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영화 <다빈치 코드> 2006년

by 노용헌

<다빈치 코드>는 댄 브라운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며, 영화 1편 <다빈치 코드>, 2편 <천사와 악마>(2009), 3편 <인페르노Inferno>(2016)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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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 루브르 박물관

밤 10시 46분

자크 소니에르 관장은 박물관 대화랑의 아치형 복도를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제일 가까운 곳에 걸린 그림이 바로 카라바조였다. 이 명화의 금박 액자를 움켜쥔 일흔여섯 살의 노인은 온 힘을 다해 그림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고, 다음 순간 그림이 벽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뒤로 벌렁 자빠져 그대로 그 밑에 깔리고 말았다.

예상대로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대화랑의 출입구를 봉쇄했다. 마룻바닥이 쿵 하고 흔들렸고, 동시에 멀리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니에르 관장은 잠시 그대로 누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황을 판단해 보았다.

‘난 아직 살아 있어.‘

그는 그림 밑에서 기어 나와 어딘가 몸을 숨길 데가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섬뜩할 만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움직이지 마시오.”

두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댄채 그대로 얼어붙은 소니에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불과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철문 바깥에, 태산 같은 덩치의 침입자가 철창 사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가 넓고 키도 아주 컸으며, 유령처럼 창백한 피부에 하얀 머리칼은 숱이 별로 많지 않았다. 홍채는 분홍색, 동공은 짙은 빨간색이었다. 이 알비노는 외투에서 권총을 꺼내 관장을 겨누었다.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어느 지방 출신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억양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게 어디 있는지 말하시오.”

“이미 말했잖소.”

관장은 화랑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대답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말이오.”

“거짓말 마시오.”

괴한은 유령처럼 번득이는 눈동자 말고는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고 관장을 노려보았다.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은 당신네 소유가 아닌 무언가를 가지고 있소.”

관장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자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오늘밤 그 물건은 올바른 주인을 찾아갈 겁니다. 어디다 숨겼는지만 얘기하면 목숨은 살려 주겠소.”

괴한은 관장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게 목숨을 바칠 만큼 중요한 비밀입니까?”

소니에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괴한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자신의 총구를 내려다보았다.

소니에르는 두 손을 쳐들었다. (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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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는 자신이 입수한 정보가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임을 알고 있었다.

“스승님, 네 사람 모두 쐐기돌의 존재를 자백했습니다....... 전설의 쐐기돌 말입니다.”

스승이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에서 그의 흥분이 전해졌다.

“쐐기돌이라, 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구나.”

전하는 바에 따르면 문제의 조직은 그들 최고의 비밀이 영구적으로 안치된 장소를 나타내는 지도를 돌판에 새겨 놓았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클레 드 부트(아치의 열쇠), 혹은 쐐기돌이라 불리는데, 거기에는 조직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 비밀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할 만큼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쐐기돌을 손에 넣고 나면, 단 한 걸음밖에 남지 않게 된다.”

스승이 말했다.

“우리는 스승님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쐐기돌은 바로 이곳, 파리에 있습니다.”

“파리에?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사일러스는 그날 저녁에 일어난 사건들을 낱낱이 보고했다. 네 명 모두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그 하잘것없는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비밀을 털어놓았다. 네 사람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쐐기돌은 파리의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인 생 쉴피스 성당 내부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P23-24)

오페라하우스 남단을 지나 방돔 광장을 가로지르는 시트로엥 ZX의 열린 창문으로 서늘한 4월의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로버트 랭던은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서둘러 샤워와 면도를 하고 나온 탓에 겉모습은 그럭저럭 봐 줄 만했지만, 그것이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관장의 시체, 그 끔찍한 이미지가 뇌리에 깊숙이 박힌 탓이었다.

‘자크 소니에르가 죽었다.’

랭던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소니에르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유명했지만, 예술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푸생과 테니르스의 회화에 숨겨진 암호를 다룬 그의 저서들은 랭던이 수업 시간에 즐겨 사용하는 교재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랭던은 오늘 밤 그를 만난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를 걸었고, 막상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실망감도 그만큼 컸다. (P27-28)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새 출입구는 박물관 자체만큼이나 유명했다. 중국 태생의 미국 건축가 I.M. 페이가 설계한 초현대식 유리 피라미드인데, 전통주의자들은 아직도 그것이 르네상스풍의 근엄한 안뜰을 망가뜨린다고 헐뜯곤 했다. 페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괴테의 비유에 빗대어, 이 피라미드를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와도 같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은 22미터 높이의 이 투명한 피라미드가 고대의 구조와 현대의 기술을 접목시켜 --이것이야말로 신구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 상징적인 연결 고리다-- 루브르에 또 다른 1천년의 영화를 선사할 것이라고 격찬했다. “우리 피라미드가 마음에 듭니까?”

요원이 물었다.

랭던은 내심 눈살을 찌푸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인만 만나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상당히 유도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에 든다고 대답하면 교양 없는 천박한 미국인이 되어 버리고,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프랑스를 모독하는 처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미테랑은 아주 과감한 인물이었지요.”

랭던은 유도 심문에 넘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금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 피라미드설계를 의뢰한 미테랑 전 대통령은 이른바 ‘파라오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비롯한 각종 예술품과 유물로 파리를 채우려 했을 만큼 이집트 문명의 열렬한 애호가였고, 프랑스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그를 ‘스핑크스’라고 불렀다.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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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 데이의 총책임자이기도 한 아링가로사 주교는 ‘하느님의 사역’ --이것이 바로 ‘오푸스 데이’라는 라틴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스페인의 성직자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1928년에 창설한 이 단체는 가톨릭의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돌아가 철두철미한 희생정신으로 하느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푸스 데이의 전통주의적 철학은 원래 프랑코 체제 이전의 스페인에 뿌리를 둔 것이지만, 1934년에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의 <길>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999개의 명상이 담긴 책이다-- 그의 메시지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책이 지금까지 42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4백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끝에, 오푸스 데이는 세계적인 세력으로 성장했다. 세계 곳곳의 거리 모든 대도시에 이 단체의 기숙사와 교육관, 심지어는 대학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푸스 데이는 세계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고 재정적으로도 가장 탄탄한 가톨릭 조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링가로사는 지금과 같은 종교적 냉소주의와 이단, 이른바 ‘텔레비전 전도사’들이 판을 치는 세태 속에서, 오푸스 데이의 부와 영향력이 커질수록 세간의 시선도 점점 의혹으로 물들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49-50)


랭던은 마룻바닥에서 자주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글자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자크 소니에르가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글귀는 랭던이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유언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였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13-3-2-21-1-1-8-5

O, Draconian devil(아, 드라콘 같은 악마여)!

