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에피소드 원-작아진 명탐정> 2017년
영화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2011), <셜록 홈즈: 비밀의 열쇠>(2010), <셜록 홈즈: 마지막 흡혈귀>(1993), <셜록 홈즈: 협박의 대가>(1992), <챨톤 헤스톤의 셜록 홈즈>(1991), <셜록 홈즈의 네 사람의 서명>(1987), <셜록 홈즈: 명탐정 등장>(1976), <셜록 홈즈: 공포의 연구>(1965), <셜록 홈즈의 일등 신랑감>(1993), <셜록 홈즈의 바스커빌가의 개>(1988), <셜록 홈즈의 악마의 조력자들>(1990)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2024), <명탐정 코난 VS 괴도 키드>(2024), <극장판 루팡 3세 VS 명탐정 코난>(2014), <명탐정코난: 하이바라 아이 이야기~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2023), <명탐정 코난: 코난 실종사건-사상 최악의 이틀>(2015), <명탐정 코난: 진홍의 수학여행>(2021), <명탐정 코난: 교토 신선조 살인 사건>(2012), <명탐정 코난: 비색의 부재증명>(2021)
<셜록 홈즈: 주홍색 연구>는 기묘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명탐정 셜록 홈즈와 의사 존 왓슨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추리소설의 고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주홍색 연구>에서 처음으로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치밀하고 사건의 속도감과 긴박감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했기에, 수많은 독자들은 셜록 홈즈가 실제 인물이고 코난 도일은 사건을 전달하는 대리인일 뿐이라 여겼다.
<셜록 홈즈: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셜록 홈즈 시리즈 중 가장 사랑받은 이야기이다. 아서 코난 도일은 종군기자인 플레처 로빈슨과 대화를 나누던 중 시골에 나타나는 포악한 검은 개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01년 잡지 〈스트랜드〉에 첫 회가 실렸을 때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빙 둘러쌀 정도로 독자들이 길게 줄을 섰고, 평소 16만 부 정도를 발행했던 잡지는 30만 부라는 경이적인 발행 부수를 기록했다.
영화 <셜록 홈즈>(2009)는 전직 뮤직비디오 감독인 가이 리치가 메가폰을 잡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각각 셜록 홈즈와 존 왓슨으로 분하여 감각적인 액션신과 원작,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모습을 기묘하게 잘 반영한 캐릭터 연출을 넣어 만들어낸 영화이다.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다른 장르로 각색되었다. 첫 시도는 1893년의 셜록 홈즈 패러디극 〈시계 아래서〉였다. 1899년에는 아서 코난 도일을 공동 작가로 내세운 〈셜록 홈즈〉가 무대에 올라 대성공을 거두었다. 1900년에는 〈당황한 셜록 홈즈〉라는 49초짜리 영화도 공개되었다. 지금까지 셜록 홈즈 영화는 100편이 넘게 만들어졌다. TV드라마는 1937년 〈세 명의 개리뎁 씨〉가 처음이었고, 1953년에는 〈셜록 홈즈의 새로운 모험〉 39편이 방영되었다.
그 밖에 라디오, 드라마, 만화, 보드 게임과 퍼즐, 컴퓨터 게임 등으로도 셜록 홈즈의 모험은 계속되었다. 가장 최근 만들어진 작품으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한 영화 〈셜록 홈즈〉 시리즈가 있고, 배경을 현대로 바꾼 영국 드라마 〈셜록〉이 있다. 미국에서는 〈엘리멘터리〉라는 제목으로 셜록 홈즈 드라마를 만들었다. 배경은 현대이고, 왓슨이 여성으로 바뀌었다. 셜록 홈즈를 숭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셜로키언’이라고 부른다.
아예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은 홈즈는 그런 경우만 아니면 대개 늦게까지 잠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아침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는 벽난로 앞 깔개 위에 서서 어제 찾아왔던 손님이 깜박 잊고 간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품질이 좋고 가느다란 나무 지팡이는 머리 부분이 볼록한 모양인, 흔히 ‘페낭 변호사’라고 알려진 종류였다. 손잡이 바로 아래에 폭이 3센티미터에 가까운 넓은 은제 띠가 들려 있었다. ‘M.R.C.S. 제임스 모티머스에게, C.C.H.의 친구들이’라는 글귀가 1884라는 연도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이 든 개업의들이 들고 다닐 법한 품위 있고 견고하며 든든해 보이는 지팡이였다.
