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부기맨>

영화 <부기맨The Boogeyman> 2023년

by 노용헌

부기맨 설화를 바탕으로 한 《부기맨》(The Boogeyman)은 2023년 개봉한 미국의 초자연 공포 영화이다. 롭 새비지가 감독을 맡았으며, 스티븐 킹이 쓴 동명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이유 없이) 두려운 것‘을 뜻하는 bogey라는 단어는 중세 영어인 bogge/bugge(무서운 무언가, 허수아비)에서 파생된 것으로 특별한 외형이 없고 공포 그 자체가 형상화된 것으로 주로 서양에서 어린아이들을 겁줄 때 언급되는 ’도깨비‘정도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벽장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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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왔습니다.” 하퍼 박사 사무실 소파에 누운 사람이 말했다. 커네티컷 주 워터베리 출신의 레스터 빌링스였다. 비커스 간호사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뉴욕의 어느 기업체 직원이었으며 이혼했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지만 아이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니까 신부님한테 갈 수도 없고, 변호사와 상의할 일을 한 것도 아니라서 변호사에게 갈 수도 없었어요. 무슨 일인가 하면 아이들을 죽였어요. 한 번에 한 녀석씩, 전부 다요.”

하퍼 박사는 녹음을 시작했다.

빌링스는 소파 위에 막대기처럼 누워 있었는데, 여유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리는 뻣뻣하게 소파 밖으로 뻗어 있고, 피할 수 없는 굴욕을 감내하는 한 남자의 모습. 손은 죽은 사람처럼 가슴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P186)

“선생이 실제로 아이들을 죽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아니오.” 불안하게 떨리는 손. “하지만 내 책임이지. 1967년에 데니, 1971년에 셜, 올해 앤디까지,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하퍼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빌링스가 초췌한 것이 나이 들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숱은 줄었고 낯빛은 창백했다. 그의 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술에 절어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살해됐다고요, 알아요? 아무도 믿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 사실만 믿어 준다면, 괜찮을 거라고요.”

“어째서 그렇죠?”

“왜냐하면 말이죠.......”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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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이들을 죽였지요?” 하퍼가 물었다.

“부기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스터 빌링스가 대답했다.

“부기맨이 아이들을 모두 죽였어. 벽장에서 나와 아이들을 죽였어.” 그는 뒤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미친 줄 아시겠지, 좋아요. 얼굴에 다 씌어져 있지만 상관없어. 내 이야기만 좀 하고 사라져 드리지.”

“듣고 있습니다.” 하퍼가 말했다. (P189)


한동안 계속 그러기에, 내가 직접 재워 보겠다고 나섰지. 계속 울면 한 대 때려 주기라도 할 작정이었죠. 그런데 리타 말이 아이가 ‘빛’이라는 말을 계속 한다는 거야, 난 잘 모르겠던데, 그렇게 조그만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나? 엄마나 돼야 무슨 말인지 알지.

리타는 밤에 쓰는 전등을 달자고 했어요. 벽에다 매달아 놓는 거 있어요. 미키 마우스나 허클베리 하운드 같은 게 그려진 거 말이에요. 허락하지 않았죠. 어릴 때 어두운 걸 무서워하는 버릇을 들이지 않아야 커서도 무서워하지 않을 테니까.

어쨌든 그 아이는 셜이 태어난 해 여름에 죽었어요. 밤에 아이를 침대에 누이는 데 곧바로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렸어요. 아이가 벽장을 정확하게 가리키면서 ‘부기맨.’ 이러는 거예요. ‘아빠, 부기맨.’

그냥 불을 끄고 우리 방으로 가서 왜 그런 말이나 가르치는 거냐고 리타를 나무랐지.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런 말 가르쳐 준 적이 전혀 없다는 거야. 어디서 거짓말이나 하고 있냐고 야단 좀 쳤죠.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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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서 가 봤죠. 아이가 바로 누운 채 죽어 있었어요. 백지장처럼 하얗더군요. 피가, 그러니까....... 피가 스며든 데 빼고는, 다리 밑이랑 머리, 음....... 엉덩이 밑에, 눈은 떴고, 그게 제일 안 좋았지. 부릅뜨긴 했는데 초점은 없는 게, 벽난로 위에 걸어 놓은 커다란 사슴 눈 같더라고. 베트남 사진에서 본 동양 아이들 눈 같기도 하고, 미국 아이들은 그런 눈을 하지 않는데, 바로 누운 채 죽어 있었죠. 기저귀를 차고, 죽기 전 몇 주는 다시 오줌을 못 가렸거든. 끔찍했죠. 그 아이, 사랑했는데 말이야.”

빌링스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더니 섬뜩한 미소를 다시 지어 보였다. “리타는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댔어요. 집사람은 데니를 일으켜 흔들어 보려고 했지만 못하게 했죠. 경찰은 증거물을 만지는 걸 싫어하거든. 나도 알고는......”

