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터문> 1993년
영화 <비터 문>(Bitter Moon)은 영국에서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92년 드라마 영화이다. 휴 그랜트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로만 폴란스키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시내버스는 남녀가 한 눈에 반하는 상황이 일어날 만한 공간이 아니긴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연이란 걸 생각해 본다면, 굴러다니는 상자인 버스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작은 방이 될 수도 있소. 사실 나는 친구들이 소개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우연히 만나는 사람을 더 좋아하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접속을 마련한 운명이 신기하게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은 삶에 열정을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힘이오.
하지만 침묵을 깨뜨릴 만한 단 한마디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어쩌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두려웠지요. 어떻게 하면 늘 비슷한 첫마디 말을 피하고, 나를 좀 더 세련되고 독창적으로 매혹적이고 유혹적이게 보일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보니, 이건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저녁에 악마가 할 만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나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소.
그런데 마침 검표원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겠소. 그렇다고 파리 교통 공사에 고맙다고 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는 버스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차표를 보여 달라고 했소.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아름다운 여인은 차표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몸을 숙여 지저분한 바닥에서 작고 노란 차표를 찾아보았소. 검표원은 벌써 무임승차 딱지를 떼려고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녀는 당황했는지 얼굴이 빨개져서 시선을 떨구고 있었소.
난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챘소.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을 보니 곧바로 마음이 흔들렸소. 그래서 난 아무도 모르게 검표원에게 방금 보여 준 내 차표를 그녀의 손에 슬쩍 쥐어주었다오. 그녀는 잠깐 어리둥절해 하더니 나를 보고 미소 지었소. 검표원은 다른 사람에게 가버렸지요. (P10-11)
내가 어떻게 프란츠와 만나게 되었는지 정확히 해야겠다. 막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나는 같이 살고 있는 애인 베아트리스와 함께 인도를 향해 여행을 나섰다. 우리는 행복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이든 과감히 맞서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1979년 12월 28일 아침, 우리는 마르세이유 항에서 터키 국적의 여객선인 트루바라는 배를 탔다. 트루바 호는 프랑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베니스, 그리스의 피레우스를 들러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가는 배였다.
당시 나는 파리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베아트리스는 이탈리아어 교수였다. 특별한 가치를 찾기 어려운 이 작업에 회의를 느껴 몇 달 동안 떠나보고 싶다는 것이 이 여행의 이유였다. 우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동양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동양이라는 단어에는 순금가루가 빛에 반사되어 빛날 때의 눈부심, 환하게 빛나는 오로라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에 완전히 매혹당했다. 동양이라는 단어가 내뿜는 모호한 광채에 몸을 떨었다. 아마도 먼 대륙에 대한 나의 기대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품고 있었지 싶다. 나는 아시아에 가서, 유럽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성스러운 혼돈과 감히 맞닥뜨리려 했다. 내게는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P13-14)
“도대체 무슨 말이야?”
“꼭지가 돌았냐구. 그건 성이 났다는 말이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너무 웃겨.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더니 가슴이 아프네.”
“벌써 가려고?”
“네. 안녕. 계속 그렇게 익살스럽고 매력적인 개성을 간직하세요.”
그녀가 가면서 던진 마지막 말은 어떤 말보다도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녀는 존댓말을 함으로써 나와 거리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익살과 개성에 대해 언급하며 잔인하게도 내가 어느 것도 갖지 못한 남자라는 걸 강조했다. 나는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가! 그렇지만 ‘꼭지가 돌다’라는 말은 실제로 있는 우리말이고, 젊은 아이들만 쓰는 어휘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게 그다지 큰 잘못은 아니다. 서른 살이나 된 내가 학생 뻘밖에 안 되는 소녀의 말에 당황하다니, 갑자기 나는 그녀에게 어디로 가는지, 이 배에는 혼자 탄 건지 등 아무것도 묻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이젠 더 이상 졸리지도 않아서 마실 것을 한 잔 주문했다. 그러고는 지금 일어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한 시간 남짓을 보냈다. (P29)
“당신 디디에 맞지요? 조심하시오. 그 여자를 말이오.”
