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년의 고독> 2024년
원작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후에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되어, 소설 발매 이후 47년만의 첫 영화(One Hundred Years of Solitude)로 만들어졌다.
[1]
항상 자연의 섭리 저 멀리, 심지어 기적과 마술 너머까지로 엉뚱한 상상력을 펼치곤 하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그 쓸모없는 발명품이 땅 속에 있는 황금을 캐내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했다. 정직한 남자였던 멜키아데스가 그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그런 덴 소용이 없어요.” 그러나 그 닷ㅇ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집시들이란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나귀 한 마리와 염소 한 쌍을 그 자석 쇠붙이 두 개와 맞바꾸었다. 기울어진 가산을 불리기 위해 그 동물들에 의지하고 있던 아내 우르술라 이구아란도 남편을 단념시키지 못했다. “우린 곧 집을 다 덮고도 남을 만한 황금을 갖게 될 거요.” 남편이 대꾸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달 동안 갖은 애를 다 썼다. 그 쇠붙이 두 개를 질질 끌고, 큰소리로 멜키아데스의 주문을 읊조리면서 강바닥까지 포함해 일대를 샅샅이 훑었다. 그가 발굴해 냈던 것이라고는 녹이 잔뜩 슬어 각 부분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 같은 15세기 갑옷뿐이었는데, 그 안에서는 돌이 가득 담긴 거대한 호리병에서 나는 것과 같은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탐험대의 남자 넷이 그 갑옷을 뜯었는데, 그 안에는 여자의 곱슬머리카락에 매단 구리 로킷을 목에 건, 석회처럼 변한 해골 하나가 들어 있었다. (P12-13)
“지구는 둥글지, 마치 오렌지처럼.”
우르술라는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미치려거든 당신 혼자서나 미쳐요. 하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집시 같은 생각들을 애들에게 주입시키려 하진 말아요.” 그녀가 소리를 질러댔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아내의 필사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겁을 먹지 않고 담담하게 있었는데 그녀는 격분을 참지 못해 천체 관측의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부숴버렸다. 그는 천체 관측의 하나를 다시 만든 뒤 마을 남자들을 골방으로 불러 모아놓고는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론을 전개하면서 동쪽을 향해 계속 항해하면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판단력을 잃어 버렸다고 믿게 되었을 즈음 멜키아데스가 도착해 시시비비를 가려주었다. 그는, 비록 그 당시까지는 마꼰도에 알려지지 않은 이론이라 할지라도 이미 실증이 된 이론 하나를 순전히 천문학적 사색을 통해 정립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총명함을 사람들 앞에서 칭찬했고, 찬탄의 표시로 마을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선물 하나를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게 주었다. 그것은 바로 연금술 실험실이었다. (P17)
작업대에 올려놓은 물 냄비가 가열을 하지 않았는데도 반 시간씩이나 끓더니 마침내 물이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들은 납득은 할 수 없었지만 물질의 계시라고 해석하면서 놀라움과 기쁨에 젖어 그런 현상들을 관찰하곤 했다. 어느 날 아마란따가 들어 있는 광주리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겁에 질린 아우렐리아노의 면전에서 방 안을 한 바퀴 돌자 아울렐리아노가 서둘러 그 광주리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기다리던 일이 곧 벌어질 거라 확신한 채 광주리를 본래 위치에 갖다 놓고는 어느 책상 다리에 묶어놓았다. 그때 아우렐리아노는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쇠붙이는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니라.”
행방불명된 지 거의 다섯 달이 지났을 무렵 우르술라가 갑자기 돌아왔다. 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어 더 젊고, 활달한 모습으로 도착했던 것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그 충격을 가까스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그가 소리쳤다. “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는 그렇게 되리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실험실에 틀어박혀 재료를 다루는 동안 마음속 깊이 고대하던 기적은 현자의 돌을 발견하는 것이나, 쇠붙이에 생명을 주는 영기를 불어넣는 것이나, 집에 있는 경첩과 자물쇠들을 황금으로 바꾸는 권능이 아니라, 방금 전에 일어났던 바로 그 일이어야 한다고 기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르술라는 남편만큼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치 한 시간쯤 자리를 비우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의례적인 키스를 하고 나서 말했다.