Oh, lame saint(오, 절름발이 성인이여)!

랭던은 그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지만, 이제야 펜타클이 악마 숭배와 연관된다고 했던 파슈의 추측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드라콘 같은 악마여!’

소니에르는 노골적으로 악마를 거론했다. 게다가 아무런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숫자의 나열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암호 같기는 한데.” (P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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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만 해도 해부학적으로 가장 정확한 그림으로 평가되던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 비례’는 세계 각국에서 포스터나 마우스 패드, 티셔츠를 장식하는 등 현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유명한 스케치는 팔과 다리를 독수리 날개처럼 활짝 뻗은 나체의 남자를 하나의 원이 둘러싼 형태로 되어 있다.......

‘다빈치.’

랭던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이제 소니에르의 의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행동은 옷을 모두 벗고 온몸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비트라우스의 인체 비례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 원이야말로 조각 그림을 끼워 맞추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보호를 의미하는 여성의 상징, 그리고 알몸인 남자의 몸을 에워싼 원은 다빈치의 의도, 즉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의미했다. 이제 문제는 소니에르가 무엇 때문에 그 유명한 스케치를 모방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랭던 씨“

파슈가 말했다.

“선생 같은 사람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흑예술 쪽으로 기울어진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지요.”

랭던은 다빈치에 대한 파슈의 지식이 상당한 수준임을 깨닫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처음부터 파슈가 악마 숭배를 들먹인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빈치는 오래전부터 역사학자, 특히 기독교의 전통에 충실한 역사학자들에게는 아주 골치 아픈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엄청난 천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열렬한 동성애자에다 자연의 신성한 질서를 숭배하는 인물이라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끊임없이 죄악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물이었다. 더구나 다빈치는 악마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괴짜이기까지 했다. 인체 해부를 연구하기 위해 시체를 도굴하는가 하면, 글자를 거꾸로 써서 해독이 불가능한 수수께끼의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또 자신이 납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을 터득했으며, 죽음을 막는 만병통치약을 개발해 신을 속일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의 발명품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쟁 무기와 고문 도구가 포함되어 있다.

‘오해는 불신을 낳는 법이다.’

랭던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다빈치가 주옥같은 기독교 미술품을 창조했다는 사실조차도 그의 악명 높은 영적 위선을 더욱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다빈치는 엄청난 보수가 보장되는 바티칸의 의뢰로 수백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이는 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상업성에서 비롯된 일종의 장사로 보는 것이 옳다. 호사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또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의 손을 몰래 갉아먹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짓궂은 성품의 소유자였다. 기독교를 주제로 한 그림에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징들을 숨겨 둔 것인데, 이는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한 공물(供物)인 동시에 교회에 대한 경멸의 표시이기도 했다. 랭던은 런던의 국립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의 숨겨진 삶: 기독교 미술 속의 비기독교적 상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기도 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랭던이 말했다.

“하지만 다빈치는 한 번도 흑예술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교회와 갈등을 빚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영적인 사람이었으니까요.” (P77-78)


영화 다빈치 코드 11.jfif

“느뵈 요원입니다.”

파슈는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 소피 느뵈라면 DCPJ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영국의 로열 홀로웨이 대학에서 암호학을 공부한 이 젊은 파리 토박이는 2년 전 경찰 인력 가운데 여성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고위층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슈에게 떠맡겨진 골칫덩이였다. 그래도 파슈는 정치적인 명분에 집착하다가 조직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면 안 된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여자들은 경찰 업무에 필요한 육체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얼씬거리는 것 자체가 현장에서 활동하는 남자 요원들의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소피 느뵈 때문에 제정신을 못 차리는 얼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서른두 살의 소피는 오기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고집이 센 여자였다. 그녀가 영국에서 배워 온 최신 암호학 이론을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통에 프랑스 국내파 고참들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들고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파슈를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은 소피가 지나갈 때마다 중년의 남자 요원들이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느라 일손을 놓아 버린다는 점이었다. 역시 젊고 매력적인 여자가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인 모양이었다.

무전기로 변신한 파슈의 휴대전화에서 다시 찌지직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느뵈 요원이 지금 당장 국장님을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P85-86)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말고 가만히 듣기만 하세요. 선생님은 지금 큰 위험에 처해 있어요. 지금부터 내 지시를 그대로 따르셔야 해요......‘

랭던은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면서도 일단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파슈에게 친구가 크게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둘러대고 대화랑 제일 안쪽의 화장실을 쓰겠다고 한 것이다.

지금 랭던 앞에 서 있는 소피는 화장실까지 달려오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환한 형광등 불빛 밑에서 보는 소피의 모습에는 조금 전의 강인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로워서, 가려진 듯하면서도 또렷하고 어딘지 수수께끼의 장막이 드리워진 듯하면서도 대담하기 그지없는 르누아르의 초상화와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당신이 비밀 감시 대상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싶었어요.”

소피가 아직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파슈는 지금 당신을 용의주도하게 관찰하고 있어요.”

그녀의 영어에는 프랑스어 억양이 실려 있었고, 그 목소리가 타일로 덮인 벽에 반사되어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유가 뭐지요?”

랭던이 되물었다. 소피는 이미 음성 메시지로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랭던은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소피는 한 발 더 다가서며 말했다.

“파슈는 당신을 이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거든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랭던은 너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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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줄에는 파슈가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소피가 말했다.

“당신을 꼼짝 못하게 얽어매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소피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컴퓨터로 출력한 사진을 한 장 꺼내서 펼쳐 들었다.