“무엇을, 누구를 말입니까?”
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느낌을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가 버리고 싶었지만 나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손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의 힘을 엄청나게 키우면서 휠체어를 탄 자신의 쇠약함을 상쇄시키는 것 같았다. 불구자는 슬프고도 창백한 얼굴을 내게 바싹 갖다 붙였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물론 레베카 말이오. 조금 전에 당신과 얘기했던 젊은 여자. 그녀를 만나서 상처입지 않도록 하시오. 그녀는 지나가는 곳마다 올가미를 쳐놓지요. 내게 한 짓을 좀 보시오. 이렇게 되는데 몇 년 걸리지 않았소.”
그는 무릎을 덮고 있던 양모 담요를 걷어내고는 힘없이 달려있는 두 다리를 보여주었다.
“제가 그녀와 만난 걸 어떻게 알죠?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고요?”
“레비카가 당신과 잠깐 만난 사실을 말해 주었소. 어떻게 생겼는지도 자세히 말해 주었고, 그래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소.” (P30-31)
레베카는 나를 높이 떠받들었소. 이제껏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죠. 나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고 내가 느닷없이 가장 강력한 끈으로 묶어놓은 사람에게 끌렸소. 내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오. (P57)
우리는 이런 평범함도 아주 순수하게 그대로 맛보았고 이제 막 시작한 터라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만큼 그 차이를 순수함으로 느꼈지요. 우리는 마음이 풍족했으며 서로에 대한 생각이 마구 솟구쳐서 결혼 생활이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오. 보잘 것 없는 생활을 앉아서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거요. 텔레비전을 켜는 일, 소박한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는 단순한 사실도 우리에게는 크나큰 호사였소. 계절은 추운데다가 사랑의 감정이 갈수록 점점 증폭되어 우리를 더욱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도록 결속시켰소. 게으름과 우울의 시간은 모두 그저 우리의 옆에 있을 뿐이지 우리의 삶 속에는 없었지요. 함께 사는 생활은 믿음과 평온을 만들어냈소. 서로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오. 왜냐하면 행복이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행복은 망각과 기억이 뒤섞인 것이라오. 이야기 거리가 워낙 많아서 완벽하게 엉겨 있는 추억이 영원이라는 흐릿한 기억 속에 고착되기 때문이오. (P64-65)
그녀는 내가 자주 만났던 좌파 부르주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털어놓을 때면 부끄러워 했소. 그녀가 그들의 귀에 대고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서 말하면 그들은 코를 틀어쥐며 웃곤 했소. 그들은 또 한숨을 내쉬며 말했소. “프란츠는 천한 여자들과 어울리네. 항상 미용사나 판매원 같은 여자들을 특히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상세히 이야기해도 좀 들어주시오. 내 친구들과 나는 모두 의사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형편없는 좌파에 속해 있었소. 파리 중심가에 살면서 우파도 두려워할 정도로 민중을 경멸했소, 우리는 이른바 청바지파에 속해 있었고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있었지만, 한 노동자 단체가 우리를 불쾌하게 해서, 말하자면, 이주 노동자들을 형편없는 쓰레기 취급하면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는 단체를 만들었소. 미국식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스탈린주의자들이라고나 할까. 아주 하찮은 주제로 당파를 바꿔놓고 옷 이야기나 나이트 클럽, 머리 손질하는 일로 문제 삼았소. 예전에 정치 노선을 따지느라고 타협하지 않았던 것처럼 똑같이 따지고 들었던 거요. 우리는 혁명에 단순한 열정을 갖고 오로지 단죄하고 결정 내리라는 의욕만 갖고 있었소, 또 우리 상대를 지배하고 입을 다물게 하려는 끈질긴 욕구를 가지고 있었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볍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경박함을 어떤 도그마에 의존해 고쳐보려는 욕구도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만큼 아주 단호했던 거요.