“문 밖으로 나가 봐요.” (P61-62)
그들은 정말로 불면증이라는 병에 걸려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식물의 의학적인 효과에 대해 배웠던 우르술라는 바곳으로 몰약을 만들어 모두에게 먹였지만,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눈을 뜬 채 꿈을 꾸었다.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그 혼미한 상태에서 그들은 자기 자신의 꿈 속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몇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꿈 속에 나타난 이미지들까지 보곤 했다. 그래서, 집 안이 손님들로 꽉차 있는 것 같았다. 식당 한 구석에서 자신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레베까는 흰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셔츠의 목 깃을 황금 단추로 잠근, 자기와 영락없이 닮은 남자 하나가 장미꽃 한 다발을 가져다주는 꿈을 꾸었다. 그 남자와 함께 있던, 손이 가냘픈 여자가 장미 한 송이를 따 레베까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우르술라는 레베까의 꿈에 나타난 그 남녀가 레베까의 부모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았어도, 그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확신을 굳혔을 뿐이었다. (P74)
그러나 방문객은 그의 거짓 태도를 눈치챘다. 방문객은 주인이 지니고 있는 증세는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건망증이 아니라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다른 기억상실증, 죽음과도 같은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그 자신이 그로부터 잊혀져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열어 안에서 수많은 플라스크들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 하나를 꺼냈다. 그가 희읍스름한 액체를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게 마시게 하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머릿속에 기억력이 되살아났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가 싶더니, 이윽고 이름표들을 단 물건들이 있는 우스꽝스러운 응접실 안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고, 벽에 씌어 있는 터무니없는 바보짓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무엇보다도 기쁨으로 충만된 눈부신 빛 속에서 그 방문객을 알아보았다. 그는 멜키아데스였다. (P80)
사실, 은판 사진을 찍던 십이월의 어느 청명한 아침,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금속판에 자신의 얼굴이 박힘에 따라 몸이 점점 쇠잔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우르술라는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손자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싫어 은판 사진 찍는 일만은 극구 사양하긴 했지만, 기묘하게도 입장이 바뀌어서, 과거에 멜키아데스에 대해 지니고 있던 불쾌감을 떨궈버리고 멜키아데스에게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고 결정한 사람 역시 우르술라였듯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머리에서 두려움을 뽑아내 버린 사람도 바로 우르술라였다. 사진을 찍는 날 아침 우르술라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얼굴에 분을 발라준 뒤 아이들이 멜키아데스의 현란한 카메라 앞에서 약 이 분 동안 몸을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 있도록 하기 위해 각자에게 뼛국물을 고아 만든 달콤한 시럽을 한 숟갈씩 먹였다. 꼭 한 번밖에 찍은 일이 없는 그 가족 사진에서 아우렐리아노는 검은 벨벳 옷을 입고 아마란따와 레베까 사이에 끼어 있었다. 수년 후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섰을 때의 그 축 늘어진 모습과 뭔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 그 사진에도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는 아직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지 못했었다. (P81-82)
레베까가 얼마나 비통해했는지는 아우렐리아노만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오후 우르술라가 혼수 상태에 빠진 레베까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사이 아우렐리아노는 마그니피꼬 비스발, 헤리넬도 마르께스와 함께 까따리노의 가게로 갔다. 그 동안 가게 건물은 확장이 되어 회랑 하나에 나무로 지은 방들이 쭉 늘어서 있었는데, 그 방들에는 시든 꽃 냄새를 풍기는 여자들만이 살고 있었다. 아코디언과 드럼을 갖춘 악단이 몇 년 전에 마꼰도에서 사라졌던 프란시스꼬 엘 옴브레가 만든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세 친구는 발효시킨 구아라뽀를 마셨다. 나이는 엇비슷하지만 세상물정에는 아우렐리아노보다 더 밝은 마르니피꼬와 헤리넬도는 여자들을 무릎 위에 앉혀놓고 익숙한 솜씨로 술을 마셔댔다. 여자들 가운데 이를 금으로 씌우고 몸이 푹 삭은 여자 하나가 아우렐리아노에게 애무를 해댔는데 소름이 쫙쫙 끼칠 정도였다. 그는 그 여자를 물리쳤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레메디오스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데서 오는 고통은 더 잘 참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몰랐다. 친구들과 여자들이 무슨 말인지 전혀 들리지 않는 말들을 하고,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손짓들을 하면서 무게도 부피도 없는 듯 번쩍거리는 빛무리 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P105-106)
