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베라는 남자> 2016년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오토라는 남자>(2023)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분장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오베는 59세다.
그는 사브를 몬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은 강도고 자기 집게손가락은 경찰용 권총이라도 되는 양 겨누는 남자다. 지금 그는 일제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흰색 케이블을 사러 오는 가게의 카운터에 서 있다. 오베는 점원을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자기 앞에 있는 하얀 상자를 들어 점원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패드인가 뭔가라는 거지?”
그가 다그쳤다. 빼빼 마른 체질의 젊은 점원은 매우 불편해 보인다. 누가 봐도 오베의 손에서 상자를 잡아채고 싶어 안달복달하는게 빤했다.
“네, 맞아요. 아이패드요. 굳이 그렇게 흔들지 않으실 수도 있겠죠....?”
오베가 굉장히 수상쩍은 물건이라는 듯 상자를 향해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진다. 마치 추리닝을 입고 스쿠터에 올라탄 상자가 오베에게 ‘이봐, 친구!’라고 부르고는 시계를 팔기라도 한 양, “알겠어, 그러니까 이게 컴퓨터다?” (P7-8)
오베가 주민 자치회 회장이었을 당시, 사람들이 쓰레기 처리장에 허가받지 않은 쓰레기를 투기하는 걸 막기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고 강력히 추진했다. 오베에게는 참으로 짜증스럽게도, 그 제안은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제안을 ‘살짝 거북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그들은 비디오테이프를 전부 보관하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베가 ‘정직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끈질기게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2년 뒤, 그러니까 오베가 자치회 회장에서 물러난 후(나중에 오베는 이 사건을 쿠데타라고 언급했다) 그 의제가 다시 등장했다. 새 운영 위원회는 주민들에게 최신 카메라가 나왔는데 센서가 있어 움직임이 감지되었을 때만 작동하며, 녹화된 화면은 곧바로 인터넷으로 전송된다고 솜씨 좋게 설명했다. 그런 카메라의 도움을 받으면 쓰레기 처리장뿐만 아니라 주차 구역도 감시할 수 있다고, 따라서 기물 파괴범이나 강도를 막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더 좋은 건 녹화된 자료는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므로 ‘주민들의 사생활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는 걸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카메라 설치를 추진하자는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다. 딱 한 사람만 반대표를 던졌다.
그건 오베가 인터넷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인터’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터넷’의 철자를 쓸 때 대문자로 ‘아이(I)'를 쓰고 ’넷(net, 올가미)‘을 강조했다. 운영 위원회는 이내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오베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어떤 카메라도 설치되지 않았다. 오베는 차라리 잘된 거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어쨌거나 매일매일 시찰을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래야 당신들도 누가 뭘 하고 있는지, 누가 이 상황을 계속 통제하고 있는지를 알 거 아니냔 말이다. 이건 머리를 반만 굴려도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P17-18)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땅을 다시 찼다. 그는 은퇴를 바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들이 잉여가 될 날을 고대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 있지? 하릴없이 배회하면서 사회의 짐이나 되는, 대체 어떤 인간이 그런 걸 소망하지? 집에 앉아 죽을 때나 기다리는 삶. 더 최악인 것은 누군가 자길 양로원에 집어 넣어주길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화장실에 가는 삶. 오베는 그보다 더 나쁜 게 뭔지 상상이 안 갔다. 그의 아내는 종종 그를 놀리면서, 그는 자기가 아는 한 이동 간병 밴을 이용하느니 차라리 관 속에 드러누울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제대로 짚은 것이리라.
오베는 6시 15분 전에 일어났다. 아내와 자신이 마실 커피를 내리고, 그녀가 몰래 라디에이터 온도를 높여놓지는 않았는지 점검 차원에서 집을 둘러보았다. 전날의 상태에서 바뀐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는 만전을 기하기 위해 온도를 살짝 더 내렸다. (P41)
그는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를 천천히 돌리면서 계속 거기 서 있었다. 뭔가 할 말을 더 찾고 있는 것처럼, 그는 대화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그건 항상 그녀가 담당하던 것이었는데, 그는 대개는 그냥 대답만 했다. 지금 이건 둘 다에게 새로운 상황이었다.
오베는 몸을 웅크리고는 지난주에 가져왔던 화초를 파낸 다음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는 새 꽃을 꽂아 넣기 전 언 땅을 조심스레 뒤집었다.
