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영화 <연을 쫓는 아이> 2008년

by 노용헌

나는 1975년의 어느 춥고 흐린 겨울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나는 그날, 무너져가는 담장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얼어붙은 시내 가까이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여름 어느 날, 라힘 칸이 파키스탄에서 전화를 했다. 그는 나한테 그곳으로 와달라고 했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부엌에 서서 전화를 받던 나는 전화기 속에 있는 게 라힘 칸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속죄하지 못한 죄들이 가득한 내 과거가 그 속에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산책을 나가 골든게이트 공원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는 스플레클스 호수를 따라 걸었다. 이른 오후의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몇십 개의 모형 배들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기다란 남색 꼬리가 달린 두 개의 붉은 연이 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귀에 하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언청이였던 하산.

나는 버드나무 가까이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라힘 칸이 전화를 끊기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 나는 쌍둥이 연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하산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바를 떠올리고 알리와 카불을 떠올렸다. 나는 1975년 겨울이 되어 모든 것이 바뀔 때까지 내가 살았던 삶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게 한 그 겨울을 떠올렸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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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형제이며 세월조차도 갈라놓지 못할 친족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풀이했다.

하산과 나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똑같은 뜰에 있는 똑같은 잔디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같은 지붕 밑에서 첫말을 했다.

내게는 ‘바바’가 첫말이었다.

그에게는 ‘아미르’가 첫말이었다. 그건 내 이름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1975년에 일어났던 일과 이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한 토대가 그 첫말에 이미 있었던 것 같다. (P20)


“너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구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맞다면 바바는 죄인이 되는 건가요?”

바바가 얼음을 깨며 말했다.

“흠, 아버지가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니?”

“네.”

“그렇다면 얘기해주마. 하지만 아미르, 턱수염을 길게 기른 백치 같은 인간들한테서는 가치 있는 걸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거라는 사실부터 알아둬라.”

“파티울라 칸 율법 선생님 말인가요?”

바바가 술잔을 흔들었다. 얼음이 안에서 딸가닥거렸다.

“그자를 모두 말이다. 그 독선적인 원숭이들의 수염에 오줌을 갈겨주고 싶구나.”

나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독선적이든 어떻든, 바바가 원숭이의 수염에 오줌을 갈기는 장면을 생각하자 너무 우스웠다.

바바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 인간들은 염주알만 굴리면서 자기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로 쓰인 책을 암송하지. 아프가니스탄이 그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큰일이다.” (P27-28)


“율법 선생이 뭘 가르치든,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죄밖에 없다. 단 하나의 죄 말이다. 그것은 도둑질이다. 다른 죄들은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알아듣겠니?” (P29)

“만약 신이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스카치위스키를 마시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들에 신경을 쓰셨으면 싶다. 이제 가거라. 죄에 관한 얘기를 하니까 다시 목이 마르구나.”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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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나도 하산을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여하튼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우리가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는 법이나 종이상자로 카메라를 만드는 법을 서로에게 가르쳐 준 것은 사실이다. 내게는 아프가니스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작은 골격에 빡빡 밀어버린 머리, 아래로 처진 귀, 일그러진 입술로 늘 웃는 낯꽃이었던 중국 인형처럼 생긴 아이의 얼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 없었다. 역사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파쉬툰인이었고 그는 하자라인이었다. 나는 수니파였고 그는 시아파였다. 그걸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P39-40)

매년 겨울이면 카불에서는 지역마다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카불에 살고 있는 남자아이에게는 이 대회 날이 당연히 겨울의 하이라이트였다. 대회 전날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벽에다 동물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고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어두운 발코니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중요한 전투가 있기 전날 밤 참호 속에서 잠이 들기 위해 애쓰는 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그렇게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카불에서는 연싸움이 전쟁에 나가는 것과 조금은 비슷했다. (P78)