“우리는 물에서 태어났지.” 언젠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멜키아데스는 고장난 자동 피아노를 고치기 위해 감동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그날 밤과, 표주박과 야자 열매 기름으로 만든 둥그런 비누를 수건에 싸 겨드랑이에 끼고 아르까디오와 함께 강으로 갈 때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집안에서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지냈다. 어느 목요일, 강으로 목욕하러 가려고 그를 막 부르려 했을 때 아우렐리아노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싱가포르의 모래톱에서 열병으로 죽었지.” 그날 멜키아데스는 강물에 들어갔다가 위험한 장소에 잘못 발을 들여놓아 행방불명이 되었고, 이튿날 수킬로미터쯤 떨어진 강 하류 모퉁이 모래 언덕에서 발견되었는데, 그의 배 위에 커다란 암탉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친정 아버지가 죽었을 때보다도 더 요란스럽게 울어대던 우르술라의 완강한 항의를 뿌리치면서까지 멜키아데스를 매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멜키아데스는 불멸의 인간이야. 그는 스스로 부활하는 법을 발견했어.” 그가 말했다. 그는 잊고 있었던 관형 로(管形 爐)에 불을 붙여놓고 조금씩 조금씩 푸른색 물집이 번져가고 있던 시체 옆에서 수은이 든 냄비를 끓이기 시작했다. 돈 아뽈리나르 모스꼬떼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묻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건강까지 위험하다는 사실을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게 과감하게 상기시켰다. “멜키아데스는 살아 있으니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그렇게 대꾸를 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시체에 거무죽죽한 꽃이 피듯 여기저기서 파열되기 시작했고, 희미한 파열음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증기로 가득 찬 집안에 울려퍼졌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그렇게 절차를 끝마친 다음에야 멜키아데스를 매장하는 걸 허락했지만, 아무렇게나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꼰도의 가장 위대한 은인에게 걸맞는 예우를 하라고 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장례식이었고, 마마 그란데의 사육제 같은 장례식이 거행된지 한 세기가 지난 다음, 그 장례식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조객이 모인 장례식이었다. (P114-115)
“난 레베까와 결혼할 거요.” 삐에뜨로 끄레스삐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치터를 어느 학생에게 넘겨주고 수업을 끝내버렸다. 악기들과 태엽 달린 인형들이 가득 찬 큰 방에 단 둘이 있게 되자 삐에뜨로 끄레스삐가 말했다.
“레베까는 당신 여동생이잖아요.”
“그런 건 상관없소.” 호세 아르까디오가 대꾸했다.
삐에뜨로 끄레스삐는 라벤더 향수를 뿌린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건 자연의 법도에 반하는 일이에요. 게다가 법이 그걸 금지하잖아요.” 삐에뜨로 끄레스삐가 설명했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창백한 안색에 비하면 그 말은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았다.
“자연의 법도에 내 똥을 처발라 버리겠소, 난 당신이 레베까를 찾아가 뭘 따지고 하는 수고를 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찾아온 거요.” 호세 아르까디오가 말했다. 그러나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눈이 젖어드는 것을 본 순간 그의 야만적인 행동이 누그러졌다.
“좋소, 당신이 좋아하는 게 우리 가족이라면, 그래 아마란따를 차지하시오.” 호세 아르까디오가 목소리를 바꿔 말했다.
니까노르 신부는 일요일 강론에서 호세 아르까디오와 레베까가 오누이 사이가 아니라고 밝혔다.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던 우르술라는 신혼부부가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는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P144-145)
“재혼을 하게나, 아울레리또. 내겐 자네가 선택할 만한 딸이 여섯이나 있잖은가.” 장인이 그에게 말하곤 했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언젠가 돈 아뽈리나르 모스꼬떼는 평소 자주 하던 여행에서 돌아와 국내 정세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파들은 전쟁에 뛰어들 작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아우렐리아노는 자유파와 보수파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아주 혼동스런 인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장인이 그에게 체계적인 강의를 해주곤 했다. 돈 아뽈리나르 모스꼬떼는 자유파들은 공제 비밀 결사회원들ㅇ이며, 신부들을 처형하고, 민사(民事) 결혼과 이혼 제도를 도입하고, 서자도 적자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중앙 정부로부터 권한을 박탈하는 연방 제도 안에서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에 찬성하는 악질적인 사람들이라고 아우렐리아노에게 설명하곤 했다. 반면에 보수파들은 신에게서 직접 권리를 부여받아 공공질서를 확립하고 가정 윤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신앙과 권위의 원칙을 수호하는 사람들이며, 나라가 지방자치제 형태로 분열되는 것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인도주의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던 아우렐리아노는 서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자유파의 입장에 공감했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이념들을 가지고 어쩌다 전쟁이라 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P148-149)
“전쟁이 터졌다!”