사회주의 활동이 한창이었던 몇 해 동안 상식을 벗어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권력과 권위로 뭉친 광적인 강박증에 이르렀다오. 그래서 나는 레베카에게 가족 내력에 대해 침묵하고 직업을 굳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요구했소. 나는 두 계층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 격에 맞지 않는 그녀를 격려하고,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계층의 친구들을 배반하기에 너무나 비겁했던 거요. 그 당시에는 대중이 함께 느끼는 쾌락이나 침묵하는 다수를 경멸하는 일이 공식적으로 좌파의 중심 주제가 되는 시대였던 만큼 나도 경멸당하는 일을 만들기 싫었던 거요. (P67-68)
나는 레베카를 사랑하면서 새로운 종교로 개종하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지요. 내가 말했다시피, 그녀는 튀니지에서 태어난 아랍계 유대인이오.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몹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그녀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아름다운 그녀가 눈부시게 합치한다는 점에서 특히 자부심을 느꼈다오. 나는 그녀 민족인 유대인의 지성을 열렬히 숭배했기 때문에,k 그녀를 지배하는 모든 것과 나를 끌어들이면서 그녀를 감싸 안을 수 있었소.
난 처음부터 레베카를 사랑했소. 그것은 그녀가 프랑스인도 금발도 아니며 기독교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니며 그녀에게서는 내가 열여섯 살 생일 때까지 축성받은 성수의 썩은 냄새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오. 더구나 그녀는 윤기 없는 금발의 비쩍 마른 여자도 아니었고, 헌신적인 그레첸도, 싸움의 전사 창백한 발키리도 아니었소. 내가 어렸을 때 누렇게 뜬 밀처럼 창백한 모습으로 나를 현혹시켰던 파리한 마른 지푸라기 같은 여자가 아니었소. 난 북구의 금발머리, 아리안 족의 푸른 눈, 창백한 피부에 질려 있었소. 한때 나는 순진하게도 창백한 피부를 보면 관능적인 욕구가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무언가 뜨겁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여자를, 거무스레한 얼굴빛의 여자를 원했다오. 내 가족의 순수한 게르만 혈통보다는 혼혈이기를 바랬소. 그래서 레베카를 보자마자 북반구 남자가 남반구의 신기루를 보고 느끼는 매력을 느꼈던 거요. (P71-72)
“아! 당신들은 정말 멋진 순진 남녀로군. 당신들처럼 잘 믿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정말 이런 낡은 배를 타야 한다니까. 이해할 수가 없네요. 당신들은 마치 여자의 몸에 달려들 듯 동양으로 덤벼 들어가는 거요. 도대체 그곳에서 뭘 찾겠다는 거요? 산이오? 도대체 누더기 같은 인간이 득실거리는 인파 속에서 뭘 할 거요?”
나는 우선 침을 삼키고 가능한 한 격식을 갖춰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가 유럽에서 잃어버린 것을 인도에서 찾을 겁니다. 존재의 고향 같은 곳이죠. 본질을 향해 가듯 나는 인도로 떠나는 거죠. 헛되고 세속적인 삶에 지쳐서.”
“인도는 당신에게 아주 성스러운 공간인가 봅니다.” (P100)
그러나 나에게는 조난당한 고양이를 구하는 일이 사유지 보호법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스위스 같은 중립 국가는 위험에 빠진 동물을 도와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고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아트리스를 감동시켜 보겠다는 은밀한 욕망은 없었을까? 또 고양이를 구하겠다는 결심을 한 데에 어떤 허세 같은 것을 없었을까?