“그 인간들이 전기 요금을 또 올렸어.” 오베가 몸을 일으키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그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커다랗고 둥근 바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고, 마치 그녀의 볼을 만지듯 좌우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P54-55)
오베는 아내의 친구들이 자신과 결혼한 그녀를 이해 못 한다는 걸 잘 알았다. 사실 그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들이 옳으리라. 그는 그 점을 결코 심각하게 반성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회성이 없다’고도 했다. 오베는 이 말이 자기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싹싹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베는 잡담에 끼어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경향이 최소한 오늘날에는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영감탱이 아무나와 무슨 주제로든 수다를 떨 수 있어야 했다. 순전히 그게 ‘사근사근한’ 태도라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오베 세대의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가치 없어 보이는 일들을 한다고 떠들어대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날 사람들은 새로 개조한 주택 앞에 서서 마치 그 집을 자기들 손으로 직접 지은 양 떠벌였다. 드라이버 하나 집어 올리지 않았으면서, 그들은 심지어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허풍이나 떨었다! 자기가 직접 마룻바닥을 깔거나 습기 찬 방을 개조하거나 겨울용 타이어를 갈아 끼울수 있다는 건 더 이상 아무런 미덕도 아니었다. 나가서 다 돈으로 살 수 있는데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도대체 인간의 가치란 무엇인가?
아내의 친구들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뜬 뒤 오베와 함께 하루를 공유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베가 그녀에게 책장을 만들어주면 그녀는 페이지마다 작가의 생각으로 가득 찬 책들을 거기에 꽂았다.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유리와 강철, 공구들,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 그는 올바른 각도와 분명한 사용 설명서를 이해했다. 조립 모델과 도면,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것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56-57)
아버지가 죽은 건 오베가 막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철로에서 객차가 돌진했다. 오베에게는 사브 한 대, 마을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무너질 듯한 집. 상처 난 손목시계 말고는 딱히 남은 게 없었다. 그는 그날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게 사는 걸 멈췄다. 그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장례식에서 교구 목사는 오베와 위탁 가정 얘기를 해보고 싶어했지만, 목사는 이내 오베가 자선을 받아들이는 아이로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오베는 목사에게 조만간 있을 일요일 예배 때 자기 자리를 따로 마련해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가 목사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그건 오베가 신을 믿지 않아서라기보다, 신이 좀 빌어먹을 개자식처럼 느껴져서였다.
다음 날 그는 철도 회사 경리부로 가서 그 달에 남은 날만큼의 임금을 반환했다. 경리부 여직원은 이해를 못했고, 오베는 아버지가 16일에 죽었기 때문에 남은 14일 동안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게 분명하지 않느냐며 설명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월급을 선불로 받았고, 14일치 임금을 넘치게 받은 셈이므로 오베가 잔액을 돌려주러 온 것이었다.
여직원은 머뭇거리면서 오베에게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15분 정도 지나고 임원이 나타나 죽은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손에 든 채 복도 의자에 앉아 있는 열여섯 살짜리 별난 소년을 보았다. 임원은 그 소년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임원은 돈에 대한 권리가 자기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소년에게 그 돈을 도로 가져가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베에게 남은 14일 동안 일을 해서 돈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외에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오베는 그게 합리적인 제안 같다고 생각했고, 학교에 2주 동안 결석하겠다고 통지했다. 이후 그는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철도 회사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차를 탔다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처음 웃은 게 바로 그날이었다.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P68-69)
그는 발판을 마루 한가운데 놓았다. 페인트를 최소한 일곱 번은 덧칠했던 물건이다. 오베의 아내는 원칙적으로 오베에게 여섯 달마다 한 번씩 집 안의 방 중 하나를 새로 칠하도록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여섯 달마다 집 안 어딘가 한 곳의 색깔이 바뀌길 바랐다. 그녀가 오베에게 지겹도록 말하고 나면, 그는 그녀에게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면 그녀는 업자를 불러 견적을 냈다. 그러고는 자기가 업자에게 이만큼은 줘야겠다고 했다. 그러면 오베는 페인트칠을 할 때 쓰는 발판을 가지러 갔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오베는 드릴 비트가 든 상자를 가지러 갔다. 드릴로 구멍을 뚫을 때 사실상 가장 중요한 건 이것들이었다. 드릴이 아니라 드릴 비트 말이다. 브레이크 패드나 뭐 그런 쓸데없는 걸 만지작거리는 대신 제대로 된 타이어를 차에 끼우는 게 중요하듯. 뭔가 ‘아는 사람’들은 그런 걸 알기 마련이다. (P83)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아무도 타이어를 갈아 끼우지 못했다. 전등 스위치 하나 설치 못했다. 바닥에 타일도 못 깔았다. 벽에 회반죽도 못 발랐다. 자기 세금 장부 하나 못 챙겼다.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잃어버린 형태의 지식들만 넘쳐났다. 한때 이런 이야기들을 루네와 했다. 그랬는데 루네는 가서 BMW를 샀다.