사실, 전쟁은 이미 석 달 전에 터졌었다.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 사실을 제때에 알았던 사람은 돈 아뽈리나르 모스꼬떼뿐이었지만, 그는 군대가 마꼰도를 기습 점령하러 오고 있을 때도 그 얘기를 아내에게조차도 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동이 트기 전 노새가 끄는 대포 두 문을 이끌고 소리 없이 마을로 들어와서 학교에 진을 쳤다. 오후 여섯시부터 통금이 실시되었다. 전보다 더 심한 가택 수색이 집집마다 행해졌는데, 이번에는 농기구들까지 압수해 갔다. 그들은 노게라 박사를 질질 끌어내 광장에 있는 나무에 묶어놓고는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총살시켜버렸다. 니까노르 신부는 공중부양의 기적을 행해 군 당국자들을 감동시키려 했다가 어떤 병사의 총 개머리판에 맞아 머리가 깨져 버렸다. 자유파들의 흥분은 소리 없는 테러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P155)
아울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서른두 차례 무력 봉기를 일으켰고, 모두 실패했다. 열일곱 명의 여자에게서 각각 열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큰아들이 서른다섯 살이 되기 전에 그들은 단 하룻밤에 하나씩 하나씩 모두 살해되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열네 번의 암살 기도와 일흔세 번의 매복 공격과 한 번의 총살형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말 한 마리를 죽일 만한 분량의 마전(馬錢) 독을 탄 커피를 마시고도 살아났다. 공화국 대통령이 수여한 훈장을 거절했다. 전국의 관할권과 지휘권을 지닌 혁명군 총사령관의 직위에 오르게 되었고,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 되었지만, 절대로 남들이 자기 사진을 찍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다음 나라에서 주는 종신 연금을 거절했으며, 늙을 때까지 마꼰도에 있는 작업실에서 조그만 황금 물고기를 만들며 살아갔다. (P158-159)
아르까디오도 같은 식으로 레베까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 순간에 총연(銃煙)에 그을린 총구들이 그를 겨누었고, 그는 멜키아데스가 읊어대던 교황의 칙서 같은 글들을 한 마디 한 마디 들었으며, 교실 안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처녀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의 발자국 소리를 느꼈고, 죽은 레메디오스의 콧구멍에서 느꼈던 것과 동일한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을 자기 콧구멍에서도 느꼈다. “이런 제기랄! 딸을 낳게 되면 이름을 레메디오스라 지으라고 할걸 그랬군.”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는 날카로운 발톱에 몸이 찢길 찰나에 처해 있는 것처럼 평생 자신을 괴롭혔던 온갖 공포감에 다시 사로잡혔다. 대위가 발포 명령을 내렸다. 아르까디오는 허벅지를 지지고 있는 것 같은 뜨거운 액체가 어디에서 흘러내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겨우 가슴을 내밀고 머리를 들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씨팔 자식들!” 그가 소리쳤다. “자유파 만세.” (P182-183)
정부와 야당이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공동 선언을 발표한지 열흘 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서쪽 국경 지대에서 첫 번째 무력 봉기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숫자도 얼마 안 되고 무기도 변변히 갖추지 못한 그의 부대는 일주일도 채 못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해를 통틀어, 자유파와 보수파가 타협에 성공했음을 국민들이 믿도록 애를 쓰고 있는 사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일곱 차례에 걸쳐 봉기를 시도했다. 어느 날 밤, 그가 스쿠너 한 척을 타고 가서 리오아차에 포격을 가하자 리오아차 경비대는 리오아차에서 가장 유명한 자유파 열넷을 침대에서 끌어내 총살시켜 버렸다. 그는 국경에 있는 세관 하나를 보름 이상 점령했고, 그곳에서 소위 전면전을 전국에 지시했다. 여러 번의 원정 가운데 한번은 수도 외곽 지역에서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천오백 킬로미터 이상 되는 미개척지를 횡단하겠다는 무모한 유혹에 빠져 석 달을 밀림 속에서 헤매기도 했다. 언젠가는, 마꼰도에서 채 이십 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정부군 정찰대에 쫓겨, 수년 전 아버지가 시꺼먼 뼈대만 남은 스페인 범선 한 척을 발견했던 그 마법에 걸린 지역에서 아주 가까운 숲속에 은신해야만 했다. (P217-218)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로께 까르니세로 대령에게 군사재판을 서두르라는 임무를 부여했고, 자신은 보수파 정권 하에서 원상태로 돌아갔던 체제를 송두리째 갈아엎는 과격한 개혁을 단행하기 위한 진을 빼는 과업에 매진했다. “우리는 당의 정치인들보다 앞서가야 하네. 그들이 현실에 눈을 떴을 때 우리가 과연 무엇을 이루어놓았는지 보게 될테니까 말이야.” 그가 참모들에게 말하곤 했다. 지난 백년 동안의 토지 소유권에 관한 것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했던 것도 바로 그때였는데, 철저하게 검토해 가던 그가 형 호세 아르까디오의 합법화된 범죄 행위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는 단 한번의 펜 놀림으로 호세 아르까디오의 소유권을 말소시켜 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마지막 예의를 표하려는 듯 업무를 한 시간 동안 미뤄둔 채 자신의 결정을 알리기 위해 레베까를 찾아갔다. 한때 그가 억누르고 있던 사랑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곤 하던 은밀한 친구이자, 자신의 고집으로 그의 생명까지 구해 주었던, 집안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그 외로운 미망인은 과거에 대한 하나의 스펙트럼이었다. 손까지 검은 옷으로 뒤덮은 채 재가 되어버린 가슴을 부여안고 사는 그녀는 전쟁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P235-236)
몇 년 후, 죽음이 임박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침상에 누워 첫아들을 보려고 침실로 들어갔던 유월의 어느 비오는 날 오후를 회상해야 했다. 비록 아이가 힘없이 울기만 하고, 부엔디아 집안의 특성을 전혀 지니고 있지 못했다 해도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호세 아르까디오라 부를 거요.” 그가 말했다.