“파슈는 범죄 현장의 사진들을 암호 해독 부서로 전송했어요. 우리가 소니에르의 메시지에 담긴 의미를 풀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죠. 이건 그 메시지의 전체가 담긴 사진이에요.”

소피는 그렇게 말하며 랭던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랭던은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에는 마룻바닥에 적힌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마지막 한 줄이 비수처럼 랭던의 심장에 꽂혀 들었다.

13-3-2-21-1-1-8-5

아, 드라콘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절름발이 성인이여(Oh, lame saint)!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P.S. Find Robert Langdon).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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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랭던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승부수를 띄웠다.

“브쥐 파슈는 당신을 구금하려 할 거예요. 내가 당신을 이 박물관에서 빠져나가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행동을 시작해야 해요.”

랭던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더러 도망을 치란 말입니까?”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이에요. 머뭇거리다가 파슈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날에는 DCPJ와 미국 대사관이 당신을 어느 나라 법정에 세울 것인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동안 적어도 몇 주는 이곳 프랑스의 감옥신세를 져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서 미국 대사관까지만 들어가면 누명을 벗을 때까지 당신네 정부가 당신의 권리를 보호해 줄 거예요.”

랭던은 그녀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 건 꿈도 꾸지 맙시다. 파슈의 부하들이 총까지 든 채 모든 출구를 지키고 있어요. 설령 무사히 빠져나간다 해도, 그것 자체가 내가 범인임을 스스로 자백하는 행동입니다. 그보다는 소니에르가 마룻바닥에 남긴 메시지는 당신을 위한 것이고, 거기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도 내가 범인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슈에게 잘 설명해 보는게 어떨까요?”

“물론 설명할 거예요.”

소피가 다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무사히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한 다음에 할 일이죠. 대사관은 여기서 1킬로미터도 안 떨어진 곳이고, 바깥에 내 차가 주차되어 있어요. 지금 여기서 파슈를 설득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높은 도박이에요. 파슈는 어떻게 하든 당신이 범인임을 입증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그가 지금 당장 당신을 체포하지 않는 이유는 더욱 심증을 굳힐 만한 뭔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일 뿐이에요.” (P133-134)


랭던은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준비하며 파이 숫자는 피보나치수열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했다. 피보나치수열은 앞의 두 숫자를 합치면 그다음 숫자가 나오는 성질뿐만 아니라, 인접한 두 수의 비를 분수로 나눠 보면 파이, 즉 1.618로 수렴된다는 놀라운 성질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파이가 갖는 신비한 수학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것이 자연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건축 재료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식물과 동물, 심지어는 인간조차도 파이와 1의 비를 엄격하게 따르고 있다.

“자연계 곳곳에서 파이가 발견되는 것은 우연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랭던은 강의실의 전등을 끄며 말했다.

“따라서 고대인들이 파이 숫자야말로 우주의 창조주가 미리 정해 둔 숫자라고 믿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고대의 과학자들이 1.618을 황금 비율이라 이름붙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P156-157)


“결국 우리는 상징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칠판에다 서로 교차하는 선들을 그어 다섯 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을 그렸다.

“이것은 여러분이 이번 학기에 보게 될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문 용어로는 펜타그램이라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펜타클이라고 불렀지요. 아무튼 이 상징은 많은 문화권에서 신성하고 마법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번에도 수학과의 스테트너가 손을 들었다.

“펜타그램을 그리면 선들이 자동으로 황금 비율에 따라 분할되기 때문입니다.”

랭던은 그 학생을 향해 칭찬이 담긴 고갯짓을 해 보였다.

“좋은 답변입니다. 그래요, 펜타클 속의 선분들의 비는 모두 PHI입니다. 이 상징이 황금 비율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섯 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은 예로부터 여신이나 신성한 여성성과 관련된 미와 완벽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강의를 듣던 여학생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한 거지 더, 우리는 오늘 다빈치를 그냥 슬쩍 스쳐 지나갔지만, 이번 학기 내내 그의 작품을 수없이 보게 될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신을 표현하는 고대의 방식을 가장 열렬하게 옹호한 인물입니다. 내일 여러분은 그가 남긴 <최후의 만찬>을 보게 될 텐데, 이 작품이야말로 신성한 여성성에 대한 최고의 공물(供物)입니다.”

“농담하시는 거죠?”

누군가가 말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을 묘사한 그림이잖아요!”

랭던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 그림속에는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한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P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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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라콘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절름발이 성인이여(Oh, lame saint)!

그것은 완벽한 애너그램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The Mona Lisa)! (P164-165)


“그게 바로 이 그림이 그토록 유명한 이유 가운데 하나야. 사람들은 저 여자가 왜 미소를 짓고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내놓거든.”

“할아버지는 왜 그런지 아세요?”

“글쎄다.”소니에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나중에 얘기해 주마.”

소피는 발을 쾅 구르며 쏘아붙였다.

“전 비밀 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프린세스.”

소니에를 미소를 지었다.

“삶은 비밀로 가득 차 있어. 그 모든 비밀을 한 번에 다 풀 수는 없잖아.”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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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라는 이니셜과 함께 새겨진 백합 문양, 그게 바로 이 조직의 공식 문양입니다.”

랭던이 말했다.

“일종의 로고 같은 거지요.”

“그걸 어떻게 알죠?”

소피는 랭던의 입에서 자기도 그 조직의 회원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그 조직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랭던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밀 결사의 상징을 연구하는 것이 내 전문 분야 가운데 하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시온수도회라고 부릅니다. 이곳 프랑스에 근거지를 두고 유럽 전역의 유력 인사들을 포섭했지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비밀 결사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소피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랭던은 이제 봇물이 터진 듯 말을 쏟아냈다.

“시온수도회의 회원들 중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보티첼리, 아이작 뉴턴 경, 빅토르 위고 등이 모두 이 조직의 회원이었습니다.”

이제 랭던의 목소리에는 학구적인 열정마저 묻어났다.

소피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다빈치가 비밀 조직의 회원이었다고요?”