“그때 벌써 그것이 부기맨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하퍼가 나직이 물었다.

“아, 아니요. 그때는 몰랐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그때는 별 의미가 없다 싶었는데 어떻게 머릿속에 남았나 봐요.”

“그게 뭐였죠?”

“벽장 문이 열려 있었어요. 많이는 아니고, 살짝, 근데 난 벽장은 꼭 닫아 놓는단 말입니다. 알아요? 벽장 속에 드라이클리닝 커버가 있으니까요. 애들이 그런 걸 갖고 놀게 되면 꼭 일이 생기죠. 질식사, 알죠?” (P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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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부기맨이 그 아이도 죽였어요. 한 달 후의 일이었지. 하지만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 이상한 소리가 났거든, 그러고는 딸아이가 비명을 질렀지. 난 문을 재빨리 열었어요. 전등이 켜져 있고....... 딸아이는 침대에 앉아 울고..... 무언가가 움직였어요. 벽장 옆. 어두운 쪽에서요. 미끄러지듯 움직였어요.”

“벽장문은 열려 있었나요?”

“약간, 살짝 열려 있었어요.” 빌링스가 입술에 침을 발랐다.

“셜은 부기맨이라면서 비명을 질렀어요. 그리고 ‘갈퀴’라나 그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은 ‘가지’라고 했을 거야. 어린애들은 발음을 잘 못하잖아. 리타가 뛰어 올라와 무슨 일이냐고 하더군요. 천장에 비친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놀랐을 뿐이라고 말해줬죠.”

“가지라고요?” 하퍼가 물었다.

“에?”

“가지....... 가지가 비친 벽장, 모르긴 몰라도 ‘벽장’을 말하려던 건 아닐까요?” (P194-195)

“꿈을 꾸었지.” 빌링스가 말했다. “난 어두운 방에 있었고 잘 보이지는......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벽장 속에 뭔가 있긴 있었어. 소리가 들렸는데....... 철벅거리는 소리. 어렸을 때 읽은 만화 책이 떠오르더군요. <지하실 괴담>이라는 건데, 기억나세요? 와, 진짜, 그레이엄 잉글스라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무서운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그렸지. 어쨌든, 그 책에 보면 주인공 여자가 자기 남편을 물에 빠뜨려 죽이거든, 알아요? 발에 시멘크 덩어리를 묶어서 물에 빠뜨리는데, 남편이 돌아오잖아. 남편 몸은 온통 썩어 검은 초록색이고 눈 한쪽은 물고기가 파먹어 없어졌고 머리에는 해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돌아와서 여자를 죽였지. 자다 깼을 때 그 남자가 날 내려다보는 줄 알았어. 갈퀴...... 커다란 갈퀴 손을 하고 말이야.”

하퍼 박사는 책상 위 디지털 시계를 바라보았다. 레스터 빌링스는 거의 삼십 분째 이야기 중이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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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아이를 다른 방에 재웠던 거야. 그놈이 아이를 찾아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알아? 아이가 나보다 약하니까. 그리고 그놈이 왔어. 방을 옮긴 첫날 밤 아이가 한밤중에 비명을 질렀어. 떨리는 맘을 다잡고 용기를 내 방에 들어가 보니까 아이가 침대에 서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부기맨, 아빠........ 부기맨이야. 아빠랑 갈래, 아빠랑 갈래.” 빌링스의 목에서 어린아이처럼 가는 소리가 나왔다. 그의 눈이 얼굴 전체를 덮고 몸이 소파 위에 바짝 오그라드는 듯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어린아이처럼 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럴 수 없었어. 한 시간 후에 다시 비명을 들었어. 숨 넘어가는 소리가 끔찍했어.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어. 난 달렸어, 들어가서. 불을 켤 겨를도 없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는데, 아, 하느님, 그놈이 아이를 해치고 있었어. 그놈은 아이를 잡아 흔들고 있었어. 셰퍼드가 천 조각을 물고 흔들어대듯 아이를 흔들어 대고, 구부정한 어깨와 산발한 머리가 보였고, 콜라 병에 들어있는 죽은 쥐 냄새가 났고, 그리고 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어른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앤디의 목이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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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벽장문은 열려 있었다. 살짝.

“아주 좋아.” 벽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주 좋아.” 썩은 해초를 입에 가득 물고 내는 소리 같았다.

벽장 문이 활짝 열리자 빌링스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어렴풋이 바짓가랑이가 뜨뜻해지는 걸 느꼈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아주 좋아.” 부기맨이 발을 질질 끌며 나왔다. 갈퀴 모양을 한, 썩어 문드러진 그의 손에 하퍼 박사의 마스크가 들려 있었다.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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