작년에 그와 결혼한 아름다운 여인 페르난다 델 까르삐오가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우르술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내성적이었지만 머리가 뛰어난 반면에,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충동적이며 담이 컸으나 어떤 비극적인 운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구분이 불가능했던 경우는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울렐리아노 세군도뿐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적에 서로 너무나 닮았고, 똑같이 장난이 심해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조차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P269-270)
[2]
아울렐리아노 세군도가 빼드라 꼬떼스가 받은 모욕을 보상하기 위해 그녀에게 마다가스카르의 여왕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게 한 사건으로 인해 그의 결혼은 두 달 만에 파경을 맞을 뻔했다. 페르난다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신혼 가방들을 다시 꾸려 작별 인사도 없이 마꼰도를 떠나버렸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늪 지대로 가는 길에서 그녀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수없이 간청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끝에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놓고는 정부(情婦)를 포기했다.
자기 능력에 대해 알고 있던 빼뜨라 꼬떼스는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그를 사나이로 만들었었다. 그녀는 그가 아직 어린애였을 때, 머릿속에는 환상적인 생각이 가득차 있고, 현실과는 그 어떤 접촉도 없었던 그를 멜키아데스의 방에서 끌어내 세상 한 부분을 가르쳐주었다. (P9-10)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수많은 발명품에 현혹된 마꼰도 사람들은 어느 것에서부터 놀라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아우렐리아노 뜨리스떼가 두 번째 기차여행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기계로 불이 밝혀지는 창백한 전구를 쳐다보면서 꼬박 밤을 세웠고, 그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퉁퉁퉁 소리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번창해가던 장사꾼 브루노 끄레스삐가 사자머리처럼 생긴 매표소가 있는 극장에서 비춰주던 생생한 영상을 보고 분개했는데, 그 이유는 한 영화에서는 죽어 땅에 묻혀 그들이 애도의 눈물까지 흘려 주었던 인물이 다음 영화에서는 아라비아인으로 바뀌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배우들의 흥망성쇠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2센따보씩 냈던 관객들은 그런 엄청난 우롱을 참을 수가 없어 극장 의자들을 부숴버렸다. 마꼰도 시장은 돈 브루노 끄레스삐의 소청에 따라 영화는 환각 기계이므로 관객의 과격한 감정 표출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포고문을 통해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를 죽이는 그런 설명을 듣고 나서 자신들이 집시들의 새롭고 화려한 장사의 제물이 되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고생으로도 이미 실컷 울었는데 가상 인간들의 위장된 불행을 보고 흘릴 눈물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서 다시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P37-38)
우르술라가 언제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년에 이르러 이제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을 때도, 그저 나이가 들어 기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완전히 장님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우르술라는 그 사실을 호세 아르까디오가 태어나기 전에 알았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시력 감퇴인 줄 알고 남몰래 골수로 만든 시럽을 마시고, 눈에 벌꿀을 바르곤 했지만, 이내 자신이 대책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는데, 마침내는 마꼰도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을 때도 그 광채만 볼 수 있을 뿐 전기라는 발명품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자신이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곧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이 될 것 같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백내장의 후유증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기존의 기억을 이용해 계속해서 물건들을 볼 수 있도록 물건들 사이의 거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아내는 공부를 조용히 집요하게 했었다. 나중에는 얘기치 않게 냄새들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어둠 속에서는 부피나 색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힘으로 구분되었고, 그녀를 체념으로 인한 수치심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구원해 주었다. 그녀는 방 안의 어둠 속에서도 바늘에 실을 꿰고, 옷에 단춧구멍을 낼 수 있었고, 우유가 언제 끓을 것인지도 알아냈다. (P69)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아우렐리아노 형제들의 몸이 무덤 속에서 채 식기도 전에, 마치 죽은 형제들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저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또 그토록 많은 골머리를 썩히고, 그토록 많은 작은 동물 모양의 캐러멜 과자를 팔아 마련한 그 미치광이들의 집이 타락의 쓰레기장으로 변하도록 예정되어 있기라도 한 듯이 벌써 집에 다시 불을 환하게 밝히고, 술주정꾼들을 잔뜩 불러모아 아코디언을 켜고, 샴페인에 푹 젖어 있곤 했다. 