“다빈치는 1510년부터 1519년까지 시온수도회의 그랜드마스터였습니다. 어쩌면 당신 할아버지가 레오나르도의 작품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두 사람은 역사를 뛰어넘어 형제와도 같은 유대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여신 도상학과 이교도의 신앙, 신성한 여성성을 숭배한 반면, 교회를 경멸했어요. 시온수도회는 신성한 여성성을 경배하는 전통을 자랑합니다.”

“그러니까 그 조직이 이교도의 여신을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라는 말인가요?”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고대의 비밀을 지키는 수호자로 알려졌다는 점이지요. 그것 때문에 그들은 믿기 힘들 만큼 강력한 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소피는 랭던의 확신에 찬 단호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이 한마디도 곧이곧대로 믿기지 않았다.

‘비밀스러운 사이비 종교 단체라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조직의 대장이었고?’ (P190-191)


“잘 대답해 주셨습니다. 아몬은 숫양의 머리를 가진 남자로 표현되지요, ‘homy(성적으로 흥분했다는 의미)’라는 속어도 그의 강력한 정력과 휘어진 뿔(horn)에서 유래된 겁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랭던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그 아몬의 상대역은 누군지 아십니까? 이집트의 다산의 여신 말입니다.”

이번 질문에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시스입니다.”

랭던이 유성 펜을 집어 들며 말했다.

“자, 여기 남자 신 아몬이 있습니다.”

랭던은 그렇게 말하며 프로젝트에 올려놓은 필름에다 ‘AMON'이라고 썼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자 신 이시스가 있지요. 고대의 그림 문자로는 ‘L'ISA'라고 씁니다.”

랭던은 두 개의 단어를 쓴 다음, 프로젝터에서 물러섰다.

AMON L'ISA

“뭔가 짚이는 게 없습니까?”

랭던이 물었다.

“Mona Lisa..... 맙소사.”

누군가 탄성을 내질렀다.

랭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모나리자>는 얼굴만 남녀가 섞인게 아니라, 이름까지도 남자 신과 여자 신을 합친 애너그램입니다. 그게 바로 다빈치가 숨겨둔 비밀이고, <모나리자>가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짓는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P203-204)


영화 다빈치 코드 06.jfif

한때 영적 계몽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칭송받던 여성들이 전 세계의 사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유대교의 랍비와 가톨릭 신부는 물론, 이슬람교에서 여성 성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자연스러운 성적 결합을 통해 각자 영적으로 완전해진다는 취지의 히에로스 가모스는 한때 신성한 의식으로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전락했다. 여성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 하느님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믿었던 남자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성적 충동을 악마의 농간으로 치부한다. 악마가 자신이 제일 총애하는 공범, 즉 여자들과 손을 잡고 남자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여성과 왼쪽의 관계 역시 교회의 집요한 공격 대상에 다름아니었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서 ‘왼쪽’을 뜻하는 ‘고쉬(gauche)'와 ’시니스트라(sinistra)'라는 단어에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된 반면, 오른쪽을 뜻하는 단어들은 정당함, 능숙함, 올바름 등의 의미로 연결된다. 오늘날까지도 급진적인 사상을 좌익과, 비합리적인 생각을 좌뇌와 연결시키고, 무언가 사악한 것을 ‘sinister'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신의 시대는 끝났다. 추가 완전히 기울어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 지구’는 남자의 세계가 되었고, 파괴와 전쟁의 신들이 득세했다. 2천년 동안 남성의 자아는 여성의 견제를 걱정할 필요 없이 독주를 거듭했다. 시온수도회는 신성한 여성성이 말살됨으로써 호피 인디언들이 ‘카야니스콰지’, 즉 균형이 깨진 삶이라고 부르는 오늘날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믿는다. 남성 호르몬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 전반의 여성 혐오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반면, ‘어머니 지구’에 대한 경외심은 흔적 없이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P210-211)


“그들이 죽었어요!”

생 쉴피스의 자기 침소에서 상드린 수녀가 전화기에 대고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동 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기는 중이었다.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그들이 모두 죽었다고요!”

명단에 나와 있는 처음 세 개의 번호로 전화해 본 결과는 실로 끔찍했다. 한 통은 신경질만 버럭버럭 내는 어떤 미망인이, 또 한 통은 살인 현장에서 밤늦도록 일에 매달리고 있는 형사가 받았으며, 나머지 한 통은 가족을 잃은 비통함에 잠긴 어느 성직자가 받았다. 상드린 수녀는 결국 네 번째이자 마지막 번호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처음 세 개의 연락처가 모두 불발로 끝날 때가 아니면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지시받은 번호였지만, 그나마 자동 응답기가 나왔다. 녹음된 인사말은 자기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냥 메시지를 남겨 달라는 말뿐이었다.

“바닥의 타일이 깨졌어요!”

상드린 수녀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메시지를 남겼다. (P226)


영화 다빈치 코드 14.jfif

“로버트, 지금 보여 드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바로 이게 할아버지가 <암굴의 마돈나> 뒤에 숨겨 둔 물건이에요.”

랭던은 짜릿한 기대감과 함께 그 물건을 받아 살펴보았다. 꽤 묵직했고, 십자가 모양을 한 물건이었다. 제일 먼저 그의 뇌리를 스친 생각은 장례용 말뚝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시신을 묻은 땅 위에 박아놓도록 만든 추모비의 축소판 같았다. 그러나 랭던은 십자가에서 삐져 나온 몸체가 현란한 색채의 삼각형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몸체에는 마마 자국 같은 미세한 육각형 점들이 수백 개쯤 무작위로 찍혀 있었는데, 그런 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로 정밀한 도구가 사용되었을 듯했다.

“그건 레이저를 이용해서 만든 열쇠예요.”

소피가 말했다.

“식별기가 그 육각형들을 판독하는 방식이죠.”

‘열쇠?’

랭던은 한 번도 그렇게 생긴 열쇠를 본 적이 없었다.

“반대쪽을 보세요.”

소피가 차선을 바꾸어 교차로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말했다.

열쇠를 반대쪽으로 돌리는 순간, 랭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십자가 한복판에 세련된 백합 문양과 함께 P.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소피.”

랭던이 말했다.