“왓슨, 뭐 좀 알아냈어?” (P9)
“지팡이에는 한두 가지의 확실한 단서가 있어. 그것들을 기초로 몇 가지 추론을 해볼 수 있지.”
“내가 빼먹은 것이 있나? 못 보고 넘어간 게 있을 리가 없는데?”
나는 약간 거들먹거리며 물었다.
“친애하는 왓슨, 안됐지만 자네가 내린 결론 대부분은 틀린 것 같아. 아까 자네가 나를 자극한다고 한 표현은, 솔직히 말하면 가끔 내가 자네의 잘못된 의견을 듣고 생각하다가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는 말이었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자네 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어. 지팡이의 주인은 시골에서 의사로 일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아주 많이 걸어 다니기도 해.”
“그럼 내가 옳았군.”
“거기까지지.”
“그게 전부잖아.”
“아니야. 왓슨. 전혀 그렇지 않다고. 예를 들어 난 이 지팡이는 사냥 모임이 아니라 병원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해. 머리글자가 C.C.인 병원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채링 크로스’가 떠오르니까 말이야.”
“그럴 수도 있군.”
“그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만일 내 말을 기초로 가설을 세운다면 우리는 미지의 방문자를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추측해 볼 수 있겠지.” (P12-13)
“자, 이 지팡이의 주인이 병원에서 정식 의사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어. 그런 직위에서 일한다면 런던에서 꽤 알아주는 사람일 텐데 굳이 시골로 흘러들어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럼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 병원에서 일했지만 정식 의사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내과나 외과에서 레지던트로 일했을 거야. 의대를 갓 졸업한 학생과 크게 다를 것 없겠지. 그런데 지팡이에 새겨진 날짜에 따르면 불과 5년 전에 병원을 떠났어. 결국 자네가 말하는 중후한 중년의 개업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붙임성 좋고 야심도 없는 데다 넋을 놓고 다니는 20대의 젊은 친구가 떠오르게 되는 거야. 이 친구가 키우는 개는 대충 테리어보다는 크고 마스티프보다는 작겠군.”
셜록 홈즈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히고는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동그란 모양으로 뿜어냈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개에 관해서는 내가 확인할 수가 없어. 하지만 최소한 이 사람의 나이나 경력 등 몇 가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아.” (P14)
“정확하게 말하면 1742년입니다.”
모티머 박사가 가슴 안쪽 주머니에서 문건을 꺼냈다.
“찰스 바스커빌 경은 가문에서 전해 내려온 이 문서를 제게 맡기셨습니다. 그분이 3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끔찍한 죽음을 당했을 때 데번셔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저는 그분의 개인적인 친구이자 주치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력이 강하고 빈틈이 없으며 실용적이고 저와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 문서의 내용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런 식의 최후가 찾아왔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홈즈는 손을 뻗어 문서를 받아 들더니 무릎 위에서 펼쳤다.
“이걸 봐, 왓슨. S를 길게 혹은 짧게 쓴 모습이 보이지? 이런 것도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어.”
나는 홈즈의 어깨 너머로 누런 종이에 흐리게 쓴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맨 위에 ‘바스커빌 저택’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에는 커다란 글씨로 ‘1742’라고 휘갈겨 쓴 것이 보였다.