우르슬라는 호세 아르까디오의 짐을 꾸리는 동안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차라리 그 즉시 무덤 속에 드러누워 자기 몸 위에 흙을 뿌리도록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자문하기도 했으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그 많은 슬픔과 고통을 치르게 하시는데, 혹시 인간이 쇳덩이로 만들어졌다고 믿고 계시는 거냐고 주저없이 하느님에게 묻곤 했다. 그녀는 묻고 또 물으면서 자신의 혼돈스러운 생각들을 휘저어 나갔고, 밖으로 뛰어나가 외국인들처럼 횡설수설 떠벌이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과, 완전히 체념에 버리고 온갖 것들에 한꺼번에 똥을 싸갈기고, 인고의 한 세기 내내 꾹 억누르고 있어야만 했던 무수한 상소리들을 가슴속으로부터 한껏 퍼부어대겠다고 수도 없이 갈망했다가 수도 없이 연기시켰던 그 순간을 갖고 싶다는, 한순간의 반역을 꾀하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 (P75-76)
사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그로 하여금 총살형을 집행하는 광경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형수의 그 애처럽고도 약간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남은 삶 동안에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를 병영으로 데려갔던 그 새벽 이후로는 그 집의 구성원이 아니었으며, 결코 다른 집의 구성원도 될 수 없었다. 그날 새벽 그가 보았던 것은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일 뿐만 아니라 유년 시절의 유일한 기억이었다. 다른 기억, 즉 눈부신 창문 앞에서 신기한 얘기를 들려주곤 하던, 시대에 뒤떨어진 조끼를 입고 까마귀 날개처럼 생긴 차양이 달린 모자를 쓴 노인에 대한 기억은 어느 시절에 있었던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노인에 대한 기억은, 실제로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 주었고 늙어가면 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그 기억을 더욱 가까이 데려오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 더욱 또렷하게 되돌아오곤 하던 그 사형수에 관한 기억과는 달리 결코 교훈을 주지도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희미한 기억이었다. (P91)
그 무렵이었다. 아마란따가 죽기 불과 얼마 전, 한 남자에게 미쳐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잠깐 동안 제정신을 차린 메메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때 그녀는 카드 점을 치는 여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몰래 그 여자를 찾아갔다. 삘라르 떼르네라였다. 삘라르 떼르네라는 메메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순간부터 무엇 때문에 자기를 찾아왔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앉아라. 난 부엔디아 집안 사람의 미래를 알아보는 데 카드 같은 건 필요없다.” 삘라르 떼르네라가 메메에게 말했다. 메메는 그녀가 자기 증조할머니인지 모르고 있었고, 그 이후로도 평생 모르고 지냈는데, 그 점쟁이가 바로 백 살 먹은 증조할머니였던 것이다. 삘라르 떼르네라가 사랑에 빠짐으로써 생긴 불안감은 침대 위에서만 해소시킬 수 있는 법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뒤에도 역시 메메는 그녀가 자기 증조할머니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삘라르 떼르네라가 밝힌 것은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의 관점과도 같았으나, 메메는 그것이 노동자 고유의 불순한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 간주하고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메메는 남자들이란 일단 식욕을 채우고 나면 조금 전의 배고픔을 부인하는 성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한 가지 형태의 사랑은 다른 형태의 사랑을 말살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128-129)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대가 쟁의의 중재자 역할을 떠맡게 되었지만, 화해를 도모하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마꼰도에 도착하자마자 총을 한켠에 내려놓고는 바나나를 잘라 기차에 싣고 수송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던 노무자들은 일할 때 쓰는 마체떼 이외에는 별다른 무기도 없이 숲으로 뛰어 들어가 그 파괴 행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노무자들은 농장 가옥들과 매점을 불태우고, 군인들이 기관총을 발사하면서 재개했던 기차의 운행을 저지하기 위해 철로를 파괴하고, 전신, 전화 케이블들을 잘랐다. 도랑들은 피로 물들었다. 전기 장치를 해놓은 거대한 닭장 같은 철조망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던 브라운 씨는 군대의 보호하에 자신과 동포들의 가족과 함께 마꼰도에서 빼내져 안전 지대로 인도되었다. 상황이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처절한 내란으로 번질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정부는 노무자들에게 마꼰도로 집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소집령에 따르면, 도의 민,군 총책임자가 쟁의를 조정하기 위해 돌아오는 금요일에 마꼰도에 도착할 거라는 것이었다. (P147-148)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비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집에서 잠을 자야 했었는데, 오후 세시가 되었을 때까지도 비가 멎기를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몰래 전해 준 얘기를 듣고 그는 당장 멜키아데스의 방에 있는 형을 찾아갔다. 그 역시 학살 사건이라든가 시체를 싣고 바다 쪽으로 간 기차에 대한 형의 악몽은 믿지 않았다. 전날 밤, 역을 떠나라는 명령에 따라 노무자들이 역마차를 타고 평화롭게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리는 정부의 특별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그 포고령은 노조 지도자들이 위대한 애국심을 발휘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두 가지 것으로 국한시켰다는 내용 또한 밝혔는데, 그것은 의료 서비스의 개혁과 숙소에 변소를 짓는 것이었다. 나중에 퍼진 얘기에 따르면, 군 당국자들이 노무자들의 동의를 받아낸 후 그 사실을 브라운 씨에게 보고하러 갔더니, 그가 새로운 요구 조건들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쟁의의 해결을 축하하기 위한 공공 연회를 사흘 동안 열 돈을 내놓겠다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군 당국자들이 그 합의서의 서명일을 언제로 발표할 거냐고 그에게 물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창문을 통해 번개가 번쩍대는 하늘을 쳐다보더니 아주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비가 그치면 할 거요. 비가 오는 동안 우린 모든 활동을 중지하잖소.” 그가 말했다. (P156)