곧바로 나는 영사관에 딸린 부교에 다다랐다. 대운하 기둥 위에 달린 나무로 된 작은 돌출 부분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부르며 팔을 내밀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겁에 질려 반대쪽으로 가 버렸고, 멀어지면서 찢어지듯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만을 계속 질러댔다. 목이 쉰 다른 수고양이들까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다 잡을 듯 하다가 놓친 게 화가 났다. 둑 위에서는 대리석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바닥에 내려와 보니 천천히 흐르는 썩어가는 물이 거의 진흙투성이였다. 부패하는 고약한 냄새가 물의 거리에서 뿜어져 나왔고, 뭔가 물에 잠긴 수상한 것이 호화로운 궁전과 건물 밑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낙서해 놓은 이탈리아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과거는 너무 많고 현재는 길이 없고 미래는 전혀 없다.’라는 말을, 오물로 가득한 끈적끈적한 물은 흘러가면서, 그 흐름에 막무가내로 빠져 들어가는 저 털 많고 수염 난 가엾은 짐승을 결코 구할 수 없으리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P111-112)
레베카는 한마디 할 때마다 매번 노력을 기울이면서 내게 성찬식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소. 그러고는 자신의 내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다오. 그녀가 중얼거렸지요. "먹어. 나는 둥글고 빛나는 거야. 내 창자를 즐겨 봐. 나를 천천히 맛봐. 앞으로 네 모습일 진흙을 먹어. 내 미레의 사체를 먹어." (P133)
우리는 쾌락에서 금욕주의자들이 분명 눈살을 찌푸렸을 그런 외설적인 추함에 대해서는 추하다고 느끼지 않았지요. 나만 다르다고 느꼈지요. 그 당시에는 좀 앞서 나간다고 할지 모르지만, 뭐랄까, 숭고함에 가까웠소. 내 마음 속에서는 무언가가 당당하게 말했소. '천한 것, 외설스러운 것, 저속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외설을 무시하는 진짜 외설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지. 고매한 사람들이 갖는 태도야." 라고. (P141~142)
모든 사랑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균형을 추구한다오. 찬 물과 따뜻한 물이 섞여 미지근한 물이 되면 다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 사랑에 대립하는 힘을 집어넣었지요.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끌어 모아 열정의 회로에 다시 붓는 복잡한 원칙을 집어넣었소.
우리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우리의 추한 이야기를 지키고 싶었지요. 우리는 반감을 무시하면서 더욱 정열적이고 대담하게 방탕의 길로 빠져들었소. 반감을 무시한다는 것을 일종의 자랑으로 삼았다오. 그렇다고 우리의 방탕을 극적으로 과장시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오.
우리는 끊임없이 온갖 방법을 통해서 상호적이면서 점점 커지는 열정의 증거를 주었소. 성적 쾌락 중에서 가장 공들여 만들어낸 단계를 향해 올라가는 것을 유명한 격언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거요.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내일 보다는 조금 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소? (P144)
사실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어야 했소. 연인들은 열정이 가장 불타올랐을 때 헤어져야 하는 거요. 완벽한 조화를 이뤄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때 떠나야 했소. 마치 다른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 주체하지 못할 때 자살하는 것처럼. (P148)
우리는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뿐이오. 모르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에는 아무 즐거움도 없지요. 우리가 소위 문명이라고 일컫는 것 모두가 인간이 저지른 잔인한 행위가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것 아니겠소. (P153)
우리 시대는 야만성을 몰아낸 것을 자랑으로 삼았는데 야만성을 교묘하게 위장해서 다시 돌아오도록 강요했소. 우리는 주먹을 휘두르거나 몸으로 힘을 행사 하지 않소. 머리를 쓰거나 교묘한 말을 해서 힘을 갈고 닦았다오. 우리 사회는 그 점에서 세련되게 이겼지만, 야유와 중상모략으로 저질러진 엄청난 타격에서 회복하기 위해서 아무런 징벌을 정해놓지 않았소.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걸 덧붙여야겠소. 한 세기 전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서구 사회에서 자유라는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꽃피어났소, 이런 풍조도 포함시켜야겠소.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시대의 특별한 매력 중의 하나 아니오. 나와는 반대로 레베카는 이런 설전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말할 필요도 없을 거요.