“뭔가를 설명한 글처럼 보이는군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스커빌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을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하지만 박사께서 제게 상담하고자 하는 내용은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까?” (P22)
“....찰스 경이 사망하던 날 밤, 시신을 발견한 집사 배리모어는 마부인 퍼킨스를 제게 보내 연락을 했습니다. 저는 마침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던 터라 사건이 벌어진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스커빌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배심원들에게 제공된 모든 사실을 직접 조사하고 확인할 수 있었지요. 저는 발자국을 따라 산책로를 걸어갔습니다. 찰스 경이 잠시 머문 것으로 보이는, 황야로 통하는 문 주변도 확인했습니다. 그곳 이후부터 발자국 모양이 변한 것도 맞습니다. 부드러운 땅바닥 위에는 배리모어를 제외한 누구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갈 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시신도 살펴봤습니다. 찰스 경은 엎드린 채 양팔을 뻗고 있었는데 손끝으로는 땅바닥을 움켜쥔 것 같더군요. 끔찍한 장면에 놀란 듯 제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찡그린 모습이었습니다. 물리적인 외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배리모어의 진술 가운데 한 가지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신 주변의 땅에서 아무 흔적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찾아냈습니다. 약간 멀어진 곳이었지만 아주 선명했고 최근에 생긴 자국이었습니다.”
“발자국이었나요?”
“그렇습니다.”
“남자의 발자국이었습니까?”
모티머 박사는 잠깐 우리를 이상한 표정으로 보더니 속삭이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는 대답했다.
“홈즈 씨, 그것은 거대한 개의 발자국이었습니다.” (P36-37)
“그럼 과학으로 단련되신 박사께서는 그것이 초자연적인 일이라고 믿으시나요?”
“저도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홈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지금까지 벌였던 조사는 모두 이 세계에 한정한 것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악에 맞서 싸웠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악마에 도전하는 일은 너무 지나친 야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개의 발자국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건 인정하시죠?”
“전설에 등장하는 개도 실제로 존재하니까 사람의 목을 물어뜯었겠죠. 그렇지만 악마 같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박사님은 이제 초자연주의자가 다 되셨군요. 모티머 박사님, 말씀해 보십시오. 그런 생각이라면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지금 박사님께서는 찰스 경의 죽음을 조사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하면서 동시에 제게 그 일을 맡아달라고 말하고 계시잖습니까?”
“조사를 해달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P43)
“그런데 이제 이런 이상한 편지가 호텔에 있는 내게 날아들었고요. 이것도 서로 연관이 있는 일 같습니다.”
“황야에서 벌어지는 일을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군요.”
모티머 박사가 말했다.
“게다가 그 사람이 경께 위험을 경고하는 걸로 볼 때 악의를 품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홈즈가 말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목적에 따라 내게 겁을 줘 쫓아버리려는 것인지도 모르죠.”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티머 박사님, 이렇게 여러 가지 흥미로운 추리를 할 수 있는 사건을 접하게 해주셔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헨리 경께서 바스커빌 저택으로 가는 것이 좋은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가문의 악령 때문에 위험하다는 겁니까, 아니면 인간들이 나를 노리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글쎄요. 그 점을 우리가 알아내야겠죠.”
“어느 쪽이든 내 대답은 정해졌습니다. 홈즈 씨, 지옥의 악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조들이 남겨 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대답입니다.”
헨리 경은 미간을 찌푸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말했다. 마지막 자손에게도 바스커빌 가문의 불같은 성격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P66-67)
“찰스 경으로부터 재산을 받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눈길로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1,000파운드를 물려 받았으니까요.”
모티머 박사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도 있나요?”
“조금씩 받은 사람들은 많고, 자선단체에는 꽤 큰 금액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헨리 경에게 상속된 겁니다.”
“그 나머지가 얼마나 되죠?”
“74만 파운드입니다.”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금액인지는 미처 몰랐군요.”
홈즈는 깜짝 놀라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찰스 경이 부자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저희 역시 그분의 남긴 유가증권을 조사할 때까지만 해도 재산이 그렇게까지 엄청날 줄은 몰랐습니다. 부동산까지 포함한 전 재산은 거의 100만 파운드에 가깝습니다.”
“원, 세상에! 그 정도면 누구든 필사적으로 덤벼들 수 있겠군요.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모티머 박사님. 여기 우리의 젊은 친구분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고 가정해 보죠. 불쾌한 가정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렇다면 재산을 누가 물려받게 됩니까?”
“찰스 경의 막내 동생인 로저 바스커빌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재산은 먼 친척인 데스먼드 가문이 물려받게 됩니다. 나이가 지긋한 제임스 데스먼드는 웨스트몰랜드에서 성직자로 일합니다.” (P80-82)
“자, 클레이턴. 오늘 아침 이 집을 살펴본 다음 나중에 리전트가로 두 신사를 따라간 손님에 관해 전부 말해 보게.”