연싸움 대회는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겨울 전통이었다. 대회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서 승리한 연 하나만 하늘에서 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느 해에는 대회가 밤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길가나 지붕에 모여서 자식들을 응원했다. 거리에는 줄을 잡아당기며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상대의 줄을 끊을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연 싸움꾼들로 넘쳤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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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가 파이프를 피우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딴 생각을 하면서 그의 말을 듣는 체했다. 바바가 무심코 한 말 때문에 그해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반드시 우승하고 말리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승도 할 것이고 마지막 연도 쫓아가 잡아서 바바에게 가져다 주리라. 이번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손색없는 아들이라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말리라. 그렇게 되면 이 집에서 유령처럼 살아왔던 내 삶도 마침내 끝나게 될 것이다. 나는 마음껏 꿈을 꾸었다. 짙게 드리워진 침묵이 은 식기 부딪히는 소리나 투덜대는 바바의 불평 소리로 인해 이따금씩 깨지는 그런 저녁 식탁이 아니라 대화와 웃음이 가득한 저녁 식탁을 상상했다. 금요일에 바바의 차를 타고 파만으로 가며, 가가 호수에 들러 송어 튀김과 감자튀김을 먹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동물원에 가서 사자 마잔을 구경하더라도 바바가 하품을 하지도 않고 손목시계를 몰래 들여다보지도 않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실로 어쩌면, 어머니를 죽게 만든 나를 바바가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 (P88)


내일은 이슬람 달력으로 마지막 달인 둘 히자의 열 번째 날이며 사흘간에 걸친 이드 알아드하 혹은 (아프간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면) 이드에 코르반의 첫째 날이다. 예언자 이브라힘이 신에게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칠 뻔했던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바바는 올해에도 양을 손수 골랐다. 비틀린 검은 귀에 눈처럼 흰 양이다.

우리, 즉 하산과 알리와 바바와 나는 뒤뜰에 서 있다. 율법사가 기도를 하고 턱수염을 문지른다. 바바가 나직하게 속삭인다. “빨리 하시죠.” 양을 잡는 의식을 치를 때 하는 끝없는 기도에 짜증이 난 목소리다. 바바는 종교적인 것이라면 어느 것이나 조롱하듯, 이드에 얽힌 이야기를 조롱한다. 하지만 이드에 코르반의 전통은 존중한다. 고기를 삼등분하여 하나는 자기 가족에게, 다른 하나는 친구들에게,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관습이다. 해마다 바바는 고기를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살이 피둥피둥 쪄 있으니까 괜찮아.”

율법사가 기도를 마친다. “아멘.” 그는 날이 기다란 부엌칼을 집어든다. 관습에 따르면, 양이 칼을 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알리는 양에게 각설탕을 먹인다. 죽음을 쉽게 하기 위한 또 다른 관습이다. 양이 몸부림을 치지만 그리 심하지 않다. 율법사가 양의 턱 밑을 잡고 목에 칼날을 댄다. 전문가다운 동작으로 양의 목을 베기 직전, 나는 양의 눈을 본다. 이후 몇 주 동안 내꿈에 나올 표정이다. 나는 어째서 내가 해마다 우리 집 뒤뜰에서 행해지는 이 의식을 지켜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잔디에 묻은 핏자국이 희미해진 후에도 오랫동안 악몽을 꾼다. 그래도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내가 지켜보는 이유는 양의 체념한 눈빛 때문이다.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나는 동물이 눈앞에 다가온 자신의 죽음이 더 높은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걸 이해한다고 상상한다. 이것 때문에....... (P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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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더 이상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뭔가 따뜻한 것이 내 팔목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여보았다. 나는 아직도 내 주먹을 깨물고 있었다. 손마디에서 피가 흘러 나올 정도로 깨물고 있었다. 내가 깨달은 또 다른 것은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모퉁이를 돌 때, 아세프가 빠르고 규칙적으로 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내가 마음의 결정을 내릴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할 마지막 기회였다. 하산이 과거에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골목으로 들어가 하산의 편을 들어주고 싸우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결과를 감수하거나, 혹은 달아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달아났다.

내가 달아난 것은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세프가 두려웠고 그가 나한테 할 짓이 두려웠다. 나는 다칠 게 두려웠다. 나는 골목에, 아니 하산에게 등을 돌리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나는 실제로 비겁하고자 했다. 내가 달아나는 진짜 이유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아세프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하산은 내가 바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고 죽여야 하는 양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공정한 대가였을까? 내가 막을 새도 없이 그에 대한 답변이 떠올라버렸다. 그래, 그놈은 하자라놈일 뿐이야.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갔다. 시장은 이제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물쇠가 채워진 가게 문에 몸을 기댔다. 문이 흔들렸다. 나는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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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산이 강간당하는 걸 봤어요.”