세상일에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게 구제불능인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맞다. 오베는 루네와의 논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논쟁은 계속되었다. 논쟁은 라디에이터와, 중앙난방 시스템과, 주차 구역과, 베어야 하는 나무들과, 눈 청소와, 잔디 깎는 기계와, 루네의 집 연못에 놓은 쥐약으로 이어져 왔다. 그들은 35년이 넘도록 똑같이 생긴 집 뒤에 있는 똑같이 생긴 테라스를 서성거리며 울타리 너머로 서로를 의미심장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약 1년 전 어느 날, 모든 게 끝났다. 루네가 병에 걸렸다. 그는 더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베는 그가 여전히 BMW를 갖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편으로 그는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를 그리워했다. (P119)
사람들은 오베와 오베의 아내가 밤과 낮 같다고 늘 말했다. 오베는 당연하게도 자기가 밤 쪽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게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반면 누군가 그런 말을 할 때 오베의 아내는 항상 재미있어했는데,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낄낄 웃으면서 사람들이 오베를 밤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가 태양 쪽으로 가기에는 너무 못돼먹어서라고 지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가 왜 자기를 택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음악이나 책이나 이상한 단어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사랑했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남자였다. 그는 드라이버와 기름 여과기를 좋아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살아갔다. 그녀는 춤을 췄다.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언젠가 그가 어째서 늘 그렇게 명랑하게 살아가려 하느냐고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읽는 책 중 하나에 프란체스코인가 하는 수도사가 그렇게 써놓은 게 분명했다.
“날 속이면 안 돼요. 여보.” 그녀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커다란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춤을 춰본 역사가 없었다. 춤이란 너무 무계획적이고 어지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직선과 명료한 결정을 좋아했다. 그게 그가 늘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수학에는 정답 아니면 오답만 있었다. 수업 중에 ‘네 입장을 토론해보자’며 사기를 치려 드는 히피 같은 과목들과는 달랐다. 마치 누가 긴 단어를 더 많이 아는지 점검하는 게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기라도 한 것인양. 오베는 옳은 건 옳은 것이고 틀린 건 틀린 것이길 원했다. (P152-153)
그는 말도 안 되게 큰 그녀의 가방들을 버스로 옮겼다. 운전사 옆을 지나갈 때 와인 냄새가 났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방식이려니 결론을 내리고는 그냥 내버려뒀다. 좌석에 앉았을 때 소냐가 오베의 손을 그녀의 배에 갖다 댔고, 그는 뱃속의 아이가 발차기 하는 걸 느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베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를 따라 버스의 중간쯤 갔을 때 버스가 요동쳤고, 중앙 분리대를 긁더니 한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마치 크게 심호흡을 하듯, 그리고 나서 유리가 터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금속이 뒤틀리며 무자비하게 째지는 소리를 냈다. 버스 뒤에 있는 차들이 충돌하며 난폭하게 버스를 으스러뜨렸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는 결코 그 소리를 잊지 못했다.
오베는 내동댕이쳐졌고, 자기가 배 쪽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만 기억이 났다. 그는 두려움에 질린 채 여기저기서 혼란스럽게 흩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냐를 찾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그는 천장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유리 조각들에 몸을 베이면서 자기 몸을 앞으로 날렸지만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았다. 마치 분노에 찬 야생 동물이 뒤에서 그를 낚아채는 바람에 천박한 굴욕 속에 내쳐진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느꼈던 철저한 무력감은 이후 남은 인생 내내 밤마다 그를 따라다닐 것이었다.