마부 사내는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다.
“이미 전부 알고 계시는데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손님은 자기가 탐정이라면서 저더러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봐, 이건 아주 중대한 일이야. 혹시라도 내게 뭔가 숨긴다면 아주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될 거야. 손님이 자기가 탐정이라고 했다고?”
“네, 그랬습니다.”
“언제 그렇게 말하던가?”
“가시면서 그랬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고?”
“이름을 말해 주었습니다.”
홈즈는 내게 흐뭇하다는 듯한 눈길을 던졌다.
“아, 이름을 말하고 갔다고? 경솔한 행동이군,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
“셜록 홈즈라는 탐정이라던데요.”
마부가 말했다.
나는 내 친구가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는 놀라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 방 먹었군, 왓슨. 꼼짝없이 당했어. 나만큼이나 치고 빠지길 잘하는 녀석이야. 이번에는 멋지게 당한 거야, 그러니까 그자의 이름이 셜록 홈즈였다는 건가?” (P88-89)
“이 집에는 여자가 두 명밖에 없습니다. 주인님.”
배리모어가 대답했다.
“한 사람은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로 다른 건물에서 잡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제 아내인데, 그 사람이 그런 소리를 냈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햇빛이 잘 드는 긴 복도에서 배리모어 부인의 얼굴을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덩치가 크고 무뚝뚝하며 입매가 단호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그러나 벌게진 눈과 부어오른 눈가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밤에 운 사람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가 울었다면 남편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집사는 들통이 날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여자는 밤중에 왜 그리 비통하게 울었을까? 창백하고 잘생긴 얼굴에 검은 수염이 난 사내의 주위로 이미 의심스럽고 음침한 기운이 모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찰스 경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도 그였다. 그리고 우리는 당시의 정황을 모두 배리모어의 말에 의존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가 리전트가를 달리는 마차에서 본 얼굴이 혹시 배리모어는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수염이 똑같은 것 같았다. 마부가 설명한 대로 보자면 배리모어의 키가 조금 큰 것 같지만 그런 상황에서라면 충분히 착각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한 점 의혹도 없이 확인할 수 있을까? 당연히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그림펜의 전신국 국장을 만나 첫 번째 전보를 배리모어 본인의 손에 전달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어떤 쪽이든 나는 셜록 홈즈에게 보고할 내용을 얻어낼 수 있을 터였다. (P109-110)
“그 가문을 노리는 악마 개에 대한 전설은 물론 아시죠?”
“들었습니다.”
“이곳 농부들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 말이나 잘 믿습니다. 황야에서 그런 짐승을 본 적이 있다고 맹세라도 하겠다며 너도나도 나설 지경이거든요.”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눈빛을 보니 훨씬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찰스 경은 온통 그 이야기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이죠?”
“너무 신경이 쇠약해진 상태였으니 아무 사냥개나 나타났어도 그분의 병든 심장은 견뎌내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그분이 마지막 날 밤에 산책로에서 뭔가를 보긴 봤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심장이 약한 걸 알고 있었기에 혹시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고 계셨죠?”
“친구인 모티머가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개가 실제로 찰스 경을 뒤쫓았고, 그래서 그분이 놀라서 죽었다는 건가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저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셜록 홈즈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P114-115)
“황야는 기묘한 곳이라니까요!”
“무슨 소리죠?”
“농부들은 바스커빌가의 개가 먹이를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한두 번 들었는데 이렇게 크게 들어본 것은 처음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는 내 가슴이 서늘했다. 넓고 완만하게 펼쳐진 들판과 군데군데 작은 숲들이 보였다. 움직이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두 마리가 우리 뒤쪽에 있는 바위산 꼭대기에서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선생은 배울 만큼 배운 분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으십니까? 저렇게 이상한 소리가 나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내가 물었다.
“늪지대는 가끔 기묘한 소리를 내곤 합니다. 진흙이나 물이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겠죠.”
“아니, 아닙니다. 아까 그 소리는 살아 있는 존재였어요.”