“내가 아까 얘기했던 문양이 바로 이겁니다! 시온수도회의 공식 문양이지요.”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린 대로 나는 이 열쇠를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거기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말도 못 꺼내게 하셨죠.” (P241)


"상그레알을 문자 그대로 풀어 놓으면 성배가 됩니다. 이 단어는 상그랄(Sangral)이라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어요. 그게 상그레알로 변한 건데, 사실은 ‘산(San)'과 ’그레알(Greal)'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거예요.“

‘성배(Holy Grail).'

소피는 자기가 왜 지금까지 그렇게 간단한 언어학적 결합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랭던의 주장을 금방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배는 컵이에요. 하지만 조금 전에 당신은 상그레알이 어떤 엄청난 비밀을 담은 문서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맞아요. 하지만 상그레알 문서는 성배라는 보물의 절반일 뿐입니다. 그게 진짜 성배와 함께 묻힌 거지요...... 템플기사단이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것은 그 문서가 성배의 진짜 의미를 밝혀 주었기 때문입니다.”

‘성배의 진짜 의미?’ (P271-272)


이런 이유로 성배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그 행방을 암시하는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다빈치의 미술 작품과 일기를 연구한다. 어떤 이들은 <암굴의 마돈나>에 배경으로 그려진 산세가 수많은 동굴들을 품은 스코틀랜드 구릉 지대의 지형과 일치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또 어떤 이들은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과석 배치가 뭔가 수상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나리자>를 X선으로 촬영한 결과, 처음에는 그녀가 이시스 여신의 청금석 목걸이를 한 것으로 그려졌으나 나중에 생각이 바뀐 다빈치가 덧칠로 지운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랭던은 목걸이를 그렸다가 지운 증거도 직접 확인하지 못했을뿐더러 그것이 성배의 행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전혀 납득할 수 없겠지만, 지금도 성배 사냥꾼들은 세계 각지의 인터넷 게시판과 대화방을 이 문제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람들이야 음모 이론에 끌리게 마련이지.’

음모론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최근에는 다빈치의 유명한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 속에 커다란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비밀을 밝혀낸 사람은 이탈리아의 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마우리치오 세라치니(Maurizio Seracimi)인데, 당시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레오나르도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P284-285)


“성배를 찾는다고요?”

랭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소피, 시온수도회의 전승에 의하면 쐐기돌은 암호화된 지도예요...... 성배가 숨겨진 위치를 표시한 지도 말입니다.”

소피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당신은 이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랭던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게 바로 쐐기돌이라는 결론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장미의 표식 밑에 숨겨진 암호화된 돌.’

크랩텍스가 시온수도회의 그랜드마스터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진짜 쐐기돌이라는 점을 순순히 인정하라고 유혹하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옛 그랜드마스터가 남긴 설계도가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또 다른 조직원에 의해 실물로 탄생했다.’

그냥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연관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쐐기돌을 찾기 위해 프랑스의 성당들을 뒤졌다. 비밀로 점철된 시온수도회의 역사에 익숙한 성배 사냥꾼들은 클레 드 부트가 말 그대로 진짜 쐐기돌을 의미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당의 둥근 아치형 천장에 끼워진, 암호가 새겨진 돌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장미의 표식 아래.’ (P346)

영화 다빈치 코드 15.jfif

[2]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아이러니가 바로 그 부분이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을 편집한 사람은 로마의 황제이자 이교도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거든.”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소피가 말했다.

“천만에.”

티빙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는 평생을 이교도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세례를 받은 인물이오. 그것도 기력이 다해서 저항을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로바의 공식 종교는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혹은 '무적의 태양신‘을 숭배하는)--였고, 콘스탄티누스 본인이 그 종교의 대제사장이었소.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대한 종교적 소용돌이가 로마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3세기가 지날 무렵,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거요. 기독교도와 이교도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런 갈등은 로마가 두 동강으로 분열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번져 갔소. 콘스탄티누스가 가만히 뒷짐만 지고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그래서 그는 325년, 로마를 단일 종교로 통일시키기로 마음먹었는데, 그게 바로 기독교였소.”

소피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교도였던 황제가 왜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선택한 거죠?”

티빙은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아주 유능한 사업가였던 거지. 기독교가 대세라는 사실을 포착하자, 미련 없이 말을 갈아탄 거뿐이오. 지금도 역사학자들은 콘스탄니누스가 태양 숭배에 익숙한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탁월한 역량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소. 이교도의 상징과 달력, 제의 등을 새롭게 성장하는 기독교의 전통과 뒤섞어 놓음으로써 양쪽 모두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혼혈 종교를 만들어낸 거지.”

“전문 용어로는 ‘변형(transmogrification)'이라고 하지요.”

랭던이 말했다.

“기독교의 기호학 속에 남아 있는 다른 종교의 흔적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정도예요. 태양을 나타내는 이집트의 양원(陽圓)은 가톨릭 성인들의 머리 위에 얹힌 후광이 되었고, 기적적으로 수태된 아들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의 그림 문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현대적인 이미지의 토대가 되었지요. 가톨릭 미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 --주교관, 제단, 송영, ‘신을 먹는’ 행위인 성찬식 등--은 그 이전 시대의 신비적인 다른 종교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P10-12)


“그러니까, 성배 말이에요.”

‘그리스도의 잔, 신성한 잔.’

“예수는 요즘의 기독교인들이 성찬식을 할 때처럼 하나의 성배에 포도주를 따라 제자들에게 돌렸어요.”

티빙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요.”

소피는 눈을 떴다. 티빙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피가 그림을 내려다보니,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포함한 모든 사람 앞에 각각 포도주 잔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모두 열세 개의 잔이 등장하는 셈이었다. 더욱이 그 잔들은 아주 작고 일반적인 포도주 잔처럼 줄기도 없었으며,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 그림 속에 성배라고 할 만한 잔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티빙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성경을 비롯해 일반적인 성배의 전설이 하나같이 이 순간을 결정적으로 성배가 등장한 시점으로 축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다빈치가 그리스도의 잔을 그리는 걸 잊어 먹었다니 말이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틀림없이 미술사 학자들이 지적을 했을 텐데요.”