나는 불쑥 말했다. 바바가 잠을 자다가 뒤척였다. 호메이운 아저씨가 투덜거렸다. 나는 속으로 누군가가 깨어서 내 말을 들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이 거짓말과 함께 살 필요가 없어졌으면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깨지 않았다. 나는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내게 주어진 새로운 저주의 본질을 이해했다.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 내 저주였다.

나는 하산이 꿨다는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호수에서 수영하는 꿈을 꿨다고 했었다. “괴물은 없어요. 물밖에 없다고요.”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그가 틀렸다. 호수에는 괴물이 있었다. 그 괴물이 하산의 발목을 잡고 진흙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 괴물은 바로 나였다.

내가 불면증에 걸린 건 그날 밤이었다. (P128-129)

“호마이라와 내가 세상에 맞섰던 거야. 그런데 아미르, 너한테 얘기해주는 건데, 이기는 건 늘 세상이다. 그게 현실이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내 아버지는 그날 당장, 호마이라와 그녀의 가족을 트럭에 태워 하자라자트로 보내버렸지. 그리고 나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유감이군요.”

라힘 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잘된 건지도 모르지. 그녀가 고통을 당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집에서는 그녀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을 거야. 구두를 닦는 사람을 금세 형제자매라고 할 수는 없잖니. 아니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 언제라도 들어주마.”

나는 자신 없이 말했다.

“알아요.” (P148-149)

나는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나는 하마터면 진실을 얘기할 뻔했다. 그때,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하산의 마지막 희생이라는 걸 알았다. 그가 아니라고 말하면 바바는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산이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바가 그의 말을 믿는다면 나를 추궁할 것이었다. 나는 해명을 해야 할 것이고 결국 거짓말이 들통날 것이었다. 바바는 결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산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골목에서 모든 걸 보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기를 배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를 구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누구보다 그를 더 사랑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내가 풀 속에 있는 뱀이고 호수 속에 있는 괴물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희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거짓말쟁이였고 사기꾼이었고 도둑이었다.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일부는 기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곧 끝날 거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바바는 그들을 내보낼 것이다. 약간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삶은 계속될 것이었다. 나는 그걸 원했다. 모든 걸 다 잊고 산뜻하게 새출발을 하길 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쉬고 싶었다. (P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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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입을 크게 벌린다. 턱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크게 벌린다. 그리고 폐한테 숨을 들이쉬라고 말한다. 지금, 공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도(氣道)는 당신을 무시한다. 기도가 꺾이고 조여온다. 그리고 당신은 갑자기 빨대를 통해 숨을 쉬게 된다. 당신의 입도, 당신의 입술도 닫힌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뿐이다. 당신의 손이 꿈틀거리고 흔들린다. 어딘가에서 둑이 무너졌다. 차가운 땀이 홍수처럼 쏟아져 온몸을 적신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한다.

공포

지하실도 어두웠는데 연료탱크는 완전히 깜깜했다. 나는 상하좌우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고 또 깜빡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도 문제였다. 너무 탁했다. 거의 고체에 가까웠다. 공기가 고체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공기를 잘게 부숴 내 기도에 넣어주고 싶었다. 휘발유냄새도 지독했다. 고약한 냄새로 눈이 따가웠다. 누군가가 내 눈거풀을 뒤집고 레몬을 문지른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코가 얼얼했다.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비명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나오고 또 나오고......

그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바바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뭔가 초록색을 띤 게 있었다. 빛이었다! 바바의 손목시계였다. 나는 녹색 형광바늘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걸 잃을까 두려웠다. 나는 눈을 깜빡할 엄두도 못 냈다. (P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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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건 아니다만, 며칠 동안, 아니 단 하루에 있었던 일이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을 수도 있단다.” (P211)

산호세 주립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는 전염병을 피하듯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라고 가르쳤다. 그 교수는 자신이 한 농담에 웃었다. 학생들도 따라서 웃었다. 하지만 나는 늘 상투적인 표현에 대한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상투적인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걸 어떤 의도에서 말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령, ‘방 안에 코끼리가 들어앉은 꼴(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표현을 보자. 내가 라힘 캄과 재회하는 순간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말은 없을 것이다. (P291)

“언젠가 네가 없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너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었다. 네 아버지는 너도 알다시피 늘 네 걱정을 했다. 네 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과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법일세.’ 그래, 결국 너는 그런 사람이 된 거니?”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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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군요.”