“혹시 그랬는지도 모르죠. 혹시 알락해오라기가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굉장히 희귀한 새입니다. 영국에서는 거의 멸종했을 정도죠. 하지만 황야 지대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설사 아까 우리가 들은 소리가 마지막으로 남은 알락해오라기의 울음이라고 해도 저는 놀라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으스스하고 기이한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봅니다.” (P120-121)
중간쯤에 황야로 통하는 쪽문이 있는데, 찰스 경이 담뱃재를 떨어뜨렸다는 곳이지, 나무로 만든 하얀 문에는 걸쇠가 달려 있어. 쪽문 너머는 넓은 황야야.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자네가 추측한 대로 상상해 보려고 애써 보았어. 그곳에 서 있던 찰스 경은 뭔가가 황야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걸 목격한 거야. 아주 무서운 존재여서 그는 제정신을 잃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는 기진맥진해지고 극도의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죽고 만 것이지. 그가 뛰어 달아나던 길고 음침한 터널 같은 산책로가 보였어. 뭘 보고 달아난 걸까? 황야에 있는 양치기 개일까? 아니면 유령처럼 보이는 까맣고 조용하고 괴물처럼 큰 사냥개일까? 인간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을까? 창백한 얼굴을 하고 늘 조심스러워하는 배리모어는 뭔가 다 알고 있을까? 모든 것이 흐릿하고 막연해. 하지만 범죄의 어두운 그림자가 늘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어. (P137)
그렇게 작은 수수께끼 하나는 풀었지. 늪에 빠져 버둥거리던 우리는 뭔가 바닥을 밟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 이제 우리는 왜 스테이플턴이 여동생에게 구애하는 사람을, 그것도 헨리 경처럼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신랑감을 못마땅해하는지 알게 된 거야. 이제 뒤엉킨 타래에서 내가 찾아낸 다른 실마리로 넘어가 보지. 밤에 들린 울음소리. 눈물로 얼룩진 배리모어 부인의 얼굴 그리고 서쪽 창문으로 몰래 접근하던 집사 이야기야. 내 친구 홈즈, 축하해 주게. 그리고 자네의 대리인으로서 내가 실망스럽지 않다고 말해 달란 말이야. 자네는 나를 이곳으로 보낼 때 가졌던 믿음을 후회하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은 하룻밤의 수고로 깨끗하게 해결되었어. (P154-155)
“그럼 당장 이 집에서 나가.”
“그러겠습니다. 주인님. 그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죠.”
“너는 오명을 안고 떠나야 할 거야. 맙소사.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네 가족은 우리 가문과 100년을 한 지붕 아래서 살았어. 그런데 나를 상대로 못된 계략을 꾸미다 들키다니.”
“아닙니다. 주인님. 주인님을 해치려는 게 아니에요!”
여자의 목소리였어. 배리모어 부인이 남편보다 더 하얗게 질리고 두려움에 찬 얼굴로 문가에 서 있더라고. 숄을 걸치고 치마를 입은 모습은 얼굴에 드러난 강렬한 표정만 아니라면 꽤나 우스운 꼴이었을 거야.
“우린 가야 해, 엘리자. 모든 것이 끝났어. 짐을 싸라고.”
집사가 말했어.
“아아, 존.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나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주인님, 저 때문이라고요. 남편은 오직 저를 위해서 일을 벌인 겁니다. 제가 매달렸기 때문이에요.”
“당장 말해 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제 불쌍한 동생이 황야에서 굶고 있어요. 바로 집 앞에서 죽게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촛불은 음식을 마련해 두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저쪽 불빛은 음식을 그리고 가져오라는 뜻이고요.”
“그럼 동생이라는 자가........”
“달아난 죄수입니다. 주인님, 셀든이라는 범죄자요.”
“정말입니다. 주인님, 아까 제 비밀이 아니라서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제 진상을 아셨으니 주인님을 노리고 흉계를 꾸민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실 겁니다.”