탈무드나 성서를 암송하면서 자란 아이들, 그리고 모험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아이들, 또는 자연이나 거친 대양에서 커간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는 파리라는 도시에서 자랐지요.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나 외아들인 내게 질러대던 고함소리를 노래삼아 듣고 자랐소. 내 머리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굴욕감이 못처럼 단단히 박혀 있었는데 그것은 늘 나를 따라다니는 열등의식이 되었다오. 그 같은 교육은 전 인류에 대해서 회한으로 가득 차 있는 음험하고 보복심에 찬 싹을 키우는 법이오. 한마디로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 태어난 거요. 이런 이야기는,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나쁜 기질이 다시 나타나는 이유를, 사랑을 시작할 때 풋풋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왜 비열한 행동에 특히 더 끌리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오. (P154-155)
이제 그녀와 내가 나누던 연애의 한 사이클이 완전히 끝이 났소. 그래서 나는 막연하게 다른 사람과 다른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오. 가끔씩 나는 나 자신이 두려워하는 내 애인의 처지가 되어 보았지만 금세 그녀가 내겐 이미 의미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될 뿐이었소. 찬미한다는 것은 이미 증오한다는 것이며 남자든 여자든 조각상을 하나 만들어 세워놓고는 일찌감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오. 격렬한 정사를 벌이며 여덟 달을 보내고 나니, 우리는 이제 서로를 잘 안다고 믿고 서로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낯선 사람이 되었지요. (P155)
모든 관계와 관계의 변질된 타락까지도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의 나이가 있는 법이오.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감정을 느껴서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막고, 모르고 있으면 다행히 신선함을 느낄 텐데 아예 그 싹을 잘라 버린다오. (P189)
나는 집에 있지 않으려고 카페로, 클럽으로, 모임으로 달려갔지요. 토론회와 약속을 만들어서 참석했고요. 우리 두 사람만이 있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내게 기쁨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오. 늘 똑같이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저녁모임, 똑같은 테이블에서 비슷한 화제로 만나는 똑같은 친구들, 여전히 열정도 부족하고 이루지 못한 계획들, 똑같은 입에서 뱉어내는 비슷비슷하고 케케묵은 농담들, 이 모든 것이 진정한 도피 욕구를 줄 정도로 역겨웠소. 동물적이고 청소년기에 가졌을 도피 욕구를 줄 정도였으니까. 나는 공허하고 이토록 시시하고 이토록 가벼우면서 동시에 이토록 무거운 규칙적인 생활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오. 나는 좀 더 역동적이고 흥분되고 활기에 넘치는 무언가를 내 생활에서 원했던 거요. 레베카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사소한 일로 이어지는 지지부진함과 초라한 이야기에 사로잡혔소. 레베카는 이런 일을 ‘두 사람에게 나타난 생활의 위기’라고 불렀소. (P206)
나는 진정한 삶이란 다른 곳에 있다는 확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요. 곧 진정한 삶이란 부부생활의 비참한 궁여지책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미친 사랑을 하며 정조를 지키겠다는 어리석은 짓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거요. 똑같은 사람과 사는 걸 영원히 견딜 수 있게 하므로 미친 사랑은 사실 최고로 무기력한 짓이요. 이미 망가진 생활이라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이러한 무기력한 관계를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소.
나는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이 태어나듯이 레베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소. 나를 꼭 붙잡고 있는 그녀의 두 손에 더 이상 내가 아닌 껍질을, 완전히 바뀐 다른 프란츠를 남겨두고서 말이오. 내가 더 이상 깃들어 살지 않는 겉모습을 그녀에게 던져 버리고서 말이오. (P208-209)
사실 나는 항상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왔소. 어렸을 때에는 나의 안전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했고, 사춘기 때에는 어린 시절의 혜택을 좀 연장하려고 거짓말을 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습관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오. 그래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상상력이 모자라는 끔찍한 일인 것 같았소. 나는 모든 사람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아무 이유 없이 무슨 일이 생길지 그저 보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오. 때로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재미 때문에, 비밀을 가지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하나 꾸며내는 재미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요. 요즘 연인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환전한 솔직함을 강요하는, 솔직해야 된다는 명령에 따라 살고 있는데, 나는 그만큼 더욱 강한 기쁨을 느꼈다오.