“뭐가요?”
“고국에 왔는데도 꼭 관광객처럼 느껴져요.”

길옆을 따라 여윈 여섯 마리의 염소를 끌고 가는 염소몰이꾼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파리드가 낄낄대며 담배를 던졌다.

“아직도 이곳을 고국으로 생각해요?”

“내 일부는 항상 그럴 거라 생각하오.”

의도했던 것보다 더 방어적으로 내가 대답했다.

.....

그가 비웃듯이 물었다.

“제가 한번 상상을 해볼게요, 선생님. 당신은 아마 멋진 뒷마당이 딸린 3층짜리 큰 집에서 살았을 겁니다. 정원에는 정원사가 꽃과 과일나무들을 심어줬을 거구요. 물론 모두 담을 쌓고 대문을 달아놓았겠죠. 당신 아버지는 미제 차를 몰고 하인들도 뒀겠죠. 아마 하자라인이었을 겁니다. 당신 부모님은 일꾼들을 사서 화려한 파티를 위해 집을 꾸몄겠죠. 친구들이 파티에 와서 술을 마시고 유럽이나 미국여행을 자랑할 수 있도록요. 내 큰아들 눈에 대고 맹세컨대, 당신은 이번에 처음으로 모자를 써보았을 겁니다.”

.....

그가 침을 뱉었다. 관목 잎으로 가득 한 큰 삼베 보따리를 등에 메고 흙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을 가리켰다.

“저게 진짜 아프가니스탄이에요, 선생님. 저게 내가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요, 당신요? 이곳에서 당신은 항상 관광객이었어요. 당신이 그걸 몰랐을 뿐이죠.” (P346-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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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너는 그가 물려받은 재산과 죄를 짓고도 무사할 수 있는 특권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중략)

너도 네 아버지가 너한테 심하게 했던 것은 결국 그 스스로에게 심하게 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네 아버지도 너처럼 고통스러워했던 사람이다.

(중략)

네가 이해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 그것은 선이, 진짜 선이 네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이 속죄하고자 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진짜 구원이다. 죄책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나는 신이 결국 용서해 주실 거라는 걸 안다. 신은 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너까지 용서해 주실 것이다. 너도 똑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가능하면 네 아버지를 용서해라. 그러고 싶다면 나도 용서해다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중략)

너를 신의 손에 맡긴다.

-너의 영원한 친구 라힘 (P443-445)


우리 두 사람 다 죄를 짓고 다른 사람을 배반했다. 하지만 바바는 죄책감 속에서 선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난 뭘 했던가! 나는 내가 배반했던 사람들에게 내 죄를 전가하고 모든 걸 잊으려고만 하지 않았던가! 불면증에 시달린 것 말고는 내가 한 일이 뭔가! 내가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뭘 했던가!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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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고개를 흔들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그때서야 나는 미국에서는 영화가 어떻게 끝나는지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그랬을 경우 무시를 당하고 결말을 보는 즐거움을 망친 죄로 엄청나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결말만이 중요했다. 하산과 내가 자이나브 영화관에서 인도영화를 보고 집에 오면 알리, 라힘 칸, 바바와 그의 많은 친구들 —육촌, 칠촌, 팔촌들까지 집에 드나들었다— 은 결말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여자주인공은 행복을 찾는지, 남자주인공은 성공해 원하는 꿈을 성취하는지, 아니면 불운하게도 실패만 계속하는지, 그들은 이런 것들을 알고 싶어했다.

그들은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지 알고 싶어했다.