“다빈치가 이 그림 속에 그려 놓은 비정상적인 묘사를 대부분의 학자들이 아예 보지 못했거나, 혹은 그냥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지 않소? 사실 이 벽화는 성배의 수수께끼를 푸는 완벽한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다빈치는 이 <최후의 만찬> 속에 그 열쇠를 훤히 드러내 놓고 있으니 말이오.”

소피는 다시 한 번 열심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이 그림에 성배가 무엇인지 드러나 있다는 말씀이세요?”

“‘무엇’이 아니라......”

티빙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누구’라고 하는 것이 옳아요. 성배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P18-19)


영화 다빈치 코드 07.jfif

소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림을 향해 다가서며 열세 명의 인물을 훑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 여섯, 오른쪽에 나머지 여섯 명의 제자들이 그려져 있었다.

“다들 남자잖아요.”

소피가 단언했다.

“그래요?”

티빙이 말했다.

“주님 바로 오른쪽, 주빈석에 앉은 사람은 어떻소?”

소피는 예수의 바로 오른쪽에 그려진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굴과 몸을 찬찬히 살피던 그녀의 얼굴에 경악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빨강 머리, 얌전하게 모아 쥔 손은 물론, 봉긋한 젖가슴의 암시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여자였다.

“여자예요!”

소피가 소리쳤다.

티빙은 웃음을 터뜨렸다.

“놀랄 만도 하지, 정말 놀라워! 이건 절대 실수가 아니오, 레오나르도는 남녀의 차이를 묘사하는 솜씨가 누구보다 뛰어난 화가였으니까.”

소피는 그리스도 옆에 자리한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최후의 만찬>에는 당연히 열세 명의 남자가 그려져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럼 이 여자는 누구지?’

소피는 지금까지 이 그림을 수없이 봐 왔지만, 한 번도 이 신기한 현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요.”

티빙이 말했다.

“이 그림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강해서 우리의 마음이 저토록 현저한 모순을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차단해 버리는 거지.”

“흔히 스코토마(skotoma)라고 하지요.” (P30-31)


“마리아 막달레나요.”

소피가 흠칫 그를 돌아보았다.

“창녀 말이에요?”

티빙은 그 말에 상처를 받은 사람처럼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막달레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오. 그 불행한 오해는 초기 교회의 음해 공작이 낳은 유산일 뿐이지. 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안고 있는 위험한 비밀, 즉 성배로서의 역할을 은폐하려고 어떻게든 그녀를 깎아 내려야 했거든.”

“그녀의 역할이라뇨?”

“아까도 말했듯이 초기 교회는 예언자 예수를 신격화하는 작업을 잠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처지였소,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조명하는 복음서는 모조리 성경에서 빼 버린 거지.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복음서마다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인간적인 주제 하나가 무던히도 그들의 속을 썩였소. 그게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였지.”

티빙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 말이오.”

“뭐라고요?”

소피의 눈길이 티빙에게서 랭던으로, 다시 티빙에게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건 역사에 분명히 기록된 사안이오.”

티빙이 말했다.

“다빈치도 물론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겠지.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막달레나가 부부라고 외치는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소피는 다시금 그림을 바라보았다.

“예수와 막달레나가 입은 옷을 유심히 봐요. 마치 거울에 비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소?”

티빙은 그림 한복판에 자리한 두 사람을 가리켰다.

소피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옷 색깔이 정반대였다. 예수는 붉은 로브에 파란 망토를 입었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푸른 로브에 붉은 망토를 걸친 모습이었다. (P32-33)

영화 다빈치 코드 16.jfif

소피는 그가 가리킨 부분을 소리내어 읽었다.

구세주의 동반자는 마리아 막달레나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들보다 더 그 여인을 사랑하였고, 종종 그 여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곤 하였다. 나머지 제자들은 화를 내며 불만을 표하였다. 그들이 예수에게 말하였다. “왜 당신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시나이까?”

그 구절은 소피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것만으로 확실한 결론을 짓기는 무리일 듯했다.

“결혼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잖아요.”

“동반자.”

티빙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첫 문장을 가리켰다.

“아람어를 전공한 사람한테 물어보면 알겠지만, 그 당시 ‘동반자(Aucontraire)'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배우자‘를 의미했소.”

랭던도 고개를 끄덕여 티빙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소피는 첫 번째 문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구세주의 동반자는 마리아 막달레나니라.’

티빙은 책장을 넘기며 몇몇 다른 구절들을 보여 주었는데, 놀랍게도 하나같이 예수와 막달레나가 연인 사이였음을 보여 주는 내용이었다. 소피는 그 구절들을 읽다 보니 문득 그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찾아왔던 성난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P36)


“메로빙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물려받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템플기사단을 조직하고 솔로몬 신전 지하에서 상그레알 문서를 찾아 내게 했던 바로 그 사람이지요.”

티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의 시온수도회는 아주 중요한 세 가지 임무를 띠고 있소. 상그레알 문서를 보호하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무덤을 보호하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후손, 즉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메로빙거 왕조의 몇 안 되는 후손들을 보호하는 막중한 임무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오.”

티빙이 한 말의 단어 하나하나가 널따란 방 안을 둥둥 떠다니며 소피의 몸속에 기묘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예수이 후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프린세스, 너의 가족에 대한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서늘한 한기가 그녀의 살갗을 긁고 지나갔다.

‘왕족의 혈통.’

소피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프린세스 소피.’ (P56)


“당신은 이걸 열 능력이 없소.“

“내 스승님은 아주 현명한 분입니다.”

수도사가 티빙과 소피의 중간쯤을 총으로 겨눈 채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소피는 티빙의 하인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로버트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당신의 스승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티빙이 말했다.

“금전적으로 합의를 보는 방법도 있지 않겠소?”

“성배는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당신, 피를 흘리고 있군.”

티빙은 괴한의 오른쪽 발목을 향해 고갯짓을 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핏방울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양이었다.

“다리도 절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괴한은 그렇게 대답하며 티빙 옆에 놓인 쇠로 된 목발을 가리켰다.

“자, 쐐기돌을 넘겨주십시오.” (P88)


티빙이 말했다.