사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트렁크들 속에서 좀먹은 여왕 의상을 발견한 뒤로 페르난다는 자주 그 옷을 입었었다. 거울 앞에서 여왕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도취해 있는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미쳐 있지 않았다. 단지, 옛날이 그리워 그렇게 차려입은데 불과했던 것이다. 맨 처음 그 옷을 입었던 순간, 그녀를 여왕으로 만들고자 집을 찾아온 군인들의 군화에서 나던 그 구두약 냄새를 다시 느꼈고, 잃어버린 꿈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자신의 영혼이 투명해졌기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늙고, 너무 쇠진되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낀 그녀는 가장 나빴던 시절로 기억되는 것까지 그리워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복도에 있는 오레가노의 진한 향기와, 해질 무렵 장미 나무들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그리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짐승 같은 성질까지도 얼마나 필요했던 것인가를 깨달았다. 일상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받았던 가장 강력한 타격에도 부서지지 않고 견디어온 그녀의 완고하고 황폐한 마음도 처음으로 밀려왔던 향수로 인해 무너져버렸다. 그녀는 흘러가는 세월이 자신을 황폐화시킬수록 쓸데없이 자주 슬픔에 젖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고독 속에서 인간미를 띠어갔다. (P231-232)
삘라르 떼르네라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고, 그가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노라고 고백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 가장 오래된 눈물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래, 아가,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누구인지 내게 말해 보렴.” 그녀가 그를 위로했다.
아우렐리아노가 삘라르 떼르네라에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말했을 때, 그녀는 갑작스럽게 비둘기들이 구구구 울어대는 소리처럼 들렸던 옛날의 그 너털웃음을 뱃속으로부터 터뜨렸다. 그녀에게는, 비록 뚫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부엔디아 가문 남자의 마음속에는 신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가문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서서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해서 회전하는 하나의 바퀴라는 사실을 한 세기에 걸친 카드 점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녀가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네가 어디에 있든지, 그녀는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P276-277)
겨울밤이면 벽난로에서 수프가 끓고 있는 사이, 마꼰도에서 고향의 겨울날 벽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수프와 커피 장수가 커피 사라 외치는 소리와 봄에 잠시 날아들던 종달새를 그리워했듯이, 책가게 뒷방의 더위와 먼지를 뒤집어쓴 아몬드나무들에 쨍쨍 내리쬐던 햇살과 낮잠 시간에 졸면서 듣던 열차의 기적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다. 두 개의 겨울처럼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두 종류의 향수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그 뛰어난 비현실 감각을 상실했고, 마침내, 모두에게 마꼰도를 버릴 것을, 이 세계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신이 가르쳐주었던 것을 모두 잊을 것을, 호라티우스에게 똥을 싸버릴 것을,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 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 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권고하고 말았다. (P285-286)
당시 아우렐리아노는 가브리엘이 몽파르나스의 노천 까페에 봄의 연인들이 가득 찰 때가 되어야만 벗곤 하던, 목 긴 스웨터를 입은 채, 로카마두르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죽어야 했던 그 삶은 꽃양배추 거품 냄새가 나는 방에서 낮에는 자다가 밤에는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식들이 점점 너무나 불확실해졌고, 학자에게서 오는 편지들도 너무나 산발적으로 도착했고 우울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아우렐리아노는 아마란따 우르술라가 남편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버려, 두 사람은, 유일하고 영원한 일상 현실은 사랑뿐이었던 한 공허한 세계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P291)
모든 가능성을 다 조사해 본 결과, 단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페르난다가 아우렐리아노의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그가 추잡한 이야기들만 기억나게 하는 빼뜨라 꼬떼스의 아들이라 믿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한 가정(假定)은 두 사람의 영혼을 공포로 뒤틀리게 했다.