왜 배리모아가 밤에 몰래 돌아다니며 창문에 촛불을 켜두었는지 알 수 있었지. 헨리 경과 나는 놀라서 배리모어 부인을 바라보았어. 이렇게 무던하고 착실한 사람이 이 나라에서 가장 악랄한 범죄자 가운데 한 명인 자와 같은 핏줄일 수가 있다니! (P159-160)
내가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한 다음 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두 가지 사실 중 첫 번째는 쿰 트레이시에 사는 로라 라이언스 부인이 찰스 바스커빌 경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죽던 장소와 시간에 만날 약속을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황야에 숨어 지내는 사내는 산자락에 보이는 돌 움집에서 지낸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확보한 나는 이러고도 뭔가 더 알아내지 못한다면 내가 지력이나 용기가 모자라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188-189)
“내 친구, 왓슨. 다른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자네가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역할을 해주었어. 그리고 혹시 내가 자네를 속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날 용서해 줘, 사실 자네를 위해서 그렇게 한 측면도 있어. 자네 앞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걸 알고 내가 직접 문제를 살펴보려고 온 거야. 내가 만일 헨리 경 그리고 자네와 함께했다면 내 관점도 두 사람과 차이가 없었을 거야. 내 존재는 우리의 매우 강력한 적들에게 경고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경계만 하도록 만들었을 거고, 보다시피 나는 바스커빌 저택에 머물렀다면 불가능했을 만큼 원하는 대로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었어. 그리고 사건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남은 채, 결정적인 순간에 온몸에 날릴 준비를 할 수 있었지.”
“왜 나한테 계속 비밀로 했지?”
“자네가 알아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내 위치만 알려질 수도 있었어. 자네가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생길 수도 있고, 친절한 마음으로 나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려고 내게 뭘 가져올 수도 있었지. 그런 식으로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거야. 나는 카트라이트를 데려왔어. 심부름꾼 사무실에서 본 아이 기억하지? 그 아이가 내게 필요한 간단한 것들을 가져다주었어. 빵 한 덩이와 깨끗한 옷 말이야. 남자가 그 이상 뭐가 필요하겠어? 게다가 카트라이트라는 아이의 눈과 튼튼한 다리까지 공짜로 얻었는데 두 가지 모두 아주 매우 귀중했지.” (P212-213)
“그런데, 잠깐, 무슨 소리지?”
조그만 신음이 들렸다. 우리가 서 있는 왼쪽이었다. 그쪽은 바위들이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멀리 아래로는 돌이 흩어져 있는 산비탈이 내려다보았다. 바로 그 낭떠러지 앞에 날갯죽지를 펴 새처럼 기괴해 보이는 어두운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 달려가자 희미한 윤곽이 확실한 모양을 띄기 시작했다. 얼굴을 땅에 처박은 채 엎드린 사내였다. 목이 안쪽으로 끔찍하게 꺾인 데다 양쪽 어깨를 오므리고 몸통을 구부린 모습은 마치 재주넘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괴상한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신음이 사내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라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커먼 모습의 사내는 속삭이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우리는 그 위로 몸을 숙였다. 홈즈가 사내에게 손을 대더니 깜짝 놀라 소리를 내며 다시 거두었다. 홈즈가 당긴 성냥불은 힘을 주어 잡은 그의 손가락들과 무시무시한 피 웅덩이를 비추었다. 피가 고인 웅덩이는 희생자의 부서진 머리 아래에서 천천히 넓어지고 있었다. 불빛에 비친 시체를 확인한 우리는 심장이 무너지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시체는 헨리 바스커빌 경이었다. (P220-221)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게 해주고 말겠어. 삼촌과 조카가 살해당하다니. 한 사람은 짐승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놀라서 죽었고 다른 사람은 달아나려고 마구 뛰다가 죽음을 맞고 말았어. 우리는 이제 그 짐승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야 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것 말고는 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어. 헨리 경도 뛰다 넘어져서 죽은 것이 분명해. 세상에, 얼마나 교활한 짓이야.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놈을 내 손으로 잡고야 말겠어.”