그래서 나는 레베카를 속이는 일을 아주 좋아했다오. 무조건 고백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삶을 지루하게 만드는 소름끼치는 일이기 때문이오. 아무리 최악의 통속극이라도 내게 감동을 불러 일으켰지요. 모범적인 부부가 고리타분한 관습에 따라 성실한 채 살아가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게 보였다오. 나는 속임수를 좋아했소. 왜냐하면 속임수는 약자들, 여자나 어린 아이의 무기가 되기 때문이오. 그들에게 어느 한 구석도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자유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더없이 친근한 체 굴었고 나쁜 짓을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안 해 본 역할이 없을 정도였소. 그러면서 위험에 빠지지 않고 내 즐거움을 지켜나갔소. (P212-213)
“그렇게 유대인을 좋아하니 특별히 한 유대인 여자만을 좋아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이스라엘 집안을 좋아하다니 구역질이 나요. 나를 괴롭히기 위한 구실일 뿐이에요. 당신 아버지가 증오심 때문에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면 당신은 사랑 때문에 반유대주의자가 되었어요. 당신 아버지는 유대인들이 너무 유대인 티를 낸다고 미워했는데 반대로 당신은 유대인 티를 내지 않는다고 나를 미워하는군요. 난 애매모호한 내 신분에 맞는 권리를 주장할 뿐이에요. 내 복잡한 존재에 맞는 권리를 주장하는 거라구요.”
물론 그녀가 옳았다오. 나는 거추장스러운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서 유대적 실체를 신격화하는 기독교인이었소. 그러면서 유대적이지 않은 유대인들을 몽땅 배신자라고 비난할 정도였소. 우리는 모든 이스라엘인이 부적이라도 지닌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드러내라고 요구하고 있었소. 우리 아버지 시대에는 그들에게 감추라고 요구했던 것을요. 그러니 우리도 우리 아버지 세대만큼 똑같이 편협하다는 걸 보여준 거요. 그러나 요즘에는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얼마나 맹목적인지, 이런 논쟁에도 완전히 무감각해졌소. (P220)
그녀는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병으로 아주 빠르게 그녀 얼굴에 뭔가 생기 없는 것을 드리워 놓았소. 그녀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아름다웠는데, 점점 빛을 잃었고 침울하고 무표정하게 변했소. 그녀의 매력이 점차 이상하게 변하자 나는 그 사실을 즉각 지적해 주었소. 그러면 그녀는 급히 거울로 달려갔고 자신을 바라보며 정말 보기 흉해졌다고 믿고 마침내 실제로 추해졌다오. 이게 곧 악의 힘이오. 악은 인간을 형성하기도 하고 변형시킬 수도 있소. 하지만 그것도 굉장한 재능을 필요로 하오. 사람들은 추악해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도 하지 못하오. 악은 성스러움을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행이라오. 우선 언제나 연민에 쏠린 사회적 편견을 극복해야 하고 좋은 감정을 지닌 창백한 인간을 쉴 새 없이 짓눌러야 하오. 마침내 어떤 날카로운 극적 감각,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닌 영혼의 심리적 지식을 가져야 하오. (P236-237)
내가 환자라고 그녀는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았던 거요! 이번에는 내가 뻗었던 팔을 거두었소. 그러자 거의 동시에 그녀는 내 팔을 잡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소. 내 몸이 온통 침대 옆으로 기울어졌소.
“그만 당겨, 미쳤어? 이러면 아프잖아.”
