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사진 단상

[2화 나무]

by 노용헌

3은 만물이 정, 반, 합을 거쳐 발전해 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3은 1과 2의 결합에서 생겨난 자식이다.

3은 삼각형을 만들어 내며 1과 2가 벌이는 싸움의 관찰자가 된다.

3은 입체를 뜻한다. 세계는 3이 있음으로 해서 부피를 갖는다.

3은 1과 2 사이에 관계를 맺어 주고 그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내리의 허름한 술집이다. 막걸리와 고갈비를 먹으러 왔다. 고갈비는 특별하거나 비싼 음식이 아니어서 쉽게 구워준 술 안주겸이다.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서울집에 들렸다. 뒤늦게 합류한 광한이가 부리나케 들어왔다. 라이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서,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나만 빼고 먹는 건 아니지?” 영수가 3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숫자 중에서 3을 가장 좋아해. 그 이유는 3이라는 숫자가 가장 완벽한 숫자이거든. 3은 삼각형을 뜻하기도 하고, 삼각형은 가장 완벽한 도형이야, 건물은 4각형으로 지으면 쓰러질 수 있지만 삼각형은 웬만해서는 쓰러지지 않아. 그래서 아마도 피라미드나, 고구려의 장군총도 삼각형이고, 마야 문명의 신전, 치첸 이트사(Chichen Itza)도 그렇잖아. 상형문자인 산(山)이나 나무(木)도 그래. 산을 그릴 때 봉우리 하나만 그리는 것보다는 3개를 그리고, 나무 木의 한자도 풀어보면 나무가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 같아 보이지 않어?. 나무의 구성은 뿌리, 몸체, 머리 이렇게 나눌수 있고, 사람도 마찬가지고,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세계관도 사실 3이란 구조이거든. 우리 세 사람이 추구하는 것도 보도, 순수, 광고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영수에게 3이란 숫자는 남다른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어떤 것에도 3이란 숫자로 많이 생각해왔어, 삶의 기준 또한 3으로 정했지. 나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세 가지 기준이야. 첫째, 돈을 많이 주던가, 둘째, 그 회사 사람들이 좋던가, 셋째, 둘 다 아니면 내 사진을 할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카메라 예술개론에서 사진의 특성도 기록성, 우연성, 고립성이라고 말하잖아. 나는 이것에는 좀 다르게 생각하지만, 사진의 특성은 라이팅(Lighting), 타이밍(Timing), 프레이밍(Framing)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사람도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이 있다고.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사진 또한 그러해. 그것이 기본이지. 사진을 배울 때 내 사부는 이렇게 말했어, 일단 기본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기본이 말이야. 첫째 초점을 잘 맞춘다. 둘째, 노출을 적정으로 한다. 셋째, 화이트밸런스(Whitebalance)를 정확하게 지킨다, 였어. 기본이 되있지 않으면 수평수직도 못 맞추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구나, 너에게 3은 매력적인 숫자이구나, 꿀이 파리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제 3의 뭔가가 있구나.” “둘이 만나다, 셋이 되면 제 3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냐?” 셋이 같이 웃었다. “그보다는 우리 둘의 만남에서 한명이 끼어든 것 아니여?” “세 명이 모이니까, 시끄럽기만 하구만.”
“우리 만남은 어떤 만남일까?”

“만남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우리 동네 신부님이 말씀하신 거야, 첫째는 생선 같은 만남, 이 만남은 비린내 나는 생선처럼 만지기만 하면 역겨운 비린내가 배어 버리는 만남이야. 다시 말해 만나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서로가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원한을 남겨, 오래 갈수록 더욱 부패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것이야. 둘째는 꽃과 같은 만남, 이 만남은 만나면 향기가 나고 좋아 어쩔줄 모르지만 금세 시드는 만남이래. 풀은 쉬 마르고 꽃은 10일을 넘지 못하듯이, 꽃과 같은 만남은 풋사랑을 의미하고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는 그런 만남을 말하고, 셋째는 손수건 같은 만남이 있대. 상대가 슬플 때 눈물을 닦아 주고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인 양 축하하고, 힘들 때는 땀도 닦아주며 언제나 함께 하는 만남을 말해.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와 같은 만남이고, 한 번의 만남으로 삶 자체가 바뀔 수 있는 운명적인 만남이지.”