그는 사고가 일어난 첫 주 내내 그녀의 병상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간호사가 그에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강력히 권유할 때까지, 어딜 가든 사람들이 동정하는 눈길로 그를 보며 ‘애도’를 표현했다. 의사 하나가 병실로 들어와 오베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한 목소리로 ‘그녀가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베는 그 의사를 굳게 잠겨 있던 문을 뚫고 내동댕이쳤다. “아내는 안 죽었어!” 그가 복도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죽은 것처럼 굴지 말란 말야!” 병원의 누구도 다시는 감히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P273-275)
다음 날 아침 오베는 새벽에 일어나 사브를 몰고 그녀의 학교로 간 다음, 시의회가 설치를 거부했던 장애인용 경사로를 자기 손으로 직접 깔았다. 그 뒤 그녀는 매일 저녁마다 집에 와서, 오베가 기억하는 한 무척 오랫동안, 눈에 열의를 가득 담고 그녀가 가르치는 소년 소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찰에게 호송을 받으며 교실에 들어오지만 하교할 때는 400년 전의 고전시를 암송하는 아이들에 대해, 그녀를 울리고, 웃기고, 목소리가 그들의 작은 집 천장까지 닿도록 노래를 하게 만드는 아이들에 대해 오베는 그 감당 못할 아이들에 대해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그 녀석들이 소냐에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싫어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P280-281)
남자의 감정을 그들이 모는 차를 가지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이 주택 단지로 이사왔을 때, 오베는 사브 96을 몰았고 루네는 볼보 244를 탔다. 사고 이후 오베는 사브 95를 사서 거기에 소냐의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했다. 같은 해 루네는 유모차를 넣을 자리를 마련하려고 볼보 245를 샀다. 3년 뒤 소냐는 더 현대적인 휠체어를 샀고, 오베는 해치백이 달린 사브 900을 샀다. 루네는 볼보 265를 샀는데 아니타가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말하기 시작해서였다.
그 뒤 오베는 사브 900을 두 대 더 구입한 뒤 처음으로 사브 9000을 샀다. 루네는 볼보 265를 샀고 결국에는 볼보 745 스테이션 웨건을 샀다. 하지만 아이는 더 태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소냐가 집에 와서 오베에게 아니타가 의사를 찾아갔었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루네의 차고에는 볼보 740이 서 있었다. 세단 모델이었다.
오베는 자기 사브를 세차하다가 루네의 세단을 봤다. 그날 저녁 루네는 자기 집 문 앞에 반쯤 마신 위스키 한 병이 놓인 걸 발견했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슬픔이 두 남자를 더 가깝게 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란 그런 점에서는 믿을 만한 감정이 아니다. 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슬픔은 대신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낼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베는 루네가 아들을 가진 걸 결코 용서 못했는지도 모른다. 정작 아비와는 잘 지내지 못했던 아들을. 어쩌면 루네는 오베가 그 문제로 자기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코 용서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남자 모두 자신들이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그녀들이 무엇보다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루네와 아니타의 아들은 다 자라서 기회가 생기자마자 집을 떠났다. 그리고 루네는 스포티한 BMW를 구입했다. 딱 두사람과 핸드백 하나 들어갈 자리가 있는 차였다. 왜냐하면 루네가 주차 구역에서 소냐를 마주쳤을 때 말했듯, 이젠 세상에 둘뿐이었으니까. “그중 하나는 남은 일생 동안 볼보를 몰지 못할 거고요.” 그가 내키지 않는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소냐는 그가 눈물을 삼키려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오베는 루네가 자신을 영원히 포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그 때문에 오베도 루네를 용서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를 보는 걸로 사람의 감정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P332-333)
오베는 자기가 언제부터 말을 안 하고 살았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는 언제나 과묵하긴 했지만 이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어쩌면 그는 자기 머릿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는 미쳐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그는 때때로 그 점이 몹시도 궁금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길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낼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손가락이 묘석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며 움직이도록 놓아두었다. 마치 무척 두꺼운 융단에 달린 술을 쓰다듬듯이, 그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등 하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젊은이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삼십 대 직원들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얼마나 원하는지 같은 이야기만 해댔다. 마치 그게 일을 하는 유일한 목표인 양.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되는 지점까지 이르는게 목표인 양. 소냐는 오베가 ‘세상에서 가장 융통성 없는 남자’라며 웃곤 했다. 오베는 그걸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세상사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야 했고 그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는 그게 어떻게 못된 성질머리가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냐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정신적 혼란의 순간이었던 1980년대 중반에 자기가 오베를 설득해서 빨간색 사브를 사도록 했던 시절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는 언제나 파란색 사브를 몰고 다닌다는 걸 알았는데도 말이다. “오베 인생에서 최악의 삼 년이었어요.” 소냐가 킥킥거렸다. 그 뒤 오베는 파란색 사브 말고는 절대로 몰지 않았다. “다른 집 아내들은 자기가 머리를 새로 한 걸 남편들이 못 알아본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잖아요. 제가 머리를 하니까 우리 남편은 내가 달라졌다고 며칠 동안 짜증을 내더라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게 오베가 무엇보다 그리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늘 같은 것.