만약 누군가가 오늘, 하산, 소랍, 나에 관한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지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결국 인생은 인도영화가 아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젠다기 미그자라’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 캄야브(행)와 나캄(불행), 위기 혹은 카타르시스에 상관없이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먼지가 자욱한 코치(유목민)의 마차처럼 인생은 앞으로 느릿느릿 나아간다는 것이다. (P529)

그때 나는 문득, 바바가 마음속으로 하산을 진짜 아들로 생각했을 자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며, 용서는 그렇게 싹트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는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P532)

결국 소랍은 내 제안을 승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붕대를 떼고 환자복을 반납하고 나면 자신은 그저 집 없는 하자라인 고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그가 어디로 갈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그에게서 내가 예스라는 대답으로 간주한 것은 사실 조용한 포기에 가까웠다. 그것은 승낙이라기보다, 너무 지쳐서 결정을 내릴 수도 다른 사람을 믿을 수도 없는 사람이 보여준 포기 행위였다. 그가 갈망한 것은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나와 미국뿐이었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그것이 그렇게 나쁜 운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머릿속이 악마 떼로 득실거릴 때면 균형 잡힌 시각이란 사치에 불과하다. (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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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가 하산과 소랍, 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누구의 이야기이건 해피엔딩인 경우가 있던가?

어쨌든 삶은 인도 영화가 아니다.

‘삶은 계속된다’라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시작과 끝, 위기나 카타르시스에 상관하지 않고 삶은 계속된다. 느린 흙투성이 대상행렬처럼 앞을 향해 계속된다. (P535)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라힘 칸은 편지에서 ‘네 아버지는 두 반쪽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라고 말했었다. 나는 권리를 가진 반쪽이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합법적인 반쪽이었고 바바의 죄를 무의식적으로 구현한 존재였다. 빠진 두 개의 앞니를 드러낸 채 얼굴에 비스듬히 햇빛을 받고 있는 하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권리도 특권도 갖지 못한, 바바의 나머지 반쪽이었다. 그는 바바에게서 순수하고 고상한 점을 물려받은 반쪽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바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의 진정한 아들로 간주했던 반쪽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도 내 마음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P538)

“저 연 잡아다줄까?”

소랍이 침을 삼키자 후골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바람에 그의 머리가 들어올려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나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P55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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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아미르는 하자라인 하인인 하산과 함께 형제처럼 자란다. 어느 날 언덕에 놀러가는 아미르와 하산을 불량배 아세프 일당이 막아서고 하산의 새총 덕에 두 사람은 위기를 모면한다.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는 마침내 대회에서 우승하고 하산은 마지막으로 잘린 연을 쫓아 달려간다.

하산을 찾아나선 아미르는 하산이 아세프 일당에게 붙잡혀서 성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겁이 나서 나서질 못하고 골목에 숨어버린다.

그후 하산을 보기 괴로운 아미르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서 결국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아미르와 아버지는 미국으로 피신하고 아버지는 주중에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면서 아미르를 공부시킨다.

아미르가 벼룩시장에서 만난 소라야와 결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소설가로 성공한 아미르에게 아버지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어릴 적 정신적 지주였던 라힘 칸이 전화를 걸어온다.

파키스탄으로 라힘 칸을 찾아간 아미르는 라힘 칸에게서 하산이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하산의 진짜 아버지이며 아미르와 하산이 형제 사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채 평생을 산 아버지의 죄와 어린시절 하산을 구하지 못한 자기의 비겁함을 속죄하기 위해 아미르는 탈레반에게 처형당한 하산의 아들 소랍을 구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간다.

아미르는 고아원에서 소랍을 데려다가 성적으로 유린하고 있는 탈레반 관리가 아세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와 대결을 벌인다. 아세프에게 두들겨 맞는 아미르를 구하기 위해 소랍이 새총으로 금속 공을 쏘아서 아세프의 눈을 맞추고 그 틈을 타서 아미르와 소랍은 파키스탄으로 피신한다. 아미르는 소랍을 미국으로 입양시키기 전에 잠시 고아원에 맡기려 하지만 고아원에 가기 싫은 소랍은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서 자살을 시도한다. 소라야의 외삼촌 덕에 인도적 비자를 얻어 미국으로 온 소랍은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감정적 반응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어느 날 공원에서 소랍과 함께 연싸움을 하게 된 아미르는 처음으로 소랍의 눈에서 생기를 발견하고 그를 위해 연을 쫓아 달려간다. (P558-559,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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