그러나 그녀는 두 손으로 내 팔을 떼어가겠다는 듯이 움켜잡았소. 그러자 나를 받쳐주던 나무 판자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고 나는 그대로 높은 병원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몸이 으스러졌소. 그녀가 나무판자의 고리를 헐겁게 풀어놓았던 것이오.
나는 허리 한가운데 골수 전체를 움켜잡는 엄청난 오한을 느꼈소.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음 벼락을 맞은 듯했고 마치 크리스탈 잔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듯 내 몸은 부서졌소. 나는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 쓰러진 채로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내 귀에 속삭이는 어떤 여자 목소리를 들었소.
“어리석고 불쌍도 하지, 그러니까 내가 다 잊었다고 믿고 있었나 봐?”
당신은 이번 사고로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게요. 나는 척추를 다쳐서 허리부터 마비 상태가 되어 두 다리와 발기 신경을 모두 잃었소. (P285-286)
불구가 되기 이전에 내 삶은 아무 결점 없이 찬란하고 충만해 있었고, 지금은 나를 옥죄는 여자 간수의 손에 감금되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소. 내 삶을 이렇게 극명하게 바꾸어 놓은 절망적인 상황에 화가 났지만 그런 분노마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지요. 내 행복을 확신했던 아무 근심 없고 격렬하고 퇴폐적인 쾌락의 든든한 갑옷을 입고 있다가 그만 신체에 장애가 생기자 아무 소용이 없었던 거요. 나는 때때로 일어나는 현기증과 경련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너졌고 아주 작은 마음의 동요에도 불안하게 살펴보는 데 그만 얼이 빠졌다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더욱 끔찍한 고통을 겪었소.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고통, 더구나 회복할 수 없다는 고통으로 더럽혀지고 모욕을 받고, 내가 그토록 잊고자 했던 여인에게서 괴로움을 당하는 나는 떨어졌던 그 어떤 나락보다 더 밑으로 추락한 채로 살아남았지요. (P290)
지독한 경박함과 극심한 이기주의가 끔찍하게 바꾸어 놓은 인생에서 모든 것은 실패했소. 나는 우리 사회를 미워하오. 우리에게 자유를 강요하고 모든 인간이 운명의 무게와 책임을 짊어지게 하잖소. 30년 동안 나는 변덕도 부리고 퇴폐적인 행위도 하고 일도 하면서 평범함의 유록과 일상생활의 비천함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매번, 나도 모르게 내가 출발했던 곳보다 더 낮은 곳으로, 단조로움의 기슭으로 되돌아왔소. 어쨌든 나는 끝까지 내 순교 스타일을 밀고 나갈 거요. 나는 남성 전체를 대표하여 여성들에게 진 빚을 몽땅 갚은 거요. 나는 이 세상을 순화시키기 위해 야만적인 남성이 저지르는 끔찍한 짓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졌소. (P315)
나는 프란츠에게 말해 주었다. 배가 기울고 있다고, 우리가 복도로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그는 휠체어를 밀고 가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때 순간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휠체어 머리받침의 핸들을 슬쩍 풀어 놓았다. 이제 막 배가 앞뒤로 흔들렸기 때문에 휠체어는 앞으로 나아가 문에 부딪치고는 다시 뒤로 밀려났다. 불구자가 나가떨어지지 않은 것은 기적이었다.
“조심하시오!” 그가 소리 질렀다.