“경찰이 자네들을 찾아낸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저 오푸스 데이의 하수인이 자네들을 찾아낸 건 보통 일이 아니야. 지금까지 자네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저 녀석이 내 집까지 자네들을 쫓아온 것은 사법경찰이나 취리히 은행, 둘 중의 하나에 누군가가 밀고자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어.”

랭던은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브쥐 파슈가 오늘 밤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혐의를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베르네가 중간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도 랭던이 네 명의 유명 인사를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 수도사는 절대 혼자서 움직이는 놈이 아니야, 로버트.”

티빙이 말했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고.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자네가 칼자루를 쥔 입장이 되었다는 거지. 지금 내 등 뒤에 있는 괴물 같은 녀석이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뒤에서 저 녀석을 조종하는 자도 지금쯤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거야.” (P102)


“그들이 목숨을 버린 것은 쐐기돌을 교회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소. 하마터면 그 쐐기돌이 오푸스 데이의 손에 넘어갈 뻔했지. 지금 당신의 어깨에는 엄청난 책무가 주어져 있소. 당신의 손에 횃불이 건네진거요. 2천 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그 횃불을 허망하게 깨뜨릴 수는 없지 않소. 물론 엉뚱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도 안 될 테고.”

티빙은 말을 멈추고 자단 상자를 바라보았다.

“느뵈 양, 지금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나도 이해가 가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당신은 이 책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나을 것 같소.”

“할아버지는 이 크립텍스를 나에게 주셨어요. 그건 내가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티빙은 조금 기운이 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좋아, 강력한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지. 하지만 말이오, 나는 당신이 쐐기돌을 여는 데 성공하는 순간, 더 큰 시련이 닥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그건 또 왜요?” (P117)


영화 다빈치 코드 17.jfif

“종교재판 때 교회는 템플기사단에게 온갖 종류의 이단 혐의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고말고, 동성애와 악마 숭배에서부터 심지어는 십자가에 방뇨한 혐의까지,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였지.”

“거기에는 우상 숭배도 포함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특히 교회는 템플기사단이 조각을 새긴 돌의 머리에 기도를 드리는 비밀스러운 의식을 거행한다고 비난했어요. 이교도의 신......”

“바포메!”

티빙이 갑자기 소리쳤다.

“맙소사, 자네 말이 맞아, 로버트! 템플기사단이 찬양한 돌의 머리!”

랭던은 소피에게 바포메가 무엇인지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바포메는 창조적인 생식력을 주관하는 이교도들의 다산의 신이다. 바포메의 머리는 번식과 다산을 상징하는 숫양이나 염소로 표현된다. 템플기사단은 이 바포메의 머리와 비슷하게 생긴 돌 주위를 돌며 기도문을 암송함으로써 그를 찬양했다.

“바포메.”

티빙이 소리 죽여 웃음을 터뜨렸다.

“템플기사단의 의식은 성적인 결합이 갖는 창조의 마법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클레멘트 교황은 바포메의 머리가 곧 악마의 머리라고 선언했지. 교황은 바포메의 머리를 템플기사단을 때려잡는 무기로 활용한 셈이야.”

랭던이 티빙의 설명을 이어받았다. 오늘날 흔히 뿔 달린 악마로 묘사되는 사탄의 기원이 바로 바포메다. (P157)


랭던의 이미 비행기 안에서 몇 번이나 그 시를 읽어 보았지만,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 지상으로 내려왔으니 그 오운각의 운율이 더욱 명쾌한 의미를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가며 다시 한 번 시를 읽어 보았다.

교황이 매장한 기사가 런던에 잠들어 있으니

그의 노력의 열매는 거룩한 분노를 유발했도다.

그의 무덤에 있어야 할 구슬을 찾아라.

그것이 장미의 살과 씨앗 뿌려진 자궁을 말하도다.

하나같이 평이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시였다. 런던에 기사가 매장되어 있다. 그 기사의 어떤 노력이 교회를 화나게 했다. 그 기사의 무덤에 마땅히 있어야 할 구슬이 사라졌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장미의 살과 씨앗 뿌려진 자궁’은 예수의 씨앗을 잉태한 장미, 즉 마리아 막달레나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분히 직설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랭던은 이 기사가 누구인지, 그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설령 무덤의 위치를 알아낸다 해도 거기에서 사라진 무언가를 또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미일 듯했다.

‘그의 무덤에 있어야 할 구슬?’ (P191-192)


“그래도 그런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제하는 것 아닌가요?”

“거기엔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그리스도의 역사를 하나의 가설로 토론하는 것과......”

랭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토론하는 것과?”

“신약 성경이 허위 증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가 되는 고대 문서를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신약성경이 날조된 것이라고 했잖아요.”

랭던은 미소를 지었다.

“소피,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날조를 토대로 하고 있어요. 바로 그것이 종교의 정의이기도 하지요. 진실일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하지만 입증할 수는 없는 그 무언가를 믿는 것 말이에요. 모든 종교는 초창기 이집트에서 현대의 주일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 우화 그리고 과장을 통해 신을 묘사하고 있어요.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정상적으로는 처리되지 않는 것을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은유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은유를 은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 들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그럼 당신은 상그레알 문서가 영원히 묻혀 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인가요?”

“나는 역사학자예요. 문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고, 또한 종교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남다른 생애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를 더욱 많이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요.”

“대답이 아주 아리송하네요.” (P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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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아야 할 무덤은 템플 교회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저들은 엉뚱한 곳을 뒤지고 있어.”

그 말은 레미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럼 스승님은 그 무덤이 어디인지를 아십니까?”

“물론이다. 나중에 다 말해 주마. 지금은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저들이 무덤의 진짜 위치를 알아내고 네가 크립텍스를 손에 넣기 전에 교회를 빠져나가면, 우리는 영원히 성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레미는 스승이 성배를 찾기 전까지는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한 것만 아니라면, 성배 자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자기 손에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지금도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스승은 레미에게 2천만 유로에서 3분의 1을 떼어 주겠다고 했다.

‘영원히 종적을 감추기에 부족함이 없는 액수지.’