엉망이 된 시체를 가운데 놓고 마주 선 우리는 가슴이 무척 아팠다. 갑작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 때문에 우리가 오랫동안 힘들여 노력해 온 모든 일은 허망하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때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홈즈와 나는 우리의 불쌍한 친구가 떨어진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서 멀리 그림자처럼 희미한 황야를 내려다보았다. 절반은 은색이었고 나머지는 어두웠다. 멀리 그림펜 쪽에 노란 불빛 하나가 흔들리지 않고 빛났다. 외따로 떨어진 스테이플턴의 집이 분명했다. 그자의 집을 노려보던 나는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주먹을 흔들었다. (P222-223)
“수염이야! 이 사람 수염이 있어!”
“수염?”
“헨리 경이 아니야. 이 친구는 내 이웃인 탈옥수라고!”
다급해진 우리는 서둘러 시체를 뒤집었다. 젖은 수염이 차갑고 깨끗한 달을 향해 솟아오른 모습이었다. 튀어나온 이마와 동물처럼 쑥 들어간 눈을 보니 틀림없었다. 바위 너머 촛불 불빛 속에서 나를 노려보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범죄자 셀든의 얼굴이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헨리 경이 자신이 예전에 입던 옷을 배리모어에게 주었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배리모어는 탈출할 때 사용하라며 셀든에게 그 옷들을 넘겨준 것이다. 신발, 셔츠, 모자, 모두 헨리 경의 것들이었다. (P224)
그는 의자에 올라서서 왼손으로 촛불을 들고 오른팔을 구부려서 넓은 모자와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가렸다.
“이런 세상에!”
나는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
캔버스에서 스테이플턴의 얼굴이 불쑥 솟아난 것 같았다.
“이제야 자네도 보이나 보군, 내 눈은 다른 것들을 다 빼버리고 얼굴만 보는 훈련을 거쳤지. 범죄 수사를 하려면 우선 변장을 뚫고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하거든.”
“하지만 이건 정말 놀랍군. 그자를 보고 그린 것 같아.”
“그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격세유전의 흥미로운 본보기야. 가문의 초상화를 연구하다 보면 누구나 윤회 사상을 믿게 된다니까. 그자는 환생한 바스커빌이야. 분명해.”
“상속을 둘러싼 음모로군.”
“바로 그거야. 우연히 찾아낸 그림이 우리에게 숨겨진 연결고리를 던져주었군. 잡았어, 왓슨. 놈을 잡았다고, 감히 장담하건대 내일 밤이 되기 전에 녀석은 자기가 잡은 나비처럼 우리 그물에 걸려서 아무 대책 없이 펄떡거리고 있을 거야. 코르크에 핀으로 꽂고 카드를 써서 붙인 다음 베이커가의 소장품에 넣어버리자고!”
그는 보기 드물게 긴 웃음을 터뜨리더니 초상화에서 몸을 돌렸다. 나 역시 자주 듣지 못하는 그의 웃음은 늘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길한 징조가 되었다. (P239)
안개의 그늘 속에서 우리 앞으로 뛰쳐나온 무시무시한 짐승의 모습에 정신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사냥개였다. 거대하고도 할 정도로 크고 칠흑같이 검은 개. 하지만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었다. 벌린 입으로 불을 내뿜고 눈 역시 불꽃이 이글거렸으며 주둥이와 목덜미 그리고 턱 아래쪽은 화염에 휩싸인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정신 나간 사람이 의식이 혼탁한 가운데 꾸는 꿈속이라도, 안개 벽 속에서 우리 앞으로 뛰쳐나온 그 시커멓고 끔찍한 개보다 더 흉악하고 오싹하며 무시무시한 모습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거대한 검은 짐승은 오솔길을 따라 성큼성큼 뛰어 오리 친구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갔다. 갑자기 나타난 모습에 혼이 나간 우리가 정신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놈은 우리 앞을 지나 뛰어가고 말았다. 홈즈와 내가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자 놈은 소름 끼치는 소리로 울부짖었다. 최소한 한 발은 몸에 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괴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갔다. 멀리 오솔길에 선 헨리 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달빛 아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두려움에 양손을 들고 당황한 채 자신에게 달려오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P258-259)