나는 휠체어가 내 앞으로 지나가는 데도 팔짱을 끼고서 붙잡지 않았다. 레베카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휠체어를 붙잡더니 내게 보였다. 프란츠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객선이 흔들릴 때마다 휠체어는 벽에 부딪쳐 좌우로 흔들거렸다. 배는 곧 뒤집힐 것 같았다. 우리는 프란츠의 휠체어를 공처럼 서로에게 넘겨주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잡는 데 있는 엄청난 난투전에서 공을 주고받을 때처럼, 프란츠는 손으로 바깥쪽 바퀴의 테를 잡아 휠체어를 멈추려고 했다. 그렇지만 배안의 좁은 통로는 경사져 있었고 우리가 힘껏 휠체어를 밀었기 때문에 그가 휠체어를 멈출 수는 없었다. 우리가 그를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그의 눈동자는 진흙범벅이된 더러운 물처럼 공포로 가득 차 뿌옇게 되었다. 이 부부에게서 어떤 잔인함이 내게 옮겨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리가 마비된 불구자가 공포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나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긴 것은 바로 그가 아닌가? (P332-333)
내가 그의 손을 잡자 그는 오히려 내 손을 움켜쥐더니 강제로 잠자고 있는 레베카의 얼굴에 끓는 물주전자를 쏟아 붓게 했다.
나머지는 다음 몇 마디 말로 요약된다. 짧게나마 실랑이가 있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힘이 셌다. 내가 아파서 팔에 힘을 주고 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구자가 조이는 힘에 비한다면 나는 무력했다. 그가 너무도 세게 내 손을 조여서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은 주전자 뚜껑이 벗겨지고 물이 레베카의 얼굴로 쏟아졌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레베카는 발버둥 치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소리를 지르더니 고통으로 신음하다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때 프란츠는 영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반짝거렸고 얼굴에는 피가 몰려 새빨개진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주전자를 내팽개치고 그대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프란츠는 나를 넘어뜨리고 내 팔을 비틀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는 웃었다. 마치 레베카의 살갗을 태워버린 뜨거운 물과 마음이 통한다는 듯이, 갑자기 좁은 통로에서 분주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선원 한 명이 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내 목덜미를 내리쳤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묶여 있었고 험악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프란츠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헐떡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가 내 아내를 죽이려고 했어요. 막아보려고 했지만 힘 없는 장애자인 걸요. 내 아내를 죽이려고 했다구요!” (P381-382)
내가 이스탄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지도 한 달이 되었다. 아직도 땅이 흔들려서 마치 내가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과 격리되어, 이 이상한 나라에서 적대적인 감방 동료들에 둘러싸여 홀로 있었다. 내가 사랑한 유일한 여인에게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는 비틀거리며 경찰관을 따라가 이스탄불 변호사회 소속 관선 변호사를 만났다. 내 사건은 아주 심각하다고 그는 숨김없이 말했다. 또 현행범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몹시 불리하며, 모든 증언, 특히 라즈 티와리와 마르셀로의 증언이 내게 불리하다고 말했다. (P383)
당신은 내가 이 대단원의 사건을 왜 좋아하는지 아시오? 그건 이 모든 일이 다 당신이 서툴렀기 때문이오. 감동적일 정도로 서툴렀기 때문이오. 오늘날 비극은 저주로 인해 인간에게 생겨나는 게 아니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서투름에서 나오는 것이오. 누구나 다 처음에는 발을 크게 헛딛으면서, 실수하다가, 그만 불행에 빠집니다. 우리의 비극은 고통을 받는 것만이 아니오. 장애로 고통을 받으면서 거기에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는 거요. 우리는 더 이상 운명을 핑계 삼지는 않을 거요.
나는 이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오. 이 세상 아래, 이 하늘 아래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시는 저주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난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소.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나니 이제는 의사인 직업에 다시 관심이 가오. 레베카는 아마도 미용실을 열 것이오. 사람은 누구나 항상 제 자리로 돌아가는 법인가 보오. 나는 우리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영원히 서로를 저주할 거요.
요컨대 내가 이 편지를 쓴 목적은 다음과 같소. 당신에 대한 고소를 취하할 것이오. 따라서 내 증언도 모두 취소하오. 그리고 당신은 사고였다고 당신 의견을 주장하기를 충고하오. 내 덕분으로 당신은 감옥이란 게 어떤 건지도 알았으니 당신처럼 고지식한 학자에게는 얼마나 자극적인 경험이었겠소. 그러니 기회가 허락한다면 그걸 책으로 한번 써보시오. (P386-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