레미는 코트다쥐르의 해변에서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느긋한 일광욕으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템플 교회 안에서, 랭던이 쐐기돌을 깨뜨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레미의 달콤한 미래까지 커다란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온 마당에 모든 것을 잃을 수는 없으니, 무언가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지금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한손안에 숨길 수 잇을 정도로 조그만 J-프레임의 메두사였지만, 가까운 거리에서는 충분히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권총이었다.

레미는 어둠에서 나와 둥근 방으로 들어가며 정면으로 티빙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영감, 나는 정말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어.” (P230-231)


“레미, 너도 알겠지만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너뿐이다. 내가 그만큼 너를 신뢰한다는 뜻이지.”

“예.”

레미는 열이 온몸으로 번지는 기분이 들어 넥타이를 조금 더 느슨하게 했다.

“나는 스승님의 정체를 무덤까지 가져갈 겁니다.”

스승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 뒤에야 말을 이었다.

“너를 믿는다.”

스승은 술병과 쐐기돌을 주머니에 넣은 뒤, 사물함에 손을 뻗어 조그만 메두사 권총을 꺼냈다.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스승은 태연히 그 권총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뭘 하려는 거지?’

레미는 이제 식은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게 자유를 약속했다.”

스승의 목소리에는 짙은 회한이 어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네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최선의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갑자기 목구멍이 퉁퉁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레미는 미친 듯이 자신의 목을 움켜잡았지만, 이미 식도가 조여들면서 속에서 올라오는 구토물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꺽꺽거리는 비명은 닫힌 차창을 빠져나갈 만큼 크지 못했다. 그제야 그는 코냑에서 짠 맛이 느껴진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살해당하고 있다!’

레미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스승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차분히 앉아서 앞 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레미는 눈앞에 뿌옇게 흐려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저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P273-274)


'생각보다 빨리 왔군.‘

랭던과 소피가 언젠가는 시의 의미를 알아내고 뉴턴의 무덤으로 올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닥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스승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이 가진 선택 사항들을 점검해 보았다. 이제 그는 불의의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크립텍스는 내 손에 들어와 있다.’

스승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신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두 번째 물건을 만져 보았다. 메두사 권총이었다. 그가 총을 주머니에 넣은 채 사원 입구의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자, 역시 예상대로 경보가 울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성난 표정으로 신분증을 슬쩍 보여 주면 금방 경비원들이 뒤로 물러설 것이라는 점 역시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높은 지위에는 그에 걸맞은 대접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는 원래 더 이상 일이 복잡해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혼자 힘으로 크립텍스를 열 수 있기를 바랐지만, 어차피 랭던과 느뵈가 나타났으니 그들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혼자서는 아직 ‘구슬’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한 만큼, 랭던과 느뵈가 가진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랭던이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곧 시의 의미를 알아냈다는 뜻이니, 구슬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랭던이 정말로 암호를 알고 있다면, 그 정보를 빼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압력을 가하는 일뿐이었다.

‘물론 여기서는 안 된다.’

‘좀 더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다.’

스승은 사원으로 오는 도중에 보았던 조그만 안내문을 떠올렸다. 이내 그들을 유인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장소가 생각났다.

문제는....... 어떤 미끼를 던질 것인가 하는 것뿐이었다. (P294-295)


영화 다빈치 코드 21.jfif

티빙은 이제 줄줄 흘러나오는 식초를 바라보며, 그 속에 든 파피루스가 녹아내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로버트, 이 멍청한 놈! 이제 진실은 영원히 사라졌다!’

티빙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성배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졌어.’

티빙은 랭던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인류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잠시나마 그 뒷모습이라도 봐야 한다는 마음에 지금이라도 크립텍스를 열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쐐기돌을 옆으로 당겨 보았는데, 놀랍게도 별로 힘을 주기도 전에 원통이 활짝 열리는 것이었다.

티빙은 신음을 토하며 원통 안을 더듬었다. 속에서 나온 것은 깨진 유리 조각뿐이었다. 파피루스가 녹아내린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티빙은 고개를 들어 랭던을 바라보았다. 랭던 옆에는 티빙이 떨어뜨린 권총을 주워든 소피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티빙은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다시 한 번 쐐기돌을 살펴보았다. 글자판은 이제 더 이상 아무렇게나 엉켜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다섯 글자로 된 단어 하나가 새겨져 있었으니, 바로 APPLE이었다.

“이브가 훔쳐 먹은, 그래서 하느님의 신성한 분노를 초래하고 인간의 원죄를 성립시킨 구슬.”

랭던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스러운 여성성의 몰락을 상징하는 구슬.”

티빙은 진실이 거세게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느낌이었다. 뉴던의 무덤에 있어야 할 구슬은 하늘에서 떨어져 뉴턴의 머리를 때린, 그리하여 그가 어디에 평생을 바쳐야 할지 영감을 불어넣어 준 장밋빛 사과를 암시했다.

‘그의 노력의 열매! 장미의 살과 씨앗 뿌려진 자궁!’

“로버트.”

티빙은 아직도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말을 더듬었다.

“자네가 이걸 열었어. 지도는......... 어디에 있나?”

랭던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정성스럽게 말아 놓은 파피루스를 꺼냈다. 그러고는 티빙이 누워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그 두루마리를 풀어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얼굴에 알 것 같다는 미소가 번졌다.

‘저 녀석이 알아냈어!’ (P340-341)


랭던의 귓전에 마리아 쇼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을 찾아올 거예요.’

랭던은 고대의 로즈 라인 아래, 거장들의 작품에 에워싸인 채 서 있었다.

‘소니에르가 지켜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었을까?’

드디어 랭던은 이 그랜드마스터가 남긴 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한 느낌이었다. 랭던은 눈을 들어 유리 피라미드 너머로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 안식을 취한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웅성거림처럼, 그동안 잊고 있던 단어들이 저희들끼리 메아리쳤다.

‘성배를 찾기 위한 모험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골 앞에 무릎을 꿇기 위한 모험이다. 추방당한 영혼, 잊혀진 신성한 여성성의 발 앞에서 기도를 드리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불현 듯 북받치는 경외심을 주체하지 못한 로버트 랭던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잠시 어떤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땅속의 깊은 심연에서 속삭이는...... 세월의 지혜를...... (P390)

영화 다빈치 코드 18.jf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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