 내가 치우는 게 더 빨라 어쨌든 저 계집애와 나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그이에게 말했지 (P1133-1134)
거짓이건 진짜건 사랑이란 당신의 나날과 생애를 채워 주고 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주위를 새로운 세계로 보이게 해 나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침대에서 답장을 써줄까 보다 짧게 몇 마디만 애티 딜런이 숙녀 모범 편지글에서 발췌해서 결국 곧잘 써서 보내던 길고 지겨운 글자투성이 편지 말고 재판소에서 일하는 누구라고 하던데 결국 그 남자는 그녀를 차버렸어 그래서 그때 내가 짧게 써도 된다고 말했는데 어차피 남자들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니까 이 세상 최대의 행복을 얻으려면 성급한 경솔이 아니라 간명한 솔직함이 필요해 남자들의 신청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해 정말 그 밖에 어찌할 방법이 없어 남자들에게는 그것으로 아주 족하겠지 하지만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이내 버림을 받아 재 쓰레기장 바닥에 던져지고 마니 당할 길이 없어 (P1162)
우리는 꽃이야 여자의 몸은 어디나 할 것 없이 꽃이지 그것이 그이가 이제껏 살면서 입 밖으로 낸 단 하나의 진실이었어 그리고 오늘도 태양은 당신을 위해서 비춘다고 했어 그래 내가 어떻게 그이를 좋아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이는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또 느끼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어 게다가 나는 언제나 그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내가 지닌 최대한의 기쁨을 맛보여 주었으므로 그이는 나에게 네 하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지 그렇지만 나는 처음엔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어 바다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 그이가 모르는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서 멀비와 스탠호프 씨의 일 헤스터의 일 아버지에 관한 일 늙은 그로브 대위 그리고 선원들에 대해서 부두에서 새 흉내와 항복과 접시 씻기라고 말하는 놀이를 하는 선원들 불상하게도 태양에 불타기라도 할까 봐 하얀 헬멧 둘레에 천을 늘어뜨리고 총독 저택 앞에 서 있는 보초 숄을 걸치고 커다란 빗을 꽂고 웃고 있는 에스파냐 아가씨나 그리스의 유대인 아라비안인 그 밖에 아리송한 유럽 각지에서 온 여러 인종이 모여 있는 아침 경매장 듀크거리나 라비 섀런 가게 근처의 떠들썩한 가금 시장 반쯤 잠든 채 휘청거리는 불쌍한 당나귀들 비옷을 거치고 계단 그늘에서 잠자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 우마차의 큼직한 바퀴와 수천 년 묵은 고성 그래 그리고 임금님들처럼 하얀 옷을 입고 터번을 감고 우리에게 작은 가게 앞에 앉으라고 자꾸 부르는 저 아름다운 무어인들 론다 거리 여관의 고풍스런 창들 격자창 너머의 반짝이는 눈동자 그녀의 연인은 격자창에 키스하고 그리고 밤에 반쯤 열린 술집이나 캐스터네츠 우리가 알제시라스로 가는 배를 놓친 날 밤 램프를 들고 고요하게 돌던 야경꾼들 그리고 오 저 무시무시한 깊은 급류 오 그리고 바다 때때로 불덩이가 빨갛게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바다 그리고 저 찬란한 일몰 그리고 알라마다 식물원의 무화과나무 그래 그리고 온갖 괴상한 작은 골목 그리고 담홍색 녹색 노란색의 집들 그리고 장미원 재스민과 제라늄과 선인장 그리고 내가 야산의 꽃이었던 무렵의 지브롤터 그래 안달루시아 소녀들이 하는 것처럼 내가 머리에 장미를 꽂았을 때 그러지 말고 빨간 것을 꽂을까 그래 그이는 무어인의 성벽 아래에서 나에게 강렬하게 키스했었어 그리고 나는 그이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P1196-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