오베는 사람들은 제 역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제 역할을 했고, 누구도 그에게서 그걸 빼앗아갈 수 없다. (P352-353)
예전에 소냐는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인생에서 몇 가지 단순한 것들을 바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머리 위 지붕, 조용한 동네, 똑바로 만든 자동차, 헌신할 수 있는 여성, 제대로 된 할 일이 있는 직장, 정기적으로 뭔가 망가져서 언제나 고칠 게 있는 집.
“사람들은 모두 품위 있는 삶을 원해요. 품위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거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했다.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물론 소냐는 오베가 자기의 이름 없는 분노를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거기에 이름표를 붙일 필요가 있었다. 분류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의회의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들, 평범한 사람들이 식별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그자들이 그녀가 원치 않는 일들을 하려 할 때--일을 못하게 하고, 집에서 끌어내려 하고, 걸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라고 암시하고, 그녀가 죽어간다고 우기려 했다-- 오베는 그들과 싸웠다. 서류들과 신문 투고와 민원 제기로, 학교에 이동 경사로를 설치하는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는 그녀를 위해 하얀 셔츠의 남자들과 정말로 끈덕지게 싸운 나머지 끝내는 그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그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일어난 일도.
그러고 나서 그녀는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세상에 그를 혼자 남겨두고 떠났다.
그날 밤 늦게 오베는 고양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잠시 보고 나서, 거실의 불을 끄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양이가 조심스레 그를 따랐다. 마치 그가 이제부터 자기에게 알리지 않은 짓을 하리라는 걸 감지한 듯. 고양이는 오베가 잠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침실 바닥에 앉아 마술쇼의 속임수를 이해하려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베는 침대로 들어가, 그 빌어먹을 고양이가 소냐의 자리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한 시간쯤 누워 있었다. 고양이에 대한 책임감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헛고생을 할 기력이 없을 뿐이었다. 자기 털도 돌보지 못하는 동물에게 삶과 죽음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고양이가 소냐의 베개로 데굴데굴 굴러가 입을 벌리고 코를 골기 시작하자 오베는 고양이가 모르게, 가능한 한 날렵하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거실로 내려가 라디에이터 뒤에 숨겨뒀던 라이플을 꺼냈다. 헛간에서 챙겨와 고양이가 보지 못하게 청소 도구용 벽장에 숨겨놓았던 튼튼한 방수포 네 장도 꺼냈다. 방수포를 현관 벽에 테이프로 붙이기 시작했다. 나름 숙고를 거친 끝에 오베는 이곳이 그 행위를 저지르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여기가 표면적이 제일 작은 구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이 자기 머리를 총으로 쏘면 피가 상당히 튈 거라 예상하고는 자기가 자살을 해야 하는 것보다 집을 난장판으로 해놓고 떠나게 생겼다는 사실에 더 진저리를 쳤다. 소냐는 그가 집 안을 어질러놓을 때마다 늘 싫어했다. (P370-372)
때로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그들 자신이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하는 게 나아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유이기도 했다. 즉 자기들이 진작 그 일을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마 오베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내내 알고 있었겠지만,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P380)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소냐는 그들이 결혼한 뒤로 오베가 딱 한 번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한 적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때는 1980년대 초반,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일에 대해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서였다. 오베는 그건 거짓말이라고, 망할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오베는 그녀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P410-411)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P436-437)