자신이 아내의 남동생일 거라는 확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아울렐리아노는 눅눅하고 좀이 슨 장부 속에서 자신의 혈통을 증명할 만한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집을 빠져나와 사제관으로 갔다. 그가 찾아낸 가장 오래된 세례 증명서는 니까노르 레이나 신부가 초콜릿으로 행하는 속임수를 통해 신의 존재를 실증하려 애쓰면서 돌아다니던 시절 그 신부에 의해 사춘기 때에 세례를 받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것이었다. 자신이 열일곱 명의 아우렐리아노들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르른 그는 그들의 출생 기록을 대장 네 권을 뒤져가며 훑어보았으나 그들의 세례 날짜들은 그의 나이에 비해 너무 오래전 것들이었다. (P294-295)
그와 같은 시간의 위협을 알게 된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무절제한 간통으로 배태된 아이를 세상에서 충실한 사랑으로 맞이하고자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최후의 몇 달을 보냈다. 밤에 침대에서 서로 포옹을 하고 있으면, 달빛 아래에 있던 개미들이 시끄럽게 설쳐대는 소리도, 좀벌레들이 시끄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도, 옆 방들에서 잡초들이 자라나는 지속적이고 선명한 바스락 소리도 그들을 겁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죽은 자들이 배회하는 소리에 자주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창조 법칙와 싸우고 있는 우르술라, 위대한 발명이라는 환상만을 좇고 있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기도하고 있는 페르난다, 전쟁과 작은 황금 물고기 때문에 실망해 난폭해지고 있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요란법석한 파티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정작 고독으로 괴로워하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강한 집념은 죽음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곤충들이 인간에게서 막 빼앗고 있던 그 불행 가득한 낙원을 또다른 미래의 동물들이 그 곤충들로부터 빼앗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이제 유령이 된 두 사람이 계속해서 서로 사랑하게 될 거라는 확신으로 다시 행복해졌다. (P297-298)
아우렐리아노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혼수 상태에 빠져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경이로운 순간에 멜키아데스가 남겨둔 결정적인 해결 코드들이 그에게 떠올랐고, 인간의 시간과 공간에서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양피지의 헌사(獻辭)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아우렐리아노가 자신의 삶 속에서, 죽은 자들과 그들의 고통에 대해 잊어버렸던 이때처럼 통찰력 있게 행동했던 적은 평생 단 한번도 없었는데, 그는 그때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자신의 운명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페르난다가 세상의 그 어떤 유혹에도 자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십자형 널빤지들을 모든 문과 창문에 다시 대고 못질을 해버렸다. (P303)
그는 너무나 깊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불어온 바람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 강력한 회오리바람으로 인해 돌쩌귀에서 문들과 창문들이 떨어져나가고, 동쪽 회랑의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집 토대가 뿌리째 뽑혀버렸다. 그는 그때 비로소 아마란따 우르술라가 자신의 누나가 아니라 이모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꼰도는 이제 분기탱천한 묵시록적 허리케인에 휘말려 한 곳으로 모인 먼지와 허섭스레기들로 이루어진 공포의 소용돌이가 되어 있었는데, 그때 아우렐리아노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과거 사건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열한 쪽을 건너뛰었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 순간을 해독하기 시작해, 시간 순서에 따라 앞으로 해독해 나갔으며, 양피지의 마지막 쪽을 해독하는 행위에서는 그 자신이 말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하듯 자기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다. (P305)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내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내게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친 상간에 의해 고착되어 있는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시피, 고독과 더불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근친상간이다. 사실 <백년의 고독>은 동시에 <백년 동안의 근친상간>으로 치환될 수 있을 정도로 라틴 아메리카 문화에 가장 깊숙이 내재된 두가지 현실, 즉, 고독과 근친상간의 문제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부엔디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가장 뚜렷하게 특징 짓는 것은 바로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한 가족에 속하는 근친 상간에의 유혹이며, 그들 모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근친 상간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런 근친 상간의 내면에 바로 고독이 존재한다. (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