나중에 조사해 보니 가족들의 초상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더군. 그자는 정말 바스커빌의 자손이었어. 그는 로저 바스커빌이라고. 찰스 경의 동생인 사람의 아들이야. 그의 아버지는 나쁜 놈으로 낙인이 찍힌 채 남아메리카로 달아나 그곳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어. 하지만 사실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한 명 낳았는데 그게 바로 스테이플턴이야. 진짜 이름은 아버지와 같은 로저 바스커빌이었어. 그는 베릴 가르시아라는 코스타리카 출신의 미인과 결혼했고, 상당한 금액의 공금을 훔친 다음 이름을 반들러로 바꾼 뒤 영국으로 달아났지. 그리고 요크셔 동쪽에서 학교를 하나 세웠어. 그런 쪽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영국으로 오던 길에 결핵 환자인 교사 한 명을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를 이용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어. 하지만 프레이저라는 이름의 그 교사는 죽었고 학교는 악평이 계속 이어지다가 망해 가기 시작했지. 반들러 부부는 이름을 스테이플턴으로 바꾸었고, 그는 남은 재산을 들고 계획을 세운 다음 영국 남부로 이사 와서 자신의 취미인 곤충학을 즐겼던 거야. 대영박물관에 갔다가 그자가 곤충학 분야에서 매우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가 요크셔에 있을 대 발견한 어떤 나방에는 반들러라는 이름까지 붙었더군.
이제 그의 인생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시기에 이르렀군. 그자는 분명히 조사를 거쳐 두 사람만 사라지면 자신이 큰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을 거야. 나는 그자가 데번셔에 갔을 당시에는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앞길이 막막했을 거라고 믿고 있어. 하지만 애초에 부인을 여동생으로 꾸민 걸 보면 분명히 처음부터 나쁜 짓을 꾸미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어떻게 하겠다고 세밀하게 구상을 해두지는 않았다고 해도 여자를 미끼로 쓰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었어. 결국에는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아무리 큰 위험이라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야. 처음으로 한 행동은 조상이 살던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살 곳을 정하는 일이었지. 그리고 두 번재로는 찰스 바스커빌 경 그리고 다른 이웃들과 친해지는 것이었어.
찰스 경은 스스로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개에 관한 이야기를 그자에게 해줌으로써 죽음을 자초하고 말았어. 스테이플턴은--그자를 계속 이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지-- 늙은 찰스 경은 심장이 약하다는 것, 그래서 충격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모두 모티머 박사로부터 들었지. 게다가 찰스 경은 미신을 잘 믿고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우울한 전설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그의 영리한 머리는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찰스 경을 죽일 방법을 떠올린 거야. 그 방법이라면 진짜 살인자를 도저히 잡아낼 수가 없었지.
일단 계획을 세우자 그는 대단히 교묘하게 실행에 옮겼어. (P273-275)
“과연 그렇군. 그렇다면 어려운 문제는 하나만 남는군. 만일 스테이플턴이 상속을 받게 되었다고 치자고. 그렇다면 상속인인 자신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엉뚱한 이름으로 가까운 곳에서 산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의심받지 않고 유산을 요구할 작정이었을까?”
“만만찮게 어려운 질문이야. 그걸 나더러 풀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이기도 해. 과거와 현재는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영역이지만 어떤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니까. 스테이플턴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그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고 해. 세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어. 남미에 있는 영국 관청에 가서 재산권을 주장하는 거야. 그러면 영국에 올 필요도 없이 재산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정체를 숨기고 잠시 필요한 기간 동안 런던에 머무르는 거지. 그도 아니면 공범을 구해서 그에게 상속자라는 증거와 서류을 제공해 대신 후계자로 만든 다음, 재산의 일정 부분을 나누어 갖는 방법도 있지. 그자의 능력으로 볼 때 어떻게든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냈을 거야. 자, 친애하는 왓슨. 우리 지난 몇 주 동안 고되게 일을 했으니 오늘 저녁만이라도 좀 더 즐거운 분야로 관심을 돌려보면 어떨까? ‘위그노 교도들’의 특별석을 잡아두었어. 자네 드 레즈케 형제의 노래를 들어봤나? 미안하지만 30분 안에 외출 준비를 마칠 수 있겠어? 그러면 가는 길에 마르시니 식당에 들러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P286-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