서울집 벽면에는 허름한 사진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액자 속의 사진은 나무 사진이었다. 흑백으로 된 소나무 사진이었다.

해리 카라한의 나무.jpg

“저 사진 누가 찍은 것인지 아니?”

“잘 모르겠는데, 소나무 찍은 사진가가 한둘이 아니잖아.”

“어떤 사진가는 자신만 사진을 찍고 나서 금강송을 배어버렸다고 하잖아. 완전 자신밖에는 찍은 사람이 없고, 누구도 다시 그 나무를 찍을 수 없는 것이지. 이건 나무에 대한 폭력을 넘어서는 거야. 아마도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어떨지 모르겠어.”

살가도의 나무 04.jpg

“나무를 찍는 사진가들이 많지, 보도 사진가 중에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나무 사진도 좋고, 메리 엘렌 마크의 나무나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나무도 좋아. 나는 살가도의 나무 사진중에서 죽어가는 듯한 고목인 나무와 그 앞에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아 뼈만 앙상한 어린아이의 사진은 그야말로 푼크툼(punctum)이었어. 내 뇌리에 꽂히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지. 꿈에서도 나올듯한.”

“광고 사진가들도 나무 찍은 사람 있어. 광고사진가 김중만도 나무를 찍었고, 앤젤 아담스도 나무를 찍었지. 제리 율즈만도, 해리 카라한도 나무 사진 좋아.”

“그러네, 나무를 주제로 사진 찍은 사람들 많네.”

“내가 아는 선배도, 요즘 작업이 천년나무, 오래된 나무, 보호수, 당산나무 등을 찍고 있어.”

나무는 우리 주변에 많다. 그리고 사진에 남겨지는 나무들도 많다. 나무는 사람의 인생에서 오랜 친구이다. 사람이 태어나서는 한옥집에서도, 마당에도, 나무가 있고, 죽어서는 나무로 된 관에 덮여 죽는다. 나무는 훨씬 오래 산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야 백년이지만, 나무의 수명은 몇 천년을 산다. 단, 사람이 베어내거나 하지 않는 한, 어떠한 고난에도 홀로 버텨나간다. 그리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 세계에서 제일 가장 나이 많은 나무는 5,484살(2022년 기준)인 칠레 노송나무 그란 아부엘로(Gran Abuelo)라고 한다. 인간에서 산소도 주고, 숲도 만들어 주고, 그늘도 만들어주어 쉴 수도 있는 그런 나무에게 사람은 정말 위해(危害)스런 존재이다. 브라질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나무 250만 그루를 심어 열대우림을 몸소 실천한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나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사진가이다. 한쪽은 나무를 단지 불쏘시개로 여기지만, 한쪽은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처럼, 존경스런 사람들도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철학가도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술을 한잔 하니 얼굴은 벌겋게 되었지만, 말은 더 많아지는 듯 싶었다.

“증자는 하루에 세 가지 반성을 했다고 하는군.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를 반성하고, 둘째, 친구와 이웃에게 신뢰를 얻으며 살고 있는가를 반성하고, 셋째는 오늘 배운 것을 내 몸에 익혔는가를 반성한다고 말했어.”

“일단 모든 생각을 접고, 멈추면 보인다고 하니까, 판단중지(epoche)하자. 그리고 술값은 내가 계산하고 파장(罷場)하자.”

살가도의 나무 01.jpg 살가도의 나무
메리 엘렌 마크의 나무.jpg 메리 엘렌 마크의 나무
앙리 까르띠에 브레쏭의 나무.jpg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나무
앤젤 아담스의 나무 01.jpg 앤젤 아담스의 나무
제리 율즈만의 나무.jpg 제리 율즈만의 나무
박수근의 나무.jpg 박수근의 나무
안성 죽주산성ROH_7780.JPG 안성 죽주산성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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